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 - 자폐인이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가?
조제프 쇼바네크 지음, 이정은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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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를 지닌 아동 대부분은 걸음걸이와 전반적인 행동 방식이 조금 이상하다. 내가 교실에서 선생님의 지시에 자기들과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금세 알아챘다. 아이들은 관찰력이 뛰어난 터라 그런 식으로 빠르게 학급 친구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집단 내에서 누가 인기가 많고 사랑받을지, 누가 외톨이가 될지도 빠삭하게 꿰고 있다. 어른들의 사회도 비슷한데, 단지 '세련된 위선'이 더할 뿐이다. 직접 때리는 대신 배제하는 어떤 말이나 태도를 활용해서 엇비슷한 결과가 생긴다.           p.40

 

이 책의 저자인 조제프 쇼바네크는 아스퍼거증후군으로 만 6세까지 말을 하지 못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지적 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바칼로레아를 통과하고, 독학으로 10개 언어를 배웠으며, 프랑스 명문대 시앙스 포 졸업 후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시련과 실패를 겪으면서 살고 있다. 간단한 시간 약속을 하거나, 친구 모임에 나가는 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고, 사소한 결정을 내리는 데도 여전히 혼란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폐증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장애가 아니라 자신을 설명하는 하나의 특징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자폐를 지닌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과 그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둡거나, 무겁지 않을뿐더러 유머러스 하기까지 하다. 이는 그가 세상을 살아온 태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보여준다. 우리가 쉽게 예상하는 자폐증과 아스퍼거증후군에 대한 상식이라는 것이 실재와는 얼마나 다른 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폐와 자폐인에 대해 거의 백지상태인 것이 맞다. 다만, 우리의 편견이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게 만들고, 추측하고, 단정짓게 만드는 것뿐이다. 나 역시 자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다만 자폐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식으로 말을 할 지 매체에서 보아온 상황들로 그저 예상할 뿐이다. 그러니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내면세계를 상상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편견을 깨고, 우리가 모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말이다.

 

 

 

어느 날 강연을 마쳤는데, 한 부인이 무척 놀란 표정으로 내가 웃을 줄 몰라야 하는데 왜 농담을 하느냐고 물었다. 어떤 어머니는 농담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되는 주제가 있고, 자폐증을 이야기하며 웃는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잊게 만든다며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인간이 웃는 존재라고 믿는다. 내가 운 좋게 교류할 수 있었던 자폐를 지닌 일부 성인들로부터 배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아마도 그들의 풍부한 유머일 것이다. 물론 그런 면모는 잘 들여다보고 발견해내야 한다. 그들의 유머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p.296

 

이 책의 서문을 쓴 영화 제작자 소피 레빌은 저자를 처음 만나면서 선입견이 흔들렸다고 말하며 그의 외모를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팀버튼의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 기이한 외모의 꺽다리 사내'가 느릿느릿한 목소리에 억양은 이국적이었지만 정확한 단어를 사용했으며 재치가 돋보였다고 말이다. 그는 청중들이 간간이 웃음을 터뜨릴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며 강연을 하는 중이었다. 조제프 쇼바네크는 자신의 장애를 하소연하지 않고, 억울해 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결코 잊지 않으면서 성공의 수단으로 삼았다. 물론 수많은 자폐 아동들이 만 6세 전에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고 평생 침묵이라는 감옥에 갇혀 지내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와 같은 사례가 앞으로 더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어눌해 보이는 말투와 여느 사람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기 때문에 자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사회 속에서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폐인 스스로 자신이 세상의 어떤 틀에도 들어맞지 않음을 인지하고, 그 모습 그대로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세상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있어서 자폐증은 자기 키가 195센티미터이고, 체코 출신 프랑스인이라는 것처럼 여러 특징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어떤 한 가지 설명에 가둘 수 없는 존재이고, 각각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고, 각자의 독특한 점 그대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폐를 지녔든 아니든, 혹은 특정한 약점이 있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자신만의 모습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자폐증'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자폐증상을 겪고 있는 이의 내면 세계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인생을 긍정하는 그의 삶의 태도에 감탄했고,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자폐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흥미로운 관점을 통해서 인간은 하나의 설명으로 가둘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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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이지민 지음 / 정은문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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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자리한 책장을 흘깃 보니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책들로 빼곡하다. 주중 낮이라 비교적 한산하지만 전화벨 소리가 책방 안을 가득 메운다. 책을 문의하는 전화, 주문하는 전화다. 책장이여 더 꽉 차기를, 전화벨이여 계속해서 울리기를,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동네 아이들을 위해 스토리타임을 진행하고 핼러윈에 캔디를 나눠주는 책방이라면, 이 거리에서 절대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 엄마인 나는 아이의 추억을 지켜주고 싶다. 그러니 책방은 계속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건 나를 포함한 동네 사람들의 몫이다.        p.31~32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인터넷 서점에서 클릭 한 번이면 바로 책이 내 집 현관 앞으로 오는 시대에 굳이 수고롭게 동네 책방을 찾아 가는 이유가 뭘까.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동네 책방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그곳만의 큐레이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형서점이 베스트셀러나 신간 위주로 진열을 할 때, 이들 독립서점들은 장소가 협소하고 반품도 번거롭거나 어렵기 때문에, 서점의 개성을 보여주는 몇 종에 구비 도서를 한정시키면서 자연스럽게 큐레이션을 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방들이 적자에 허덕이며 생계 유지를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책방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테고 말이다. 그런데 브루클린의 동네책방들은 커피를 팔지 않고도 어떻게 10년, 30년, 심지어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냈을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엘크 머리를 한 여자>, <사랑에 관한 오해>, <마이 시스터즈 키퍼>, <영원히 사울 레이터>, <탤런트 코드>등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겨온 이지민 번역가는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브루클린의 동네책방들을 찾아가 물어보기로 했다. 현재 뉴욕 브루클린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저자는 한국에 소개할 만한 책들을 둘러 본다는 핑계로 동네책방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책 판매에만 힘 쏟는 브루클린 책방과 한국 책방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우리에게는 없는 그들만의 전략은 무엇일지 궁금해진 것이다.

 

 

 

자신만의 색깔로 채운 자신만의 책방을 갖는다는 건 정말 부러운 일이다. 언젠가 책방을 열고 싶은 꿈이 있지만 용기가 없는 나는 이 꿈을 늘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채 헌책방을 찾는 것으로 욕망을 대신 채우고 있다. 헌책이 간직한 오래됨이 좋다. 나보다 한참 전에 혹은 나와 같은 해에 이 세상에 태어난 책을 만나면 내가 지나온 40년과 이 책이 거쳐 온 40년이 겹쳐진다. 이 책에는 어떠한 시간이 덧입혀지고 누구의 흔적이 녹아 있을까, 지금 내 손에 들리기까지 이 책은 어떠한 세월을 보내왔을까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p.228

 

일요일마다 동네 아이들을 위한 스토리타임을 열고, 핼러윈에는 핼러윈 복장을 한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캔디를 나눠주는 테라스 북스, 동네 작가들이 주축이 되는 행사가 1년 내내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한 파워하우스 온 에잇스, 호러 소설가 피터 스트라우브의 딸이자 역시 수많은 책을 출간한 작가인 엠마 스트라우브가 운영하는 북스 아 매직 등 이 책에는 브루클린의 동네 책방 열한 곳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단순히 책방에 대한 정보와 공간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과 그곳에서 만났던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져 있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스스로에 대해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는 엄마는 아니었지만, 책방에 갈 때마다 아이를 부지런히 데리고 다녔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기특하게도 아이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랐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책방 탐방기는 모두 저자와 아이가 함께 했다. 그래서 책방에서 발견한 책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어른들을 위한 책과 아이들을 위한 책이 함께 소개된다.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갈 경우, 대부분 내가 책을 골라 주는 편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가 스스로 책을 고르게 하는 것이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직접 고르고, 실패하는 과정이 쌓여서 자신만의 안목이 생길 테고, 그 모든 과정이 경험이 되어 책에 대한 애정도 쌓이게 될 테니 말이다.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동네책방들이 무너지지 않고 계속 그들만의 역사를 유지할 수 있기를, 책을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간절히 바래 본다.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한다면, 책을 통해서 위로 받고 공감하는 순간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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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나고 신기한 동물들 - 우리가 꼭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마틴 브라운 지음, 김아림 옮김 / 작은우주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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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앗! 시리즈' 그림 작가인 마틴 브라운이 평생 동안의 경험과 지식 정보를 모아 쓰고, 그리고 정리해서 낸 동물 도감이다. 이 책에 평범하고, 흔한 동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생전 처음 보는, 여태 잘 모르고 살았던, 별나고 신기한 동물들만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우리가 꼭 알아 두고 관심을 주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멸종 위기 동물들이다.

 

우리가 꼭 알아 두고 관심을 주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초등학교 과학 교과서 '3-1 3단원 동물의 한살이', '3-2 1단원 동물의 생활' 단원과 연계 가능하니, 아이들의 학습용 도감으로도 좋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크거나 작고, 흔하거나 희귀한 수많은 동물이 있지만, 대부분의 동물 책에서는 그 중 아주 작은 일부만 볼 수 있다. 하마나 곰, 호랑이 등 우리가 흔하게 봤던, 그래서 잘 알고 있는 동물들이 아닌 희귀하고 신기한 동물을 다루는 색다른 동물 책이 궁금했다면 이 책이 제격이다.

 

이 책에는 판다나 코끼리, 얼룩말은 등장하지 않으니 말이다. 대신 이 책은 우리가 잘 모르는, 덜 유명한 동물들을 소개해준다.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에 사는 이빨이 50개도 넘는 주머니 개미핥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개미'가 아니라 '흰개미'만 먹는다. 다른 동물을 물어 독액을 퍼뜨리는 얼마 안 되는 포유류 가운데 하나인 쿠바솔레노돈은 아주 희귀한 동물이다. 분홍색 갑옷을 입고 땅을 파는 작은 동물인 애기아르마딜로는 갑옷이 연한 파스텔 색이라 모래투성이 집에서 쉽게 몸을 숨길 수 있다. 스컹크 만큼이나 지독한 냄새가 나는 화합물을 뿌릴 수 있는 아프피카의 맹수는 조릴라라는 육식 동물이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서부의 사람들 손이 닿지 않은 외진 열대 우림 속 높은 나무 위에 사는 은색긴팔원숭이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긴팔원숭이 종의 하나이다.

 

이렇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멸종 위기 동물 20여 마리는 마틴 브라운의 그림 덕분에 더 생생하게 기억된다. 특징을 잘 짚어내면서도 코믹하고, 귀엽게 보여주고 있어 아이들의 동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멸종 위기 동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멸종 위기 동물들 중에는 잘 알려진 유명한 동물들도 많다. 대부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여 보호하고 지키려는 노력을 한다는 말이다. 그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멸종 위기 동물들은 더 쉽게, 더 빨리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니 지속 가능한 미래의 지구를 위해서라도 이 책을 통해 잘 몰랐던 동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지식 정보 내용을 재미있는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데 뛰어난 마틴 브라운은 특히 덜 알려진 별나고 신기한 동물을 좋아했다. 그가 직접 쓰고 그린 만화처럼 깔깔대며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동물 도감책인 <별나고 신기한 동물들>은 현재 인기에 힘 입어 세 권의 시리즈가 나온 상태라고 한다. 국내에도 시리즈가 더 소개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통해 멸종 위기 동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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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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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순종적인 아내, 어머니, 집 안의 천사, 심지어 착한 독신 이모라는 인습적 역할의 감수를 요구받았지만, 이 요구가 더 많은 (방랑하고 배우고 쓰고 자유롭게 사랑하며 현재 상황에 도전하는) 자유를 향한 욕망과 나란히 함께하기는 어려웠다. 우리 모두가 그럴 수밖에 없듯이, 이 작가들은 자연의 시간이라는 신화에 갇힌 채 자아분열을 일으켜 때때로 광기를 경험하거나 미친 여자를 만들어냈다.         p.13

 

여성 작가의 좌표를 내리그은 최초의 이정표, 페미니즘 비평의 시대를 연 최초의 책, 문학 읽기의 새로운 길을 연 현대의 고전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미국 출간 43년 만에, 한국어판 출간 13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제인 오스틴에서 에밀리 디킨슨까지, 존 밀턴에서 월트 휘트먼까지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는 키워드로 재구성한 영미 여성 문학사! 너무너무 기대된다! ‘다락방의 미친 독자’ 라는 귀여운 이름의 서포터즈로 한 달 동안 이 책을 만나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출발점은 두 저자가 대학에서 함께 가르친 여성문학 수업이었다. 영문학과 교수로 그들은 제인 오스틴과 샬럿 브론테부터 에밀리 디킨슨,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에 이르는 여성들의 작품을 읽으며, 작품들이 지리적 역사적 심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주제와 이미지가 일관적이라는 데 놀랐다고 한다. 실제로 극단적으로 다른 장르에 속하는 여성 문학을 연구할 때도 여성문학의 고유한 전통이라 할 법한 것을 발견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19세기 여성문학을 정밀하게 연구했다. 저자들은 왜 19세기를 파고들게 되었을까? 19세기는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 에밀리 디킨슨 등 거인 같은 작가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였으며, 여성이 작가가 된다는 것이 변칙적이거나 이례적이지 않은 최초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글을 쓰고 읽고 생각하는 일이란 본래 남성의 활동이라고 생각해왔던 부권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아가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여성을 ‘천사’와 ‘괴물’이라는 극단적인 이미지 안에 가두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이러한 이미지가 여성의 현실적인 삶뿐만 아니라, 여성이 펜을 들게 된 것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3부에서는 밀턴의 악령에서 시작해 메리 셸리,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당대에 통속 소설로 마크 트웨인을 비롯한 남성 작가들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D.H. 로런스는 오스틴에 대해 '매우 불쾌하고 형편없고 인색하고 속물적이라는 의미에서 영국적'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제인 오스틴은 '자신이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에 대한 불편함, 특히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협소한 위치에 대한 불만, 성적 착취의 경제학'에 대해 끈질기게 보여주었다. 3부에 접어들면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여자를 기껏해야 남에게 봉사하는 이차적 존재, 아이를 낳거나 아담의 사려 깊은 안내에 따라 나뭇가지를 다듬는 참회하는 이브로 여겼던 밀턴의 악령이 여성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 평론가들은 <제인 에어>의 조악함이나 섹슈얼리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기보다 (그들은 이 책에 나오는 이런 요소를 싫어했다) 사회조직과 관습, 그리고 사회규범을 거부하는 이 작품의 '반기독교성' (간단히 말해서 이 작품의 반항적인 페미니즘)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충분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평론가들은 로체스터의 거만한 바이런적인 성적 에너지 때문이 아니라 제인의 바이런적인 자존심과 열정 때문에,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사이에 일어난 반사회적인 성적 동요 때문이 아니라 여자 주인공이 사회적 운명에 순종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p.600

 

4부에서는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 샬럿 브론테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5부에서는 조지 엘리엇의 작품들을 분석해본다. 샬럿 브론테는 19세기 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집과 '여성의' 역할에 갇힌 채 느끼는 감정에 대해, 그리고 그런 집과 역할에서 도망치고 싶은 자신들의 열렬한 욕망에 대해 강박적으로 글을 썼던 방식, 대개 (은유적으로) '무아지경' 상태라고 부를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작가였다. 샬럿 브론테의 소설은 여성문학에 나타난 폐쇄라는 문학적 형상과 분신 사용의 관련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19세기 중반의 여성 작가들은 천사 같은 순종과 괴물 같은 자기주장이라는 쌍둥이 같은 유혹에 붙잡혀 있는 가운데 남성 지배 문화에서 문제적인 여성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는데, 가장 두드러진 작가 중에 영국의 조지 엘리엇이 있다. 조지 엘리엇의 작품은 <벗겨진 베일> 밖에 만나보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5부가 이 작품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해서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분량이 너무 압도적이라 <미들마치>를 아직 읽어 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다시 한번 도전 욕구가 샘솟는 중이다.

 

 

6부에서는 에밀리 디킨슨의 삶과 작품을 중심으로 19세기 여성 시인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의 동시대인이며 유사한 방식으로 우상 파괴적이었던 두 미국 시인, 남성 시인 윌트 휘트먼과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와 작품을 비교해보는 대목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제인 에어>의 샬럿 브론테, <폭풍의 언덩>의 에밀리 브론테, <미들마치>의 조지 엘리엇에 이르는 18세기말과 19세기의 거의 모든 여성 작가가 '미친 여자'라는 씁쓸한 자화상을 자기 소설의 다락방에 은닉시켰던 반면, 에밀리 디킨슨은 스스로 미친 여자가 되었다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디킨슨은 (의도적으로 미친 여자로 분함으로써) 아이러니하게 미친 여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 집의 방에 갇힌 무력한 광장공포증 환자가 됨으로써) 정말로 미친 여자가 되었으니, 그녀의 삶 자체가 일종의 소설이고 이야기시였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이다.

 

자, 이렇게 해서 천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4주에 걸쳐서 조금씩 읽어 보았다. 정말 벽돌 두께의 페이지 때문에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매주 정해진 분량을 읽어 나갔던 탓에 완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혹시나 이 작품이 궁금하지만 엄청난 양의 두께로 인해 선뜻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망설임을 접어 두고 꼭 도전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영미문학 담론에서 고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동시에 감금, 폐쇄, 거식증, 가스라이팅 등 2022년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꼭 읽어야만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면,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미친' 분신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에밀리 디킨슨은 '나는 아무도 아니다!'라는 말을 했었지만, 우리는 결코 아무도 아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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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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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 마법소녀야. 콤팩트를 이용해서 변신도 하고, 요술봉으로 마법도 쓸 수 있어."
"어떤 마법인데?"
"여러 가지! 제일 멋진 건 적을 쓰러뜨리는 마법이야."
"적?"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적이 아주 많아. 나쁜 마녀나 괴물 같은 거. 난 언제나 적을 해치우며 지구를 지키고 있어."           p.10

 

초등학교 5학년인 나쓰키에게는 가족들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 바로 요술봉과 변신 콤팩트, 고슴도치 인형 퓨트와 함께 지구의 위기를 지키는 '마법소녀'라는 점이다. 유일하게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사촌인 유우뿐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는 아키시나의 웅장한 산속에 있는 집에서 매년 백중절에만 만날 수 있었지만 말이다. 함께 여름방학을 보내고 나면 일 년간 떨어져 있어야 했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유우와는 비밀 연인 사이이기도 하다. 나쓰키의 엄마는 유난스러운 성격의 모범생 언니 비위 맞추기에만 급급하고, 아빠는 모든 가정사에 그저 방관할 뿐이다. 나쓰키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낸다. 그래서 나쓰키는 가끔 '사라지기' 마법을 쓴다. 진짜 사라지는 건 아니고, 숨을 죽이고 기척을 숨긴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집 안의 쓰레기통이라고 여기면서 사는 삶은 어떤 걸까.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불쾌한 감정이 부풀어 오르면 나쓰키에게 고스란히 표출해버린다. 엄마가 다른 사람에게 나쓰키의 험담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너무도 익숙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상한 건 가족들의 태도만이 아니었다.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와 닮아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학원 선생님은 아무도 모르게 나쓰키를 불러 쉽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일삼는다. 그게 성적인 학대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말이다. 그렇게 가족과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오랜 세월 언어적으로, 물리적으로 학대를 당해온 나쓰키는 스스로를 포하피핀포보피아별의 마법소녀라고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 마법을 써야 한다. 온몸을 텅 비우고 복종해야 한다... 엄마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슬리퍼로 내 얼굴을, 머리를, 목을, 등을 내리쳤다. 나는 마음의 스위치가 꺼진 상태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숨을 죽이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땅에 묻힌 타임캡슐처럼 나를 껍데기에 가두고, 묵묵히 견디며 목숨을 부지해 미래로 보낸다.
얼마나 먼 미래까지 목숨을 보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p.66

 

이 작품은 무라타 사야카가 <편의점 인간>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후 단 일 년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요술봉과 달콤한 젤리 등 아기자기하고 화사한 표지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스로를 마법소녀라고 생각하는 사춘기 소녀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단순히 아름답고, 상상력이 지나쳐 현실과 환상을 넘나 드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충격을 안겨주는 대단한 문제작이었다. 폭력적인 상황에 처할 때마다 유체이탈 마법을 써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녀의 마음이 안타깝게 느껴지다가도, 정상을 약간 벗어난 것 같은 소녀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지켜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파란 덩어리의 인간, 금빛 액체로 된 피 등 현실이 끔찍할 수록 구현되는 이미지는 점점 더 동화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소녀가 어른이 된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가 더 분량도 많고, 더 파격적이고, 충격적이라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독보적이고, 도발적인 상상력의 끝은 어디인가 궁금할 만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충격이 더해가는 그런 작품이었다. 세상의 상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비정상과 정상의 경계에 대한 해석은 놀랍게도 현실과 맞닿아 있다. 세상을 번식을 위한 '인간 공장'으로 인식하는 것이 근미래적이라거나, SF적인 설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아무런 대책 없이 저출생을 지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떠올려본다면 소설 속 이야기를 허구의 그것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금기를 넘어서 미친 짓처럼 보이지만, 사실 점점 정상에서 벗어나 이상해지는 이들의 행동 또한 모두 사회가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미친 것은 이들인가, 사회인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달콤한 이미지 뒤에 숨겨져 있는 파괴적인 상상력의 끝판왕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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