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웅진 세계그림책 213
앤서니 브라운 지음,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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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많은 엄마는 아들과 개를 데리고 공원으로 산책을 간다. 개의 이름은 빅토리아, 공원에 가서 목줄을 풀어 줬더니 꾀죄죄한 개가 나타나 쫓아 버리려고 했지만 졸졸 따라다니는 게 못마땅하다. 아들 찰스와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찰스가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수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걱정이 된 엄마는 목이 쉬도록 찰스를 부른다. 저 멀리 어떤 여자애랑 얘기하는 찰스가 보였고, 엄마는 얼른 아들과 개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항상 혼자인 것이 심심하고 외로운 찰스는 엄마와 빅토리아와 함께 공원에 간다. 빅토리아는 상냥한 강아지를 만나 재미나게 놀고, 찰스도 공원에서 만난 여자아이 스머지와 함께 미끄럼을 타고, 구름사다리에 매달리며 재미있게 논다. 하지만 엄마가 노는 걸 발견하고는 바로 집에 가야했다. 찰스는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며 다음에 공원에 왔을 때도 스머지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이야기는 네 명의 화자가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겪은 일들을 들려주고 있다. 첫 번째 목소리에서는 찰스의 엄마, 두 번째 목소리에서는 스머지의 아빠, 세 번째 목소리에서는 아들인 찰스, 네 번째 목소리에서는 딸인 스머지의 1인칭 시점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들은 공원이라는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에 있었지만, 각자 다른 것을 느끼고 생각한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낯선 아이와 어울리는 모습이 못마땅한 엄마가 되었다가, 외로운 아들의 입장도 되어보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지친 아빠가 되었다가, 아빠를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긍정적인 딸이 되어보기도 한다. 덕분에 누구의 입장으로 읽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되는 특별한 재미를 안겨준다.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매우 간결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그림들이 인상적인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신간이다. 그림책을 잘 모르는 누가 보더라도 앤서니 브라운 그림이라고 알아볼 수밖에 없는 그만의 독특한 색깔이 친숙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익숙하고 현실적인 풍경 속에 숨겨진 수상하고, 특별한 점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다. 엉뚱한 상상력과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들의 표정, 섬세하게 연출된 배경들까지 앤서니 브라운의 정수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할스의 작품 <웃는 기사>, 다빈치의 <모나리자>, 뭉크의 <절규>, 마그리트의 그림 등 이야기 곳곳에 숨겨진 익숙한 명화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으니 놓치지 말아야겠다. 네 가지 이야기를 누구의 입장에서 읽느냐에 따라 공감하는 포인트가 달라지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여러 번 반복해서 볼수록 더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앤서니 브라운이 전하는 마법 같은 공감의 순간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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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섬 웅진 모두의 그림책 41
다비드 칼리 지음,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이현경 옮김, 황보연 감수 / 웅진주니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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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름 없는 숲속에 '꿈의 그늘'이라는 곳이 있다. '소원의 늪'과 '잃어버린 시간의 폭포'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신비한 병원이 있다. 숲속 동물들의 악몽을 치료해주는 곳이다. 누구나 가끔은 무서운 꿈을 꾸게 마련이다.

 

동물들은 여러 가지 악몽들을 꾼다. 가시두더지는 거대한 발에 짓밟히는 꿈을 꾸고, 주머니쥐는 꿈속에서 사나운 고함 소리에 고통 받는다. 쿠스쿠스의 악몽에서는 정체 모를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코알라는 휙휙 기괴한 소리에 잠을 못 이룬다. 악몽을 자주 꾸게 되면 왈라비 박사에게 가면 된다. 그는 악몽을 치료해주는 뛰어난 의사이다.

 

 

어느 날, 숲속 외딴 곳에서 새 환자가 찾아온다.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였다. 왈라비 박사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온 늑대가 들려주는 악몽은 조금 이상하다. 텅 비어 있는 공간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둠만 보이는 것이다. 두툼한 책들을 여러 권 뒤져 보았지만, 늑대의 꿈과 비슷한 악몽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침내, 왈라비 박사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당신,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 씨는..... 멸종되었습니다."

 

 

다비드 칼리와 클라우디아 팔마루치가 함께 한 이번 작품은 이미 멸종이 되었거나,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을 대상으로 그려졌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고, 기묘하고, 오싹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여러 감정을 불러오는 독특한 그림책이다.

 

책을 펼치면 첫 페이지부터 여러 동물들을 모습이 나타난다.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 오하우꿀먹이새, 핀타섬코끼리거북, 큰바다쇠오리, 사우디가젤, 마다가스카르코아뻐꾸기, 도도, 파란영양, 사막캥거루쥐 등등... 이제는 사라져 다시 볼 수 없는 동물 128마리의 모습이 책의 시작과 끝, 그리고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이미 멸종된, 또는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이 꾸는 악몽은 기괴하고, 무섭다. 왈라비 박사가 악몽을 사냥하는 방법이라고 보여주는 '악몽 사냥 설명서' 또한 오싹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그것들이 모두 인간이 동물을 잡을 때 사용하는 도구들이었다. 인간들의 욕망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멸종된, 그리고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이 꾸는 꿈이라니.. 섬뜩하고, 슬픈 상상력이다.

 

이제 세상에 없는 동물들의 영혼이 모여 사는 유령의 섬으로 그들을 데려 가는 왈라비 박사. 어둑한 섬들 여기 저기에 자리한 그림자뿐인 동물들의 모습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작품이라 너무 어린 아이들이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어쩐지 책 속 이미지들이 아이들의 꿈 속에 나타날 것만 같으니 말이다. 반대로 어른들에게는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그림책이다. 꿈과 현실의 조각들을 정말 근사하게, 환상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그림책이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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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매탐정 조즈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5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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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마디로 자신의 인생이 뒤집혀버리는 순간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고게쓰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작 한 마디로 나라는 인간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순간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은 단지 그런 불운을 맞닥뜨리지 않았을 뿐, 거기에 특별한 차이는 없을지도 몰라요." 고게쓰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누구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사람을 죽입니다. 그걸 경험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건, 그저 행운일 뿐이겠죠. 우리는 그런 차이만으로 살아 있는 건지도 몰라요."     p.199~200

 

영능력이니, 심령현상이니, 오컬트 같은 것에 관심이 있거나 믿지는 않는다고 해도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바라고 있지 않을까. 설명되지 않은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이 세상에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사후 세계가 있기를 바란다거나, 억울하게 죽은 이의 영혼이 가해자를 찾아내도록 도와 준거나 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스스로를 '경찰도 탐정도 아닌, 그저 보잘것없는 글쟁이'라고 소개하는 고게쓰 시로는 조즈카 히스이라는 젊은 영매와 함께 온갖 사건을 해결해왔다. 영매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다니,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오거나, 영시로 범인을 특정한 다음 그 정보를 토대로 분석해 과학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논리를 이끌어내거나 법적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 진다. 사실 범인을 특정할 수 있다고 한들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체포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영매탐정 조즈카가 사건 현장을 둘러본 뒤 영시를 통해 누가 범인인지 알아 내면, 추리소설가 고게쓰가 논리적인 사고로 물적 증거를 찾아내고, 범행 과정을 추론해낸다. 영능력으로 범인을 밝혀내고, 그것을 단서 삼아 물적 증거를 찾아낸다면 그야말로 범죄자가 당해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어떤 트릭과 꼼수도 현실을 넘어서는 영능력 앞에서는 헛수고가 될테니 말이다.

 

 

 

"우리 일상에 탐정은 없어요. 저건 이상하다, 이걸 생각해야 한다, 그게 수상하다, 앞장서서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은 눈 씻고 봐도 없죠. 우리는 일상 속에서 뭘 생각해야 하는지, 뭘 눈여겨봐야 하는지,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해요. 뭐가 이상한지 모른다? 너무 사소한 문제라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럴 가치가 없다? 정말로?"
빙글빙글 머리카락을 감던 손가락이 멈췄다.... "탐정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더라도, 우리는 명탐정의 시선을 가져야 해요."      p.388~389

 

하얀 프릴로 장식한 블라우스, 가느다란 허릿매를 강조하는 하이웨이스트 스커트, 완만한 웨이브를 그리는 긴 흑발 머리, 앳된 얼굴의 정교한 서양 인형처럼 아름다운 여성이 바로 조즈카 히스이라는 인물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데다 해외에서 오래 살다 와서 친구도 거의 없고, 나이대에 맞는 일반적인 경험도 부족해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소녀의 전형처럼 보인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부터 전형적인 라이트 노벨 작품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는 정말 제대로 된 본격 미스터리 장르에 맞게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어 캐릭터와 서사의 부조화에서 오는 독특함이 오히려 신선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작품이었다.

 

2020 본격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2020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1위!에 빛나며 전례 없는 미스터리 차트 5관왕의 신화를 기록한 작품이다. 아이자와 사코는 주로 라이트 노벨 작품들을 써온 걸로 아는데, 이번에 만난 이 작품은 본격 미스터리 장르이다. 표지에서 보여지듯이 미소녀 영매가 주인공이지만, 결코 표지만 보고 섣불리 이 작품에 대해서 판단하면 안 된다. 죽은 사람을 불러내서 범인을 지목하는 영매탐정과 추리소설가이자 경찰의 자문탐정이 그에 대한 근거를 찾아내서 사건을 해결하는 형식의 연작 단편집은 촘촘하게 짜여진 미스터리를 따라가는 재미도 있지만, 특히나 후반부를 강타하는 반전이 역대급이다. 단순히 독자들을 놀라게 하려는 의도의 깜짝쇼가 아니라, 반전에 이르기까지의 서사가 굉장히 흥미롭고 잘 짜여 있어서 그 충격은 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 게다가 시종일관 본격 미스터리와 라이트 노벨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분위기로 독자들과 밀당을 하고 있는 작품이라, 지루할 틈 없이 두툼한 페이지가 금방 넘어간다. 현지에서는 7월에 속편인 <조즈카 도서집>이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너무 궁금하다. 국내에서도 영매탐정 조즈카의 다음 이야기를 빨리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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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8
조지 손더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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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편지의 독짜는 이런 구절을 들어봣겟죠? 채고의 시간이엇고, 채악의 시간이엇다. (어떤 책에 나온 구절이애요. 언젠가 그 집 엄마가 세끼들에게 이 책을 일거주려고 햇서요. 그런데 이 책은 낫말이 너무 만아 지루햇서요. 그래서 세끼들은 어린 잉간들이 지루할 때 하는 짓을 하기 시작햇죠. 그건, 손가락으로 코를 파며 딩굴딩굴하다 아기 동셍을 꼬집기.)      p.40

 

여우 8은 인간의 말을 할 줄 안다. 물론 쓰기도 글자도 완벽하진 않지만 말이다. 인간에게 관심이 많은 여우 8이 어느 날 낱말을 만드는 인간의 목소리를 엿듣게 된다. 아이에게 사랑을 담아 해주는 이야기가 음악 같다고 느끼면서, 여우 8은 그걸 완전히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매일 밤마다 인간이 말하는 방식을 배우려고 몰래 훔쳐 보았던 것이다. 여우 8의 친구인 여우 7은 인간의 말을 알고 있는 여우 8에게 깜짝 놀랐고, 그들은 우두머리인 여우 28에게 가서 인간의 말을 들려 준다. 우두머리는 여우 8의 새로운 기술을 무리에 도움이 되도록 사용해달라고 부탁한다.

 

 

여우 8은 한 간판에 써진 글을 읽고, 곧 '폭스뷰커먼스'라는 쇼핑몰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곧 트럭들이 몰려와 원시림을 파헤치고, 나무를 뽑고, 옹달샘을 파괴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곳들을 평평하게 만들어 버린다. 집과 먹을 것을 잃어버린 여우 무리들은 점점 쇠약해지고, 늙은 여우들은 목숨을 잃는다. 여우 8은 여우 7과 함께 먹을 것을 구하러 쇼핑몰에 가서, 몇몇 친절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얻는다. 인간과 여우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꿈꾸는 것도 잠시, 밖으로 나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끔찍한 세상이었다. 그래서 여우 8이 인간들에게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인생이 멋찔 수 잇다는 걸 알아요. 대게는 멋찌죠. 난 무더운 날에 차고 깨끗탄 물을 마셧고, 사랑하는 이가 부드럽게 짓는 소리를 들었고, 눈이 천천이 네리며 숲피 고요해지는 걸 봣서요. 하지만 이제 그 모든 행복칸 광경과 소리가 사기처럼 느껴저요. 조은 시간은 그저 연기에 불과하고 그개 걷치고 나면 현실이 나타나는 거죠. 그 현실이란 바로, 바위 갓튼 모자, 거더차고 짓밥는 발. 거더차고 짓밥는 발이 업는 순간은 모두 진짜가 아닌 것만 갓타요. 무슨 말인지 알겟서요?     p.50~51

 

이 책은 <12월 10일>, <바르도의 링컨>이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조지 손더스의 신작이다. 오랜 시간 단편소설만을 써오다 쓴 첫 장편소설로 맨부커상을 수상했었는데, 그 작품이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과 틀을 과감하게 벗어나 소설의 경계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간의 말을 배운 여우가 인간들에게 쓴 편지의 형식을 띠고 있는 우화로 우리를 찾아 왔다. 인간에게 숲을 빼앗기고 같은 무리의 여우들을 모두 잃어버린 여우의 목소리를 빌려 인간의 환경 파괴와 지나친 소비주의에 대한 경고를 전하고 있는 이 작품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겨 준다.

 

 

인간의 언어를 독학한 여우가 쓴 글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자가 엉망이라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수월하진 않다. 하지만 시작부터 '내가 글짜를 틀리개 쓰더라도 이해하새요. 난 여우라서 그래요!'라고 말하는 이 여우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맞춤법이 틀린 문장을 읽는 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구나 새삼 깨달으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읽어 나갔다. 중간 중간 심플한 드로잉으로 등장하는 여우의 모습 또한 재미를 더해 준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은 작품이지만, 어른들이 읽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는 짧은 소설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철자로 쓰니 이 글은 아이들이 읽기에 더 수월할 지도 모르겠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 자체는 환경을 파괴하면서 살고 있는 어른들을 향해 있다. “당신들의 얘기가 행복카게 끈나기를 원한다면, 좀 차캐지려고 노력카새요.” 라고 말하는 여우의 문장이 뭉클했다. 숲을 파괴하고, 동물들을 보호할 줄 모르는 인간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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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1만 년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진 나무의 기쁨과 슬픔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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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나무에게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키가 큰 나무의 어두운 그늘에서 평생 살아온 하층부 나무들이라면 날씨보다는 빛을 가리는 제 이웃을 두고 투덜댈 것이다. 들판에 자라는 나무들에게는 잎을 피워 내는 족족 먹어 치우는 염소나 사슴이 불만의 대상이다. 지중해 숲의 나무는 이 지역의 유난히 우울한 봄보다는 몇 년마다 한 번씩 삶을 괴롭게 만드는 산불 때문에 불평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무들은 사람들 못지않게 날씨 이야기를 좋아한다. 미국 남서부 지방의 나무들은 가뭄이 오면 툴툴대면서 폭이 좁은 나이테로 불만을 표시한다.     p.53

 

이 책은 연륜연대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국내 최초의 과학 교양서이자 한 여성 나이테 과학자의 경이로운 탐구 일지이기도 하다. '연륜연대학'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과거에 있던 기후변화와 자연환경을 밝혀내는 학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인 '연륜'이 여러 해 동안 쌓은 경험이 축적되어 보여지는 모습을 지칭한다고만 아고 있었다면, '연륜'이라는 단어의 또 다른 뜻은 바로 '나무의 줄기나 가지 따위를 가로로 자른 면에 나타나는 둥근 테'를 말하는 것으로 '나이테'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였던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나무 그루터기에서 나이테를 세보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연륜연대학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과학'이라는 점에서 친근하다. 손으로 나무를 쓰다듬고 맨눈으로 나이테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정체 모를 나노 입자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는 은하도 없는 과학이라는 점과 생태학, 기후학, 인류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과 환경의 역사 사이의 상호 작용을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과학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인 발레리 트루에는 연륜기후학자로 나이테를 이용해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고 기후가 생태계와 인간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20년 동안의 과정을 바탕으로 '초라하게 시작된 연륜연대학이 숲과 인간과 기후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연구하는 핵심 도구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우리가 나무를 조사해 목재가 얼마나 자랐고, 또 얼마나 탄소를 저장하며, 목재 생장이 물의 가용성, 기후 변이, 숲의 교란 등에 얼마나 민감한지 알 수 있다면 어떨까? 연륜연대학자들은 이 탄소 퍼즐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쥐고 있다. 우리는 나이테 측정기를 가지고 서로 다른 수종, 수령, 토양, 기후의 나무에서 얼마나 많은 목질부가 자라고 얼마나 많은 탄소가 저장되었는지 조사할 수 있다. 우리는 길어진 생장기가 어떻게 목질부 생장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나이테는 우리에게 기후 변화가 어떻게 과거 사회에 영향을 끼쳤는지 가르쳐 주었다.     p.300

 

어릴 때 읽었던 <아낌 없이 주는 나무>라는 작품을 얼마 전에 아이에게 읽어 주느라 다시 읽었다. 나무는 사랑하는 소년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며 행복해하다, 더 이상 줄 게 없을 만큼 세월이 지난 뒤 자신의 나무 밑동울 내어 주며 쉴 수 있게 해준다는 내용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도 여전히 감동적인, 뭉클해지는 이야기였다. 실제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나무는 인간과 늘 공존해왔고,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제공해왔다. 인류 문화사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무와 숲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이러한 나무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넘어서 과학적인 방식으로 나무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나이테를 세면서 과학, 역사, 지리, 기후, 건축, 문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와 장르를 넘나드는 저자의 이야기는 너무도 매혹적이었다. 나이테와 태양의 흑점과 해적선처럼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존재들의 상관관계도 알 수 있고, 로마 제국과 몽골 제국의 흥망성쇠에 기후가 미친 영향도 살펴볼 수 있었다. 나무는 1년에 하나씩 나이테를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는 무려 5026살이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과거의 날씨와 역사를 기록하는 나이테 덕분에 언제 날이 따뜻했고, 비가 많이 내렸는지, 언제 가뭄이 들고 산불이 났는지 알 수 있다. 나무를 통해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나무에게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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