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와이프
어설라 패럿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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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때 결혼했던 여자가 모두 전처는 아냐. 한때 누구의 아내였는지를 아는 것보다 지금 어디서 일하는지, 여행을 가거나 교향곡 연주회에 가는 걸 좋아하는지 따위를 아는 게 더 중요한 여자들이 있어. 그런 여자들은 전처가 아니지.'

그녀가 생각에 잠긴 눈으로 나를 보았다. '넌 전처야, 팻. 너를 떠난 남자와 한때 결혼했었다는 사실이 너에 대 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정보고…… 다른 모든 걸 설명하니까."            p.14~15


1929년 출간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당시 <위대한 개츠비>보다 네 배 이상 판매되었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화제였을지 짐작이 될 것이다. 어설라 패럿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지만,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와 함께 1920년대 재즈 시대를 그려낸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힌다. 어설라 패럿은 실제로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렀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 이 작품은 <이혼녀>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전처'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대화로 흥미로운 서두를 보여준다. 한때 결혼했던 여자가 모두 전처는 아니라고, 누구의 아내였는지를 아는 것보다 지금 어디서 일하는지, 여행을 가거나 교향곡 연주회에 가는 걸 좋아하는지 따위를 아는 게 더 중요한 여자들은 '전처'가 아니라는 거다. 당시의 여성들은 누군가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그녀에 대한 대부분의 것들을 설명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혼 후 '다시 사랑에 빠졌거나 더 이상 남편을 생각조차 안 한다면 전처가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의 독립적인 삶의 즐거움에 대해, 더 이상 남편에게 기대어 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인 한 존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거다.  결혼식 때 약속한 ‘영원한 사랑’과 ‘절대 순결’을 내던져버리고 “남자들처럼 모험을 위해, 순간적인 즐거움을 위해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라니... 이 작품이 발표 당시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타오르는 성냥불에 비친 그의 얼굴은 냉정해 보였다. 내가 알던 소년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패트리샤, 당신은 나를 당신의 '인생을 망친 남자'로 생각하겠지.'

나는 잠시 생각했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기 인생을 망치지. 아마도.'

"음. 당신이 내게 준 상처가 너무 컸어. 하지만 많은 걸 가르쳐주기도 했지."              p.228


패트리샤와 피터에게 아기가 생겼을 당시, 그들의 나이는 스물두 살, 스물한 살이었다. 피터는 아기를 어떻게 부양할 것인지 걱정하거나, 아내가 얼마나 망가질지, 다시 예뻐질 수 있을지를 걱정하며 무척 불안해했다. 패트리샤는 아기에게 푹 빠졌지만, 어느 순간 의욕을 상실한 듯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친정집에서 아기와 3개월을 보낸 뒤 다시 뉴욕으로 올라왔지만, 이틀 만에 아기가 죽는다. 피터는 패트리샤가 아기 때문에 너무 많이 운다며 짜증스러워 했고, 패트리샤는 피터가 아기 때문에 전혀 슬퍼하지 않는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3년 동안 서로를 사랑했고, 4년 차의 절반 동안 서로를 미워했고, 결국 이혼한다. 두 사람은 어릴 때 결혼했고, 둘 다 직장을 다니면서 술과 담배, 댄스파티, 쇼핑을 즐기며 살았지만, 아기를 잃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남편의 외도 등 여러 가지 일들로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패트리샤는 이혼 후에도 여전히 젊고 예뻤으며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즐기며 살았다. 그렇게 이전 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여성, ‘엑스와이프’의 삶이 펼쳐진다. 


이 작품은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와 동시대의 작가이기에 그들은 그릴수 없었던, 오직 여성 작가이기에 가능했던 '현대 여성'의 시점을 그렸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파탄 난 결혼, 낙태, 원나잇 스탠드 등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파격적이고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었을 것이다. 직업적으로, 결제적으로, 낭만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여성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지금 읽어도 굉장히 현대적이라 놀라웠다. 무엇보다 ‘영원한 사랑’과 ‘절대 순결’을 내던져버린 여성의 해방을 경쾌하게 그려내는 서사 자체가 한 편의 영화처럼 흥미진진하다. “피츠제럴드의 시선을 여성의 관점으로 옮겨놓은 듯한 작품”이라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말처럼 색다른 고전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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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루민
오카베 에쓰 지음, 최현영 옮김 / 리드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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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이, 왜 아까부터 그런 표정 짓고 그래. 알았어, 알았어, 자백할게. 상당 부분, 루민 씨에게 들은 이야기야.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거 아니냐고? 하지만, 이런 건 좋은 영향이잖아? 살롱에 들어간 후,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도 좋아졌어. 그러는 자기도 아까부터 책장을 넘기면서 흘끗흘끗 보고 있잖아. , 아니라고? 그럼 뭘 보고 있는 거야? , 루민 씨 사진. 얼굴도 예쁘지? 마음은 더 아름다운 사람이야. 정말 닮고 싶다니까.             p.17


그 사람은 정말 사고방식이 멋진 사람이야, 와 그 사람은 정신병자예요, 라는 문장이 한 사람을 향한 평가라면 믿을 수 있을까. 누구나 다른 면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가 있을까. 가만히 가만히 있어도 스포트라이트가 알아서 비춰 주는 사람, 박수갈채가 어울리는 사람, 모두가 동경하는 사람이라는 평가와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 마음을 조종하는 사람,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같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동일 인물이라니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마'가 되는 사람의 실체는 대체 무엇일까.


이 책은 인기 에세이 작가이자 미모의 여성인 '나카이 루민'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화자는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루민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는 조사를 시작하는데, 16명의 인터뷰 내용을 읽을 수록 점점 더 루민의 실체는 오리무중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중간 중간 루민이 직접 쓴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당사자의 입장을 들어도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루민은 과연 천사인가, 악마인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화자인 ''는 과거의 비밀을 숨긴 채,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루민에 대한 진실을 찾기 시작한다. 여러 인물들이 들려주는 루민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으면 루민이라는 캐릭터가 현실에도 어딘가 존재할 법하다고 느껴져서 오싹해 지는 순간이 있다. 나 이런 사람 알아, 라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올 것이다. 그래서 더 빠져들어 읽게 되는 작품이었다.




루민 씨의 거울은 이상적인 모습만 비춰 주어야 해요. 자아를 가진다는 건 당치도 않죠. 그러니까 거울이 된 사람은 루민 씨에게 전적으로 자아를 빼앗겨요. 루민 씨에게 불리한 사실은 왜곡되고, 모순은 모두 거울의 책임으로 돌려져서 거울이 대가를 치러야 해요. 그런 식으로 거울은 언제나 루민 씨의 찬란한 모습만을 비출 것을 요구받아요.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 거울은 처참하게 산산조각이 날 뿐이에요. 분통 터지는 일은, 자기가 루민 씨의 거울 노릇을 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산산조각이 날 때라는 거예요.                p.272~273


루민은 <당신은 더 빛날 수 있다!>라는 책을 저자로서 독자들에게 책을 읽고 "구원받았다." ,"인생이 바뀌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온라인 살롱의 운영자로서는 "진심으로 공감해 주니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이 나이에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다니 행운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학창시절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에게는 한 친구가 자살 미수 사건을 일으킬 정도로 괴롭혔으며, 그래 놓고 사과하는 척 찾아가 그 가족들을 자기편으로 만들 정도로 무서운 아이였다고 기억된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 글쓰기 모임의 참가자들에게는 잘못을 해놓고도 사과하지 않는 사람, 남의 아이디어를 빼앗아 자신의 글처럼 쓰는 사람이라는 증언이 들려 온다. 과연 어떤 모습이 진짜 루민일까.


16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루민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그녀는 매번 다른 모습과 상황으로 각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독자들은 오직 그녀가 하는 행동이나 대사들로 그녀의 정체를 완성시켜나가야 한다. 루민이 직접 쓴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지만, 애초에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쓴 글이라 실상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제각각 다른 에피소드들이 마치 퍼즐처럼 한 조각, 한 조각 완성이 되어가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호감과 동경, 원망과 두려움의 감정을 오가며 구체화되는 인물에게 일종의 위화감, 혹은 두려움 같은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작품의 원제가무서운 친구(いトモダチ)’라고 하는데, 정말 이런 인물이 있다면 너무 무서울 것 같다. 누군가에게 친절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정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소릴 듣는 사람이 다른 곳에서는 무서운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공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오는 이 독특한 미스터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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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호더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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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폭풍이 몰아치고, 거대한 나무는 쓰러지기 직전이고, 내 옆엔 칼을 든 피투성이 아이가 서 있다. 오늘 밤 나는 아이를 집으로 들이려고 한다. 이 밤에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놀랍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문을 밀어 열고 아이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한다. 잠시 망설이던 아이는 급히 안으로 들어선다. 문을 닫는 순간, 아이를 집 안으로 들인 결정이 심각한 실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등골을 타고 올라온다.              p.72


천둥 번개를 동반한 시속 100킬로미터의 강풍이 불어 닥칠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시작된다. 숲속 오두막에 사는 케이시는 낡은 지붕이 걱정이다. 며칠 전부터 집주인에게 부탁이 아니라 거의 애원하다시피 지붕을 고쳐 달라고 했지만, 여전히 방치된 상태다. 오두막의 지붕이 무너지거나, 오두막 위로 우뚝 솟아 있는 나무가 쓰러지거나 어느 쪽이든 위험하다. 케이시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다 쫓겨난 이후 잠시 문명과 단절된 삶을 살아보고자 이 집에 왔다. TV도 없고, 휴대폰도 처분해 버렸다. 낡고 오래된 오두막이 거센 폭풍우를 견뎌낼 수 있을 지가 문제다. 물론 케이시가 오늘 밤 그로 인해 죽는다 해도 자신을 그리워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결국 그날밤 폭풍우가 밀어닥친다. 오두막은 정전이 되고, 전화도 불통이고, 도로 사정도 엉망이라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다. 어떻게든 오두막에서 버텨 보기로 하고 나름의 준비를 해본다. 그런데 창고에 숨어 있는 피범벅인 여자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손에 칼을 쥐고 있는 아이의 배낭에서도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자신을 경계하는 수상한 아이를 달래 집으로 들여 음식을 챙겨주고, 침대를 양보해주지만 자신이 잘한 건지 케이시는 의문이 든다. 폭풍이 몰아치고, 거대한 나무는 쓰러지기 직전인데, 칼을 든 피투성이 아이를 집으로 들였으니 말이다. 아이는 경계심 많은 야생동물처럼 날을 세우고 있었고, 이름이 뭔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심한 학대를 당해온 것처럼 보였다. 기껏해야 중학생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곳까지 오게 된 걸까. 케이시와 아이는 폭풍우 치는 밤을 무사히 버텨낼 수 있을까. 




경찰에 전달하겠다며 넬에게 집 주소와 열쇠를 건네받은 나는 경찰서를 지나쳐 곧장 매사추세츠를 향해 달리고 있다. 내가 하려는 일을 리가 알면 기절초풍하겠지만 나는 멈출 수 없다. 리는 법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 엄마 같은 사람과 살아본 적이 없을 테니까. 

아이들을 오래도록 지켜본 사람만이 아는 세계가 있다. 내가 넬과 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매사추세츠를 향해 달려가는 이유다.           p.310


이 작품은 지금 가장 핫한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프리다 맥파든의 신작이다. <하이드메이드> 시리즈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후에 출간된 <네버 라이>, <더 코워커>등의 작품들이 연이어 잘 되면서 거의 전작품이 다 출간될 기세로 줄줄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프리다 맥파든의 작품은 항상 중독성 있는 스토리로 페이지 터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구성도 탁월하고, 반전도 놀라우며, 현실적인 캐릭터까지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들어줄 요소들로 가득하다. 스릴러 장르에서의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프리다 맥파든의 작품들은 눈을 뗄 수 없는 전개로 그걸 해낸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극강의 재미를 선사해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신작은 판형도 작고, 그리 두껍지 않은 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몰입감이 대단한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폭풍우 치는 오두막에서 사투 중인 케이시의 현재와 과거 엘라의 학창시절이 교차로 진행된다. 비밀을 가지고 있는 소녀와 과거에 무슨 사건에 연루되어 학교를 그만둔 여성, 그리고 주변에 있는 수상한 남자들, 폭풍우 치는 밤에 고립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심리전이 대단했다. 프리다 맥파든은 이 작품에서 가정 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친권자인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 가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이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버리는지, 가정 내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어떻게 무기로 변하는지, 매일 폭력을 당하면서도 부모 곁에 있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느 나라에서 일상화된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존재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현실 속 엘라와 앤턴, 케이시가 끝내 포기하지 않기를,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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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호더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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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극강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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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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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메리앤이 탄성을 올렸어요. "옛날에는 나뭇잎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얼마나 황홀한 느낌에 휩싸였는지 몰라! 산책하면서, 바람에 날려 사방에서 소나기처럼 휘몰아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즐거웠는지! 낙엽, 계절, 공기가 어우러져 내 안에 일으키던 감정들은 또 얼마나 풍부했는지! 이젠 그렇게 바라볼 사람도 없겠네. 귀찮은 일거리로만 여기고 황급히 다 쓸어서 눈에 안 보이는 데로 치워버릴 테지."

"모든 사람이 너처럼 죽은 나뭇잎을 열렬하게 좋아하는 건 아니야." 엘리너가 말했지요.                p.140


사실 대부분 제인 오스틴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은 남녀가 서로 오해하고, 헤어지고, 갈등하고, 다시 만나는 서사, 즉 로맨스 소설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이다. 하지만 그 편견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것이 1811년에 출간된, 제인 오스틴의 첫 소설, <이성과 감성>이다. 로맨스, 이성과 감성의 대립 구도 외에도 당대의 중요한 정치,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사회적 문제의식을 문학적으로 매우 뛰어나게 구현시킨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선형 번역가는 이 작품에 대해 '번역만으로는 옮길 수 없는 중요한 행간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에 대한 내용은 <디어 제인 오스틴>이라는 에세이에서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 


<이성과 감성>은 매사에 지나치게 신중한 맏딸 엘리너의 절제된 이성과 매사에 지나치게 감정적인 둘째 메리앤의 정직한 감성이 가족에게 닥친 위기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그로 인해 오랜 세월 살아온 저택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게 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에 맏딸인 엘리너와 둘째 메리앤의 완전히 상반된 성격의 차이가 사사건건 부딪히며 극에 재미를 더해준다. 두 자매의 성향 차이는 각자의 남성관에도 반영되어 이들의 로맨스 서사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18세기의 감성은 21세기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고, 타인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이성적인 면에 있어서는 이해는 하지만 다소 안타까운 부분도 들 것이다. 두 자매의 행동과 사고는 지나치게 극단적이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있는 두 가지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성과 감성이 모두 필요한 것이기에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야 할텐데, 그것도 쉽지만은 않은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 속 두 자녀의 이야기를 보며 언제쯤 이성과 감성이 '소통'할 수 있게 되느냐에 포인트를 주는 것도 작품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엘리너는 차마 명랑할 수 없었어요. 그 기쁨은 종류가 달라서 다른 감정은 몰라도 명랑함으로 이어지진 않았어요. 메리앤이 구사일생으로 회복해 삶, 건강, 친구들을 되찾고 애지중지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살아 돌아왔다는 생각을 하면 심장이 섬묘한 위안의 감각으로 가득 차올라 열렬한 감사로 뜨겁게 팽창했어요 ─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기쁨도 드러나지 않았고, 어떤 말이나 미소로도 표현되지 않았답니다. 오직 엘리너의 가슴속에서만, 그 고요하고 강인한 만족감이 머물러 있었어요.                p.477~478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은 제인 오스틴이 태어난 지 정확히 250주년이 되는 2025년 12월 16일을 시작으로, 매년 두 권씩 삼 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나올 예정이다. 작가가 생전 완성된 여섯 권의 소설을 출간된 순서에 따라 출간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이 나왔고, 내년에 <맨스필드 파크>, <에마>, 그리고 내후년에 <노생거 애비>와 <설득>이 차례로 출간된다. 그리고 두 작품에 대한 번역가의 에세이도 해마다 함께 출간된다. 제인 오스틴의 생일에 맞춰 초판 발행일자를 맞추는 것부터 번역가의 애정 가득한 에세이를 함께 내는 것까지 정말 사랑스러운 기획이다. 각 소설을 해석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건져 올린 번역가의 단상들을 엮은 에세이도 매우 기대가 된다. 


<이성과 감성> 역시 다양한 판본으로 이미 나와 있지만,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이 특별한 것은 바로 '각주'에 있다. 김선형 번역가는 영미권에서 출간된 여러 유력한 오스틴 판본과 연구서, 제인 오스틴 북클럽 등에서 얻은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방대하고 꼼꼼한 주석을 달았다. 고전 문학을 읽을 때, 옮긴이의 주석을 꼼꼼히 다 살피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선형 역자의 각주들은 일부러 찾아서 읽고 싶을 만큼 깊이 있고, 재미있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부연 설명을 비롯해 이 두 단락은 오스틴의 작품 중 남자 주인공을 처음 소개하는 묘사 중에서도 가장 길고 친절하다 라던가, 이 대화는 독자가 인물의 행동을 이해하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식이다. 또한 작품에서 매우 중요하게 쓰이는 표현에 대한 원문과 해석, 단어의 문맥적 의미 등 깨알같은 팁들로 가득하다. 각주를 잘 따라가다 보면 시대적, 사회적 맥락을 더욱 잘 이해해 이 작품을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번역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앞으로 이어질 다른 작품들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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