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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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된 적 없어요."
"알아요.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도의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린 여전히 소통하고 싶은 생각들은 뇌 속에 가둬 두고, 꿀꿀대는 거로만 표현하는 유인원에 불과하죠."
"영문학 교수 아들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요."
"아버지로부터 문학적인 유전자는 물려받지 못했나 봐요."     p.196

 

조는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유리멧새의 부화 성공률에 대해 조사 중이다. 키니 교수님의 산장을 빌려 그곳에서 지내면서 연구에만 몰두하던 그녀는 어느 날 숲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파리한 얼굴에 헐렁한 후드 티와 바지를 입고 있는 소녀는 자신이 바람개비 은하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지구에 집이 없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새벽 4시부터 열세 시간 이상 들판과 숲 속을 헤매고 다니며 일을 했던 조는 아이의 장난을 받아주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이름도, 집도 없다는 소녀의 부모를 찾아주고 싶지만, 경찰에 신고하면 도망가겠다는 아이의 몸에 긁히고 멍든 자국이 발견된다.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조는 달걀 파는 남자 게이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아이를 돌보게 된다.

 

사실 조는 암으로 투병 중인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대학을 휴학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같은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두 가슴과 난소를 모두 제거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남자친구는 그녀를 외면했고, 2년 뒤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 그녀를 남자 대학원생들은 어색하게 대했다. 외진 곳에서 달걀을 팔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의 게이브는 대학 2학년 때부터 신경쇠약과 우울증, 광장 공포증으로 치료를 받아 왔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엄마를 돌보며 살고 있는 그에게는 어린 시절에 목격한 부모의 충격적인 사생활에서 받은 상처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조숙하고 똑똑한 모습을 보이는 소녀는 다섯 개의 기적을 보기 전까지 지구에 머물러야 한다고, 그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소녀는 정말 외계의 존재인 걸까? 각자 세상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아왔고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한 여자와 남자, 그리고 자신이 외계인이라 말하는 정체 불명의 소녀까지 세 사람이 함께 지내면서 펼쳐지는 드라마는 잔잔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안겨준다.

 

 

아이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입을 떼었다. 조는 아이가 쉽게 말을 꺼낼 수 있는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미동도 않고 숨도 거의 쉬지 않았다. 그녀는 얼사가 중요한 사실을 말하려고 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얼사는 어두운 숲속을 응시할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니?"
조가 묻자, 아이가 눈을 돌렸다.
"만약 내가 진짜로 다른 세상에서 왔다면? 언니는 단 한순간이라도 내 말을 믿은 적 있어?"       p.275

 

숲과 별이 만난다는 근사한 제목과 그 이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설레이는 표지를 한 이 작품은 글렌디 벤더라의 데뷔작으로 아마존 작가 랭킹 1위를 비롯해서 여러 매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의 배경은 도시에 사는 우리가 거의 접해볼 수 없는 숲이다. 주인공은 셀 수 없이 많은 새알과 아기새를 보고, 어미 사슴과 새끼 사슴이 함께 있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하고, 표범개구리를 잡고, 꿀물을 마시는 벌새를 본다. 하천의 무성한 덤불과 쐐기풀을 헤치고 지나가서 둥지를 살피고 관찰하는 일을 하는 그녀의 시선으로 우리는 회색 빛의 어두운 숲 속을 느끼고, 후두두 산장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작가는 글을 쓰기 전에 멸종 위기 조류 전문가로 활동했던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조류학을 전공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디테일과 묘사가 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암 수술 이후 젊은 나이에 여성성을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이성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된 조, 어머니의 외도로 태어났기에 아직도 누나의 경멸과 멸시를 견디며 살고 있는 게이브, 외계인 행세를 하며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소녀 얼사, 이들 세 사람은 각자의 상처를 홀로 끌어안고 살아 왔다. 그들 곁에는 꼭 필요한 순간에 아무도 없었다. 가끔은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이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되기도 하고, 또 가끔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타인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되기도 한다. 오히려 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이라는 것 때문에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 주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그렇게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생각하는 것도, 취향도 완전히 다른 세 사람이 서로의 흉터를 통해서 가까워지게 된다. 만약 지금 외롭다면, 누군가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면, 이 작품이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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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고민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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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을 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는 착각. 사랑의 힘이 그렇게 세다는 착각. /그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고 받는 사랑에 움츠렸고 주는 사랑에 인색했다. /그럼에도 나는 어쭙잖은 경험으로 사랑이 충만한 내가 그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만이었지.      p.106~107

 

티비 프로그램을 잘 챙겨보는 편은 아니라 <연애의 참견>도 가끔 지나가다 본 게 전부이지만, '본격 로맨스 파괴 토크쇼'라는 기획 의도에 맞게 사연 속 커플의 연애들은 지지하고 싶다기 보다, 이어가면 안 된다고 말리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연애도 있었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스토리도 있었고,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해서 정신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다. 분명 누군가의 사연을 토대로 만들어진 드라마이니, 현실감이 있어야 할 것인데, 화면 속 그들의 연애는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왜냐하면 사랑할 때만 가능한 온도들이 그 바깥에 있을 때는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고, 그 속에 있을 때는 죽을 것 같던 감정도 다 끝나고 나면 내가 왜 그랬나 싶을 만큼 객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연애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타인의 연애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보는 것일 테고 말이다.

 

이 책은 [연애의 참견]을 기획, 제작한 고민정 작가의 첫 에세이이다. 시즌1부터 시즌3까지 연애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는 사연들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들었던 물음,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오랜 통찰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사랑에세이이다. 작가는 그 사연들을 보면서 매번 이렇게 생각했다. 사랑 하나 하자는데, 왜 이렇게 힘이 들까. 바로 거기서 이 책이 시작된 것이다.

 

 

어쩌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키우는 것보다 빨간불의 고장 난 타이머를 고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당신의 빨간불이 적절한 타이밍에 작동하는지, 빨간불이 들어왔을 때 발길을 멈추고 돌아볼 수 있는지가 다른 무엇보다 먼저 돌아봐야 하는 '문제'이지 않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당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은 빨간불 속에 있다고 믿으면서.      p.164

 

기약 없는 장거리 연애를 더 하자고 할 수가 없어 끝낸 5년의 사랑은 2년의 이별을 남기고, 가난한 대학생의 시간을 쪼개 쓰는 피곤한 일상이 그를 만나면서 순간순간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되지만 점점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는 욕심은 결국 그들을 이별로 데려가기도 한다. 확신이 없었던 사랑에 고민하다가 다른 사람을 만나보고 나서야 진짜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큰 싸움도 없이 그저 사랑에 수명이 다해 헤어진 이별 조차 쉽게 정리가 안 되기도 한다. 사랑에 빠져 있는 순간에는 누구나 그 감정이 영원할 거라 믿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믿을 수 없게 쫙 갈라져버린 관계의 금은 이해할 수 없음으로 답답하게 만들고, 상처받고 좌절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계절이 떨어지듯,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자고 나면 새날, 자고 나면 새 바람, 자고 나면 떨어지는 계절.. 그 영원하지 않음에 용기를 얻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 책에는 <연애의 참견>에서 보여졌던 그렇게 독하고,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는 없다. 조금 더 담백하고, 잔잔하게 어른스럽게 풀어 나가는 사랑에 관한 여러 단상들을 담고 있다.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들을 접해 왔던 경험으로 수많은 감정을 일으키는 연애의 순간들에 대해 풍부한 사유를 보여준다. 사랑에 정해진 룰이나 정답은 없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 한가지는 어떤 순간에도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사랑을 하며 나를 지키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이 끝난 어제도, 사랑에 괴로워하는 오늘도, 이 책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의 페이지는 차곡차곡 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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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쉬는 기술 -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휴식법 10가지
클라우디아 해먼드 지음, 오수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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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 다시 말해 두서없는 생각은 휴식이 아니라 뇌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뇌는 뭔가를 찾아 떠난다. 끊임없이 뭔가 탐색하고 다른 생각을 떠올리며 또 다른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것이다. 고단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가? 고단한 것은 끊임없이 이런 생각을 뒤쫓을 때, 혹은 질서를 부여하려 애쓸 때뿐이다. 잡념이 진행하는 상태대로 내버려둘 때는 피곤할 일이 없다. 접이식 의자에 앉아 쉬면서 마당을 뛰어다니는 아기나 강아지를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p.95

 

얼마 전에 하루 잠자는 시간이 6시간이 못 되면 기억력 등 인지기능이 떨어질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인지기능이란 기억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행하는 능력이다. 수면 시간이 6시간이 못 되는 사람이 6시간 이상 자는 사람보다 인지기능이 저하될 위험이 2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였다. 사실 늘 잠자는 시간을 쪼개어 가면서 생활하는 편이라.. 수면 시간이 충분했던 적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가슴이 뜨끔해질 수밖에 없는 기사였다. 사실 충분히 수면 시간을 확보하기는커녕, 평상시에도 늘 뭔가를 하며 바쁘게 사느라 제대로 휴식을 가져본 적이 언제인지도 까마득하다. 그나마 이번 명절 연휴는 코로나로 인해 북적거리지 않는, 집콕 연휴를 보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제대로 된 휴식이란 무엇인가, 잘 쉬는 방법은 어떤 건지 이번 기회에 좀 알아보고 싶어졌다.

 

심리학자이자 대중적인 글쓰기로 인정받은 저자 클라우디아 해먼드는 자신이 진행하는 BBC 라디오 4 <마음의 모든 것> 프로그램을 통해 ‘휴식 테스트’(Rest Test) 실시했다. 이 프로젝트는 135개국의 1만8천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역사가, 시인, 예술가, 심리학자, 뇌과학자, 지리학자, 심지어 작곡가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이 모여 2년 동안 진행되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조사 결과 사람들이 ‘가장 휴식이 된다고 여기는 상위 10가지 활동’을 추려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1위부터 10위까지의 목록들을 참고해, 곧 다가올 추석 때 해보고 싶은 휴식을 골라봐도 좋을 것 같다.

 

 

세계인이 최고의 휴식으로 꼽은 상위 다섯 개는 대체로 혼자서 하는 활동이다. 많은 이들에게 타인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휴식의 중요한 요소라는 뜻이다. 그런데 책 읽기야말로 혼자 하는 활동이라는 점에 더해 보다 특별한 것이 있다. 독서는 타인을 피하는 동시에 친구를 제공해준다는 점이다. 독서가 제공하는 친구는 실제 세계의 사람들보다 더 흥미롭고 휴식이 될 수 있는 친구, 원할 때는 아무 해명 없이 제쳐둘 수 있는 친구다.    p.343~344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어려운 휴식 결핍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제대로 쉬기 위한 방법은 꼭 필요하다. 휴식의 양뿐 아니라 질도 문제이니 말이다. 우리에게는 휴식이 더 필요하고, 질 높은 휴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휴식 테스트 상위 10위권에 들어가는 목록들이 궁금해질 것이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것은 최고의 휴식 방법 10위에서 1위를 소개하면서 이러한 활동들이 휴식이 되는 까닭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심리학자, 뇌과학자, 예술가 등 연구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이 열 가지 휴식법 각각의 효용을 입증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목록들 중 9위에 있는 텔레비전과 8위의 잡념이라는 항목이 다소 의외였다. 텔레비전을 보는 게 휴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사실 우리가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동안 머리를 쓸 필요도 없고, 신체적인 노력도 전혀 들지 않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긴장을 풀고 텔레비전도 휴식을 취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휴식 형태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리고 잡념도 휴식이 될 수 있다니 궁금했는데, 저자에 따르면 잡념이 휴식처럼 편안하다고 말할 때의 의미가, 어차피 뇌는 활동을 절대로 중단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뇌 활동을 통제하지 말고 그저 생각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거라고 한다.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목적 없는 잡념에 빠지는 것도 휴식의 또 다른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명상, 목욕, 산책 등의 항목들이 있었는데, 사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1위에 오른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응답자가 가운데 58퍼센트가 책 읽는 시간을 최고의 휴식으로 골랐다니 말이다. 독서는 수동적인 취미가 아니라 꽤 많은 노력을 요하는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왜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이를 휴식이라고 여겼을까 궁금해졌다. 책을 읽는 시간이 큰 휴식이 되는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직접 만나 보길 추천한다. 한가지만 미리 말하자면 3천여 명 이상의 사람들을 10년간 추적한 결과, 책을 읽은 사람들이 신문과 잡지만 읽은 사람들보다 평균 2년 가까이 오래 살았다는 점이다. 독서처럼 가만히 앉아서 하는 정적인 활동이 건강에 이토록 긍정적 영향을 끼치다니 놀랍지 않은가. 책 읽기라는 특별한 휴식법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평소에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적이 있다면, 당신에게 이 책이 꼭 필요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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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점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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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사람들은 급박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거짓말을 잘하지는 못하는 법이에요. 게다가 큰 거짓말을 하려면 큰 기량이 필요하지요."
오카쓰도 날카로운 말을 한다.
"그러니 만일 도련님을 거꾸러뜨릴 만한 큰 거짓말쟁이를 만나시거든 대인을 만났구나 하고 소중히 여기도록 하지요."
만약 거짓말 뒤에 절실한 이유가 숨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이유까지 들어 보면 어떨까요? 특이한 괴담 자리의 듣는 이로서는 더없이 뿌듯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 '눈물점' 중에서, p.27~28

 

미야베 미유키가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그려내는 시대 미스터리물은 벌써 꽤 많이 출간되었다. 미야베 월드 2막으로 출간되는 시리즈가 이번 신작으로 스무 권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흑백의 방'에 이야깃거리를 가진 손님을 초대해 괴담을 들어주는 '미시마야 변조괴담' 시리즈는 <눈물점>으로 여섯 번째 작품이 되었다. 2012년에 출간되었던 <흑백> 이후, <안주>, <피리술사>, <삼귀>, <금빛 눈의 고양이>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12년을 이어오고 있는 시리즈이다. 특히나 이번 신작에서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물이 바뀌면서 새롭게 시리즈가 다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시마초에 자리 잡은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 그곳의 주인장 이헤에의 조카딸인 소녀 오치카가 그 동안 흑백의 방에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했었다. 듣고 버리고, 이야기하고 버리고. 손님은 이름을 대지 않아도 무방하며 세세한 부분을 숨겨도 상관없다는 것이 규칙이다. 한 번에 한 명, 또는 한 무리의 이야기꾼이 가게 안쪽에 있는 흑백의 방에서 독특한 괴담을 풀어낸다. 마주 앉아서 귀를 기울이며 듣는 이도 단 한 명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결코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흑백의 방을 찾아와 괴이하고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이번에 듣는 역할을 맡아 온 오치카가 올해 봄에 시집을 가게 되어, 다음 듣는 이는 이헤에의 차남 도미지로로 바뀌게 되었다. 도미지로는 솔직하고 마음씨가 착하지만, 그 동안은 빈둥빈둥 지내며 부모에게 얹혀사는 한량 같은 인물이었던 터라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이야기는 분위기가 꽤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자부로는 놀라서 숨을 멈추었다. 때마침 안개가 크게 후퇴하자 벚나무 숲이 차례차례 나타난다. 꽃보라가 춤을 춘다. 어제로 매화의 만개는 끝나고, 오늘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다니. 역시 이곳은 이 세상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다르다. 음식이 하룻밤 만에 썩어 버리는 이유도 그 탓이 아닐까. 두려움과 당혹으로 심장이 목구멍을 지나 튀어나올 만큼 세차게 두근거린다. 그런데도 만개한 벚나무 숲의 풍경은 얄미울 정도로 아름다워서 진자부로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곳은 대체 어디일까. 왜 우리는 이처럼 이상한 장소에 갇히고 말았을까.      -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 중에서, p.465~466

 

도미지로를 찾아온 첫 번째 손님은 그의 어릴 적 친구인 하치타로였다. 어린 시절 두부 가게를 운영했던 집이었는데, 지금은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그의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당시 그의 가족은 스물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 팔남매에 각각의 아내와 남편, 약혼자까지 함께 두부 가게 마메겐에서 함께 일하며 먹고 살았던 대가족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첫째 형수가 둘째 사위의 방에서 몰래 나오는 광경이 목격되고, 이후에는 둘째 형수가 셋째 누나의 남편을 덮치는 일이 벌어진다. 이상한 건 정작 당사자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였는데, 첫째 형수와 둘째 형수의 얼굴에 생긴 눈물점이 의혹의 대상이었다. 크기는 점만 한데 사람의 피부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면 얼른 종적을 감추는, 마치 벌레와도 같은 눈물점에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매년 묘지로 조성된 언덕에서 꽃놀이를 하는 것이 관례였던 벚꽃 마을에서 유일하게 여자들만 그 꽃놀이에 갈 수 없었던 사정, 길 위를 달리는 파발꾼을 뒤따라오는 정체 모를 괴이한 존재의 비밀, 가마카쿠시를 당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는 대저택에 갇히게 된 각기 다른 신분의 세 사람에게 벌어진 일까지 이 작품에는 단편 세 작품과 중편 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번 책으로 31화까지 이야기를 했고, 괴담은 99화로 완결할 예정이라고 하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에도 시대물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설레인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호러라는 장르에는 죽음을 의사 체험하게 함으로써 일상의 빛남을 거꾸로 조명하는 효과가 있다고, 자신에게 괴담은 그런 소중한 감정을 환기시키게 만드는 장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미야베 월드 2막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오싹한 괴담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스스로를 용서하고 치유 받게 되거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이해를 받게 되는 따스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안겨준다. 가슴 속에 맺혀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평온을 얻게 되거나,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를 통해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기분이 뭔가 위로도 되고, 일상에 지친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이 시리즈를 이리 오래도록 찾아서 읽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미시마야 시리즈의 다음 편을 이미 올 초부터 월간지에 연재 중이라고 한다. 도미지로가 다음 번에는 또 어떤 손님을 맞아, 어떤 괴담을 듣게 될 지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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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심리의 재구성 - 연쇄살인사건 프로파일러가 들려주는
고준채 지음 / 다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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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규 사건 후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후 6·25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였기 때문에 신고되어 드러난 범죄가 없거나, 도시화가 늦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윤리를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유교 문화도 연쇄살인 같은 잔인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1970년대에 이르자 우리나라에서도 연쇄살인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p.30~31

 

범죄 소설을 좋아해서인지 범죄 수사와 프로파일링 관련 책들도 많이 읽어본 편이다. 프로파일러 표창원, 김경옥, 권일용,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 등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언론에서 자주 보게 되는 이들의 저서는 모두 다 읽어보았으니 말이다. 국내에서 실제 활동하는 프로파일러는 약 40명 내외로 그 수가 매우 제한적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프로파일러 특채 1기로 활동한 프로파일러 고준채 저자가 썼다. 그는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오원춘 살인사건 등 굵직굵직한 강력범죄 사건 수사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프로파일링이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과 심리학적 원리 등을 활용하여 수사관들에게 전문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수사 기법이다. 우리나라 경찰에서 현재 프로파일링의 역할은 수사 방향 제시, 용의자 신문 전략 수립,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 신빙성 평가, 용의자 거주 지역 범위 설정 및 동일 수법 전과자 추출, 피의자 심리 면담 등 수사 실무 전반에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프로파일링이라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벌어진 범죄에 대해 자료를 통해 '사후분석'을 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사건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훼손되지 않은 현장을 관찰하여 현장에 남겨진 물리적 증거뿐 아니라 범인의 행동 흔적을 찾아내고, 범행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여 범죄자를 분석하는 일을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꼭 연쇄살인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폭행이나 상습 절도, 강도 같은 범죄를 우발적으로 일으켜서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경우가 많다. 거짓말을 잘하기 때문에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도 곧바로 다른 거짓말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뻔뻔하게 어떤 말이든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 때문에, 매우 무식한 사람이라도 아주 박식하고 매력적이며 유능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p.167

 

이 책의 서두를 여는 것은 최초의 연쇄살인범 질 드레, 런던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살인광 잭, 영화 '양들의 침묵' 속 버펄로 빌, 미국 역사에서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찰스 린드버그 아들 납치 사건 등 세기의 범죄들이다. 이어지는 것은 그에 못지 않은 우리나라의 강력 범죄 사건들이다. 사건 발생 33년 만에 극적으로 범인을 검거한 화성연쇄살인사건, 올해 12월 출소를 앞두고 있는 조두순 사건과 최근 이슈가 되었던 n번방 등 텔레그램 관련 디지털 범죄들을 짚어본다. 이렇듯 일반적인 정서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게 되면 사회는 그들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로 인해 범죄 심리학이 발달하게 되고, 프로파일링이라는 최첨단 수사 기법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저자가 10여 년 동안 프로파일러로 일하며 겪은 수많은 실제 사건의 사례들을 통해서 범죄 수사 현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흥미로웠다. 끔찍한 범죄 현장을 다니며 마음속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 범죄 현장에 남긴 흔적을 분석해 범행 동기와 수법을 파악하고 그들의 심리를 분석해 다시 같은 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막는 사람들이 바로 프로파일러이다.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범인이 검거되고 사건이 해결되는지 보여주고 있어 범죄 수사에 관심이 많다면 매우 도움이 될 것 같다. 프로파일러뿐 아니라 과학수사요원, 피해자케어요원, 형사, 최면수사관, 진술분석가, 위기협상요원 등 사건 수사를 위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직업들에 대해서도 알려 주고 있어 해당 분야로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정보가 되어 줄 것이다. 끔찍한 범죄 사건에 대한 뉴스 보도를 접하면 생각한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한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이토록 완벽하게 상실할 수 있는가. 왜 이런 사건이 반복될까? 우리는 이러한 괴물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끔찍한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오늘도 현장에 가서 참혹한 죽음과 마주하는 이들의 노고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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