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이
로미 하우스만 지음, 송경은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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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집에는 전화가 없어요."
"집 주소는? 아니면 집 근처 도로명이라도."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루트 간호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우린 발각되면 안 되거든요."     p.22

 

스물세 살 대학생 레나는 젊고 활력이 넘쳤다. 어릴 때부터의 꿈인 교사가 되고 싶어 했던 그녀는 길을 가다 마주친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았을 정도로 매력이 있는 학생이었다. 날씬한 몸매에 누구나 인정하는 미인이었던 레나는 어느 날 파티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전 남자 친구를 조사해 봤지만 알리바이가 있었고, 실종과는 무관한 장소에 있던 걸로 밝혀졌다. 납치범으로부터 연락이 오지도 않았고, 일대에서 시신이 발견되지도 않은 채, 14년이 흐른다. 레나의 아버지인 마티아스는 4825일이라는 날짜를 세며 매일같이 경찰을 비난했고, 여전히 레나가 사라진 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레나의 실종 사건을 담당한 오랜 친구 게르트 경감에게 전화해 딸을 찾아 달라고 매달렸고, 언론사 기자들과 적어도 50회 이상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14년이 지난 어느 날, 게르트에게 전화가 온다. 체코 국경 근처 숲에서 젊은 여자가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는데, 인상착의가 레나와 비슷하다는 거였다. 마티아스는 즉시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의식을 잃고 침상에 누워 있는 환자는 레나가 아니었다. 하지만 실망하는 것도 잠시, 병원 복도에서 어린 시절 레나와 판박이처럼 닮은 소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레나를 닮은 아이는 누구일까? 아이는 왜 병상에 누워 있는 여성을 엄마라고 부르는 걸까? 그러다 사고를 당한 여성의 정체가 밝혀진다. 교통사고 피해자는 4개월 전에 실종된 야스민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4개월 만에 체코 접경지대에 있는 오두막을 탈출했고, 납치범으로부터 학대와 폭력에 시달려 왔다. 이야기는 13세 소녀 한나와 레나의 아버지, 그리고 레나와 야스민의 1인칭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뒷좌석에서 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룸미러로 레나의 금발 머리가 시작되는 부위와 반짝이는 눈이 보이는 듯했다.
"아빠가 나를 찾아주어야 해요."
나는 목이 메어 겨우 대답했다. "그래, 아빠가 널 찾아낼 거야."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널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p.388

 

숲속 오두막에는 납치범과 열세 살 소녀 한나, 열한 살 남동생 요나단, 그리고 납치되어온 여자가 있다. 아이들은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며 납치범을 '아빠'라고 부른다. 집에는 전화도 없었고, 창문도 열 수 없었으며, 집 안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있었다. 창문을 열면 위험하다고 나무판자로 막아두었기 때문에, 집에는 별도의 공기순환기가 있었다. 게다가 납치범은 납치되어온 여성을 '레나'라고 불렀는데, 사실 그녀는 레나가 아니라 야스민이었다. 대체 자신을 왜 '레나'라고 부르는지, 왜 자신이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이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 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4개월이 흐른 것이다. 그리고 야스민은 납치범의 머리를 가격하고 달아나다 교통사고를 당했고, 납치범이 죽었으니 이 사건은 종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야스민은 살아 돌아왔지만, 14년 전에 사라진 레나는 아직 실종상태였다. 과연 레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며, 납치범의 정체는 누구일까. 사건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긴장감 있게 흘러간다.

 

이 책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독일 작가 로미 하우스만의 데뷔작으로 <쾰른 크라임 어워드 2019> 수상작이다. 작가는 뮌헨의 TV방속 제작 회사에서 편집국장으로 일하며 성폭행 당한 여성들, 소말리아 전쟁 난민들, 학대 받는 아동 등 100여 명을 인터뷰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첫 소설이 나오기까지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간 횟수가 무려 스물다섯 번이었고,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출판을 하고, <슈피겔>지 집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제바스티안 피체크, 안드레아스 빙켈만, 넬레 노이하우스, 안드레아스 그루버 등 탄탄한 이야기로 사랑 받은 작가들의 뒤를 이어 독일 스릴러 장르의 명맥을 이어갈지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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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전설 웅진 모두의 그림책 42
이지은 지음 / 웅진주니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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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 옛날에 성격이 고약한 호랑이가 살았다. 언제나 '맛있는 거 주면 안 잡아먹지!'라며 다른 동물들을 겁을 주어 대부분의 숲속 동물들이 호랑이만 나타나면 슬글슬금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래서 늘 혼자인 호랑이는 심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누군가 자신을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소리가 나는 방향은 바로 호랑이의 꼬리. 노란색 꽃 하나가 꼬리에 달려서는 떨어지지도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꼬리를 요란하게 흔들어도 절대 안 떨어지는 노란 꽃. '내가 너 꼭 떼어 버린다' 엄포를 놓지만, 호랑이와 꽃의 동거는 조용하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다.

 

 

'맛있는 거 주면' 이라고 호랑이가 동물들에게 엄포를 놓을라치면, 꼬리에 달린 노란 꽃이 활짝 웃으며 '고맙겠다!'를 외치는 것이다. 꼬리 꽃 덕분에 동물 친구들은 더 이상 호랑이를 보고 피하지 않게 되었고, 호랑이 꼬리와 붙어 버린 꽃의 처지를 가여워하는 동물 들과 꼬리 꽃의 수다가 끝없이 이어진다.

 

숲 속의 말썽꾸러기이자 외톨이였던 호랑이와 다정하고 오지랖 넓은 꼬리 꽃의 만남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재미있다.

 

 

<팥빙수의 전설>이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이지은 작가의 신작이다. 여름밤에 때아닌 눈이 내리고, 새하얀 호랑이가 등장하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번 작품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단팥죽을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길을 나선 할머니 앞에 나타났던 새하얗고 커다란 눈호랑이, 그리고 ‘맛있는 거 주면 안 잡아먹지!’를 외쳤던 바로 그 호랑이를 또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맛있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눈 호랑이가 왜 새하얗게 되었는지에 대한 유래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숲속 동물들 모두가 성격이 고약하다고 생각했던 호랑이가 사실은 겁 많고, 게으른 츤데레 캐릭터였다는 걸 보여주는 것은 바로 시크한 꼬리 꽃이라는 존재이다. 호랑이를 움직여 동네의 궂은 일들을 말끔하게 해결하고, 다채로운 표정과 경쾌한 몸짓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다.

 

꼬리 꽃이 ‘누렁이’라고 친근하게 지칭하는 호랑이와 하루 아침에 호랑이 꼬리에 붙어 버린 노란 꽃이 아웅다웅 다툼을 하며 점차 숲속 동물들과, 그리고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 가는 스토리 또한 너무도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호랑이와 꼬리 꽃이 어느 날 갑자기 몸이 하얘진 이유가 궁금하다면, 숲속 동물들과 호랑이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이 귀엽고 다정한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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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냥이 수수께끼 탐정단 찍냥이 탐정단 1
류윤환 지음, 파키나미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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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의 눈에 수수께끼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수수께끼를 풀어 보지만, 정답을 맞추지 못한 사람들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친구가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지고, 교실에서 수업을 하던 선생님의 몸이 연기가 되어 없어지기 시작한다.

 

올라갈 때는 걸어가고, 내려갈 때는 엉덩이로 내려가는 것은? 달리면 서고 서면 쓰러지는 것은? 선물로 받자마자 발로 차 버리는 것은? 학생들이 싫어하는 피자는? 공부해서 남 주는 사람은? 물고기의 반대말은? 쌍둥이가 바쁘게 음식을 나르는 것은? 자, 이 중에 몇 가지나 답을 바로 맞출 수 있는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스핑크스가 5천여 년 만에 눈을 뜨고, 스픙크스가 낸 수수께끼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 난리 통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수수께끼 나라의 왕, 13대 전수맨이라 자신을 칭하는 사람이다. 전수맨은 스핑크스를 막고 함께 세상을 구하자며, 찍냥이 탐정단을 찾아와 사건을 의뢰한다.

 

찍냥이 탐정단은 범인과 사건을 기가 막힌 감으로 찍어 맞히는 탐정 깜찍이와 불같은 성격으로 수사하며 냥냥 펀치가 특기인 탐정 불냥이 두 사람이다. 과연 전수맨과 찍냥이 탐정단은 수수께끼를 다 맞히고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탐정 스토리와 수수께끼가 결합된 새로운 형식으로 국내 최다인 350개의 수수께끼를 담고 있다. 한 권으로 쉽고 재미있게 가장 많은 수수께끼를 공부할 수 있는 책이라고 보면 된다. 교과 연계 수수께끼와 수수께끼 만드는 방법도 수록하고 있어 학습만화로서도 훌륭하다. 저자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아이들과 학교에서 수수께끼 놀이를 자주 하셨는데, 재미도 있지만 어휘력까지 좋아져서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수께끼가 워낙 많이 수록되어 있다 보니, 거의 모든 페이지에 수수께끼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문제를 풀어볼 수 있고, 찍냥이 탐정단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면서 자연스레 수수께끼가 외워지는 효과도 있다.

 

 

부록으로는 이름, 특징, 서로 다른 점을 이용해서 수수께끼를 만드는 방법과 그림 수수께끼, 교과서 수수께끼가 보너스로 담겨 있다. 또 초판 한정 구성으로 ‘한 손에 쏙 수수께끼 카드 책’이 함께 들어 있는데, 책에 나오는 재미있는 그림 수수께끼 30개가 수록되어 있다. 휴대하기 좋은 작은 사이즈라 가지고 다니면서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문제를 내고 맞혀볼 수 있다.

 

'찍냥이 탐정단' 시리즈는 앞으로 속담, 고사성어 등 국어, 어휘 영역의 학습 주제로 계속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따라 읽다 보면 수수께끼, 속담, 고사성어 등이 저절로 외워지는 재미있는 학습만화라서 창의력과 상상력, 사고력이 눈 깜짝 할 사이에 키워질 것 같다. 시리즈 두 번째는 '속담' 편으로 <찍냥이 속담 탐정단>도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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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퍼 네트워크
챈들러 베이커 지음, 이동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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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 나란히 앉아서 일했다. 인사, 회계, 감사, IT 부서에 포진한 그들은 우리의 위와 아래에 있었다. 그런 남자들과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회사가 전통적인 남학생 클럽의 영역이라면, 우리는 비밀 여학생 조직을 구성해 이에 대항하는 셈이었다. 우리는 비밀 악수법을 공유했고, 서로를 여성 전우로 여겼다.      p.88

 

여느 때와 다름 없던 평일 오후, 점심시간이 막 지난 즈음 누군가 회사 18층 발코니에서 추락한다. 대체 누가, 왜? 그날, 그 시간에, 회사에서 떨어져 죽어야 했을까? 이야기는 그 일이 있기 삼 주 전에서 시작한다. 그날 아침 스포츠 의류 브랜드 트루비브의 CEO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회사에 소속된 변호사들은 급히 소집되어 대처 방안을 논의한다. 이야기는 슬론과 아디, 그레이스와 혼자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으로 사내에서 9년 동안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는 로살리타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그리고 새로 입사한 젊은 변호사 캐서린과 그들의 상사인 에임스가 있다. 슬론은 상사인 에임스와 과거에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후 십 년 동안 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 아디는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했고, 그레이스는 얼마 전에 아이를 낳고 회사로 복귀한 참이다.

 

유력한 차기 CEO 후보로 떠오른 것은 대표 변호사인 에임스였다. 그는 유능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여자 부하 직원을 대하는 태도로 인한 소문이 무성한 사람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새로 입사한 젊은 여자 직원인 캐서린에게 접근하려는 참이다. 여직원들의 숱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던 그가 이제는 꼭대기에 오르게 생겼는데, 보고만 있어야 할까. 이때 ‘배드맨 리스트’라고 불리는 엑셀 파일이 여직원들 사이에 은밀하게 떠돌기 시작한다. 배드맨: 댈러스 나쁜 놈 경계 리스트. 나쁜 놈들, 조심할 것. 스프레드시트의 리스트에 있는 남자들은 이러저러한 끔찍한 짓을 했다. 여자들은 리스트를 만들고 재차 확인하면서 누가 착한 놈인지 나쁜 놈인지 가려내려고 애썼다. 슬론은 배드맨 리스트에 에임스의 이름을 올려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만성질환을 달고 살듯 우리는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가지만, 장담컨대 우리의 질환이 훨씬 치료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온갖 죄책감을 느꼈다. 워킹망이라서, 아이가 없어서, 사회적 의무를 저버려서, 그럴 여유가 없는 걸 알면서도 초대에 응해서, 이미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일을 거절해서 혹은 거절하지 않아서, 월급 인상을 요구해서 혹은 정당하게 요구하지 못해서... 어느 하나 같은 죄책감이 없었다. 충분한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게 또 죄책감으로 다가오니, 이런 도덕적 딜레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능력이 대견할 지경이었다.      p.365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위스터 네트워크'라는 용어는 보통 자신이 종사하는 산업의 남성 권력자 중 성희롱이나 성추행 혐의가 있는 이들의 명단을 은밀하게 공유하는 것을 일컫는 여성들만의 비공식적인 정보 네트워크를 말한다. 미국에서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던 시기에 실제로 미디어 산업 등에서 공유되던 리스트가 공개되며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인 챈들러 베이커는 변호사로 일하던 당시 로펌에서 일할 때 실제로 위스터 네트워크희 혜택을 누린 적이 있다. 작가는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워킹맘으로서 본인이 겼었던 일과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들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여자들도 그저 일하고 싶었을 뿐이다. 회사의 남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기를 원했다. 매일같이 업무 사이에 크고 작은 일이 백 개는 넘게 생겨났고, 그 종류는 부수적인 것부터 부도덕한 것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일만으로도 바빠 죽겠는데, 웃으라는 말을 들어야 했으며, 자신의 몸에 손대려는 남자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그녀들은 그냥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법률가 사이에 떠돌던 미확인 리스트였고, 그 결과로 한 남성이 18층 건물 아래로 곤두박질쳐 목숨을 잃었다. 그는 페미니스트의 마녀사냥으로 발생한 희생자일까? 혹은 피해자의 탈을 쓴 가해자일까? 이 책은 성추행이라는 소재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직장에서 여성이 견뎌야 하는 것들에 대한 모든 것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각종 진술서와 녹취록 등과 함께 과거에서 현재까지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식으로 진행되는 스릴러이자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 것, 남자와 단둘이 한방에 있지 말 것을 경고해주고, 함께 피해 다니고, 아무도 폭탄을 맞지 않도록 지뢰 표시를 하고, 서로 같이 다녀야 하는 여성들의 눈물 겨운 연대가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벌어지는 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쉿, 그 남자를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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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의 이야기
디노 부차티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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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님." 이제 피에트로는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사실대로 말씀해주지 않으셨어요? 왜 다 거짓말하셨어요?"
"거짓말이라니?" 플라네타는 평상시의 유쾌한 말투를 가까스로 유지하면서 반박했다.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그냥 네가 믿게 뒀을 뿐이야. 네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어. 말하자면 그게 다야."     - '대수송단 습격' 중에서, p.25

 

군인이 된 아들이 무려 2년 만에 집에 돌아왔다. 한없는 기다림 끝에, 희망이 사그라지기 시작했을 즈음에 도착한 아들의 모습에 엄마는 눈물범벅이 된다. 아들의 얼굴은 창백했고, 지치고 고단해 보였다. 망토를 벗고 편하게 들어와 앉으라는 엄마에게 아들이 무의식적인 방어 동작을 취한다. 금방 나가야 해서 안 벗는 게 낫겠다고. 게다가 아들은 누군가와 함께 왔다고, 밖에 그 사람이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한다. 아들은 말르 돌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고, 어딘지 슬퍼 보였다.  이제 집으로 돌아왔고, 앞으로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텐데 엄마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잠시 후, 엄마는 아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파란색 모직 천의 망토의 사연과 아들의 슬픔, 그리고 길에서 기다리던 의문의 인물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가슴속에 수세기가 거듭되어도 절대 메울 수 없는 깊은 구멍이 뚫려 버린다.

 

단 7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이야기가 남기는 여운이 매우 강렬한 작품이었다. 작가가 종군기자였고, 여러 소설과 시, 오페라와 희곡을 썼으며, 화가 및 만화가이자 무대디자이너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덕분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 안에 온갖 희노애락과 서사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특파원으로 여러 나라의 도시들을 방문하기도 했고, 범죄 기사 및 사망사고 기사를 쓰기도 했으며, 미스터리를 주제로 한 초자연적 현상, 환시와 계시, 심령술에 관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여러 방면에서 얻은 구체적인 경험과 수많은 지식들이 다수의 작품들에 고스란히 반영이 되었을 것이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상황을 저널리즘적 글쓰기로 풀어내어 설득력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쓰인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더 묻는 건 부질없다고 조반니는 생각했다. 여태껏 그랬듯이 모두가 다른 답을 줄 것이고, 다른 장소로 안내할 것이며, 신문 기사는 한 줄도 쓸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모두에게 각자의 산사태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산비탈의 흙이 밭으로 무너진 일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거름더미가 무너진 일이요, 또다른 누군가에겐 돌담이 붕괴된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불행한 산사태를 품고 있지만, 조반니가 찾아 헤맨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지면 세 단을 채우고, 어쩌면 그에게 행운을 안겨줄 대규모 산사태를 보려 했다.)     - '산사태' 중에서, p.367

 

이 책은 이탈리아 환상문학의 거장 디노 부차티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60편을 묶은 단편집이다. 디노 부차티는 국내에 최근에 소개된 작가인데, 올해 2월에 출간된 장편 소설 <타타르인의 사막>이 처음이었고, 이번 작품이 두 번째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60개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는데,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등 여러 장르적 특색을 선보이며 단편작가로 유명했던 그의 정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1958년 출간 당시 보기 드물게 장편이 아닌 이 단편집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명망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스트레가상’이 수여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독창적인 상상력과 완성도 높은 문학성으로 부차티 단편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책이다.

 

60편의 이야기들은 각각 아주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여운을 남겨준다. 게다가 전쟁이 야기한 인간세상의 희비극과 질병 및 전염병, 군중의 광기와 집단심리 등 너무도 다양한 소재로 쓰여진 이야기들이라 지루할 틈 없이 읽는 재미도 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60개의 이야기들을 통해 불가해한 수수께끼와 모험이 가득한 부차티 단편의 정수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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