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한다는 착각 - 나는 왜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잊어버릴까
차란 란가나스 지음, 김승욱 옮김 / 김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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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은 짧다. 기억이 본질적으로 덧없는 것이라서 우리 인생이 훨씬 더 짧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기억 덕분에 과거를 잊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인간의 뇌는 경험의 저장고 이상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다(얼마나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뒤에서 살펴보겠다). 망각은 기억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헤쳐나가며 이해할 수 있게 뇌가 정보를 중요도에 따라 정리하는 과정이 낳는 결과다. 우리가 의지가 깃든 선택으로 망각을 관리하는 데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면, 미래로 가져갈 풍요로운 기억을 직접 선별해서 정리할 수 있다.                 p.52


우리는 왜 방금 전 일을 잊어버릴까? 어떤 기억은 왜 잊히지 않고 계속 떠오를까? 우리가 어떤 일은 기억하고 어떤 일은 잊어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나 한 번쯤 뭔가를 찾으려고 움직이다가 내가 뭘 찾고 있었는지 잊어 버리거나, 몇 시간 전에 먹은 식사 메뉴는 기억하지 못하면서,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음악은 기억했던 경우가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경험이 나중에는 기껏해야 희미한 조각으로만 남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항상 기억의 작동 방식이 궁금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를 잘 기억하지 못해서, 기억을 잊어버린다는 사실 자체에 좌절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차란 란가나스는 '곧이곧대로 기억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니 '왜 자꾸 잊어버리는가?'를 묻지 말고, '왜 기억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에 기여하는 다양한 메커니즘은 생존을 위한 과제에 맞춰 진화해왔다. 우리가 특정 정보를 잊어버리는 것은,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를 신속히 활용할 수 있도록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길 필요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사진처럼 정확하고 고정적인 기억보다는, 맥락에 맞춰 유연하게 변하는 기억이 우리에게는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기억은 돌에 단단히 새겨진 것이 아니라서, 우리가 방금 배우거나 경험한 것을 반영해 갱신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언뜻 듣기에는 말이 안 되는 소리 같겠지만, 기억 갱신의 촉매는 바로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 자체다. 기억을 떠올릴 때 우리는 수동적으로 과거를 재생하지 않는다. 기억에 접근하는 것은 '재생'과 '녹화' 버튼을 동시에 누르는 것과 비슷하다. 머릿속으로 과거를 다시 더듬어볼 때마다 현재의 정보가 함께 따라가서 기억의 내용을 미묘하게 바꿔놓곤 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한 번 떠올릴 때마다 그 기억 속에는 바로 지난번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의 잔여물이 가득 퍼져있다.                 p.234


이 책은 오랫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기억에 대한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뒤집으며, 기억의 메커니즘을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심리학 및 신경과학 교수인 차란 란가나스는 뇌의 구조와 원리 연구에 25년 이상 매진해왔다. 저자는 우리가 인생의 경험을 모두 기억할 수 없는 것은 기억이 본질적으로 선택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험 중 극히 작은 일부만이 우리의 하고,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맥락’과 ‘도식’이라는 틀이라고 말이다. 그 장소에서 나는 소리, 색깔, 냄새 등을 통해 우리는 과거 그곳에 왔을 때의 기억들을 다시 붙잡을 수 있다. 이렇게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감각을 '맥락'이라고 부른다. ‘도식’은 일종의 정신적인 틀로, 반복되는 패턴이나 구조를 이용해 우리가 익숙한 환경에서 쉽게 정보를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맥락과 도식에 따라 정리를 해보자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망각은 기억력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뇌가 의도한 효율적인 정보 처리 매커니즘인 것이다.


기억의 실체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을 단순한 연상의 저장고로 보는 대신 인간이 서로 아주 다른 두 종류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는 견해가 재미있었다. 이는 토론토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던 톨빙 교수가 제시한 것으로 일화기억과 의미기억으로 구분했다. 의미기억이란 정보를 학습한 시기나 장소와 상관없이, 세상에 대한 지식이나 사실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일화기억은 일종의 '정신적 시간여행'이라고 부르며, 기억으로 인해 우리가 마치 과거로 되돌아간 것 같은 의식 상태에 놓인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의식이 정신적인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개념에 대해 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기억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기억하고 학습할 수 있을지에 대해 뇌과학, 심리학을 넘나들며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억과 망각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되어 기억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해주는 기억의 놀라운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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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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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이제 곧 사반세기이건만 지금까지 타인의 의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인 적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 그 때문에 걷지 않아도 됐을 가시밭길을 구태여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나. 좀 더 일찍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기대를 접었더라면 나의 대학 생활은 지금 같은 모양새가 아니었을 것이다. 히구치 스승님 같은 정체불명 괴인의 제자가 되지도 않고, 심지가 미로처럼 꾸불꾸불한 오즈라는 인물을 만나지도 않고, 이 년을 허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다. 가급적 신속하게 객관적 의견을 청해 응당 있을 수 있어야 하는 다른 인생으로 탈출하자.               p.128



모리미 도미히코의 대표작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가 한국어판 출간 17년 만에 전면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기존에 나왔을 때는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라는 제목이었는데, 이번에 제목도 바뀌었고, 동명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인으로 표지도 새롭게 꾸몄다. 문고본 출간 당시 작가가 직접 개고한 내용을 충실히 반영했으며, 번역자 권영주 또한 전체 원고를 새로 가다듬었으니 기존에 읽었더라도 다시 한번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모리미 도미히코 특유의 엉뚱하고 예측불허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매력인 이 시리즈는 초판 출간 이후 16 년 만에 속편이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다미 넉 장 반 크기의 자취방에 틀어박힌  '나'는 2년간의 대학 생활을 돌아보며 한탄한다. 이성과의 건전한 교제, 학업 정진, 육체 단련 등 유익한 일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려 보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1학년 시절부터 다시 되돌아본다. 당시 신입생들을 모으느라 여기저기에서 전단을 붙이던 동아리 중에 흥미를 느꼈던 곳은 네 곳이었다. 영화 동아리 '계,. '제자 구함'이라는 기상천외한 전단, 소프트볼 동아리 '포그니', 그리고 비밀 기관 '복묘반점'이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나에게 모두 대학 생활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 중에서 내가 선택했던 것은 영화 동아리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애초에 화근이었지 않나 싶은 것이다. 내가 만약 1학년 봄에 영화 동아리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하나뿐인 친구이자 원수인 오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꿈같은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를 구가할 수 있었을까? 





문을 연 나는 다다미 넉 장 반에 발을 들여놓았다. 기괴한 일이로다. 뒤를 돌아보았다. 혼돈한 나의 다다미 넉 장 반이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반쯤 열린 문 너머에도 혼돈한 나의 다다미 넉 장 반이 있었다. 거울에 비친 방을 보는 것 같았다.... 문을 지나 내 방으로 돌아왔는데 그곳도 내 방이 틀림없었다. 오랜 수행을 통해 심담을 단련해 작은 일에는 동요하지 않게 된 나도 동요했다. 어찌 이런 괴현상이. 나의 다다미 넉 장 반이 둘로 늘었다. 문으로 나갈 수 없다면 창문을 여는 수밖에 없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진정하려 해보았다. 대략 팔십 일간에 이르는 나의 다다미 넉 장 반 세계 탐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p.302


주인공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원수인 '오즈'는 공학부 전기전자공학과 소속인데도 전기도, 전자도, 공학도 싫어한다. 야채를 싫어하고 즉석식품만 먹어 안색이 달의 뒤편에서 온 사람 같이 심히 소름끼치고,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알랑거리고, 제멋대로고, 오만하고, 태만하고, 청개구리 같고 등등 칭찬할 점이 도무지 한 가지도 없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늘 붙어 다녔으니,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오즈와 영화 동아리 때문이었다고 생각한 나의 이야기가 첫 번째 <다다미 넉 장 반 사랑의 훼방꾼>이다. 이어지는 나머지 세 가지 이야기는 각각 다른 동아리를 선택한 나의 대학 생활 이야기이다. 비슷하게 시작해서 마치 평행우주를 구현한 듯, 같은 인물, 같은 장소, 같은 소품이 다른 방식으로 서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같은 하숙집을 배경으로 오즈와 그의 스승, 러브돌 가오리씨, 고양이로 국물을 낸다는 소문이 있는 포장마차의 고양이라면, 점쟁이 노파의 예언,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카스텔라, 나방이 출몰하는 사건까지 같은 소재로 빚어내는 조금 다른 서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네 가지 캠퍼스 라이프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에 있으니 특히 주의깊게 읽어 보길 권해주고 싶다. 우리는 가끔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선택에 대해 회한에 잠기곤 한다. 내가 그때 왼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갔더라면, 그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을 선택했더라면... 그랬다면 지금의 내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 작품은 황당무계하지만 유쾌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진지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가보지 않았을 미래에 대한 무해한 망상을 보여준다. 기발한 상상력과 입담으로 무장한 모리미 도미히코의 대표작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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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꽃 - 내 마음을 환히 밝히는 명화 속 꽃 이야기
앵거스 하일랜드.켄드라 윌슨 지음, 안진이 옮김 / 푸른숲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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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은 꽃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구상 미술에서 추상 미술로 전환하는 시기에 꽃의 형태를 연구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그는 "꽃의 조형적 구조를 더 잘 표현하려고" 한 번에 꽃 한 송이만 그리는 방법을 선호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사진 속 탁자 위에 놓인 꽃은 나무로 만들어진 꽃이랍니다. 케르테스에 따르면,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업실과 "어우러지게" 하려고 그 나무 꽃에 물감을 한 번 칠해두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사진 속의 꽃은 빛과 어둠의 구도 속에서 단연 눈에 띕니다.            p.3



꽃이 피어오르고 여기저기 꽃내음이 가득해지는 계절, 봄이다. 짙어지는 푸른 잎사귀,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꽃봉오리, 들이마시면 아찔해지는 꽃향기까지... 지금 이 계절과 너무 잘 어울리는 책을 만났다.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꽃처럼, 아름다운 책이다. 앙리 마티스, 에두아르 마네, 데이비드 호크니 등 예술가 48인이 그린 108가지 '꽃' 그림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고화질 도판과 원예 전문 작가의 해설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과감한 색채와 테크닉으로 유명한 마티스가 그린 꽃 그림은 의외로 지중해 바다가 보이는 창문 옆에 세워진 꽃병 속의 장미를 평온하고, 행복하게 그려냈다. 유화물감과 수채물감을 일본의 전통 재료와 혼합해 사용하는 후지타의 양귀비 그림은 꽃이 담긴 노란 물병의 컬러만큼이나 강렬하다. 건축과 인테리어 반면에서 유명한 매킨토시가 그린 아네모네는 너무도 생생해 꽃잎의 질감이 만져질 것 같다. 꽃의 색채와 형태를 매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배경을 최소화시켰던 프랑스 화가 판탱라투르의 그림은 꽃이 주인공이 되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빛의 방향을 연극적으로 설정해 극적인 효과를 드러내는 니컬슨의 정물화는 독특한 무늬가 있는 시클라멘의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20년 동안 다작을 하다가 5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에두아르 마네의 생애 말미를 장식한 작품은 꽃 그림이었습니다. 마지막 대작인,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을 완성하고 나서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고 자부하던 마네는, 점점 제약이 많아지는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혁명적인 화가였던 마네는 미술계에 반발하면서도 비평가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열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꽃 그림을 그릴 때는 그 순간 눈앞에 놓인 식물에 주의를 집중했습니다. 인상주의풍의 가벼운 붓질은 그 그림들이 빠른 속도로 그려졌음을 보여주죠.              p.125



이 책을 통해 장미, 양귀비, 난초, 백합, 국화, 백일홍, 수선화, 제라늄 등 페이지마다 다양한 꽃들을 만날 수 있었다. 화가들이 저마다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표현한 꽃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꽃 그림은 언뜻 보면 꽃의 생명력만큼이나 덧없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꽃 정물화는 사물의 본질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꽃병 속에서 천천히 시들어가는 꽃이든, 흙에서 자라나는 꽃이든, 그 찰나의 순간 포착해낸 꽃의 생명력은 그림 속에서 영원하다. 꽃을 자주 사는 편인데, 아무리 화려하고 값비싼 꽃다발이라도 그 예쁜 모습을 오래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이제는 안다. 영원하지 않기에 더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다. 




세드릭 모리스의 <관목>이라는 그림은 다양한 색감을 사용해서 정말 화려하다. 썩어가는 빨간 열매를 밀어내면서 풍선껌 같은 분홍색 꽃이 피어난다고, 봄철 꽃사과나무 가지에는 모든 계절이 다 담겨 있다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17~18세기에는 꽃이 엄청난 인기였다고 한다. 특히 네덜란드 사람들이 식물 수집의 선두에 서 있었고, 새로운 꽃 품종이 비싸게 거래되는 만큼 그 꽃을 그린 그림의 가격도 높아졌다고 한다. 덕분에 화가 라헬 라위스는 어마어마한 재산과 국제적 명성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유럽 각국의 왕들에게서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에 수록된 라위스의 <꽃 정물>이라는 작품은 정말 꽃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 메마른 일상을 바꿔보고 싶다면, 꽃을 한번 사보는 건 어떨까. 한 송이든, 한 다발이든 그 꽃으로 인해 하루의 색채가 완전히 달라질테니 말이다. 꽃은 예쁘지만 금방 시들어버리는 게 아쉽다면, 대신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이 책 속에 수록된 꽃들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을 선사하니깐. 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달콤한 꽃내음이 나는 것 같은 이 책을 통해 꽃이 주는 위로와 기쁨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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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 치유의 도서관 ‘루차 리브로’ 사서가 건네는 돌봄과 회복의 이야기
아오키 미아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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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창문' 같다고 늘 생각합니다. 문이 아닌 창문. 손잡이를 돌리면 곧장 다른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장치는 아니지만, 창문이 존재하면 지금의 방과는 다른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창문은 바깥 세계의 부드러운 바람과 강렬한 햇빛, 비에 젖은 흙냄새, 나무와 꽃이 있는 선명한 풍경을 방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책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다채로운 풍경과 바람, 그리고 빛을 데려와주는 근사한 창문입니다.           p.23


일본 나라현에 있는 인구 1700명의 산촌, 숲속의 70년 된 고택에 자리 잡은 사설 도서관이 있다. 이 책은 한 달에 열흘만 문을 여는, 세상에서 가장 사적인 도서관 ‘루차 리브로(LUCHA LIBRO)’의 사서가 들려주는 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학도서관 사서로 6년간 근무한 저자는 업무와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도시 생활이 주는 위화감으로 정신질환을 얻게 된다. 무너진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남편과 함께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70년쯤 전에 지어진 오래된 집의 일부를 개방해 사설 도서관을 열게 된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전부 개인 장서라서 '나눔'이라는 개념으로 공간을 개방한 지 어느새 7년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장서들에는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 있고, 손님들은 그 책들을 대출해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독서 모임을 통해 현재의 고민거리를 함께 생각한다. 그렇게 휴일이면 버스조차 닿지 않는 곳으로,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고 숲을 가로질러 찾아와준 그들과 함께 읽고 생각하며 서로를 돌보고,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나누게 된 것이다. 고양이 가보스 관장님, 강아지 오크라 주임님과 함께 루차 리브로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상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가 건네준 책을 펼치면 등 뒤에서 창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 장소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녹슨 창문이 반강제적으로 삐걱삐걱 열리며 바람이 들어오고 방 안이 밝아지는 기분입니다. 그 충격은 때로 강풍이나 눈을 찌르는 빛이 되어 저를 휘청거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책을 건네받는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강풍이 불면 좋겠다, 눈부신 빛에 휩싸이면 좋겠다, 휘청대다가 머리를 부딪혀도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p.204


이 책의 원제는 ‘불완전한 사서’이다. 저자는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유명한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표현을 왠지 좋아한다고 말한다. 보르헤스가 말한 '불완전한 사서'의 불완전함이 뜻하는 바와는 별개로, 자기 스스로 정신질환을 앓으며 사설 도서관을 꾸려나가고 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불완전한 사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스스로도 과제를 껴안은 채로 다른 사람의 과제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약을 먹고 자는 탓에 개관 시간이 임박해서 눈을 뜨거나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정신없을 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문객들이 저자를 도와주고, 일이 감당이 되지 않아 폭발할 지경일 때는 '청소 좀 도와주세요'하고 SNS에 호소하는 식으로 운영해왔다. 2022년에만 736명이나 되는 손님이 루차 리브로를 찾아 왔다고 하니, 개관하는 날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릴 적부터 책의 세계에서 살아온 사서의 에세이답게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같은 어린이 고전부터 역사 문헌까지 여러 도서를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어 넓은 독서를 가능하게 해주며,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지금 우리의 문제와 연결해 고민하게 하는 깊은 독서로 이끌어준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저자에게 책이란 '여러 가지 풍경을 보여주고 바람을 실어 날아주는 창문'이다. 책을 창문에 비유한 것에 공감한다면, 책을 다른 세계를 경험해본 적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저자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 건네준 책을 통해 등 뒤에서 창문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감각이야말로 책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살아내기 어려운 상황을 살아내기 위해 책을 읽으며 버텨온 저자의 진심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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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되살리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120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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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러가 묘한 표정으로 데커를 보았다. "아저씨도 가까운 사람을 잃어보신 적이 있는 것 같아요."

데커는 그 젊은 아이에게서 자신의 젊을 적 모습을 보았다. 운동 능력만큼은 자신감이 있었지만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우린 모두 가까운 사람을 잃어봤단다, 타일러. 중요한 건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야. 왜냐하면 그걸 망쳐버리면 다른 모든 건 정말이지 의미를 잃고 말거든."                p.88


에이머스 데커는 새벽 3시경 전화를 한 통 받는다. 오래전 오하이오주 경찰서에서 일하던 시절 파트너였던 메리였다. 그녀는 조기 치매 진단을 받고,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참이었다. 매일 자신이 점점 더 사라져가는 듯한 기분이 절망스러워하는 그녀는 급기야 자신이 딸마저 잊어버렸다고 고백한다. 얼마 동안 자신의 머릿속에서 딸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끔찍했다고 괴로워하던 그녀는 데커와 통화 중에 총으로 자살을 결행하고 만다. 친구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 속에 메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데커에게 새로운 사건 소식이 전해진다. 


연방 법원 판사와 그녀의 경호원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장소는 부유한 해변 도시에 있는 판사의 집 안이었고, 판사의 시신에는 구멍이 뚫린 검은 안대가 씌워져 있었고, 그 위로 ‘레스 입사 로키토트(Res ipsa loquitor)’라 쓰인 카드가 놓여 있었다. 범인이 카드를 가져왔다면 확실히 계획범죄라는 증거였지만, 경호원이 총탄 두 발을 맞은 것에 비해 판사는 여러 차례 칼에 찔렸으니 무척 모순적인 범죄현장이었다. 판사의 판결에 불만은 품은 누군가가 살인을 저지르고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처럼 보였던 이 사건은 수사가 시작되면서 점점 더 복잡해진다. 실마리는 되는 대로 흩어져서 제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누군가를 용의자로 체포하지만 범인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증거가 나오고, 모든 길이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에이머스 데커의 탁월한 기억력으로도 사건의 퍼즐들을 하나로 짜맞추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게 닥친 최대의 위기, 과연 그는 겹겹이 숨겨진 진실을 풀어내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데커는 이 조사 과정에서 보고 들은 모든 걸 떠올리고, 그것들을 다른 모든 것들과 나란히 늘어놓았다. 겹겹이 쌓인 대화의 층들, 겉보기엔 무고한 발언들, 특정한 관찰들, 그리고 온갖 다른 증거들이 데커의 개인 클라우드에서 추출되어 서로 대조 분석됐다.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깜짝 놀랄 만큼 선명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은 가장 사소한 세부사항에 있었다. 얼핏 보기엔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들이 가장 마지막 순간에 유일하게 중요한 것으로 변했다...'                   p.558


데이비드 발다치의 '데커'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괴물이라 불린 남자>, <죽음을 선택한 남자>, <폴른: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진실에 갇힌 남자>, <사선을 걷는 남자>에 이어 이번에는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로 돌아왔다.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작품이다. 에이머스 데커, 195센티키터, 몸무게는 135킬로그램에서 180킬로그램 사이를 오가는 거한. 대학 4년 내내 미식축구 선수였고 내셔널 풋볼 리그에 진출했으나, 첫번째 출전한 경기에서 사고로 선수로서의 경력은 끝났다. 경찰로서 20년 근무했지만, 어느 날 오랜 잠복근무 끝에 귀가했다가 아내, 처남, 그리고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노숙자 보호소를 거쳐 사설 탐정으로 잡다한 일을 하며 밑바닥으로 추락한 삶을 살았지만, 결국 사건 해결에 활약을 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FBI 미제 수사 팀에서 일하게 된다. 데커는 미식축구 경기 중에 사고를 당했고, 잠깐 동안 죽었다 살아난 댓가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됐다. 거기에 더해 숫자와 색깔이 연결됐고, 시간도 그림처럼 눈에 보이는 공감각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하는 수사란 일반적인 범죄 수사의 패턴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이 시리즈 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다. 


출간되는 족족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80개국 45개 언어로 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1억 1천만 부가 팔린 작가. 출간 수익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범죄 소설 작가'인 데이비드 발다치의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는 거듭되는 반전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시리즈가 여러 권 출간되었을 경우 선뜻 시작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리즈를 시작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첫 번째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완성도 높고 재미있는 작품에서부터 출발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작품은 바로 이번 작품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이다. 데커는 이번 작품에서 오래 함께했던 파트너가 아니라 새로운 파트너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기존에 계속 등장하던 인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 다는 것 또한 시리즈를 처음 시작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다. 게다가 거의 6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말해주듯이 사건 자체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복잡하고, 정교하게 진행되고 있어 구성과 플롯에 거의 빈틈이 없다. 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면 시리즈를 처음 접하더라도 만족할 수밖에 없는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데다, '아무 것도 잊지 못하는, 완벽한 기억력'을 가진 캐릭터의 매력도 충분히 보여지고 있으니 시리즈를 시작하기엔 딱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끈하게 잘 빠진 스릴러를 만나 보고 싶다면, 대중성과 작품의 완성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범죄 소설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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