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 세계사 - 교양으로 읽는 1만 년 성의 역사
난젠 & 피카드 지음, 남기철 옮김 / 오브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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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남자들이 두려워한 것은 사악한 마법이 아닌 여성들의 자립심과 욕망이었다. 그래서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자립심 강하고 욕망 있는 여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악마 취급을 했다....종교재판관은 지나칠 정도로 여자들을 증오했으며, 여자들이 불쌍한 남자들을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크라메르 수도사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욕정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여자를 불완전한 동물이라고 판단하는 건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p.163~164

 

수메르인들은 관음증 증세가 심했고,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광란의 사도마조히즘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이는 기원전 600년으로, <그레이의 그림자>가 출간되기 2,600년 전의 일이다. 고대 중국의 의사들은 여성들에게 애널 섹스를 치료법으로 추천했고, 중세의 수도사들은 딜도를 즐겨 사용했다. 이 책은 인류가 역사에 남긴 수많은 유물과 문헌, 사건, 사례를 보여주면서 1만 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며 지속되어 온 인류의 성 문화를 심도 있게 조망하는 책이다.  '섹스'를 통해 지난 1만 년 인류 역사를 되짚어 본다고 하니, 아마도 가장 과감하고, 발칙한 세계사 연대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호모사피엔스는 1만 년 전부터 섹스에 대해 광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그들은 동굴 벽에 포르노그래피를 그렸고, 파피루스에 음담패설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은 그렇게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되어 온 인류의 섹스 문화를 선명하게 복원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성의 영역이 어떻게 오늘날의 인류문화를 만들어냈는지를 알려주고 있어, 인문학서로서도 흥미로운 책이었다.

라캉에 의하면, 너무 적나라하고 욕정을 불러일으키며 불쾌감을 주는 쿠르베의 그림을 보면 얼굴이 달아오르는바, 이는 자기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 그림 속 나체 여인의 배가 약간 부른 모습에서 그녀가 예비 엄마임을 추측할 수 있다. 본인의 출생에 관한 기억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정신분석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을 낳은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구 역시 억압되는 게 보통이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의문은 누구에게나 사각지대로 남는다.   p.284~285

 

남녀가 몸을 밀착해 서로 끌어안은 모습이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는 <아인 사크리 연인상>은 남녀의 성교 모습을 표현한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으로, 1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 고대 이집트의 피임 처방전도 파피루스에 쓰인 것으로 발견되었고, 그들이 사용했던 고품격 최음제인 맨드레이크는 수 천 년 동안 가장 많이 이용된 최음제이기도 했다. 인류 최초의 포르노 서적인 투린 파피루스는 외설이나 풍자 문학이었는지 또는 섹스 기술을 가르쳐주는 지침서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18세기에 살았던 인류 최고의 플레이보이 카사노바는 정열적인 페미니스트였고, 19세기에 살았던 타이어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는 아내 몰래 부엌에서 실험하다가 우연히 콘돔을 발명하기도 했다. 점잖고 교양 있던 영국의 산부의과 의사 그랜빌은 1833년 히스테리 치료를 위해 바이브레이터를 개발했고, 여성의 음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프랑스 화가 쿠르베의 1866년 작품은 자크 라캉 정신분석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1만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 곳곳에 깊이 숨겨져 있던 성 담론을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인물들이 보여주는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저자는 '성의 영역에서 진부한 사실과 전설이 오늘날의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우리의 성적 자유를 위해 싸웠는지 보여주며, 인류의 역사를 보다 과감하게, 정직하게, 유쾌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1만 년 인류 역사의 은밀하고도 치밀한 사랑과 치정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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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미 - <미 비포 유> 완결판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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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뉴욕 커피숍에서 뉴욕 커피를 마시고 있어! 난 뉴욕 거리를 걷고 있어! 멕 라이언처럼! 아니면 다이앤 키튼처럼! 난 진짜로 뉴욕에 있어!'

그러자 2년 전 윌이 내게 설명하려던 게 정확히 이해되었다. 몇 분 동안 생소한 음식을 먹고 이상한 광경을 보면서 나는 순간에만 존재했다. 온전히 현재에 몰두하고 감각이 살아 있었고, 주위의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려고 내 존재 전체가 열려 있었다. 나는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의 딱 한 곳에 있었다.      p.25

조조 모예스의 대표작 <미 비포 유>의 세 번째 이야기이자 시리즈 완결판이다. 그녀를 우리 나라에게 처음으로 소개해주었던 작품 <미 비 포유>는 사실 불의의 사고를 당했지만 매력적이고 돈까지 많은 젊은 남자와 집안 형편상 돈을 벌어야 하는 씩씩한 여자의 만남이라는 다소 뻔한 설정에서 시작했지만, 그 흔한 신파나 눈물 한 자락 없이, 현실을 직설적으로 반영하고 있어 여타의 최루성 신파 멜로, 휴먼 드라마의 패턴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지마비환자와 간병인, 게다가 엄청난 부자 남자와 평범한 집안의 젊은 여자라는 이야기의 소재만으로도 앞으로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도 뻔히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의 휴먼 멜로 드라마로 흘러가는 것이 당연할 것 같았지만, 지나치게 담백하고, 때로는 유쾌하고, 잔잔하게 따뜻하며, 거기에 추가로 목이 메일 것 같은 슬픔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조조 모예스는 평범한 멜로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정면으로 승부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래서, 로맨스 소설을 그다지 읽는 편인 아닌 나도 <미 비포 유> 시리즈는 좋아한다.

<미 비 포유>에서 사지마비 환자가 된 남자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야 했던 루이자 클라크,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애프터 유>라는 작품으로 그녀가 새 출발을 하는 과정을 담았었다. 세 번째 이야기인 <스틸미>에서는 루이자가 두 번째 남자친구인 샘을 두고 런던을 떠나 지구 반대편 뉴욕으로 떠나게 된다. 최상류층 집안에 어시스턴트로 고용되어 화려한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어 뉴욕 생활에 적응하게 되는 과정과 런던에 있는 샘과 장거리연애를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거리와 시차의 장벽으로 인한 위기를 그리고 있다. 루이자는 더 사랑스러워졌고, 그녀가 윌이 당부한 대로 대담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 과정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다.

"이해를 못 하네. 자기가 얼마나 변한지 알 수가 없겠지. 당신은 달라졌어, . 이 도시의 거리가 자기 것인 듯 활보해. 휘파람을 불어 택시를 부르면 택시가 오지. 심지어 걸음걸이도 달라. 마치.... 모르겠어. 당신은 본래 모습으로 변했어.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으로 변한 거지."

"아니, 좋은 말을 하는데 어쩐지 나쁜 말로 들리네."

"나쁜 게 아냐, 그저..... 다를 뿐이지."      p.252

한편, 루이자는 뉴욕에서 우연히 윌을 닮은 남자 조시를 만나게 된다. '그는 윌이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너무나 윌과 닮았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려웠다. 날카로운 지성과 자신감의 조화, 상대가 뭘 던져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분위기, 꼼짝 못하게 만드는 바라보는 눈길 등 태도까지 너무도 비슷했던 것이다. 게다가 샘에게 새로운 업무 파트너가 생겼는데, 그와 최소 하루 열두 시간 붙어 재니게 될 그 여자 파트너가 루이자는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섹시한 미남 구급대원 애인과 5,000킬로미터나 떨어져 사는데, 그에게 본든 걸 같은 목소리와 미모를 가진 새 파트너가 생겼다면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말이다. 장거리 연애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낯선 이국에서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기적처럼 나타난 남자 조시는 자꾸만 윌을 생각나게 한다. 게다가 고용주에게 돈을 훔쳤다는 오해를 사고 해고되어 지낼 곳도 없는 홈리스 신세에 실직자가 되어 버린다. 과연 루이자는 자신의 힘으로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될까.

아마도 로맨스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에는 모든 것이 잘되고 진실한 사랑이 승리하는 해피엔드가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에 비해 이야기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유치하거나, 오글거리는 장면들이 중간중간 등장하면서 부실한 플롯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로맨스 소설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는 것이 바로 조조 모예스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유머러스하고, 재미있고, 로맨틱하지만, 낭만적인 연애를 이상화하기보다는 인물이 현실에 발 딛고 서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이야기들이었으니 말이다. '로맨스 소설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대체 불가능한 로맨스의 여왕이 그러내는 세련되고, 현대적이며, 아름다운 해피엔드의 마법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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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전승환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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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영화를 다 보는 게

꿈인 사람처럼

오늘은 영화만 볼 거야.

내 마음에 들어야 진짜 행복이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정해.    p.74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카카오프렌즈! 라이언, 어피치, 튜브, , 무지, 프로도, 네오, 제이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의 사랑스러운 여덟 캐릭터와 젊은 작가들이 만났다.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그 첫 번째는 극강의 귀여운 캐릭터 라이언과 <나에게 고맙다>의 작가 전승환이다.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페이지 사이사이에서 그저 보는 것만으로 힐링되는 느낌을 선사하는 카카오프렌즈 친구들 덕분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는 책이다. 

무뚝뚝한 표정과 다르게 배려심이 많고 따뜻한 리더십을 가진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조언자 라이언.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제는 국민 캐릭터가 되어 버린 라이언이다. 그저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아무 말 없이 쳐다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듯한 기분이랄까. 사실, 그래서 글보다는 라이언을 비롯해 카카오 프렌즈 친구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책이기도 했다.

일요일,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뒹굴뒹굴 멍하니 쉬어가기.

그렇게 몸과 마음의 박자를 맞춰가기.    p.218

우리의 마음이 짓는 표정들이 모두 다른 것 같으면서도 결국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처럼, 각자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행과 슬픔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힐링과 위로라는 테마로 쓰인 에세이들이 모두 겉모습은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비슷하다. 여기도 내 얘기 같고, 저기도 내 얘기 같고, 저건 내 친구 누구의 이야기 같고, 또 이건 나의 직장 동료 누구의 상황 같고 말이다. 그러니 문장에서 진심을 느낀다거나, 공감이 된다거나 하는 순간들은 사실 그 순간의 내 감정이나 상황 등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랑스럽고 너무도 익숙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이 페이지 곳곳에 나타나서 그 귀여운 자태를 뽐내주는 것만으로 마음 속에 작고 동그란 행복들이 가득 차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내게 조용히 뒤에서 응원해줄게. 라고 말하는 글 속에 담긴 라이언의 듬직한 모습.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고, 내 마음을 돌보는 중이라고 말하는 페이지에는 엎드린 라이언 위로 어피치, 튜브, 무지 등 캐릭터들이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심각한 장면에서도 풉, 웃음이 터지면서 여유가 생기는 것 같고, 누군가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는 순간에는 그냥 막 내편이 되어줄 것 같은 사람이 생기는 것 같아 설레고 말이다. 라이언의 두꺼운 일자 눈썹과 작고 동그란 눈, 그리고 덤덤한 표정 안에 우리의 마음 속 다양한 표정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날, 라이언과 전승환이 선물하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들을 만나보자! 세상의 온도가 조금은 더 따뜻해지는 것같은 기분이 들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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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수면과 꿈의 과학
매슈 워커 지음, 이한음 옮김 / 사람의집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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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잠을 자는 이유를 설명하겠다는 이론 중 상당수는 일반적이지만 아마도 잘못된 것일 한 개념에 토대를 둔다. 깨어 있을 때 온갖 일들에 심란해졌기에, 바로 잡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상태가 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를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 잠이 대단히 유용한 것이라면? 우리의 모든 측면에 생리적으로 유익한 혜택을 주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생물은 왜 굳이 깨어나는 것일까?   p.89

나의 평균 수면 시간은 다섯 시간이다. 몸이 안 좋거나 조금 피곤한 날은 여섯 시간 이상 자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다섯 시간 혹은 그 아래이다. 잠이 건강에 중요한 것도 알고, 잠을 푹 자야 피로가 회복되어 다음날 컨디션이 좋아진다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을 자는 시간을 언제나 줄여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평생 수명의 3분의 1 시간 동안 잠을 잔다고 했던가. 생각해보라. 깨어 있는 시간에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만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만큼 다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데.. 대체 왜 잠을 자는 데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말인가. 솔직히 나는 잠을 자는 시간이 너무도 아까웠다. 대체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이 책은 세계적인 신경 과학자이자 수면 의학 분야의 전문가인 매슈 워커가 늘상 잠을 미루며 삶을 깎아먹는 이들에게 전하는 강력한 경고장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간 잃어버린 잠의 세계로 인도하는 부드러운 초대장이기도 하다. 저자는 수면 의학의 최전선에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잠의 이모저모를 과학적 근거들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잠의 놀라운 능력을 통해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방법을 탁월한 통찰로 제시한다. 잠이란 무엇이며, 사람은 얼마나 자야 하는지, 수면과 수면 부족의 좋은 점, 나쁜 점, 치명적인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수면에서 과학적으로 설명된 꿈이라는 환상적인 세계를 거쳐 불면증을 비롯한 많은 수면 장애들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부족한 잠이 당신을 죽이는 방법은 많다. 시간이 걸리는 방법도 있고, 훨씬 더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방법도 있다. 가장 적은 수면 부족에도 지장이 생기는 뇌의 기능 중 하나는 집중력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 이 집중력 상실이 가져오는 치명적인 결과는 졸음운전이라는 형태로 가장 명백하면서 치명적으로 펼쳐진다. 미국에서는 매시간 누군가가 피로와 관련된 운전 실수로 일어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p.196

잠은 학습하고, 기억하고, 논리적 판단과 선택을 하는 능력 등 뇌의 다양한 기능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잠이 매일 우리의 뇌와 몸의 건강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도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은 놀랍다. 그렇다면 반대로 잠이 짧아질수록 수명도 짧아진다고 한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암, 알츠하이머, 당뇨병 등에 취약해지고, 삶의 질도 나빠지며, 체중이 늘어나게 되고, 뇌의 기능 중 하나인 집중력 상실을 가져와 운전 중 사고가 날 확률도 높아진다. 저자는 수면이 우리의 삶, 건강, 수명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덜 이해된 행위라고 말한다. 아주 최근까지도 과학은 우리가 왜 잠을 자며, 수면이 우리의 몸과 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잠을 못 자면 건강에 왜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지와 같은 질문들에 아무런 답을 내릴 수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진화적으로 봤을 때도 잠을 자는 동안은 그 어떤 생산적인 시간을 보낼 수가 없으니, 매우 비생산적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생물이 잠을 잔다는 것은 피해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혜택이 존재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수면 시간은 몇 시간이 적당할까? 세계 보건 기구와 미국 국립 수면 재단은 어른이 하룻밤에 평균 여덟 시간을 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선진국을 통틀어서 성인 중 3분의 2는 하룻밤 권장 수면 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는 만성 수면 부족 사회에 접어들었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의 병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 책에서 알려주는 '명백한 잠의 혜택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잠을 줄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며 살아온 당신에게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잠을 자야 한다고. 잠을 푹 자게 되면 다음 날, 음식을 덜 먹고 더 건강한 음식을 찾게 되며, 머리가 더 맑고 더 행복하고 더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인 관계도 나아지고, 업무 효율도 올라가고, 질병에 덜 걸리고, 체중, 혈압, 약 투여량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인생의 3분의 1을 완벽하게 활용하는 방법은 바로 충분한 수면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남은 3분의 2를 가장 효율적이고 완벽하게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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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이 1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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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다는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썼다고 말했다. 만약 정말 그 정도로 두뇌가 좋다면 이곳을 나가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재주가 있을 터이다. 그러나 아무리 똑똑해도 마치다에게는 더 소중한 것이 결여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살아가기 위해 뭘 할지 생각하는 것은 머리지만, 무엇을 위해 살아갈지를 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마음이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자신은 그것을 마치다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   p.63

마치다 히로시라는 소년이 인간을 구별하는 기준은 단 하나였다. 머리가 좋은 인간인가, 나쁜 인간인가. 남자와 여자도, 부자와 가난뱅이도,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도 아니었다. 바로 그가 살아남기 위해 의지해야 했던 것이 바로 자신의 높은 아이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가족도, 친구도 없었고, 누군가를 그리워한다거나 좋아한다는 등의 감정 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미혼모였던 히로시의 엄마는 학교에 보낼 비용도 아깝다는 생각에 그를 방안에서 사육했다. 출생신고도 하지 않아 호적도 없었고, 당연히 학교에 가본 적도 의무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그는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살아야 했고, 그는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써야 했다. 히로시의 아이큐는 160 이상이었고, 한 번 본 것은 사진을 찍듯이 기억에 새길 수 있는 직관상 기억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뒷골목 세계를 이끄는 무로이 진이라는 남자가 있다. 그는 범죄라는 것이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행복한 인간을 불행하게 하기 위해, 불행한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살아간다. 마치 신흥 종교처럼 보이는 이상한 이 사상은, 평등하지 않은 세계 속에서 범죄로 인해 불평등함을 메운다는 비뚤어진 세계관으로 그를 따르는 무리를 만든다. 세상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면서 살아온 이들에게 그러한 생각은 자신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갈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세상에 빈부가 있고, 증오나 악의나 욕망이라는 감정이 있는 한 범죄가 없는 세계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범죄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자기 합리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말이다.

 

불행한 인간을 조금 행복하게 하고 행복한 인간을 조금 불행하게 한다... 무로이는 그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신이 조화를 부리듯 범죄를 이용해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무로이는 어떤 의미에서 범죄라는 수단으로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려하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렇다면 그 일의 한 부분을 맡고 있는 아마미야 일행은 '신의 아이'인 셈이다.   p.101

사회파 추리의 강자 야쿠마루 가쿠는 매번 묵직한 미스터리를 그려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용서와 복수라는 다소 어둡고 무거운 주제가 이렇게 술술 읽혀도 되나 싶을 만큼 쉽게 읽히고,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이 그의 작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었다. 국내에 꽤 많은 작품들이 출간되어 있는데, 최근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되는 바람에 아마도 지금 가장 핫한 작가일 것이다. 이번에 만나는 <신의 아이>는 야쿠마루 가쿠의 아홉 번째 국내 출간작인데, 두 권짜리라 그 중에서도 분량이 가장 많다. 그만큼 다양한 플롯과 반전,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엮여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1권의 이야기는 범죄를 이용해 불평등한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사상에 심취한 무로이 진이 소년원에 들어간 마치다를 갖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건을 벌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히로시가 소년원에서 겪게 되는 스토리가 전반부, 그리고 그가 소년원을 나와서 부딪히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 여전히 그에게 관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뒷골목 세계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리고 사실 히로시라는 특별한 캐릭터 외에 주연보다 더 눈길이 가는 조연 캐릭터가 있어 플롯이 풍부해지고, 몰입감을 높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후 전개가 어떻게 될 지 더 궁금해지는데, 어서 빨리 2권을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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