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복순이
김란 지음 / 소미아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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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남방큰돌고래들이 하루종일 관광선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돌고래들을 따라다니며 돌고래들의 먹이활동 시간과 휴식 시간을 단축시키고, 무리를 떼어놓아 문제가 된 것이다. 함께 실린 사진 속에는 등지느러미가 잘린 돌고래의 사진이 있어 더 마음이 아팠다. 왜 사람들은 돌고래들이 마음껏 넓은 바다를 헤엄치며 뛰노는 것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일까. 해양보호생물로 지정이 되어 있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번에 만난 그림책은 제주에서 태어나 마을 앞바다에서 뛰노는 남방큰돌고래를 보면서 자란 작가가 실제 일어난 ‘돌고래 불법 포획 사건’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고향 앞바다에서 잡혀 좁은 수족관에 갇힌 채 4년 동안 강제로 돌고래쇼를 하던 돌고래 제돌이가 고향 바다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 작가가 그 기적같은 이야기를 작품으로 쓰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제주 남방돌고래뿐만 아니라 아직도 좁은 수족관에 갇혀서 묘기를 부려야 하는 다른 모든 돌고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주 섬 바다에는 남방큰돌고래 마을이 있었다. 입이 엇갈린 채 태어난 복순이를 비롯해 돌고래들은 마음껏 헤엄치고 신나게 놀았다. 오월의 햇살에 바다가 반짝반짝 빛나던 날이었다. 복순이는 제돌이, 태산이랑 마을 앞바다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고등어 떼가 몰려왔고, 신이 난 세 돌고래는 제일 좋아하는 고등어를 빠르게 따라갔다. 고기잡이배를 조심하라는 어른들의 말은 잊은 채 말이다. 결국 복순이와 친구들은 어두컴컴하고 좁은 수족관에 갇히게 된다.

 

사람들은 돌고래들을 서울에 있는 돌고래쇼장으로 끌고 갔고, 그들은 억지로 돌고래쇼를 위해 동원되었다. 그렇게 죽은 물고기를 먹이로 먹고,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좁은 수족관에 갇힌 채로 몇 년 동안이나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일부 사람들이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을 시작한다. 과연 복순이와 친구들은 다시 푸른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물고기를 먹고 살았던 돌고래들이 썩은 냄새가 나는 죽은 물고기를 먹으며,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대신 좁은 수족관에 갇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채로 고통스럽게 살게 된 것이다. 다행히 돌고래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본 환경 운동가의 1인 시위를 통해서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한 운동이 시작된다. 이후 ‘핫핑크돌핀스’라는 돌고래 환경 단체가 만들어졌고 마침내 2012년 3월, 서울시는 서울대공원의 남방큰돌고래를 바다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돌고래들은 야생 적응 훈련을 거쳐 제주 앞바다의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복순이와 태산이까지 붙잡힌 지 6년 만에 바다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뭉클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동물권에 대해 배우게 될 것이다. 해양 생태와 동물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여 보호하고 지키려는 노력을 할수록 동물들이 학대 당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돌고래 복순이를 통해 아이에게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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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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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대부분 날 처음 보죠. 난 워싱턴 포 경사입니다. 다들 내가 약자를 괴롭히는 인간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두는 게 좋을 겁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용납하지 않았다. 이름도 이상한 데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완전히 괴짜라는, 이 치명적인 삼중주 덕분에 그는 학교에서 단골로 괴롭힘을 당했다. 오래지 않아, 포는 살아남으려면 자기를 괴롭히는 녀석이 누가 됐건 그놈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놈에게 알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쳤다.        p.78

 

영국 컴브리아 카운티에 최초의 연쇄살인범이 등장한다. 선사시대 유물인 '환상열석' 중 몇 곳에서 불에 타 죽은 시신들이 발견된 것이다. 언론에서는 그를 '이멀레이션맨'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한편 수사에 참여한 중범죄분석섹션에서는 세 번째 피해자를 조사하던 중 정직된 경관 '워싱턴 포'의 이름이 시신에 새겨져 있다는 것울 알게 된다. 섹션은 포가 다음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그의 업무 복귀를 결정하고, 그렇게 워싱턴 포와 데이터 분석가 틸리 브래드쇼가 만나게 된다.

 

이멀레이션 맨은 피해자의 가슴에 왜 '워싱턴 포'라는 두 단어를 새겨 넣은 것일까. 이름과 함께 새겨진 숫자 5 때문에 그들은 포가 다섯 번째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발견된 것은 셋이었으니, 이멀레이션 맨이 네 번째 피해자를 고르는 동안, 그가 다섯에 도달하기 전에 찾아야만 했다. 컴브리아 지역은 영국에서 환상열석, 선돌, 헨지, 거석, 고분이 가장 밀집된 곳이었다. 그 돌들이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학계에서는 다양한 설이 있었지만, 그것이 희생 제의를 위해 쓰인 적은 없었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그렇다면 이멀레이션 맨은 굳이 왜 그런 장소를 골라 피해자들을 불에 태워 죽인 것일까. 피해자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전부 같은 나이대에 다들 부유했다는 것뿐이었다. 서로 알고 지냈다는 증거는 없었다. 수사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포에게 악몽이 다시 돌아왔다. 너무 똑똑하고 체계적이어서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은 치밀한 연쇄살인범은 곧 네 번째 피해자를 선보이는데, 사건의 흔적을 열심히 뒤쫓지만 여전히 포가 이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불투명했다.

 

 

 

"우리가 함께라면 얼마나 무시무시했을지 생각해봐. 네 친구들을 위해 정의를 구현했을 거야. 놈들한테 가망 따위 없었을 거라고."
"정의 때문에 하는 게 아냐, 포. 정의를 위한 일이었던 적은 한순간도 없어. 이건 복수야."
복수.... 포는 중국의 격언이 떠올랐다. "복수를 추구하는 자는 무덤을 두 개 파야 한다. 하나는 적을 위해 하나는 자신을 위해." 포는 남은 이야기를 거의 짐작할 수 있었다.         p.421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M. W. 크레이븐은 이 작품으로 '골드 대거상'을 수상했다. 이어지는 시리즈 2편과 3편 모두 골드 대거상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이 시리즈는 현재 5권까지 출간되었고, 곧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밀레니엄>을 넘어설 강력한 수사 듀오의 탄생이다. 데이터 분석가인 틸리 브래드쇼는 뛰어난 지능에 박사학위가 두 개 있었고,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연구소 회원일 정도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해 어딜가나 외톨이다. 브래드 쇼는 뛰어난 직관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관이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때문에 동료들과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틸리와 포는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각자 다른 이유로 친구가 없었고 두 사람은 이상하게 마음이 잘 맞았고, 그렇게 색다른 수사 듀오가 탄생하게 된다.

 

특히나 틸리라는 여성 캐릭터는 <밀레니엄>의 리스베트를 떠올리게 할만큼 아이큐가 뛰어난 천재인데,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인생의 기술을 전혀 갖고 있지 못했다. 한 번도 현실 세계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초 규범을 전혀 체득하지 못했고,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그대로 말을 해 상대를 당황시키며, 소통에 너무 서툴러 한 번도 친구라는 존재를 가져보지 못했다. 어리숙하게 보일 정도로 순수하지만, 의외로 베짱은 두둑하고, 통계 분석과 수학에서는 놀라운 능력을 선보인다. 그 어떤 작품에서도 만난 적 없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라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서의 활약이 정말 기대된다. 그리고 포가 자신의 직관을 이용해 수사하는 과정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는데, 작가가 차곡차곡 쌓아온 단서들이 퍼즐 조각들이 되어 하나로 맞춰지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다. 작고, 겉보기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사건이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서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너무도 짜임새있게 그려내고 있어 왜 3회 연속으로 골드 대거상 후보에 선정되었는지 저절로 수긍이 되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이멀레이션맨'이 아니라 '퍼핏 쇼'인 이유에 대해서는 후반부에 가서야 알게 되는데, 탄탄한 서사와 겹겹의 반전, 그리고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이 그 과정을 더욱 흡입력있게 만들어 준다.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가 더 기대되는 작품으로, 역시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원서부터 주문했다. 다음 작품도 어서 빨리 만나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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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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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와 시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 질문이 까다로운 정치적 쟁점이었다고 생각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우리가 임금을 놓고 논쟁을 벌일 때는 주로 최저임금이나 일자리에 대한 접근성, 임금 격차나 작업장의 안전성 등이 쟁점이다. 오늘날 임금노동이라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는 많은 미국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에 따르면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지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p.96

 

마이클 샌델의 신작은 오래 전에 국내에 출간되었던 <민주주의의 불만>의 개정판이다. 표지만 갈아 입고 다시 나온 것은 아니고, 개정판 서문에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내용이 추가되었으니 업그레이드 된 개정판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이 책의 초판이 나왔던 1996년만 하더라도 냉전이 끝나고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은 어떠한가. 클린턴과 부시, 오바마와 트럼프 시대를 거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어지는 시대를 지나오며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먼저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살펴본다.

 

우선, 특정한 시민적 이상과 가능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이자, 사유화되고 양극화된 정치적 지평을 넘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짚어 본다. 노예제도, 공공 영역에서의 여성 배제, 재산에 따른 투표권 결정, 기존의 사회 구성원이 이민자들에게 드러내는 적개심 등으로 점철돼 있었던 공화주의 전통에서 시작해, 미국의 정치 전통을 사례로 해석하고 설명한다. 공화국 초기의 경제 성장과 분배 정의에 대해, 시민적 덕목과 공공선에 대해, 그리고 시민의식과 경제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이야기한다. 임금노동을 둘러싼 논쟁, 노예제와 관련된 투쟁은 점점 복잡해졌으며, 자발주의적 자유노동관은 산업 자본주의가 정당성을 주장할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하지만 20세기가 시작됐을 때도 절차적 공화주의는 여전히 미완성 단계였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불편하게 공존했다. 자본주의는 개인적 이익을 위한 생산적 활동의 조직화를 추구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치 참여를 위한 권한의 부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두 개념을 조화롭게 만들겠다는 의도로 등장했다. 시대에 따라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주로 자본가들의 정치적 지배력 행사를 막으면서 노동자를 착취하고 시민으로서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자본주의의 경향성에 저항한다는 뜻이었다.        p.319

 

자유주의와 케인스혁명, 뉴딜정책, 인플레이션과 절차적 공화주의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 가다 보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불편하게 공존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십 년에 걸쳐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쇠퇴하고 경제 성장 및 분배 정의의 정치경제학으로 대체가 된다. 이렇게 해서 시민의식 차원이 아니라 소비자주의 차원의 개념으로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이후 20년 동안 민주주의를 괴롭혔던 불만은 한층 더 예리해졌고, 사회적 결속력은 철저하게 무너졌으며 좌절감은 한층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2016년에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에 줄곧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수십 년 동안 쌓인 원한과 분노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민주주의란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가치와 시스템으로 자리잡았지만, 과연 국민을 위한 정부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지는 고민해 볼 문제이다. 마이클 샌델은 우리가 알고 있던 민주주의 또 다른 모습을 마주보게 해준다.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맞서 제대로 된 문제 제기를 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 등의 가치를 비롯한 덕목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사실 이 책은 마이클 샌델의 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공정하다는 착각> 등의 작품에 비해 읽기 수월하진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통찰뿐만 아니라 그동안 저자가 다뤄왔던 다양한 주제들이 총집결된 책이기 때문에 한 번쯤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위기의 현재를 통해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떠한지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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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인간
테드 휴즈 지음, 크리스 몰드 그림, 조호근 옮김 / 시공주니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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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집보다 더 커다란 무쇠인간이 절벽 꼭대기에 서 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무도 모르는 무쇠인간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등장했다. 무쇠인간은 절벽 위에서 처음 보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돌풍에 등이 밀려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계속 부딪치며 굴러 떨어지다 보니, 무쇠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무쇠 팔이 떨어지고, 무쇠 귀가 떨어지고, 커다란 머리가 떨어지며 결국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주인공이 첫 등장하자마자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다니..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초반부터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1968년에 발표된 영국 계관 시인 테드 휴즈의 고전 명작이다. 크리스 몰드의 일러스트로 새롭게 탄생한 작품으로 2020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 최종 후보작이 되었다. 50년이 지나서야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지만, 크리스 몰드의 일러스트 덕분인지 전혀 시간의 갭을 느낄 수 없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무쇠 인간이 보통 SF 작품에서 묘사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로봇이라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그림이 보여주는 느낌이 너무도 강렬해서, 일러스트 없이 출간되었던 원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몸을 되찾은 무쇠인간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오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무쇠인간의 모습만 보고 무턱대고 겁을 먹고는 도망가버린다. 그리고 무쇠인간이 기계들을 전부 가져가버리자 커다란 구덩이를 파는 것으로 대책을 세운다. 어린 소년 호가스의 재치로 무쇠인간은 함정에 빠지게 되고, 흙으로 가득 찬 구덩이를 보며 호가스는 문득 미안함을 느낀다.

 

시간이 좀 더 지난 뒤에 무쇠인간이 스스로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게 되자, 호가스는 미안한 마음에 무쇠인간이 먹을 수 있는 고철을 주겠다고 그를 고철들을 모아둔 곳으로 안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무쇠인간과 인간들 앞에 우주에서 어마어마하게 끔찍한 용이 등장한다. 무시무시한 우주박쥐천사용은 사람들을 위협했고, 세상 사람들은 괴물에 전쟁을 선포하고 공격을 하지만, 소용이 없다. 결국 무쇠인간이 사람들을 도와 우주 괴물을 상대하게 되는데, 그는 괴물을 물리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이 작품은 무쇠인간이 처음 출현해, 부서졌다가 다시 재탄생하고, 인간세상에 와서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다, 우주 괴물과 맞서 싸우며 결국 인간과 공존하게 되는 다섯 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원작이 시인이 쓴 동화라서 소리 내어 읽기 좋은 문장들이고, 운율에 맞추어진 시어를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무조건 배척부터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이질적인 존재가 공동체에서 소통과 이해를 통해 함께 살아가게 되는 과정에 대한 작가의 메세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는 수십 년 전에 쓰인 이 작품을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크리스 몰드가 만들어낸 무쇠 인간의 모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봇의 모습과 다른 듯 하면서도 어딘가 친근함을 준다. 처음에는 낯선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모습에 익숙해지게 되는 마력이 있다. 세대를 뛰어 넘어 사랑 받는 고전 명작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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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크림소다
누카가 미오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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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도 빨간색도 아닌 하얀색 크림소다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와카나 씨는 자기가 읽던 문고본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유리컵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려 테이블의 나뭇결 위에 떨어졌다. 아이스크림을 맨 처음에 컵에 넣고, 그 위에 아무 시럽도 안 들어간 투명한 소다수를 부으면 아이스크림에서 거품이 나면서 하얀색 크림소다가 되는 건가 보다. 아래에서 위로 꾸불꾸불 올라오는 형태인 유리컵.  그 윤곽을 따라서 투명함과 순백 사이의 그러데이션이 완성된다.      p.54

 

크림소다는 탄산수나 소다수 위에 아이스크림이나 셔벗을 올려 먹는 음료를 말한다. 오래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초록색 메론소다, 파란색 크림소다 음료를 먹어 봤는데, 선명한 색감의 음료 위에 아이스크림과 체리가 올려져 있는 비주얼이 너무 예쁘면서도 뭔가 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았던 음료와 아이스크림의 조합은 예상 외로 먹을 만했고, 상큼함과 부드러움의 조합이 재미있었다.

 

이 책의 제목에 '크림소다'가 들어가는데, 표지 전체 이미지에서도 하늘을 향해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가는 소다수 같은 물방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물의 냄새와 차가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은 분위기가 청춘의 모습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에 합격해 도쿄로 상경한 도모치카는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어머니의 제안을 거절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달에 월급이 들어올 때까지 한 달 동안 전혀 돈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기숙사에서 함께 사는 와카나 선배가 선뜻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면서 두 사람은 친해진다. 도모치카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 싫다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 성숙한 어른의 선택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가 어머니에게 의지하기 싫다는 마음을 먹게 된 데는 가정 환경도 영향이 있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거든. 인간이 무엇을 중요시할지, 무엇에서 가치를 발견할지, 반대로 무엇을 포기할지. 그런 것은 타인으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 때로는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될 때도 있고. 나는 나 자신의 가치관을 잘못 알았기 때문에 결국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어."
가족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텐데. 막상 가족이 사라지니까 그림을 전혀 못 그리게 되었던 거야.           p.316~317

 

도모치카와 와카나 모두 부모님이 재혼을 해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두 사람이 완전히 달랐다. 도모치카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다 아버지와 누나가 생겼는데, 누나는 대놓고 도모치카와 새엄마에게 적의를 표했고, 결국 빨리 독립해서 집을 나가버렸다. 하지만 도모치카는 의붓누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이었다. 반면 와카나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어머니와 여동생이 생겼다. 워낙 모범생인 와카나였기에 겉으로는 새로운 가족들과 지내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마음이 그들에게서 점점 멀어져만 갔고 결국 가족들과 연락을 아예 끊고 살게 된다.

 

이 작품은 미술대학을 배경으로 각자의 상황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탄산수나 소다수 위에 아이스크림이나 셔벗을 올려 먹는 음료인 크림소다가 제목에 들어간 것은, 극중 주인공과 친한 선배인 와카나가 자주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큼한 소다수와 아이스크림의 단맛은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먹어보면 의외로 잘 어울리는 재미있는 조합이다. 작가는 눈앞에서 탄산 기포가 탁 터지는 것 같은 크림소다의 청량감과 움직임을 청춘의 모습에 빗대어 그리고 있다. 작품의 주요 캐릭터 두 사람은 모두 부모가 재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하지만 한 사람은 새로운 가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또 한 사람은 가족들과 연락을 아예 끊고 살고 있다. 작가는 '가족의 형태에 정답은 없으므로 어느 쪽이 옳다고 하는 결론은 굳이 내리지 않고 여백으로 남겼'다고 말한다. 가정 폭력이라던가 극적인 이유가 없어도 가족 관계는 해체될 수 있다는 것은 요즘처럼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진 사회에서 더욱 공감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연애 소설과 성장 소설을 적절히 섞어 예술가의 삶과 청춘들의 고뇌를 싱그럽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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