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뉴욕 수업 - 호퍼의 도시에서 나를 발견하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섯 명의 사람들이 건물 밖 의자에 기대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그림이다. 그중 네 명은 광활한 평원과 먼 산줄기를 바라보며 이른바 '산멍'을 하고 있지만 화면 맨 왼쪽의 남자만은 무리에 속해 있지 않았다...'꼭 나 같은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나는 웃었다.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책 속 세계에 더 매료되는 사람. 남들이 흥겨워할 때 고요히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사람. 그래서 언제나 무리를 벗어나 길 잃은 양 같은 사람.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 호퍼는 찬란한 태양 아래 세계를 표현하면서도 한 점 고독을 그려넣는 걸 잊지 않았다. 호퍼다운 그림이라 생각했다.           p.52

 

곽아람 작가의 책을 꽤 많이 읽어 왔다. 청춘의 독서를 이야기하고, 절판 아동 도서 수집기로 유년의 독서를 돌아보고, 아메리카 문학 기행 등 책에 대한 책, 독서 에세이를 여러 권 읽었다. 글 쓰는 직장인으로 대학 시절의 공부 여정을 되돌아보는 책도 있었고, 미술사 전공을 바탕으로 그림 읽기에 대한 책도 있었다. 곽아람 작가는 20년차 신문기자이기도 하다. 2003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현재 <조선일보> 최초의 여성 출판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곽아람 작가는 직장생활 중에 주어진 1년간의 해외연수 기회를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보냈고,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2018년에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었고,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다.

 

세월이 흐를수록 뉴욕 생활에 드리웠던 호퍼의 영향이 더 뚜렸해졌기 때문에 이번 개정판에서는 호퍼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추가해 고쳐 썼다고 한다. 기존 글을 다듬고, 새로 쓴 글을 추가한데다, 표지 디자인까지 예쁘게 바뀌어서 완전히 새로운 신간을 만나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다. 그녀가 회사 연수차 1년간 뉴욕에서 홀로 생활했던 시기는 서른여덟의 여름 끄트머리와 가을, 겨울, 그리고 서른아홉의 봄과 여름 초입이었다. 어학연수 한번 다녀온 적 없는 30대 후반 여성이 난생처음으로 해외에서 살면서 겪어야 했던 좌충우돌 견문록은 매 순간이 수업이었고, '나란 어떤 인간인가'를 배우는 시간들이었다고 한다. 학교도 다니고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과정도 밟았지만, 교실 밖에서도 많은 걸 배웠다고 하는데, 오페라를 보고, 여행을 하고, 혼자 사는 생활을 멈추고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며 미국 사회의 이모저모를 숙고하고, 다양한 문화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자식의 고통스러운 삶을 예견하는 거창한 일과는 거리가 멀지만, 내게도 독서란 일종의 제의(祭儀)적 성격을 띠고 있다. 책읽기란 오래전부터 내게 또다른 세계와의 만남, 일종의 접신(接神)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1년간은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곳은 내게 이미 ‘다른 세계’여서 굳이 책읽기를 통해 또다른 세계를 꿈꿀 이유가 없었다. 대신 나는 뉴욕 구석구석을, 서점을, 낡은 책들로 가득한 헌책방을 탐험하며 내면의 성채를 쌓아올릴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책이라는 오래된 친구를 만나고 다녔다.           p.204

 

'괴테처럼 되겠다고 결심하고 머무른 뉴욕에서 정작 내가 만난 건 괴테보다는 호퍼였다'고 그녀는 말한다. 괴테가 자신의 롤모델이었지만, 호퍼는 그냥 자기 자신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속에서는 대도시의 고독을 주제로 하는 호퍼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호퍼와 자신의 유사점을 찾아내고, 그림 그림 속 인물을 연상시키는 사람들과 마주치고, 주변 세계에 도무지 속하지 못한 것 같은 이방인으로서의 감각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뉴욕 생활을 해낸다. 뉴욕에서 지냈던 1년 동안 낯선 환경 속에서 새로운 것들과 부딪히며 온몸으로 체득한 생경한 감각을 모조리 붙들어 매일 같이 글로 썼는데, 이 책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헬스클럽 강좌에 줌바댄스가 있어서 한번 나갔다가 줌바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기도 하고, 방문 연구원으로 있었던 NYU IFA에서 몇몇 미술사 과목을 청강하다가 알브레히트 뒤러에 대한 수업을 듣고는 뒤러의 매력을 알게 되기도 한다. 특히나 그 수업이 진행되었던 강의실에는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두뇌만은 그 어떤 젊은이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지적 열망으로 가득 찬 노인들의 열정도 기억에 남는다. 현대미술의 중심지라 일컬어지는 뉴욕의 미술 세계를 경험하고 기록한 내용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아트 비즈니스의 현장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모건라이브러리, 뉴욕현대미술관, 브루클린미술관 등 도시 곳곳에 자리한 미술관들을 다니며 작품을 감상한 이야기들도 뉴욕의 풍경들을 생생하게 체감하게 해준다. 일만 하느라 노는 것도, 즐기는 것도, 자신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몰랐던 작가가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난감했던 뉴욕이라는 도시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한 뼘 더 성장하게 된 것이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하고 싶은 것은 미루지 말고 다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로 만든 마을 - 에밀리 디킨슨이 사는 비밀의 집
도미니크 포르티에 지음, 임명주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순간부터 에밀리가 시내에 나가는 횟수를 줄이기 시작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얼마 안 가 정원까지만 나가거나 집 안에만 머물렀다. 그러다가 2층에서 꼼짝하지 않더니 결국 방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방이 에밀리의 집이 되었다. 꼭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에밀리는 오래전부터 방보다 더 작은 손바닥만 한 종이 위에서 살고 있었다. 그 집은 누구도 에밀리에게서 뺏을 수 없었다.          p.122

 

거의 평생 집을 떠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그 작은 방 안에서 누구보다 대담하게 글을 썼다. 에밀리 디킨슨이 쓴 시와 편지, 산문은 2000편에 달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출간된 시는 몇 편 안 된다. 에밀리는 '쓴다'는 것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자기만족이 아니라면 굳이 출간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19세기 시의 정형을 파괴하는 새로운 형식으로 미국의 시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시인이지만, 생의 대부분을 자신의 방에만 머물렀다는 이유로도 고독과 은둔의 대명사로 더 알려져 있다. 캐나다의 소설가 도미니크 포르티에는 각종 기록과 시인의 글을 기반으로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재구성한다. 에밀리의 삶과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 내면서 소설과 산문시,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스타일과 섬세한 문체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사진은 단 한 장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긴 목에는 검은색 벨벳 리본을 둘렀고, 머리는 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가지런히 묶었고, 옷은 소박한 줄무늬 원피스를 원피스를 입은 창백한 표정의 사진이다. 더 어렸을 때나 더 나이 들어 찍은 사진이 전혀 없기에, 에밀리 디킨슨은 영원히 그 얼굴로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다. 최근에 크리스티앙 보뱅이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쓴 전기물인 '흰옷을 입은 여인'의 표지 이미지로 사용된 바로 그 사진이다. 도미니크 포르티에와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는 책을 읽었을 때, 19세기의 거의 모든 여성 작가가 '미친 여자'라는 씁쓸한 자화상을 자기 소설의 다락방에 은닉시켰던 반면, 에밀리 디킨슨은 스스로 미친 여자가 되었다는 문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에밀리의 삶 자체가 일종의 소설이고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완벽한 삶이었다. 완벽하게 닫혀 있고 완벽하게 자신만으로 둘러싸인 삶. 계란처럼 둥글고 꽉 찬 삶. 하루는 돌고 도는 순환고리다. 여름에는 황금빛, 가을에는 구릿빛, 겨울에는 은빛, 봄에는 핑크빛으로 변하는 나무 꼭대기 위로, 해가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해서 반대쪽 하늘로 해가 사라지면 마무리된다. 그러면 백지 같은 칠흑의 밤이 찾아오고 다음 날 아침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은 날은 아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반복 속에서, 그리고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에밀리는 순간순간 풀잎이 속삭이는 소리와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포착했다.             p.186

 

캐나다의 몬트리올에 살던 저자는 딸이 태어나고 사 개월이 지났을 무렵, 남편의 회사가 보스턴에 사무소를 열게 되어 가족 모두가 세상의 반을 돌아 이사를 하게 된다. 그들은 사우스엔드 지역에 살게 되었는데, 그곳은 영국을 제외하고 빅토리아 양식 건물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었다. 저자의 집은 보스턴의 전형적인 주택 형태인 높고 붉은 벽돌 건물의 3층과 4층에 자리한 복층 집이었다. 저자는 그곳이 절대 우리 집이 될 수 없었다고 느꼈다. 그곳에선 더 이상 자신의 서재 창 너머로 보이는 나무 풍경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집을 얻은 동네는 '홀리 요크'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장의 이야기는 에밀리가 라틴어, 식물학, 문학 등을 배웠던 여학교 마운트 '홀리요크'로 이어진다. 그렇게 현재와 수백 년 전의 과거가 교차되고 연결된다. 저자가 책에서 본 사진들과 묘사를 바탕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의 홈스테드에서 매일 아침 에밀리를 만났던 것처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종이와 펜으로 그려낸 마을에 가볼 수 있는 것이다.

 

에밀리는 종이에 문장 몇 줄, 단어 몇 개 쓰는 것만으로도 순간적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이름도 없고 대상도 없는 절박함으로부터 벗어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구원을 받은 에밀리는 불행에서 시를 끄집어 내려고 애썼고, 그러한 작품들을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고 그대로 멈춰 있는 것만 같다. 에밀리 디킨슨의 사망 증명서에는 '직업'이라는 글자 옆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필체로 '집'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그 집은 에밀리가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했던 실제 공간이자, 종이로 이루어진 문학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산 시인과 소설가의 이야기가 함께 연결되며, 기존의 전기문학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통해 지금껏 베일에 싸여 드러나지 않았던 에밀리 디킨슨의 일상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이 불안하다면 - 불안감을 추진력으로 바꾸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
트레이시 데니스 티와리 지음, 양소하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불안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고 그 불안은 미래를 흐리게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신문을 읽으며 새로운 재앙을 예상하죠."
세계적인 유행병, 바이러스에 관한 오보, 정치적 격변, 경제적 불평 등,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로 인한 위협의 시대인 21세기의 초기 수십 년 동안 우리가 어떤 기분인지에 관해 이보다 더 잘 묘사한 문장이 있을까? 이 문장은 미국 역사상 또 하나의 말썽 많고 파괴적인 시기였던 남북 전쟁 몇 년 전에 언급된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다.         p.109

 

서점에서 '불안'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수백 건에 이르는 목록이 나온다. 사랑해서 불안하고, 부모라서 불안하고,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관계가 불안하고, 미래가 불안하다. 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불안이란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 느끼는 감정을 뜻한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이쪽으로 가면 상황이 더 나빠질까? 우리는 이렇게 종종 걱정과 근심, 심지어 공황 상태에 가까운 순간을 경험한다. 그리고 누구나 불안감을 싫어한다. 하지만 뉴욕시립대학교 심리학 및 신경과학 교수인 트레이시 데니스 티와리는 이런 불안, 잘만 활용하면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불안을 추진력으로 바꾸는 방법을 저자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예시들과 함께 과학적 연구 결과를 활용해 알려준다.

 

그 동안 수백 권의 책과 수천 개의 과학 연구, 그리고 30여 개의 서로 다른 항불안제들은 우리에게 충분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이처럼 보기 좋게 실패했을까? 저자는 그 이유가 애초부터 문제 인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작 문제는 불안이 아니라, 우리가 불안을 다룰 수 있고 나아가 불안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음을 믿지 못하는 점이라는 거다. 우리는 불안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저자는 불안이 존재하는 이유와 불안감이 좋지 않게 느껴지는 원인을 신경과학적으로 분석해 알려 준다. 그리고 질병으로서의 불안과 불안의 시대적 의미를 짚어보면서 우리가 오해해 온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불안의 스펙트럼 그 어디에 위치하든 간에 우리는 불안에 귀를 기울이고 때때로 이 무서운 감정이 동반자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불안을 다시 생각하지 말자. 중화시키지도 말자. 잃어버린 역사나 옷장 위 상자 속 잊고 있었던 선물처럼 되찾자. 불안은 강점이 될 수 있지만 다른 진정한 강점과 마찬가지로 안에 취약점 또한 내포하고 있다. 이런 취약점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신의 최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을 구제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구제한다.          p.236~237

 

인생에 관한 한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 우리는 당장 내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 지 알지 못한다. 매일 같은 나날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 속에 불확실성이라는 변수가 있어 갑작스럽게 불협화음이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니 말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로 인해 매일 엄청난 수의 감염자 수가 집계되던 시기에는 누구나 감염되지 않을까 두려워했을 것이다. 비슷한 증상이라도 보이면 검사를 해보고,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초조해하고, 안절부절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불확실성은 일종의 가능성이다. 그것이 긍정적인 의미이든 부정적인 의미이든 간에, 그 가능성은 우리를 미래로 향하게 한다. 저자는 불안과 불확실성의 관계에 대해서, 팬데믹 기간 동안 불안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불안감을 창의적이고 제대로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순간, 불안은 힘든 것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이는 너무 힘겹게 느껴져 때로는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넘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올바른 방법으로 불안해하는 것에 대한 처방이 필요하다. 이 책은 우리가 느끼는 불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한 뒤 삶을 더 좋게 변화시키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1.불안은 미래에 관한 정보다. 불안에 귀를 기울여라.
2.불안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그냥 내버려두어라.
3.만약 불안이 유용하다면 그 불안으로 목적성 있는 무언가를 하라.

 

만약 '불안'이 친구이자 협력자가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불안'을 나쁨으로 분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불안을 어떻게 오해해왔는지,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불안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시해주고, 올바른 방법으로 불안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불안을 극복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불안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걱정과 우울, 초조,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매사에 불안한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 아더 유
J. S. 먼로 지음, 지여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고가 있기 전에 케이트는 경찰에서 민간인 신분의 '초인식자'로 일을 했다. 인구의 2퍼센트는 사람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안면 인식 장애, 즉 안면실인증이라 불리는 병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 정반대 지점에는 '초인식자'라고 불리며 사람의 얼굴을 절대로 잊지 않는 1퍼센트가 존재한다. 케이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실제로 솜씨가 아주 뛰어났다. 한번은 그저 눈만 보고 용의자를 분간해내기도 했을 정도였다.           p.23

 

한 번 본사람의 얼굴을 절대 잊지 않는다는 ‘초인식자’ 케이트는 경찰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일하며 수많은 용의자들을 식별해 수사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여섯 달 전 일어난 교통사고로 뇌를 크게 다쳤고, 현재는 병원에서 만나 연인이 된 젊은 사업가 롭의 자상한 보살핌을 받으며 요양 중이다. 어느 날 케이트는 롭과 대화를 나누다 그가 오래 전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난 적이 있었고, 그 존재를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첨단 기술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는 그가 도플갱어라는 미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의문이었던 케이트는 며칠 뒤 그가 자신이 알던 롭이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같다고 느끼게 된다. 혹시 그가 롭이 두려워하던 도플갱어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 케이트는 점점 혼란스러워지는데... 과연 이것은 케이트의 망상인 것일까, 아니면 회복되어 가는 케이트의 뇌가 보내는 경고인 것일까.

 

롭은 영국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신생 기업의 창업주이자 뇌와 기계를 상호작용하게 하는 ‘직접 신경 인터페이스’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냉장고나 집의 잠금장치 등 거의 모든 곳에 첨단 기술을 적용하고 있는 그는 왜 '도플갱어'라는 미신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혹시 도플갱어가 미신이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라면? 그리고 그가 만난 적이 있다는 그 도플갱어가 현실에 진짜 나타나 그가 이룬 모든 것들과 집, 회사, 그리고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을 전부 빼앗아 가게 된다면 말이다. 그렇게 깨닫고 나서 보니 케이트는 그의 모든 점들이 자신이 알던 롭의 모습과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어를 잘 하지 못해서 케이트가 가르쳐 줘야 했던 롭이 능수능란하게 프랑스어로 언론에서 인터뷰를 한다던가, 평소에 절대 마시지 않던 음료를 카페에서 마신다던가, 영상 통화 중에 무심코 지은 표정에서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인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케이트의 불안과 의심은 점점 더 심해지고, 그즈음부터 그녀에게 크고 작은 사고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는데, 과연 케이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당신도 알겠지만 누군가를 흉내낸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야." 제이크가 앉은 자리에서 몸을 똑바로 세우더니 탁자 위에 놓인 케이트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갠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간단히 차지할 수는 없어. 누군가의 신분을 갈취한 다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 사람으로 살아가다니,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일란성 쌍둥이라면 혹시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롭한테는 쌍둥이 형제 같은 건 없어. 그렇지 않아?"                 p.322

 

자신의 도플갱어와 마주치는 것은 불길한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도플갱어가 실재 존재하는 지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 없으므로, 그 상징이나 의미는 조금씩 다르게 속설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보통 자신의 도플갱어와 마주치게 되면 한 쪽이 죽게 된다는 속설로 공포영화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오싹하기 그지 없다.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또 다른 존재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면 말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자아분열과 같은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이 작품 속에서 케이트가 겪게 되는 증상을 '카그라스증후군'이라고 하는 망상증으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한때 얼굴 인식에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었던 성능 좋은 방추상회 때문에 도플갱어를 본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럴듯하게 설명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케이트가 사고에서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도플갱어 이야기에 집착하게 되는 초반부에 이어, 사실 교통사고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증거가 나오면서 본격적인 스릴러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뇌에서 얼굴을 인식하는 부분인 방추상회가 뛰어난 인물로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과학수사과의 베아테 뢴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었다. 방추상회라는 단어 자체를 그때 처음 알게 되었었는데, 수사관 중에 정말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범죄자 검거에 아주 큰 도움이 되겠다 생각했었다. 얼굴을 알아보는 것만으로 용의자를 특정하고, 그 중에서 범인을 잡아낼 수만 있다면 수사에 굉장한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J. S. 먼로는 비슷한 수천 개의 얼굴을 구분하고, 마주친 사람의 얼굴은 모조리 기억하는 능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뇌와 기계를 상호작용하게 하는 기술을 등장시키고, 도플갱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더해 한층 더 복잡하고 스릴 있는 심리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최첨단 기술과 비과학적인 미신이 공존하는, 독특한 심리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까지 중요한 것은 언어였다. 모든 것은 이름이 불리고 이야기된 후에야 실제로 존재했다. 레이랜드가 찾아 나선 게 아니라 그게 그에게 와서 부딪쳤다. 처음부터 그랬다. 언어 없이 사물에 도달 하기를, 사물과 사람과 감정과 꿈에 닿기를 원할 때도 자주 있었지만 언제나 그 사이에 언어가 다시 끼어들었다. 언어로 이해해야 제대로 경함할 수 있다고 말할 때면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곤 했다.           p.21

 

사이먼 레이랜드는 런던에 있는 삼촌이 물려준 저택으로 향한다. 동양학자였던 삼촌은 그에게 집과 가구와 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는 이곳에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명료함을 얻기로, 혼란스러웠던 모든 것이 지나간 지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삶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에게 무슨 끔찍한 일이 있었고, 그것은 레오나르디 박사의 말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미 그 상황에 대한 것은 끝이 났고, 미래가 그에게 다시 열린 지 6주가 지난 시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레이먼드는 평생 번역가로 살 예정이었지만, 아내가 갑자기 사망하고 출판사를 유산으로 받은 뒤 출판사를 11년 동안 경영해 왔다.

 

 

레이랜드는 삼촌이 그에게 아라비아어로 쓰인 글을 읽어 주었던 대여섯 살 때부터 언어에 매혹되었다. 강압적인 아버지와 학교가 싫어서 가출해 낡은 호텔의 야간경비원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모두 잠든 조용한 시간에 가장 낯선 언어, 가장 낯선 단어를 배우며 그 문학적 매력을 즐겼다. 그렇게 낯선 글자와 단어, 울림과 시의 연들이 그의 몸 안에 차곡차곡 쌓였으니, 그가 번역을 독학하던 숱한 밤을 거쳐 결국 번역가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래이랜드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 진행되며, 최근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우리는 알게 된다.

 

어느 날 그는 갑작스럽게 언어 장애와 마비 증상을 느끼게 되고, 자신이 뇌졸중이 아닐까 생각하며 병원으로 간다. 다행히 뇌출혈은 아니었지만, 그의 뇌 사진을 보고 의사는 그에게 악성 종양이 발견되었다고 말한다. 완전히 없애거나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치료로 조금 늦출 수는 있겠지만 몇 달 혹은 1년쯤의 시간이 그에게 남았다고 선언한 것이다. 불안과 절망에 휩싸인 그는 다가오는 삶의 붕괴를 막기 위해 낯선 시대와 지역에 관한 책을 무더기로 사들이고,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두문불출한다. 왜 이 모든 걸 더 일찍 읽지 않았을까, 내 인생의 시간으로 뭘 했던가? 절망하면서, 사라지는 시간에 대한 저항과 광기 속에서 집중력과 기억력으로 무장하고 맞선다. 그러다 그것이 오진임을 알게 되고, 앞으로 남은 생의 첫날을 런던의 저택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내 정신에 새겨졌다고 말하고 싶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텍스트가 많아. 갈고 닦아 잊을 수 없는 언어로 점점 더 넓어지는 내면의 다락방, 그곳에 번역한 언어에 대한 기억이 쌓여갔어. 이런 다락방에만 살면서 평범한 삶의 공간으로 향하는 계단을 더는 찾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어. 어쩌다 그 계단을 내려오면 자연스럽고 자명하게 말하는 법을 잊은 이방인처럼 움직였지. 번역 언어, 특히 복잡한 번역 언어는 상황이 무척 특이해. 그게 내 언어이긴 해. 근원이 내 안에 있고, 그걸 빚고 만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야. 하지만 타인의 도장이 찍히지. 내 언어는 내 언어지만, 원래 언어는 원래 언어니까.               p.508

 

레이랜드는 방사선과에서 사진이 바뀌는 바람에 시한부를 선고 받았고, 그 오진과 더불어 77일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불현듯 다시 미래가 생긴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이 생긴 후에는 절대 예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고, 다가올 미래 또한 달라질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중요한 건 삶이 계속된다는 것이라는 걸 그는 깨닫게 된다.

 

"인생은 아름답다. 삶이란 언제나, 매 순간 시작되니까."

 

레이랜드는 책과 원고로 가득한, 천장까지 닿는 책장에 에워싸인 채 13년을 일했지만, 오진을 받고 삶을 정리하며 출판사를 팔아 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쉼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는 오래 전 계획했던 여행을 준비했고, 먼 길을 떠나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다시 삶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다시 살아났으니 말이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시간 속에서 그는 죽은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책상 앞에 앉아 그간의 일을 돌아보고, 마침내 자신의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누구나 살면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다시 세상이 열리기도 하고, 완전한 절망에서 희망을 찾기도 하며, 지금까지 살아 왔던 방식과 다른 세계 속으로 발을 내딛게 되는 일도 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그 동안 놓치고 살았던 많은 것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그 눈부신 순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더 없이 섬세하고, 사색적으로 펼쳐 보인다.

 

이 아름다운 소설은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파스칼 메르시어가 1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이다. 현지에서는 2020년에 출간되어 13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로 유럽 문학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파스칼 메르시어를 세계적 작가로 만든 모든 강점이 담겼다’는 극찬을 받았다고 하는데, 직접 읽어 보니 앞으로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분량 내내 수많은 작가와 번역가와 출판인, 그리고 문학을 삶의 지침으로 삼은 이 모든 이들의 삶이 우아한 언어로 그려져 있다. 레이랜드는 수십 년 동안 번역을 해 왔고, 언어에 매혹되어 끊임없이 낯선 언어들을 공부해 온 인물이라 언어에 대한 그의 열정이 매 페이지마다 그려져 있는 것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몰타어와 사르데냐어, 베르베르어, 그리스어, 튀르키예어, 히브리어, 그리고 알바니아어, 러시아어, 라틴어 등등 그는 수많은 언어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문학과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매 페이지마다 밑줄 긋게 될 것 같다. 그러니 시간을 들여서 느린 호흡으로 읽어 나가야 하는 작품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