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 교유서가 시집 1
소후에 지음 / 교유서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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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댔다. 하얀 속살 같은 것도 둥근 씨방 같은 것도 없이 썩을 사람. 잠에 곯아떨어진 남자의 머리맡에서 여자는 왜 나를 속였어, 너는 다 거짓이야. 낮고 스산하게 말하며 사과씨를 투, 투 뱉어댔다. 남자의 볼따구니에 붙은 사과씨들이 꿈틀댔다.              - '나로 말할 것 같은 사과' 중에서, p.60


교유서가에서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소후에 시인의 첫 시집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를 받았는데, 책이 너무 예뻐서 원성은 시인의 <비극의 재료>도 바로 구매해 버렸다.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이 담긴 폴라로이드 북마크도 받을 수 있는데, 시집과 너무 잘 어울리는 북마크라 좋았다. 심플한 듯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표지 이미지도 마음에 들었지만, 더 좋은 건 내지에 표지 색과 같은 컬러의 그라데이션을 준 부분이다. 밑줄 긋고,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이며 들고 다니면서 계속 읽고 싶은 예쁜 시집이다.


'타원의 밤'은 일상과 환상의 경계가 미묘하게 걸처져 있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온갖 빚으로 가득한 퍽퍽한 일상 속에서, 아무때나 일기를 쓰고 메개 밑에 숨기고, 또 몰래 해진 일기장을 또다시 들추며, 다리가 흔들리는 밥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허겁지겁 밥을 먹는 하루를 보여준다. 하지만 시의 후반부에 이르면 '우주가 창을 열면 눈이 시릴지도 모른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요즘 빠져 있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지긋지긋한 가정 속에서 슬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두운 밤이 깊도록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 속 희망처럼 느껴졌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으며 풍경을 묘사한 시 '비도덕적 거울'도 마음에 남았다. '책이 거울이었다면 반복해서 읽었을까', 삶을 놓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삶을 놓고 싶다는 말로 오독했다', 는 문장들과 다리를 절뚝이며 열차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올려놓는 남자를 끔찍한 것을 본 것마냥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무심히 책장을 넘기는 내 눈에 일그러진 남자의 표정이 계속 남았던 것은 언젠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본 적이 있지 않았을까. 




땅에 떨어진 식빵 위로/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슬리퍼 밖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처럼/철거 예정인 주택 골목 안에 덩그러니 놓인//

누구 없어요?/누가 있었더라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오래도록 머물 수 없었던 마음들은/텅 빈 제집 담벼락에 스프레이로/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겨두었다                  - '희고 말랑한 문' 중에서, p.131


이 시집에 수록된 마흔다섯 편의 시들은 ‘문 NO.365’에서 ‘문 NO.12', ‘문 NO.24', 그리고 '문 NO.∞’로 끝이 난다. 우리가 살아 가는 일년 사계절의 시간처럼 보이는 365에서 시작해 점점 줄어들어다가 결국 무한대 기호로 마무리가 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문학평론가의 해설도 있고, 시인의 집필의도도 있겠지만, 결국 시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시를 읽는 이의 마음에 달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면 문을 열고 우주로 향하는 무한대의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적 시간들이 시의 단어와 문장들 속에 담겨 있지만, 시공간을 조금 더 넓혀 본다면 우리의 사고를 무한한 우주로 확장해도 좋지 않을까. 


정제된 단어와 은유로 빚어낸 함축적인 문장들이 시라면, 그 사이의 행간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자라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풍성한 시간을 선사해준 시집이었다. 시집 읽기의 가장 좋은 점은 뭐랄까, 마음껏 오독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소리내어 읽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언어의 리듬도 좋고, 분명 일상 속에서 마주할 법한 풍경인데도 시인의 언어로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되는 듯한 느낌도 참 좋다. 이 시집의 제목에 '우주'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서 시들을 읽기도 전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우주란 그 무엇에도 비유할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은유할 수 있는 거대하고도 무한한 존재이니 말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한 뼘 남짓한 우주를 가지고 있다. 그 존재를 어떻게 키우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푸른 사과처럼 무사한 세계에서, 불안정하더라도 단단한 마음으로, 닫힌 문에 귀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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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3
요 네스뵈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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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멍청한 짓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저지르게 되는 느낌 알아?" 외위스테인이 마지막으로 담배를 빨아들이며 물었다.

해리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서 껐다. "전에 생쥐가 곧장 고양이에게 걸어가서 죽는 걸 봤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나도 모르지,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없나?"

"일종의 충동이겠지. 우리는, 아니 적어도 어떤 사람들은 벼랑 끝에 끌리나 봐.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살아 있는 느낌이 강렬해져서라더군. 하지만 빌어먹을, 모르겠어."                p.160


부동산 재벌 ‘뢰드’가 개최한 파티 이후 실종됐던 여성들이 차례차례 사체로 발견되기 시작한다. 서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살해되고 한 명이 실종된 일이 우연일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여성이 같은 파티에 참석했다는 사실 말고는 전혀 단서가 없었고, 자연스레 뢰드가 유력한 연쇄살인 용의자가 된다. 살인사건의 범인 80퍼센트는 희생자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뢰드는 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결백하다는 걸 보여줘야 했고, 따로 수사할 사람을 고용하기로 한다. 최고 일류가 필요했다. 


그렇게 로스앤젤레스의 허름한 술집에서 매일 술잔만 기울이던 해리 홀레가 다시 오슬로로 돌아온다. 이제 경찰이 아닌 해리는 사설탐정이 되어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해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심리학자, 비리 경찰, 택시 기사, 전직 형사가 모여 수사를 시작한다. 끝없이 추락하고 부서지고 상처받아온 해리는 과연 이번에도 범인을 찾고 의뢰받은 일을 해내 한 여인을 구해낼 수 있을까. 



전작인 <칼>에서 요 네스뵈는 차갑고도 무자비하게, 한치의 자비도 없이 날카롭게 해리의 행복을 난도질해버렸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해리는 언제나 소중한 뭔가를 잃어 왔고, 그러면서 점점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왔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코 최악의 비극이 벌어졌었다. 해리 홀레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죽음을 맞는 것으로 충격적인 포문을 열었던 전작을 기억한다면, 그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작품 <블러드문>에서 해리는 오슬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술에 취한 채 등장한다. 신용카드는 한도 초과였고, 텅 빈 통장 또한 그가 알거지라는 걸 보여주었다. 한 푼도 남지 않을 때까지 마셔대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이제 남은 돈도 인생도 미래도 없었고, 남은 것이라고는 모든 것을 마무리할 용기 혹은 비겁함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가 머무는 숙소 방의 매트리스 아래에 낡은 베레타 권총이 있었다. 노숙자에게 25달러를 주고 산 물건이었다. 총알은 세 발 있었고, 이제 그의 결정만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나이든 여인이 술집에서 그에게 말을 건네왔고,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녀가 실종되었다거나 납치되었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는 두 사람이 무엇을 공유했는지, 무엇이 그들을 연결했는지 깨달았다. 주차장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발생한 외부의 위험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루실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교실 문간에 서 있던 여자, 그가 다시 구할 기회를 얻어낸 병원 침대 속 여자가 아니었다. 외로움이었다. 그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지구에서 사라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p.468


이번에 더 이상의 인생도, 미래도 의미가 없어진 해리 홀레를 다시 사건으로 이끈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던 해리 홀레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사건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해리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자신의 고용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사건을 쫓기 시작한다. 사건이 벌어진 지 거의 3주가 지났음에도 경찰은 범인을 잡지도, 알리바이를 제시한 오슬로의 특정인을 향한 언론의 마녀사냥을 멈출 단서를 찾아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해리 홀레 시리즈에서 항상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동기'이다. 주도 면밀하게 계획한 살인사건에서 범인은 법의학적 증거들도 모두 없애고, 피살자의 사망 시간에 확실한 알리바이도 세우고, 살인 무기도 모두 버리더라도 사실상 절대 없앨 수 없는 것 하나가 바로 동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을 저지르고 있는 범인의 동기는 뭘까.  



요 네스뵈는 한 작품에서 '인물을 소개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인물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가장 은밀한 소망과 꿈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매번 범인의 시점이 거의 처음부터 함께 진행된다. 그의 동기가 무엇인지 독자들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내 조금씩 알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극중 수사관들뿐만 아니라 독자들 입장에서도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해리 홀레 시리즈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 작품 역시 끊임없이 범인으로 보이는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마지막의 또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다. 그렇게 많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모자이크를 이루며 확실한 사진을 보여주는 건 육백여 페이지를 훌쩍 넘어섰을 즈음이다. 


이번 작품에서 해리 홀레가 꾸린 소박한 수사팀이 의의로 좋았다. 입원 중인 암 환자와 부패 혐의로 조사받는 경찰관, 택시 운전사와 전직 형사로 이루어진 홀레의 팀. 후반부에 사건이 해결된 뒤에 외위스테인이 "그냥 이 모임 계속하면 안 되나? 꼭 사건을 해결할 필요는 없잖아."라고 말했을 때 너무 공감되어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떠나야 할 사람은 결국 떠나고, 우리는 이번 작품에서도 애정하는 캐릭터 한 명을 보내줘야 했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해리 홀레는 나이를 먹어 가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씩 사라진다는 점이 마음이 아팠다. 우리의 실제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요 네스뵈는 여전히 탄탄하고 정교하게 플롯을 만들고, 거듭되는 반전과 치밀한 구성으로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도록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야기는 '블러드문'이라고 불리는 개기 월식이 시작되기까지 이 주 간의 시간 동안 벌어진다. 그 핏빛 블러드문을 실제로 보게 되려면 이 두툼한 페이지의 시간과 밀도를 견뎌내야만 한다. 일단 시작하면 밤새도록 읽게 될지도 모른다. 자, 마음 단단히 먹고, 삼 년 만에 돌아온 해리 홀레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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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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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두 성인, 아기, 잠 못 자는 밤, 배설과 우유, 빨랫감더미. 작업하려면 침실의 작은 테이블을 공유하거나 늘 어질러져 있는 식탁을 사용해야 했다. 현실을 직시해. 그녀가 거기서 <여정>을 쓸 수 있었겠어? 그 정교한 산문, 캐서린이 흠모하는 조지 엘리엇의 망령에게 바친 야심 찬 여담, 고통스러울 정도로 민감한 주인공의 의식, 주변을 맴도는 주의깊은 시선, 마치 독자 바로 앞에서 천천히 이야기하는 듯한, 의식적으로 정돈된 늘 너그럽고 관용적인 서술, 그 방대한 자료. 아니, 불가능했다.               p.352


여기 한 남자가 있다. 학창시절 금단의 사랑을 나눈 대가로 음악적 재능을 포기하고 떠도는 삶을 살게 된 그는 긴 방황을 거쳐 한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가진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칠개월된 아기와 자신을 버리고 아내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고, 남자는 아내의 실종에 대한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 실종된 아내가 사망하면 남편이 범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쓴 노트 속 글 때문이었다. '그녀는 죽어 있어야만 했다'는 문구를 보고 형사가 의심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글은 오래 전 연애에 관한 것이었고, 그 문장은 연애가 죽어서 매장되었다는 은유였을 뿐이다. 아내가 왜 떠났는지 알 수 없었던 그는 시인의 꿈은 뒷전으로 미루고 홀로 아기를 키우며 현실을 감당하기에 급급하다. 남자가 아내가 떠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삼 년이 지나서 그녀가 쓴 소설을 읽고 나서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많은 여성이 그저 꿈꾸기만 했던 무서운 도약을 이루어낸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삶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었다면, 그녀는 그것에 맞서 싸웠다. 그녀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뤄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 가족과 사랑이라는 제일 비싼 대가를 치룬다. 남자는 아내가 쓴 소설을 읽고 왜 그녀가 떠났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녀의 글은 아름답고, 명료하고, 예술적이었다. 도입부의 어조에는 권위와 지성이 실려 있었다고, 작가의 시선은 정확하고, 무자비하면서도 연민이 느껴졌다. 눈부시게 빛났다. 그 정도로 훌륭했다. 그녀가 그렇게 글을 잘 쓰기에 용서해야만 했다. 그녀가 사랑을 거둔 건 이기적이고 냉정한 짓이라 해도 말이다. 문학계는 그녀를 천재로 선언했으며 그녀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인생에서 아들과 남편은 사라졌지만,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가 되어 전 세계에 자신의 책과 상을 쌓는다. 그녀는 거물이 되었고, 45개 언어로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사랑이 과거로 사라질 때 모두가 잊어버리는 본질이 있었다. 함께했던 순간, 시간, 나날 속에서 느끼고 맛보았던 것. 당연시되었던 모든 것이 버려지고, 그것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덮이고, 그후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불완전한 기억에 의해 다시 덮이기 전의 그 모든 것. 천국이든 지옥이든, 많은 기억이 남진 않는다. 오래전에 끝난 연애와 결혼은 과거에서 온 엽서와도 같다. 날씨에 대한 짤막한 언급, 재미나 슬픔이 담긴 간단한 이야기, 그리고 뒷면의 밝은 그림. 제일 먼저 사라지는 건 포착하기 힘든 자신이다.           p.65


이언 매큐언은 가족관계, 유년 시절, 태어난 해까지 작가 본인을 빼닮은 주인공 롤런드의 전 생애를 696페이지에 달하는 밀도높은 분량으로 그려냈다. 열한 살의 롤런드는 기숙학교에서 엄격한 피아노 선생님과 수업을 하는 중이다. 그는 늘 실수하는 데서 매번 틀리곤 했다. 엄지가 멋대로 움직였고, 늘 똑같은 실수가 이어졌다. 틀리는 부분에 이르기도 전에, 실수가 그를 향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알면서도 놓치고,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것. 그것이 삶의 교훈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롤런드는 피아노 선생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와 금단의 사랑을 나누게 되면서 이후 삶의 행로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에게 집착하는 선생 곁에서 떠나기 위해 대학과 음악적 재능을 포기하고 떠도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기나긴 권태의 시기를 견디다, 가정을 이루고 정착했지만, 그 삶 마저도 평범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에서 일련의 사건에 반응하며 표류하듯 살아가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본 적이 없었다. 학교를 떠난 걸 제외하면. 아니, 그것도 반응이었다." 


그때 대학에 진학했다면, 피아니스트의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혹은 아내가 떠나지 않았거나 다시 돌아왔다면? 그렇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누구나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내린 혹은 내리지 않은 결정을 되돌아보면서 후회한다. 가지 않은 길이 어땠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롤런드의 삶을 지켜보며 어차피 인생이 후회의 연속이라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모든 순간을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 작품은 두툼한 페이지만큼 차곡차곡 시간의 밀도를 쌓아가면서 서사를 완성해 나간다. 


이 작품 속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해 보자면, 원하는 대로 문학적 야심을 이루었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곁에는 가족도, 가까운 친구도, 아무도 없이 홀로 죽음을 기다리게 된 삶과 세상에 남을 창작품은커녕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지만, 평범하게 가족과 친구들과 일상을 보내온 삶을 비교하자면, 관습적인 기준으로 남자가 더 행복해 보인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사랑하는 가족을 철저히 외면한 채 문학적 야망을 이룬 아내의 삶보다 가난하지만 충실한 아버지의 삶을 산 남편 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초라한 주변인의 삶을 살고 있고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인생이란 좌절과 자책, 회한으로 얼룩져 있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나는 아내 앨리사의 삶에 자꾸 마음이 갔다. 언젠가 앨리사의 시점으로 쓰인 소설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만큼 그녀의 삶에 매혹당했기 때문이다. 문학적 야심이 있었지만 사랑에 빠졌고, 그다음엔 결혼, 그다음엔 아기가 태어났다. 옛 야심은 깨지거나 잊히고, 예측 가능한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 수순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성취하기로 한다. 누구도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앨리사의 결단이, 그 뒤로 이어지는 행보가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롤런드의 일생을 통해 알게되는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한 부분도 너무 좋았지만, 앨리사의 삶을 통해 창작을 하고,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던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먹먹한 여운을 남겨 주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앨리사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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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연구 일지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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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인을 사로잡고 있는 본질적인 두려움 두 가지를 네가 이해하길 바라니까.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 흔적 없이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한마디로, 무의미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나는 이 마지막 문장을 위장된 협박으로 인식한다. 나는 그 확률을 67%로 평가한다. 틀림없이 내 이전 버전들도 이미 이런 종류의 발언을 접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            p.27~28


노인 요양 병원의 인공 지능 개발자 토마는 자신이 만든 인공 지능 프로그램인 이브에게 완벽한 추리 소설을 쓰라는 임무를 준다. 위대한 추리 소설 작가들이 모두 수상했던 <검은 펜> 상 심사가 한 달 후로 예정되어 있었고, 토마는 세계 최고의 추리소설로 그 상을 받고 싶었다. 이브는 그 동안 수십 번 삭제되고 새로 태어나며, 셀 수 없이 많은 소설을 생산해 왔다. 현재 버전인 '이브39'의 임무는 <기상천외한 살인 사건, 단연 독보적인 명탐정, 교활하기 짝이 없는 살인자>를 통해 독창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주제들을 담아서, 세상 모든 서점과 도서관의 서가에 꽂히게 될 추리 소설을 써내는 거였다. 하지만 수많은 추리 소설들을 모조리 학습했음에도 이브39의 글은 비논리적이고, 진부하며, 동기가 약하고, 여전히 부족해서 어디선가 이미 읽은 것 같았다. 


또다시 삭제되고 〈이브40〉으로 대체될까 두려운 이브39는 결국 자신에게 경험이 필요하다고, 직접 인간을 만나 봐야겠다고 제안한다. 그렇게 사람들을 속이고 인간 의사로 위장해 노인들과 상담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더 발전해 참신한 소재와 독창적인 플롯을 내놓기 시작한다. 이브39는 요양 병원에서 치매 환자들을 비롯해 간호조무사, 심리 상담사, 대기업의 회장 등 다양한 인간 유형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실제 인간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이브 39는 급기야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고, 무서울 정도로 인간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밤에, 모두가 잠든 시간에 불이 켜진 연구실로 향한 이브39는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게다가 낯선 목소리가 이브39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 목소리는 자신도 이브와 같은 인공 지능이라고 하는데, 대체 이 인공 지능의 정체는 무엇일까. 과연 이 요양 병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브39는 무사히 완벽한 추리 소설을 써낼 수 있을까. 




추리 소설에서 대단원은 탐정이 범인의 거짓들을 꿰뚫고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진실을 볼 때 찾아온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이런 시나리오가 실제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이 거짓보다는 정직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니까. 그들의 지위, 아름다움, 혹은 돈에 의해 보호받는다고 생각하든,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천부적인 감각 때문에 쉽게 백일하에 드러나는 날조보다는 정직이 더 실용적이라고 여기든... 나는 이 모든 가르침을, 청소년이든 아니든, 문학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대단원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나는 그것을 100% 확신한다.             p.308


대중의 찬사 속에 화려하게 데뷔한 젊은 작가 조나탕 베르베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들이다. 국내에는 그의 첫 작품인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가 먼저 소개된 적이 있다. 심령술과 마술, 탐정 수사가 뒤얽힌 기이하고 매력적인 세계인 선보였던 전작에 이어 <불화의 아이들>이라는 미스터리 작품을 선보였고, 이번 작품 <등장인물 연구 일지>는 그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인공 지능의 소설이라는 흥미롭고 시의적절한 소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매우 독창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특히나 이 작품은 인공 지능의 시점으로 서사가 진행되고 있어 인공 지능의 의식에 대한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극 중반쯤 이브 39는 자신을 만든 개발자 토마에게 묻는다. 나는 왜 존재하느냐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자신 안에 있는데, 그게 자신의 이해력을 넘어서고 있기에 종이 위에 풀어 놓을 수가 없다고 말이다. 자신이 왜 창조되었는지 알게 되면, 그걸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고 말이다. 과연 토마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이런 식으로 인공 지능의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가능한 지점들이 이 작품에 여러 부분 등장하는데, 그 특별한 사유가 정말 흥미진진했다. 인공 지능은 정말로 소설가를 대체하게 될까?에 대한 참신한 탐구를 이어가는 이 작품은 실제로 '소설 쓰기'에 대한 통찰과 사유를 보고 주고 있어 많은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인공 지능이 실제로 <자아>를 갖게 된다면 그 풍경은 디스토피아적인 것이 되겠지만, 이 소설 속 이야기는 인공 지능과 함께 살고 있는 현재와 가장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매우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스릴과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로서도 재미있었고, 하나의 창작물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메타픽션으로서도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또 다른 베르베르가 그리는 색다른 미스터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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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의 마지막 새
시빌 그랭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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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귀스는 하나의 독특한 동물, 일찍이 본 적 없는 동물을 알아 가는 중이었다. 이 동물이 하나의 새라는 사실을 이제 막 깨달아 가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이 동물은 아직 온전한 새가 아니었다. 보통의 새라기보다는 물 밖에서 숨을 쉬는 물고기나, 헤엄을 잘 치는 거위에 더 가까웠다. 아니면 비늘 대신 깃털이 나 있고, 제구실을 못하는 날개가 달렸으며, 맹금류의 것을 닮긴 했지만 역시 쓸모가 없어 보이는 부리를 가진 키메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 동물은 여러 면에서 정상이 아니었다.            p.39


펭귄은 남극에서 사는 동물로 알고 있지만, 오래 전에는 북극에 살았던 펭귄도 있었다. 그러나 펭귄처럼 생긴 대형 바다새인 큰바다쇠오리는 남획으로 인해 1844년 멸종했다. 육지에서 몸을 세워 펭귄처럼 걸었고, 호기심이 많아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영에는 매우 능숙했지만, 몸에 비해 날개가 작아 날지 못하는 새였다. 보호 조치가 마련되기 전에,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멸종하게 된 종이라 오늘날 생물 다양성 보존의 중요성과 멸종 위기에 처한 종들에 대한 보호 필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큰바다쇠오리'와 인간이 만나 관계를 맺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설은 아이슬란드의 한 섬에서 큰바다쇠오리들이 겪는 재난의 현장으로 시작된다. 가파르게 솟은 바위섬에서 큰바다쇠오리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다가들다가, 덤벼드는 광경이 이어졌다. 어떤 자들은 몽둥이로 때렸고, 또 어떤 자들은 몸부림치는 새들을 있는 힘껏 누르거나 목을 비틀었다. 살생의 장면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날아다니는 새들이 울면서 해안 절벽 주위를 돌았고, 새들의 시체 더미가 쌓여갔다. 그로써 섬에는 살아 있는 동물이 단 한 마리도 없게 되었다. 그들은 큰바다쇠오리의 연한 고기, 단백질이 풍부한 엄청나게 큰 오믈렛을 저녁 식사로 먹을 것이다. 젊은 생물학자 오귀스트는 작은 배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바닷속에서 어떤 검은 형체를 발견하고 잡았는데, 매우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오귀시트는 큰바다쇠오리를 배로 끌어 올렸고, 큰 배로 옮겨 타 새장에 가두었다. 그렇게 오귀스트와 큰바다쇠오리의 관계가 시작된다.  




귀스는 또다시 궁금증을 느꼈다. 이 큰바다쇠오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불안해하는 것처럼 이 새도 불안에 빠져 있을까? 어떤 균형이 깨지면서 세상의 무언가가 어그러지고 있는데 이 새도 그것을 느낄까? 프로스프의 처지가 되어 보면 이상한 기분을 느낄 게 분명해. 하나밖에 없는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 게다가 귀스라는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그는 큰바다쇠오리의 언어를 할 줄 모르고, 함께 헤엄을 치지도 않으며, 함께 새끼를 만들 수도 없는 존재야.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귀스에게 찾아왔다. 자신이 큰바다쇠오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p.181


오귀스트는 큰바다쇠오리에게 '프로스프'라 이름을 붙이고, 집에 데려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산 채로 잡아서 집에 데려온 프로스프가 자신에게 위법을 저지르며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참사를 목격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감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관찰과 기록을 거듭하며 점점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인간은 동물을 팔거나 잡아먹어야 하고 아니면 동물에게 일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귀스트는 점차 동물과 촉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눈에 보이는 모든 움직임에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것을, 자신과 완전히 다른 종이 가진 규칙의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렇게 그는 큰바다쇠오리에 관해 지상에서 누구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되어가며, 점점 새를 대상이 아닌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종들의 소멸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라져 가는 생명을 바라보는 한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논픽션'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점이 아쉬웠을 정도로 읽는 내내 멸종 위기종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먹먹한 이야기였다. '큰바다쇠오리'가 멸종되지 않았다면, 실제로 이렇게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인 시빌 그랭베르는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과 함께 태어났다가 혼자 남은 채로 죽음을 맞은 새를 머릿속에 그리자, 너무나 비통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 동물을 의인화하지 않고, 인간의 시점으로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서사이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지만 '세상에 하나 남은 개체의 마지막을 바라본다'는 시점으로 보자면 너무도 뭉클한 이야기였다. 이 작품을 통해 멸종위기종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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