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야무진 첫마디 - 속터지는 엄마, 망설이는 아이를 위한
정윤경 외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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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키우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매 순간, 모든 일들이 다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초보 엄마인 나는 언제나 실수투성이에 서툴기만 하다.

엄마가 급한 마음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거부할 수밖에 없는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자. 엄마의 관심과 노력은 아이가 바깥세상에서 버텨나갈 수 잇게 해주는 막강한 힘이 된다.

엄마가 되고 나서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의 행동과 의사표현을 어떻게 알아듣지? '였다. 밤바다 울어대는데, 기저기도 갈아주고, 수유도 하고, 덥지 않게 온도, 습도 체크해주고 이것저것 확인할 건 다 했는데 대체 왜 이렇게 자지러지게 울까. 그럴 때마다 초보 엄마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게 마련이니 말이다. 이제는 걸어 다니고, 의사 표현을 하고, 말을 하기 시작하니 '이럴 때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훈육할 때는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가 제일 큰 관건이다. 도대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말을 안듣고, 자기 원하는 대로만 행동하려 하는 시기이다 보니 무서운 표정과 소박한 협박, 그리고 긴 시간에 걸친 설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들 투성이다. 별 거 아닌데, 그냥 해버리면 될 일을 아이는 왜 저렇게 싫어하고 안하려고 하는 걸까.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아들 키우는 엄마는 종잡을 수 없는 아들의 행동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어서 딱 미쳐버릴 것 같다고. 그래, 나도 숱한 육아서를 찾아 읽으면서, 경험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이해하고, 입력해두었던 정보와 실제로 겪으면서 체험하게 되는 현실이란 말그대로 굉장하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니 말이다. 우리 아들은 이제 겨우 세 살인데도 벌써 이러니, 앞으로 얼마나 더할까 싶어서 머리가 지끈거리던 참이었다. 이 책은 <속터지는 엄마, 망설이는 아이를 위한>이라는 부제에서 보이듯 부모가 당장 상황별로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굉장히 실용적인 팁들을 소개 하고 있다. 훈육의 시작을 알리는 유아기(2~5세),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아동기(6~10세), 독립을 연습하는 청소년기(11~15세)로 나누어 발달의 각 영역별로 일어나는 실제 갈등을 중심으로 부모가 아이와 나눌 수 있는 대화 요령을 담고 있다.

 

 

밥을 잘 먹지 않을 때나 양치질을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자주 자다 깨서 울 때, 공공장소에서 고집부리며 울다 바닥에 누워버릴 때, 자주 징징거리고 짜증이 심할 때, 기다리지 못하고 고집을 피우며 떼를 쓸 때 등등..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상황들이 구체적인 대화 방법과 대안 제시로 실려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거나 고집을 피우며 떼를 쓸 때, 우선적으로 제지하려는 마음부터 먹었던 나였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왜 그럴까. 라는 생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을 내거나 행동을 제지하더라도 먼저 공감의 표현으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수반되면, 아이가 그만큼 부모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을 테니 말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굴레와도 같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수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는 육아의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돌리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엄마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아이들은 점차 걷고 뛰며 말도 하게 되면서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나갈 준비를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제지하면 큰 상처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이 시기에 엄마와 아이들은 사소한 것에 대해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다. 이 전쟁은 엄마와 아이 모두 지치게 하지만, 아이의 자율성이 순조롭게 잘 발달하고 있다는 의미이므로 반가운 전쟁이기도 하다.

책의 후반부에는 양육을 위한 부부 공감 대화와 싱글 부모와 아이를 위한 공감 대화 챕터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특히나 대부분의 양육을 아내가 책임지는 우리나라의 상황 때문에 양육에 무관심하거나 참여도가 낮은 남편에게 섭섭한 경험이 있었던 엄마들이라면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다툴 일이 거의 없는 부부도 갈등의 원인이 되는 건 항상 아이에게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빠와 엄마가 양육에 대한 신념과 태도가 완전히 동일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부부는 아이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다. 아이로 인한 갈등에 부부는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이루어야 하며, 최소한 아이에게는 그렇게 보여야' 하니 말이다. 양육 문제에 대해서 부부는 절대로 완벽한 의견 일치를 볼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단, 아이 앞에서 부부는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통일된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양육에서 가장 바람직한 자세라는 건 잊지 말아야 하고 말이다.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일이 바로 '육아'라 가끔은 누구나 하는 걸 과연 힘들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어려운 건 어쩔 수가 없다. 돈과 경력을 포기할 수 없어 눈물겨운 워킹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엄마도, 종일 집에서 아이만 돌봐야 하는 전업 주부인 엄마에게도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모자라 퇴근 하자마자 집에 와서 제2의 일을 시작해야 하는 워킹맘의 고달픔이야 실제 엄마가 아닌 사람들도 어느 정도 알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24시간 아이와 함께 지내느라 온 마음과 시간을 다 투자해야 하는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맘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오죽하면 매일같이 그만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던 직장 생활을 다시 하는 게 아이를 종일 돌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겠는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 청소해놓아도 바로 난장판이 되어 버리는 집,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한 꺼 번에 감당해야 하는 우리의 엄마들. 하지만 자식들, 남편을 포함해서 가족들은 엄마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의 엄마들도 평생 나를 그렇게 키워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뭐든 그저 '당연한' 일이란 없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족들이 매번 따뜻한 밥에, 깨끗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곧 누군가의 엄마가 될 이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잊지 말아야 하고, 육아를 하는 전쟁 같은 이 상황 또한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엄마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일인지 충분히 느끼고, 그 상황을 즐기며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가 '엄마'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굉장한 가이드 라인이 되어 줄 것 같다. 가족 간의 대화라는 것이 별 거 아닌 것 같고, 쉬운 것처럼 보여도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제 알았으니 말이다.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주면서, 부모의 생각과 의견은 확실하게 담아 전달할 수 있도록, 아이가 커가는 내내 이 책은 내 곁에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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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푸른빛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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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때로 '이야기' '소설'에 매달린다. 최면 상태에서 읽히는 이야기들은 때로 인간에게 운명에 맞서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이야기를 구성하는지, 소설을 새롭게 하고 생명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렇게 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삶의 가능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이야기가 반드시 마음을 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만이 작가가 (삶에서) 과잉의 가능성이 펼쳐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목격할 수 있게 한다. 견딜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시련이야말로 관습이 강요하는 편협한 한계에 싫증 내는 독자들이 기대하는 탁월한 통찰력을 작가에게 줄 수 있다.

이 작품은 첫 소설 《눈 이야기》로 약간의 명성을 얻은 바타유가 그로부터 칠 년 후인 1935년에 탈고한 장편소설이다. 불길한 나치즘에 흔들리고 전쟁에 위협받는 당시 유럽을 배경으로, 작가의 페르소나이자 주인공인트로프만의 폭력과 죽음, 섹스로 점철된 광기 어린 일상을 담고 있다. 다행이 다소 어려웠던 전작보다는 훨씬 이야기 자체는 어렵지 않아 읽기가 수월했다. 조르주 바타유가 기성에 대한 전복을 열렬히 주창한 좌파 지식인이라는 점을 상기 해볼 때,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물론 이번 작품의 전반적인 이야기 역시 에로티슴을 주축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역시나 이 작품에서도 변태적 성행위, 엽기적 폭력성, 원초적 광기가 넘쳐나는 포르노그래피로서의 모습을 충만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그들이 왜 점잖은지 알아요? 무서워하는 거예요, 알아요?"

점잖다는 걸 일종의 존재 방식이라고 말하는 디르티의 말은,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막 내뱉는 말로 흘려 보내기에는 의미 심장하다.

 

갖가지 방법으로 아내를 기만하며 외도를 일삼는 주인공의 일탈 행위는 방탕함과 음란함을 넘어서 시체를 애호하는 시간자에 이르기도 한다. 끔찍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이 전작과 다른 가장 큰 점은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고, 스스로의 행동이 정상적인 삶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한다는 점이다. 착란된 현실 속으로의 짧은 탈선과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는 실제 현실 사이를 오고 가면서 말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가 비정상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가, 그가 무척이나 불행하기 때문에, 아마도 고통스러워서 그런 거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고 할까.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쓰레기였고, 내 자신의 악의에 운명의 악의가 덧씌워져 있었다. 언제나 불행을 내 머리 위로 불러들였고, 이제 여기서 죽어가고 있었다. 외로웠고 비겁했다.

그는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상상하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은 멋지게 죽을 거라고. 자신은 고통 속에서 죽게 될 거라고. 자신은 누군가에게 살해 당하고 말 거라고 말이다. 마치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그 원동력으로 사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아마도 조르주 바타유는 그를 통해서 죽음을 피하지 않고 긍정하고 사랑하자고 말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형식을 빌고 있으니 분명 허구의 이야기일 테지만, 이 작품 역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당시 직접 목격한 유럽의 정치적 상황이 고스란히 깔려 있다. 그가 올려다 보는 하늘의 빛깔, 그 찬란한 하늘의 푸른 빛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한 인간의 사유가 추한 것으로 둘러 싸여 있지만 눈부시게 아름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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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1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벙커 다이어리
케빈 브룩스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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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 미상의 남자에게 납치되어 외딴 벙커에 갇힌 여섯 명의 사람들, 이라는 설정만으로 자연스레 몇몇 영화들이 떠오를 것이다. 큐브, 쏘우, 더 홀 등등...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더 이상 기존의 그 어떤 작품도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케빈 브룩스는 그만큼 독창적이고, 충격적인 작품을 그려냈으니 말이다.

이봐요, 이 글 읽고 있어요? 만약 그렇다면 신호를 보내 주세요. 천장을 두드리든가 뭐라도 하시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당신하고 연결된 김에 할 얘기가 있어요. 말 좀 할게요. 난 내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알아요. 아주 잘 알고 있죠. 당신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고요. 실은, 거의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내 생각까지 죽이지는 못해요. 생각하는 데 몸이 필요하진 않거든요. 생각은 공기를 필요로 하지도 않아요. 생각은 음식이나 물, 피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그러니 만에 하나 당신이 나를 죽인다고 해도, 난 계속 당신을 생각할 거예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세상이 끝날 때까지 난 당신을 생각할 거라고요.

일요일 이른 아침, 열여섯 소년 라이너스는 거리에서 우연히 팔걸이 붕대를 한 시각 장애인을 만난다. 그의 부탁에 가방을 밴 안으로 옮겨주려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고, 다음 날 외딴 벙커에 무참히 던져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방 여섯 개와 부엌, 욕실, 그리고 간단한 가구들과 냉장고, 식기 류 들이 모두 여섯 벌씩 있었다. 다음 날 내려온 승강기 속에는 아홉 살 소녀 제니가 있었고, 이틀 뒤에는 젊은 여자와 덩치 큰 남자, 며칠이 더 지난 뒤에는 경영컨설턴트라는 뚱뚱한 남자, 마지막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노인까지 도착한다. 이제 그곳 벙커에 납치된 사람들은 모두 여섯이다. 감시 카메라와 도청 장치가 설치된 그곳에서 그들은 필요한 물품들을 종이에 적어서 승강기로 올려 보내고 식재료들을 지급받는다. 그리고 탈출을 시도하거나, 감시 카메라를 부수려고 하는 등의 행동을 할 때마다 무언의 처벌을 받기도 한다. 온도를 내리거나, 불이 켜지지 않게 하거나, 음식을 지급하지 않는 등의 제제를 받으며 사람들은 점점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마음을 접기 시작한다. 하지만 라이너스 만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탈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강구한다.   

여섯 명의 서로 모르는 이들은 모두 이유도 모른 채 지옥 같은 상황에 놓여 빠져나갈 방법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한 버스에 타고 있는 모르는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서로에게 기대려 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 서로를 도와주려 하지 않고 말이다. 그들의 삐걱거리는 관계는 열여섯 소년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인해 조금씩 달라지지만, 소년 역시 원래 그렇게 사람들과 잘 지내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 장소가 그를 조금씩 바꿔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를 납치한 정체불명의 인물은 어느 날 아침 이런 쪽지를 보내온다.

들어라_내 말을: 다른 사람을 죽이는 남자는 자유를 얻을 것이다

대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이유는 또 무엇이며, 이들은 그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이야기는 열여섯 소년이 쓰는 일기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이후 보여지는 몇 장의 여백은 그 어떤 충격적인 단어로 표현된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렇다. 삶이 항상 해피엔드일 수는 없으니까. 나는 이렇게 기가 막힌 결말을 본 적이 없다.

아냐와 같은 사람의 문제는 위험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두려움이 무엇인지 모른다. 평생 안락함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그들이 아는 두려움이라곤 작은 것들뿐이다 -- 걱정, 근심, 사소한 것들. 아냐는 아마 한 번도 무엇을 두려워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진짜로 두려웠던 적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벌써 곤경에 처한 것이다.

두려움은 도움이 된다.

두려움은 오싹한 영화를 보거나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서만 있는 게 아니다. 두려움은 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주로 청소년 소설을 발표했던 케빈 브룩스가 2013년 발표한 <벙커 다이어리>는 그의 열세 번째 작품으로, 납치되어 벙커에 갇힌 소년이 두 달에 걸쳐 쓴 일기를 그리고 있다. 납치, 폭력, 마약, 고문, 강간, 살인 등 충격적인 요소가 가득하나, 자극적인 소재로 흥미를 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존재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시종일관 내용이 어둡고, 결말 또한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기에 발표 당시 어린 독자들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책 표지에 경고 문구를 넣어야 한다거나 16세 미만 연령에게는 읽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발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훌륭한 어린이 청소년 도서에 주어지는 유서 깊은 카네기상을 이 작품이 받은 것은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그는 무려 10년 전부터 이 작품을 낼 계획이었으나, 어두운 내용과 결말 때문에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당했고, 편집자들은 그에게 조금만 밝게,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고쳐 쓰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고, 10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만약 그가 편집자들의 조언 대로 내용을 고쳐 썼다면 훨씬 오래 전에 책을 출간할 수 있었겠지만, 아마도 지금 이 작품만큼의 찬사는 받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10대 청소년 화자의 순수하고도 투쟁적인 자의식이 느껴지는 케빈 브룩스의 문체 또한 너무도 멋지다. 열여섯 소년을 화자로 설정한 것도 매우 탁월하고, 소년의 사유 또한 너무도 매력적이다. 철학적이지만 난해하지 않고, 자극적인 소재지만 진부하지 않다. 게다가 결말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놀라우며, 한마디로 그저 굉장하다. 독창성, 재미, 가독성, 문장, 플롯, 캐릭터, 그리고 역대급 결말까지... 모든 항목에서 별 다섯 개! 강추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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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4-30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찜했습니다....

피오나 2017-04-30 23:24   좋아요 0 | URL
ㅎㅎ 탁월한 선택이 되실 거예요. ^^
 
로스트 -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
찰스 디킨스 지음, 정의솔 옮김 / B612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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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누군가는 순수문학 작가로 이름 난 찰스 디킨스가 추리 소설을?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의 걸작 <황폐한 집> <두 도시 이야기>역시 범죄, 미스터리 소설의 범주로 읽어야 한다. 그러니 그의 유작이 추리소설이라는 것에 어떠한 의문도 가질 필요가 없다.

삽시 씨의 저택은 하이 스트리트에 위치해 있고 그 건너편은 '수녀의 집'이다. 저택은 '수녀의 집'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고, 군데군데 현대적으로 개축한 흔적은 마치 몰락해 가는 세대가 '흑사병과 열병' 대신 산소와 빛을 갈구하는 듯 느껴진다. 현관에는 실물 절반 정도의 크기로 삽시 씨 부친의 나무 조각상이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 가운을 입은 채 경매를 진행하는 모습으로 서 있다. 그 고상함과 손가락의 모양, 망치, 단상의 자연스러운 형태는 그 동안 감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몇 년 전에 매튜 펄이 <디킨스의 최후>라는 작품에서 실제 찰스 디킨스의 생전 모습과 그의 사후 당시 분위기를 묘사한 적이 있다. 12회 연재로 예정되어 있는 미스터리 소설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 6화까지 집필하던 중이었던 디킨스가 갑작스레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그의 신작을 기다리던 출판사가 엄청난 위기에 놓여 미완의 원고를 찾아내 독점 출간하기로 한다. 하지만 원고가 사라지고 그 와중에 살인이 벌어지면서 디킨스의 유작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가 펼쳐진다. 디킨스가 세상에 남기지 않은 소설의 엔딩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한 스펙타클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역사 추리 소설이라는 타이틀로 나왔던 만큼 디킨스의 말과 행동, 성격까지 실제 있었던 대화와 사건을 토대로 재구성했다고 해서 화제였던 기억이 난다.

디킨스 사후 수십 년 동안 이 작품과 관련한 새로운 증거들이 등장해 여러 작가들이 그것에 상상력을 펼쳤지만, 작품의 결말을 둘러싼 궁금증은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작품, 논란의 유작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실제 영국의 로체스터에서 발생한 삼촌이 조카를 살해한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고 전해지는 이 작품은 디킨스가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로 구체화시켜 글을 썼다고 짐작하기 어려운 부분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악인의 극치로 평가 받는 인물 존 재스퍼를 탄생시킨다. 실종된 에드윈 드루드의 삼촌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존 재스퍼인데, 겉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조카의 약혼녀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너무도 분명한 동기가 있는 셈인데, 탐욕과 광기로 무장한 악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기도 전에 작품이 중단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그루져스 씨는 입이 딱 벌어진 끔찍한 형체가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머리 쪽으로 손을 쳐드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이 젊은 커플 중 한 명인 선생의 조카는 자신이 예정된 삶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것에 대해 선생이 몹시 실망할까 두려워했습니다. 며칠 동안 선생한테 그 비밀을 털어놓지 못하던 그가 내게 내려와서 그 소식을 선생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은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선생에게 말하고 있고, 그는 떠나고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의 후반부에 추가로 실려 있는 <삽시미완의 원고> <작가창작노트> 그리고 <초판표지화>이다. 결말에 대한 단서를 독자인 우리도 추측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엄청난 증거 자료들인 셈이다. 전체 12부를 예정으로 잡지에 연재 중이던 이 작품은 디킨스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6부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 작품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 미완의 원고는 사후 그가 남긴 원고들 사이에서 발견된 몇 장의 종이에 있던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창작 노트는 디킨스가 월간지에 게재했던 다른 소설들을 창작할 때 만들었던 창작노트들과 비슷한 형식을 띠는데, 사실 거장의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굉장히 매혹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아이디어, 인물의 이름, 대사 등이 포함되어 있고, 글을 쓰기에 앞서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각 챕터의 방향성과 주 내용도 정리되어 있다.

누구를 범인으로 하고 어떤 결말을 낼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시도는 아주 오랫동안 있어왔는데, 애초에 시작부터 디킨스가 작정하고 악인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드러나 있긴 하다. 그러니 범인에 대한 추측보다는 미완의 유고가 남긴 미스터리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디킨스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특유의 장광설이야말로 사회적 배경과 인물의 심리와 그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로 미스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현대 작가들의 소설만 읽어대다 19세기의 작가가 만들어내는 글을 읽다 보니, 새삼 디킨스가 장황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재능을 타고난 위대한 작가이지만, 읽어내기가 버거운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어쩌면 진정한 미스터리란 바로 이 작품을 두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그 이전에 작품의 존재 그 자체가 미스터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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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8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킨스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영혼을 만난 영매사가 미완성된 작품을 마무리지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서프라이즈>에서 본 건데 디킨스 마지막 작품이 오늘날까지 ‘미완성‘으로 알려진 걸로 봐서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

피오나 2017-04-28 07:39   좋아요 0 | URL
하핫...그런 얘기도 있었군요ㅎㅎ <서프라이즈>에서 까지 나올 정도이니...그동안 이 미완의 원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ㅋㅋㅋ
 
[세트] 여우가 잠든 숲 세트 - 전2권 스토리콜렉터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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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누스 시리즈의 그 여덟 번째 이야기이다. 특히나 이 작품은 넬레 노이하우스가 시한부 선고를 이겨내고 2년 만에 발표하는 작품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게다가 타우누스 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두 권으로 출간되는 만큼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며, 이야기 역시 가장 큰 스케일과 재미를 주고 있다.

보덴슈타인은 실망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온 세상이 거짓말과 허위로 가득했다. 전에는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정말 지쳤다. 집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창문 뒤로 헤롤트 부인의 실루엣이 보였다. 일상과 비극의 틈새는 얼마나 좁은지! 만일 그의 예감이 적중해서 불탄 시신이 클라우스 헤롤트로 밝혀진다면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듯했다. 거기다 그의 아내가 받을 배신감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지난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일상의 기억 위에 거짓의 그림자가 여생 동안 짙게 드리워질 것이다.

숲들로 둘러싸인 타우누스 언덕에 위치한 루퍼츠하인 마을, 인근의 숲속 캠핑장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한다. 불탄 캠핑카 안에서 불타버린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보덴슈타인과 피아는 그의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요양원에서 시한부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던 할머니가 살해 당하고, 그녀를 최근에 만났던 마을의 신부까지 살해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대체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건은 42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보덴슈타인의 과거와 연결되고, 뭔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한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어 버린다.

사실 보덴슈타인은 연말쯤 1년간 휴직을 할 생각이었다. 정의를 믿고, 규칙과 가치를 믿고, 선과 악을 믿었던 그였지만 지난 몇 년 사이 그가 생각하는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에 신물이 나 엄청난 무력감이 경찰직에 대한 거북함까지 가지고 왔던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보덴슈타인과 함께 수사를 해왔던 피아는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예감하며 갑자기 혼자 내버려진 듯한 기분이 든다. 아마도 이번이 둘이 함께하는 마지막 사건이자, 진한 동료애의 마지막 합작품이 될 거라는 생각에 울고 싶은 심정 마저 들었던 그녀는, 사건의 방향이 보덴슈타인의 과거로 향하자 점점 그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사건 관련 인물들은 전부 그와 아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각자를 둘러싼 소문이나 비밀까지 알고 있는 사이였기에, 객관적으로 사건 맥락을 꿰뚫어보기도 어려워 보였고,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그들에게 점점 휘둘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언가 나쁜 기운이 거미줄처럼 마을 위에 펼쳐진 듯했다. 모든 비극이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여겨온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불신과 불안이 독처럼 스며들었다. 소문이 돌고 추측이 난무했다. 살인자가 이방인이라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곧 그들 중 하나,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인식으로 인해 이 마을은 폭발 직전의 적대적인 분위기로 확 바뀌었다. 작은 불꽃 하나만 있어도 금방 폭발해버릴 듯했다.

사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보덴슈타인은 세월이 오랫동안 억누르고 있던 불쾌한 상황들을 연이어 떠올리게 된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되어 있었던 거다. 선천적으로 외톨이였던 그는 패거리 안에서 편한 적이 없었고, 그들 중 몇몇은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집단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소심한 시도는 늘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고, 겨우 그런 상황에서 벗어난 것은 5학년 때 다른 학교로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시리즈가 이렇게 오래 지속되면서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의 과거가 전면적으로 드러난 이번 작품은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더욱 비밀스럽고,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피아과 보덴슈타인이 사건의 흔적을 따라갈수록 42년 전의 과거가 점점 수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보덴슈타인의 나이가 쉰넷이니까, 당시는 열한 살, 아니 거의 열두 살이 다 돼 갈 즈음이었을 거다. 현재 사건의 중요한 키를 가지고 있는 실종된 소년은 그와 아는 사이였던 정도가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였다.

보덴슈타인은 형사 생활을 해나갈수록 초창기에 품었던 이상주의를 조금씩 잃어갔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세상에 더 많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젠 그 믿음조차 흔들리고 있다. 정말 좋은 사람이 더 많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나건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단지 자신과 자신 가족에게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은 것을 기뻐할 뿐, 자신들이 속한 세계의 안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뭔가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 무언의 침묵과 마을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공포 앞에서 그들이 연쇄 살인을 멈추기 위해선, 42년 전 그날 숲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밝혀내야만 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고, 그들 각각이 어떻게든 관계를 가지고 있어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연결되는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에 대해 추리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무엇보다 보덴슈타인이라는 인물의 숨겨두었던 내면에 접근하는 이야기라 타우누스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서 매우 흥미진진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자고로 미스터리는 두꺼워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기에, 두툼한 두 권짜리 분량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진실도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로 보이는 것조차 빈틈이 있을 경우, 또는 맥락을 도외시할 경우 전체 그림을 왜곡할 수 있다. 그래서, 사건의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전체 그림을 봐야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보덴슈타인은 절대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없다는 데에 아이러니가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의 특별함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말이다. 타우누스 시리즈는 단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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