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마지막 서점
매들린 마틴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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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전시 상황이다. 하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폭탄이 떨어진다는 건가? 남자들은 징집될까? 식량도 배급받을 거고? 그레이스는 엄마로부터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와 그때가 얼마나 힘겨운 시대였는지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시절 이야기는 그레이스가 직접 겪어 보지 않아 상상하기 힘들었기에 그저 먼 이야기였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 안갯속 같은 세상이 그들의 새로운 현실로 이제 막 떠오르고 있다.         p.87

 

1939년 8월, 그레이스는 친구인 비브와 런던에에 도착한다. 오랫동안 런던에 가고 싶어 했지만, 전쟁 직전의 런던은 그녀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레이스는 일년 전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자신이 살았던 집이 사실은 삼촌의 소유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결국 그들로부터 쫓겨나다시피 나오게 되었다. 런던에 살고 있는 엄마의 어릴 적 친구인 웨더포드 아주머니가 방을 빌려주겠다고 했고, 더 이상 다른 선택권이 없었던 그레이스는 도시에서의 삶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소개로 런던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되는데, 바로 먼지 자욱한 책방, 프림로즈 힐 서점이었다.

 

사실 그레이스는 책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삼촌 가게에서 일을 할 때는 너무 바빠 책을 볼 여유가 없었고, 그러다 엄마가 병을 앓게 된 이후로는 더 시간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이후 제대로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서점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 게다가 서점 주인인 에번스는 성격이 매우 괴팍했고, 책들로 가득한 서점 내부는 뒤죽박죽 혼돈 상태였다. 책에 대해 알지 못한 탓에 책을 제자리에 꽂는 건 고사하고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 데다, 책꽂이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고 말이다. 게다가 전쟁이 곧 닥칠 텐데, 사람들이 한가하게 책을 사러 올 것인가도 문제였다.

 

 

 

그레이스는 모든 소리를 막고 책을 펼쳐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읽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전쟁 음이 들려왔고, 공군이 독일군을 막아내기 위해 달려들어 쏘아 대는 대공포 소리가 쾅쾅 울렸다. 그 와중에도 멀리서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가 밤보다는 덜 들렸다.
"뭐 읽고 있어요, 아가씨?"
그레이스 옆에 있던 여인이 물었다. 그레이스가 고개를 들자 저번 주에 자신이 달래주었던 젊은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조지 엘리엇이 쓴 <미들마치>예요."          p.266

 

서점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책을 별로 읽지 않았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던 주인공이 등장해서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서점에서 일하는 직원이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해 주기는 커녕, 손님들이 원하는 책을 찾아 주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독서광이나 애서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책에 대해 알아야 서점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편견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점점 사라졌다. 성실함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그레이스는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책을 잘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선물 받은 책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으면서, 점점 더 책의 매력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서점 또한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 점점 변화하기 시작한다. 손님들이 늘어났고, 가게의 매출도 높아졌으며, 무엇보다 그레이스가 다른 사람에게 책을 추천해 줄 정도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전쟁은 점점 더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등화관제와 공습이 이어졌고, 남자들은 징집되었고, 아이들은 안전을 위해 시골로 보내졌다. 무차별한 폭격으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어나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은 계속 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암울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망가진 도시의 삶은 지속되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썼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야기의 힘이었다. 그레이스는 서점에서 낭독을 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모여 들어 이야기를 듣고 위로와 즐거움을 찾았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이겠지만, 이 작품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과 런던 대공습 시기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중에도 문을 열었던 유일한 서점, 그 속에서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사람과 극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치 실화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절망 속에서도 문학이 가지고 있는 힘이 발휘하는 그것, 이야기가 줄 수 있는 위로와 치유의 마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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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의 언어 - 우리 삶에 스며든 51가지 냄새 이야기
주드 스튜어트 지음, 김은영 옮김 / 윌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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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습게도, 독극물 중 많은 것이 아주 좋은 냄새를 풍긴다. 문제는 그 냄새를 음미할 만큼 살아 있기 힘들다는 것이다. 청산가리는 희생자가 자신이 치명적인 독극물을 삼켰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아주 드문 독극물 중 하나다. 살인을 다룬 여러 소설을 살펴 보면 희생자가 비터 아몬드 냄새를 느끼면서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닫고 패닉 상태에 빠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다른 독극물들은 나중에야, 그러니까 살육의 냄새를 한참 풍긴 후에야 자취를 드러낸다.       p.104

 

어른이 된 뒤에 어린 시절로 다시 가본 사람이 있을까?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이 있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릴 때 다니던 학교에 가보면, 당시에 맡았던 바로 그 냄새가 다시 밀려든다. 그리고 그 냄새는 우리를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이렇게 냄새는 기억의 빗장을 풀어 우리가 상상 속에서나 겨우 들어가볼 만한 장면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준다.

 

중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나는 바싹 마르고 케케묵은 종이 냄새, 두텁게 쌓인 먼지 냄새에 특별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주말마다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도서관에 가곤 했다. 시험 공부를 한다며 교과서와 문제집을 잔뜩 가방에 넣어 갔지만, 사실 내가 도서관에 갔던 이유는 책을 마음껏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일 도서관에 머무르면서 공부는 잠깐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 저곳 열람실들을 누비며 다녔다. 특별한 한 시절의 꽤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종일 맡았던 오래된 책 냄새는 언제든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간다. 그야말로 냄새가 과거를 현재의 내 앞에 마법처럼 데려다 놓는 경험인 셈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마들렌이 그런 역할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오래된 책 냄새를 맡고 있으면, 정말로 그 책이 지나온 지리적인 거리의 냄새까지 느껴진다. 누군가가 자신의 방을 가득 채운 책들을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트럭에 싣고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그렇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주인의 마음에 따라 이동하는 동안 책은 나이를 먹어간다. 아주 오래된 책에서는 분해와 마술의 냄새가 걸러져 나온다. 냄새처럼 유령도 입자로 이루어진다. 주변 공기보다 약간 더 밀도가 높게 형성된 구름으로 공중에 떠 있다. 죽은 사람의 몸으로부터든, 살아 있으나 몸에서 이탈한 영혼이든 육체에서 벗어난 영혼은 그렇게 제 몸을 만든다.      p.353

 

이 책은 감각이라는 주제를 탐구해온 저널리스트 주드 스튜어트가 신기하고 경이로운 냄새와 후각의 세계를 탐구하는 이야기이다. 마른 땅의 비 냄새, 금방 꺾은 잔디 냄새, 빨랫줄에 널어 말린 빨래 냄새, 겨울 공기 속 눈 냄새, 바닷물이 풍기는 청량하고 짭짤한 냄새, 금방 깎은 연필에서 나는 은근한 나무 냄새 등 51가지 냄새에 대해 들려준다. 그렇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각종 향들에 대해서, 무심코 지나쳐온 후각의 재발견하고, 우리의 몸은 냄새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감각하는 지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신경과학자, 화학자, 역사가, 심리학자는 물론 원예사, 조향사, 와인 제조가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인터뷰한 여러 학자들의 전문적인 답변과 최신 연구결과까지 담겨 있어 매우 전문적이면서도 냄새들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의미까지 밝혀내고 있어 인문학적으로도 풍부한 내용들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냄새에 대한 표현들이 너무도 생생하고 문학적이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빨랫줄에 널어 밖에서 말린 빨래가 풍기는 냄새는 마치 세상 모든 냄새의 축소판 같고, 마른 땅의 비 냄새는 초록색 풀 냄새와 싱그러운 물방울의 기운과 함께 세상의 공기를 안도감으로 채워주고, 금방 깎은 연필에는 모든 것을 감싸주는 듯한, 은근한 나무 냄새가 있고, 라벤더 향기는 처음에는 꽃잎처럼 하늘거리며 금방 사라질 듯 가냘프고 성급하지만, 강인함을 감추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이 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냄새가 어떻게 공간과 시간을 넘어서 기억 속 장면으로 들어가게 해주는지 궁금하다면, 공기 중을 떠도는 온갖 냄새 분자가 안내하는 새로운 세상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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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어요 스콜라 창작 그림책 31
원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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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려, 온 세상이 백색으로 물들었다. 늦은 밤 눈길 한 켠에 아기 고양이가 누워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기 고양이에게 곰 아저씨가 다가온다. 친절한 웃음을 띤 곰 아저씨는 노랑 호롱불로 어둠을 밝히고, 아기 고양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져 준다.

 

 

곰 아저씨를 만난 아기 고양이는 꿈 같은 길을 떠난다. 구불구불 고개를 넘으며 여기 저기 핀 꽃들도 보고, 울퉁불퉁 들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정다운 친구들도 만나고, 보고 싶은 엄마도 만나 아기 고양이는 행복하다.

 

이루고 싶었던 꿈들을 이룬 아기 고양이는 다시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길 위의 작은 동물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차가운 도로 위 쓸쓸하게 떠나는 동물들이 저 세상으로 가는 꿈길에서는 부디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 그림책을 썼다고 한다. 보살펴 주는 이 하나 없는 길 위의 동물들도 ‘나 여기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 주길, 누군가 자신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 주길 말이다.

 

 

극중 곰 아저씨는 먼 길을 떠나는 아기 고양이의 곁에서 든든한 기둥이 되어 준다. 검푸른 강을 건너고, 사나운 파도를 헤쳐 나갈 때도, 으스스한 도깨비 숲을 지나, 비바람 부는 언덕을 오를 때도 말이다. 아기 고양이가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먼 길을 떠날 때에도 무섭지 않도록 말이다.

 

굵은 선과 거친 느낌의 검은 목탄으로 표현된 그림들은 아기 고양이의 외로운 마음과 혼자라는 쓸쓸함을 은은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서 환상으로 넘어가는 장면에서는 노란색, 분홍색, 하늘색을 써서 아기 고양이의 바람과 희망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마지막 장면은 담담하거, 잔잔하게 여운을 남겨 준다. 먼 길 떠나는 작은 동물들에게, 우리가 곁에 있다고 작은 위로의 마음을 건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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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런던 - <채링 크로스 84번지> 헬레인 한프의 런던 여행
헬레인 한프 지음, 심혜경 옮김 / 에이치비프레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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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름 없는 작가와 서점상이 2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묶었던 책 <채링 크로스 84번지>의 후속편이다. 페이지마다 두근거리는 행복이 묻어나는 너무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헬레인 한프가 되어 설레이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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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13
이디스 해밀턴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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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화된 세상, 전능한 미지의 대상을 향해 온몸이 얼어붙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들, 이것이 그리스 신화의 기적이다. 그리스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숭배되었던 무시무시한 불가해성과, 땅과 공기와 바다를 가득 메운 초자연적 존재의 무서움이 그리스에서는 모두 거부되었다. 신화를 창조해낸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것을 싫어하고 사실적인 것을 좋아했다고 말하는 것이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일부 이야기가 아무리 환상적이라고 해도 이것은 사실이다. 그리스 신화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심지어 매우 황당한 것조차 본질적으로는 합리적이며 실제 세계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19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해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신화인 그리스 로마 신화는 고대인의 상상 세계가 만들어 낸 이야기지만 수천 년이 지난 현대에도 ‘살아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철학자와 역사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미술과 문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으며, 과학기술 분야의 용어가 될 정도로 서양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문학, 역사학, 인류학, 심리학 등 인문학 전반을 포괄하는 인류 문화의 원형이라는 점 때문에 이를 다루고 있는 책들도 정말 너무 많다.

 

 

 

어릴 때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러 버전들 외에 성인이 되어서 제대로 읽은 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 쓴 버전이라 누구나 친근하게, 쉽고, 재미있게 신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버전이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저자가 직접 신화의 무대였던 그리스를 비롯해 유럽 곳곳의 유적지와 박물관을 누비며 찍어온 사진들도 많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윤기 버전으로 읽었던 것도 꽤 오래 전이고 해서 이번에는 20세기 최고의 신화학자이자 스토리텔러인 이디스 해밀턴 버전으로 만나보고 싶었다.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로 나오는 것도 믿음직하고, 초판 발행 80주년 기념으로 컬러 도판 100장이 포함된 전면 개정판이라고는 것도 기대감을 더해 주었다.

 

 

 

마침내 오디세우스 일행이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키르케는 그들을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마법 지식을 총동원했다. 키르케는 그들이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기 위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그런데 키르케가 알려준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그들은 오케아노스 강을 건너 하데스의 어두운 왕국으로 가는 출구가 있는 페르세포네 해안에 배를 대야 한다고 했다. 그런 다음 오디세우스는 저승으로 내려가 테바이의 거룩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영혼을 찾아야 했다.          p.389

 

이디스 해밀턴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고대 원전은 충실하게 연구해 가장 원전을 잘 살린 버전이 아닌가 싶다. 초기 신화 작가들과 마지막 작가들 사이에 약 1,200년이라는 간극이 존재하기에 이 모든 신화를 한 권으로 묶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그 신화들을 어떻게 엄선하고, 원전을 잘 살리느냐가 관건이다. 이디스 해밀턴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자신만의 관점에서 신화를 재해석하면서도, 원전을 생생하게 되살려 우리를 당시의 그리스와 로마 시대로 기꺼이 데려간다. 고대 원전을 비교 분석한 뒤 각 이야기의 서두에 어떤 작가의 작품을 참고했는지와 그 특징과 관전 포인트는 뭔지 설명해두어 객관적으로 신화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도록 해두기도 했다.

 

 

특히나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를 거쳐 20세기까지 수십 명의 예술가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제로 창작한 회화 및 조각 작품 총 100편을 정선해 수록해서 더욱 소장가치가 있다. 사진들이 모두 컬러로 퀄리티가 높은 편이고, 텍스트만으로 보여지지 않는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사진이 보충해주어 더 재미있고 몰입감있게 이야기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기독교의 <성경>과 더불어 서양 문명의 두 기둥을 형성해왔다. 오늘날에도 만화와 공연, 전시, 소설 등으로 끊임없이 모티브를 줘서 재해석되고, 재창조되고 있으니 여전히 그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떤 버전으로 읽어도 가독성이 뛰어나고 흥미진진하다. 인터넷 서점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검색하면, 무려 구백 권이 넘는 책들이 나온다는 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이디스 해밀턴의 버전으로 가장 원전에 가까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나 보자. 특히나 현대 지성 클래식 버전에는 주요 신들과 가문들의 계보를 비롯해 그리스 로마 신들을 그리스식, 로마식, 영어식으로 비교해 정리한 도표를 수록해 그리스 로마 신화 읽기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컬러 도판이 많은데다 글도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될 테니, 아직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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