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제인 오스틴 - 젊은 소설가의 초상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김선형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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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가는 18세기 영국에, 독자는 21세기 한국에 있으므로, 매일 한 문장 한 문장을 옮겨 쓰다보면 작가와 독자 사이의 한없이 멀고도 한없이 가까운 그 기이한 거리를 두뇌에서 손끝까지 말 그대로 온몸으로 겪고 그 간극 위에서 줄타기를 하려 애쓰게 됩니다.... 여러 작품을 이런 식으로 겪다보면 불가피하게 이 미시적 단위들의 기억이 몸에 쌓이고, 어느 순간 각 소설을 한 편 한 편 따로 읽을 때 스쳐 지나갔던 낱말들이나 표현들이 갑자기 서로 연결될 때가 있어요.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머릿속 전구에 팍 불이 들어오면서, 작가의 의도가 문득 명징하게 떠오르는, 그런 신나는 순간 말이에요.            p.83


'제인 오스틴의 편지함'이라는 뉴스레터로 발행되었던 서른 번의 편지와 미공개 글들이 더해져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제인 오스틴의 모든 것이 담긴 백과사전이자 문학 번역가의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이다. 이 책에서 김선형 번역가는 제인 오스틴에 대한 애정을 평생 품어온 ‘덕후’로서의 면모와 수많은 문학 작품을 번역해 온 베테랑 번역가로서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연구, 수많은 문학인들이 쓴 오스틴론 등 마치 제인 오스틴에 대한 너무 재미있는 강의를 듣는 듯한 시간이었다. 이런 에세이가 앞으로도 두 권이나 더 나올 예정이라 너무 너무 좋다.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시리즈는 제인 오스틴이 태어난 지 정확히 250주년이 되는 2025년 12월 16일을 시작으로, 매년 두 권씩 삼 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나올 예정이다. 그리고 두 작품에 대한 번역가의 에세이도 해마다 함께 출간된다는 것이 선물처럼 느껴진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여러 출판사의 다양한 역자 버전으로 읽어 왔다. 다양한 판본으로 가지고 있지만, 매번 홀린 듯이 데려오게 되는 것 같다. <오만과 편견>을 읽으며 19세기 여성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21세기에도 웃음을 자아내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니 감탄하고, <이성과 감성>을 읽으며 로맨스, 이성과 감성의 대립 구도 외에도 당대의 중요한 정치,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사회적 문제의식을 문학적으로 매우 뛰어나게 구현시켰다는 점에 놀란다. 특히 이번에 나온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이 특별한 것은 바로 '각주'에 있다. 고전 문학을 읽을 때, 대부분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옮긴이의 주석에 주목해야 한다. 김선형 역자의 각주들은 일부러 찾아서 읽고 싶을 만큼 깊이 있고, 재미있으니 말이다. 또한 작품에서 매우 중요하게 쓰이는 표현에 대한 원문과 해석, 단어의 문맥적 의미 등 깨알같은 팁들로 가득하다. 각주를 잘 따라가다 보면 시대적, 사회적 맥락을 더욱 잘 이해해 이 작품을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이 소설들에서 화자의 목소리를 경어체로 설정한 가장 주된 이유는, 이처럼 인물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자유간접화법 속에 포괄하는 제인 오스틴의 천재적인 서술 방식을 한없이 유연하게 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에 읽어보실 때는─ 오스틴은 결코 한 번만 읽고 영원히 덮어두는 작가가 아니니까요!─ 화자가 서술 속에서 어떻게 변신하는지를 유심히 잘 살펴보세요. 그러면서 작가뿐 아니라 번역가의 움직임을 추적하면 색다른 관점에서 이 재미있는 책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p.225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번역이 왜 중요한지, 누가 번역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번역만으로는 옮길 수 없는 중요한 행간'에 대해 고민하는 김선형 번역가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다. 제인 오스틴의 '톤'을 자신만의 문장으로 포착하고 싶었다는 김선형 번역가는 그 과정을 '비평이자 고백이자 번역'이라고 칭했다. 번역가는 원본 텍스트가 정해준 큰 틀의 목소리 안에서 모어로 작동할 수 있는 또 다른 큰 틀의 목소리를 제일 먼저 구상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텍스트는 그대로여도 언어의 지형이나 번역하는 사람이 바뀌거나 시대와 배경이 달라지면 그 '톤'은 무한대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김선형 번역가의 글은 인공지능이 아무리 긴 텍스트라도 삽시간에 무수한 언어로 번역해 내놓는 시대에, 더디고 취약한 사람 문한 번역가의 존재, 그 가치에 대해서 깨닫게 해준다. 


<이성과 감성> 1부 2장은 풍자와 유머, 심리적 리얼리즘과 사회 비판이 완벽하게 결합된 위대한 문학적 성취라는 점과 1부 22장에서는 이성과 감성을 오가던 sensible이라는 단어가 결정적인 어느 순간 극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하다'와 '감성으로 느끼다'를 모두 품게 되는 대목이 등장하며 오스틴의 초기 소설에서 특정한 유의 인물들을 묘사할 때 꼭 등장하는 air라는 단어의 쓰임새를 보여주는 <오만과 편견> 1부 15장 등 단어, 구절, 문장 단위로 제인 오스틴이 어떤 작가인지 보여주는 작품 분석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이 에세이를 읽고 나니 <오만과 편견>과 <이성과 감성>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어질 정도로 너무도 충만한 시간이었다. 문학을 번역하는 사람이 맞닥뜨리는 딜레마, 인물들의 육성이 지닌 리듬과 강렬한 고유성을 문체의 힘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번역의 과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감동적이기도 했다. 문학 번역이라는 비현실적이리만큼 느리디느린 읽기의 과정을 엿볼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김선형 번역가님이 그 동안 작업하신 작품들을 거의 다 읽었는데, 하나씩 다시 꺼내어 읽고 싶어졌다. 아, 올해 12월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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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어인 문장의 힘 (365 일력 에디션)
케이크 팀 지음 / 케이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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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주어인 문장의 힘>을 필사책으로 만났었는데, 이번에는 365 일력 에디션으로 돌아왔다. '내가 주어인 문장'이라는 제목처럼 이 일력은 '나'를 주어로 한 문장을 매일 만날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365일 동안 '나'를 주어로 한 긍정 확언과 시대를 초월한 명언을 함께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다, 나는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지나치게 과한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나는 할 수 있고, 반드시 해낼 것이다 등 자신을 긍정하고 격려하는 문장들이 한국어, 영어로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일력은 명언의 주어를 나로 바꾼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나를 주어로 한 긍정적인 문장, 즉 '확언'은 우리의 사고 방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눈으로 읽어도 좋고, 소리 내어 읽으면 더 좋다. 매일의 작은 습관이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 줄 것이다. 


만년일력으로 제작되어 연도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어 더 좋다. 책상 위 달력처럼 매일 한 장씩 넘기며, 일상 속 루틴으로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를 주어로 하는 긍정 확언이 한국어와 영어로 표기되어 있고, 하단에 명사들의 지혜를 담은 명언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 한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말을 메모하거나, 긍정 확언을 필사해볼 수 있도록 빈 공간도 충분히 있는 일력이라 매일 한 문장씩 직접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주어를 나로 바꾸어 필사하는 것은 위인들의 지혜를 내 삶에 직접 적용하며, 내가 쓰는 대로 내 인생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매일 한 장씩 일력을 넘겨 가며 긍정의 메시지로 하루를 시작하면, 기분도 좋고, 에너지도 더 생길 것 같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핑계 대지 않는다, 나는 나로 살아갈 때 가장 빛난다, 나는 비판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나는 나의 잠재력을 믿고 어떤 도전이든 이겨 낸다 등 한 장씩 넘기며 오늘의 문장을 읽다 보면 내 기분도 긍정적으로 변할 것만 같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루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다. 그런 하루들이 쌓여서 만들어 내는 나의 특별한 1년을 위해, 꼭 필요한 일력이 아닌가 싶다. 


새해가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이 일력과 함께 매일 1%씩 성장한다는 마음으로 나만의 좋은 습관을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매일 달라지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일력의 장점이다. 해마다 두고 볼 수 있는 만년일력이라 소중한 이들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은 일력이다. 365일 동안 매일 새로운 지혜를 만나며 긍정 확언을 되새기는 시간을 통해 작년보다 더 주도적인 삶을 사는 한해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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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
K.L. 슬레이터 지음, 박지선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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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루나도 이 생각 때문에 괴로울까? 아니면 루나는 이런 일들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는 데 능숙한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파커는 함정에 빠졌다.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우리에 갇힌 두 마리의 쥐 같았다. 서로를 망가뜨릴 수도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상대의 비밀을 누설하면… 결국 둘 다 망가지게 될 테니까.          p.75


니콜라는 자신과 아들 파커의 유대 관계가 특별하다고 항상 확신했다.  친밀감과 이해가 있다고 믿을 만큼 가까운 모자 관계였으니 말이다. 어릴 때부터 파커는 아빠보다 엄마와 함께 뭐든 하는 걸 좋아했고, 엄마를 챙기는 마음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되었다. 하지만 파커가 루나와 결혼한 뒤로는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아졌다. 결혼한 지 9년 동안 그들의 집에 들른 횟수는 겨우 두 자릿수가 될까 말까였고, 아들 집에 초대받은 횟수는 더 적었다. 루나는 부유한 부모 덕에 풍족하게 자란 딸이었고, 파커와 결혼한다는 것부터 탐탁치 안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콜라는 가끔 손자인 바니를 보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파커와 루나 부부가 파티장에 가기 위해 바니를 맡기러 왔다. 파커는 돌아가면서 단둘이 할 말이 있다며, 내일 오전에 들르겠다고 말을 한다. 


그날 새벽, 경찰이 니콜라와 칼을 찾아온다. 파커와 루나가 교통사고를 당해 위중한 상태라는 거였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파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니콜라는 엉망진창이 된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내 아들일 리 없어. 그럴 리 없어.'라는 말을 중얼거린다. 당분간 바니는 자신이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간호사로부터 집 열쇠를 받아 가려는데, 정신이 든 파커가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한다. "거기... 가지...마세요."라고. 하지만 니콜라는 바니의 장난감과 옷들을 챙기러 파커의 집에 가고, 그 집이 현재 매물로 나와 있다는 사실과 파커와 루나가 각 방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은 왜 이모든 사실을 자신에게 숨겼던 걸까. 짐을 챙겨 나오려다 이웃들이 쓰레기봉투를 내놓은 걸 보고 쓰레기를 버려주려다가 자신이 주었던 사진이 버려져 담겨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쓰레기 봉투를 집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루나의 물건들과 함께 봉투에 담긴 사각 스카프가 나온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스카프 같았다. 최근에 계속 보도 되었던 살인 사건의 증거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스카프가 아들의 집에 있었던 걸까? 




그땐 삶이 참 단순했다. 나는 파커를 그 애 자신보다 더 잘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하나도 모르는 것 같다. 파커는 자기 삶에 우리를 들이지 않았고, 어쩌다가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 준 것들은 내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신중하게 고른 것들이었다. 파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를 가지고 놀았고 내가 전부 다 괜찮다고 믿게끔 했다.

그런데 이제, 지금껏 파커가 내게 둘러댄 모든 것들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289


니콜라와 파커는 언제나 끈끈한 관계였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자신의 아들이 살인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믿지만, 대체 왜 경찰이 찾는 스카프가 아들의 집에 있었던 것일까. 왜 파커는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집에 가지 말라고 경고를 했던 걸까. 니콜라가 자신을 질식시키려고 위협하는 수많은 감정과 씨름하고 있는 사이 병원에서 파커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연락이 온다. 니콜라는 급하게 병원으로 가서 파커를 만나고, 파커는 스카프를 당장 버리라고, 누라가 자신을 망가뜨릴 거라는 말을 남긴다. 루나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까. 파커는 왜 스카프를 당장 버리라고 했을까. 니콜라는 파커가 끔찍한 범죄에 연루되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엄마와 책임감 있는 시민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과연 니콜라는 불쌍한 젊은 여자의 목숨을 빼앗아 간 의문투성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증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야기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숨가쁘게 교차 진행된다. 파커와 루나 부부, 그들의 부모인 니콜라와 마리, 그리고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시점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진다. 루나는 발견된 스카프를 증거로 남편을 경찰에 신고하고, 마리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던 사위와 그 집안을 정리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니콜라는 자신의 아들이 살인범일 리 없다는 믿음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애쓴다. 파커가 부모와 거리를 두고 숨기려고 했던 게 뭔지, 소유욕이 강하고 질투가 심했던 루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까. 탄탄한 복선과 숨 가쁜 전개, 마지막 페이지까지 놓치지 않는 서스펜스와 반전까지 극강의 롤러 코스터같은 작품이었다. 심리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를 많이 읽어온 독자들은 스토리가 중반쯤 이르면 대부분 결말에 대해 눈치를 채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중 시점 구조를 영리하게 활용해 거의 후반부에 도달할 때까지 진상을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단 한 페이지도 건너뛸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하는 심리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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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과 처형의 역사
다카히라 나루미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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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고안된 고문 및 처형 기구의 자세한 디테일과 함께 전설로 전해지는 기구까지 총망라한 책이다. 고문이나 처형 자체보다는 고문 및 처형 기구의 세부적인 내용을 소개하고자 자료를 모으고 집필했다. 


이러한 것들은 주로 사극이나 시대극을 통해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종류가 많다니 새삼 인간의 잔악함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통 이러한 기구들은 엄청난 고통을 오랫동안 지속시키며 쉽게 죽지 않게 한다는 특징이 있기에,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이 책은 고대 세계부터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까지의 고문 기구 및 처형 방법을 카테고리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다. 책에 수록된 방법만 104가지에 달한다. 각각의 자세한 디테일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두개골 분쇄기, 장화 고문, 스페인 장화, 프레스 야드, 리사의 철관, 고뇌의 배, 고양이 채찍, 심문 의자, 마녀의 거미, 팔라리스의 황소, 터커 전화기 등 이름만으로 쉽게 그 방법을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기구들이 수록되어 있다. 




왼쪽 페이지에는 각각의 기구가 개발된 경위와 역사적 배경지식에 대해 상세하게 해설하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림을 통해 기구의 사용 방법과 목적, 희생자에 미친 효과를 수록했다. 다양한 나라의 고문과 처형 기구를 다루고 있어, 기구와 각 문화와의 연관성도 엿볼 수 있다. 


이미지만으로 상상이 되는 부분이 있어 그림 자체는 끔찍하지만, 왼쪽 페이지의 해설을 읽으면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어 흥미로울 것이다. 




정교한 구조와 아름다운 장식적 요소로 오늘날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도 높은 기구도 있었고, 언뜻 보면 짚단이나 삶기 전의 라면처럼 보이기도 한 삼끈 100가닥 정도를 묶어서 만든 호화로운 기구도 있었다. 동물이나 곤충을 이용한 형벌도 있었고, 술꾼에 대한 처벌로 사용된 주정뱅이의 망토라는 것도 있었다. 그야말로 기상천외하고, 잔인한 처형 기구들은 시대별로 당시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서 인상깊게 읽었다.


편안한 기분으로 술술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은 아니지만, 창작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자료로서는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드는 경우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소재로 대단한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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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김목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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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엄마. 저도 한때는 지식이 모든 걸 명료하게 해줄 거라 믿을 만큼 어리석었죠. 그러나 어떤 것들은 겹겹의 통사론과 의미론 뒤에, 세월과 시간 뒤에, 잊히고 구출되고 조명되는 이름들 뒤에 덮여 있어, 단순히 상처가 존재한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는 그걸 드러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마 제 말은, 가끔 저도 우리가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p.92~93


'나'는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가닿기 위해. 비록 한 단어 한 단어 쓸 때마다 엄마가 계신 곳에서 멀어질지라도. 왜냐하면 나는 영어를 읽지 못하는 엄마에게 영어로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가닿지 못할 고백들, 전해질 수 없는 말들,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 에는 가난한 아시아계 소년으로서의 성장기와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만든 한 소년과의 만남 등 엄마가 알 수 없었던 많은 시간들이 담겨 있다. 


할머니는 전쟁통에서 성노동자로 일하며 딸을 키웠고, 현재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하지만 가끔씩 정신이 돌아올 때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리고 '리틀독'이라는 별명으로 나를 불렀다. "자, 이번 이야기는 말야, 리틀독. 널 정말이지 멀리로 데려가줄 게다. 준비됐니?" 할머니의 어휘로 만들어져 나의 상상력으로 움직이는 영화가 펼쳐진다. 어쩌면 내가 작가가 된 것은 이런 할머니와의 시간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열일곱 살에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와 네일숍에서 일한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지만,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고 있었기에 자주 폭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 폭력 조차 자신에 대한 엄마의 애정이라고 믿었다. 엄마는 아들이 영어를 배우고 강해지기를 바랬다. 그 기대로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해내지 못한 많은 일들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한 소년의 성장담이자 삼대에 걸친 가족의 디아스포라 이야기는 고통과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소년은 그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그곳은 아름다운 나라'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무엇이 저로 하여금 상처 입은 것의 목소리를 따라가게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마치 제가 아직 소유해본 적이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약속받은 듯 이끌렸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무언가를 절실히 원하면, 그로부터 결국 하나의 신을 만들어낸대요. 하지만 엄마, 만일 제가 늘 원했던 전부가 저의 삶이었다면요? 저는 다시 아름다움에 대해, 어떻게 무언가가 우리가 그것들을 아름답게 여겨왔다는 이유로 사냥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p.318


시적인 문장들로 소외된 사람들의 연대를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냈던 <기쁨의 황제>를 쓴 오션 브엉의 첫 소설이다. 국내에는 2019년에 소개되었었지만, 이번에 새로운 표지로 옷을 갈아입고 개정판이 나왔다. 이 작품은 베트남계 미국인이자 성소수자인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민자 가족들이 대부분 그렇듯, 부모는 영어를 잘 못하고, 아들은 영어로 글을 쓰고 말하며 살아 간다. 이 작품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인 것도 그 이유에서다. 폭력이 일상이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들려주며, 베트남 전쟁으로 얼룩진 가족의 역사 등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이 '엄마가 이 글을 읽을 일이 없다는 불가능성'에서 비롯된 것이니 말이다. 


몇 대에 걸려 대물림된 전쟁의 트라우마와 비극적인 가정사, 폭력 또한 궁극적으로 사랑이라고 믿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고백은 섬세하고, 시적인 언어들로 서술된다. 이야기가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있다는 것, 글쓰기가 결코 견뎌낼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가슴 아프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특히나 문장이 너무 좋았다. 꼭 밑줄 그을 펜을 준비하고 읽어 보기를 권한다. 작가이자 뮤지션인 김목인이 번역을 했는데, 옮긴이의 말에서 그의 시를 함께 읽는다면 이 작품을 더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다행히 그의 첫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도 이미 출간이 되어 있어서 바로 주문했다. 게다가 번역이 안톤 허라서 더 기대가 된다. 오션 브엉의 <시간은 어머니>라는 시집도 국내에 출간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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