열세 번째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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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아껴가며 책을 읽고, 조심스레 공들여 보관하고 관리해도 시간이 지나면 책 등은 누렇게 변색되고 고슬고슬한 책장은 뻣뻣해지게 마련이다. 2007년에 내가 처음 만났던 <열세 번째 이야기>도 상태가 깨끗한 편이긴 하지만 책 등이 바래고 페이지들도 거칠거칠해졌다.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손때 묻고,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껴안고 있는 오래된 책이 좋다. 도서관에 가면 특유의 향기가 있는데, 그건 바로 오래된 종이에서 나오는 냄새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낡은 종이 냄새를 사랑하고,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윈터 여사는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방 한구석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고정된 바로 그곳에, 그녀의 지나온 세월이 지금 이 순간보다도 더, 그녀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보다도 더 선명하게 펼쳐져 있는 듯했다. 그녀의 입가에, 그리고 눈동자에 슬픔과 혼란이 뒤섞인 무언가가 스쳤다. 그녀와 그녀의 과거를 잇는 가느다란 줄을 바라보면서 나는 한편으로는 그 줄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까 봐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이야기가 중단될까 봐 두려웠다.

아버지와 함께 헌책방을 꾸려가며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의 전기를 쓰는 마가렛 리는 어느 날 영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비다 윈터로부터 편지를 받게 된다. 오랜 세월 비밀스러운 과거로 유명했던 그녀가 이제야 비로소 진실을 말하겠다며,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고 제안해온 것이다. 마가렛 리는 현대물이 아닌 고전에 매혹되어 왔고, 그래서 항상 죽은 작가들의 전기만을 써왔다. 게다가 그녀는 비다 윈터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어 본 적이 없다. 마가렛 리는 비다 윈터의 책 <변형과 절망의 열세 가지 이야기>를 아버지가 수집한 희귀 초판본으로 우연히 만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된다. 그런데 그 작품은 마지막 열세 번째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았다. 사라진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품고 비다 윈터를 만나게 된 그녀가 만나게 되는 것은, 시골 마을 앤젤필드의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음산하고 기괴한 이야기였다.

옛날 옛날에, 유령이 사는 저택이 있었지!

옛날 옛날에, 책으로 둘러싸인 방이 있었어!

옛날 옛날에, 쌍둥이가 있었어........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신경질적이고, 오만하고, 어느 면에서는 다소 무례하기까지 하며 진실을 말할 거라고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비다 윈터를 마주한 마거릿은 그녀의 저택을 떠나려하다,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뒤를 돌아보고 만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쌍둥이 자매가 있었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그녀를 잃었으며, 그 사실을 여태 숨겨온 부모 덕분에 최근에서야 그 비밀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직업이 오직 진실만을 다루는 전기 작가였고, 자신이 한 눈에 사로잡힌 <열세 가지 이야기>를 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자신이 늙고 병들었으므로 그 동안 세상에 보여준 수많은 거짓말 대신 진실을 말해야겠다고 외치는 비다 윈터의 목소리에서 두려움과 비슷한 무언가에 사로잡힌 감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거릿은 엔젤필드라는 마을의 대저택에 살았던 가족, 조지와 마틸드, 그들의 아이들인 찰리와 이사벨, 이사벨의 아이들인 에멀린과 애덜린의 삶과 운명, 그리고 그들의 두려움과 그들의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제 이야기에 대해 물으셨죠?"

내가 말했다.

"이야기 따윈 없다고 자네가 말했지."

"제게도 이야기가 있어요."

"있고말고. 그 사실을 의심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네."

윈터 여사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와 함께 헌책방을 운영하며 책을 읽는 것이 오로지 낙인 소녀와 대저택에 거주하며 은둔생활을 하는 비밀스런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것만으로 이 작품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저 설레임을 주는 작품이다. 게다가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배경들은 고딕 소설로서의 매력도 충분히 보여주며, 비다 윈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뒷조사를 하는 마거릿의 이야기는 웬만한 미스터리 소설 못지않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대저택에서 일어난 의문의 화재, 금기를 뛰어 넘는 사랑, 가문의 저주, 유령의 존재,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비극, 그렇게 18세기 영국 시골 마을 엔젤필드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들은 매우 고풍스러우면서도 전혀 지루하거나 촌스럽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푹 빠져들게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이미 나는 9년 전에 이 책을 읽은 터라 내용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점차 폐가로 변해가는 대저택과 그곳에 버려진 쌍둥이 소녀의 이야기와 비다 윈터가 들려주는 말 속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애쓰는 마거릿의 이야기가 계속 교차되며 어느 순간 과거와 현재가 만나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이른다.

 

결혼이나 죽음, 고귀한 희생이나 기적적인 소생, 비극적인 이별과 뜻밖의 재회, 엄청난 파멸과 꿈의 실현... 그런 것들이야말로 기다릴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마거릿은 비다 윈터의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현대 소설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합리적인 결말을 가지고 있는 오래된 소설을 사랑했고, 항상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렸기 때문에 죽은 자들의 이야기만 써왔기 때문이다. 부업인 전기 작가 일 외에 그녀의 본업은 책방에서 책을 '돌보는 것'이었는데, 마치 죽은 자의 무덤을 보살피듯 그녀는 책을 보살핀다. 책을 닦아주고, 작은 흠집을 보수하고, 말쑥한 상태로 유지하며, 날마다 책을 한두 권 뽑아 몇 줄, 몇 페이지를 읽으며 죽은 자의 목소리가 자신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마거릿이 매일 책을 아무거나 뽑아서 몇 줄, 몇 페이지씩 읽는 대목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사실 이것이야말로 책을 제대로 보살피는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책장 가득 진열해놓고 수집하는 것도 아니고, 먼지를 닦아주며 오로지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도 아닌, 책을 끊임없이 읽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책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그 순간이야말로 책이 지닌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아주 오랜만에 만난 이 작품은 여전히 페이지 곳곳에 책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 있어,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개정판은 두툼한 두께는 비슷하지만, 작은 판형으로 사이즈가 콤팩트해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 더욱 좋아졌고 말이다. 내 책장 속에서 초판본 책이 그 동안 먼지를 쌓아가며 시간을 버텨내는 동안 나는 또 얼마나 변했을까. 9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외모도, 성격도,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책 속의 이야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품 덕분에 책장 속에 가득한 책들을 한번 더 살펴보고, 꺼내어 보게 되었다. 극중 비다 윈터의 말처럼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마치 가족과도 같은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그들을 잃었다고 해도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 있으니까. 그들에게서 멀어지거나 등을 돌려도 가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 아닌가. 그러니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어느 화창한 날, 당신의 하나의 이야기, 소설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도 당신이 이 작품 <열세 번째 이야기>를 읽게 된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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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2-04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오나 님의 글을 읽고서 저한테 있는 책을 한 번 꺼내봅니다. 책등과 페이지가 누렇게 변해 있군요. 초판과 개정판을 모두 소장하시다니 부럽습니다. ^^; 피오나 님이 책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겠고요,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

피오나 2016-12-04 21:05   좋아요 1 | URL
五車書님 역시 저만큼 책을 사랑하는 분같은데요.ㅎㅎ 책등과 페이지가 누렇게 변해있는 책들을 가지고 계시다니 말이죠. ^^ 이 작품은 뭐랄까, 오래된 책냄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혹될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다시 읽어도 읽는 내내 설레더라고요. 하핫..
 
콩고양이 5 - 뭐야뭐야? 그게 뭐야?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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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이 너무도 추웠기에, 올해 겨울은 이 정도면 안 춥네 싶다가도 어느 순간 매서운 날씨에 깜짝 놀라게 된다. 겨울은 어쩔 수 없이 겨울이니 말이다. 쌀쌀한 바람에 두 볼이 빨갛게 물들고, 손도 꽁꽁, 발도 꽁꽁이라 어디 외출이라도 한번 하려면 완전 무장에 이것저것 싸매고 나가도, 막상 겨울 날씨와 마주하면 괜히 나왔다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 보니 일본 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하던 고다쓰도 국내에서 팔더라. 이런 날씨에는 그저 고다쓰 처럼 낮은 테이블 아래 발을 집어 넣고 따뜻함으로 몸을 무장한 채 뜨거운 커피나, 호빵 같은 걸 먹으면서 만화책 삼매경에 빠지는 게 제격이다. 그리고 그런 풍경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 <콩고양이> 시리즈가 두식이와 함께 돌아왔다. 지난 네 번째 작품에서 처음 등장했던 두식이는 이번 다섯 번째 작품에서 더욱 흥미진진한 활약(?)을 펼치게 된다.

 

우리의 팥알이와 콩알이의 주인님은 "나는 역시 고양이가 더 좋은 가봐. 개가 좋다고 달려드는 거 좀 그래"라며 두식이가 달려들어 반기는 거에 난색을 표하지만, 의외로 집동자귀신 아저씨는 "나는 의리 있고 똑똑한 것이 개가 더 좋은데. 고양이는 불러도 안 오지만 개는 발딱 일어나 오잖아."라고 대꾸한다. 사실 이것이 바로 개와 고양이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개는 사람의 곁에 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주인을 올려다보는 반면, 고양이는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보지 않나. 게다가 그 표정 또한 개는 주인을 위해 뭐라고 하고 싶어하는 듯하다면, 고양이는 세상 만사를 다 꿰뚫어보는 듯한 시크 그 자체이니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확연히 다른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콩고양이> 시리즈를 읽다 보면 개도, 고양이도 모두 다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두식이의 등장 때문에 팥알, 콩알이 외에 가족들의 비중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두식이와 산책을 나가고 관심을 보이는 집동자귀신 아저씨도 마트 애견 코너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는 마담 북슬도, 두식이를 데려온 장본인인 안경남도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도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집동자귀신 아저씨와 두식이의 이별 에피소드는 정말 최고이니, 이 작품의 후반부를 주목해서 보시길 바란다. 뭉클하면서도 코믹하고,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들을 기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주는 기막힌 에피소드니까.

 

아마도 만화의 가장 좋은 점이 이런 거 아닐까 싶다. 여백이 많은 프레임에 둥둥 떠있는 짧은 대사와 간간이 미소 짓게 만들고, 또 그 틈틈이 뭉클하게 만들고, 그 와중에 지나간 추억도 떠오르게 만들고 말이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고, 시간을 많이 투자할 필요도 없는 책 읽기란 퍽퍽한 현실에서 벗어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다.

"뭐 해? 너 물웅덩이에서 노는 거 좋아하잖니."

뭐 그리 말씀하셔도 그닥 씻고 싶지 않지 말입니다.

요즘처럼 시국이 어수선할 때는 딱딱하고 머리 아픈 독서보다는, 가볍고 유쾌하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이런 독서가 제격이다. 반려동물과 체온을 나누며 살았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반려동물에게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이들이라면, 팥알, 콩알, 두식이네 일상이 소소하지만 따스한 기분과 함께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싶다. 추운 계절, 날씨만큼 마음도 얼어붙게 만드는 뉴스들로 삭막한 세상 살이 속에 조금의 위로, 혹은 그래도 삶이 아름답다는 위안을 얻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팥알이와 콩알이, 그리고 두식이의 세계 속에서 잠깐들 쉬어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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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0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는 책 다음으로 꽂힌 것이 애니입니다. 이제야 제게 덕후 본능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

피오나 2016-12-03 18:31   좋아요 0 | URL
오..덕후본능을 찾으셨다니 어쩐지 반갑네요ㅋㅋㅋㅋㅋ
 
콩고양이 4 - 소자 두식이라 하옵니다!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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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를 과연 한 집안에서 키울 수 있을까.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한 집안에 고양이와 개를 여러 마리씩 키우는 것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가정이 늘고 있다고 하며, 고양이와 개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서로를 의지하기도 한다.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라는 말은 어느덧 옛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콩고양이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 <소자, 두식이라 하옵니다!》는 장난꾸러기 고양이팥알, 콩알콤비와 새롭게 합류한 시바견 ‘두식’이 함께하는 그들만의 색다른 동거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릴 때 집에서 하던 농원에서 개 세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지낸 적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들을 함께 키우려던 건 아니었고, 개들을 키우고 있던 차에 길 잃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연히 합류하게 된 거였다. 주인 없는 고양이를 발견한 아빠가 김이며, 우유며 먹을 거리들을 주기 시작했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그걸 먹으러 들르다가 아예 우리 농원에 눌러 앉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 고양이는 다른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고, 오로지 처음에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먹을 거리들을 주었던 아빠 곁에만 가서 몸을 비비고 앉아 있곤 했다. 어린 마음에 원래 고양이란 애들은 저렇게 도도하고, 예민해서 다가가기 쉽지 않은 동물이구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한참 개들과 뛰어 놀 때, 고양이는 아빠 옆에 앉아서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앉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풍경이 조화로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개와 고양이가 함께 섞여서 놀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풍경의 한 프레임에 함께 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는 거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가 학교에 가고 세상의 더 많은 지식들을 알게 되면서 개랑 고양이가 앙숙이라는 (어찌 보면 잘못된) 정보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래서 그들이 같이 놀지 않았구나 싶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성향과 기질이 다른 동물이라고 해서 친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개랑 고양이도 함께 지내다 보면 친해지지 않을까 아쉬웠던 기억도 난다. 당시에 마음 속으로만 그렸던 그 꿈의 풍경을 이번 콩고양이 네 번째 시리즈에서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심심해서 뒹굴 거리던 팥알이와 콩알이네 집에 어느 날, 안경남이 새로운 소식을 가져온다. 아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키우던 고양이랑 개가 남겨졌는데, 고양이는 새 주인을 만났는데 그렇지 못한 개는 갈데가 없어 잠시 맡아줄까 한다고 말이다. 가족들은 집에 이미 고양이가 두 마리나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난색을 표했지만, 사실 그 개는 고양이 품에서 자랐기 때문에 팥알이와 콩알이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을 거란다.

 

"소자 두식이라 하옵니다. 개가 아니라 고양이지 말입니다."

자신을 개가 아니라 고양이로 알고 자라온 두식이는 등장부터 강렬한 임팩트를 준다. 번역가님이 센스 있게 두식이에게 '태양의 후예' 유시진 대위의 말투를 고대로 주신 덕분에 얼마나 웃기던지. "뼈대 있는 가문의 고양이라 할 수 있지 말입니다. 그럼 실례 좀 하겠사옵니다." 는 식의 그 말투와 집 밖에 우두커니 앉아 사나이는 울지 않는다며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너무도 잘 어울려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고 말았다. 배가 고파 꾸륵 소리가 나도 그렇지 않은 척 하며 앉아 있거나, 맛없는 음식은 먹지 않겠다며 자존심을 내세우다 결국 기둥에 목줄이 다 엉켜버려서 끙끙대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팥알, 콩알이의 보금자리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자려고 하거나, 목욕은 싫다고 아기처럼 버둥거리는 모습 등등 두식이가 등장하면서 에피소드는 더욱 풍성해지고, 팥알이와 콩알이네 집은 더욱 조용할 날 없이 북적대기 시작했다.

사람 말을 죄다 알아듣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총명함을 자랑하다가도, 자신은 고양이라며 엉뚱한 면모를 드러내는 두식이는 특별한 말투만큼이나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팥알이와 콩알이가 너무 귀여워 대체 왜 개를 주인공으로 한 이런 시리즈는 없는 거냐며 아쉬워했던 애견인들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앞으로 콩고양이 시리즈에서 두식이가 또 어떤 사고를 치고, 얼마나 귀여운 모습을 보여줄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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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03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동물보다 한 단계 높은 종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서 그런지 동물의 세계를 인간의 시선으로 대입해서 보는 경향이 있어요. 개와 고양이, 개와 원숭이를 서로 사이가 안 좋은 동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인간인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판단했는지 의아스러워요. 서로 다른 종이라도 자신보다 약하면 보호해주고,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게 진짜 동물의 본능인 것 같습니다. ^^

피오나 2016-12-03 18:33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ㅎㅎ 인간이 좀 오만한 종이긴 하지요. 하핫.. 동물들과 가깝게 지내다보니 그들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그들만의 본능과 그들의 생각과 말들이 정말 궁금해질때가 있더라구요 ^^
 
실화를 바탕으로
델핀 드 비강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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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은 거의 언제나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래서 나 역시 언제나 책을 통해서 마치 거울처럼 나의 삶을 반추해보곤 한다. 십 년 전 어느 날, 처음 만난 상대에게 특별한 매혹을 느꼈고, 나와 너무 다른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닮은 그녀와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 두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혹자는 나와 그녀를 보며 둘이 사귀냐고 농담을 했을 정도로 우리 사이는 견고했고, 일주일 내내 만나고, 헤어져서는 또 밤새 통화해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만약, 그녀가 그날 나와 처음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면? 누가 누군가와 갑작스레 가까워지는 데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만약 그녀가 나를 완전히 부숴 버릴려고 일부러 접근해서 일부러 나와 닮아갔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오싹해진다. 실제 현실은 어땠을까. 십 년이 넘은 지금 그 친구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 별다른 이유도 없이 서서히 멀어졌고, 그렇게 연락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으니 말이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기묘하게 오가고 있는 델핀 드 비강의 신작은 나에게 그녀를 떠올리게 만들어 주었다. 십 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를 가끔 떠올린다.

하지만 진실이란 건 없어. 진실은 존재하지 않아. 내 신작은 붙잡을 수 없는 어떤 것에 다가가기 위한 서툰, 그리고 도달할 수 없는 시도였을 뿐이야. 빛을 꺾는 프리즘을 통해, 고통과 후회와 거부의 프리즘을 통해, 그리고 사랑의 프리즘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이야. 너도 잘 알잖아, 우리가 생략하거나 늘이거나 압축하거나 구멍을 메우는 순간, 우린 이미 픽션 속에 있다는 걸. 나는 진실을 찾았어.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근거들, 관점들, 이야기들과 대면했어.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글쓰기는 소설이야. 이야기는 환상이야. 실재하지 않는 거라고. 다만 어떤 책에도 대놓고 그렇게 적는 게 용납되지 않을 뿐이지.

영화든 드라마든, 혹은 소설이든 어떤 형태를 하고 있든지 간에 그것이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이것이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라는 진실 혹은 거짓. 허구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것이 어디선가 진짜로 일어난 일이기를, 그것이 실제 체험이기를, 그래서 등장인물과 일체가 되어 감정이입 할 수 있기를 자신도 모르게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언제나 '진짜'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해도, 그것이 극의 형태를 띠게 되면 그건 언제나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 따라서 그것은 결국 픽션 안에 있다는 것이다. 델핀 드 비강은 이 작품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작품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가. 그렇지 않은가. 판단은 당신이 직접 해야 한다.

이야기는 작가와 이름과 직업이 같은 주인공 델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녀는 신작이 출간되고 몇 달 후부터 글 쓰는 일을 중단했다. 글을 쓰는 동작 자체가 겁이 나고 자신 없어졌고, 컴퓨터의 워드 파일을 열기만 해도 두려움이 밀려드는 지독한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아마도 자신을 지독히도 무력하게 만든 유일한 요인이 바로 자신 앞에 나타난 여자 L 때문이라고, 그녀와 함께한 그 두 해 덕분에 하마터면 영원히 글을 쓰지 못할 뻔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L이 그녀의 삶에 어떻게 나타나서, 그녀의 마음을 얼마나 차지하게 되고, 그녀의 생활을 장악하고,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그녀의 말을 듣게 될수록 점점 더 소설 속 화자인 델핀이 현실 속 델핀 드 비강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래서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되고, 평범한 우정처럼 보였던 델핀과 L의 관계가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되기까지 그 흐름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이거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일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되고 말이다.

네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아, 델핀. 하지만 네 인물들에겐 영혼이 없어. 이제 그런 건 안 통해. 독자는 그런 데 관심 없어. 넌 더 함축적인 것, 더 개인적인 것, 너한테서 나온 어떤 것, 네 이야기에서 나온 어떤 것을 찾아내야 해. 네 인물들은 인생과 관계가 있어야 해. 종이 밖에서 존재해야 한다고. 그게 바로 독자들이 요구하는 거야, 인물들이 존재하고 숨을 쉬는 것. 정말로 실재하는 것. 그러니까 너는 구성이나 기교나 기만 속에 있어서는 안 돼. 안 그러면 네 인물들은 한 번 쓰고 버리는 휴지 조각이야. 그런 건 바로 잊히지. 현실과 관련성이 없다면 픽션의 인물한테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

L은 남편이 오래 전에 죽었고 혼자 살고 있으며, 대필 작가 일을 하고 있는 여자였다. 대부분의 친구들과 덜 독점적이고 다른 관계들로 구성된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관계를 맺고 있었던 델핀은, 어느 순간 L과 흔히들 열일곱 살 즈음에 체험하는 타인과 독점적이고 절대적인 그런 관계를 맺게 된다. L은 델핀을 놀라게 하고, 유쾌하게 만들고,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녀를 주눅 들게 했다. 독특하게 웃고, 독특하게 말하고, 독특하게 걸었던 L이 델핀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으나, 델핀은 그녀에게 진정으로 사로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여자들이라면 더욱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을 것이고 말이다. 소녀들은 그냥 같이 다니는 친구들 말고, 무엇이든 나눌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친구를 대부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들어주고 이해해줄 수 있고, 내가 뭘 하든 판단하려 들지 않고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 말이다. 이런 관계는 대부분 두 사람 중 한 명에게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어느 정도 금이 가기 시작하고, 한참 연애 중일 때 서먹서먹 해졌다가, 이별하고 나서 우정이 더욱 굳건해지곤 한다. 물론 성인이 되고 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에서 여러 관계를 맺으면서 그 독점적인 관계에 조금씩 여유를 두게 되면서 점차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극중 델핀과 L이 가까워지고, 서로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는 단계로 발전하는 것이 너무도 그럴 듯 해 보였고,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는 공감과 이해로 더욱 극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의도된 거였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쪽에 의해 일방적으로 계획되었던 관계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띠게 된다. 그때부터 이야기는 스티븐 킹의 <미저리> 만큼이나 숨막히는 스릴러로 모습을 바꾸게 된다. 우리는 아주 침착하고, 우아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낸 현대적인 <미저리>를 만나게 된다

"어쩌면 당신은 소설을 쓰려고 그 여자를 만들어낸 건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헛일이란 것을. 내가 있지도 않은 적과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마치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동성끼리도 (성적인 부분을 배제하고서) 첫눈에 매혹을 느끼거나 호감을 가질 수 있다. '어쩌면 하나의 만남(사랑이건 우정이건)이란 언제나 서로 알아보고 사로잡히는 두 개의 광기'라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매혹되는 것은 바로 그런 방식이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감정적으로 이해가 될 수밖에 없는, 생에 단 몇 번만 찾아오는 극단적인 경험.

슬럼프에 빠진 고독한 작가와 그런 작가에게 집착하는 한 여자라는 테마만으로도 이 작품은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스릴러이지만, 그 속에 픽션과 논픽션의 가치와 의미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대립하는 목소리 덕분에 더욱 매혹적인 작품으로 느껴진다. 독자들은 누구나, 타인의 삶을, 혹은 그 이상의 것을 훔쳐보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작가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현실 그 자체이든, 아니면 그들이 그것을 가공하는 방식이든 말이다. 모든 글쓰기는 실재하지 않는 환상이다. 혹은 현실과 관련성이 없다면 그 이야기는 진짜가 아니다. ,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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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독서중독 - 낮에는 양계장 김씨로, 밤에는 글쓰는 김씨로 살아가는 독서중독자의 즐거운 기록
김우태 지음 / 더블: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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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책 중독자로 살아온 지 저도 어느덧 삼십 년은 넘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지냈고, 대학생 때도, 직장을 다닐 때도,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가 생긴 지금도 책은 변함없이 가장 가까운 친구이니 말이다. 하지만 책을 너무 많이 읽다 보면 가끔 그 속에 빠져서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건지, 방향 감각이 없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군가 제대로 책을 읽는 방법을 알려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어쩌면 그렇게 지나치게 책에 중독되어 있는 나에게 색다른 관점의 가이드를 제시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32세라는 늦은 나이에 책과 만났지만, 이제는 게임중독자에서 독서중독자로 거듭났다고 하는, 낮에는 양계장 김씨로 일하고, 밤에는 글 쓰는 김씨로 살아가는 독서중독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분명히 한글로 쓰여 있는데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책들이 있다. 보통 철학 책들이 그렇다. 한 문장씩 독파해 나가다 보면 자꾸 오리무중에 빠지고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입에 ''자가 계속 달리게 된다. x........이럴 때 방법은 없을까?

힘 빼고 여러 번 읽어보자. 한 문장, 한 글자 힘 빡 주고 읽지 말고 느슨하게 읽는 거다. 뜻이 안 들어와도 상관없다. 내 눈에 단어들, 문장들을 눈에 익혀둔다는 정도로만 읽으면 된다.

그는 평생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사람, 중고등학교 때 읽은 책은 교과서가 전부이고, 술과 담배, 텔레비전과 게임이 유일한 친구였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우연히 책을 만나게 되고, 그 읽는 재미에 푹 빠져 돈보다 책이 좋아지게 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요즘 회사업무에 치여 책 읽을 시간이 없어, 1년쯤 안식년을 갖고 책만 보며 느긋하게 지내고 싶은 게 꿈이다. 30년간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던 게임중독자가 어떻게 책 중독자가 되고, 이렇게 책까지 출판하는 작가가 된 걸까. 저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독서활동과 독서방법, 그리고 독서에 대한 여러 가지 잡생각들을 늘어놓으며 이야기한다. 당신도 책을 읽어 보라고. 독서광이 된다는 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어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되고, 두꺼운 책은 찢어서 읽으면 되고, 동시에 여러 권을 읽어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저자는 빠르고 느리게 읽고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며, 문제는 제대로 읽었느냐 라고 말한다. 시간이 없어서 독서를 못하는 것은 아니며, 책을 읽다 보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어려운 책을 읽어야 성장할 수 있으며, 목적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르다며 독서초보의 책 읽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신변잡기처럼 그저 편안하게 늘어 놓는 이야기 속에 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고, 책을 읽으면서 확립한 나름의 독서 방법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이 책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거나, 뛰어난 직관을 선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매 페이지마다 담겨 있어 읽는 내내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했다.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무려 32살이 되어서야 책과 만나게 된 이 사람도 있지 않은가.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책에도 80 20의 법칙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물론, 문장 하나하나에 혼신을 불어넣는 문학작가들의 문학작품들은 예외로 한다. 한 문장을 가지고 석 달 동안 고민하는 게 문학작가들이다. 문학작품에 80 20의 법칙을 적용해서 읽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스토리가 있고,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줄 한줄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문학작품은 여기서 제외하기로 하자.

전체의 20프로가 나머지 80프로를 대표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은 매우 그럴 듯 하다. 이는 전체의 20프로는 핵심이고 나머지 80프로는 껍데기라는 뜻이다. 이런 책일 경우 핵심만 파악해서 저자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지 그 내용만 발췌해서 읽으면 된다고 말이다. 물론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소소하게, 독서중독> 역시 마찬가지로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된다. 아마도 책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독서 초보들이라면 처음부터 찬찬히 정독해도 좋을 듯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러니까 웬만큼 책 좀 읽었다 하는 이들이라면 이미 다 아는 내용에 새로운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어도 된다는 뜻이다. 다만, 너무 책을 많이 읽어서 그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지친 경우에는, 이 책을 통해서 잠시 쉬어 가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제일 처음 책을 사랑했던 순간과, 책과 만났던 잊지 못할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말이다.

몇 년 전에 70대 할머니가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을 21개월 만에 필사해 화제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되었던 필사는 평일에는 3시간, 주말에는 6시간까지도 했다고. 필사한 200자 원고지를 세로로 쌓으면 무려 일 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라고 말이다. 당시에 태백산맥 전 권 필사를 마친 사람은 전국에서 6명이라고, 그들의 필사 완성 기간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5년 정도라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저자도 역시 <태백산맥> 10권을 필사했다고 한다. 1152일에 걸쳐 했다고 하니, 3년이나 되는 시간이다. 물론 그가 필사를 하게 된 이유가 태백산맥 문학관에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채로 필사본이 영구 보관된다는 달콤한 유혹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기어이 해냈다는 데 대단한 의지가 아닐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책 중독에 빠져 살아온 나라도 전혀 도전하고자 생각도 못해봤던 그것이라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무엇이든 사랑하면 못할 것이 없지 않은가.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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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2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이 마음에 들고, 공감합니다. 평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분야나 작가의 책을 읽으면 특정 분야의 책만 읽었던 시절이 부끄럽게 느껴졌어요. ^^;;

피오나 2016-11-28 21:40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아직도 특정 분야의 책만 읽는답니다^^;; 골고루 읽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하핫

cyrus 2016-11-28 21:47   좋아요 0 | URL
저는 피오나님이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만두님 이후로 장르문학 리뷰를 꾸준히 남기는 알라딘 유저가 많지 않거든요. 한 분야의 책만 본다는 일이 나쁜 점은 아닙니다.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죠. ^^

피오나 2016-11-28 21:50   좋아요 1 | URL
긍정적으로 봐주시니 감사합니다ㅎㅎ 장르문학만 편애하는 게 맞습니다ㅋㅋ 초등학교시절 셜록 홈즈를 만난 이후로 여태 그러네요. 물만두님 만큼 리뷰를 많이 올리지는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