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런하우스 - 너에게 말하기
김정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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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사실 껍질에 불과한 것인지, 우리는 내면의 상처들을 만나고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고 치유가 되기 전까지는 그것을 온전히 깨닫기 어렵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들을 억압하여 내면 깊숙이 가둔다. 그것들을 직면하는 것이 아프고 두렵기 때문이다. 상처들은 껍질 속에 갇힌 채 우리의 존재로부터 소외된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불안에 빠뜨리거나 공허와 외로움에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독일에 유학을 온 지 벌써 40년이 다 되어가는 영민은 그 동안 박사학위를 받고 전임강사 자리를 얻어 교수의 꿈을 키워나갔지만, 어렵사리 얻은 자리에 사직서를 던지고 베를린으로 훌쩍 떠나 왔다. 그렇게 베를린에서 연인 한나와 함께 베를린 부부 가족치료 연구소를 열어 심리치료를 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17년 전의 일이었는데, 그 동안 자신의 삶의 전부라고 여겨왔던 연구소와 한나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돌연 결정한다.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자리를 잘 잡아가는 시점마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던 것이다.

 

그 즈음 영민은 우연히 한국심리학회 구인광고란을 보게 되었고 셰어하우스인 '뉴런하우스'에서 전문심리치료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발견한다. 그곳의 이한빈 대표는 심리치료를 하는 셰어하우스를 구상하게 된 이유로, 오늘날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하며 사는 도시의 삶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치료공동체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뉴런이라는 이름도 신경 세포처럼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 살아 있는 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지은 것이라고.

 

자신이 벽을 쌓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외롭다고 호소하는 사람, 모두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의심하는 사람, 세상이 무서운 곳잉라고 말하는 사람,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믿는 사람..... 모두 스스로 벽을 쌓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뉴런하우스’라는 이름의 셰어하우스는 대학로 인근 평범한 주택으로, 방값이 저렴한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반드시 주 2 '창문 닦기 대화모임'에 성실히 참여할 것.

둘째, 입주 기간 동안 일체 자살 관련 행동을 하지 않을 것.

 

신청자들 대상으로 설명회를 하고, 면접을 진행한 다음 최종 선발된 인원은 모두 여덟 명의 남녀. 나이도, 직업도, 성격도, 살아온 환경도 너무 달라 각자의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그들과 집단 상담을 통해 이들을 관찰하고 치유하는 영민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진행되고 있다.

 

 

저자는 게슈탈트 심리학 국내 최고 권위자로 알려 졌는데, 그래서 소설 속 장면들이 모두 허구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점이 더욱 공감과 이해를 불러 일으킨다. 40년 가까이 사람들의 내면을 탐구하고 실제 상담을 통해서 닫힌 마음을 열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아 왔기에 그 과정이란 매우 생생하고 리얼할 수밖에 없다.

 

소설로서의 기승전결이나 사건, 반전 등을 기대하기 보다는 독특한 형식의 심리학서로 읽는 다면 더욱 흥미롭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로 구성되어 있어 쉽게 술술 읽히지만, 그 속에서 현대인들의 심리와 상처 받은 내면을 숨기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벽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부록으로 수록된 '마음 들여다보기'에서 조금 더 전문적인 심리학적 이론이 정리되어 있어 전체 소설 내용을 다시 한번 분석해주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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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 - 일본의 북 디렉터가 본 서울의 서점 이야기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우치누마 신타로 & 아야메 요시노부 지음, 김혜원 옮김 / 컴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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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비행기로 2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는, 도쿄와 마찬가지로 천 만 명이 사는 도시 서울에서는 지금 유례없는 서점 붐이 일고 있다. 특히 작년 여름 이후로동네 서점이라는 개인이 운영하는 서점이 일주일에 한 군데는 생겨나고 있다. 시집만 파는 서점, 온갖 고양이 책을 다루는 서점, 독서 모임에 특화된 서점까지 하나같이 개성적이다. 게다가 서점을 개업한 이들은 8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이다...이러한 흐름은 스위치가 갑자기 켜진 듯이 급격해 보이기까지 한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작년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가장 멋진 기획이 바로 '서점의 시대'였다. 동네 책방들을 이렇게 한 곳에 모을 생각을 하다니...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가보고 싶었지만 방문하지 못했던 책방들을 도서전을 통해서 만날 수 있어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도서전을 꽤 오래 다녀봤지만 확실히 작년엔 특히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 인상적이었다. 문학 자판기, 필사 이벤트, 상담을 통해 책을 처방해주는 클리닉, 책 읽는 버스 등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지고, 작은 출판사, 동네 서점들이 함께해 더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사실 도서전에서 동네 서점들에게 주목할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작년부터 우리나라는 유례없는 서점 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시집만 파는 서점, 온갖 고양이 책을 다루는 서점, 미스터리, 추리 소설들을 전문으로 파는 서점, 독서 모임에 특화된 서점까지 제각각 개성이 뚜렷하다. 이는 서점을 운영하는 이들이 8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독립출판물이라고 하는 개인이 만든 책도 꽤나 인기가 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 모든 현상들이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 된다.

일본을 대표하는 북 디렉터와 여러 라이프스타일 베스트셀러를 기획한 편집자인 저자는 도서 출간 기념 강연차 한국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이러한 놀라운 흐름을 마주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서울의 독립 서점 열풍과 출판의 현장에서 그들은 어떤책의 미래가능성을 보았을까? 이 책은 그들이 서울을 대표하는 여러 서점과 서점인, 출판인 등을 직접 만나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서울 사람들이 이 정도로 열심히 다른 나라나 산업을 연구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책을 둘러싼 환경이 보다 절박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일본에 닥칠 상황과 아주 비슷할 것이다. 물론 책의 미래는 실제로 그때가 와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을 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앞으로 책과 어떤 관련이 있는 일을 할 것인지 미래를 고민해보는 일은 가능하다. 이 책에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이라고 조금 거창한 제목을 붙인 이유는 이러한 의미에서다.

한국의 서점을 다루는 기사에 반드시 소개되는, 이제는 너무 유명한 서점 '땡스북스'부터 맥주 파는 서점으로 북맥의 선두주자 '북바이북', 30대 시인이 직접 운영하는, 시집만 파는 서점인 '위트 앤 시니컬', 독립출판물만 다루는 한국 독립출판의 중심지 '유어마인드', 오프라인 중고 서점 붐을 일으킨 대표적인 인터넷 서점 '알라딘', 한국 서점의 상징적인 존재인 교보문고 광화문점, 미스터리로 둘러싸인 서점 '미스터리 유니온', 독서모임과 북클럽이 활성화된 '북티크' 등등... 정말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서점들이 책에 등장한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의 서점과 출판의 현장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20여 명의 인터뷰는 책을 사랑하고 서점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너무도 흥미로울 것이다. 게다가 서점들 외에도 개성 있고 새로운 콘텐츠로 승부하는 유유 프레스, 북노마드, 워크룸 프레스, 매거진B, 월간 그래픽 등 다양한 소규모 출판사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저자인 두 사람이 일본에서 '책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뛰어난 현직 출판인이자 전문가라서 질문 자체도 매우 날카롭고 흥미로웠다.

독립서점들은 서울 시내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들도 많지만, 요즘엔 지방에도 아기자기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개성 있는 독립서점들도 눈에 뛴다. 주인의 취향에 따라 책이 진열되고, 뚜렷한 테마를 가지고 있어 더욱 매력적인 곳들이다. 사실 책이야 인터넷 서점을 통해 주문하는 것이 쉽고, 빠르고, 적립금과 사은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많이들 이용하고 있지만, 이들 서점의 역할은 단순히 책을 사고 파는데 그치지 않는다. 책을 구입하는 걸 넘어 다양한 취미 활동을 위해 서점을 방문하는 이들도 많고 말이다.

대형서점이 베스트셀러나 신간 위주로 진열을 할 때, 이들 독립서점들은 장소가 협소하고 반품도 번거롭거나 어렵기 때문에, 서점의 개성을 보여주는 몇 종에 구비 도서를 한정시키면서 자연스럽게 큐레이션을 하게 된다. 거기다 강좌나 사인회, 낭동회 등 다양한 책과 관련된 부가 서비스로 차별화를 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책방인지, 북카페인지 헷갈리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특히나 요즘은 독립서점에서만 판매하는 책이나 그곳에서만 받을 수 있는 사은품 등으로 뚜렷한 차별점을 두고 있기도 하다. 출판사들이 앞장서서 서점들과 연계해 이벤트를 하는 모습도 출판의 미래를 위해 매우 좋은 현상인 것 같다. 이 책은 실제 한국의 출판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책이 함께하는 서점이라는 공간 자체에도 주목하고 있어 특별한 것 같다. 전문 포토그래퍼가 작업한 서점의 다양한 공간들과 개성 있는 책들의 모습도 매력적이고 말이다. 새로운 책의 미래와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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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노는 정원 - 딱 일 년만 그곳에 살기로 했다
미야시타 나츠 지음, 권남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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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창으로 보는 전망이 좋은 것도 관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매일 기분 좋게 부엌에 선다. 마을주민회 어머니부에서 홋카이도 사슴 고기로 만두를 만든 체험도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 홋카이도 사슴을 쏜다. 피를 빼고 해체한다. 그 고기를 간다. 만두피를 만들고 만두소를 넣어 찌고.

남편이 홋카이도에 한번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해서 미야시타 나츠와 그녀의 세 아이들은 아빠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 그녀 였기에 홋카이도에서도 대자연속으로, 다이세쓰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도무라우시라는 마을로 향한다. 그곳은 가장 가까운 슈퍼까지 산을 내려가서 37킬로미터나 가야 되고, ,중학교는 병설 학교로 현재 학생은 모두 합쳐 열 명, 휴대 전화는 3개 통신사 모두 불통, 텔레비전은 난시청 지역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 오지에서 열네 살, 열두 살, 아홉 살의 아이들이 살고 싶어 할까.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재미있겠다고 찬성이다. 그곳엔 고등학교가 없기 때문에 장남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 년 한정으로 가서 살기로 한다. 그리고 미야시타 나츠는 그곳 생활을 에세이로 쓰기로 했고,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신들이 노는 정원'이라 불리는 마을, 도무라우시에서 온 가족이 보내는 봄방학 같은 일 년은 과연 어떨까. 곰과 북방여우, 훗카이도 사슴 등의 야생동물들이 수시로 출몰하고 한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그곳, 도시의 속도와 경쟁으로 이루어진 삶에 익숙한 그들이 과연 산골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런데 웬걸, 그곳에서 그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즐거움이 넘치는 나날을 보낸다. 우선 집에서 밥을 먹는 횟수가 급격히 늘게 된다.. 도시에 살 때는 일이 바쁘면 외식하는 일도 흔했지만, 여기서는 외식을 하려고 해도 식당이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산에서 내려가서 먹고, 다시 올라오려면 가볍게 두 시간 반이 걸리니 웬만하면 외식은 꿈도 못 꾸는 생활이다. 산책 길은 매일 같은 곳을 걸어도 날마다 시시각각 다르다. 그리고 처음으로 공기가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맛있는 물처럼 순한 맛, 음표로 말하자면 도레미파솔 같은 맑은 맛이 나는 공기란 어떤 걸까. 5월인데도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보고 있노라면 크리스마스가 곧 다가올 거라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늘엔 별이 쏟아질 듯이 많이 떠 있는 그 곳,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별이 빼곡하다니.. 도시의 하늘에서는 꿈도 못 꿀 풍경이다.

 

돌아오는 길, 풍경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길가에 난 초록색 풀이라고밖에 인식하지 않았던 덩어리가 자기주장을 시작한다. 왕머루야! 호장이야!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오보에 음색을 알면 지금까지 들어온 교향곡에서 갑자기 오보에 선율이 두드러지게 들리고, 그 곡이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되는 것. 몰랐던 말의 의미를 접하면 문장의 깊이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울리는 것.

미야시타 나츠는 전작에서도 음악과 자연에 대한 편안하고 감각적인 묘사와 따뜻하고 선한 스토리가 너무 인상적인 작가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10월부터 4월까지 내내 눈이 내리는 날씨라니 얼마나 추울까. 게다가 그곳은 한여름에 저체온증으로 등산객들이 잇따라 쓰러졌다는 조난 사건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에도 교복이 없어 각자 적당한 추리닝을 한 벌 입고 등요하는 학교라니. 근무하는 선생님들 역기 이런 오지로 부임을 자원한 이들답게 모두 괴짜로 아이들을 문화적으로 교육하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리고 이곳의 학교에는 불필요한 시험이나 숙제 대신 낚시와 캠핑, 등산 같은 모험이 매일매일 펼쳐진다. 세 아이들에게는 정말 그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최고의 학습 환경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에게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공부가 아닌가. 나도 미야시타 나츠 가족처럼, 가족끼리 꼭 끌어안고 딱 일 년만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 졌다.

특히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이곳 산촌 마을의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다. 이곳의 입학식과 운동회, 학예회, 캠핑, 등산과 같은 학교 행사에서 보여지는 풍경이란 낯설지만,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의 눈으로 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해 내고 있는 이야기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책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 판타지보다 더 환상적인 현실을 그리고 있다. 특별한 사계절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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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의 인생상담 (20만부 판매기념 특별판)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김신회 옮김 / 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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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내 생각엔, 이 사람이 모든 것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자기 스스로 의미를 만드는 수밖에 없을 거 같아.

포로리: 응응응. 누군가 만든 의미 말고.

보노보노: 스스로 의미를 만드는 거야.

느긋한 성격의 아기 해달 보노보노, 남을 괴롭히지만 다방면에 걸쳐 인생 경험이 풍부한 너부리, 가끔 속 깊은 말을 던지는 포로리, 수수께끼 같은 존재 야옹이 형, 똥싸개 린과 린의 아빠 지식왕 울버, 독설을 날리는 너부리 아빠, 대화법도, 사는 법도 독특한 보노보노 아빠, 달관한 성격의 포로리 아빠까지.. 이들이 인생상담을 해준다고 한다. 이 작품은 2013 9월부터 12월까지 보노보노 공식 웹사이트 보노넷에서 모집한 고민과 답변을 토대로 집필된 책이다.

 

실제로 고민이 있는 이들이 올린 사연에 대해 숲속 동물들이 열심히 답변한 내용을 모은 책이라고 하니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하지만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는 네 컷 만화 [보노보노]의 원작자 이가라시 미키오가 직접 쓴 것이라, 원작의 팬으로써 기대도 되었다. 게다가 이 책은 작년 한 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저자 김신회가 번역을 해 더 의미가 있기도 하다.

 

한번쯤 인생을 땡땡이치고 싶어집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늘 좋은 사람인 양 연기하게 됩니다. 진짜 내 모습이 뭔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커서 연극배우가 되고 싶은데 자신감이 없어요. 어떻게 하면 자신감이 생길까요? 이런 진지한 질문부터, 대체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나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질문들도 있다. 마흔여섯 주부인데 정형외과 의사가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늘 자신에게 잔소리를 해대는데, 그를 입 다물게 할 재미난 대처법이 없을까요? 조개를 들고 바다에 떠다니면서 대낮까지 자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해달이 될 수 있나요? 우리 집 고양이 똥 냄새가 심해서 치우지를 못하겠어요? 어쩜 좋을까요? 신이 있긴 합니까? 신이 필요하긴 합니까? 라는 질문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스펙터클한 고민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보노보노와 친구들은 나름 진지하게, 때로는 명쾌하게 이들의 고민에 대한 처방을 내려준다.

 

포로리: 이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건데 다들 좋은 사람들이야. 좋은 사람들만 고민을 해.

보노보노: 그런가. 왜 좋은 사람들만 고민할까?

포로리: 그거야 좋은 사람이니까.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아니면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하고 고민하잖아.

어릴 때는 어려서 서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실수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사실 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들 나이 드는 건 처음이니까. 다들 사는 게 처음이니까, 세상에는 처음인 것 투성이니 말이다. 누군가는 연애를 하는 게 처음이고, 누군가는 대학생이 되는 것이 처음이고, 또 누군가는 엄마가 되는 게 처음이다. 그러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제대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불안한 것이 당연한 거라는 얘기다.

 

이 책 속에서 포로리가 말하듯이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 따윈 없다. 다들 자기만 불안해한다고 생각할 뿐.' 보노보노와 포로리의 대화는 질문자의 고민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지만, 그들 캐릭터 각자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더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어른이 된 우리가 사는 게 고달픈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들처럼 단순하게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보노보노, 사는 건 힘든 거야. 힘들지 않게 사는 법 따윈 없어.' 포로리의 무심한 듯 툭 던지는 이 말이 너무도 와 닿았다. '힘들어서 재미있고, 힘들어서 즐겁기도 해. 힘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면 뭐가 재미있는지 모르는 날들이 펼쳐질 뿐이야.'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만화 속에서 살던 보노보노와 포로리가 해주는 인생상담은 단순하지만 삶의 예리한 진실들을 바라보고 있어 공감되고, 기존의 그 어떤 자기 계발서나 심리학 책들과 다르게 유쾌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한다. 아직도 세상 사는 게 서툰 우리 어른들을 위해, 보노보노와 숲 속 친구들의 기상 천외 한 인생상담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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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눈부시고 근사한 봄을 보내기로 방금 결정했어
사에리 지음, 야마시나 티나 그림,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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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녹초가 돼서 남자 친구 곁에서 응석 부리자

"넌 내가 없으면 안 되는구나" 하고 농담처럼,

그러면서도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미소 짓고는 다정하게

"언제까지나 그대로 곁에 있어줘" 하고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말을 듣는 인생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진심으로

사랑에 빠지면 한 순간 세상이 달라 보인다. 비록 그게 짝사랑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오직 그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순간, 평범했던 일상이 갑자기 화사한 색깔로 채색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콩닥콩닥 간질간질, 사랑의 가장 달콤한 순간들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이 책을 읽으면서 대체 이게 뭔가 싶기도 했다. SNS 월간 조회 수 1,500만 회를 돌파한 화제의 트윗이라고는 하는데, '두근두근 망상 트윗' 모음이라니.. 이런 걸 책으로 만들다니 싶었던 거다. 저자는 출판사와 IT 기업에서 편집자로 근무하다 독립한 프리랜서 작가이다. 몇 년 전부터 트위터에 망상 트윗을 올린 것이 화제가 되어 팬이 급증, 팔로워 수가 무려 13만 명이 넘는다고. 그녀는 빡빡한 일상과 틀에 박힌 업무에 상상력이 죽어가는 것 같아, '지금 여기 없는 것을 상상하며 트윗 하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이 바로 '연애 망상'이었다고.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을 엮은 그림에세이라고 볼 수 있다.

 

갑자기 좋아하는 마음이 흘러 넘쳐서

후덥지근한 여름 밤길에 "좋아해"하고 고백하자

".....바보야, 내가 먼저 고백하려고 했는데."

하고 다른 곳을 보며 말하는 청춘을 지나오는 걸 잊었네.

실제로 이들처럼 간지럽게 연애하는 사람들이 있진 않겠지만, 누구나 상상은 자유니까..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법도 하지 않을까.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님 같은 캐릭터들이 왜 여전히 인기겠는가. 현실 속에 저런 남자는 없어! 라고 생각하는 마음 한 켠으로 어쩌면 언젠가는 나에게도 저런 남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설레이는 말을 실제로 듣는 인생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만, 물론 그럴 수는 없으므로 이 책을 통해서 올 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순간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연애에 대한 귀여운 망상'들은 모두 순정 만화 속 상황 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글쎄 뭐 어떤가. 이제 곧 설레이는 계절 봄인데 말이다. 팍팍한 인생, 이렇게 두근거리는 머릿속 망상으로라도 꿈꿀 수 있다면, 그 순간 만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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