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때 천사였다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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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은 언젠가 한번은 죽는다. 하지만 그 언젠가를 당장 몇 개월 뒤나, 며칠 뒤로 예상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비극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 여기며 자신은 늘 안전한 곳에,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믿고 있겠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이 완전 오산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삶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으니 말이다.

프랑수아는 아주 서서히 자신의 실존이 이제 종점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생에서 쌓아 올린 커리어나 재력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사생활을 돌보지 않으면서 커리어를 쌓기 위해 분투했지만 결국 부질없는 짓이었을 뿐이다.

변호사 프랑수아는 조금이라도 계급 사다리의 상층부로 올라가기 위해 미친 듯 일만 하면서 살아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뇌종양을 앓고 있으며 수술도 불가능한 상황이며 항암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남은 시간이 몇 달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가난한 형편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며 뒷바라지 했는지 알기에, 성공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오로지 일을 하느라 다 소비하며 살아 왔던 그였다. 당연히 부모님에게 자주 찾아 뵙지도 못했고, 돈이나 값비싼 물건들만 던지듯 드렸으며 마음을 다해 표현하지도 못했었다. 오로지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놓치거나 간과해버린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지만, 이제는 남은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이냔 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마음 놓고 웃어본 게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라니, 그의 일상이 어땠을 지는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프랑수아는 병원을 나와 아내와 사무실 동료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리옹 인근에서 히치 하이킹을 하는 폴을 만나 어쩌다 보니 동행을 하게 된다. 스무 살의 정체를 알 수 없는 폴과 마흔 일곱의 죽음을 앞둔 프랑수아는, 얼핏 보면 부자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딱히 목적지가 없는 탓에 발길 닿는 대로 길을 다니고, 숙소를 잡아 쉬고, 다시 길을 떠난다. 그렇게 두 남자의 로드 무비처럼 흘러가던 이야기는 폴이 살인청부업자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급변하게 된다. 폴이 가지고 있는 마약 때문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하마터면 두 사람 모두 죽을 뻔한 고비도 넘기면서 프랑수아는 생애 처음으로 이상한 모험을 겪게 된다. 폴을 쫓는 패거리들을 당장 경찰에 신고하자고 하는 프랑수아, 절대 경찰은 믿을 수 없다며 그들에게서 훔친 마약을 몰래 팔아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폴. 그들 두 사람은 살아온 환경도, 가치관도 극과 극이다. 폴은 이번 한 건만 제대로 마무리되면 이 바닥에서 완전히 손을 씻겠다고 하지만 글쎄, 그 전에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아 보이니 말이다.

현재란 곧 죽음이다. 플로랑스는 죽었고, 그도 곧 죽으리라. 요즘은 밤마다 죽음을 상대로 싸우다가 현기증 나는 추락을 맛보곤 한다. 마지막 여행길에 나선 그에게 표지판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라고는 애송이 녀석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주 중인 녀석이다. 아무리 도망쳐도 그는 결국 죽음을 맞아야 할 테지만 녀석은 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카린 지에벨은 국내에 출간된 작품이 꽤 많은 작가이다. <빅 마운틴 스캔들>, <그림자>, <너는 모른다>, <마리오네트의 고백> 등 기존에 만나왔던 작품들은 심리 스릴러의 귀재라 불리는 그녀 답게 꽤나 두툼한 분량을 자랑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 <그는 한때 천사였다>는 우선 분량부터 많이 차이가 날 정도로 작아졌다. 그리고 전개방식과 분위기도 매우 달라졌다. 기존 작품들이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 패스가 주요 인물로 등장해서 인물의 심리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스릴러였던 반면에, 이번 작품은 평범한 두 인물의 로드 무비 형식으로 진행되어 매우 빠른 전개가 돋보인다. 사실 기존 작품들에선 다소 지루한 부분들도 어느 정도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군더더기 없이 마치 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나가는 플롯이라 제대로 페이지 터너로서의 면목을 뽐내고 있다.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서 약간 기욤 뮈소의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루한 건 딱 질색이라 기존 작품 보다는 이번 작품에 한 표를 던져주고 싶다.

 극중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프랑수아의 삶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지만,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아들처럼 함께 지내온 폴이 꼭 살아야 한다고, 그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런 말을 한다. 사탄도 원래는 천사였다고. 신이 인간들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로 시험에 들게 하고 저항하는 법을 알려주려는 의도로 사탄을 보낸 건데, 사탄인 루시퍼는 인간에게 부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주다 보니 그 자신이 죄에 물들게 되었던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신은 이미 사탄을 용서했고, 사탄도 다시 천사가 될 거라고. 폴이 어린 두 동생들을 고아원에 보내고 앵벌이, 날치기, 도둑질 등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다가 마피아 조직의 킬러가 되어 결국 그들이 시키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불법적인 일을 하게 된 것이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불행한 삶을 살아오며 암흑가를 전전해온 것을 마냥 개인의 부도덕이라고만 치부하지 않고, 비정한 사회시스템에서 찾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성서의 사탄과 타락한 천사로 연결되어 한 편의 근사한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그녀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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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소원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유동익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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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슴도치는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아무도 안 올 거야.

편지를 침대 옆에 내려놓고 등을 대고 누웠다.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슬펐다. 외로움은 나에게 속한 거야, 내 가시처럼.

혼자 사는 고슴도치는 외롭다. 그의 집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누군가 지나가다 문을 두드리더라도 고슴도치가 문을 열까 말까 너무 오래 망설이는 바람에 그 누군가는 다시 가던 길을 가 버리곤 했다. 이제껏 그 누구도 초대해 본 적이 없었던 고슴도치는 어느 날, 밖을 내다 보고 앉아 있다가 생각한다. 누군가를 한번 초대해볼까?

보고 싶은 동물들에게, 모두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안 와도 괜찮아.

고슴도치는 편지를 써놓고는 계속 고민한다. 편지는 안 보낼 거야. 지금은 아니야.

아마 다들 못 온다고 할 거야.

내일 모두 올 거야. 모두 다 같이.

스스로에게 자신은 정말 외롭지 않다고 거울을 보며 말을 건네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슴도치는 외롭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한 발 다가가기가 너무도 두렵고, 어렵기만 하다.

고슴도치는 여전히 침대 및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여기가 제일 안전해, 외롭지만 안전해.

여기선 나 때문에 불편할 일도 거의 없어.

나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고슴도치처럼 그랬던 것 같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반이 달라지니,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또 마음 맞는 친구를 찾아야 되는 상황이 매번 부담스러웠으니 말이다. 단짝 친구랑 학년이 바뀌고 나서도 서로 같은 반이 되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 나는 매번 새 학년에 올라갈 때마다 걱정에 휩싸이곤 했다. 그래서 새로운 학년의 새로운 반에서 첫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모르는 친구들만 가득한 교실에서 내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펼쳐놓고, 아무도 다가오지마! 라는 표정을 한 채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겉으로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책을 읽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한 해를 또 재미있게 보내려면 마음 맞는 친구 한 명은 최소한 필요한데, 이번에는 또 어떤 친구를 찾아야 하나 복잡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친한 친구가 생기고 나면, 그 친구가 나에 대한 첫인상을 꼭 이렇게 평가하곤 했다. 말도 걸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어서 다가갈 수가 없었다고 말이다. 어린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아마도 첫날 낯선 교실에서 다들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텐데. 그러니 그렇게 혼자 강한 척, 관심 없는 척 안 해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고슴도치의 소원>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줄곧 초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먼저 다가가는 것이 두려워 가시를 세우고 있었던 나를, 사실은 외롭고 싶지 않았지만 안 그런 척 했던 나를, 실제로 행동하는 것보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들이 더 많았던 나를 말이다. 뾰족뾰족 가시 때문에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동물로 상징되는 고슴도치의 딜레마가 너무도 천연덕스럽고, 진지하게 그려지고 있는 이 작품은 동화라고 하기엔 너무도 공감할 부분이 많아서 그냥 짧은 소설처럼 읽힌다.

 

고슴도치는 숲에 사는 동물들을 초대하고 싶지만, 편지를 써놓고 보내지 못한 채 매일 같이 상상만 한다. 달팽이와 거북이, 장수하늘소, 코뿔소, 곰과 코끼리, 기린, 말벌 등등... 고슴도치는 친구들이 자신의 집을 찾아오고, 파티를 하는 모습을 그저 머릿속으로만 그려본다. 그리고 친구들은 고슴도치에게 말한다.

넌 정말 재미없어! 우리 그만 가자.

초대를 받고 왔어. 그런데 우리는 네가 무서워.

고슴도치는 고민한다. 나는 이상해. 겁을 주고, 외롭고, 자신감도 없어. 내겐 가시만 있어. 그리고 누군가 나를 찾아와 주길 원하면서 또 누군가 오는 걸 원하지 않아.............

가끔은 혼자이고 싶지만, 또 가끔은 절대 혼자이고 싶지 않은 게 대부분일 것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걸 우정이든 사랑이든 어떤 형태로든 유지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너무도 피곤한 일인 것이 사실이니까. 그래서 먼저 다가가고 싶지는 않지만, 누군가 내게 다가와 손 내밀어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혹시 내가 하는 행동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다들 고슴도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나도 그랬어. 라고. 그래서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싶은 기분도 들고, 안쓰러워 보듬어 주고 싶은 기분도 들고, 다들 그런 거라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질 것이다. 고슴도치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겪어 봤을 법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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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7-02-23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언가 마음 한켠의 외로움과 컴플렉스를 건드리고 공감하게 되는 책이네요, 덕분에 일단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좋은 서평 읽고 갑니다.

피오나 2017-02-23 10:13   좋아요 1 | URL
이 책이 딱 그렇더라고요. 누구나 마음 한 켠에 가지고 있는 감정을 건드려주는 책이었어요. 캐모마일님도 만나보시길..^^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김정범 지음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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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위로를 받게 되는 순간이 있다. 멜로디, 곡의 분위기, 노랫말, 그리고 그 음악을 들었을 당시의 상황에 대한 기억이 더해져 타인의 언어를 내 것처럼 느끼고 나누는 공감의 과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 시험에 떨어졌을 때, 혹은 사랑에 빠졌을 때, 친구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을 때 음악을 찾아 듣는다. 음악은 세상 저 밑바닥에 떨어진 듯한 절망을 위로해주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기쁨은 그 배가 되도록 더해주니 말이다.

팝재즈밴드푸딩’, 세계적인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화제를 낳은푸디토리움의 뮤지션이자 작곡가, 그리고 <롤러코스터> <허삼관> 등 다수의 영화음악을 만든 영화음악감독이자 대학교수인 퓨지션 김정범이 일상 속의 음악들을 하나씩 소개해준다. 이 글들은 마치 조용한 한밤에 이불을 뒤집고 누워서 뒹굴거리면서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그렇게 나를 설레이게 만들었다. 나도 한때는 음악을 기어코 찾아서 듣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시절에서 너무 멀어져 버렸지만.

이 책에 소개된 음악들은 무려 100곡에 이른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에서 특정 음악을 찾아 들을 수도 있도록 곡명들이 소개되어 있다. 계절에 따라서, 사운드트랙만 골라서,  위로받고 싶은 날을 위해, 명상과 사색의 순간을 함께할 수도 있고, 재즈와 헤비메탈, 발라드와 얼터너티브록 등 장르에 따라서, 피아노, 바이올린, 베이스 등 악기에 따라서 골라볼 수도 있고 재즈 오케스트라, 현악 사중주, 듀오 등 키워드로 찾아 볼수도 있고, 김정범이 작업한 음반과 그가 만났던 뮤지션, 그리고 그의 꿈이 시작된 계기를 만들어준 음악들도 골라 볼 수 있다.

나는 요즘 영화 '라라랜드' OST를 틈이 날 때마다 듣고 있다. 물론 거의 24시간을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하기에, 제대로 시간을 내긴 어렵지만, 아이를 할머니에 맡겨두고 잠깐 외출할 때나, 아이가 잠이 들었을 때 등 잠깐 시간이 되면 항상 내 귀엔 이 음악이 흐르고 있다. 그렇게 음악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아드레날린이 막 솟구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겨우 음악을 들었을 뿐인데도 그저 벅찬 감정이 떠오르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영화의 장면들이 주었던 그 어떤 것이 내 안의 뭔가를 건드렸고, 그걸 상기시켜주는 도구가 바로 그 음악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처럼 한 트랙 한 트랙 넘어갈 때마다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가 어마어마했다고 김정범이 추억하는 음반은 러시아 클래식의 미래라고 불리는 작곡가 블라디미르 마르티노프의 것이었다. 그는 기본에 충실하고 정교하며, 뛰어난 멜로디와 감성으로 풀어져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그 음악에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음악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감동이 어떤 건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요즘 내가 그렇게 음악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김정범은 이번에 이 책의 출간과 함께 싱글 싱글 [AVEC]를 세상에 내놓았다. ‘푸디토리움이란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한 것은 무려 4년 만이라고 한다. 궁금해서 음악을 찾아서 들어 보았다. 일렉트로닉에 감성이 더해졌다고 하는데, 굉장히 생소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상반된 느낌이 드는 묘한 느낌이었다. 분명 색다른 사운드인데도 계속 듣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고 할까. 이 음악을 들으면서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를 읽고 있자니, 오래 전의 기억들이 솟아나기도 하고, 추억 속에 잠겨 어떤 음악을 흥얼거리게 하기도 하며 자꾸 나를 그 어떤 시간 속으로 데려다준다는 느낌이었다. , 음악이라는 것이 이런 힘이 있었다는 걸 그동안 내가 잊고 살았구나. 싶어서 안타까우면서도 새삼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이 책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부산일보에 매주 기고한 칼럼들을 선별해서 모은 것이다. 음반이라는 주제로 쓰는 일주일의 이야기는 그에게 지난 시간을 담은 일기장과도 같다고 한다. 그는 삶과 음악이 만나는 '운명적 순간'에 집중하고, 그 경험을 나누고 싶었기에, 음악의 전문적인 용어들을 일부러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그저 일상을 그리고 있는 에세이처럼 편하게 읽힌다. 굳이 여기에 수록된 음악들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음악을 들을 시간도 없고, 음반을 찾아볼 마음도 없을 정도로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그 어떤 음악이든 듣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시종일관 우리에게 "같이 들어요" 라고 속삭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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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컬러링북
무한도전 제작팀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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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한도전은 7주간 휴식기에 들어가있는 상태이다. 당연히 결방하는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11년간이나 우리의 토요일을 책임져 온 국민 방송아닌가.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결방의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도록 4주간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레전드 편들을 모아 보는 코멘터리 방송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러자 어떤 기자가 <무도, 4주만의 컴백..재방송도 속절없이 좋구나>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는데, 어쩜 그리 무도 팬들의 속마음을 콕 찝어 냈는지 대단하다 싶었다. 재방송은 말그대로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질 만큼 알려지고, 볼만한 사람들은 다 본 코미디를 다시 보여준다는 얘기인데, 무한도전은 그런 방송조차 '속절없이' 그저 너무 재미있고, 좋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재방송 조차 너무 재미있는, 다시 봐도 여전히 빵빵 터지는 '무한도전'의 컬러링북이 이번에 북폴리오에서 출간되었다. 여섯 멤버들의 11년 간의 활약상을 한자리에 담아, 정교하고 유쾌한 컬러링 도안으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무려 1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500편 이상의 에피소드가 방송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화제였고, 인기였고, 그래서 기억에 아직도 선연히 남아있는 65개의 에피소드가 컬러링북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한때 컬러링 북이 서점가에 열풍이었다. 국내에 출간된 컬러링북만 해도 200여종이 넘는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할 것이다.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 해봤음 직한 단순 색칠 놀이처럼 보이지만, 성인대상으로 나오다 보니 조금 더 복잡하고, 세밀한 도안들이 특징이다. 조해너 배스포드의 '비밀의 정원'으로 시작해서 국내에서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컬러링 북은 꽃과 나무, 동물, 정원, 인형 등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그려놓은 밑그림 위에 독자들이 직접 색을 덧입혀 완성하는 그림책이다. 도안만 그려져 있는 하얀 스케치북 같은 책에 색을 칠하다 보면 마음의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계속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조금 더 어려운 난이도의 그림을 찾게 되어 마치 문제를 푸는 것 같은 도전 의식이 또 다른 활력까지 주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무한도전 컬러링북은 정말 복잡하고, 세밀하고, 저절로 초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주는 그야말로 컬러링북의 결정판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나처럼 한때라도 무한도전을 열심히 봤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자동스레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에피소드들이 한 두개쯤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봅슬레이와 조정특집처럼 스포츠를 소재로 했던 에피소드들이 재미있었고, 영동고속도로가요제와 극한알바, 끝까지간다도 너무 재미있어서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런 에피소드들을 집약해 한 장면으로 만들어냈는데, 멤버들의 캐릭터들도 너무 리얼하고, 당시 상황에 대한 깨알 묘사도 놀랍고, 단순히 컬러링북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정말 공들여 작업한 책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채색을 준비하는 내내, 그저 한번씩 훑어보는 동안에도 너무 유쾌해서,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 회사에서,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길 없는 직장인과 주부들에게 적극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컬러링 북의 특성 상 채색을 하다 보면 한 순간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채색이 끝나고 나면 뭔가 완성했다는 뿌듯함마저 드니 일석이조이고 말이다. 컬러링 북이 정서를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아트 테라피'의 일종이라고 하더니,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으니 말이다특히나 아이가 있다면 그림을 보여주면서 상황을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나서 같이 채색까지 할 수 있어 더욱 다채로운 경험의 시간이 될 것 같다

 

, 그럼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에 그래도 가장 쉬워보이는 그림을 하나 골라 채색 준비에 들어갔다. 색연필 색상이 너무 많아서인지 오히려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한참 고민을 해야 했지만, 사실 컬러링북을 꼭 그림처럼 멋들어지게 채색할 필요야 없지 않은가. 물론 색감을 감각적으로 배치를 못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한 가지, 두 가지 색칠을 할수록 뭔가 더 고민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하핫.

채색을 하다 보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게 되어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컬러링북에서 다들 '힐링'을 찾겠다고 하는 거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잊고 사는 동심과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고, 독창적인 일러스트를 채색하면서 상상력도 키워가고 말이다. 컬러링 북은 스트레스 해소뿐만 아니라 일종의 '명상' 효과도 주는 것 같다. 괜히 '컬러링 테라피'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특히나 이 책은 무한도전이라는 국민 예능 프로그램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구현하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피곤하고, 지치고, 짜증나는 일들이 가득 쌓였을 때는 방송으로 무한도전을 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웃어 보거나, 컬러링 북으로 색상을 마음껏 넣어 보면서 현실을 잠깐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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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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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일컬어 '가가 형사 시리즈 최고의 걸작'이라고 스스로 칭했다고 한다. 그 동안 이 시리즈를 모두 읽으며 가가 형사를 보아왔던 독자들이라면 기대가 될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이 시리즈도 벌써 아홉 번째 작품이다. 시리즈 캐릭터를 그다지 즐겨 사용하지 않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걸 감안하자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윗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아랫사람들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 우리가 할 일은 사실을 하나하나 밝히는 거야.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사실만 골라내다 보면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지."

"사건의 이면에 의외의 진실이 있다는 말인가요?"

 

니혼바시 다리에서 중년의 남자가 가슴에 칼이 꽂힌 채 경찰에게 발견된다. 칼에 찔린 남자는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그 다리까지 걸어와 다리 중간쯤에 잇는 두 마리의 기린 조각상으로 장식된 기둥까지 가서 기도하는 자세로 쓰러진 것이다. 그리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내 사망하고, 곧이어 현장 근처 공원에서 한 청년이 경찰의 불심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이 된다. 그의 소지품에서 사망한 중년 남자의 운전면허증과 지갑 등이 발견되고, 자연스레 경찰은 청년을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한다. 청년이 너무도 쉽게 범인이 되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피해자의 회사에서 계약직 현장 근로자로 일하다 사고로 다쳤지만 산재 처리를 받지 못하고 계약 연장이 되지 않은 채 해고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복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혐의는 알리바이부터 증거까지 뭐 하나 들어맞지가 않고, 여론은 산재 은폐 기업에 대한 보도를 해대며, 회사는 그 모든 책임을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에게로 떠넘기려고 한다.

이 시리즈는 여덟 번째인 <신참자>에서부터 가가 형사의 비중이 많이 높아졌는데, 이 작품 역시 전작인 <신참자>와 마찬가지로 옛 도쿄의 정취가 어린 니혼바시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다 그 확장판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흡사하다. 니혼바시 일대가 워낙 서정적이고 사람 냄새 물씬 나는 풍경인데다, 가가 형사가 발로 뛰는 끈질긴 탐문 수사를 통해 그 일대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피해자의 행적과 동기에 대해 파헤치는 모습이라 더욱 인간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살인사건과 별 상관 없어 보이는 피해자의 알 수 없는 행적을 통해 밝혀지는 진실은 그의 가족에게 충격적인 파장을 던져주고, 살인사건의 동기와 범인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자식들과 소원했던 아버지가 가족들 몰래 신사를 돌며 해왔던 속죄와 구원의 기도,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 감춰진 비밀, 어른이 어른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해서 벌어진 비극, 그리고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기고 싶었던 마지막 메세지까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결코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물들이 빚어내는 드라마는 매우 뭉클하게 다가온다.

"가가 씨가 본 것은 시체지 살아 있는 사람의 죽음이 아니에요. 저는 죽어 가는 사람들을 수없이 봐 왔어요.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사람은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죠. 자존심이나 의지 같은 것을 다 버리고 자신의 마지막 소원과 마주하게 돼요. 그런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무예요. 가가 씨는 그 의무를 소홀히 했어요."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손에서 태어나, 그의 작가 인생과 함께 20년이 넘는 캐릭터인 가가 형사 시리즈의 신작이다. 특히나 시리즈물을 주로 쓰는 작가가 아니라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더욱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캐릭터이기도 할 것이다. 천재적인 수사 실력이나 뛰어난 직감 등을 가지고 있는 형사 캐릭터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많이 만나왔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 따뜻한 캐릭터라 더욱 매력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가가 형사는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졸업>에서 형사가 아니라 교사를 꿈꾸던 대학생으로 처음 등장했다. 형사였던 아버지가 가정에 소홀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집을 떠났다고 생각했던 그는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지만, 친구들의 연이음 죽음을 접하며 사건 해결에 대한 자신의 재능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시리즈가 계속 진행되면서 가가는 교사를 사직하고 경찰이 되고, 현재까지 총 아홉 편의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가가 형사 시리즈가 여타의 추리소설 시리즈물과 확연히 다른 차이점을 보이는 것 중의 하나는 이야기의 중심에 주인공이 있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한 주인공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시리즈물일 경우, 그 인물의 개인사부터 시작해서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메인 플롯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시리즈 캐릭터를 필요 최저한밖에는 사용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그의 시리즈에서는 주인공이 아니라 그 외 다수의 등장인물들 각각의 사연에 꽤 많은 분량이 할애된다. 살인사건이라는 메인 플롯보다 그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 방식이랄까. 그래서 읽는 동안 어쩐지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이상하게도 그 작은 모자이크 조각들이 모여 만드는 드라마가 매번 뭉클하고 따뜻하다.

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한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속도감과 평범한 인물들이 벌어지는 사건에 어떻게 엮여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감동이 먼저 떠오르는 작가이다. 취향에 따라 특별히 좋았던 작품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이건 정말 별로다, 수준이 떨어지거나 재미가 없다라고 느낄만한 작품은 없는, 매번 일정한 수준의 작품을, 그것도 다작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말이다. 밑줄 긋고 싶은 멋들어진 문장을 쓰지도 않고,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지만, 항상 인간에 포인트를 주고 그려내는 드라마라 감동을 만들어내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가 형사 시리즈야말로 정말 믿고 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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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7-02-2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만 조명받는 작품은 확실히 시들시들한 구석이 있죠. 근데 이 작가는 확실하게 캐릭터마다 잘 살리더군요! 그래서 몰입도가 좋은편인듯 해요^^

피오나 2017-02-21 14:13   좋아요 1 | URL
맞아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품에 등장하는 작은 역할의 인물들에게도 세세하게 신경쓰는 작가인 것 같더라고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