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장 나의 표현력을 위한 필사 노트 - 뭉툭한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어주는 표현력 되찾기 하루 한 장 필사 노트
유선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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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필사 열풍을 이끌었던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의 후속작이 나왔다. 전작이 '어휘'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표현'에 중점을 둔 문장들로 꾸렸다. 책 자체도 예쁘고, 필사하기에 좋게 쫙쫙 잘 펴지는 양장본인데다, 구성이 매우 뛰어난 책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좋은 문구들만 모아서 베껴 쓰는 개념이 아니라, 필사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단계별로 제시되어 더 좋다. 표현과 친해지는 첫 번째 단계를 시작으로 표현력을 기르는 비결인 짜임새와 비유에 대해 배워보고, 마지막으로 표현력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는 문장들을 필사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따금 빤히 아는 낱말인데 소리 내어 말하거나 손으로 쓸 때 새삼 낯설게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는데 막상 말이나 글로 사용하려니 어색하다면 듣고 보기는 했어도 입이나 손과 같이 몸을 써 사용한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이 책과 함께 문장을 눈으로 읽고, 그 문장으로 입으로 소리 내 다시 읽어 보자. 종이에 옮겨 쓸 때는, 쓰고 있는 글자를 동시에 나지막이 소리 내면서 필사하면 더 좋다. 어감을 익히는 데 말소리만큼 좋은 것이 없으니 말이다.


트리나 폴러스 <꽃들에게 희망을>,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 프리드리히 니체 <나의 행복, 윌리엄 셰익스피어 <폭풍우>, 이제니 <사과와 감>,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김현 <말들의 풍경>, 알베르 카뮈 <티파사에서의 결혼>, 은희경 <아내의 상자>, 헨리크 입센 <유령>, 정세랑 <덧니가 보고 싶어>, 대실 해밋 <몰타의 매>,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더글라스 케네디 <빅 픽쳐> 등 저자가 고심해서 고른 문장들은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만들어졌다.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고, 천천히 필사를 하며 마음에도 담는 시간이었다. 



유선경 작가는 30년 넘게 매일 글을 쓰고 있으며, 1993년부터 라디오 방송에서 글을 썼고, 일주일에 5권 이상 책을 읽는 다독가이기도 하다. 또한 중학생 때 처음 필사하기를 시작했고, 열아홉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노트에 옮겨 써서 그 분량만 10포인트로 1,500매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노하우와 데이터를 담은 것이기에 여타의 필사책들과는 뚜렷하게 다르다. 단순히 좋은 문장을 옮겨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여 표현할 수 있게 구체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책의 왼편엔 저자가 직접 고른 문장들이 있고, 오른편엔 필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그 아래에 저자가 쓴 메모가 있다. 메모에는 해당 표현에 대한 추가 설명과 작품에 대한 배경, 필사를 더 와닿게 하는 방법 등 표현력을 기를 수 있는 저자의 상냥한 가이드가 담겨 있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창작이 되려면 사유가 필요하다고 조목조목 짚어주고, 필사하기 전에 꼭 소리 내어 읽으라고 당부하며 글의 짜임새와 운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본질을 '호모 엑스핑고(Homo expingo, 표현하는 인간)’라고 명명했다. 인류가 이토록 번성한 비결은 고립이 아닌 협력에 있고, 이를 가능하게 한 도구는 이심전심이 아니라 언어라는 표현이었다고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타자의 생각이나 느낌을 알고 싶어 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알리고 싶어 한다. 이해해야 표현할 수 있고, 표현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해력과 표현력을 늘릴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책 읽기와 필사이다. 저자는 각 장 사이사이 '호모 엑스핑고로서 표현하기'라는 코너를 별도로 만들어 두었다. 필사 노트를 차례로 따라가는 동안, 스스로의 글을 써볼 수 있도록 다양한 미션을 준다. 직유나 은유 등의 비유법을 써서 이루고 싶은 소망 등을 표현해보기, 당신 생애에 가장 아름다운 '잇다'의 순간을 떠올리고 그 존재를 표현해보기 등등 뭉툭한 생각을 정교하게 다음어주는 표현력을 배우고 실천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읽기가 경험이라면 필사는 체험이다. 이 책에 수록된 동서고금의 작가들이 내놓은 문장들을 매일 필사해보며 표현력을 길러 보자. 저자가 제안하는 필사 방법은 이렇다. 먼저 문장을 눈으로 읽고, 그 다음 입으로 소리 내어 다시 읽어보고, 그 다음에 옮겨 쓴다. 쓰고 있는 글자를 동시에 나지막이 소리 내면서 필사하면 더 좋다. 차근차근 이 책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필사하기 딱 좋은 계절, 읽고 쓰는 시간을 통해 어휘력 너머, 표현의 깊이를 채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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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시작한 불은 책으로 꺼야 한다 - 박지훈 독서 에세이
박지훈 지음 / 생각의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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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매주 쏟아지는 온갖 장르의 신간을 아주 빨리, 출판사들이 동봉한 살뜰한 보도자료와 함께, 심지어 공짜로 받아보는 이는 많지 않다. 사무실에 쌓이는 신간들을 통해 나는 매번 저자들이 벌인 고군분투의 흔적을 발견하곤 했다. 크고 작은 흠집이 있더라도, 그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모든 책엔 하나같이 저자의 노고와 진심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그것들은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자맥질하다가 최후에 터지는 해녀들의 숨비소리 같았다.               p.66


독서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종종 모두가 열광하는 작품이 내겐 아무런 감동을 남기지 못하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작품이 내게는 심금을 울리는 특별한 작품이 되기도 한다. 책이란 작품성이 뛰어나고, 문학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위대한 고전만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각자의 취향이 다르기에 우리는 타인의 독서 습관에 대해 궁금해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내가 읽었던 책을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독서 에세이가 끊이지 않고 계속 출간되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매주 수백 권의 책을 마주하던 일간지 출판 담당 기자의 독서 에세이이다. 그는 20년 가까이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사회부, 문화부, 종교부에서 일했는데, 그 중에서도 문화부에서 출판 분야를 담당했던 몇 년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서평과 에세이의 경계에 있다'는 곽아람 작가의 추천평처럼, 국문학을 전공했고, 책을 읽는 일이 직업이었던 저자의 글이라 그런지 잘 읽히지만 짜임새 있고 깊이가 있는 독서 에세이였다. 문학부터 사회과학, 경제경영, 철학, 역사, 과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 서른 네 권에 대한 저자의 서평을 만날 수 있었다. 수전 올리언의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김연수의 <7번국도>, 호프 자런의 <랩 걸> 등 이미 읽었던 책들이 나올 때는 반가웠고, 프란스 드 발의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아누 파르타넨의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미치오 카쿠의 <인류의 미래> 등 몰랐던 책들은 찾아서 읽어 봐야겠다고 메모해 두었다. 




“좋은 책은 무엇인가” 묻는다면, 많은 답변을 늘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을 흔들거나, 생각을 자극하거나, 통찰을 제공하는 작품이 좋은 책이라고. 좋은 질문이 담기거나 좋은 답이 실린 책, 혹은 그 둘을 모두 가진 것이 훌륭한 작품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좋은 질문은 무엇이고 좋은 답은 어떤 것일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질문이 훌륭할수록 답을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답이 없더라도 생각할 무언가를 무더기로 던져주는 것도 때론 좋은 책의 조건이 되는 셈이다. 독자는 이런 책을 보면 독서 이후 찾아오는 온갖 질문들을 사유의 광맥으로 삼게 된다.               p.157


저자는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을 회사를 휴직하고 미국에 머물던 일년 여의 시간 동안 쓴 것이라고 한다. 어떤 주제를 떠올린 뒤, 그에 걸맞은 책을 찾아 읽고, 나름의 감상이나 논평을 곁들인 글들을 쓰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주로 작업을 한 탓에 한국어로 된 종이책을 욕심껏 구해 읽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고 하지만, 한국에서였다면 늘 시간은 부족하고, 본업이 아닌 일에 마음을 쏟아 붓기가 어려웠을 테니 이만큼의 원고도 쓰기 어려웠을 거라고. 아마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럴 것이다. 직업이 아닌 취미로 하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하기란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게 쓰인 글이었고, 책과 삶이 고스란히 겹쳐져 있는 글이라 더욱 공감하며 읽었다.


출판 담당 기자는 매주 나오는 신간 가운데 '금주의 책'이겠거니 싶은 작품들을 골라 독자에게 소개하는 일을 한다. 출판면 마감은 매주 수요일이었고, 전주 수요일부터 차주 화요일까지 들어오는 신간은 200권 안팎이었다. 2개의 지면에 비중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책은 많아야 서너 권에 불과했기에, 주마간산 수준으로 책들을 훑어본 뒤 최종작들을 선정해 읽고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취미이던 독서로 돈까지 벌게 됐으니 건성으로 볼 순 없었지만,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홍수처럼 쏟아지던 활자 속에서 허우적대다 간신히 마감한 뒤 돌아보면 또다시 책상엔 눈사태가 난 것처럼 한가득 신간이 쌓여 있곤 했다니.... 애서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꿈의 직장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 속에서 나름의 현실적인 고충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출판 기자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너무 재미있었고, 책에 대한 감상 또한 잘 정제된 문장으로 쓰여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세상에는 좋은 책이 너무 많고, 그 책들을 다 읽기엔 시간이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며 또 다음에 읽을 책을 골라본다. 책에 대한 책을 읽고 나면, 찾아서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이 늘어나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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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하다 앤솔러지 3
김남숙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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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들이 바람을 맞아 흔들거렸다. 수천 개의 잎이 흔들거리는 속에서 새벽하늘에 뜬 별들이 잠깐 보였다가 잎에 가려졌다가 했다... 식물들을 제외한다면 나는 죽은 남자와 단둘이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과연 식물들을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왜 생기지 않는 걸까? 궁금할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보다는 내 몸 위로 자기 몸만 한 무늬의 그늘을 드리우는 잎사귀들, 곤히 잠들어 있는 식물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 '김채원, '별 세 개가 떨어지다' 중에서, p.67


석 달 정도 가족들과 연락이 없었던 할아버지가 걱정이 된 손녀들이 할아버지가 홀로 가꾸고 있는 종묘원을 방문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종묘원은 반원형의 이글루 모양으로 온실 같은 곳이라기보다는 작은 야생 숲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할아버지는 그곳을 정성껏 가꾸며 혼자서 재미있는 걸 하고 있었고, 안심이 된 두 사람은 할아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곳에서 누군가의 '발'을 발견하게 되는데, 나무도, 식물도 모두 조용한 그곳에서 묻힌 채 발견된 죽은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산희는 이제 막 이사를 마친 참이다. 집 안은 포장 테이프를 뜯지 않은 상자들, 책장에 엉망으로 꽂힌 책들과 옷이 담긴 커다란 비닐봉지등으로 가득했다. 정리를 조금 하다가 지금 이 집에서 뭐가 더 필요한지 목록을 챙겨 본다. 인터넷 연결도 아직 안 했고, 화장실 휴지와 암막 커튼 등이 필요했다. 급한대로 필요한 물건을 사러 익숙한 마트에서 장을 보고 다시 낯선 집으로 돌아온다. 더 늦기 전에 청소기라도 돌려야 할 것 같았는데, 도무지 청소기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전에 살던 집에 두고 온 것 같다는 생각에 다음날 퇴근하면서 들러 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 집에 새로 온 세입자는 자신과 똑 닮아 있었다.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란 산희는 자신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신과 똑 닮아 있는 상대와 마주하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산희와 똑같이 생긴 그는 대체 누구일까. 




산희는 점점 더 혼란스러웠지만 꾹 참고 커피를 마시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산희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산희는 자신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머그잔을 든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까지도 산희의 그것과 똑 닮아 있었다. 그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경찰이 자신을 지목할지도 모르겠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지문까지 똑같은 거 아니야?

「저 진짜 모르세요? 우리가 너무 똑같이 생긴 것 같은데요.」

         - 한유주, '이사하는 사이' 중에서, p.174~175


다섯 명의 소설가가 하나의 주제로 함께 글을 쓰는 열린 책들의 '하다 앤솔러지' 세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우리가 평소 하는 다섯 가지 행동 즉 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 라는 동사를 테마로 진행되고 있다. 그 세 번째 책 <보다>에는 김남숙, 김채원, 민병훈, 양선형, 한유주 작가가 참여했다. 다섯 편의 이야기 중에 김채원 작가의 <별 세 개가 떨어지다>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따뜻하고 코지한 분위기도 좋았고, 은근슬쩍 벌어지는 미스터리도 흥미로웠다. 그 외에도 오키나와 모토부에서 있었던 일을 그린 <모토부에서>, 하얀 손님을 자신의 트럭에 태우게 된 한 운송 기사의 이야기인 <하얀 손님>, 홋카이도의 왓카나이 소야곶의 수평선 너머를 상상해보는 <왓카나이>, 이사를 나온 뒤 내가 살던 집에서 나와 똑 닮은 사람과 마주하게 되는 기묘한 상황을 그린 <이사하는 사이>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며 살아 간다. 같은 상황을 함께 겪더라도 완전히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각자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속 인물들은 글이 써지지 않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그 이면을 상상하고,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 도착한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너무 닮은 사람과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본다. 우리가 바라보고, 지켜보고, 살펴보는 것에 관한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각자 작가들의 개성으로 가득하다. 잘 안 읽히는 작품도 있었고, 좋았던 작품도 있었는데 그렇게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앤솔러지만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반투명한 트레싱지로 된 표지가 아름다운 이 시리즈는 책배와 위, 아래에 프린트까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시리즈 네 번째 책인 <듣다>가 벌써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작가들이 참여해 기대하는 중이다. 빨리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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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텃밭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캐시 슬랙 지음, 박민정 옮김 / 로즈윙클프레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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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나를 위로하고 삶의 가치를 일깨운다. 여기에 신은 필요 없다. 내게 필요한 모든 위로는 자연 안에 있다. 나의 도덕적 나침반도 자연에서 비롯된다. 자연이야말로 진짜 현실이다. 초자연 따위는 무시하자. 중요한 것은 지구고, 자연이며, 생명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일부임을 기억하는 순간,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한다.            P.84


언젠가 나이들면 시골에 집을 짓고 살 거라고, 혹은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상상 속의 그 집에서는 텃밭을 가꾸는 풍경이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끼니 때가 되면 텃밭으로 나가 그날 텃밭에 무엇이 열렸는지 보고 그걸 수확해 그 채소들로 할 수 있는 요리들을 생각해 보는 거다. 그렇게 채소를 씻고, 다듬고, 조리하는 과정은 조록조록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싱그러운 채소의 향을 맡고, 도마에 칼이 탁탁탁 부딪히는 감촉을 느끼는 시간이다. 물론 도시에서도 요리를 할 때 비슷한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마트나 시장에서 구입한 채소는 직접 재배해서 수확한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물론 시골살이라는 것이 마냥 낭만적인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선뜻 불편한 삶을 시작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텃밭이나 정원을 가꾸며 사는 삶에 대한 책이 나오면 꼭 챙겨 보는 편이다. 이번에 만난 책도 그래서 궁금했다. 번아웃으로 인해 불안과 우울로 힘들었던 저자가 텃밭에 나가 밭을 일구고 채소를 키우면서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된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런던의 대형 광고 회사에서 글로벌 마케팅 전략 책임자로 일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빠르게 승진했고, 지미추 구두를 신고 비행기로 세계를 누비며 잠시라도 블랙베리 휴대전화가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성공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피도 눈물도 없는 세계였고, 10년 넘게 스트레스를 받아왔으니 번아웃은 너무나도 예상된 결과이기도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인지 기능에 문제를 만들었고, 감정적으로도 붕괴하기 시작했으며, 신체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삶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자, 어쩔 수 없이 힘들게 쌓아온 커리어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그후 1년 가까이, 차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소파에서 꼼짝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다 뜻밖의 곳에서 회복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하지만 자연은 내게 삶의 고삐를 다시 넘겨주었다. 저녁거리가 없어 빈 바구니를 들고 아무 계획 없이 채소밭으로 올라가 케일, 양배추, 비트, 볼로티 콩을 수확해 돌아올 때면 내 머릿속은 요리에 대한 아이디어로 가득 찼다. 수확도 요리도 다 내가 했다. 그 모든 일을 해내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바로 이 점 때문에 먹거리를 직접 기르는 일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정원을 가꾸거나 시골로 나갈 때와는 다른 점이다. 여기에는 주체적인 삶의 태도가 있다.              P.147


텃밭 농사가 저자를 치유한 이유는 뭘까. 산책도 있고, 개를 키우는 것도 있고, 문학, 혹은 정원 가꾸기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채소 기르기가 삶에 행복을 가져다 준 구체적인 이유는 뭘까 너무 궁금했다. 이 책은 코츠월드의 사계절을 따라가며 6월부터 시작해 달마나 한 장씩 구성되어 있다. 여름비 덕분에 짙은 초콜릿색을 띠는 흙에서 식물들이 하늘을 향해 쑥쑥 자라는 6월, 온 천지에 생명이 가득 넘실거리며 매일매일 수확되기를 기다리는 7월, 게으름을 피워도 수확물이 넘쳐나 손이 바빠지는 8월, 여름 수확과 가을 수확이 잠시 겹치는 짧지만 찬란한 순간을 만날 수 있는 9월 등 각각의 달마다 계절의 풍경과 텃밭의 모습들이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어 읽는 내내 힐링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빈 요구르트 병에 무턱대고 씨앗을 뿌리고 임시로 만든 텃밭에서 울퉁불퉁 못생긴 당근을 돌보며 보낸 어느 한 해의 이야기는 채소밭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구해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마법같은 드라마이기도 하다. 손으로 흙을 만지고 작은 씨앗을 심고, 땅에서 자란 채소들을 수확해 요리를 한다는 것. 사계절을 따라 제철 식재료로 요리를 하는 일은 그 재료를 길러낸 자연과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냉장고 안, 부엌, 장바구니, 혹은 저녁 식탁 위에 존재하는 자연을 만난다는 것. 채소 재배와 요리 모두 저자에게는 자연과의 연결 통로가 되어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채소밭은 조용히 저자를 우울의 침잠에서 건져주었다. 자연과 이어주고, 자신과 타인을 돌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먹거리를 직접 생산한다는 것이 삶의 통제권을 되찾는 일이라는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혼자 힘으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한 한 끼를 마련해 낸다는 것의 의미가 현실적으로 확 와닿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고요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얻는 힐링이라니, 자연에 둘러싸여 자연을 받아들이는 삶에 대한 로망이 한층 깊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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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이 여행 일본어 카와이 일본어
레이쌤(김하경) 지음 / 길벗이지톡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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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쉽고 귀여운 일본어 입문서' 라는 타이틀로 헬로키티와 함께 일본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던 <카와이 일본어 첫걸음>에 이어 후속작이 나왔다. 이번에는 산리오캐릭터즈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 일본어이다. 판형이 작아져서 여행 중에 들고 다니면서 보기도 딱 좋고, 단어 위주로 잘 정리가 되어 있어서 이해하고 활용하기도 쉽다. 페이지 곳곳에서 산리오 캐릭터들의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을 맛볼 수 있어 더 재미있게 일본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카와이 일본어 시리즈의 특징은 캐릭터 책꾸 스티커가 포함되어 있어 나만의 책으로 마음껏 꾸며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요즘 '책꾸'가 SNS에서 유행인데, 자신만의 감각으로 책을 장식하다보면 책을 더 열심히,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예쁘고 귀엽고 친근한 캐릭터와 함께 시작하는 일본어 공부라니, 너무 신난다. 포차코와 먹으러 가자, 시나모롤과 쇼핑하러 가자, 폼폼푸린과 타러 가자, 쿠로미와 구경하러 가자, 마이멜로디와 쉬러 가자... 라는 식으로 각각의 주제에 맞게 캐릭터들을 선정했다. 상황별 여행 단어를 모았는데, 모든 일본어에 한글 발음 표기를 해서 초보자들도 부담없이 현지에서 활용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일본어를 전혀 몰라도 여행지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일본 여행에 꼭 필요한 핵심 표현만을 담았기 때문이다. 상황에 맞는 페이지만 펼치면, 그 순간 필요한 표현들을 바로 볼 수 있어 일본어 초보자들도 한글 발음을 따라 읽는 것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초보자라면 문장을 그대로 읽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여행 단어를 중심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특징이다. 본문의 QR를 찍으면 레이쌤의 강의를 보고 원어민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단어 위주로 구성되어 있지만, 문장으로도 말할 수 있도록 필수 패턴 10개를 따로 정리해 두었다. 상황별 단어에 패턴만 조합하면 바로 말할 수 있도록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어 좋았다. 




해외 여행을 갈 때마다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 할 것이다. 학창시절 내내 외국어를 배워 왔지만, 정작 해외에 나가거나 외국인과 마주하게 되면 얼음처럼 굳어서 한 마디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말이다. 하지만 매일의 일상에 치여 마음 잡고 공부를 지속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부담없이,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다면 매일 조금씩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펼치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산리오 캐릭터들이 가득해 기분 좋게 그날의 공부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일본 여행을 가거나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일본어 단어들이 귀에 꽂히곤 하면, 다시 한번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자주 먹게 되곤 했다. 특히나 이 책은 어려운 문법이나 복잡한 문장을 모르더라도, 현지에서 소통할 수 있도록 구성했기에 여행시에 더욱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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