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익스체인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2
최정화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이 널 어떻게 대하든 간에, 넌 자유롭고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야. 그걸 잊지 말렴."
그때는 삼촌이 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삼촌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 말을 잊고 싶어졌다. 이 모든 기억을 잊는 게 꼭 그렇게 나쁜 일인가 하는 질문이 솟기 시작했다. 난 너무 외로웠다. 그리고 한순간이라도 편안해지고 싶었다. 물론 그 편안함이 고통이 사라지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잊는 건, 눈뜬장님과 같은 상태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쉽사리 메모린에 지원하지는 못했다.    p.38~39

 

집집마다 외벽에 오염물질 차단제를 발라야 하고, 공기정화장치가 장착된 헬맷을 쓰지 않으면 외출초자 할 수 없게 된 지구는 이미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모조리 팔아 티켓을 구입했고, 기회만 된다면 망설임 없이 지구를 떠났다. 도착하게 될 곳이 어딘지 알아보지도 않고, 왜냐하면 그게 유일한 생존방법이었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오게 된 니키와 가족들이 그곳에 도착하고 화성으로 이주하기로 한 것이 큰 실수라는 걸 깨닫는 걸로 시작된다. 화성에서는 아이디얼 카드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는데, 그들은 그 카드에 대해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비행선 티켓을 사는 데 전 재산을 다 써버렸고, 한 달치 숙박료를 미리 지불했지만, 마중 나오겠다던 업자는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된 처지의 지구인들 150여 명에게 다섯 개의 공간이 지급되었고, 그들은 비좁은 출입국 수용소에서 주기적으로 '메모린'에 지원하라는 권유를 듣게 된다.

 

'메모리 익스체인지'란 갈 곳이 없어져버린 이민자들에게 경제 사정이 어려운 화성의 파산자들이 아이디얼 카드를 팔고, 서로의 기억을 교환하는 것을 말했다. 아이디얼 메모리를 판매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보를 완전히 상대에게 넘기고 기억을 말소시킨다는 의미였고, 그렇게 '제로화'된 화성인들은 특수 구역에 격리되어 일반 구역 사람들과는 단절된 채 살아 갔다. 그리고 화성인과 기억을 교환한 지구인은 자신이 지구인이었다는 기억을 잃은 채 화성 사회에서 화성인인 것처럼 살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수용소에 있는 이민자들에게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계속 출입국 수용소에서 살던가, 메모린에 지원해 화성인으로 살아가던가 선택해야 했다. 이주민의 기억을 받은 화성인은 자신이 이주민이라 믿으면서 감시와 통제 아래 남은 삶을 살아가고, 화성인의 기억을 갖게 된 이주민은 자신이 화성인이라 믿으며 화성 사회에 편입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과연 지구인의 기억을 갖고 감옥 같은 곳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사는 것과, 그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렸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화성인으로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 중에 어떤 삶이 더 행복한 것일까. 기억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나인 것일까.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내가 보기에, 불필요한 것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었고 결국은 그걸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의지가 매우 강하고, 그 점에서는 우리 화성인들보다 뛰어났어요. 하지만 자기가 뭘 원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사고는 복잡했지만 단순한 진리들에는 취약했고 심지어 그것들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행복해질 수 있는 가까운 길을 놔둔 채 아주 멀리, 마치 일부러 그것에 도착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우회하고 있었습니다.    p.67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스물두 번째 작품이다. 최정화 작가의 이번 신작은 2019년 「현대문학」 6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것이다. 핀 시리즈를 그 동안 읽어 오면서 SF 장르를 만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기대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파멸 직전의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한 소녀가 '기억 교환'을 통해 화성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전작 <흰 도시 이야기>에서 전염병에 휩싸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네가 존중 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는 문장을 통해 인간의 자유 의지와 인간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간의 실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1장에서 화성에 도착한 지구인 니키의 시점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2장에서 니키와 기억을 교환하고 수용소에 갇힌 채 살아가는 반다의 시점으로, 그리고 3장에서는 메모리 익스체인지사에서 체인저로 일하는 도라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일 중독자로 사람들의 기억을 바꿔주는 일을 5년째 하고 있는 도라는 사실 반다의 기억을 이식 받은 니키였다. 반다는 전파 오류 사고로 수용소를 탈출해, 자신과 기억을 맞바꾼 니키를 찾아가게 된다.

 

"내 기억을, 그러니까 내 기억을 가져간 다른 이에게 그가 내게 넘겨주었던 기억을 돌려주고 싶어요. 그걸 그에게 주고 싶습니다. 난 그자가 내 기억을 가지고 자신을 잊은 채 살기를 바라지 않아요. 내가 가지고 있는 당신 기억을 당신에게 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들은 자신에게 이식된 서로의 기억을 들려준다. 반다는 자신에게 이식된 니키의 기억을, 니키는 자신에게 이식된 반다의 유년 기억을 들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자유롭고 존중 받아야 할 인간'으로 살고 있는 건지, 우리는 모두가 자유롭고 존중 받는 세상을 위해 타인을 대하고 있는 건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팀 The Team - 성과를 내는 팀에는 법칙이 있다
아사노 고지 지음, 이용택 옮김 / 리더스북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오션스 일레븐>에서는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구성원을 소집한다. 이때 각자가 특기를 지닌 개성 있는 구성원을 조합함으로써 팀 전체의 성과를 창출한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팀은 해산한다. 그야말로 유동성과 다양성을 겸비한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대부>가 아니라 <오션스 일레븐> 같은 팀이 필요하다.   p.67

 

모든 과정을 '혼자' 다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어떤 관계든지 사회적으로 어떤 팀과 관련이 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과 협력함으로써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낸다. 직장에서, 스포츠 경기에서, 혹은 각종 동호회나 소모임 등에서 말이다. '팀 플레이'라는 말은 스포츠나 영화 등 여러 사람이 공동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에 많이 사용되는데, 경기에서 승리하거나 일의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개인 혼자서는 절대 이뤄낼 수 없는 결과를 두고 우리는 '팀 플레이가 빛을 발했다' 혹은 '팀워크가 좋다'라는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 너무도 다른 능력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이 함께 같은 목표를 이뤄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책은 팀에 대해 잘못 알려진 믿음을 바로잡고, 팀이 갖춰야 할 바람직한 모습을 알려주어, 팀의 속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저자는 끝 모르고 추락하던 팀이 3년 만에 매출 10배 증가를 이뤄내며 ‘업계 1등’으로 거듭난 비결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의 팀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든 승리의 기술을 ‘팀의 법칙’이라고 정리하며, 그것을 이루는 ‘목표 설정’, ‘구성원 선정’, ‘의사소통’, ‘결정’, ‘공감’이라는 5가지 키워드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그 어떤 조직에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이고 구체적이라 누구에게나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픽사는 팀 단위 작업에 특화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통상적인 제작 과정에서는 감독이 혼자 스토리의 윤곽을 생각하고 어느 정도 완성한 후에야 비로소 팀을 짜 영화를 만든다. 하지만 픽사는 다르다. 누군가가 혼자 스토리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구성원 몇 명이 모여 토론을 거쳐 스토리의 윤곽을 완성해낸다. 이후에도 팀 전체가 모여 논의를 거듭하며 스토리를 세밀하게 다듬어나간다. 톱 플레이어 한 사람의 재능에 의존하기보다는 팀의 힘을 결집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픽사가 끊임없이 히트 작품을 내놓는 원동력이다.    p.127

 

저자는 경영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기업의 인사 조직 변혁을 지원해왔고, 다양한 팀이 쇄신해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팀의 법칙이 지닌 힘을 가장 절실히 실감한 것은 클라이언트 기업의 조직 변혁 프로젝트에 관여한 때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컨설팅 팀을 바꿔나가면서 였다고 한다. 실적은 끊임없이 하양 곡선을 그렸고,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팀원들도 하나 둘 퇴직했으며, 그의 팀은 업계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었다. 나름대로 갖가지 대책을 강구해봤지만 헛수고였고, 회사 내에서도 업신 여김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다 '고객에게 조언해주는 조직 변혁의 노하우를 우리 팀에서부터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매출이 무려 10배로 올랐고, 조직 상태도 개선되어 퇴직률도 낮아졌으며, 회사의 시가총액까지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자는 위대한 팀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유능한 리더도, 뛰어난 에이스도, 완벽한 시스템도 아닌 '정밀한 법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이를 바탕으로 심리학, 행동경제학, 조직 행동학 등 다양한 이론과 학술 자료를 토대로 '팀'이라는 집단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3년 만에 꼴찌에서 매출 10배 상승을 달성하며 업계 1등으로 변하게 된 극적인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효과적인 팀 운용 전략이 꼭 필요한 회사의 중간 관리자라면, 그리고 팀의 구성원인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최적의 조합으로 팀을 짜는 노하우부터 개인의 역량을 팀의 역량으로 확장하는 법까지 총망라되어 있어 평범한 사람들도 압도적인 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의 사랑법 스토리콜렉터 81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조이가 물었다. "이전 두 피해자를 확인했던 검시관이 당신인가요?"
검시관이 대답했다. "네, 그래요."
"나중에 같이 말씀 나누면서 세 피해자의 특징을 비교해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정말 좋다. 조이는 확실히 단어를 선택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목이 졸려 살해당하고 방부처리된 여자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니. 기쁨이 넘친다. 트랄랄라.    p.92

 

남자는 호숫가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옆자리에서는 어린 아이가 모래놀이를 하느라 여러 번 그의 비치타월에 모래를 날리고 있었고, 왼쪽에 있는 여자는 한 시간 내내 같은 자리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는 여자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면 우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가갔다. 여자는 창백하다 못해 거의 잿빛에 가까운 피부색이었고, 어깨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뻣뻣하고 차가웠다. 여자는 모래밭에 앉아서 얼굴을 손에 파묻고 있는 자세로 죽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언론에서 '목 조르는 장의사'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그는 교살 후 시신을 방부 처리해 누구나 볼 수 있는 장소들에 남기는 걸로 유명했다.

 

사건 해결을 위해 FBI 요원 테이텀 그레이와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가 시카고로 파견된다. 데이텀은 로스앤젤레스 지국에서 1년에 걸친 아동 성도착자 조직 사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최근 승진했지만, 사실 상관들과 크고 작은 오해들을 끊임없이 만들었던 제멋대로 성격으로 버지니아주 행동분석팀의 신임 차장 밑으로 발령을 받았다. 맨쿠소 차장은 승진하자마자 일처리 방식을 바꾸며 민간인 하나를 자문으로 데려왔는데, 그게 바로 조이였다. 조이는 어린 시절 살던 곳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봤고, 당시 사건은 미결로 남았지만 나름대로의 조사를 통해 유력한 용의자가 알고 지내던 이웃 남자라는 것을 밝혀냈던 이력이 있다. 물론 경찰을 비롯해서 주위 어른들은 어린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덕분에 동생과 함께 연쇄 살인범에게 무시무시한 협박을 받으며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녀가 범죄 프로파일링을 하게 된 것이다.

 

 

21세기의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범 중 하나를 잡는 데 힘을 보탬으로써 잠시 명성을 얻었을 때, 조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찬양하는 말을 들었다. 주로 자신의 영리함을 두고 떠드는 소리였다. 조이의 신임장은 종종 과장되었다. 하버드 법학박사, 수석 졸업, 기타 등등. 하지만 사람들은 조이가 그토록 뛰어난 실적을 올린 이유가 생생한 상상력 덕분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노력만 하면, 조이는 살인범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놈이 뭘 느끼고 보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었으니, 조이는 또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사물을 보았던 것이다. 너무나 선명하고 생생한 광경.    p.238

 

스릴러와 미스터리를 즐겨 읽었던 10대 소녀가 현실에서 그런 상황을 겪게 된다면 어떨까. 조용한 소도시에서 젊은 여자가 벌거벗은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밤이면 유령 도시라도 된 듯 집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기사가 실린 신문을 오려 스크랩북을 만들고, 자신이 아는 빈약한 사실들과 넘겨 들은 소문과 책을 통해 얻은 지식들로 홀로 나름의 수사를 시작한다. 매일 밤 범인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지만, 결국 경찰서에 가서 자신이 조사한 용의자에 대해서 신고하기에 이른다. 물론 경찰을 비롯해서 주위 어른들은 열네 살 소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사건은 다른 용의자가 수감 중 자살하는 걸로 마무리되고 만다. 그 소녀는 십육 년 뒤 FBI의 수사를 돕는 범죄심리학자가 되었고, 당시의 연쇄 살인범은 여전히 그녀를 잊지 않고 연락을 해온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FBI 요원 테이텀 그레이와 언론에서 '목 조르는 장의사'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중이다.

 

범죄 심리학자와 FBI 요원이 상반된 성격으로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수사를 한다는 설정이나, 연쇄살인범을 쫓는 수사 과정과 피해자와 범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함께 교차 진행되는 구성은 사실 이러한 장르에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주 볼 수 있는 설정과 구성이라고 해서 이야기 또한 평범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캐릭터이다. 죽음까지 뛰어넘는 완전 무결한 사랑을 꿈꾸며 여자를 죽여 방부 처리하는 연쇄 살인범, 대책 안 서는 고집불통 할아버지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소시오 패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역시나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상사들과 부딪쳐 온 FBI 요원과 살인범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알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은 전혀 헤아리지 못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돌직구만 날려대는 범죄심리학자가 모였으니 말이다. 범인의 병적 판타지도 이해할 수 없어 오싹하게 만들고, 사사건건 서로를 공격하고 무시하고 부딪히는 두 남녀 주인공 또한 전혀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서 매 장면마다 긴장감과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게다가 보통 과거의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선 주인공이 등장하는 경우, 과거를 시작으로 현재 벌어지는 이야기에 더 중점을 두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녀의 과거 시점을 거의 현재 벌어지는 사건과 동일한 무게로 다루고 있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의 작가인 마이크 오머는 16세 때부터 온라인상에 자신의 글을 자비 출판하며 꾸준히 팬층을 확보했고 팬들의 요청에 부응해 이 작품을 집필했다. 게임 개발자 출신이라는 이력도 흥미로운데, 이 작품의 주인공인 조이 벤틀리는 아내의 모습을 투영해 만들어냈다고 한다. 주도적인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노련하고 자연스러워 마치 여성 작가가 쓴 것 같다는 평을 듣기도 했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팬들의 요청으로 시리즈화가 확정되어 2019년 '조이 벤틀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In The Darkness>가 출간되었으니, 국내에서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샐리의 비밀스러운 밤 브라운앤프렌즈 스토리북 2
김아로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새해도 딱 작년처럼만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샐리는 생각했다. 내일도, 모레도 딱 오늘만 같으면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오늘 하루가 충분히 행복하면 좋겠다고.    p.35

 

‘브라운앤프렌즈 스토리북 시리즈’ 그 두 번째 책은 바로 샐리이다. 귀여운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는 대쪽 같은 성격부터 기원을 알 수 없는 괴력까지, 무한 반전 매력을 가진 캐릭터이다. 억지로 열심히 하는 것은 싫어하고, 늘 엉뚱한 소리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맞서는 샐리는 친구들의 고민을 함께 고민해주며 전혀 고민스럽지 않게 해결 방법도 툭 건네주곤 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 계획 안 세우기, 해보고 아님 말기, 그럼에도 친구들에게는 은근슬쩍 잘해주기, 큰 손답게 다 퍼주기, 오지랖 펼치기 대장인 샐리의 엉뚱 발랄 이야기가 펼쳐진다.

 

샐리와 친구들은 새해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초코와 코니는 경쟁하듯 종이를 빼곡하게 채우는 중이었지만, 샐리는 친구들과 달리 아무것도 쓰지 않은 계획표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새해라서 특별히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던 거다. 샐리는 문득 작년은 어땠는지, 작년 달력을 뒤적여본다. 친구들과 이런 저런 추억으로 가득한 달력을 보며 샐리는 결심한다. 나, 샐리의 새해 계획은 작년처럼 살기!라고. 지키기 어려운 것들만 가득한 자신의 새해 계획들을 보며 친구들은 생각한다. 어쩌면 진정한 계획 천재는 샐리일지도 모르겠다고.

 

 

샐리는 일단 연금술사가 되는 법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기로 했다.
"한번 해보지 뭐. 너무 열심히는 말고."
너무 열심히 하지 않고, 적당히 비스듬하게. 때로는 포기하고, 애써 견디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샐리는 늘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나서게 될 것이다.
오직 샐리라서.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그래서 가장 샐리다운 모습으로.    p.221~222

 

이 책에 수록된 샐리와 친구들의 아홉 편의 이야기들은 너무 애쓰지 않고, 적당히 비스듬하게 인생을 즐기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샐리는 늘 엉뚱하고 제멋대로이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존감과 누구보다 튼튼한 멘탈을 가지고 있다. 일찍 일어나는 게 꼭 좋은 걸까,에 대해 토론하는 친구들에게 꼭 일찍 일어나야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게 아니라, 좀 더 늦게 자는 것도 하루를 꽉 채워서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샐리. 휴가 기간 동안 좋지 않은 날씨에 대해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내일 날씨는 내일이 되면 알 수 있는데, 왜 미리 걱정을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샐리 덕에 친구들은 날씨 때문에 휴가를 망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던 걱정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

 

‘브라운앤프렌즈 스토리북 시리즈’는 캐릭터를 이용한 에세이가 아니라 연작소설 형태의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점이 더 흥미롭게 읽힌다.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의 성격을 형성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로 듣게 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리고 매력 만점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일러스트도 가득 수록되어 있어 소장용으로도 참 예쁘다. 이번에 만난 시리즈 두 번째 책은 “너희는 좋겠다, 나라는 친구가 있어서!”를 거침없이 외치는 샐리만의 뻔뻔한 매력과 엉뚱한 상상력과 통쾌한 반전이 톡톡 튀는 이야기였다. 전체 다섯 권의 시리즈는 각권의 작가들이 달라 분위기도, 매력도 제각각이다. 가벼운 이야기들이라 어린 친구들이 읽기에도 좋을 것 같고, 브라운앤프렌트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시리즈 별로 모두 모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선물이 되어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잭슨은 글을 쓰면서도 부산스러운 집안을 관리하고, 네 아이와 애완동물들을 키우고, 20세기 중반 미국인 아버지의 전형적인 양육 방식대로 가정을 돌보지 않는 남편을 돌봤다. 남편이 문학 평론가이자 잡지 편집자, 교수로 일하는 동안 잭슨은 가정을 돌보면서 양육과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시간을 짜내어 글을 썼다. 1949년 인터뷰에서 잭슨은 이렇게 말했다. "제 인생의 절반을 아이들을 목욕 시키고, 옷을 입히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수선하는 데 쏟아붓고 있어요. 모두가 잠들고 나면 타자기 앞으로 가서 다시 창작열을 불태우려고 노력하죠."    p.161~162

 

모두 똑같은 24시간을 사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이루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메이슨 커리는 소설가, 작곡가, 화가, 영화감독 등 위대한 성취를 이룬 예술가들의 하루 루틴과 작업 습관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영감으로 일할 것 같은 예술가 대부분은 지독하리만치 규칙적이고 성실했으며 그 누구보다 더 엄격하게 습관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그에 대한 결과를 모아 <리추얼>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그 책에 등장하는 161명 중 여성은 단 27명뿐이었다. 이번 신간은 그러한 성비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131명 여성 예술가들의 하루에서 찾아낸 결정적 습관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는 루이자 메이 올콧, 도리스 레싱, 옥타비아 버틀러, 수전 손택, 메리 셸리, 버지니아 울프, 프리다 칼로, 이사도라 덩컨, 샬럿 브론테, 제인 캠피온 그리고 프랑수아즈 사강와 코코 샤넬, 마리 퀴리에 이르기까지 지난 400년간 이름을 알린 여성 예술가들이 살아온 보통의 하루가 소개되어 있다. 일상적인 걱정거리에 물들지 않았던 남성들의 이야기에 비해, 집안일과 창작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라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버지니아 울프는 '시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의 얼굴을 바꿔놓듯이 습관은 인생의 얼굴을 점차적으로 바꿔놓는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거의 평생 동안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끊임없이 글을 쓰며, 규칙적이고 질서 정연한 집필 습관을 유지했고 말이다. 

 

 

페버는 스물한 살 때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매일 아침 9시에 일어나 타자기 앞에 앉았고, 하루 천 단어를 목표로 잡고 글을 썼다. 항상 그 목표를 달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목표 달성에 성공해 50년 집필 경력 동안 소설 12권과 단편소설집 12권, 연극 각본 9개, 자서전 2권을 출간했다. 이 작가에게는 집필 환경이 중요하지 않았다. 페버는 수년 동안 사실상 어떤 환경에서도 글을 쓸 수 있게 스스로 를 단련했다.    p.295~296

 

성공한 인물들이 헌신적인 아내와 하인, 상당한 유산, 그리고 몇 세기 동안 누적된 특권에 힘입어 어려움을 극복했다면, 현실적으로 그다지 와 닿지는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대한 인물들의 일상도 생계유지와 식사 준비,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 보내기 같은 평범한 걱정거리 속에서 좌절하고 적절히 타협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다면 공감대 형성을 하게 된다. 도리스 레싱은 아이가 일어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식사를 챙겨주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진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집 안을 돌아다니며 집안 일을 병행했기에 끊임없이 일하다 말다를 반복해야 했다. 화가인 앨리스 닐은 두 아들을 혼자 키워야 하는 가난한 살림에 정부 보조금을 받아 생계를 이어나갔지만, 매일 상당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잠든 밤에 일을 했고, 나중에는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갔을 때 일을 했다. 그럼에도 그림을 중단해야겠다고 진지하게 고려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여성의 창의적 작업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사회에서 성장했고, 전통적인 아내와 엄마, 주부의 역할보다 자기표현 욕구를 우선시하려다가 부모나 배우자의 격한 반대에 부딪혔다.이들 중 많은 이들에게 돌볼 자식이 있었고, 부양가족의 욕구와 자신의 야망 사이에서 힘겨운 선택을 해야 했다. 그들은 대체 어떻게 글을 쓰면서 어떻게 아이를 돌보고, 잠을 충분히 자고, 집안일을 처리했을까? 위대한 인물들의 습관을 엿봄으로써 동기부여를 얻고 싶다면, 새해를 맞이해 나만의 루틴을 구축해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