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굉장한 세계 - 경이로운 동물의 감각, 우리 주위의 숨겨진 세계를 드러내다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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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의 세계는 소란스럽고, 페로몬이 앞뒤로 오가는 시끄러운 세계다"라고 윌슨은 말했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이 작고 불그스름한 생명체들이 허둥지둥 지상을 돌아다니는 것 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엄청난 양의 활동, 조정, 의사소통이 진행되고 있다."           p.57~58

 

수많은 생물이 동일한 물리적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환경세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에게 완전한 침묵처럼 여겨지는 것에서 소리를 듣고, 완전한 어둠처럼 보이는 것에서 색깔을 보고, 완전한 고요처럼 느껴지는 것에서 진동을 감지할 수 있는 동물이 있다. 이 책은 그 놀라운 세계를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해준다. 에드 용의 신작 <이토록 굉장한 세계>를 어크로스의 600P 클럽으로 읽었다. 매일 정해진 분량만큼 읽으면 되니 6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분량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3주 동안 매일 딱 정해진 분량만큼만 읽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더 읽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참았다. 사실 굉장히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췄다. 하루의 분량만큼만 읽는 대신 더 깊이 사유할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확장되고 깊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다른 감각과 달리 동물의 통증에 대해 논쟁할 때, 사람들은 종종 '동물은 우리가 느끼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을 느끼거나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중간 상태를 상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동물이 무엇을 고통스럽게 여길지, 과연 고통을 겪고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기가 까다로운 만큼 더 흥미로운 장이었다. 리딩 가이드의 미션들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만약 내가 어떤 동물이라면, 어떤 자극에 어떤 식으로 통증을 표현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거나, 내가 만약 개미만큼 작아졌다면 책상 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어딜지, 고충은 무엇일지 적어보기도 했다. 사실 굉장히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췄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더 읽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참고, 딱 그날의 분량만큼만 읽고 있는데, 단점은 그렇게 매일 매일 읽느라 책을 너무 열심히 펴본 덕분에 책등이 갈라지기 시작했지만, 그만큼 더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동물의 모든 감각, 신경계와 신체의 나머지 부분, 욕구와 환경, 진화적 과거와 생태적 현재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직관이 얼마나 쉽게 우리를 오도할 수 있는지 인식하고, 겸손하게 이 작업에 접근해야 한다. 부분적으로 성공한 시도조차 지금껏 우리가 몰랐던 경이로움을 드러낼 것임을 알기에,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p.500~501

 

전통적인 오감 중에서 청각과 촉각이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촉각은 표면과 관련 있는 데 반해, 청각은 소리를 다루는 것이니 말이다. 에드 용은 이에 대해 올빼미와 발울뱀, 그리고 캥거루쥐의 사례를 보여주며 설명해준다. 모든 생물들은 소리와 연결되어 있고, 동물의 청각도 필요에 맞게 조율되어 있지만, 어떤 동물들은 아예 들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여덟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깡충거미는 중앙 눈과 보조 눈 등 각각의 눈들이 모두 각기 다른 임무를 수행하며 엄청난 정보를 처리하고, 사색형 색각으로 새로운 차원의 색을 구별하는 벌과 지반진동을 이용해 장거리 의사소통을 하는 코끼리도 있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없는 감각을 사용하는 놀라운 동물들의 세계는 지구라는 동일한 물리적 공간에서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마치 평행우주에 사는 것처럼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크로스의 600P 클럽으로 에드 용의 <이토록 굉장한 세계>를 3주에 걸쳐 차곡차곡 읽었다. 동일한 물리적 공간에서, 똑같은 감각을 공유할 때조차도, 동물들의 환경세계는 우리와 매우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손에 잡힐 듯 명확하고, 구체적인 사실로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완전한 침묵처럼 여겨지는 것에서 소리를 듣고, 완전한 어둠처럼 보이는 것에서 색깔을 보고, 완전한 고요처럼 느껴지는 것에서 진동을 감지할 수 있는 동물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깨닫지 못한 채로 살고 있다. 박쥐의 기분을 상상해보고, 물고기의 통증을 느껴보고, 나비가 바라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색을 감상해보는 경험은 이 책이 아니면 그 어디서도 해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고 주변의 세계를 바라보면, 내가 알고 있던 세계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땅에도, 내 주변의 공기에도 우리가 탐지하지 못하는 신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마법의 돋보기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인간의 오감 너머에 존재하는 경이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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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 탐정 사무소 3 - 최고 기록을 깨라! 언더독 탐정 사무소 3
케이트 템플.졸 템플 지음, 샤일로 고든 그림, 조고은 옮김 / 다산어린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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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 탐정 사무소' 그 세 번째 이야기가 찾아왔다. 여기는 개 마을이다. 개 마을에는 대부분이 개이긴 하지만, 아주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고양이인 팽도 그 중의 하나였고, 우여곡절 끝에 개 탐정이 되기로 결심했다. 시리즈 1권에서 고양이인 팽이 신입 탐정이 되면서 팽과 버클리 콤비가 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버클리는 독일 셰퍼드 종이 대부분 경찰인 것과 달리 사이렌 소리만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울부짖는다. 트렌치코트가 잘 어울리는 숯 검댕 눈썹의 탐정이다. 언더독 탐정 사무소에는 접수원인 치와와인 칼과 장비를 발명하는 달마티안 스팟츠 박사, 그리고 탐정인 버클리와 팽까지 네 마리의 구성원이 있다.

 

 

시리즈 1권에서는 개 마을에 일어난 도난 사건을 해결하고 유력한 용의자 고양이 도둑을 잡았고, 2권에서는 세계 최고 미술개인 멍블로 피카소의 걸작이 사라진 사건을 해결하고 위조범의 정체를 밝혀냈다. 이번 3권에서는 개 마을 테니스 경기장을 배경으로 해충 방역사인 고슴도치가 실종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마침 그랜드 슬램이라는 가장 유명한 테니스 경기가 개최되고 있는 시점이었고, 고슴도치를 찾기 위해 그곳을 찾은 언더독 탐정단은 초유의 사태와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 테니스공을 전부 훔쳐간 것이다. 공이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랜드 슬램 경기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대회 관계자들은 공을 찾아줄 탐정을 수소문하고 언더독 탐정단이 나서는 동시에 대회에 선수로 참여했던 탑독 탐정단과 마주하게 된다.

 

 

언더독 탐정단과 탑독 탐정단은 일종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언더독 탐정단이 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싸움에 져서 바닥에 깔린 개'라는 뜻의 언더독 답게 탐정 업계에서는 매번 밀리곤 했으니 말이다. 사건이라는 사건은 모두 잘나가는 탑독 탐정단에게 향했고, 언더독 탐정단은 늘 파리만 날리며 한가했다. 시리즈 2권에서 사건을 맡게된 계기도 탑독 탐정단이 스키 여행을 가서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고, 이번에도 개 마을의 모든 사건을 해결하느라 바쁜 탑독 탐정단 대신 사건을 의뢰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로 유명한 탑독 탐정단은 매사에 자신만만해 단서도 필요없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장담하는데, 과연 언더독 탐정단은 그들보다 먼저 사건을 해결해 낼 수 있을까. 고슴도치 실종 사건과 테니스 공이 사라진 사건은 연결되어 있는 걸까.

 

 

휘황찬란한 스포츠카와 헬리콥터는 물론,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까지 있는 화려한 남매 탐정 탑독 탐정단과 각자 취향도 개성도 다른 '언더독'들이 모여서 좌충우돌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언더독 탐정단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시리즈는 제목부터 '언더독'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언더독에 대한 편견과 무시에 정면으로 맞선다. 사회적 통념과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비틀어 버리고, 예측 불가능한 전개로 재미를 더해준다.

 

매 시리즈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등장 인물들이 등장하고, 범인을 쫓는 과정과 스토리 전개 방식을 다르게 해서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언더독 탐정 사무소'! 특히나 이번 3권에서는 사건이 두 개가 동시에 일어난데다 여러 등장 인물이 얽혀 있어 더욱 복잡해졌다. 그만큼 첫 페이지부터 지루할 틈 없는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으니, 언더독 탐정단의 활약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래픽노블 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라 긴 글을 읽기 어려워하는 저학년 아이들이 읽기에도 딱 좋은 작품이다. 개냥 콤비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며 책 읽는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초등 아이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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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김밥일주 -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김밥 맛집 136 전국김밥일주 1
정다현 지음 / 가디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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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김밥큐레이터가 알려주는 전국 김밥 맛집 가이드북이다. 저자는 김밥을 미치도록 좋아해 청주를 시작으로 대전, 전주, 광주, 진주, 사천, 창원, 마산, 통영, 거제, 대구, 부산, 제주도까지 한 달여 간의 김밥대장정을 떠났다고 한다. 이후 지금까지 다녀온 김밥집만 400곳, 김밥을 먹기 위해 이동한 거리 10,000킬로미터라고 하니,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김밥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0만 명의 맛집 계정을 운영하며 떠난 전국 김밥대장정의 성과가 바로 이 책이다. 전국팔도를 총 7개 지역(서울, 인천/경기도, 강원도/대전/충청도, 대구/경상도/울산, 부산, 광주/전라도, 제주)으로 나누어 김밥큐레이터가 직접 맛보고 엄선한 136곳의 김밥집을 담았다.

 

해당 김밥집의 대표 메뉴가 사진으로 수록되어 있고, 주소, 운영시간, 가격대 등 식당 정보와 저자의 김밥집 평이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식당마다 QR코드를 탑재해 바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했고, 주말에는 웨이팅 필수라던가, 하루 전날 전화주문을 해야 한다거나, 비건으로 변경 가능한 메뉴가 있다는 등 한줄꿀팁도 있다.

 

 

만화 <식객>, 방송 <백반기행>으로 맛에 관한 한 국내 최고수인 허영만이 격찬한 김밥의 고수답게 현지인들 중에도 아는 사람들만 찾아간다는 맛집부터 김밥 종류만 50가지가 넘는 집도 있고, 무려 50년 전통의 김밥집도 소개하고 있다. 게다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형태의 김밥집도 있었는데, 김밥을 비벼 먹는 이색 김밥집으로 마치 비빔밥같은 비주얼의 김밥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전주비빔삼각김밥의 고급버전이라는 고추장김밥도 궁금했고, 유부와 우엉을 가득 넣어주는 보물섬김밥, 신선한 야채를 듬뿍 넣어 아삭거리는 식감이 돋보이는 새싹김밥, 고기 없는 고기 맛 김밥, 참치와 매운 우엉이 합쳐진 참매엉김밥 등은 언젠가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세상에 김밥의 종류가 이렇게나 다양하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다.

 

 

학창 시절 소풍 때마다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서 김밥을 싸주시면 그 앞에 앉아서 하나씩 집어 먹었던 그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어른이 되어서는 학교나 회사에서 간편하게 한 끼 때우기 용으로, 혹은 집에서 밥을 차려 먹기 귀찮을 때 간편하게 먹는 용으로 김밥 한 줄을 먹게 되었지만 말이다. 직접 재료를 전부 준비해서 만들려면 김밥 만큼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도 없는데, 사서 먹는 김밥은 가장 간단하고 저렴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평범한 재료와 누구나 다 아는 맛으로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 중 하나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김밥 하나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는 사람의 책을 읽고 나니, 김밥은 그렇게 하찮은 음식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는 지금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새로운 김밥집을 찾아 다니고 있다고 한다. 김밥 덕후의 진지한 열정을 응원해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김밥을 먹어볼까 생각해 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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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 샐 싱 미스터리 편 여고생 핍 시리즈
홀리 잭슨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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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감이 맞는다면 샐 싱은 범인이 아니다. 그럼 대체 누가 앤디 벨을 죽인 거지? 내가 정말로 사건을 해결하고 앤디 벨을 살해한 진범을 밝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과학수사를 활용할 수 있는 경찰관도 아니고 그렇다고 망상론자도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제를 통해 샐이 유죄라는 기존의 정론에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수 있을 정도의 사실과 논리를 제시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p.15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미모의 금발 여고생 앤디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당시 앤디의 남자친구였던 모범생 샐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 네 명과 함께 있었다. 하지만 며칠 뒤 친구들은 샐이 집으로 돌아간 시간에 대해 거짓 진술을 했다고 자백했고, 경찰은 샐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찰은 그를 어디서도 찾지 못했고, 그날 저녁 숲에서 샐의 시신이 발견된다. 자살이었고, 여러가지 정황상 샐이 범인인 것으로 사건은 종결 처리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시신이 확인되지 않은 앤디 역시 죽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5년 뒤, 똑똑한 여고생 핍은 학업성취도평가를 위한 수행평가 과제로 앤디 벨 실종사건에 관해 탐구활동을 하기로 한다. 지도교사는 윤리적인 선을 지킨다는 조건하에 과제를 허락해 주었고, 핍은 당시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샐의 남동생부터 찾아간다.

 

핍은 샐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이제부터 그걸 증명해 보일 참이다. 5년 전 그날 앤디 벨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핍은 앤디 벨 실종을 둘러싼 정황 조사부터 시작해,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관계자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앤디는 아빠랑 사이가 좋지 않았고, 당시 기자회견에서 앤디의 아빠는 앤디에 대해 '과거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단순한 실수일까, 아니면 그가 딸의 죽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조사를 진행해갈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고, 의심이 되는 인물들의 리스트는 늘어만 가는데, 과연 핍은 이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핍은 한참 출력물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뭐랄까, 원초적이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핍을 압도했다. 무감각한 분노에 뒤이어 공포가 덮쳐왔다. 핍의 몸 구석구석 배신의 아픔이 퍼져나갔다. 핍은 휘청이며 뒤로 물러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반쯤 시든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핍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핍은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금 그때 그 순간을 떠올려보았다.           p.426

 

살인 사건 수사를 여고생이 한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그것을 수행평가 과제로 선정해 조사를 한다는 점이 독창적인 작품이다. 이야기는 핍의 활동 일지와 인터뷰 녹취록, 점점 늘어나는 용의자 파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학교 제출용 프로젝트 중간보고서 형태로 정리가 되어간다. 중간 중간 사건 당시의 이동 경로를 표시한 지도라든가, 용의자를 관계도로 정리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어 사건을 추적하는 데 현실감과 긴장감을 부여해준다. 게다가 여고생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사건 조사이지만 전혀 유치하지 않고, 굉장히 진지하게 서사가 흘러가고 있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경찰서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서류를 살펴보는 중 최대한 실제 사건 정보를 토대로 추리를 펼치는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 입장에서도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미제 사건을 해결하거나 이미 종결된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야 기존에도 있어 왔지만,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학교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신선한 설정만큼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여고생 ‘핍’을 주인공으로 하는 미스터리 3부작 '여고생 핍 시리즈' 그 첫 번째 이야기이다. 홀리 잭슨은 이 작품에 이어 후속편으로 <굿 걸, 배드 블러드>와 <에즈 굿 에즈 데드>를 출간했다. 두 번째 작품도 곧 국내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를 아우르는 최고의 미스터리 소설이라 평가받으며 영미권 최대 서평 사이트 굿리즈 초이스 어워드goodreads choice award 영어덜트 소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 BBC TV 드라마(6부작) 제작중에 있다고 하니, 영상화된 버전에서는 여고생 핍을 어떤 배우가 맡을지도 기대가 된다. 케임브리지를 지망했던 핍이기에 두 번째 작품에서는 대학생이 되어 새로운 환경에서 활약을 보여주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두 번째 작품도 국내에서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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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오브 차이니즈 SF : 중국 여성 SF 걸작선
시우신위 외 지음, 김이삭 옮김 / 아작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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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문학을 어떻게 창작하는 걸까? 이건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다. 어쩌면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귓가를 스치는 아름다운 수사와 운율을 붙잡아 합리적인 방식으로 다시 배치하면 된다고. 또한 어떤 이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창작의 과정은 직감과 놀리라는 기본적인 기능 두 가지가 기반이 된다고. 전자가 최초의 영감이 번뜩이도록 불을 붙인다면 후자는 남은 작업을 도맡아 완성한다. 그래서 고전 명작은 종종 절묘한 첫 문장에서 탄생하곤 했다. 돌 하나가 호수에 일으키는 파문처럼 말이다.           - '여우는 뭐라고 말할까?' 중에서, p.64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나는 요즘 '아이 키우기'라는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다. 아이가 없지만,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그 기쁨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는 게임이다. 정작 나는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한 적이 없지만, 해당 게임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개발할 책임자가 되면서부터 집에서도 홀로 컴퓨터방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장이 준 기한은 2년이었고, 그 안에 현실처럼 번거롭지 않지만, 실생활 속 디테일을 고스란히 살려서 현실처럼 경험할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해야 했다. 결국 아내를 설득해 아이를 가지게 되는데, 실제 아이를 키우면서 체험하는 모든 것들을 모아 생동감 넘치는 홀로그램 아기를 탄생시킨다. 그렇게 현실 속 진짜 아기와 게임 속 아기가 한 공간에 공존하게 되면서 점점 게임과 생활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게임 속 아기인 바오바오가 신나게 손가락을 빨고 있는데, 거실에 있던 아기 베이베이가 옹알거리는 소리를 내며 작은 몸을 비집고 서재로 들어온다. 그렇게 들어온 베이베이는 허공에 있던 전자 신호로 이뤄진 바오바오를 마주하게 되는데...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아기의 존재를 보게 된 베이베이와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남극 빙하처럼 차가운 아내의 시선... 자, 나는 현실 속 아기와 가상의 아기를 앞에 두고 제대로 된 생활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 가상 공간을 현실로 가져오는 홀로그래피 기법을 통해 게임의 현실감을 증가시키려다, 결국 그것이 현실의 삶을 잠식하게 되는 과정을 놀라울 정도로 공감되게 그려낸 이야기였다.

 

이 책에 수록된 여러가지 이야기들은 굉장히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그려지고 있어 SF라는 장르를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오게 만든다. 산속에 유성이 둥둥 떠다니고, 아기별을 길들이는 동화같은 이야기부터 양로원의 젊은 간병인과 죽음을 거부해 수십 년간이나 노쇠와 죽음 사이에 머물고 있는 노인의 마지막 여정, 딸과 아버지 두 사람이 운영하는 멀고 먼 우주 끝의 레스토랑, 많은 기억 입자를 가지고 태어나 기억을 유전시키는 종족의 이야기, 골동품 시장에서 발견된 얼굴 없는 여자아이가 그려진 연화에 담긴 비밀 등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쉴 새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어 준다. '중국 SF'라고 하면 어쩐지 이야기의 문턱이 좀 높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걱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가독성 뛰어난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저들은 나를 보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저들이 나를 볼 수 있도록 착한 일을 하고 싶었어."
나는 말했다. "하지만 저들은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아이는 고개를 숙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경 황은 몸을 굽히며 말했다. "언젠가는 죗값을 치르기 마련이야. 널 괴롭혔던 사람들은 벌을 받았어. 네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하늘이 널 대신해 벌을 내린 거야. 그들은 벌을 받을 만했어. 이제 다 끝났어. 그러니 우리를 내보내줘."              - '얼굴 없는 여자아이 연화' 중에서, p.302

 

제대로 된 중국의 SF 작품이라고 하면 류츠신의 <삼체> 정도 밖에 읽어보지 않았던 내게 이 작품은 감고 있던 눈을 확 뜨이게 한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게다가 여성 작가들의 SF 작품들만 모아 놓은 선집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이 책은 그야말로 처음으로 중국 밖으로 소개되는 중국 여성 작가, 논바이너리 작가들만의 SF 작품을 18편이나 수록해, 중국 SF에는 결코 지금까지 알려진 몇몇 남성 작가들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SF와 판타지 분야에서 당대 가장 핫한 중국 작가들이라는 문구가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 SF라는 장르가 일부 마니아들에게만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동시대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SF는 어렵고, 무겁고,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라고 생각했다면, 이 책은 왜 우리가 지금 SF를 읽어야 하는 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해준다고 할까. SF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소재들을 현실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미래로, 우주로 나아가게 만드는 이야기들은 젊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통해 책을 읽고 있는 우리들에게 도달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SF라는 장르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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