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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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에 당신은 담요를 다시 갖다 놓지만 장난감 권총은 챙긴다. 그날 밤에 어디서 자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그게 쓸모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일주일 동안 계속된다. 당신은 그 심정이 어떨지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당신도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인생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은 몰랐는데.' 그러면 덜컥 겁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에 당신은 극단적인 짓을 저지른다. 아, 물론 당신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분명 다른 대안을 강구했을 것이다.       p.97

 

어느 날 아침, 그다지 넓지도 않고 주목할 만하지도 않은 도시에 사는 39세의 주민이 권총을 손에 쥐고 집을 나선다. 강도는 은행에 침입해 6천5백 크로나를 요구하지만, 그곳은 하필 현금 없는 은행이었다. 당황한 강도는 경찰이 출동하자 겁에 질려서 길을 건넜고 맨 처음 눈에 들어온 문을 열고 도망친다. 구체적인 도주 계획도 없었던 강도는 우연히 아파트 매매 현장인 오픈하우스로 달아나게 됐고, 아파트를 구경하러 온 잠재 고객들은 인질이 되고 온다. 은행 강도라 할 수 없는 사건이 갑작스레 인질극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잠재 고객 일곱 명과 부동산 중개업자 한 명으로 여덟 명이 인질이 된다.

 

인질극은 정석대로 흘러간다. 경찰이 건물을 에워쌌고 기자들이 출동했고 사건이 TV에 보도된다. 이런 상황이 몇 시간 계속되자 은행 강도는 항복했고, 인질들이 모두 풀려나고 나서 곧 경찰이 아파트를 습격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은행 강도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은행 강도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그 안에서 은행 강도와 인질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흔히 인간의 성격은 경험의 총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과거가 모든 것을 규정한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절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어제 저지른 실수들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선택, 다가올 미래도 우리의 전부라고 말이다.... 예전에 엄마가 그녀의 귀에 대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성격은 경험의 총합일 뿐이야. 남들이 뭐라하건 귀담아 듣지 마. 그러니까 걱정 마, 우리 공주님. 너는 망가진 가정 출신이라 심장이 망가질 일은 없을 거야. 너는 낭만주의자로 자랄 일도 없을 거야, 망가진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으니까."      p.462~463

 

<오베라는 남자>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다. <오베라는 남자>가 나왔던 것이 2015년 이었는데 그 이후로 꽤 많은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들을 읽어 왔다. <브릿마리 여기있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베어타운>, <우리와 당신들> 등 다양한 작품들이 모두 기본 이상의 재미를 안겨 주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입에 척척 달라붙는 음식처럼 눈에 쏙쏙 들어오는 묘사들,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노련한 구성과 스토리, 그리고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까지.. 언제나 유쾌하고도 다뜻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번 작품 역시 겁 많고 마음 약한 강도와 위급한 상황에서 한마디도 지지 않는 인질들의 한바탕 소동극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상처와 어리석음, 실수, 오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은행 강도, 아파트 오픈하우스, 인질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작가의 말대로) 그보다는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어른들이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하기 싫어도 참으며 일을 하며 돈을 벌고, 필요한 경우에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매일같이 전쟁 같은 일상을 견디어 낸다. 가끔은 정말 형편없는 생각을 한 적이 있더라도, 어른들의 실수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참는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것, 그게 누군가에게는 미련하고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하루를 살고, 내일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물론 어떻게든 더 잘해보려고 애쓴 몸부림이 오해와 거짓말을 불러오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마음이 바보 같은 실수가 되어 버리고, 때로는 모르는 걸 아는 척해야 하고, 무섭지만 겁나지 않은 척도 하고, 불평불만이 턱 끝까지 차 올라도 아무렇지 않게 만족하는 척 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다들 잘 살고 있는데 나 혼자만 그 모양인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은 바로 이렇게 불안에 시달리는, 그럼에도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엉뚱하고, 끝없이 웃게 만들지만 결국엔 뭉클하게 만드는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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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자클린 퍼비.스튜어트 조이 지음, 이현수 외 옮김 / 본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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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의 모든 영화들 중 <인셉션>은 영화 만들기에 대한 가장 명백한 비유를 담고 있다. <인셉션>은 사기꾼 영화의 일반적인 극적 비유들을 담고 있으며, 그것들을 영화 제작 스탭들의 알레고리로 만들어낸다. 또한 공유된 꿈의 전제를 꿈의 주관적 경험과 극영화의 주관적 경험 사이의 유사성을 드러내는데 사용한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꿈의 효과는, 특히 <프레스티지>에서 사용되었던 놀란의 특징적인 내러티브 장치의 영화적 복제를 가능케 한다.      p.114

 

<메멘토>, <인썸니아>, <인셉션>, <다크 나이트> 3부작, <인터스텔라>, <덩케르트>, <테넷> 등을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들은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확보했다고 평가받는다. 개인적으로는 배트맨 시리즈를 범죄 느와르로 재탄생시킨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보고 완전 팬이 되었다. 이후에 만들어진 꿈과 현실에 대한 영화 <인셉션>으로 압도적인 스토리텔링과 영상미를 보여주어 그야말로 믿고 보는 감독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인터스텔라>라는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천만 관객을 돌파한 세 번째 외국 영화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가장 최근작으로 작년에 개봉한 <테넷>은 물리학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관객 수가 200만에 육박했다. 전세계적으로는 놀란의 작품들 중에 최초로 흥행에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인버전이라는 신선한 이야기만으로도 여전히 놀란다운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만난 책은 월플라워 출판사(Wallflower press)에서 출간한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 시리즈로 현존하는 영화감독 중 가장 실험적이고 독특한 장르를 개척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분석한 글들을 모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을 둘러싼 비평, 각각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 음악, 시간, 퍼즐, 트라우마로서 읽어내는 미학적인 분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었다.

 

 

 

주인공의 거짓성은 모든 이해에서 잘못된 이해가 수행하는 역할을 묘사하고자 하는 놀란의 노력의 기초가 된다. 영화감독은 단순히 영화의 다이제틱 현실에서 나타나는 거짓말 묘사할 수는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관객들이 이 거짓과 거리를 두고 그 필요성의 인식을 피하려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거짓에 대한 영화는 거짓에 대한 진실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통해 진실을 최고 가치로 두고 탐구되는 형태로 남아야 한다. 관객들을 속이고 그 후 이 속임수의 이유를 드러내는 방식으로만, 영화감독은 거짓이 우선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p.381

 

크리스토퍼 놀란의 전 작품이 만들어내는 프리즘에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고 있는 이 책의 글들은 모두 열 일곱 편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다크나이트>와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의 아이맥스, <인셉션>과 <프레스티지>에 나타난 영화 제작 알레고리, <메멘토>의 포스트모던 누아르 판타지, <인썸니아>와 억압된 것의 귀환, <미행>의 실존주의적 시간성, <인터스텔라>에서 다루는 시간 여행에 대한 집착, <인셉션>에서 음악의 기호적 역할과 비디오 게임 로직 등등... 마치 퍼즐처럼 느껴지는 놀란의 작품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들이었다.

 

영화는 단지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체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각적인 볼거리와 지적인 퍼즐이 동시에 존재하는 놀란의 영화들이야말로 그에 걸맞는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의 작품들은 여러 번 관람하게 만드는 지적인 유희가 존재하고, 카메라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의 스펙터클함도 빠지지 않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인셉션>이 2010년, <다크 나이트>가 2008년 작이었다. 당시에 굉장히 여러 번 보았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오래 지나 디테일한 부분들은 많이 잊고 있었다. 이 책에 수록된 관련 글들을 읽으면서 새록새록 당시의 기억들과 장면들이 떠올라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대부분 영화에 대한 글도 즐겨 읽는다. 영화 비평 혹은 리뷰라는 형태로 전문가가 아닌 이들도 영화에 대한 글들을 쓰게 되는 이유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기사나 네티즌들의 글로만 접했던 영화에 대한 글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 이 책에 수록된 분석, 비평 글들이다. 그러니 놀란의 영화들을 좋아한다면, 이 책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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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 -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실전 매뉴얼
오렌지나무 지음 / 혜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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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우울증을 앓는 동안 저는 단 한 번도 우울증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한 적이 없어요. 제가 이토록 괴로운 이유는 우울증 때문이 아니라 망가진 인생 때문이라고 여겼죠. 현실을 못 바꾸니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고 믿었어요. 이렇게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채, 우울증 치료보다 '마음에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바꿀 수도 없는 현실'에만 매달렸죠...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어요. 인생은 망했을지 몰라도 우울증은 나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p.36

 

우울증 경력 20년, 은둔형 외톨이 경력 7년, 자살 시도 경력 10년, 이번 생은 돌이킬 수 없이 망했다고 생각했던 저자의 이력이다. 우울증이 가져다 주는 고통 속에서 매일같이 발버둥 쳤지만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던 저자에게 유일한 출구는 자살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울증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우울증과 열 번 싸워 한 번 이기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아홉 번 정도는 이길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이 책은 약이나 외부의 도움 없이 마음의 면역을 만들어 갔던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심리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거부감 같은 건 없었지만 입원비도 만만치 않았고, 학자금 대출도 쌓여 있었다.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병원에 데려가 주고 치료를 지지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가족은 우울증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병원 치료에도 거부감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아마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상황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우울증을 폐렴이나 위장병처럼 평범한 질환처럼 여기지 않은 것이 사회적 시선이고, 정신적 질병도 육체적 질병처럼 평등하게 다룰 수 있게 되려면 아직 멀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우울증이 진짜 병이 아니라는 편견'때문일 것이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당사자도, 그의 가족들도 대부분 이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랑을 매일 주는 건 불가능해요. 하루 종일 잠만 자다 저녁 7시쯤 겨우 일어나 세수도 안 하고 게임부터 하면 부처님이 아니고서야 화가 많이 날 거예요. 아무리 참고 또 참아도 결국 터트리게 되는 날이 많을 거예요. 그래도 10번 화냈다면 3번 정도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세요. 병을 줬으니까 약도 챙겨 줘야죠.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가족들이 왜 화를 내는지 잘 알아요. 얼마나 힘든지도 알고요. 다만 자기 존재가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고 싶은 거죠. 가족들이 평온한 상태일 때 해 줬던 말들, 표현해 주었던 사랑들이 이럴 때 큰 힘을 발휘해요.     p.191

 

이 책은 병원의 도움과 약의 처방 없이,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우울증을 이겨 낸 저자의 눈물겨운 투쟁의 기록이다. 20년간 우울증과 함께 살아오며 깨닫고 실천한 매뉴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가 우울증을 겪어온 시간과 자살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낸 과정을 통해서 공감하고, 위로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셀프 심리 상담 방법, 자살을 막기 위한 가족 매뉴얼, 무엇보다 먼저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는 것부터 일상을 지탱할 최소한의 규칙을 만드는 과정 등 저자를 살린 구체적인 방법이 모두 담겨 있다. 우울증 환자에겐 사람이 구명보트가 된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주위 사람들을 잘 지켜 나가야 한다. <한낮의 우울>에서 앤드류 솔로몬은 '자기를 구해 줄 구명보트를 핀으로 찌르는 짓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저자 역시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버텨왔다고 한다.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주위에 사람이 있는 게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는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면, 이 책에 실린 작은 실천들이 구명보트가 되어 주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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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달 엄마표 놀이의 모든 것 - 아이의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과학, 미술, 신체 놀이
노신영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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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0만 팔로워 인플루언서 누누달의 첫 엄마표 놀이 도서이다. 저자의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화제가 된 놀이들을 모두 모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일을 그만두고 3살 남자 아이를 키우며 전업 주부가 된 저자가 아이와의 놀이를 통해 행복했던 경험을 공유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지금 아이는 7살이 되었고, 엄마는 아이와 함께 5년째 놀이육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어린이집, 유치원에 못 가고 외출도 어려워지니 종일 집에서 아이와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졌다. 올해는 좀 나아진 편이지만, 작년에는 거의 일 년 내내 아이와 강제 집콕을 해야 했던 집들이 많았다. 그리고 아이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온종일 놀이를 해준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놀이육아가 좋은 것은 알지만, 막상 하려면 만만치가 않다는 걸 엄마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놀이들은 크게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다. 만들다, 자라다, 배우다, 그리다, 꿈꾸다로 구분해 다양한 놀이들을 소개해준다. 간단한 도구 만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를 만들어 보고, 움직이는 태양계를 만들고, 빨대로 도형을 만들기도 한다. 라이스페이퍼에다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모루 철사로 만든 물고기로 낚시 놀이도 하고, 드라이아이스를 활용한 알록달록 비눗방울 놀이도 해본다.

 

SNS에 유행했던 우유 마블링과 베이킹소다를 활용한 화산 폭발 놀이는 나도 아이와 함께 해본 적이 있는데, 이 책에 수록된 놀이들은 그보다 더 재미있고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많아 놀라웠다. 빨대, 택배박스, 풍선, 실 등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이렇게 창의적이고, 색다른 놀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말이다.

 

 

특히나 놀이 영상 QR코드와 놀이 도안이 제공되고 있어 어렵지 않게 놀이를 따라해 볼 수 있다. 놀이 영상 114개와 저자가 직접 만든 놀이 도안 14개로 똥손 엄마라도 아이와 함께 놀이를 해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과학 놀이, 미술 놀이, 신체 놀이 등 다양한 영역의 놀이를 해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아이가 핼러윈, 유령을 너무 좋아하는데 책의 후반부에 수록된 핼러윈 풍선 장식, 핼러윈 탁상 조명, 호박 조명, 야광봉 놀이 등은 아이와 함께 해볼 예정이다.

 

 

뭐하고 놀아야 할지 막막한 엄마, 손재주가 없는 엄마, 놀이가 서툰 엄마들을 위한 최고의 책이다. 값비싼 장난감 없이도, 게임기나 유튜브 없이도 아이와 함께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이 이렇게나 많다니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다양한 소도구와 색감, 여러 재료들을 활용해 아이의 창의력과 상상력에도 도움이 되는 엄마표 놀이! 이 책만 있다면 누구라도 해볼 수 있다.

 

코로나 시대 집콕 시간이 길어진 요즘 아이와 무엇을 할지 고민하지 말고, 이 책 한 권으로 해결해 보자. '놀이는 아이와 엄마, 모두가 성장하는 시간'이라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아이가 엄마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 놀이 육아를 통해 더 재미있게 유익하게 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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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와의 정원
오가와 이토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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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잊는다. 엄마 같은 건 처음부터 없던 셈 친다. 엄마가 나를 잊은 것처럼 나도 엄마를 잊는 것이다. 그러면 나와 엄마는 비긴 것이 된다. 물론 그렇게 간단히 엄마를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이미 내 마음속에 살고 있다. 내장처럼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래도, 그럼에도 나는 엄마를 잊어야만 한다. 내 마음속에서 엄마를 쫓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었다. 나는 '엄마'를 봉인했다.     p.121

 

눈먼 소녀 토와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 집으로 생필품을 가져다 준다. 매주 수요일마다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다 주어 '수요일 아빠'라고 마음속으로 불렀다. 토와와 엄마는 오랫동안 밖으로 나가는 일 없이 둘이서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토와랑 둘이서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기로 했다며 저녁 외출을 시작한다. 엄마는 나가기 전 토와에게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약을 주었고, 토와가 자고 일어나면 다시 엄마가 돌아와 있는 일상이 시작된다. 두 모녀의 평화롭던 생활은 그 이후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다. 피곤해진 엄마는 전처럼 정성들인 음식을 해주지 않았고, 좀처럼 책을 읽어주지도 않았으며, 감정 기복이 심해져 갔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잠에서 깬 토와 곁에 엄마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오로지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그 뒤로 얼마 동안은 수요일 아빠가 생필품을 전해주고 갔지만, 그것마저도 사라지고 토와는 점차 언제가 낮이고 언제가 밤인지, 봄인지 가을인지도 모른 채로 시간을 흘려 보낸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토와가 사람들에게 구조되고 나서 알게 된 엄마에 대한 진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한 순간도 떨어지는 일 없이 매일매일 사랑의 속삭임을 주고받으며 ‘영원한 사랑’을 확인했던 엄마의 모습이란 전부 다 허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데 홀로 버려져 삶을 견뎌내야 했던 토와는 “살아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구나.” 라고 느낄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 배경에는 엄마가 나무를 심어준 정원과 엄마가 읽어준 책들 속 이야기가 있었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내게 책을 읽어주었던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야기는 나를 구해주었다. 글자 그대로 목숨을 구해주었다. 아무리 현실 세계가 괴로워도 이야기가 나에게 도망칠 장소를 마련해주었다. 만일 내 삶에서 이야기마저 빼앗기고 말았더라면 나는 진작에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나한테 이야기는, 생명의 은인이야."       p.220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가슴 뭉클한 기적을 보여줬던 <츠바키 문구점>,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소한 음식들이 풍요로운 힐링을 전해줬던 <양식당 오가와>, 경건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동화 같은 소박한 이야기 <마리카의 장갑> 등 오가와 이토의 소설들은 섬세하고 따뜻하다. 평범한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내는 보통날의 기적을 보여주었던 작가인데다, 표지도 너무 따스한 느낌이라 이번 작품 역시 전작들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토와와 엄마의 이상한 관계와 이후에 밝혀진 극악무도한 범죄 때문에 사실 좀 당황했다. 어쩐지 내가 알던 오가와 이토의 작품 같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어둡다거나 무거운 느낌이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 토와는 평범하게 엄마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지 못했지만, 정원의 나무들과 말을 하고, 꽃 향기로 위로 받는다. 정원에 있는 나무들이 향기라는 마법의 언어로 토와에게 말을 걸어주었기 때문에, 무서운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정원의 친구들이 잇따라 피고 지며 마치 계절이라는 이어달리기의 바통을 넘겨주듯 향기의 언어로 말을 걸어주어, 비로소 토와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게 된다.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집에서 눈도 보이지 않는 소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기적 같은 일은 바로 '토와의 정원’덕분이었던 것이다. 오가와 이토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햇살 가득한 풍경 속에 서 있는 듯한 건강한 느낌이 페이지마다 묻어 있어서 좋다. 이번 작품은 전작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특유의 따뜻함으로 끝이 난다. 오가와 이토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 역시 놓치지 말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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