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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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 그림이다, 라고 하쿠로는 확신했다. 가즈키요가 죽기 직전까지 그렸으나 결국 완성하지 못한 그 그림. 실물은 발견되지 않고 사진마저도 사라졌다는 것인가.

어떻게 된 일인가. 하쿠로는 고민에 빠졌다. 이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감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밝혀진 것이 있었다. 그림의 제목이다. 그곳에는 '제목:관서의 망'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관서'라는 단어의 듯을 알지 못해서 하쿠로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았다. '관서:죄와 허물 등을 너그럽게 용서함'이라고 나왔다.

수의사인 하쿠로에게 어느 날 이복동생 아키토의 아내라며 연락이 온다. 가족들과 거의 연을 끊고 지내왔던 터라 동생이 결혼을 한 지도 몰랐던 하쿠로이지만, 아키토가 행방불명이라고 벌써 며칠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그녀의 말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어 그녀를 만나기로 한다. 시애틀에 있던 아키토와 가에데는 아버지가 위독하니 임종을 하려면 어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급히 귀국을 했는데, 귀국한 지 이틀 째 되는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거다. 병원에 가기로 한 날 작은 쪽지만 남기고 행방불명이 되었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는 상황이라, 그에게 병문안을 함께 가달라는 거였다. 친척들이 남편의 실종에 관계가 있지는 않은 지 궁금했던 가에데 덕분에 하쿠로는 그녀와 함께 아주 오랜 만에 가족들을 마주하게 된다.

하쿠로의 아버지는 무명 화가였기에 생계는 거의 간호사로 일하던 어머니가 책임졌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일찍 세상을 뜨고, 남겨진 어머니가 의사인 야가미를 만나 재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뒤 이복 동생인 아키토가 태어났고, 어머니가 16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시고 나서는 야스히루 집안과는 거의 왕래를 하지 않고 지냈었다. 집안의 유산 배분과 관련해서 가족들이 모이게 되고, 하쿠로와 가에데를 비롯해서 친척들 간의 복잡한 심리전이 진행된다. 거의 중반까지 이들 집안의 수많은 인물들과 관계, 그리고 유산 상속을 둘러싼 이기심과 과거의 사정들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자칫 히가시노 게이고스럽지 않아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중반을 넘어서자 이야기는 특유의 속도감을 가지고 끝까지 달려가기 시작한다.

"맞아요. 다만 일반적인 서번트 증후군과는 약간 달랐어요."

"다르다면, 어떻게요?"

"야가미 선생님은 후천성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쓰셨어요."

"후천성? 하쿠로는 가에데와 마주 본 뒤 니무라 가나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것도 있습니까?"

 

리만 가설, 뇌 과학, 서번트 증후군, 그리고 그들이 그려내는 의문의 그림들까지 이 작품은 SF적인 상상력과 과학 이론의 삽입 등 다양한 소재들로 버무려진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에서 순수 추리, 미스터리의 느낌보다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늘었는데, 이번 작품은 그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미스터리는 단 하나가 아니다'라는 카피 문구처럼, 여러 미스터리들이 얽혀서 하나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실종된 남편을 찾는 아내, 의학계 명문가의 유산상속을 둘러싼 비밀과 거짓말, 뇌의학 계의 숨겨진 발견과 아버지의 병에 대한 진실, 사고인 줄 알았으나 의심스러웠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상.. 거기다 소소한 로맨스까지 버무러져 이야기는 정신 없이 달려간다.

뇌의학과 수학계의 난제라는 미스터리를 어렵지 않게 접근해서 풀어내면서, 주인공의 직업을 이용해 다양한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며, 과학을 변명으로 동물실험을 하는 것에 대한 윤리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원칙을 중요시하며 매사에 똑부러지게 옳은 소리만 하는 동물 병원의 조수 가게야마 모토미도 매력적이고, 멋진 몸매에 속을 알 수 없는 신비스런 분위기의 가에데는 어딘지 수상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이들 두 여자 사이에서 나름의 갈등을 겪는, 고지식하고 순진한 하쿠로와의 스토리도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작품들보다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장르적인 재미에 더 중심을 두었던 작품들이 더 좋지만, 종합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지향하고 있는 최근의 작품 경향이 더 많은 이들을 그의 작품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소수의 독자들을 만족시키느냐, 다수의 대중들에게 어필하느냐는 작가의 선택이니 말이다. 확실히 이번 작품은 추리, 스릴러 장르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만족시킬 만한 요소들이 많고, 어렵지 않아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는 이들에게도 훌륭한 선택이 될 것 같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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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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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과 비교하면 다치바나는 나무랄 데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구청에 근무하고 어머니는 피아노 강사를 하고 있어 아무런 어려움도 없다.

그러나 '그런 비교는 누가 하는 걸까' 하고 기타는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어떻게 하면 불행하다는 건가. 어디에 선을 긋는다는 말인가.

십오 년 전에 여교사가 자신이 근무하고 있던 고등학교 건물 옆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는 유서도 있었고, 실연으로 괴로워하다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으로 처리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제자인 남학생 세 사람이 범인이었다고,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제보가 들어온다. 제자 세 사람이 여교사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대에 학교로 숨어 들었고, 그것이 여교사의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살인이라고 해도 내일이면 시효가 끝나는 시점이다. 공소시효가 스물네 시간 남은 시점에서 들어온 제보, 경찰들은 당시의 제자들을 비롯한 사건 관계자들을 차례로 조사하기 시작한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기타와 다쓰미, 다치바나는 공부에 관심이 없어 자주 수업을 빼먹고 카페 루팡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기말시험을 앞두고 시험 문제를 훔치겠다는 일명 루팡 작전을 세우기에 이른다. 이제 와서 시험 성적이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엄중하게 보관된 시험지를 훔쳐낸다는 계획 자체에 신이 난 그들은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기에 이른다. 이들 세 악동과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는 삼억 엔 탈취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카페 루팡의 사장, 그리고 매일 밤 교내를 정찰하던 수상한 화학 선생 등 관계자들의 진술이 과거의 사건을 복기한다. 공소시효까지 앞으로 스물네 시간, 과연 범인은 검거될 수 있을까.

히다카 아유미의 행방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고, 수사에 특별하다고 할 진전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십오 년 전 사건이다. 어제 오늘 시체가 발견된 사건처럼 쓸 만한 정보가 척척 들어올 리도 없었다. 거리도, 사람도, 사는 방법까지 전부 변해버렸다. 페인트가 몇 겹이나 새로 발린 거리는 지금 현재의 색깔만 보여줄 뿐, 과거의 오래된 자국은 보이지도 않는다. 과거란, 대체적으로 고생으로 겹겹이 포개졌기에, 아무리 벗겨내고 벗겨내도 십오 년 전의 색깔이 뭐였는지, 사람도, 거리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 외에, 그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와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가이다. 절제된 문구와 정확한 어조는 이야기와 인물들을 페이지마다 빈틈없이 채운다. 꽤 많은 분량의 페이지들이 속도감을 잃지 않고 넘어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실제'같은 사람들이 '실제'같은 곤경에 빠져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생생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매번 그의 작품에서는 형사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는 범죄라는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환경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64>에서 경찰 내부의 조직과 언론과 경찰간의 관계를 세밀하게 그려내는 방식도 마찬가지였고, <클라이머즈 하이>에서 신문사에서 펼쳐지는 그 생생한 전쟁의 한 복판에 함께 앉아서 그들과 그 시간을 고스란히 공유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분위기를 그려냈던 것도 그랬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근속기간 12년의 베테랑 기자였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작품에서 빛나는 수많은 정보와 치밀한 구성, 탄탄한 문장들이 고스란히 그의 이력을 말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작품 <루팡의 소식>을 계기로 요코야마 히데오는 신문 기자를 그만두고 소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이 쓴 전설의 데뷔작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존 작품들에 비해 풋풋한 청춘 소설같은 분위기가 색다른 느낌도 들었지만, 데뷔작인데도 불구하고 탄탄한 스토리와 복선, 긴장감 넘치는 구성, 군더더기 없는 문장, 인간적이고도 생생한 캐릭터의 힘은 여전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공소시효 하루 전이라는 긴박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마지막 즈음에 이르면 묵직한 감동마저 안겨 주어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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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라이언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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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지 않았을까 싶다.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고 말이다. 가와이 간지의 가부라기 특수반 시리즈 그 마지막 편은 바로 그 꿈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누군가 꿈을 꾼 것에 대한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룰 수 없는 것을 꿈꿨기에, 그 꿈에서 나갈 수 없게 된 슬프고도 참담한 비극이 전대미문의 밀실살인사건으로 그려진다.

“뭐랄까,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의 시신은 생전 처음 본다.”

눈이 부신 듯 시신을 올려다보면서 마사키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가부라기도 무심코 마사키의 시선을 좇고,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산 사람이 차별 받아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은 자 또한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 시신이 제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이건, 눈을 돌리고 싶어질 만큼 비참한 상태건, 살해당한 사람의 원통함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사람을 죽인 범인의 죄의 무게 또한 한 톨만큼의 차이도 없다.

하지만 마사키 말마따나, 빛의 띠를 받으며 하늘을 날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시신은 아름답다고 형용하고 싶어질 만큼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폐목장의 탑형 사일로에서 공중을 날고 있는 듯한 모습의 시신이 발견된다. 시신이 공중을 날 턱이 없고, 만약 살아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공중을 날 수는 없지만, 발견된 시신은 그저 공중을 날고 있다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젊은 여성은 마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 하고 있는 듯한 자세였다. 그녀는 16년 전에 실종된 열아홉 살의 여대생 히나타 에미. 왜 범인은 시신을 굳이 사일로 속 허공에 매달아 놓은 걸까? 수사를 위해 현장에 있던 히메노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  그녀가 하늘을 날아서, 도망쳐버리지 못하게 하려고, 바깥에서 천창에 못질을 한 거라고. 이게 다 무슨 소리일까. 그리고 얼마 뒤 국회 의원의 비서가 호텔 옥상에서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살해되기 직전에 110으로 신고를 했고, 덕분에 바로 엘리베이터를 정지시키고, 비상계단을 봉쇄했기에 범인이 달아날 방도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범인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마치 범인이 하늘을 날아서 공중으로 도망치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건의 살인범 모두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면, 두 살인 사건 모두 밀실 살인은 아니다. 그러나 둘 다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면 양쪽 모두 밀실 살인이 되고 만다. 어느 족이 됐든 이 두 사건은 '있을 수 없는 범죄'인 것이다.  사건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공안으로 넘어가지만, 형사부 수사 1과의 가부라기와 히메노 등은 그 사건에 의문을 품고 수사를 이어 나간다. 그 동안 가부라기 특수반 시리즈를 읽어 왔던 이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겠지만, 이렇게 미궁에 빠진 사건 일수록 가부라기의 직관과 추론이 빛을 발한다. 평소 주변인들에게서 어림짐작꾼으로 불리는 가부라기의 엉뚱한 추론에 대한 이론은 애브덕션이라는 건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있을 때 어떤 가정을 세우면 그것이 당연한 귀결이 된다고 하면, 그 가정은 옳다고 봐도 되지 않느냐는 거다. , 초현실적인 현상이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그 어떤 불가사의한 현상도 설명이 가능하게 되므로,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가설은 있을 수 있지만 있어서는 안 되는 가설에 해당하게 되지만 말이다.

“다른 꽃들도 그렇지만, 민들레도 꽃말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이별, 변죽을 울림, 신의 계시, 진실한 사랑, 사랑의 신탁. 어쩐지 전부 연애와 관련된 말들뿐이네요. 그런데 하나 더, 이상한 꽃말이 있습니다.”

“이상하다니, 무슨 말인데?”

가부라기가 묻자 히메노는 느릿한 어조로 대답했다.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 라고 하죠.”

민들레의 꽃말은풀기 어려운 수수께끼’…….

그 말은 가부라기의 마음속에 깊이, 그리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엄청난 반전, 탄탄한 플롯 모두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추리 소설의 진정한 백미는 살아있는 캐릭터에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들은 항상 그 이름을 따서 OOO시리즈 라고 같은 인물들을 시리즈로 계속 작품이 이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끔찍한 범죄에 대한 이유와 범인을 밝히는 것보다는, 그 속에서 부딪히며 사건을 해결해가는 인물에게 독자들이 감정 이입을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역시 마치 페이지 바깥으로 걸어나올 것만 같은 생생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극중 작품의 주요 인물인 가부라기와 히메노를 공안부의 다쓰마는 이렇게 평가한다.

"가부라기 데쓰오, 계급 경위, 47, 독신, 이혼 경력 있음. 대졸 논커리어. 성격 온후, 무사안일주의, 상승의지 없음. 별명은 히루안돈(얼빠진 사람). 종합 평가 D."

"히메노 히로미, 계급 순경, 27, 독신, 대졸 논커리어, 경박, 낭비벽 심함, 상승 의지 없음. 별명은 히메. 종합 평가 C"

가부라기는 승진 시험에도 관심이 없고, 평소에는 전혀 두드러지지 않는 존재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이나 양보를 모르고, 사건 수사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과 매우 예리한 추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 히메노는 국립대학 법학부를 졸업했지만 간부시험을 거쳐 경찰이 되지 않고 형사를 지망해 논커리어로 들어온 괴짜로 이탈리아제 승용차에 고급 양복을 입으며, 형사들만의 은어를 즐겨 사용하는, 일명 형사 오타구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객관적인 스펙으로 도출되는 걸로 한 인간을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행히도 이들의 상사인 모토하라 과장은 그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지지해준다. 그래서 시리즈 첫 작품인 <데드맨>에서 여태껏 수사의 중심에 서 본 적도 없었던 가부라기가 난생 처음 수사본부장 대행이라는 큰 임무를 맡았던 것이고 말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히메노의 과거와 사건이 연관되어 진행되는 덕에 그저 괴짜 형사로만 알고 있었던 그에 대해 새로운 면들을 보게 된다. 그 외에도 투덜대고, 툭툭 던지는 말투이지만 사건 수사에 있어서만은 피해자, 범죄의 크고 작음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인간적인 마사키도 있고, 과학경찰연구소 범죄 행동 과학부 수사지원연구실 소속인 사와다도 종종 등장해 프로파일링과 관련된 수사에 도움을 준다.

가부라기 특수반의 캐릭터들을 참 좋아했던 나로서는, 이 작품이 <데드맨> 시리즈의 완결편이라는 점이 아쉽기 그지 없다. 이 시리즈는 이후에 계속 이어지더라도 지금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재미를 주었을 텐데 말이다. 인간적이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지닌, 진지하면서도 어디선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유쾌한 이들 멤버들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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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득 2017-07-07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가부라기 특수반 시리즈가 이 작품으로 끝이군요. 아쉽네요. 좀 길게 이어져도 좋을 것 같은데...
불가능한 범죄를 좋아하는 지라 얼른 읽고싶지만 끝이라고 하니 또 아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그나저나 히나타 에미는 16년 전에 실종되었는데 열 아홉살이라니 그럼 세 살때 실종된 거군요. 갑자기 왜 지금에와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일까요? 여기에 얽힌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어째 생각보다 빨리 읽게 될 것 같은 예감이...^^

피오나 2017-07-07 20:26   좋아요 1 | URL
ㅎㅎ 16년전 실종 당시 나이가 열아홉이에요ㅋ 헤르메스님도 좋아하실 만한 작품일 것 같으니 빨리 만나보시게 되길 ..^^
저도 가부라기 시리즈가 이렇게 세편으로 끝이 나서 너무 아쉽네요. 가와이 간지의 다른 작품들도 물론 좋겠지만..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게 정이 흠뻑 들었는데 말입니다. 특히나 고학력에 형사 오타쿠라는 독특한 설정의 히메노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많이 다루고 있어 마지막 작품은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오드득 2017-07-07 23:52   좋아요 0 | URL
아, 이런 16년 전에 실종되었을 때 이미 19세였군요. 하하, 이런 오독을^^;
오, 히메노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이 나온다고요? 와, 이 정보는 저를 제대로 낚는 걸요. 얼른 읽어봐야겠네요^^
 
우리 집 문제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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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는 사람을 보는 눈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모든 가정이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조금도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다들 어른이네."

나오와 둘이서 감탄했다. 자극도 되고 격려를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서른두 살의 회사원 준이치는 이제 결혼한 지 두 달밖에 안된 신혼인데, 퇴근 시간 무렵이 되면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결혼 전 오랜 기간 혼자 독립해서 지내서 그런지, 휴일에도 꼼꼼하게 청소며 집안일을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요리들을 정성 들여 준비하며, 야근하고 늦게 들어가도 매번 밤참을 만들어 내오는 완벽한 아내가 어쩐지 부담스럽기만 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야근 핑계를 대고 동료들과 마작을 하거나, 집 근처 커피숍에서 시간을 때우면서 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아지는데, 어느 날 아내가 그걸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들 신혼 부부는 과연 위기를 어떻게 넘기게 될까. 임신 6개월인 주부 메구미는 남편 회사 소프트볼 대회에 응원 차 갔다가, 남편이 동료들로부터 찬밥신세라는 걸 알게 된다. 아이를 가지면서 자신은 회사를 그만둬서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완전히 기대고 있는 데다, 곧 아이까지 태어나는 상황이라 그녀는 남편이 정리해고를 당하게 되지는 않을까 고민한다. 그리고 남편이 회사에서 실제로 어떤 상황에 놓인 것일지 상상하며, 점심은 누구와 먹을지, 상사에게 혼나고 있지는 않을지, 동료들에게 험담을 듣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가 내린 비장의 방법은.. 소박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녀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마음이 점차 남편의 회사 동료들 마음까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수십 년을 넘게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온 두 남녀가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벌어지게 되는 신혼 생활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들이 겪어왔던 샐러리맨의 애환, 부모의 이혼을 눈치 채고 고민하는 사춘기 딸의 마음, 도시에 사는 신혼부부가 명절이 되어 각자의 고향에 다녀와야 하는 귀성 전쟁과 남편이 유명 소설가라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라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 전업주부의 정체성 찾기 등... 일본 작가가 그리고 있는 가정사들이지만, 한국의 어느 가정과 견주어도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삶의 편린들이다.

미나코는 의논 상대가 필요했다. 혼자 껴안고 있기에는 너무 버거운 문제였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말할 수 없다. 친정 엄마에게 말했다가는 걱정하느라 바싹바싹 마를 것이다. 동네 엄마들도 안 된다. 몰려다니기는 하지만 우정은 없다. 입방아거리를 제공할 뿐이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는 관계가 소원해지고 말았다. 동창회는 5년 전에 나간 게 마지막이다.

이런 일이 닥치고 보니 전업 주부는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락을 함께할 전우가 없다.

하여간 힘을 내는 수밖에 없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다. 미나코는 아자! 하고 힘차게 외쳤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각각 다르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그 유명한 문구를 굳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우리네 삶은 사실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불행해하는 순간들로 채워진다. 타인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걸 참지 못해 부부가 이혼을 하기도 하고, 부자 사이가 냉랭해지기도 하며, 고부 관계가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당사자에게는 죽을 만큼 힘든 일이지만, 남이 보기에는 그것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 집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특유의 해학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여러 가정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사소한 문제들까지 예리하게 짚어내는지, 실제 작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이들의 이야기는 격하게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이다. 남편이 잘 나갈수록 집안일만 하던 아내가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어느 날 갑자기 UFO와 교신했다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남편이 알고 보니 직장에서 곤란에 처해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서로의 고향이 먼 거리만큼이나 성격도 가풍도 달라 귀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신혼 부부의 고민도 너무 있을 법했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나름 진지한 주제들에 대해서 심각함보다는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 시선으로 그려내는데 이 작품만의 장점이 있다. 비슷한 상황에 한 번이라도 처해 본 적이 있다면, 혹은 이웃이나 가족들이 유사한 고민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면 더더욱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말이다. 거기다 심각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들의 귀여운 고민에 슬그머니 미소 짓게 되는 순간도 있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얻게 되는 은근한 위로도 있다. 이런 저런 가정의 대소사들로 인해 지치고 스트레스 받는 이들에게,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당신네 집 문제도 결국 우리 집 문제와 다르지 않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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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죽이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 3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5년 만에 만나는 존 버든의 신작. <658,우연히>, <악녀를 위한 밤>에 이은 데이브 거니 시리즈 그 세 번째 작품이다.

거니는 매들린이 그를 관찰하고 있었고, 그의 마음을 읽는 놀라운 능력을 다시 한 번 발휘했음을 깨달았다. 매들린은 눈빛만 보고도 그의 생각과 기분을 읽을 수 있었다. 마치 그가 소리 내어 말한 것처럼. 결혼 초기에는 그녀의 그러한 능력이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삶에서 가장 따듯하고 소중한 진실로 느껴졌다.

냄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윽한 향이 거실로 풍겨왔다.

 

평화로운 전원에서의 은퇴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퇴직 형사 데이브 거니. 그러나 그는 전작 <악녀를 위한 밤>에서 얻은 부상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후유증으로 귀에서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으며, 우울하고 적대적이고, 그 무엇에도 연루되고 싶어 하지 않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강력계 형사 시절 알게 되었던 저널리스트 코니 클라크에게서 연락이 온다. 자신의 딸이 희생자의 유가족을 다룬 <살인의 고아들>이라는 미니시리즈를 기획했는데, 그녀를 좀 도와달라는 거였다. 그녀가 다루고 있는 사건은 십 년 전에 벌어졌던 착한 양치기 사건이었다. 메르세데스 벤츠 운전자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던 여섯 차례의 총격 사건으로 당시 범인은 두 번의 총격사건 이후 경찰에게 20여 페이지의 선언문을 보냈었다. 돈에 대한 사랑, 즉 탐욕이 모든 악의 근원이므로 그것을 척결해서 선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그 요지로 범인은 결국 잡히지 않았고, 그 사건은 범죄 역사상 가장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자리매김했었다. 사회의 병폐를 나열하고 살인을 통해 그 병폐를 해결하겠다는 논리로 부유층과 특권층에 대한 극적인 공격을 보여줘, 그 사건은 심리학과 범죄학 강의의 가장 인기 있는 주제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거니는 너무도 명백하게 정의된 '착한 양치기 사건'을 조사하면서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킴과 거니 주변에 사소하지만 위협적인 이상한 일들이 하나씩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방송 준비를 위해 희생자의 유가족들을 한 명씩 만나 인터뷰를 하고, 거니는 형사 시절 동료인 하드윅의 도움으로 하나씩 사건을 되짚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사악한 부자들에 대한 정의로운 처단의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십 년 전 그 사건은 완전히 처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당시 사건 수사를 종결했던 FBI로서는 거니의 의견이 달가울 리가 없을 것이고, 그들의 눈을 피해 거니는 자신의 의심을 증명시킬 무언가를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문제의 그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자 인터뷰를 했던 유가족이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십 년 만에 착한 양치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인터뷰에 응했던 유가족들이 차례로 살해되고, 범인은 킴과 거니에게 도전적인 편지를 보내온다.

"좋아요. 그럼 왜죠? 뭐에 끌린 거죠?"

"이 사건에는 트럭 한 대가 지나가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요. 날 잠 못 들게 할 만큼 커다란 구멍. 더구나 킴의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고 내가 연루되는 걸 막으려는 의도로 보이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어요.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난 정반대로 나갑니다. 누군가 문밖으로 날 밀어 내려 하면 어떻게든 방 안에 남아 있고 싶어지죠."

 

데이브 거니는 시리즈 첫 번째 작품에서부터 현직에서 은퇴한 전직 형사로 등장했지만, 매번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사건에 휘말려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일에 휘말리고 또 굴복하고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줘 왔다. 데이브 거니, 그는 대체 어떤 캐릭터인가. 우선 천재적인 추리력을 가진 전직 형사이다. 균형 감각, 집중력, 냉철한 분석, 엄격한 객관성을 가진 에이스 형사였지만.. 현재는 가끔 자기 연민에 빠지고,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고, 형사라는 신분과 명성 없이는 시시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들기도 하는 평범한 중년 남자이기도 하다. 사고 후 십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신이 당시에 지켜주지 못한, 네 살 때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는 아버지이며, 눈부신 직업적 성공 조차 몇 가지 사소한 실수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통을 겪느라 빛을 발하지 못하는, 도무지 맘 편히 쉴 줄 모르는 남자이다.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고 항상 무자비할 정도로 문제를 파헤치는 남자로 경찰 시절 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어떤 순간에나 침착하고,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거였다. 어려운 일일수록 더 끌리는 성격으로, 난관은 그에게 일종의 자석과도 같으며, 불가능은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이 된다. 일을 하는 순간에는 집요하고 강박적인 면이 있으며, 감정의 표출에 상당히 냉정한 편이다. 주목 받는 걸 좋아하지 않으며, 영웅이 되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범인과의 두뇌싸움이나 사건해결 과정에만 치우지지 않고,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좌절을 맛본 중년 남자의 고뇌가 스토리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 소설 히어로의 감성적인 면모, 영웅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사실적이고 밀도 있게 그려진다는 것은 분명 여타의 스릴러 소설들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존 버든 만의 장점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가 은퇴한 전직 형사라서 매 사건마다 항상 아내인 매들린에게 자신의 생각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장면 또한 이 시리즈만이 가지고 있는 멋진 대목 중 하나이다. 타고난 밝은 천성으로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항상 그보다 낙관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닌 매들린은 거니에게 언제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연쇄살인마에게 위협을 받는 순간에조차 긍정적인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태도는 거니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며, 사건 해결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너무도 인간적이고 여러 가지 불완전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난 데이브 거니는 여전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시리즈 다음 작품인 <피터팬은 반드시 죽는다> <늑대 호수>도 어서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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