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 연대기 - 유인원에서 도시인까지, 몸과 문명의 진화 이야기
대니얼 리버먼 지음, 김명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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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이 발명되지 않는 한, 그리고 미지의 섬에서 살아남은 종을 발견하지 않는 한, 초기 호모 속 구성원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는지 알려면 퍼즐을 맞추듯 그들이 남긴 화석과 유물을 연구해 그 결과를 현대 수렵채집인의 삶과 비교해봐야 한다. 이러한 재구성 과정에는 추측이 포함될 수밖에 없지만, 놀랍게도 그 추론은 상당히 믿을 만하다. 수렵채집 생활이 식물 채집, 동물 사냥, 긴밀한 협력, 식량 가공이라는 네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진 하나의 종합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최초의 인간이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됐을까?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최대 수명이 무려 150세가 될 거라는 의견도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40년 전만 하더라도 평균수명이 그 절반 정도였고, 더 멀리 구석기 시대로 가면 당시 원시인의 수명은 18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늘어난 수명에 비해, 현대인들이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질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많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인간은 도대체 왜 병에 걸리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대니얼 리버먼은 우리 몸의 진화사를 이해하면 왜 우리의 몸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서, 우리가 그것 때문에 병에 걸리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병에 걸리는 이유를 인간의 진화를 통해 풀어낸다니 생각부터 참신했고, 궁금했다.

왜 우리는 쉽게 살이 찔까? 왜 우리는 때때로 음식을 먹다가 질식할까? 왜 우리 발바닥활은 평평해질까? 왜 우리는 허리가 아플까?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우리 몸을 만든 진화의 경이로운 여정을 되밟아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수를 맡은 최재천 교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은 독자들에게, 아니 <사피엔스>를 읽으며 왠지 흡족하지 않았던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하라리와 리버먼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자신들의 책을 썼다. 두 작품 모두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하라리는 전쟁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이고, 리버먼은 인간의 진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이다. 바로 그 차이점 때문에 이 두 작품을 비교해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 중의 하나는 바로, 책이 책을 부르는 순간이 아닐까. 책을 읽다가 작가의 전작을 찾아 보거나, 유사한 주제를 다룬 다른 작가의 책을 찾아서 읽게 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이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이 아니듯이, 우리 몸도 가능한 모든 몸 중에서 최선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몸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 몸을 즐기고 돌보고 보호해야 한다. 우리 몸의 과거는 더 적합한 자의 생존이라는 과정이 만들었지만, 그 몸의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안이한 낙관주의를 비판하는 볼테르의 풍자소설 <캉디드>의 말미에서 주인공은 평화를 되찾으며 이렇게 선언한다. "내 밭을 일구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거기에 덧붙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몸을 일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어떻게 두 발 동물이 되었는지, 직립 보행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인간의 몸이 점점 진화해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임신한 포유류가 태아와 태반, 체액의 증가로 인해 크게 늘어나는 하중을 견뎌야 하는데,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네 발 동물과 달리 무게중심이 더 앞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추가 하중에 대처할 수 있도록 아래쪽 요추 만곡 부위에 쐐기꼴 척추뼈가 늘어났다는데, 실제로 그 부위의 척추뼈는 여성이 세 개고 남성이 두 개라고 한다.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란 이렇게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수렵 채집인의 생활과 현대인의 그것을 비교하면서 식생활이 어떻게 달라지게 되었는지, 그에 따른 인간 몸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 믐의 역사를 살펴보며, 우리가 어떻게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인류 종이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시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몸에 문화와 생물학적 형질이 수십만 년간 상호작용함으로써 진화한 특징들이 가득하다는 것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고 말이다.

지난 150년간 우리가 먹고 일하고 이동하는 방식, 질병과 싸우고 청결을 유지하는 방식, 심지어 잠자는 방식까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몸의 진화적 설계와 문명 간의 부조화로 인해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놀라웠다. 당뇨병, 심장병, 골다공증, 매복사랑니, 평발, 암 등 현대인의 질병을 어떻게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지 새롭고 유용한 지식을 얻게 된 것도 흥미로웠고 말이다. 게다가 인류 진화사부터 문명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쉽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아 평소에 과학 교양서를 많이 읽는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수월했고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가 직면한 건강 문제가 일종의 진화적 산물로, 혹독한 환경 아래서 생존과 번식에 적합하게 진화한 우리 몸이 풍요롭고 안락한 현대 문명과 만나 벌어지는 부적응 때문이고, 이는 우리 몸의 진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충분히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몸과 문명, 건강과 질병에 대해 진화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진화의학이란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또 쉽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의미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책 역시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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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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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봐봐...... 재수 없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아. 놀러 가는 거에 환장한 것처럼 방방 떨고서는 못 가? 가자고 지랄을 떨지 말든가.

전화하다 죽을 뻔한 마누라한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면 어디가 덧난대요?

-누가 하랬어?

미안해요. 하지 말라는 전화 2 3일 해서.

-애썼어..... 엎드려 절 받으니까 속 시원해?

표제작인 <놀러 가자고요>는 노인회장의 아내인 오지랖댁이 동네 주민들에게 제목 그대로 '놀러 가자'고 전화를 돌리는 내용의 이야기의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 중에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중의 하나였다. 동네에 귀 어두운 노인 분들이 태반이라 아침나절부터 전화로 소리를 박박 질러대는 오지랖댁은 노인회에서 놀러 가기로 한 날짜에 몇 명이나 참석할 수 있는 지 확인 중이다. 30명은 가줘야 된다며 확인할 겸 웬만하면 가자고 설득할 겸 전화를 돌리는 중인데, 가겠다는 사람은 없고, 다들 엉뚱한 소리만 해대고 있다. 손녀딸이 백일장에서 상을 탔다는 얘기, 둘째 놈 사업이 망해서 부인이 병원에 누워 있다는 얘기 등 각자 자신의 이야기만 해대거나, 엉뚱한 소리만 하다가 결국 못 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렇게 전화를 삼백 통은 한 거 같다고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고서야 겨우 돌아오는 대답은 "애썼어." 농촌이라는 공간이 주는 독특한 정서가 다양한 마을 사람들의 사연과 성격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대부분 작가가 나고 자란 백호리범골이라는 농촌 마을을 주된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농촌 소설이라고 해서 따분할 거라는 예상은 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이 작품 속 농촌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소위어르신이라 불리는 노인들은 우리가 쉽게 예상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제역이 코앞까지 닥친 상황에서 키우는 소의 산후조리를 하게 된 사연, 시골집으로 어머니를 뵈러 와서 만나게 된 욕조기 외판원과의 에피소드, 아홉 살짜리 아들이 내쉬는 한숨이 성장통과도 같은 평범한 현상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는 부모의 이야기, 못자리철이 한창인 마을에 모인 일꾼들이 봇도랑 치기 내기를 벌이는 이야기 등등.. 다양한 사연들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펼쳐진다. 소박하지만 사람 냄새 나고, 쓸쓸한 정서 너머로 풍겨나는 묘한 활력이 인상적인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그야말로 김종광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김종광 월드인 셈이다.

어머니 일기장을 보면 안심이 된다. 어머니가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그 마음을 누구에게 혹은 어디에다가 풀었을 것인가. 어머니는 죽고 싶을 정도로 거시기한 마음을 종이에 풀었을 뿐이다. 요즘 일기에 쓰는 어머니의 '죽고 싶다'는 그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별생각 없이 그냥 쓴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도시의 자식은 섬쩍지근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작년에 <조선통신사>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김종광 작가의 소설집이다. 네 번째 소설집 이후 8년 만에 다섯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고 하는데, 작가의 단편은 처음 만나는 독자로서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었다. 일반적으로 국내 소설 작가들이 그려내는 분위기와 김종광의 그것이 매우 달랐기 때문인데, 인물이며, 말투며, 분위기며 아무래도 2018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옛날 옛적의 그것 같았으니 말이다. 농촌을 배경으로 노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도 그러했고, 위트와 유머보다는 해학과 풍자가 더 어울리는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을 읽는 기분도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 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어쩌면 내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버려서인지도 모르겠고, 김종광 작가의 특유의 걸출한 입담과 페이소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능청스런 입담을 갖춘 작가라는 평가가 괜한 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루하고 사소한 농민으로서의 삶을 경이롭고 기억할 만한 사건의 연속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는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이 작품에서 보여진 것 같아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농촌이라니, 꼭 옛날 옛적의 이야기 속에서나 배경으로 등장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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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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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리코는 내 친구 아니었어!? 도대체 어느 편인 거야!"

[말했잖아.]

노리코의 말투가 갑자기 무언가에 취한 듯 열정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마사히코 씨의 편도 유미코의 편도 아니야. 나는..... 정의의 편이야.]

정의의 편. 그 말이 이렇게 차갑게 느껴질 줄이야.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는 가즈키는 어느 날 연보라색 봉투로 된 우편물을 받는다. 봉투의 한쪽 면에 멋지게 꽃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어 청첩장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발신인의 이름을 본 순간 그녀는 얼어붙고 만다. 거기엔 5년 전 자신이 죽였던 친구 다가키 노리코의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노리코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것은 가즈키를 포함한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유미코, 미국인 남편과 사업을 하고 있는 리호, 그리고 중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레이코. 과거 한 여자가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5년 뒤, 그녀들이 죽인 여자로부터 초대장이 도착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노리코는 왜 친구들에 의해 살해당한 걸까. 그리고 죽은 그녀가 보낸 초대장은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이야기는 가즈키, 유미코, 리호, 레이코 각각의 시점에서 고등학교 시절과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처음부터 범인이 공개된 상태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피해자가 아닌 다수의 가해자의 시점에서 펼쳐진다는 점이 독특했다. 게다가 다카키 노리코라는 인물은 정말 그 어디서도 만나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였다. 정의라는 명목하에 단죄의 칼을 휘두르는 행동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 과정에서 전혀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고, 궁지에 몰리는 사람들을 무표정하게 지켜보는 걸 보며 괴물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녀는 오직 선악으로만 세상을 판단하고 사람의 기분이란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차가운 사이보그 같은 존재였다. 그저 머리끝부터 발톱 끝까지 정의로 똘똘 뭉쳐 백 퍼센트 올바른 일밖에 하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어긋난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벌을 주며 쾌감을 느끼는 존재. 책을 읽는 내내 무섭고 오싹했다.

전라의 정의.

정의의 누디스트.

노리코의 정의는 너무나 드러나 있고, 노골적이고, 보는 사람이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든다. 어디든 상관없이 상대를 가리지도 않고, 망측스럽게 '정의'를 드러내며 달려든다. 융통성과 배려라는 옷을 두르지 않은 알몸의 정의 앞에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 어벤져스에서는 지구의 안보가 위협당하는 위기의 상황에서 슈퍼히어로들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함께 모여 힘을 모은다. 이들은 초인적인 능력으로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정의의 히어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건물이 무너지고, 자동차가 부서지며, 주위의 자연들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허둥지둥 도망친다. 그렇다면 가공할 악에 대항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정의가 과연 옳은 것인가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우리에겐 모두 각자의 도덕적 나침반이 있다. 누구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어디가 북쪽이고, 어디가 남쪽인지. 우린 그 나침반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다. 아키요시 리카코의 이 작품은 바로 그 정의란 것에 대해 아주 극단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정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거라고 믿는 한 여자. 다카키 노리코. 그녀는 언제나 단 한 번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결코 타인의 죄를 용서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절대정의'의 신봉자였다. 이 작품이 그려내고 있는정의감이 맹목적일 경우 초래할 수 있는 무서움'이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사실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규칙을 지키며 살아야 하고,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정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곳이고, 그런 세상 속에서 융통성과 배려 없이, 타인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행동은 어울릴 수가 없다. 위법인가, 위법이 아닌가. 올바른 것인가, 올바른 것이 아닌가. 단지 그것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무차별하게 단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읽기 시작하면 쉽게 손에서 뗄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 있는 전개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너무도 독보적인 캐릭터도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정의'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지는 작품이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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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토애셋, 암호자산 시대가 온다
크리스 버니스크.잭 타터 지음, 고영훈 옮김 / 비즈페이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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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토애셋의 세상은 때로 공상과학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말이다. 변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그 점을 이해한다. 하지만 변화는 기회가 되기도 하므로 독자 여러분이 크립토애셋 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해한 뒤 행동하길 바란다.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이후 벌써 10년이 지났다. 당시 미국의 금융 시장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파급 된 대규모의 금융 위기 사태는 1929년의 경제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적 혼란을 초래했었다. 최근에 한국이 1979년 외환위기, 2008년 외화유동성 위기에 이어 또다시 위기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금융위기 10년 주기설이 대두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취업자 수 증가폭이 10만 명 아래로 추락했고,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아, 고용 사정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뉴스도 있었다. 이제는 경제와 무관한 일반일들도 금융시장의 원리와 실상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금융 분야의 가장 뜨거운 기술로 떠오른 것은 바로 블록체인이다. 이것은 블록에 데이터를 담아 체인 형태로 연결해서 수많은 컴퓨터에 동시에 이를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이다.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에게 거래 내역을 보내 주고 정보를 공유해 데이터 위조나 변조를 할 수 없도록 해킹을 막게 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사토시 나카모토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개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를 통해 중앙집권화된 금융시스템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고안한 것이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기존 글로벌 금융 시스템과 과학기술 시스템을 재고시키며 일대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그렇다면 '크립토애셋'이란 무엇인가. 통상 암호화폐라고 불리는 이것은 현재 비트코인을 포함해 800개가 넘는 종류가 전 세계 시장에서 흘러 다니고 있다. 크립토애셋 시장은 돈을 생각하고, 사용하고, 불려나가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고 효율적이며 공정한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식조차 초기 몇 세기 동안에는 불안정했다. 그렇다, 수세기 동안이었다. 대부분 조작된 이야기에 기초해 사람들이 사고 팔기 위해 경쟁하면서 투기 경향을 띄었을 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의 이익에 반해 시세가 조작된 경우도 많았다. 허위 전망, 주가 조작, 분식 회계, 위조지폐 발행은 모두 손실로 이어졌다. 오늘날 가장 신뢰받는 시장의 일부도 미국 서부 개척 시대와 같은 초창기를 겪었다.

비트코인은 들어 봤지만, 그 외의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온 나에게 처음 이 책은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현대의 금융시장에 대해서, 그리고 비트코인이라는 것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했던 터라 읽게 되었는데, 차근차근 크립토애셋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세계적 트레이더이자 애널리스트로 꼽히는 크리스 버니스크와 금융 전문가이자 엔젤 투자자로 활동하는 잭 타터가 크립토애셋 투자의 정석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투자 수단으로서 크립토애셋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투자자들에게도, 혹은 나처럼 가상화폐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어려운 초보들에게도, 요즘 금융시장 돌아가는 실상이 궁금한 일반인들에게도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줄 것 같다.

블록체인 기술은 현금 없는 세상, 다시 말해 지폐도 실제 은행도 중앙집중적 통화 정책도 필요 없는 세상을 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물론 크립토애셋의 세상이 '가상'이라는 점때문에 아직까지 그 실체를 접해보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리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미래는 필연적으로 오늘이 된다.' 어쩌면 이미 여기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이 책을 통해 확실한 최신 정보로 크립토애셋의 역사부터 일반 투자 전략과 새로운 자산의 클래스에 대한 기초를 다잡아 이들이 말하는 '혁신적 투자자'로 거듭나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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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기원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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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용기로 살았어야 해.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니까 죽을 용기와 살 용기, 그것은 과연 같은 종류의 용기일까. 나는 맑스와 마르크스, 그리스인과 희랍인, 자정과 0, 두 번의 침묵, 분명 같은데 서로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죽을 용기로 살았어야 한다는 그 말에 대해 영이 무어라고 답을 할지 상상해본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상상 속에서 어떤 동의나 항변도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타인이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들을 조금도 짐작할 수 없다. 각자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부분들만 보여주면서 살기 때문에, 감춰져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을 우리는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말처럼 '모든 이야기에는 언제나 미리 삭제된 몇 개의 장면이 존재하며, 언제나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바로 그 삭제된 장면들이다. 그곳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죽음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천희란 작가의 첫 소설집은 다양한 삶의 방식 속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며, 생이 다하는 순간에서야 완성되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표제작인 '영의 기원'에서 나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아왔던 친구 영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다. 영은 나를 찾아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그저 가지고 왔던 시들지 않는 꽃과 편의점 비닐봉투 속의 편선지 세트와 볼펜, 과자, 술을 남겼었다.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나는 영의 영정 사진을 마주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트럭에 갑자기 뛰어 들었다는 영의 죽음은 사고였을까. 자살이었을까. 나는 동전을 던지면서 영의 죽음이 사고인지 자살인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죽을 용기와 살 용기는 과연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우리는 그가 이해하는 바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그가 자신을 완전히 삼켜버리도록 늪과 같은 그림자 속에 자신을 던진 바, 그의 아내가 보여주려 하지 않았기에 드러나지 않았던 그 사건들처럼, 그가 스스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것을 우리 또한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언제나 미리 삭제된 몇 개의 장면이 존재하며,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삭제된 바로 그 장면들이다. 나는 영원히 달아나지 못한다. 다만, 이제 불을 끌 시간이다.

사람들이 돌연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아무런 징후도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 종말의 날짜가 모두에게 공표되고 하루하루 종말의 도래를 기다리는 세상 속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시체안치소에서 깨어나는 남자의 이야기, 자신은 죽지 않는 불멸의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화가와 미술기자가 눈앞에서 그의 자살을 겪게 되는 이야기, 화성 여행의 시대가 도래한 세상에서 화상을 다녀온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내의 일기장 속에서, 아내의 자살 원인을 추적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이 소설집 속에서 말을 건넨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지만, 누군가에게 그것은 너무 늦게 찾아 오고, 또 누군가에게는 억울할 정도로 빨리 찾아 오곤 한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지는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보편성과 개별적인 특수성 사이를 오가는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죽음의 세계란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다.

천희란 작가는 등단 3년도 안 돼 소설집 한 권이 묶일 만큼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말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매번 유서를 쓰는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쓰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녀가 이토록 죽음으로 가득한 책을 써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심사 숙고해서, 더 진지한 사유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이 책을 다시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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