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원숭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9
J. D. 바커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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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네.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이 끝을 맞이하는 모습을 지켜봤지만, 모두들 마지막에는 항상 같은 기대를 품더군. 문 쪽을 힐끔거리며 구원자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더란 말이지. 하지만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아. 현실에 존재하는 구원자는 자기 자신뿐이야.    p.292

 

포터는 지난 5년 동안 4MK 전담반을 이끌고 연쇄살인범을 쫓아 왔다. 4MK, 일명 네 마리 원숭이 킬러라 부르는 그는 절대 증거를 남기지 않았고, 한 명당 상자 세 개에 각각 희생자의 귀, 눈, 혀를 담아 가족에게 보냈다. 지난 5년 동안 스물한 개의 상자가 쌓였고 젊은 여성 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경찰은 단 하나의 단서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에 치여 얼굴이 뭉개진 신원불명의 사망자가 검은 리본이 묶인 작고 하얀 상자를 가진 채로 발견된다. 4MK로 추정되는 인물은 현장에서 즉사했지만 상자 속에는 한쪽 귀가 담겨 있었고, 이는 어딘가에 아직 그의 마지막 피해자가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범인이 죽었으니 연쇄살인은 끝이 났고, 이제 4MK 전담반은 그가 남긴 마지막 피해자를 찾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네 마리 원숭이'라는 이름은 일본 닛코의 도쇼구 신사에서 유래했다. 신사 입구 위에 원숭이상 세 개가 있었는데, 각각 귀와 눈과 입을 가리고 "악을 듣지 말고, 보지 말고, 말하지 말라"는 뜻을 품고 있었다. 네 번째 원숭이는 "악을 행하지 말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고, 4MK는 희생자의 손에 "악을 행하지 말라"는 쪽지를 남겼다. 그가 저지르는 범죄의 패턴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가까운 사람, 잘못을 저질렀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아끼는 사람을 납치해 범행을 저질렀다. 마치 악을 벌하는 자경단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경찰은 희생자가 발견되고 나서야, 희생자의 주변을 조사해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이 저지른 악행을 알게 되는 식이었다. 이번에 4MK가 상자를 배달하려던 주소는 부동산 재벌 아서 탤벗의 집이었고, 사라진 것은 숨겨진 딸 에머리라는 것이 밝혀진다.

 

 

 

"당신을 그 남자와 같은 방에 가두고, 당신이 뭘 하든 아무 후환이 없으리라 확신하게 해준다면? 그래도 그 남자를 해치지 않을 건가요? 미간에 총알을 박지 않을 거예요? 칼을 쥐고 목에서 사타구니까지 단칼에 긋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을 건가요? 자신을 속이지 말아요, 샘.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인 거예요."
"하지만 그 생각에 휘둘려 행동하지는 않지."
"행동하는 사람도 있고, 덕분에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됐죠."    p.515

 

이 작품은 4MK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J. D. 바커는 이 시리즈를 이후에 두 권 더 썼다. 보통은 이런 스릴러 장르의 시리즈가 이어질 때 주인공인 형사나 FBI요원이나 범죄 심리학자 등 범인의 반대편에 있는 인물의 이름을 따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은 형사인 '샘 포터' 시리즈가 아니라 연쇄살인범인 '4MK' 시리즈라고 이름 붙였을까. 게다가 이야기는 4MK가 교통사고로 죽는 걸로 시작된다. 범인이 이미 죽어 버렸기 때문에, 경찰은 그가 남긴 일기장과 최소한의 단서만으로 아직 살아 있는 마지막 피해자를 찾아야 한다. 이야기는 4MK의 흔적을 쫓아 피해자를 찾는 경찰들의 현재 시점과 4MK가 마치 자서전처럼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가족 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담아둔 일기장의 과거 시점이 교차 진행된다. 이런 구성일 때 현재와 과거가 비슷한 무게를 지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과거의 서사가 현재의 그것에 보조하는 플롯으로서의 역할을 하거나 액자 구성으로 독자들이 객관적인 거리감을 느끼도록 하게 마련인데,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 시점으로 진행되는 스토리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내용이 주는 충격과 공포 면에서나, 분량 면에서나 모두 형사의 시점보다 범인의 시점이 더 스릴 넘치고, 긴장감과 속도감이 있다. 이 시리즈가 왜 '샘 포터' 시리즈가 아니라 '4MK' 시리즈일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포터 형사를 비롯해서 경찰들의 존재감도 좀 약한 편이고, 살아있는 피해자를 구하려는 과정을 그린 서사 또한 스릴이 부족하게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목적은 기존의 스릴러들과는 다르게 범인을 찾고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살인을 전시해온 범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 작품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문장의 행간을 읽는 법을 익혀야 한다. 세상에 무고한 사람 같은 건 없으니까. 아마도 이 작품에서 이해되지 않았던 범인의 행동이나, 설명되지 않았던 여러 요소들이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점차 완성될 거라고 생각한다. 역대 연쇄살인범의 부모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캐릭터인 4MK의 '어머니'가 다시 등장해야 그의 범행과 행동들의 많은 부분들이 설명될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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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랑 이야기 웅진 모두의 그림책 27
티아 나비 지음, 카디 쿠레마 그림, 홍연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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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겨울, 소녀는 눈을 보느라 코트 주머니에서 장갑 한 짝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도 알지 못한다. 오른쪽 장갑은 지저분한 흙더미와 누렇게 바랜 단풍잎 옆으로 떨어졌고, 그걸 알아챈 것은 반대쪽 주머니에 들어 있던 왼쪽 장갑뿐이었다.

 

짝을 잃어버린 왼쪽 장갑은 더럭 겁이 난다. 한 짝만 남은 장갑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땅에 떨어진 장갑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결국 쓰레기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웅진 모두의 그림책 27권이다. 2018년 에스토니아의 ’디자인이 훌륭한 어린이책’에 선정된 작품으로 흰색과 검은색, 빨간색만을 사용한 컬러감이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겨울 하면 바로 떠오르는 색감이라 무채색 톤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그림들이었다.

 

왼쪽 장갑은 혼자 남는 것보다는 결국 쓰레기장에 가게 되더라도 소중한 짝과 함께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있는 힘껏 몸을 비틀어 바닥으로 몸을 던진다. 하지만 하필 떨어지면서 얼음 웅덩이에 빠지고 말아, 바들바들 떨면서 누워 있게 되고 만다. 과연 왼쪽 장갑은 오른쪽 장갑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한 쌍이어야만 쓸모가 있는 물건들이 있다. 신발, 양말, 장갑, 귀걸이 등등은 하나만 남아 있을 때는 자신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물건들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이나 부부, 친구, 업무 파트너 등도 혼자 있을 때보다는 함께 했을 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고, 하나의 완성된 관계를 만들어 낸다. 

 

이 작품은 갑자기 어느 한쪽이 사라졌을 경우, 남은 한쪽은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로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살면서 항상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부모님, 가족, 친구, 연인, 아이, 회사 동료, 이웃 등등... 관계란 결코 혼자 맺을 수 없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고, 어렵기도 하다. 한쪽의 일방통행으로는 서로의 마음이 완전하게 전달될 수 없고, 왼쪽이나 오른쪽만 있다면 쓸모를 잃게 되는 장갑처럼 각자 부족한 면을 상대가 채워주기도 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그 누구와도 관계없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이 그림책이 들려주는 빨간 장갑 한 켤레의 여러 감정들을 통해 고난을 이겨내는 이야기는 다정하고, 따뜻하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정경을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색채도 너무 예쁘고, 함께 있을 때 빛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뭉클한 책이었다. 소중한 것은 항상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되곤 한다. 잃어 버리기 전에, 상실감으로 슬퍼하기 전에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들에게 더 잘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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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폴리 (매그넘 에디션) - 당신이 궁금한 와인의 모든 것
Madeline Puckette.Justin Hammack 지음, 차승은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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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 와인을 곁들인다던가, 가끔 와인을 사야 할 경우가 생기면 대부분 직원의 추천을 받는다. 와인을 자주 마시는 편도 아닌데다, 그 종류가 너무 낳고 어쩐지 전문적인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아무거나 고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에 대해 한번쯤은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정말 괜찮은 와인은 함께 먹는 음식의 수준을 높여주기도 하고, 마시는 것만으로 그 자리의 분위기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주는 음료이니 말이다.

 

 

세상에는 와인에 관한 책이 수백 권이나 존재한다. 학술적인 책도 있고,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책도 있다. 그에 비해 이번에 만난 이 책은 '실용주의자의 장비이자 와인 탐험을 안내하는 길잡이'로 탄탄한 기본 지식을 제공하는 와인에 관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와인 폴리>는 2016년에 출간되어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및 아마존에서 최고의 요리책으로 선정되었다. 전 세계의 와인 교육자와 소믈리에, 레스토랑 매니저들이 와인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이 책을 사용한다는 점만 봐도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기존 도서보다 2배 이상 업그레이드된 정보를 담아 더욱 강력하게 업그레이드하여 매그넘 에디션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와인의 성분, 와인 라벨 표기 방식, 와인의 강도를 분류하는 기준, 당도와 산도의 단계 등 아주 기본적인 단계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와인의 양조, 시음 방법, 서빙 및 보관법 등의 흥미로운 지식들을 알려 준다. 특히 4단계 와인 시음법과 와인의 색과 향에 대해 알려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와인이 화이트/레드 와인으로만 크게 구분되는지 알고 있었던 터라, 와인의 색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점에 감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색조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놀라웠다.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찾는 방법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기본적인 조합 방법부터 6가지 주요 맛에 따라 가장 조화로운 조합의 와인을 고르는 방법으로 이어졌다. 간단한 음식 6가지와 와인 4종(풀 바디 레드, 스위트 화이트, 라이트 바디 화이트, 스파클링)을 조합하는 연습을 하고 나면 치즈, 단백질, 채소, 향신료, 허브 각각의 종류에 맞춰 와인을 조합해볼 수 있도록 도표로 정리되어 있어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되어 있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와인, 포도, 블렌드 100종을 소개하는 페이지이다. 시음 노트, 음식 조합, 권장 시음 방법, 지역별 분포도를 함께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86가지 포도 품종과 14가지 와인인데, 이 품종들이 와인 생산에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포도와 품종들이라고 한다. 그 외에 희귀한 포도 품종을 찾아 보고 싶다면, 세계 1위 와인 교육 웹사이트인 '와인 폴리(winefolly.com)'에서 무료 자료로 볼 수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국가별 와인 생산지와 생산하는 와인을 탐색하는 법이 알아 보기 쉽게 인포그래픽으로 소개되어 있다. 세계의 와인 생산지를 보면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스페인과 미국, 아르헨티나, 호주, 칠레 등으로 이어진다. 각 나라별 와인의 특징과 생산 지역에 대한 소개와 포도의 품종, 생산되는 주요 와인의 종류와 나라별 와인 상식도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와인에 대해 궁금한 초보자부터 새로운 지식을 늘리고 싶은 전문가들까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특히 처음으로 와인에 입문하는 초보자에게 와인의 세계로 안내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이었다.

 

와인을 고를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혹은 와인을 골랐다가 실패한 적이 있거나, 와인에 관한 지식을 늘리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통해서 당신도 전문적 소믈리에 수준의 와인 지식을 얻게 되어, 적은 예산으로도 괜찮은 품질의 와인을 고를 수 있게 되고, 음식과 와인 조합을 멋지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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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익스체인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2
최정화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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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널 어떻게 대하든 간에, 넌 자유롭고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야. 그걸 잊지 말렴."
그때는 삼촌이 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삼촌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 말을 잊고 싶어졌다. 이 모든 기억을 잊는 게 꼭 그렇게 나쁜 일인가 하는 질문이 솟기 시작했다. 난 너무 외로웠다. 그리고 한순간이라도 편안해지고 싶었다. 물론 그 편안함이 고통이 사라지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잊는 건, 눈뜬장님과 같은 상태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쉽사리 메모린에 지원하지는 못했다.    p.38~39

 

집집마다 외벽에 오염물질 차단제를 발라야 하고, 공기정화장치가 장착된 헬맷을 쓰지 않으면 외출초자 할 수 없게 된 지구는 이미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모조리 팔아 티켓을 구입했고, 기회만 된다면 망설임 없이 지구를 떠났다. 도착하게 될 곳이 어딘지 알아보지도 않고, 왜냐하면 그게 유일한 생존방법이었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오게 된 니키와 가족들이 그곳에 도착하고 화성으로 이주하기로 한 것이 큰 실수라는 걸 깨닫는 걸로 시작된다. 화성에서는 아이디얼 카드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는데, 그들은 그 카드에 대해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비행선 티켓을 사는 데 전 재산을 다 써버렸고, 한 달치 숙박료를 미리 지불했지만, 마중 나오겠다던 업자는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된 처지의 지구인들 150여 명에게 다섯 개의 공간이 지급되었고, 그들은 비좁은 출입국 수용소에서 주기적으로 '메모린'에 지원하라는 권유를 듣게 된다.

 

'메모리 익스체인지'란 갈 곳이 없어져버린 이민자들에게 경제 사정이 어려운 화성의 파산자들이 아이디얼 카드를 팔고, 서로의 기억을 교환하는 것을 말했다. 아이디얼 메모리를 판매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보를 완전히 상대에게 넘기고 기억을 말소시킨다는 의미였고, 그렇게 '제로화'된 화성인들은 특수 구역에 격리되어 일반 구역 사람들과는 단절된 채 살아 갔다. 그리고 화성인과 기억을 교환한 지구인은 자신이 지구인이었다는 기억을 잃은 채 화성 사회에서 화성인인 것처럼 살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수용소에 있는 이민자들에게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계속 출입국 수용소에서 살던가, 메모린에 지원해 화성인으로 살아가던가 선택해야 했다. 이주민의 기억을 받은 화성인은 자신이 이주민이라 믿으면서 감시와 통제 아래 남은 삶을 살아가고, 화성인의 기억을 갖게 된 이주민은 자신이 화성인이라 믿으며 화성 사회에 편입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과연 지구인의 기억을 갖고 감옥 같은 곳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사는 것과, 그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렸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화성인으로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 중에 어떤 삶이 더 행복한 것일까. 기억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나인 것일까.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내가 보기에, 불필요한 것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었고 결국은 그걸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의지가 매우 강하고, 그 점에서는 우리 화성인들보다 뛰어났어요. 하지만 자기가 뭘 원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사고는 복잡했지만 단순한 진리들에는 취약했고 심지어 그것들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행복해질 수 있는 가까운 길을 놔둔 채 아주 멀리, 마치 일부러 그것에 도착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우회하고 있었습니다.    p.67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스물두 번째 작품이다. 최정화 작가의 이번 신작은 2019년 「현대문학」 6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것이다. 핀 시리즈를 그 동안 읽어 오면서 SF 장르를 만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기대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파멸 직전의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한 소녀가 '기억 교환'을 통해 화성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전작 <흰 도시 이야기>에서 전염병에 휩싸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네가 존중 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는 문장을 통해 인간의 자유 의지와 인간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간의 실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1장에서 화성에 도착한 지구인 니키의 시점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2장에서 니키와 기억을 교환하고 수용소에 갇힌 채 살아가는 반다의 시점으로, 그리고 3장에서는 메모리 익스체인지사에서 체인저로 일하는 도라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일 중독자로 사람들의 기억을 바꿔주는 일을 5년째 하고 있는 도라는 사실 반다의 기억을 이식 받은 니키였다. 반다는 전파 오류 사고로 수용소를 탈출해, 자신과 기억을 맞바꾼 니키를 찾아가게 된다.

 

"내 기억을, 그러니까 내 기억을 가져간 다른 이에게 그가 내게 넘겨주었던 기억을 돌려주고 싶어요. 그걸 그에게 주고 싶습니다. 난 그자가 내 기억을 가지고 자신을 잊은 채 살기를 바라지 않아요. 내가 가지고 있는 당신 기억을 당신에게 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들은 자신에게 이식된 서로의 기억을 들려준다. 반다는 자신에게 이식된 니키의 기억을, 니키는 자신에게 이식된 반다의 유년 기억을 들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자유롭고 존중 받아야 할 인간'으로 살고 있는 건지, 우리는 모두가 자유롭고 존중 받는 세상을 위해 타인을 대하고 있는 건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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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팀 The Team - 성과를 내는 팀에는 법칙이 있다
아사노 고지 지음, 이용택 옮김 / 리더스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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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션스 일레븐>에서는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구성원을 소집한다. 이때 각자가 특기를 지닌 개성 있는 구성원을 조합함으로써 팀 전체의 성과를 창출한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팀은 해산한다. 그야말로 유동성과 다양성을 겸비한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대부>가 아니라 <오션스 일레븐> 같은 팀이 필요하다.   p.67

 

모든 과정을 '혼자' 다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어떤 관계든지 사회적으로 어떤 팀과 관련이 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과 협력함으로써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낸다. 직장에서, 스포츠 경기에서, 혹은 각종 동호회나 소모임 등에서 말이다. '팀 플레이'라는 말은 스포츠나 영화 등 여러 사람이 공동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에 많이 사용되는데, 경기에서 승리하거나 일의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개인 혼자서는 절대 이뤄낼 수 없는 결과를 두고 우리는 '팀 플레이가 빛을 발했다' 혹은 '팀워크가 좋다'라는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 너무도 다른 능력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이 함께 같은 목표를 이뤄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책은 팀에 대해 잘못 알려진 믿음을 바로잡고, 팀이 갖춰야 할 바람직한 모습을 알려주어, 팀의 속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저자는 끝 모르고 추락하던 팀이 3년 만에 매출 10배 증가를 이뤄내며 ‘업계 1등’으로 거듭난 비결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의 팀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든 승리의 기술을 ‘팀의 법칙’이라고 정리하며, 그것을 이루는 ‘목표 설정’, ‘구성원 선정’, ‘의사소통’, ‘결정’, ‘공감’이라는 5가지 키워드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그 어떤 조직에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이고 구체적이라 누구에게나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픽사는 팀 단위 작업에 특화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통상적인 제작 과정에서는 감독이 혼자 스토리의 윤곽을 생각하고 어느 정도 완성한 후에야 비로소 팀을 짜 영화를 만든다. 하지만 픽사는 다르다. 누군가가 혼자 스토리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구성원 몇 명이 모여 토론을 거쳐 스토리의 윤곽을 완성해낸다. 이후에도 팀 전체가 모여 논의를 거듭하며 스토리를 세밀하게 다듬어나간다. 톱 플레이어 한 사람의 재능에 의존하기보다는 팀의 힘을 결집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픽사가 끊임없이 히트 작품을 내놓는 원동력이다.    p.127

 

저자는 경영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기업의 인사 조직 변혁을 지원해왔고, 다양한 팀이 쇄신해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팀의 법칙이 지닌 힘을 가장 절실히 실감한 것은 클라이언트 기업의 조직 변혁 프로젝트에 관여한 때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컨설팅 팀을 바꿔나가면서 였다고 한다. 실적은 끊임없이 하양 곡선을 그렸고,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팀원들도 하나 둘 퇴직했으며, 그의 팀은 업계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었다. 나름대로 갖가지 대책을 강구해봤지만 헛수고였고, 회사 내에서도 업신 여김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다 '고객에게 조언해주는 조직 변혁의 노하우를 우리 팀에서부터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매출이 무려 10배로 올랐고, 조직 상태도 개선되어 퇴직률도 낮아졌으며, 회사의 시가총액까지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자는 위대한 팀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유능한 리더도, 뛰어난 에이스도, 완벽한 시스템도 아닌 '정밀한 법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이를 바탕으로 심리학, 행동경제학, 조직 행동학 등 다양한 이론과 학술 자료를 토대로 '팀'이라는 집단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3년 만에 꼴찌에서 매출 10배 상승을 달성하며 업계 1등으로 변하게 된 극적인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효과적인 팀 운용 전략이 꼭 필요한 회사의 중간 관리자라면, 그리고 팀의 구성원인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최적의 조합으로 팀을 짜는 노하우부터 개인의 역량을 팀의 역량으로 확장하는 법까지 총망라되어 있어 평범한 사람들도 압도적인 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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