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이사이드 클럽 스토리콜렉터 83
레이철 헹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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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를 넘겼다. 두려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감시 대상자가 됐다. 하지만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녀 정도면 감시대상자 명단에는 이름이 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그녀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없지만, 상습적으로 이혼하는 사람들이나 실직자들 또는 인지능력이 손상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레아는 훌륭한 라이퍼였다. 그녀는 헬스핀에서 일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왔다. 정부 당국도 이 사실을 갈고 있지 않은가?     p.28

 

'영원한 삶'이란 인류의 오랜 숙원이지만, 사실 그것은 결코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우리의 욕망이다. 하지만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영생에의 꿈은 실제 현실에서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을 높이는 것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70년대만 하더라도 63세 안팎이던 인간의 평균 수명은 현재 80세 안팎이지만, 점차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100세 시대'라는 말로 미리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거기서 더 나아가 평균 수명이 300세에 이른 근미래의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제1의 물결이라 칭해지는 과거에 인간은 150세 가까이 살았고, 제2의 물결이라 하는 현재는 300세 이상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제3의 물결이 시작되면 인간은 영원불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인 걸까.

 

미래의 뉴욕 시민들은 태어나자마자 수명을 알리는 숫자를 부여 받는다. 좋은 유전자를 타고난 신생아는 ‘라이퍼’로 분류되어 몇백 년의 삶을 살기 위한 정부의 온갖 지원 혜택을 받는다. 반면, 상대적으로 열등한 유전자는 '비라이퍼'로 분류되어 정부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채 병에 걸리거나 노화되어 일찍 삶을 마감하게 된다. 수명 연장자로 분류된 라이퍼들은 정부의 영생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가능한 한 오래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영원한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주인공인 레아 기리노 역시 완벽한 유전자를 타고난 라이퍼로 이제 막 100세가 된 참이다. 그녀는 금융사에서 일하며 파격적인 승진을 앞두고 있으며, 고급 아파트에서 완벽한 연인과 멋진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삶이 뒤바뀌는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느 날, 출근길에 88년 전에 사라진 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뒤를 쫓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이후 정부의 감시자 명단에 오르게 되면서 완벽했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왜 묻는 거죠?" 그가 물었다. "당신도 명단에서 이름을 없애고 싶어요?"
"아니요." 레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하지만 위커버리 모임에 더는 나가고 싶지 않아요."
"생각해봐요." 마누엘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그들이 어떻게 할까요? 수명연장 치료를 중단할까요? 당신의 수명을 줄일까요? 아니면 당신을 죽게 내버려둘까요?"     p.278~279

 

회사와 집을 오가며 오직 건강만을 좇는 삶이란 어떨까. 식사로는 정부에서 권장하는 뉴트리팩과 향료가 첨가된 단백질 음료 정도에, 육류와 과일은 금지되었으며, 신체적으로 무리가 갈 수 있는 조깅은 명상으로 대체되었다. 같은 나이의 '라이퍼'들은 생김새는 달랐지만, 키와 근육의 탄력까지 거의 똑같은 체형을 유지했다. 사람들은 상대를 보며 근육과 피부의 상태, 비타민D, 코르티솔 수치 등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 중에 일부는 정부의 수명유지 시술과 금욕적인 삶에 지치고 환멸을 느껴 비밀리에 모임을 가지기 시작한다. 일명 '수이사이드클럽(SuicideClub)'으로 그들은 라이브 음악 공연을 들으며 동맥경화에 가장 안 좋다는 전통 음식들을 진탕 먹고 마시는 파티를 열어왔다. 인구 감소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정부에서 이렇게 라이퍼들이 영생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리 없었고,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시작한다. 레아가 정부의 감시자 명단에 오른 것도 그것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그녀가 일부러 차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SF 디스토피아 소설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가능한 한 오래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영원한 삶을 살기를 희망하는 것은 극중 인물들만큼이나 현재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유전자에 따라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한 가족 안에서도 누군가는 일찍 죽음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수명 연장이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정부의 통제와 억압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말이다. 삶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니, 유한한 삶 속에서 살아 있는 순간을 마음껏 즐겨야 한다는 쪽과 완벽한 두뇌와 외모를 갖추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쪽,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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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키스 링컨 라임 시리즈 12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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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땅치 않은 것은 링컨 라임의 타운하우스가 아니라 이곳에서 수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젠장.
라임이 경찰 자문 업무에서 손을 뗐다는 사실이 불만이었다. 아주. 개인적으로 색스는 서로 주고받는 자극, 자아의 부딪힘, 그런 상태에서 흘러나오는 창조력이 그리웠다. 그가 일을 그만둔 뒤로 색스의 생활은 마치 온라인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 같았다. 정보는 같지만, 그 정보를 두뇌 안에 집적하는 과정이 대폭 축소되었다.    p.84~85

 

아멜리아 색스는 인간 군상 수만 명이 득실거리는 도시 한복판에서, 우연히 인상착의가 용의자와 유사한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185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몸무게는 60, 70킬로그램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체형의 호리호리한 남자는 클럽 이름을 따서 붙인 수사 명으로 '범인 40'이라 불렸다. 그는 퇴근 후'40도 북쪽'이라는 클럽에 가던 스물아홉 살의 맨해튼 시민이 강도가 든 둔기에 맞아 끔찍하게 사망한 사건의 용의자였다. 색스는 범인의 뒤를 쫓아 5층 건물 쇼핑센터에 들어가며 지원 인력에게 상황을 알린다.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간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지원 인력과 함께 준비 중이던 색스는 갑작스럽게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듣게 된다. 목소리는 에스컬레이터 꼭대기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한 남자가 에스컬레이터의 열린 패널 속으로 몸이 떨어져 허리가 절반으로 잘리고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색스는 남자를 구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하지만 피해자는 출혈 과다로 사망하고, 그 혼란을 틈타 범인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문제는 사회다. 그들은 소비하고, 소비하고, 소비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물건을 수집하고, 물건을 수집하는 데 집중한다. 달리 말해 저녁식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야만’ 하고, 가족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여서 소통하는 자리여야 한다. 최고의 오븐, 최고의 만능 조리기구, 최고의 블렌더, 최고의 커피메이커를 뽐내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물건들에 집중한다,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 아니라.    p.562

 

한편, 라임은 이제 더 이상 뉴욕 시경을 위해 일하지 않는 상태로 등장한다. 한 달 전 라임은 사건 수사 업무를 정리하고 형사행정학교 교수직에 지원했다. 법과학 수업 교수로서의 라임 역시 너무도 훌륭하지만, 색스는 그와 함께 수사를 할 수 없는 점이 매 순간 아쉽기만 하다. 라임이 수사에서 손을 떼자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라임과 색스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시리즈와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생성된다. 라임의 수업을 듣는 제자인 줄리엣 아처가 그의 조수를 자처하며 비공식 인턴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그녀 또한 라임처럼 휠체어를 몰고 다니는 데다 색스와는 또 다른 명석함으로 라임에게 도움을 죽고 있기 때문이다. 라임과 별개로 범인 40을 추적하는 색스의 수사와 엘리베이터 사건의 배후를 파헤치게 된 라임과 아처의 수사가 별개로 진행되다 서로 교차되는 순간, 법의학 스릴로서의 재미는 정점으로 향하게 된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그 동안 굉장히 다양한 소재들로 살인마들을 등장시켜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사물인터넷(IoT) 서버를 해킹하여 원격으로 살인을 하는 색다른 범인이 등장한다. 수천 가지 기계, 도구, 냉난방 시스템, 차량, 산업용 제품들에는 소비자가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 조종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이런 장치들은 우리의 삶을 훨씬 편하게 만들어 주지만, 제조사가 수집하는 우리의 데이터는 안전한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스마트 시스템이 오작동할 때 부상과 죽음의 위험이 있다는 점이 취약한 부분이다. 이 작품에서 범인은 바로 그 스마트 컨트롤러를 손에 쥐고 엘리베이터, 냉장고, 자동차, 오븐처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제품들을 살인 무기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친숙하게 사용되고 있는 온갖 스마트 제품이 어느 날 살인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지점이 더욱 현실적인 스릴과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오랜 만에 만나게 된 링컨 라임 시리즈 신작이라 정말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보통 국내 번역이 2년에 한번씩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링컨과 색스가 처음 만났던 <본 컬렉터> 사건을 변주했던 전작 <스킨 컬렉터> 이후 무려 3년이나 걸렸다. 링컨 라임 시리즈 그 열 두 번째 작품 <스틸 키스>는 표지 색감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물론 또 판형이 달라져서 시리즈로서의 통일감은 잃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신간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대체 왜 해리 보슈, 미키 할러, 그리고 링컨 라임 시리즈까지 모두 시리즈 중간에 자꾸 판형과 디자인을 바꾸는 건지 궁금하긴 하다. 이 시리즈는 이번에 나온 'The Steel Kiss (2016)' 이후에도 'The Burial Hour (2017)', 'The Cutting Edge (2018)' 까지 현재 열 네 번째 작품까지 출간되어 있다. 빨리 다 만나보고 싶은데, 국내 번역본을 만나려면 또 시간이 필요하지 싶긴 하다.

 

경찰 애인에게 배신당해 경찰이라는 직업 자체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순찰 경관 색스와 사고로 전신마비를 당하고 경찰을 퇴직해 삶을 포기하려던 라임이 인간의 뼈에 집착하는 본 컬렉터 사건을 맡으면서 시리즈가 시작되었던 것이 2009년이니 벌써 까마득하게 오래 전 일이다. 그 이후로 링컨 라임과 색스는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연인이 되고, 든든한 동료가 되어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라임의 투덜거림을 다 받아주는 톰과 여전히 신참 같은 매력을 풍기는 론 풀라스키를 비롯해 멜 쿠퍼, 론 셀리토 등 라임의 수사팀들도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더 애정이 느껴져서 마치 살아 숨쉬는 인물들처럼 느껴지는데, 이게 바로 시리즈만의 묘미이기도 할 것이다. 반전에 반전, 거기다 다시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고, 꼬면서 몇 번의 반전이 거듭되어도, 개연성에 대한 의심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플롯을 자랑하는 링컨 라임 시리즈라 매번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반전을 선보일 것인지 기대하는 재미도 특별하다. 제프리 디버에게 반전의 제왕이라는 수식어 자체는 평범할 수도 있지만,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반전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두뇌형 인간인 링컨 라임과 전직 모델 출신에 직감이 뛰어난 권총 명사수 색스의 활약을 만나 보자. 시리즈가 이미 너무 많이 진행되어 어떤 작품부터 읽어야 할 지 고민이라면, 바로 이 작품부터 시작하면 된다. 대부분의 시리즈들이 그러하듯이, 어떤 작품부터 시작해도 링컨 라임 시리즈만의 매력에 푹 빠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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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니 트윌과 대마법사 시어니 트윌과 마법 시리즈 3
찰리 N. 홈버그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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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유리 파편에 담긴 과거의 기억들은 점점 더 빨리 뒤로 흘러갔다. 유리 마법 견습생이 견습 첫해에 주로 배우는 이 마법은 시어니가 알고 있는 종이 마법을 거의 다 합친 것보다 더 복잡한 수준이었다. 영국에서 종이 마법의 인기가 왜 시들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낮, 밤, 낮, 다시 밤. 떨어지는 빗방울. 맥주병의 파션 속에 흘러가는 기억들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아직까지 쓸모 있는 장면은 없었다.    p.118~119

 

이 작품은 '시어니 트윌과 마법 시리즈' 그 세 번째 이야기이다. 시리즈의 시작은 태기스 프래프 마법학교의 최우수 졸업생인 시어니 트윌은 금속 마법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해왔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종이 마법에 배정되는 걸로 포문을 열었었다. 현재 활동 중인 종이 마법사의 수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어 아무도 원치 않는  ‘종이 마법’ 견습생이 되고 만 시어니는 유리, 금속, 플라스틱, 고무 등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마법 재료 등이 많았는데, 고작 사양의 길을 걷게 된 종이 마법이라니 한숨이 나왔지만, 견습생 생활을 하게 된 에머리 세인 마법사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그에게 종이 마법을 전수받으면서 차츰 종이 마법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1권에서는 금지된 마법을 행하는 흑마법사 리라가 훔쳐간 세인의 심장을 되찾기 위한 위험천만한 모험이 펼쳐졌었다. 그리고 2권에서는 영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신체 마법의 공격에 맞서 필사적으로 싸우게 되는 시어니와 에머리의 이야기가 그려졌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어니는 마법사는 엄청난 비밀인 '평생 한가지 재료만을 사용할 수 있다는 법칙'을 깨는 방법을 알게 된다.

 

이어지는 3권에서는 원래 끊을 수 없게 돼 있는 종이와의 결합을 몇 번이나 끊었다가 다시 이어 붙이며 다양한 재료로 여러 마법 들을 시도해 본 상태의 시어니가 등장한다. 그녀는 에머리 세인 마법사 밑에서 견습을 시작한 지 2년하고도 일주일이 되는 날 마법사 자격시험을 치를 계획이었고, 이제 겨우 몇 달 뒤면 바로 그 날이었다. 특히나 그녀가 자신의 계획대로 마법사 자격시험을 통과해야만 하는 이유는, 에머리와 그녀의 사랑을 눈치채기 시작한 사람들에 의해 앞으로는 동성인 다른 마법사 밑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마법사와 성별이 다른 견습생을 금지하기로 결정이 났고, 그래서 백 명 이상의 견습생들이 재배치될 예정이었다. 에머리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시험관을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베일리 마법사로 바꾸고, 시어니는 시험을 치르기 전 2주일 동안 베일리의 집으로 가서 그의 견습생과 함께 지내야 했다. 에머리와 베일리는 서로 아주 싫어하는 관계였고, 메일리의 성격 또한 만만치가 않아 시어니가 과연 시험을 제대로, 공정하게 치를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된다. 그리고 2권에서 시어니의 친구를 죽게 만들었던 신체 마법사 사라즈가 사형 집행을 위한 이송 중에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시어니는 사라즈에 맞서기 위해 그의 뒤를 쫓는다.

 

 

시어니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지만 눈 중앙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 순간 시어니는 자신이 아무리 대단한 힘을 가졌고 만반의 준비가지 했다 해도 에머리의 심장을 마냥 편하게 해줄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그의 심장은 이미 부서지고 상처받았다. 적어도 떨리는 심장만큼은 진정시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온전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p.320

 

'시어니 트윌과 마법 시리즈'는 총 3권과 1권의 번외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지난 4월에 1권과 2권이 함께 출간되었고, 이번에 3권이 나왔으며, 곧 외전도 나올 예정이다. 이 시리즈는 곧 디즈니플러스에서 영화로도 만들어 진다고 하니 제2의 해리포터처럼 될 지 기대가 된다. 사실 이 작품은 표지 이미지에서부터 느껴지듯이, 해리 포터류의 성장 서사보다는 로맨스 드라마에 가까운 장르이다.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마법 소녀가 견습생에서 정식 마법사가 되는 과정, 그리고 어둠의 마법을 사용하는 악의 무리와 겪게 되는 모험 서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무엇보다 인간이 만든 재료들인 종이, 유리, 금속, 고무, 플라스틱 등과 결합한 마법사들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흥미로운 시리즈이다. 이야기의 배경인 20세기 초 런던의 풍경과 작가가 만들어낸 마법 세계관이 잘 어우러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종이라는 재료로 동식물과 같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물론, 눈송이 같은 자연물, 폭탄이나 장거리 메신저까지 만들어내는 '종이 마법' 또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시어니가 모든 재료의 마법을 다루게 된 상태로 등장하기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하다. 다양하고, 화려해진 마법 장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1권, 2권에 비해 마법사들과의 대결 장면에서의 볼거리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법사 자격시험을 앞두고, 그 동안 서서히 쌓아왔던 시어니와 에머리의 가슴 설레는 로맨스 역시 점점 완성 단계로 향한다. 판타지와 로맨스가 함께 하는 시리즈이지만, 전혀 유치하지 않고, 오글거리지도 않고 그 중간에서 딱 균형을 잡고 있어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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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장미 인형들
수잔 영 지음, 이재경 옮김 / 꿈의지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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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자애들은 외모를 중요시하지 않아." 펜션트 교수가 훈계했다. "파자마 차림으로 영화관에 가고, 지저분한 머리로 슈퍼마켓에 가고." 그는 그런 부류의 여자애들이 역겹다는 듯 코를 찡그렸다. "하지만 너희는 자나 깨나 외모를 뽐내야 해. 어떠한 예외도 없이. 왜 그렇지?"
"아름다움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자산이니까요." 우리는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이 적절한 대답이라는 것을 아니까. 우리가 그걸로 점수 매겨진다는 것을 아니까.    P.52~53

 

외딴곳에 고립되어 있는 사립 여학교 이노베이션스 아카데미에는 장미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소녀들이 있다. 소녀들은 방학 때도 집에 가지 않고 일 년 내내 교정에 갇혀 집중 교육을 받으며, 학교로부터 과한 보호를 받고 있다. 최근에 아카데미는 과목 수와 훈련 양을 늘리며 교육과정의 강도를 높였고, 그 상향 조정된 기준에 따라 선발된 열두 명의 소녀들은 최고의 재색을 갖추고 있었다. 필로미나는 현장학습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잠시 들른 주유소의 매점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이유로 사감에게 폭력적 훈계를 듣고, 밸런타인은 그에게 반항적인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충동억제치료를 받게 된다. 충동억제치료는 계도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판단될 때 받는 벌로, 보통 울면서 들어갔다가 24시간 후에 좋아져서 나오게 되는데 치료가 끝나면 기억이 알아서 지워져 어떤 치료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두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 하는 과정이라 소녀들은 그저 학교와 관리자들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인 레논로즈가 사라지고 필로미나는 그녀의 방에서 작은 가죽 장정 책을 발견한다. '가장 날카로운 가시들'이라는 제목의 시집이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도 폭력적이고 분노가 어려있었다. 소녀들이 상황을 바꾸고, 자유를 얻고, 주도권을 잡는다는 식의 이야기는 생전 처음 읽어본 필로미나에게 그 책은 지금까지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모든 가치관을 뒤흔들리게 할 만큼 강력한 충격을 선사한다. 그리고 자신이 매일 먹던 비타민이라는 이름의 캡슐에 뭔가 수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친구들에게 그에 대해 알리고, 함께 책을 읽으며 학교의 의심스러운 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그들이 교육받고, 갇혀 있고, 훈련 받는 방식에 대해서 지금까지 속아왔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착하고 상냥하던 소녀들이 스스로 깨어나 학교의 엄청난 비밀을 파헤치기 되면서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너는 시키는 대로 한다." 그가 읊조린다. "너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에 감사한다.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몇 달 후 학교와 부모가 너의 미래에 대해 내리는 결정에 무조건 따른다. 너의 미래는 우리가 결정해. 너는 거기에 신경 쓸 필요 없어." 그가 말을 멈추고 허리를 굽힌다. 그의 얼굴이 보인다.
"너는 아름다운 장미야, 필로미나." 그가 말한다. 마치 그게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인 것처럼. "우리가 완벽하게 가꾼 장미. 너는 모든 남자가 꿈꾸는 트로피가 될 거야."      P.267

 

사교 에티켓의 폭넓은 훈련을 통해 엘리트를 양성하는, 전국에서 가장 명망 있는 예비신부학교라는 설정부터 수상하기 그지 없는데, 이런 곳에 자녀들을 보내는 재력가 집안의 부모들 역시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소녀들은 매일 밤 사감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타민이라 불리는 약을 먹고 잠을 자고, 마치 화원 속의 장미처럼 남자들에 의해 배양되고 있다. '오직 아름다운 것들만이 가치 있다'고 부르짓는 교수들, 언제나 남자들이 기대하는 최고의 품행을 보여야 하고, 그들에게 상냥함과 정숙을 보여주는 아름답고, 공손하고, 순종적인 신붓감이 되는 것이 소녀들의 당연한 목표였다. 그녀들에게는 아카데미의 투자자들과 후원자들에게 '아름답고 순종적인 소녀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보여주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순응은 매력적인 자질이야. 사람들은 너희 의견을 반기지 않아. 입 다물고 듣기만 해. 이것이 모든 젊은 여자들에게 필요한 교훈이야.”라는 극중 교장의 말도 이상하지만, 그에 대해 아무런 의견이나 반항 없이 그저 순종하는 소녀들의 모습 또한 어딘가 비정상적이다. 그랬던 소녀들이 질문하기 시작하고,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그 모든 거짓과 기만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저자인 수잔 영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 특별한 헌사를 담았다. 이 책은 오랫동안 고통당하며 투쟁해온 소녀들을 위한 것이라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그녀들을 믿고, 함께 싸우겠다고 말이다. <시녀 이야기>의 계보를 이을 젊은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홍보 문구 만큼의 서사를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이 작품이 오늘날 가장 논쟁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첨예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름답고 비범한 소녀들이 세상을 향해 펼치게 될 반격을 만나 보자. 장미는 아름답지만, 그게 장미의 전부는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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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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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것과 소중한 것은 다르다. 우리의 가족, 친구, 연인이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여서 소중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주어 소중해지는 것처럼, 나 자신과 내가 가진 것을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자존감은 채워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존감이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마음이라 착각하곤 하지만, 자존감은 특별하지 않더라도 그런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현실을 잊게 하는 마취제가 아닌, 현실에 발을 딛게 하는 안전장치인 것이다.     p.44

 

2016년에 출간되어 100만 부를 돌파한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의 저자 김수현의 신작이다. 당당하게 "나로 살기로 했다"고 외치던 저자는 4년 만에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와 "나를 지키는 관계 맺기"를 이야기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큰 고민거리가 없었던 저자는 어느 날 깨닫게 된다. 내가 완벽하게 신뢰했던 관계를 상대는 전혀 다르게 여기고 있었고, 상대의 마음을 잘 다루는 줄 알았던 자신의 실체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뭘 잘못한 건지, 뭘 놓친 건지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점차 관계가 어려워졌다. 이 책은 어떻게 관계를 맺고, 마음을 표현하고, 상대를 사랑해야 하는지 오랜 고민의 결과를 담고 있다. 자존감을 지키며 나답게 사는 법, 타인과 조화롭게 지내면서 당당하게 사는 법, 마음을 표현하는 법, 그리고 사랑을 배우는 과정을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풀어내고 있다

 

언젠가부터 '인싸'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는데, 타인의 관심을 목말라 하는 현대인의 특성상 누군가가 인싸가 되면 또 누군가는 아싸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꼭 무리에 잘 섞여 노는 사람,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인기 있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을까. 이 책에 따르면 삶에 필요한 인간관계의 양은 사람마다 다른데, 소속감이나 친밀감에 대한 욕구 역시 사람마다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니 무'조건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가진 욕구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관계의 양을 찾아가는 일'이라는 거다. 저자는 어릴 때 어른들에게 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을 들어 왔지만, 이제는 '가끔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인간관계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 만큼 중요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나 자신보다 중요한 관계란 없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인싸가 아니라도 괜찮다. 인싸고 나발이고, 일단 나부터 행복하고 볼 일이다.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았을지라도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힘겨웠던 순간들과 버거웠던 감정들은 이미 온 힘을 다해 삶을 지켜낸 증거다. 그래서 나는 수고했다는 그 평범한 인사가 그렇게도 좋았다. 주저앉지 않기 위해 애써온 당신에게 내가 담을 수 있는 모든 무게를 담아, 한 번쯤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지나온 모든 순간은 그대의 최선이자 성취다. 사느라 너무나도 애썼다. 그리고 잘 버텼다. 정말, 수고했다.    p.90~91

 

저자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당시에, 작업물의 가격을 책정하는 게 워낙 업체마다 제각각이었다고 한다. 정해진 규정이 따로 없다 보니 가끔 최저 시급의 절반에도 못 미칠 금액으로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고, 무제한 이용권이라 생각하는지 추가 작업을 계속해서 요구 받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라도 해서 돈을 버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가도, 결국에는 거절하곤 했는데 무리한 요구라고 '당당하지만 정중하게' 말했다고.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무리한 요구를 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면, 상대는 다른 사람에게도 당당히 부당한 요구를 하게 된다는 거다. 그건 결국 시장 전체를 망치게 되고, 피해를 다른 사람과 나눠 갖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내가 한 번 참고 넘어가 버려서 모두가 참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때론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게 최선의 선의이자, 연대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개인의 선의가 꼭 전체의 정의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므로, 선의는 신중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절로 공감하게 되었다. 나만 참으면 끝나는 일은 없다는 것, 세상의 수많은 '을'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수많은 사람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산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지금처럼 사회적 함의나 개인의 상식이 천차만별인 세상이라면 더욱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타인에게는 상식이 나에게는 무례일 때도 있고, 나에게는 선의가 타인에게는 오지랍'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걸 꼭 말로 해야 아느냐고'가 아니라 '그걸 꼭 말로 해야 압니다'인 것이고, '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지?'라고 묻기 전에 '내가 제대로 표현을 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해야 나답게, 편안하게 관계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단호하면서도 다정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재미있게 술술 읽을 수 있다. 따뜻한 공감과 시원한 솔루션이 담긴 글과 그림을 통해 ‘나를 지키는 관계 맺는 법'을 배워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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