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질리언 매캘리스터 지음, 이경 옮김 / 반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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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간여행을 하게 된 거죠?"
"4일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 난 그걸 막아야 해."
"무슨 일이요?"
"그게...... 별로 좋은 일이 아니야, 토드. 4일 후에 네가 누군가를 죽여."
이번에는 모닥불에서 불을 붙이는 느낌이었다. 작은 불꽃이 곧 크게 번져 활활 타올랐다... 토드에게 말해서 그 일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어쩌지?              p.148

 

변호사인 젠은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열여덟 살 아들 토드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거리를 천천히 달려오고 있던 토드가 무언가를 보고 멈춰 선다. 토드의 시선을 따라가니 길 건너편에서 다가오는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가 보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몸이 한데 엉켰고, 토드가 칼을 빼내어 남자를 찌른다. 젠은 그들을 향해 소리치며 달려갔지만, 남자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 곧 경찰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토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한채 현장에서 체포되고 만다. 울다 지쳐 잠이 든 젠은 다음 날 아침, 아들의 방에서 들리는 평소와 같은 토드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젠은 알 수 없다.

 

그러다 젠은 자신이 하루 전날로 돌아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직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던 어제였다. 젠은 아들의 칼을 찾아내 숨기고, 그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하루, 며칠, 몇 주, 몇 년을 뛰어넘으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꾸로 가는 시간 여행 속에서 젠은 아들이 살인자가 된 이유를 찾아내고, 범죄를 막기 위해 뭔가 해서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과연 그녀는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아들의 친구, 몇 달 전부터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 젠은 아들을 미행하던 어느 날, 토드에게 살해당한 남자를 목격한다. 그는 대체 토드와 무슨 관계인 것일까. 그리고 젠은 토드의 방을 수색하다 옷장 구석에서 하나의 꾸러미를 발견하는데, 그속에 있던 것인 실종된 아기의 포스터와 대포폰, 라이언 하일스라는 이름이 적힌 경찰 배지였다. 위장 경찰인 라이언과 토드는 무슨 관계인지, 왜 그의 경찰 배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그는 범죄조직과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사실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거대한 퍼즐이 완성되어 간다.

 

 

 

미끄러져 지나가는 바람에 우리가 아깝게 놓치는 것들을 그리고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화살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켈리는 아직 택시를 부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젠은 그 눈빛을 너무나 잘 안다. 켈리는 눈썹을 으쓱하며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문장을 말했다.
"진부함의 극치인 건 알지만, 저희가 아는 사이인가요? 오늘 만나기 전부터요."
젠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아니에요."            p.496

 

이야기는 시간여행을 하는 젠의 시점과 위장 경찰로 범죄조직에 잠입하게 된 라이언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고 있다. 사실 중반이 훌쩍 넘어갈 때까지 라이언이라는 인물이 이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독자들은 알 수가 없다. 젠이 시간을 거듭 거슬러 올라가면서 찾아 내야 할 단서와 진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점점 젠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먼 과거로 향한다. 하지만 그녀는 두렵다. 범죄의 시작점을 모르고 지나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모르고 지나쳤을 수많은 순간들, 과연 그 중에 어떤 것이 미래의 어느 날 토드가 낯선 남자를 살해하게 되는 순간으로 연결이 되는 것인지 젠은 알 수가 없다. 그녀는 아들의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어 바꿔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어느 순간을 바꿀 경우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 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게 과거로, 과거로 향하던 젠은 급기야 토드가 아주 어린 아이였던 어느 날로 가게 된다. 아들의 범죄가 엄마인 자신이 잘못 키웠기 때문이 아닐까 계속 자책하던 젠은 과거의 아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여타의 스릴러 작품에서는 만날 수 없는, 먹먹한 감동을 안겨준다.

 

다들 지나간 시간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이 작품 속 젠처럼 시간을 거꾸로 사는 삶을 경험해볼 수 있다면 누구도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 우리가 겪었던 시간들 속에서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며, 그것들은 무해하게 우리를 지나쳐 흘러 가기도 하니 말이다. 당시에는 전혀 몰랐던 일들, 당시에는 놓치고 지나쳤던 일들, 그 시간들 또한 현재의 우리를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한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찾아 내어 전체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과정이 바로 이 작품의 백미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출판사에서 반전에 놀라지 않았다면 책 구매 금액을 전액 환불해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을 만큼, 놀라운 반전을 담고 있다. 물론 반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결말에 이르는, 촘촘하고 짜임새 있는 과정이다. 여타의 타임슬립물과는 전혀 다른 플롯과 구성으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준다는 점도 이 작품만의 장점이다. 아들의 범죄를 막아야 한다는 엄마의 간절한 열망이 만들어 내는 타임슬립 서사는 상상도 못했던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놀라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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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인 더 하우스 보이 프럼 더 우즈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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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의 모토는 분명했다. 업보는 부메랑과 같다. 당신이 타인에게 한 행동은 반드시 당신에게 돌아간다. 그들은 까다로운 신청서 작성과 철저한 심사를 통해 신중하게 목표물을 가려냈다. 예전에 스트레인저로 활동했던 시절 크리스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운 교훈 때문이었다. 범인이 고통받아 마땅한 인간이라는 전제에 한 치의 의문이나 어떤 합리적인 의심도 들지 않을 때만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하지만 보나마나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기린은 부메랑에서 가장 철두철미한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p.43

 

할런 코벤의 새로운 시리즈 <보이 프럼 더 우즈>의 후속작이다. 할런 코벤은 시리즈보다는 스탠드 얼론 작품이 더 많은 작가인데, '마이런 볼리타'시리즈 외에 아주 오랜만에 '와일드'라는 캐릭터로 <The Boy from the Woods>와 <The Match>라는 두 작품을 썼다. 원제는 'The Match'이지만 국내 번역본은 시리즈의 통일성을 주기 위해서 <보이 인 더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 같다. 제목이 어찌되었던 시리즈의 후속작을 단 몇 개월 만에 만날 수 있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전편보다 더 빠른 속도감과 복잡한 구성으로 업그레이드 된 재미를 보여준다.

 

 

시리즈의 주인공 와일드는 전작에서 '숲에서 버려진 야생 소년'으로 발견 당시 여섯 살에서 여덟 살 사이로 추정되었던 소년으로 등장했다. 언제부터 숲에서 살았는지, 어쩌다 그곳에서 혼자 살게 되었는지, 부모나 다른 어른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스타 변호사 헤스터와 훌륭한 위탁 가정의 돌봄 아래서 잘 자라 어른이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은 와일드라는 별명으로 불리다 그게 이름이 되었고, 무엇이든 다 잘하는 천재였지만 어디서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육군 사관학교 졸업 후 특수 부대에 복무했고, 탐정 일도 잠깐 했지만 결국 '정상적인' 사회에 동화되려고 노력하는 시늉마저 그만둔다. 이후는 자신만의 요새를 지어 숲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헤스터의 죽은 아들 데이비드와 절친한 친구였기에 헤스터 가족과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며 왕래가 있다. 데이비드가 죽고 나서 그의 아내 라일라와는 연인이 되었고, 데이비드의 아들 매슈의 대부로 그들 모자와 가족과도 같은 사이이다. 이러한 배경은 전편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도록 이번 작품에서도 중간중간 언급되고 있다.

 

 

"사기가 아니에요. 우리의 인생은 연극이에요. 무엇이 진짜고 가짜냐는 중요치 않아요. 그걸 나눌 수 있는 선이나 경계도 없고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에 나는 작은 법률 사무소에서 서류나 정리하던 비서였어요. 그게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알아요? 우린 모두 유명해지고 싶어 해요.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진다면 그게 모든 사람의 목표일 거예요. 아주 별 볼 일 없는 SNS 계정조차도 '좋아요'와 팔로워가 늘어나길 원하죠. 그렇다면 난 이 흐름에 따라 그냥 평화롭고 지루한 삶으로 돌아가야 할까요? 천만에...."              p.416

 

이번 작품에서는 와일드가 궁금했던 출생의 비밀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30년 훨씬 넘도록 밝혀지지 않았던 그의 출생에 대한 부분은 와일드가 유전자 검사 사이트에 DNA를 등록해 친아버지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어렵게 만난 친아버지는 와일드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고 말한다. 세 딸을 두고 아내와 함께 평범하게 살고 있는 그의 삶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던 와일드는 그렇게 다시 돌아온다. 친아버지를 찾았음에도 자신이 왜 어릴 적 숲에 혼자 버려졌는지에 대한 비밀은 풀지 못한 것이다. 한편, 전작에서 와일드와 유전자가 23% 일치했던 ‘PB’가 몇 개월 전 은밀히 도움을 요청해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와일드는 그에게 연락을 하지만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

 

 

PB는 최근 리얼리티 쇼를 통해 스타가 되었지만, 성범죄 스캔들로 나락에 떨어진 피터 베넷으로 현재 SNS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고 잠적한 상태였다. 와일드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그를 모른 척할 수 없었기에 본격적으로 사라진 PB를 찾기 시작한다. 와일드는 PB를 찾는 과정에서 전직 경찰의 시신을 발견하고, 인터넷 악성 댓글과 여론몰이로 피해를 보는 사람을 대신해 복수해주는 정체불명의 자경단 '부메랑'에 대한 부분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부메랑’은 온라인상에서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괴롭힌 자들에게 업보를 되돌려 주는 일을 했는데, 발견된 전직 경찰의 시신이 그들의 표적이자 PB를 절벽 끝까지 내몰았던 악성 악플러이기도 했던 것이다.

 

출생의 비밀을 밝혀줄 수 있는 유전자 매칭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리얼리티 쇼의 추악한 이면과 복수를 대신해주는 자경단, 그리고 연쇄살인으로 이어지며 폭풍같은 서사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의 중심에 와일드가 있었다. 과연 와일드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고, 이 모든 일들을 해결해 낼 수 있을까. 할런 코벤의 작품들이 최고의 페이지 터너 임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음 장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데 할런 코벤만큼 뛰어난 솜씨를 가진 작가도 없으니 말이다. 롤러 코스터처럼 달려가는 숨가쁜 미스터리를 즐기기에 지금 이 계절만큼 잘 어울리는 시기도 없다. 무더운 날씨 따위 금방 잊어 버리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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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플레이스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타나 프렌치 지음, 고정아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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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상한 사과주 느낌을 풍긴다는 사실, 마셔도 좋을 투명한 황금빛 공기, 깨끗한 얼굴들, 행복한 수다의 물결, 나는 그 모든 것이 좋았다. 아주 좋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것을 꽁꽁 감추고 있었다. 비뚤어진 한 가지 사례만이 아니고 일부만도 아닌 모든 것이. 어쩌면 대부분이 헛소리일지 모른다는 생각 또는 희망이 들었다. 지루한 여학생들의 장난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똑같이 나쁘다고 여겼다고 다시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바꿨다. "이것들 중 사실이 얼마나 될까요?"            p.101

 

푸르른 교외에 위치한 세인트킬다 칼리지는 사립 여자 중고등 통합학교로 수녀들이 운영했다. 주로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이 다니는 킬다의 교정 뒤편에 있는 작은 숲에서 수녀 두 명이 아침 산책을 하다가 누워 있는 한 소년을 발견한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높은 담장으로 가로막힌 남학교의 학생이었다. 전날 밤에 누가 그의 머리를 박살 냈다.  소년의 아버지는 은행 간부에 엄청난 부자였고, 미성년자가 희생된 사건이라 고층 건물을 몇 채나 지을 만큼의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용의자도 없었고, 왜 그가 그곳에서 발견되었는지 이유도 오리무중이었다. 그렇게 사건은 미제로 종결되었고, 그로부터 1년 뒤 킬다의 익명 게시판에 소년의 사진과 함께 '난 누가 그 애를 죽였는지 알아'라는 메시지가 발견된다.

 

사건의 담당 형사였던 콘웨이와 제보를 받았던 스티븐 모런이 살인 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한다. 미제사건수사과 소속인 스티븐 모런은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서 살인수사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1년 전 해당 사건의 담당 형사였던 콘웨이에게 수사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살인 수사관에서 외톨이였던 콘웨이였기에, 스티븐 모런이 도와준다고 해서 손해볼 건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건이 일어났던 여학교로 향한다.

 

 

작은 언덕 위 사이프러스나무 빈터에 달빛이 무엇에도 걸리는 일 없이 가득 쏟아졌다. 그들 셋이 서로 어깨를 대고 기대앉아서 까딱이는 이삭들 틈에 다리를 뻗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언뜻 머리 셋 달린 동물 같아서 나는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그들은 오래된 동상처럼 조용하고 매끈하고 하얗고 무표정했다. 우리를 바라보는 심연 같은 세 쌍의 눈. 우리는 웃음을 멈추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히아신스 향기가 물결처럼 흘러 위로 올라왔다. 설리나와 어깨 한쪽을 맞댄 리베카. 머리는 풀려 있고 몸 전체가 환영 같은 흑백 얼룩이었다. 눈만 한 번 깜박하면 풀밭 위의 달빛으로 변할 것처럼.            p.642

 

'그 애는 멋있는 애였어요. 잘 생겼고, 못하는 게 없었어요. 모든 사람의 눈에 띄는 아이였어요. 모두가 그애를 좋아했어요. 절대로 살인을 당할 것 같지 않은 아이였어요. 착한 애였어요. 내 휴대폰 수리를 도와줬거든요. 그애는 못된 애였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땐 다정하지 않았거든요.' 이 모든 상반된 이야기들이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이 흥미롭다. 크리스를 좋은 아이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못된 아이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 크리스의 유령을 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체 크리스는 생전에 어떤 아이였고, 이들과 무슨 관계였던 것일까.

 

이야기는 사건을 수사하는 현재와 크리스가 죽기 팔 개월 전부터의 과거가 교차로 진행된다. 타나 프렌치가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은 지나칠 정도로 디테일하고 섬세해서 미스터리로서의 속도감 있는 서사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려 750페이지를 넘는 두툼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는 갈수록 느려지지만, 그래서 완독하는 데 어느 정도의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이상하게도 몰입감은 점점 더해져 간다. 게다가 타나 프렌치는 이 긴 이야기 속에 담긴 놀라운 통찰력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 내고, 겹겹이 쌓여 있는 비밀과 거짓말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한다. 아름답고 우아한 문장으로 예민하고, 복잡한 십대 여학생들의 정서와 심리를 손에 잡힐 듯 그려내는 솜씨 또한 대단하다.

 

 

이 작품은 타나 프렌치의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신작이다. 아일랜드의 추리 소설 작가 타나 프렌치의 작품은 오래 전에 <살인의 숲>으로 처음 만났다. 작가는 이 데뷔작으로 에드거상, 배리상 등 세계 추리 문학상의 신인상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켰다. 국내에는 2010년에 출간되었는데, 당시에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그 이후로 다른 작품들이 소개되지 않아 아쉬웠었다. 그러다 엘릭시르를 통해서 꾸준히 <페이스풀 플레이스>, <브로큰 하버>가 출간되어 반가운 마음에 나올 때마다 구매했는데, 페이지 수도 많은데다 천천히 읽어야 하는 작품들이라 정작 완독하지 못한 채 미뤄 두고 말았다.

 

이번에 나온 신간 <시크릿 플레이스>는 시리즈 중에 꼭 읽어 보고 싶었던 작품이라 더 미루지 않고 먼저 읽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이 시리즈는 한 명의 주인공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작의 주인공이 다른 작품에서 보조 인물로 출연하는 식으로 각 작품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타나 프렌치의 작품들은 섬세한 심리 묘사와 아름다운 문장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작품 역시 그러한데 포스트잇 플래그와 밑줄로 안 그래도 느린 책 읽는 속도를 더 느리게 만들어 주지만, 그렇게 천천히 느리게 읽어서 더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타나 프렌치의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는 <시크릿 플레이스> 바로 다음 작품인 <침략자 The Trespasser>까지 총 6권이 출간되어 있다. 다음 작품도 엘릭시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거짓말로 범벅이 되어 있는 사건, 여덟 명의 목격자이자 용의자인 소녀들,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경찰의 딸, 수상한 느낌으로 가득차 있는 학교에서 밝혀질 사건의 진상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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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냥 - 죽여야 사는 집
해리슨 쿼리.매트 쿼리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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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들은 악령이 떠돈다는 계곡 이야기를 듣고 나서, 사샤는 '그분들이 한 말 중엔 사실도 있을지 모른다'는 입장을 택하려는 게 눈에 빤히 보였다. 그럼 나는 어떠냐고? 이 이웃들이 우리를 엿 먹이려고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다고 확신할 뿐 아니라, 그들이 한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재미삼아 한번 시험해 보자는 생각조차 심술궂게 비웃을 작정이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저 사샤와 나는 서로를 잘 알고 있을 뿐이다.          p.75

 

해리와 사샤는 10년 전 대학에서 만났을 때부터 이야기하던 꿈을 마침내 이뤘다. 현관에 앉아서 바깥을 바라보면 온통 자연뿐인 곳, 인간이 손댄 흔적이 없는 산자락에 집이랑 헛간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꿈이었다. 그리고 해리가 서른다섯, 사샤가 서른이 되고 꿈에 그리던 곳에 신혼집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미국 서부 티턴산맥 국립공원 근처의 산기슭에 위치한 그곳은 웅장한 산맥과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든 간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 속에서 그들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로.

 

그곳에서 살기 시작한 지 3주째, 해리와 사샤는 이웃에 사는 스타이너 부부를 만나러 간다.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이웃이 딱 하나뿐이었기에, 인사를 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70대 노부부인 댄과 루시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활기차고 건강해 보였다. 노부부는 수십 년째 그곳에 살고 있는 중이었고, 해리와 사샤가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가족들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노부부는 해리와 사샤에게 믿을 수 없는 조언을 하게 되는데, 바로 계절마다 찾아오는 산 악령에 대한 것이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각각의 계절마다 특정한 현상이 나타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따라야만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 지침이라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들 투성이라 해리는 그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려고 한다. 그런데, 얼마 뒤 노부부가 경고했던 일들이 하나씩 실제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조용하고 아름다웠던 새 집에서의 평화로운 삶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사샤...... 있죠,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 없어요. 당신과 해리, 댄, 나는...... 우리는 이 골짜기에서 이사 갈 수 없어요. 우리는 절대로 이 골짜기를 떠날 수 없다고요. 악령이 하는 짓 가운데 그것도 있어요. 이게...... 우리가 빠진 미친 상황이에요."
기절할 것 같았다.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반응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고, 특히 루시에게 이러다니 믿을 수가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p.255~256

 

제목이 '이웃 사냥'이기 때문에, 연쇄 살인마 혹은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를 상상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오싹한 공포를 선사하는 이야기였다. 작품의 원제가 Old Country이기 때문에, 더 자극적이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제목으로 번역본 타이틀을 잡은 것 같다. 물론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제목이 너무 안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는 초자연적인 힘과 '악령'이 등장하는 다소 비현실적인 스릴과 공포를 선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산에서 북소리 같은 게 들려 오면 가능한 빨리 모든 창문을 닫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집 안에 아무것도 들이면 안 되고, 연못에 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곧장 벽난로에 불을 붙여야 하고, 곰에게 쫓기는 벌거벗은 남자가 나타나 살려 달라고 소리쳐도 곰이 남자를 공격할 때까지 피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언뜻 듣기에는 무슨 미신도 아니고, 이해하기가 힘들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실제로 해리와 사샤 부부에게 그 일들이 현실로 들이 닥쳤을 때, 정말 무시무시한 공포를 불러 일으키며 이야 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은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괴담 게시판 노슬립(no sleep)에 연재되면서 수천 개의 좋아요와 댓글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고, 정식으로 출간되기도 전에 10개국에 번역 판권이 수출되었으며, 넷플릭스에 영상화 판권도 팔린 상태이다. 콜로라도의 자연 속에서 자란 두 형제 해리슨 쿼리와 매트 쿼리가 쓴 이 이야기는 실화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지만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는 공포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정체불명의 저주를 두 사람이 각자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점도 공감과 이해를 불러 온다. 해리는 종교도 믿지 않고, 전설이나 판타지에도 관심이 없으며, 설명할 수 없는 걸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사샤는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문제에 대처한다. 따라서 계절마다 다른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악령에 맞서는 방식도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르다. 해리는 악령을 도발하기도 하고, 원칙을 따르면서 약간 비켜가기도 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반면, 사샤는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합리적으로 해결해보겠다고, 이 미친 짓을 끝낼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말이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진행되던 서사는 후반부에 이르러 엄청난 결말을 향해 가며 완벽한 피날레를 선사한다. 호러물임에도 불구하고 긴 여운을 남겨 주는 작품이었다. 넷플릭스로 영상화되면 얼마나 더 무시무시한 작품이 탄생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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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너에게 겨울에 내가 갈게
닌겐 로쿠도 지음, 이유라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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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 좋지."
"그렇네요. 역시 실제로 보니까 박력도 있고, 사람들이 이렇게 모인 느낌도 좋아요."
"아니야. 금방 사라져버리니까 좋은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불꽃놀이는 아무것도 남지 않잖아. 그래서 '지금 곡 봐야지!'하고 노력하니까, 좋은 추억으로 남는 거라고 생각해."  
연속해서 무수한 작은 빛이 쏘아 올려졌다. 칠흑의 캔버스가 빛의 샤워로 빈틈없이 채워졌다.       p.50

 

대학의 문학부 신입생인 나쓰키는 아직은 동아리 술자리가 불편하기만 하다. 적당히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시간이 빨리 가기만 바라고 있는데, 별안간 집에 가고 싶다며 기세좋게 먼저 자리를 뜨려는 여학생이 있었다. 나쓰키는 용기를 내어 그 여학생을 따라 나섰고, 그렇게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된다. 여학생은 미술학과 유화 전공인 2학년 유키였고, 나쓰키는 어두운 밤을 여왕의 망토처럼 걸친 매혹적인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하게 만다. 그렇게 두 사람은 꿈처럼 달콤한 여름을 보내지만, 언젠가부터 유키가 학교에 나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 결국 나쓰키는 수소문 끝에 그녀의 본가를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커다란 의료용 침대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유키는 알 수 없는 희귀병으로 겨울이면 식물인간처럼 내내 잠들어 있는다는 거였다. 다섯 살 때부터 이르면 10월 말부터, 보통은 2월 말까지 기묘하게도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했다. 언젠가는 1년 넘게 잠에서 깨지 못한 때도 있었다고 하니, 이번에도 깨어날지는 가족들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현대판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도 된 것처럼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는 식사도 배설도 제대로 할 수 없기에, 생명을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다. 과연 겨울이라는 계절을 잃어버린 여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연애를 지속할 수 있을까.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가끔 상상해요. 하지만 길은 아득히 먼 곳에서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뉘어 있어요. 원래 한 길이었던 자매는 합류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런가... 타인이기에 느끼고 있던 거리감도, 유키를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는 초조함도 후유미에게는 전부 손에 넣기 힘든 것들이었다. 타인이기 때문에 비로소 같은 길을 나아간다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언젠가 자신의 인생을 걸어가야 할 후유미는,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p.274

 

이 작품은 “결말이 아름다워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말았다”는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으며 제28회 전격소설대상 미디어워크스문고상을 수상했다. 겨울이 시작되면 식물인간처럼 깊은 잠에 빠지게 되는 희귀병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믿기 힘든 비현실적인 병이긴 하다. 아주 오래 전에 동물들의 겨울잠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인간도 동물처럼 겨울잠을 잔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실제로 동물은 겨울잠을 자는 동안 가끔 일어나서 먹기도 하고, 다시 잔다고 하는데, 어찌되었든 몇 달을 푹 자고 일어나면 계절이 완전히 바뀌어 있는 경험이란 정말 신기할 것 같았다. 사실 계절 중에 여름을 너무 싫어해서 여름은 건너띄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기에, 선택할 수 있다면 여름잠이 더 좋을 것 같긴 하다. 잠시 자고 일어나면 내가 싫어하는 한 계절을 훌쩍 건너뛸 수 있으니 좋을 것 같긴 한데, 이 작품 속 주인공처럼 매년 강제적으로 반복이 되어야 한다면, 게다가 다시 깨어날 수 있을지를 기약할 수 없다면 솔직히 무서울 것 같기도 하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고, 기다려야 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은 더 힘이 들테고 말이다.

 

이 소설은 겨울잠을 자야 하는 유키가 아니라 그런 유키를 사랑하는 나쓰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각 장의 끝마다 다시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유키의 꿈결같은 이야기가 짧은 에피소드처럼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서사는 유키의 가족들과 나쓰키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가족의 입장에서 그들의 안타까운 삶을 이해하게 된다. 병명도 찾지 못하는 희귀병으로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삶을 산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의 무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독특한 소재의 이 작품은 작가인 닌겐 로쿠도가 오랜 투병 생활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쓰였기에, 섬세하고 간절한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랑의 기적을 믿는다면, 눈처럼 순도 높은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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