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 - 내 것이 아닌 아이
애슐리 오드레인 지음, 박현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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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잘하고 있어. 당신이 자랑스러워. 당신은 내가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어둠 속에서 이렇게 속삭여주곤 했어. 당신은 우리 둘 머리를 토닥여주기도 했지. 당신의 여자들. 당신의 세계. 당신이 방을 나갈 때면 나는 울곤 했어. 나는 당신과 아이, 둘이 돌고 있는 이 축에 끼고 싶지 않았거든. 나는 당신들 누구에게도 줄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우리가 같이하는 삶이 막 시작한 거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나는 어째서 그 애를 원했을까? 어째서 나는 나를 낳은 엄마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p.68

 

에타는 마을 의사의 아들인 루이스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에타의 아버지는 루이스에게 힘든 농사일을 무리해서 시켰고, 결국 그는 그 일을 하다 사고가 생겨 죽고 만다. 남편이 죽고 딸 세실리아가 태어났지만 신경쇠약에 걸린 에타는 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세실리아는 자라면서 엄마로부터 그 어떤 사랑도 받지 못했고, 거의 학대에 가까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성으로 자란 세실리아는 실수로 임신을 하게 되고, 마음에 없던 결혼까지 하게 된다. 아이로 인해 꿈과 자유를 모두 포기하게 된 세실리아는 처음부터 아이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없었다. 딸이 태어났지만 젖은 나오지 않았고, 세실리아는 아이가 나무에 목 매달아 죽은 자신의 어머니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세실리아의 딸 블라이스 역시 엄마로부터 전혀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 세실리아는 블라이스가 열한 살 때 집을 나가 버렸고,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겨 버렸다. 블라이스는 스물다섯 생일에 청혼을 받고 이상적인 남자 팍스와 결혼한다. 그녀는 딸 바이올렛에게 자신의 엄마와는 다른, 좋은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마음 먹지만 육아는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게 힘들기만 하다. 아이는 이상하게 엄마를 싫어했고, 그 행동은 점점 자라면서 더 심해진다. 그녀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남편은 육아 스트레스로 치부할 뿐이고, 결국 자신의 집안 여자들에게 내려온 모성의 결핍이라는 유산이 자신과 딸에게로 이어진 것은 아닐지 불안해진다. 완벽한 가족을 이루길 꿈꿨던 블라이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처절하고, 고통스럽다. 게다가 블라이스의 어머니 세실리아와 그 어머니 에타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되고 있어, 모성의 불편한 이면이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다. 금기를 넘어서는 가차없는 이야기가 만들어 내는 서스펜스가 압도적인 작품이다.

 

 

 

나는 길에서 눈을 떼어 아이의 그림자 진 옆얼굴로 향했어. 슬픔이 내 목을 조였어. 거의 14년 동안 나는 우리 사이에 없는 무언가를 찾길 바랐던 거야. 그 애는 나에게서 나왔지. 내가 그 애를 만들었어. 내 옆에 앉아 있는 이 아름다운 존재, 내가 그 애를 만들었어. 그리고 그 애를 원했던 때가 있었어. 그 애가 나의 세계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때. 그 애는 이제 어른 여자처럼 보였어. 그 애의 눈에서 자라는 여성적 지혜는 나 없이 무럭무럭 커지려 하고 있었어. 나 없어도 잘 살아가겠지. 그 애는 나를 포함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려 하고 있었어. 나는 뒤에 남겨지겠지.     p.382

 

<케빈의 대하여> 이후 모성을 다룬 가장 도발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은 애슐리 오드레인의 데뷔작이다. 펭귄북스 홍보 디렉터로 일했던 작가는 출산과 육아로 일을 그만둔 후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성에 동반되는 여성의 공통된 불안과 두려움을 탐구하는 데 몰두한 결과로 탄생한 이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던 '모성'이라는 것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숨죽이면서 달려가게 만드는 마력이 있지만, 결코 읽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다음 페이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두려워하면서, 불편한 기분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자신이 낳았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향한 엄마의 혼란스러운 마음과 엄마가 너무 싫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딸의 관계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대체 모성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여성이 어머니로 갖는 성질을 뜻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것 외에 그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도 모두 포함된다. 그렇다면 당연히 모성이란 것은 여성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능력이나 아이를 낳게 되면 자연스레 따라 오는 자질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 너무 쉬운 것처럼 보인다. 또 누군가에게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이 작품은 '여성들조차 거의 공유하지 않을, 금기시된 모성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여자에게 어머니라는 존재가 자신이 낳은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아마도 가장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말하지는 않는, 모성의 이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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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8-04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빈에 대하여> 정말 재미있게, 또 충격받으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책도 재미있어 보입니다. 모성부재의 대물림이라.. 아버지에 의한 학대의 대물림 이야기는 많이 봤지만 이건 새롭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피오나 2021-08-04 10:58   좋아요 0 | URL
이 작품도 <케빈에 대하여> 만큼이나 충격적이었어요. 기회가 되면 만나 보시길!^^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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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편지 속에서 나는 너의 것이야. 가든의 표적도, 네 임무의 일부도 아닌, 오로지, 너의 것. 나는 다른 방식으로도 너의 것이야. 너의 기척을 찾아 세상을 주시하는 동안, 동물의 내장을 보고 점을 치는 점쟁이처럼 상관도 없는 것에서 너와 연관된 점을 찾는 동안, 너의 것이야. 편지를 부칠 방법과 이유와 기회를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너의 것이고. 네가 적은 말들을 순서에 따라, 소리에 따라, 냄새에 따라, 맛에 따라 음미하는 동안, 그 기억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너무 바래지 않도록 보살피는 동안, 나는 너의 것이야.     p.118

 

시간의 가닥을 따라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오랫동안 시간 전쟁을 벌여온 두 종족이 있다. 최정예요원 '레드'는 양측 군대가 모두 죽어 널브러져 있는 전장 한가운데, 초토가 된 대지 위에서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별 사이를 오가던 전함의 잔해 사이로 쌓인 주검들, 성공한 작전의 결과로 뿌려진 피와 흙먼지로 가득한 곳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등장한 것이다. 크림색 편지지에 써진 것은 '읽기 전에 태워 버릴 것'이라는 문구였다. 그 편지는 당연히 함정처럼 보였지만, 이런 도전장을 던진 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던 레드는 편지를 읽는다. 그리고 두 적대 진영의 비밀 요원인 '레드'와 '블루' 사이에 편지 왕래가 시작된다.

 

이들의 편지는 단 한 번만 읽도록, 다 읽으면 없어져 버리도록 만들어졌다. 견제와 조롱으로 시작되었던 편지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불러오며 어느 순간 시간 전쟁의 변곡점이 된다. '시간의 실 가닥'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전쟁을 벌이고, 세계의 한복판에 금이 가면서 부서지기 시작하면 다시 미래의 '시간 타래'를 향해 움직이며 벌어지는 시간 전쟁은 각자에게 모두 필사적인 승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시작된 이들의 비밀스러운 관계는 외부의 상황과는 별개로 흘러간다. 마치 그들 두 사람만 완전히 또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의 편지가 자아낸 실재하지 않는 공간에서의 감정 교류는 굉장히 로맨틱하면서도 매혹적이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의 주요 플롯이 아날로그 방식인 서신 교환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게다가 편지를 시간 여행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는데, 현재 편지를 쓰는 이의 대상이 미래의 수신인이고, 그렇게 미래에 전해진 것은 지나간 과거에 속하는 존재이기도 하니 말이다.

 

 

 

레드는 생각한다. 나도 참, 대단한 시간 여행자로군. 블루는 이런 수법에 속지 않을 것이다. 레드의 말을 따를 것이다. 그녀는 편지를 받았다. 이해할 것이다. 해야 한다. 그들이 지닌 유일한 미래는 따로 함께인 시간이다. 둘은 너무도 오랫동안 서로를 모른 채 살았고, 시간을 누비며 전쟁을 벌였다. 그들은 따로였고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모습을 빚었고 그러는 동안 서로에 의해 모습이 빚어졌다. 그러니 그 이전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왜 안 된단 말인가? 아플 것이다. 그들은 전에도 아팠던 적이 있다. 상대의 목숨을 구하려고.    p.212

 

 

캐나다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아말 엘모흐타르와 미국의 소설가 맥스 글래드스턴은 SF 팬 모임에서 만나 손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았다. 그러다 서신 왕래 자체를 소설로 발전시켜 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 작품을 함께 집필하게 된다. 그리하여 두 작가는 '레드'와 '블루'라는 소설 속 각각의 주인공을 맡아 서신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 후, 두 이야기를 하나로 합쳐 소설을 완성해냈다. 이 작품은 전미 베스트셀러에, 휴고상 및 네뷸러상, 로커스상 등의 SF상을 휩쓸고 영국 SF협회에서 주는 BSFA상, 캐나다 SF협회에서 주는 오로라상을 석권하며 주목받았다. 할리우드에서 TV 드라마로 준비 중이라고 하니 영상화되는 버전은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놀라운 SF적 상상력과 현란한 필담을 기본으로 그려지는 작품이라 번역도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종이 동물원>으로 제13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한 장성주 역자가 1년여에 이르는 긴 번역 작업을 거쳐 완성했으니 믿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표지 디자인도 너무나 근사한데 겉 표지를 벗겨내면 보이는 속 표지 디자인과, 책장을 넘기면 만날 수 있는 내지에 이르기까지 '레드'와 '블루' 컬러의  색감과 조화가 아름답다. 이러한 디자인은 책을 모두 다 읽고 나면 더 의미가 있어지니,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반드시 속표지와 내지 이미지를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한다. 이들이 시간 전쟁을 벌이는 무대가 역사 속의 다채로운 시공간이라는 점도 매력적이고, 무수한 시간의 가닥을 넘어서 비밀스럽게 이어지는 편지 교환이 서로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불러온다는 점도 설레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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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소녀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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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빤히 쳐다보는데, 갑자기 슬퍼진다. 그냥 평범한 목록이다. 하지만 가장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이 이런 것들이다. 얼마 전에 남편을 잃은 교구 신도가 그녀를 무너뜨린 건 장례식이나 경야나 남편이 죽었다는 전갈이 아니라 그가 아마존에 사전 주문한 책들이 배송됐을 때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미래를 위해 소소한 투자를 한다. 콘서트 티켓, 저녁 예약, 휴가지 예약. 그날이 됐을 때 우리는 여기 없을지 모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임의의 사건이나 만남으로 인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p.163

 

이상하게 나쁜 일이 계속 벌어지는 장소가 있다. 사고 다발 지점 같은 곳, 그냥 찝찝한 곳, 바로 여기 이 마을처럼 말이다. 500년 전, 채플 크로프트라는 서식스의 작은 마을에서 신교도 박해로 여덟 명의 주민이 화형당했다. 여덟 명의 순교자 가운데 두 명은 어린 여자아이였다. 해마다 사람들은 처형 추모일 행사 때 나뭇가지로 인형을 만들어 태웠고, 그것을 버닝 걸스라 불렀다. 그 인형이 복수심에 불타는 두 아이의 혼령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30년 전, 열다섯 소녀 두 명이 실종되었다. 경찰은 단짝 친구였던 이들이 동반 가출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들의 실종에 의혹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달 전, 순교자들의 화형과 버닝 걸스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겨 마을의 역사를 파헤치던 교회 신부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는 조사를 하던 중 실종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진상이 뭐였는지 아주 심란해 하다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이 자살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거라고 말한다.

 

자살한 신부의 후임으로 잭 브룩스가 열다섯 살짜리 딸과 함께 마을로 오게 된다. 마을로 이사한 첫날, 잭은 교회를 둘러보다 뭔가가 타는 냄새와 함께 어두침침한 햇빛을 받고 앉아 있는 시커먼 그림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딸 플로는 암실로 개조할 별채에 갔다가 몇 미터 앞에 서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알몸으로 불길에 휩싸여 있는 아이에게는 양쪽 팔과 머리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화형당한 아이들이 계속 교회에 출몰한다고, 화형당한 아이들이 보이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실제 그들 모녀 주변에서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익명의 누군가 정체불명의 상자를 보내며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어두운 밤 교회에서 불빛의 움직임이 보이는 등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이곳 마을에는 뭔가 숨겨야 할 비밀이 있었고, 낯선 외부인이 진실을 밝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잭의 피하고 싶은 과거도 자꾸만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대체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과 나쁜 사람인 건 별개라고 생각해. 인간은 누구나 나쁜 짓, 사악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가 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 하지만 죄책감을 느끼면, 용서와 회개를 간구하면 나쁜 사람이 아니야. 인간은 누구나 달라질 기회를 부여받아야 해.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아빠를 죽인 사람도요?"       p.362

 

C. J. 튜더의 <초크맨>은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탄탄한 구성, 예리한 문장과 독창적인 플롯이 너무도 훌륭한 작품이었다. 두 번째 작품인 <애니가 돌아왔다> 역시 굉장히 치밀하고 긴장감 넘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후속작 징크스 따윈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세 번째 작품 <디 아더 피플>도 강렬한 도입부와 탄탄한 구성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만드는 페이지 터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바로 올해 출간된 <불타는 소녀들>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공포와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미스터리로 무장하고 나타났다. C. J. 튜더가 영국의 여자 스티븐 킹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고스란히 작품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무더운 여름 날씨를 서늘하게 만들어 주는 재미를 선사한다.

 

현실적인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도, 초자연적인 영역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도 C. J. 튜더가 만들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재미와 공포 면에서 감히 스티븐 킹의 작품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머리칼이 쭈뼛서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서 매번 신작이 나올 때마다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의 집착, 욕망, 폭력이 교차하고, 우정과 상실 등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시종일관 오싹하고 으스스한 몰입감을 보여주는 작품이 흔한 것은 아니니깐. 무더운 여름 날씨를 잊어 버릴 만한 이야기를 찾고 있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무덤처럼 깊고 어두운 과거를 품고 있는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숨죽이고 지켜보는 동안 더위가 싹 사라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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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미세스 - 정유정 작가 강력 추천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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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는 뭔가 기분 나쁜 구석이 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거슬리는 무언가가 있지만 도무지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지붕이 있는 현관 테라스가 집 너비만큼 탁 트여 있어 겉으로 보기에 전원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데다 정사각형 모양의 벽마다 창문이 나란히 있어 근사하기까지 했다... 외관으로만 보면 꺼릴 구석이 없는 집이었다. 하지만 나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집처럼 우중충한 잿빛 날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p.7

 

의사인 세이디는 남편, 아들과 함께 외딴 섬의 오래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온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뭔가 불안하고 거슬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오게 되었다. 남편 윌의 외도, 아들 오토의 학교 문제와 병원에서 있었던 의료 사고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던 중이었고, 윌의 누나 앨리스가 죽고 홀로 남겨진 조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누나는 집과 상속 재산, 계좌에 남은 얼마의 돈을 유산으로 남겼고, 열여섯 살의 조카가 열여덟 성인이 될 때까지 돌봐주는 것이 조건이었다. 하지만 앨리스의 딸 이모젠은 새로운 가족에게 적개심이 가득했고, 섬에서의 고립된 삶 역시 쉽지가 않았다. 늦은 밤 마지막 페리가 떠나면 말 그대로 섬에 갇혀 나가지 못한다는 현실 또한 세이디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이웃집 여자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고,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는다. 너무 가까이에서 벌어진 비극적이고 참혹한 사건 앞에서 세이디의 가족은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었고, 이모젠은 점점 수상한 행동을 보였고, 세이디의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한편 세이디의 룸메이트였던 친구 카밀은 세이디의 남편인 윌과 불륜관계이다. 사실 카밀이 윌을 세이디보다 먼저 만나 호감을 가졌지만, 우연한 기회로 세이디와 윌이 알게 됐고 결국 결혼까지 어이지게 된 거였다. 카밀은 화가 났고, 질투심으로 인해 윌을 적극적으로 유혹하며 점점 그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모르셨습니까, 닥터 파우스트? 여성이 항상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것은 아닙니다. 가해자일 때도 있지요. 가정폭력이라 하면 보통 아내를 때리는 남자를 먼저 떠올리지만 반대의 경우도 제법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여러 연구에 따르면 불안정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 사건의 50퍼센트 이상이 여성이 먼저 시작한 경우라고 합니다. 미국 내 살인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질투심이죠."
그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p.293

 

이야기는 세 여자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가족들과 함께 섬으로 이사를 오게 된 세이디와 그녀의 친구 카밀, 그리고 엄마를 여의고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어린 소녀 마우스의 시점이다. 마우스는 아빠와 둘이 사는 생활이 행복했지만, 곧 새엄마가 생겼고, 아빠가 출장을 위해 집을 비울 때마다 새엄마는 폭언과 폭행으로 아이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마우스는 아빠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아빠가 새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에 차마 그 행복을 깨뜨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새엄마의 태도는 점점 심해졌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과연 세이디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실체는 무엇이며, 카밀과 윌의 관계는 어떻게 지속될 것이고, 마우스는 새엄마에게 반격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행동들로 인해 점점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가는 세이디의 절망과 윌을 완전히 가질 수 없어 슬픈 카밀의 외로움, 그리고 어린아이로서 감당하기 힘든 일들에 직면한 마우스의 부서진 마음은 어떻게 될까.

 

이 작품은 <굿 걸>이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메리 쿠비카의 신작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정유정 작가가 극찬을 한 추천평으로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쓰겠다고 결심했으나 아직 못 쓴 게 아니라, 생각조차 못 해봤으면서 빼앗긴 것처럼 억울한 이야기. 어찌나 힘을 주고 봤는지, 다 읽고 나면 온 몸이 뻐근해지는 이야기, 밤을 새워 폭주해버린 후, 나는 이렇게 못 쓰겠다고 손들고 마는 이야기'라고 했으니 이 추천평만으로도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이 꽤 많을 것이다. 오백 페이지가 넘는 꽤나 두툼한 분량의 이 작품은 중반이 훌쩍 지날 때까지도 그리 특별할 게 없다. 세 여성 캐릭터의 시선으로 교차 진행되는 방식이나, 각각의 인물들이 처해있는 상황, 성격 등은 여타의 스릴러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그것과 크게 다를 게 없으니 말이다. 이 작품의 탁월함은 후반부에 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깜짝쇼를 위한 반전이 아니라 전체 이야기의 구조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한 방이 후반부에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꼼꼼하게 설계된 복선들이 구석구석 포진하고 있다. 독자들이 그걸 처음부터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비슷비슷한 심리 스릴러에 지쳤다면, 독창적인 구성과 절묘하게 구축한 플롯으로 정유정 작가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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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로 읽는 한국 정치사 - 우리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김현성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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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부정선거 시비를 없애기 위해 대선이 끝난 뒤 그 기표 용구는 전량 폐기되었고, 1994년 통합선거법을 제정하면서 동그라미 안에 점 글자를 넣은 현재의 기표용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럼 왜 하필 이 글자를 넣은 것일까? 어느 후보가 당선될지 알아 맞히는 것이 점을 치는 것과 같다는 뜻일까? 전혀 아니다. 이 글자를 사용한 것 역시 무효표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이다. 점 복 자를 사용하면 전사되었을 때도 유권자가 실제로 어느 후보에게 투표한 것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84

 

격동과 파란의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는 1948년 국내 최초로 근대적 민주 선거가 도입된 이래 50여 차례가 넘는 크고 작은 선거를 치르며 발전해왔다. 이 책은 지난 선거를 통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 한국 정치사의 결정적 순간을 되돌아본다. 1948년 5월 제헌의회 선거에서 2017년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거쳐 2020년 4월 제21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70여 년 동안 우리는 열아홉 번의 대통령 선거, 스물 한 번의 국회의원 선거, 일곱 번의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치렀다.

 

정치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으로 제 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 현실 정치와 선거를 무대로 펼치는 역전과 반전의 드라마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연구하고 싶었던 거라고 하니, 이 책은 바로 그에 대한 결과이기도 한 셈이다. 투표권이 생긴 이후로 늘 선거와 함께해왔지만, 이렇게 선거의 이모저모에 대한 정보를 접해본 적은 없었던 터라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었다. 각종 선거 용어 사전부터 시작해 선거의 역사, 기표용구 변천사와 투표용지 변천사, 그리고 선거일을 어떻게 정하는 것인지, 선거에 출마할 때 필요한 돈의 금액에 어느 정도 되는지까지 모든 정보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말이다.

 

 

 

극적인 승부 끝에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노무현 당선자는 곧 당선 무효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이러한 시비는 어처구니없게도 선거가 끝난 뒤 한 특수학교 교사가 허위로 작성한 '정보기관 중견 간부의 양심선언'이라는 문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정보기관이 중앙선관위의 개표 시스템을 조작했으며, 개표 분류기가 오작동해 이회창 후보의 표가 노무현 수보의 표로 계산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개표 분류기 오작동으로 표가 바뀌었다는 주장은 근소한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린 대선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어온 음모론이었습니다.     p.326

 

4.19 혁명, 유신헌법, 10.26 사태, 6월 항쟁 등 대한민국을 뒤흔든 역사적 사건 뒤에 언제나 '선거'가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그동안 치뤄온 50여 차례의 선거는 우리 현대 정치사를 만든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의 원인이자 결과인 것이다. 선거제도는 드라마틱한 한국 정치사의 굴곡을 주조했고, 변화의 갈림길에 직면했을 때마다 살아 움직이는 민심을 반영해왔다. 이 책은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을 뒤바꾼 결정적 순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선거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와 기네스 기록, 투표 상식 등 선거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살아 숨 쉬는 선거의 역사를 통해 현대사의 흐름을 꿰뚫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가장 적은 표차로 당락이 결정되었던 것은 바로 0표차였다니 흥미로웠다. 당시 득표수가 같았지만 연장자가 당선이 된 것이다. 선거비용 제한 제도가 도입된 이래 가장 많은 선거비를 썼던 것은 총 500억 8,714원을 지출한 18대 대선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였고, 반대로 가장 적은 선거비용을 지출한 대선 후보는 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신흥당의 장이석 후보로 13만 4,000원을 지출했다고 한다. 단 1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 경우도 꽤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하니, 선거와 관련된 기록들은 그 자체로도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매번 선거가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음모론과 투표 조작 논란에 대해서도 들려주고 있어, 그야말로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는 생각을 새삼하게 되었다. 내년에도 선거가 두 차례 치뤄질 예정이니, 이 책을 통해서 조금 더 소신 있는 한 표를 선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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