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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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즉효성을 요구하는 요즘 사회에서 그렇게 여유로운 자세로 살다 보면 가끔 스스로가 바보 같아지곤 한다. 목청 높여 누군가를 통렬히 매도하는 편이 훨씬 똑똑해 보인다. 이를테면 작가보다 비평가 쪽이 똑똑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설령 어떤 창작자가 가끔 어리석어 보인다 해도(또 실제로 어리석다 해도), 제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얼마나 품이 들고 고된지 나는 너무나 잘 알기에 그걸 두고 한마디로 '저 녀석은 쓰레기다. 이건 똥이다'라고 매도해버릴 수는 없다.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자로서 지켜갈 삶의 자세의 문제이자, 나아가 존엄의 문제이기도 하다.   p.80~81

무라카미 하루키와 안자이 미즈마루의 에세이 시리즈 그 마지막 권이다. 1998, 2007년에 각기 다른 제목으로 출간이 되었고, 이번에도 역시나 다른 제목으로 새로운 옷을 입고 출간되었다. 기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던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으로 출간되었던 다섯 권을 잇는 시리즈로 나와 표지도 더 세련된 느낌이다.

보통 단편집이나 에세이의 경우 소제목을 전체 제목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의 경우 매번 출간될 때마다 그 제목이 달랐다는 점도 흥미롭다. 처음에 출간되었을 때는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흘러간다'였고, 두 번째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비밀의 숲'에서, 그리고 이번에는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다. 하루키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작년 여름 세상을 떠난 우리 집 장수 고양이 뮤즈의 영혼에 바치고 싶다'고 했고, 책 속에서 뮤즈에 관련된 에피소드도 여럿 등장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뮤즈가 하루키의 집에 왔을 때가 생후 육 개월이었는데, 무려 스물한 살까지 살았던 고양이였다. 인간으로 따지면 백 살을 넘긴 셈이니, 정말 오래 살았던 '장수 고양이' 였다.

하지만 출산하는 고양이와 한밤중에 몇 시간씩 마주하고 있던 그때, 나와 그애 사이에는 완벽한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서 어떤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중이고, 그것을 우리가 공유한다는 명확한 인식이 있었다.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고양이니 인간이니 하는 구분을 넘어선 마음의 교류였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뭇 기묘한 체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의 멋진 고양이가 대개 그렇듯이- 뮤즈도 마지막까지 평소에는 우리에게 곁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p.140

이 책에는 뮤즈와의 에피소드들 뿐만 아니라 공중 부유 꿈에 대한 여러 가지 타입을 이야기하고, 한낮의 회전초밥 가게에 숨어 있는 함정, 이상한 러브호텔 이름에 대한 탐구, 컴플레인 편지 쓰는 방법, 학교의 체벌 문제, 문학전집에 실리는 것을 거절한 이유, 취미로 하는 번역의 의미 등등.. 엉뚱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하루키가 이 글들을 쓸 즈음은 <노르웨이의 숲< <태엽 감는 새>로 대중적인 성공과 문학적 성취를 함께 거두고, 옴진리교 지하철 테러사건 피해자를 취재한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를 한창 작업중이던, 소설가로서 터닝 포인트에 속하는 시기였다. 밀리언셀러를 내는 인기 작가이면서 문단의 주류에서는 벗어나 있는 자신의 고충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는 이야기도 있어 흥미로웠고, 특유의 관조적인 화법과 위트 섞인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일상생활 속의 소소한 발견들도 너무 재미있었다.

하루키가 여행을 갈 때마다 선택하는 책과 그 작품이 왜 여행에 최적인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 또한 흥미로웠다. 나 역시 여행 계획을 세울 때면 제일 먼저 하는 고민이 어떤 책을 가져갈까인데, 이렇게 하루키 처럼 조목조목 명확한 이유를 따져 가면서 고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거라면 언제 어떤 여행이든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만능 책이 한 권 있다면 인생이 편해질 확률이 높다는 하루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가능하면 사생활에서 익명성을 보장받고 싶지만 간혹 길에서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겪는 고충들도 재미있었고, 자신에게 딱히 이상형이라고 할만한 건 없지만, 그래도 긴 인생에서 번개를 맞은 듯 극적인 만남이 두 번이나 있었다는 고백 아닌 고백도 너무 귀여웠다. 정말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상의 풍경들, 이렇게 사소해도 되나 싶을 만큼의 평범한 생각들이 주는 여유로움이 하루키 에세이만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게, 아무 페이지나 쓱 펼쳐서 아무렇게나 읽어도 곧 킬킬대고 웃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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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개
이언 매큐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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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수천만 명의 사망, 폐허가 된 유럽, 강제수용소는 여전히 뉴스에 오르는 화제일 뿐, 아직 인간 타락의 보편적 상징이 되기 전이었다. 순수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진이다. 동결된 내러티브라는 아이러니 탓에 사진 속 주체들은 모두 앞으로 변하거나 죽으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순진무구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미래다. 오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신이 모든 것을 알듯이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누구와 결혼할지, 언제 죽을지- 알고서, 언젠가는 누군가 우리 사진을 들고 있으리란 생각은 못한 채 그들을 바라본다.   p.51

준과 버나드는 어느 작은 마을의 기차역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기차는 늦어졌고, 역에는 앉을 데라고는 전혀 없었다. 버나드는 철로 뒤쪽으로 철쭉이 수풀을 이루고 있는 것을 지켜보다가 특별히 크고 아름다운 고추잠자리를 발견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여행용 키트를 찾아 살충병을 꺼낸 다음 잠자리를 병에 넣으려고 한다. 굉장히 아름다운 놈이라 집에 가져가고 싶다는 버나드에게, 준은 이상한 표정으로 묻는다. '이걸 죽이겠다는 말이네... 아름다워서 죽이고 싶다?' 날도 무척 더웠고 곤충의 권리에 대한 윤리적 토론을 할 생각이 없었던 버나드에게, 준은 별안간 화를 내며 펄펄 뛴다. 이 불쌍한 곤충에 대한 태도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상을 대하는 당신의 전형적인 태도라고, 버나드가 냉정하고 이론적이고 오만하다고 말이다. 버나드는 생각한다. '내가 결혼한 이 사랑스러운 여자가 날 미워하는구나. 이런 끔찍한 실수가 있나!' 그리고는 곤충학자로서 자신의 취미를 방어하기 시작한다.

그 날의 논쟁은 적당히 마무리되었지만, 갈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준은 어떤 형태로든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버나드는 철저한 합리주의자였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로 함께 출발했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곤충학자였던 버나드는 평생 과학의 제한적인 확실성과 당당함을 굳게 믿었다. 준은 신혼여행에서 검은 개 두 마리를 만나 죽을 뻔했던 그 날 이후로, 신의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된다. 바로 두 마리 개의 형태로 나타난 악과의 조우를 통해서.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서로의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들은 적이 없었고, 서로를 같은 이유로 비난했으며, 결국 서로 말도 거의 섞지 않는 관계가 되어 각자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되었지만 말이다.

버나드는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하게 된다. 두 사람이 물병의 물을 마시는 동안 버나드에게는 최근 끝난 전쟁이 역사적, 지정학적 사실이 아니라 다수의 문제로, 무한에 가까운 개인들의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먼지처럼, 홀씨처럼 온 대륙을 뒤덮은 사람들 사이에 미세하게 나눠지는, 그러나 작아지지는 않는 가없는 비통이었다. 개체로서 그들은 영영 무명의 존재로 남을 것이며, 전체로서 그들이 상징하는 슬픔은 누구 하나 이해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남편과 형제 둘을 잃고 검은 옷을 입은 여인처럼 수십만, 수백만 명이 침묵 속에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p.234

이야기는 존과 버나드의 사위인 제러미에 의해 진행되며, 각자의 서로 다른 기억과 생각들이 보여지고 있다. 여덟 살 때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난 이래, 언제나 타인의 부모에게 관심이 많았던 제러미는 장인과 장모에게 강렬하게 매료되어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회고록을 쓰기 시작한다. 합리주의자와 신비주의자, 인민위원과 요기, 활동가와 기권자, 과학자와 직관론자인 한 쌍의 양극단인 존과 버나드. 이들은 어째서 평생 반목하면서도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채 기이한 결혼생활을 계속하게 된 걸까. 제러미는 준이 입원한 교외 요양원에서, 장벽 붕괴 소식에 흥분한 버나드와 동행한 베를린에서 그들 각자에게 이야기를 듣는다. 하나의 경험을 다르게 기억하거나 정반대로 해석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삶이란 매 순간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이 낯설어지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때로는 우리가 믿고 살아왔던 것들의 기준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 작품 속에서 준의 앞에 나타난 검은 개 두 마리 역시 그러한 순간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렇게 단 한 가지 사건을 통해, 평범하고 납득할 만한 일에서 놓칠 수도 있었던 것을 표현할 수단을 찾게 된다.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억하는 사유의 순간들도 매혹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너무도 정확하고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들, 그리고 평범한 순간들 조차 매우 치밀하게 잘 짜인 드라마로 만들어내는 이언 매큐언의 마법이 멋진 작품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중심에, 그 내면의 존재에 가 닿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언 매큐언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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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카페 조식 - 하루의 첫 식사는 따뜻하게, 일본 카페 11곳의 베이킹 레시피
최수진 옮김, 야마무라 미츠하루 감수 / 책밥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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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브런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식사 메뉴가 없던 카페에서도 배를 채울 수 있는 브런치 메뉴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평일에 쉬거나, 주말에 약속이 있는 경우에는 일부러 그런 카페들을 찾아가 브런치 메뉴를 즐기곤 한다. 사실 카페에서 먹는 브런치 메뉴는 프렌치 토스트, 베이컨, 소시지, 샐러드, 에그 스크램블 등 너무 간단한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접시에 예쁘게 플레이팅 되어 나온다는 이유로, 그래서 집에서 대충 해먹는 것보다 훨씬 근사해보인다는 이유로 우리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브런치를 먹는다.

집에서도 매일 그렇게 아침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호텔 조식이나 유명 카페의 브런치 메뉴들 처럼 말이다. 간단히 만들 수 있지만, 보기에는 꽤나 그럴듯한 그런 음식들 말이다.

이 책은 맛있는 조식으로 유명한 일본 카페 11곳의 시그니처 메뉴 레시피를 그대로 가져와 담고 있다. 카페 주인이 직접 공개했기에 맛도 보장되고, 접시에 담아도 근사한 그런 요리들의 레시피이다. 팬케이크, 크림수프, 프렌치토스트, 샌드위치 등 누구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고, 요리 과정도 간단해서 부담스럽지도 않다.

특히 각각 메뉴들을 소개하기 전에 해당 카페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진이 있어 더 좋았고, 실제로 카페에서 판매되는 메뉴들의 플레이팅과 인기 메뉴들의 레시피를 함께 만나볼 수 있어 더욱 활용도가 높은 책이었다. 그리고 빵 하나에도 철학과 정성을 담아내는 카페 주인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고 있어, 읽을 거리도 많은 레시피 책이었다.

나이프가 닿으면 바삭바삭 소리와 함께 꽉 찬 속살이 드러나는 작은 케이크 모양의 식빵, 담백한 맛과 보들보들하면서도 탄력 있는 식감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팬케이크, 트레비스의 쓴맛과 석류의 상큼한 신맛이 번갈아 두드러지며 리듬감이 느껴지는 샐러드, 크림뿐 아니라 반죽에서도 럼 레이즌이 불쑥 얼굴을 내미는 럼 레이즌 팬케이크 등등.. 보기만 해도 꼭 찾아가서 먹고 싶은 근사한 메뉴들이 가득했다. 각 카페별로 주소와 휴무일, 오픈 시간 등이 간단히 기재되어 있어 현지에 여행을 가게 되면 한번쯤 들러보고 싶어지는 그런 메뉴들이다.

사실 아침은 늘 정신 없이 바쁘게 보내는 편이라 대충 때우거나, 거르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이 책 한 권이면 간단하게 만들어도 근사한 카페에서 먹는 느낌으로 여유로운 조식을 즐길 수 있게 될 것 같다. 좋아하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때 대접할 수 있는 메뉴로도 좋을 것 같고, 주말에 늦은 아침을 가족들과 챙겨 먹을 때 만들어 먹기에도 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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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식 집밥 - 유럽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집밥 레시피 50
베로니크 퀸타르트 지음, 이지원 외 옮김 / 다산라이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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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초콜릿과 맥주, 감자튀김 그리고 와플의 나라. 온통 파란색인 스머프들을 탄생시킨 만화가 페요 또한 벨기에 출신이다. 벨기에는 작은 나라이지만 유럽의 심장이고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그리고 룩셈부르크, 4개의 나라와 인접해 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다양한 유럽 국가의 요리들이 함께 공존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번에 만난 책은 방송 프로그램 '비정상 회담'에서 벨기에 대표로 나왔던 줄리안의 어머니, 베로니크 퀸타르트가 쓴 50가지 유럽식 웰빙 집밥 레시피 책이다. 그녀는 20대에 이미 채식주의자였으며, 결혼 후에는 남편과 함께 유기농 식품점을 운영했을 만큼 건강한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가족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늘 신선한 재료를 건강하게 조리한 음식들로 식탁을 차린다고 하니, 그녀가 알려주는 요리 레시피들이 궁금해졌다.

구성은 식전에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애피타이저 요리, 메인 요리 전에 지루함을 달래주는 신선한 전채 요리, 그리고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우아한 메인 요리로 이어진다. 몸의 영양에 균형을 잡아주는 따뜻한 수프 요리와 입안을 달콤하게 마무리해주는 후식까지 담고 있다. 사실 카테고리는 이렇게 거창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요리들과 레시피들은 전혀 어렵지 않고, 매우 단순하다. 인터넷에서 찾는 레시피보다 더 단순하고 금방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단계도 심플하고, 조리 과정도 전혀 복잡하지 않다. 완성된 요리를 담아낸 플레이팅 조차 근사한 레스토랑의 그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 혹은 할머니가 차려 줄 법한 푸근함과 투박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유럽 사람들이 실제 집밥으로 만들어 먹는 다양한 요리 가운데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레시피만을 엄선해 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국적인 느낌보다는 거부감 없이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가득하다. 레몬과 올리브오일, 여러 가지 허브와 버섯만 있으면 되는 버섯 레몬 절임은 바로 만들어 보고 싶을 정도로 간단하지만 먹고 싶은 요리였다. 햄을 채운 토마토나 속을 채운 삶은 달걀 등은 아이들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재료가 간단하고 만드는 과정이 쉬워 온 가족이 함께 요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리에주식 깍지콩 베이컨 스튜, 채식 셰퍼드 파이, 리크에 얹은 도미 필레 등은 유럽의 정취를 물씬 풍기면서도 간단해 보이는 요리라 한번쯤 해보고 싶은 레시피들이었다. 무엇보다 채소, 생선, 감자 등이 고루 들어 있어 영양적으로도 훌륭하고, 다양한 빛깔이 플레이팅되어 보기에도 너무 근사한 요리들이기도 했다.

레시피 북이지만, 에세이처럼 중간 중간 줄리안과 베로니끄의 가족 이야기도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스페인, 이탈리아, 모로코 등 여러 국가를 여행하며 각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던 베로니끄가 그 나라들에서 가져온 레시피들도 많아 흥미로웠다. 유럽 곳곳을 다니면서 전통시장의 상인이나 레스토랑의 주방장에게 각 지역의 특색이 담긴 레시피를 구해 직접 자기만의 요리법으로 발전시켰기에 더욱 쉽고, 단순하면서도 맛이 있는 레시피들이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보통 유럽 음식이라고 하면 피자나 파스타, 스테이크 등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유럽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은 최소한의 조리 과정을 거친 싱싱한 채소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한 건강한 요리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건강하지만 간편한 집밥 레시피 북이라, 누구라도 쉽게 따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베로니끄가 모로코,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얻어낸 시크릿 레시피도 함께 담겨 있으니, 이국적인 음식이 먹고 싶은 날 만들어 보기에 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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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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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인공은 이 동물 왕국에서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날개 달린 녀석들이 날아가서 톱 하나 훔쳐 오는 게 문제가 될 것 같나?"

"그럴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당신 이야기는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나는 대답했다.

"그렇게 따지면 이곳에 우리가 함께 있는 것도 개연성이 떨어지긴 마찬가지야." 마크 트웨인이 말했다.   p.94

우리의 주인공 조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다른 가족이라곤 없었으므로, 할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조니의 인생에서 가장 난관적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가난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조니의 할아버지는 둘만 있을 때도 줄창 욕을 했던 성격이 나쁜 사람이었다. 조니의 유일한 친구는  전염병과 기근이라는 이름의 닭 한 마리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시장에 가서 닭을 팔아 먹을 것을 좀 사오라고 시킨다. 조니는 그 닭을 사랑했고 녀석의 처지를 가엽게 여겼지만, 어쩔 수 없이 '전염병과 기근'을 데리고 시장으로 향한다. 평생 집 밖에 나와 본 적이 없었던 조니에게는 거리에서 보이는 광경들은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조니는 구걸하는 노파에게 자신은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지만, 만약 이 닭을 데려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게 해 줄 수 있다면 데려가도 좋다고, 닭을 건네준다. 노파는 조니에게 보답으로 담청색 씨앗을 한 움큼 꺼내어 주고, 씨앗을 심어 꽃이 피고 그것을 먹으면 두 번 다시 허기를 느끼지 않게 될 거라고 말한다. 조니는 그 말대로 씨앗을 심고 정성스레 돌보아 핀 꽃을 먹고, 동물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리하여 외롭던 조니에게 수많은 동물 친구들이 생기게 되고, 그들과 함께 숲 속에 있던 어느 날 조니는 올레오마가린 왕자가 납치됐으며 그를 구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전단을 보게 된다.

"내 잘못이 아니야. 네가 결말로 건너뛰자고 했고, 그 바람에 이 특별한 닭의 인생에 일어난 놀랍고도 행복한 사건들이 생략된 거야."

"누구 잘못인데?" 족제비가 물었다.

"물론, 조니가 이 닭과 다시 만나야 할 논리적인 이유는 없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논리와 사실은 별개야. 그리고 이 문제에서 사실은 이거야. 이제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고 닭은 돌아왔다는 것."     p.144

1879, 마크 트웨인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두 딸의 청으로 잡지에 나온 그림을 골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가난한 소년 조니가 마법의 씨앗을 얻고, 납치된 왕자를 구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 이야기이다. 후에 마크 트웨인은 대략적인 스토리를 16쪽에 걸쳐 정리했다. 이 문서는 사후 약 100년 후인 2011년에야 캘리포니아 대학의 마크 트웨인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되었고,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상을 수상한 부부, 작가 필립 스테드와 삽화가 에린 스테드가 작품을 완성한다.

마크 트웨인이 딸에게 남긴 단 한 편의 동화는 필립이 트웨인과 대화를 나눈다고 상상하면서 쓴 이야기와 에린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우아한 삽화를 통해 100년 만에 세상에 보여지게 된 것이다. 이야기는 마크 트웨인이 해준 이야기를 필립 스테드가 들려주는 방식으로, 일종의 액자 구성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중간 중간 마크 트웨인과 필립 트웨인이 이야기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말하며 그래서 닭은 어떻게 되었냐며, 노파는 죽었냐고, 혹은 개연성이 없다는 식의 대화를 나눈다. 동화 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그들의 만담이 너무도 재미있었다.

가난한 소년 조니가 마법의 씨앗을 얻고, 납치된 왕자를 구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 이야기 자체도 아름답지만, 유머러스하면서도 우아한 삽화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고전적 재료와 최첨단 기법, 예를 들면 목판, 잉크, 연필, 레이저 커팅 등을 조화롭게 사용해서 전반적으로 톤 다운된 색채감이 이야기와 너무도 잘 어우러져 너무 예쁜 그림책으로 완성되었다. 시간을 거슬로 우리 앞에 찾아온, 선량한 이들의 명예와 용기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마크 트웨인 특유의 독창성과 유머 감각이 반짝이는 아름답고, 따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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