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의크스 포토샵 & 일러스트레이터 CC - 마담의크스와 함께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마스터하는 112가지 방법
마담의크스 카페.네모기획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의 기본과 핵심 내용을 한 권에 모두 담고 있는 그래픽 입문서이다. DAUM 카페 검색 ‘포토샵, 웹 디자인’ 분야 1위, 그리고 회원 수가 무려 70만 명이 넘는 대형 카페인 '마담의크스 카페'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강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곳이다.

 

 

기존에 <마담의크스 포토샵 CC>와 <마담의크스 일러스트레이터 CC>라는 책이 별도로 출간되었었다. 각각의 책은 포토샵 82가지 방법, 일러스트레이터 43가지 방법을 담고 있었는데, 이번에 출간된 버전은 각각의 도서 내용 중 기본에 충실한 내용만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모두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는 매년 새로운 버전과 기능으로 출시되고 있다. 그리고 시각 디자인, 산업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며, 디자이너를 꿈꾼다면 필수적으로 다룰 줄 알아야 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 책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초보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처음 배우는 사람도 혼자 쉽게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만들자'라고 중점을 두고 쓰인 책이라 되도록 어려운 용어를 피하고, 따라 하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의 최신 버전인 CC 2021을 기준으로 쓰였다. 포토샵은 기초반, 도구만, 기능반, 이미지 보정반, 특수 효과반, 종합반의 총 6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일러스트레이터는 기초반, 도구반, 기능반, 종합반의 총 4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기초부터 응용력을 키울 수 있는 종합반까지 적절한 예제를 활용해 따라해 볼 수 있도록 소개가 되어 있다.

 

학습에 필요한 예제 파일은 영진닷컴 홈페이지를 통해 다운로드해서 이용할 수 있다.

 

 

 

굉장히 실무에 응용하기 좋은 도서라고 생각한다. 마담의크스와 함께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마스터하는 112가지 방법을 따라 하다 보면, 자연스레 가장 최신 버전으로 주요한 기능들을 완벽하게 학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각 강좌별로 난이도가 표기되어 있고, 실전 예제들을 이용해 다양한 기능들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도록 학습을 진행하고 있어 효율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부가적으로 알아두면 유용한 내용을 알려주고, 본문의 따라 하기 과정에서 참고해야 할 사항들도 알려 주고 있어 꼼꼼하고도 완벽한 가이드가 되어 준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강좌를 찾고 있다면, 이 책 한 권으로 끝내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지와 증거
비그디스 요르트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범한 인간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평범한 인간으로, 망가지지 않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 내게는 나 자신의 인생 외에 다른 경험은 없다. 밤에 뒤숭숭한 꿈에서 깨면, 나는 라스에게 달라붙어 오른팔로 그의 등을 감고 틀림없이 평화로울 그의 꿈에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라스의 무해한 꿈이 내게 흘러들어오도록 그에게 마음을 열려고 노력했다. 잠든 그의 몸에서 꿈을 빨아들이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들어갈 길은 없었다. 나는 내 몸의 포로였다.       p.70

 

아빠가 다섯 달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몇 주 동안, 형제자매들은 가족의 재산인 발러의 휴가용 오두막을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를 놓고 격한 분쟁에 휩싸인 상태였다. 유산 상속을 두고 살인도 일어나는 세상이니, 이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여동생 둘과 오빠가 대립 중이었고, 엄마는 약물을 과용해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회복 중이다.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의 표본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식들은 그리 크게 놀라지 않는다. 엄마가 사고를 내는 것은 첫 시도가 아니었고, 나는 20여 년 전부터 가족과 연을 끊고 살아 왔었기 때문이다.

 

잡지 편집자이자 연극 비평가인 베르기요트는 집안의 맏딸로 이제 5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과거의 악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아빠로부터 결코 겪어서는 안 될 일을 당했다. 다섯 살부터 일곱 살 사이, 반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던 것이다. 당시 그녀는 엄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엄마는 그녀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라고, 그 사실을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여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렇게 가족의 명예를 위협한 추방자로 살아 왔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해서 죽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고 견뎌 냈다.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고, 이제 엄마와 아빠에 대한 공포는 잦아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르기요트는 큰딸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이 아버지가 혹시 밤에 아이 침실에 드나들지 않나 의심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악몽이 트라우마가 되어 여전히 그녀 곁에 있었던 것이다.

 

 

 

 

고통은 인간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보통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누가 더 많이 고통받았나 논하는 것은 유치한 짓이다. 학대당한 아이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남는 경우가 많고, 그들의 감정적 내면은 파괴된다. 학대자의 사고방식과 학대 방식을 물려받는 일도 흔하다. 그것이야말로 학대의 가장 고약한 유산이다. 학대는 학대당한 사람을 파괴하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을 어렵게 한다. 고통을 누군가에게, 특히 피해자에게 유용한 뭔가로 변화시키려면 강한 노력이 필요하다.     p.268

 

데뷔 초기부터 여성의 역할과 직업, 섹슈얼리티, 평등과 자유 앞에 선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현대 여성을 묘사해 온 북유럽 여성문학의 선두주자이자 노르웨이의 인기 작가 비그디스 요르트의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소설이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중산층 가족의 유산 상속 싸움이 주요 플롯이지만, 그 이면에 배경으로 깔려 있는 것은 모두를 수치로 가득 채웠던, 그래서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던 가족의 비밀이다. 아빠는 젊은 시절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했고, 평생 그 행위가 드러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일곱 살이 되어 딸이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 뒤로는 손도 대지 않았고, 오히려 거리를 두고, 관계를 끊었다. 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지냈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일은 잊히겠지. 하지만 어떤 일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그대로 박제된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런 아버지의 잘못을 모른 척 했던 가족들이다. 베르기요트의 상처는 가족들로부터 무시 당했고, 그들은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지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리고 지금 유산 상속 문제로 인해 마주하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위선과 가식으로 점철되어 있다. 용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망각에 바다에 던져 버릴 수도 없다. 유년의 트라우마와 상처 속에서 투쟁하는 한 여성의 고군분투가 묵직한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피타프 도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7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쿄의 묘비명으로 어떨까?
'그때가 좋았다,'
도시는 언제나 과거가 더 나았다. 헤이세이 시대에는 쇼와가, 쇼와에는 고도성장기가, 다이쇼의 데카당스가, 메이지의 청운의 뜻이, 가장 독창성이 풍부했고 세련된 문화가 정점을 이루었던 에도 시대가.
하지만 필자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실제의 묘비명이 아니라 <에피타프 도쿄> 쪽이다. 단서가, 힌트가 어디 없을까.      p.35

 

작가인 K는 <에피타프 도쿄>라는 제목의 희곡을 집필 중이다. 도쿄를 테마로 한 장편 희곡을 구상하며 도쿄에 어울리는 묘비명이 뭐가 있을지 고민한다. K는 자신에게 도시의 비밀을 가르쳐 주겠다는 요시야를 만난다. 요시야는 자신이 사실은 흡혈귀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흡혈귀는 진짜 흡혈귀가 아니라고 말이다. 진짜 흡혈귀는 피를 섭취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게 아니라 의식이 타자의 육체로 옮겨가 이어지는 거라고, 자신은 그렇게 긴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도쿄의 오랜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K는 그런 요시야와 함께 '도쿄의 묘비명'을 찾기 위해 도쿄의 구석구석을 배회하기 시작한다.

 

도쿄 타워, 롯폰기, 진보초 헌책방 거리 도쿄의 풍경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느끼고, 미래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K와 요시야가 도쿄를 배회하며 대화를 나누는 일상은 흰색 페이지로 <피스piece〉 에피소드로 진행되고, 여성 살인청부업자가 등장하는 K의 희곡 <에피타프 도쿄>는 보라색 페이지로 희곡의 막 구성대로 보여진다. 그리고 자칭 흡혈귀인 요시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인 〈드로잉drawing〉은 짙은 블루 컬러 페이지이고, 연극 상연을 위한 메모는 핑크색 페이지로 되어 있다. 장르와 시점이 혼재되어 있는 이야기답게, 각각의 형식에 따라 책의 면지 컬러를 다르게 해서 더욱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그림책이나 동화에서 끝을 맺는 문장으로 ‘언제까지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게 있잖습니까? 그게 영 찝찝한 겁니다.”
“왜요?”
“모순되잖아요. ‘언제까지고’는 ‘영원히’란 뜻인데 ‘살았습니다’는 과거형. 영원이 끝났죠. 모순 아닌가요?”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는 더 이상하지 않아요? ‘언제까지고’가 ‘영원히’라면 ‘살고 있습니다’는 현재진행형. 미래는 아직 알 수 없으니까 ‘영원히’는 유보되는 셈이에요. 이것도 모순이죠.”    p.307

 

온다 리쿠의 국내 출연작들은 거의 다 읽었는데, 내 기억에 '희곡'을 제대로 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온다 리쿠의 소설에는 연극적인 요소가 다분히 많은 편이다. 십여 년 전에 읽었던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이라는 작품에서 '연극'과 '각본', '현실'과 '허구' 그리고, '극중극'이라는 몇 겹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보여주었던 적이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 오랜 만에 온다 리쿠의 희곡을 만나게 되어 매우 흥미로웠다. 극중 K의 희곡 <에피타프 도쿄>는 1막 1장과 2막 1장만 수록되어 있어 전체 내용이 궁금해지기도 했고 말이다.  실제로 현지에서도 이 작품이 발표된 후 작가에게 희곡의 뒷이야기를 공개해달라는 기대평이 쏟아졌다고 하니 언젠가는 온다 리쿠의 온전한 희곡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빠른 속도로 과거가 되어간다. 우리는 과거의 꿈속을 헤치며, 압도적인 크기로 밀려드는 미래를 향해, 현재를 걸어가고 있다. 도쿄라는 도시는 언제나 과거와 미래가 격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자취를 남기려고 버티는 과거에 반해, 미래는 늘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과거의 흔적을 지워버리려고 한다. 이 작품은 '도쿄'라는 도시를 주인공으로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 준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이미지, 봤다고 생각하는 과거, 하지만 사실은 어디에도 없고,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것들에 대해서.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과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 없는 미스터리가 온다 리쿠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강점이었다면, 이 작품은 그 모든 것들을 가뿐히 넘어서 새로운 온다 월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온다 리쿠의 작품들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의 욕망을 일으키는 것은 굉장히 즐겁다. 상대가 남자건, 여자건. 버터가 녹듯이 상대의 눈이 빛나며 드러나는 달콤한 굶주림이 눈에 보인다. 자신의 힘을 동원하여 누군가를 열광하게 하는 것은 나쁜 일, 비열한 일, 더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 그런 식으로 느꼈더라... 줄곧 눌러두었던 순수한 감정이 피부로 배어나는 걸 느꼈다. 이거, 멈출 수 있을까, 불안해진다.     p.82~83

 

주간지 기자인 리카는 최근 몇 년 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한 수도권 연쇄 의문사 사건의 피고인 가지이 미나코를 취재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가지이 미나코는 결혼 사이트를 통해 만난 남자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세 사람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30대 여성으로 주거불명에 무직이었던 그녀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꽃뱀'의 이미지가 아니라는 점에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체포 직전까지 글을 올린, 맛있는 음식과 사치품 사진으로 넘치는 블로그와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데다 뚱뚱한 여성이라는 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다. 리카는 세간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꽃뱀 수법’이 아니라, 그 사건에 떠도는 여성혐오를 다루고 싶었다.

 

이 사건은 실제로 2009년 일어나 일본을 경악시켰던 꽃뱀 살인사건에서 시작되었다. 결혼을 미끼로 만난 남자들에게 10억 원이 넘는 돈을 갈취하고 교묘히 살해한 범인은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의 여성이었다. 유즈키 아사코는 살인범이 유명 요리교실에 다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사건의 배경에 요리 잘 하는 가정적인 여자에 대한 환상과 가족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자리잡고 있다고 본 것이다. 작가는 그녀가 정말 남자들을 죽인 게 맞는지에 대한 미스터리와 함께 피해남성들이 모두 '여성의 돌봄'을 필요로 했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자들은 여자가 정성껏 차린 다정한 집밥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혼자서는 처량하고 볼품없는 가공식품이나 먹었던, 가부장제에서 틀어박힌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순수하게 남자를 기쁘게 해주는 게 즐거웠던 여자와 그녀의 요리를 숭배하고 보살핌을 받았던 남자들의 이야기는 왜 비극이 되어 버렸을까.

 

 

 

단 한번의 요리가 사람의 마음을 구한다? 그런 건 환상이다. 만약에 가능하다 해도 비할 데 없이 훌륭할 경우에나 그럴 터다. 여자들이 그 환상에 얼마만큼 괴로워하고, 속박되고 있는지. 자신의 서툰 요리가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니, 자기만족과 자아도취가 심하다. 리카가 아무리 정성을 다했어도 아버지의 고독은 해소되지 않았을 터다. 그날 벼락치기로 착한 딸인 척했어도 사태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아버지의 죽음을 비극으로 단정해도 되는 걸까.      p.405

 

리카는 가지이 마나코에게 여러 번 편지를 보내고 도쿄구치소에도 방문하다가 마침내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가지이의 독점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그녀가 제안하는 음식들을 먹어보거나, 요리를 해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에쉬레 버터를 사용한 버터간장밥을 시작으로 명란젓 파스타, 한정판으로 주문 제작되는 고급 크리스마스 케이크 등을 요리를 하고, 직접 가서 먹어 보기 시작한다. 그러느라 체중이 5킬로그램이나 찌게 되지만, 그 동안 몰랐던 '버터'가 들어간 요리의 풍미와 맛, 그리고 직접 만드는 요리의 가치를 점점 깨닫게 된다.

 

갇혀 있어서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는 자의 명령에 따라 대신 움직이며 음식을 먹어주는 관계라니 다소 이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관계는 그러면서 묘한 동료애가 생기기 시작한다. 기자인 리카가 살인 용의자인 가지이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고, 급기야 그녀가 무죄가 아닐까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과연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지, 리카와 가지이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두툼한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몰입해서 읽었던 작품이다.

 

 

그 동안 유즈키 아사코의 작품은 꽤 많이 읽어본 편이다. <서점의 다이아나>,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나일 퍼치의 여자들>, <책이나 읽을걸> 등등의 작품으로 만나왔던 작가인데, 이번 신작 <버터>를 읽으면서 굉장히 감탄했다. 여자들의 삶에 관해 아기자기하고 따스한 이야기들을 주로 그려내는 작가라고만 생각하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탄탄하고 묵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필력은 여전했고,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이지만 그 이면에 있는 것들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들여다보는 깊이까지 더해졌으니 말이다.

'소설계의 셰프'라 불리는 작가 유즈키 아사코 답게 그 동안의 작품에서도 음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등장해왔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각종 음식에 대한 묘사가 페이지 곳곳에서 넘쳐 흐른다. 체중 관리를 위해, 살이 찔까봐 두려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등등의 이유로 먹고 싶지 않은 것만 먹고 있는 여자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게다가 자신이 먹고 싶은 요리를 시간을 들여 만드는 여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 가족들을 위해, 혹은 누간가를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하게 되니 말이다. 이 소설은 그런 여자들을 위한 대리 만족과 판타지를 실현시켜 준다. 극중 가즈이는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먹었고, 자신이 먹고 싶은 것만 먹었다. '이 팔도 가슴도 엉덩이도 모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차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라니 놀라웠다. 가즈이의 욕망의 대상은 과거 연인이나 동경하는 연예인이 아니라, 자신의 몸이었던 것이다.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고 세뇌하는 사회 속에서, 뚱뚱한 몸으로 살아가겠다는 가즈이의 당당한 선택은 압도적인 아우라를 발산한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끝없이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황금색 달콤함으로 가득한 이 소설을 읽고 고칼로리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면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다. 유즈키 아사코의 이 황홀한 이야기가 당신의 죄책감을 가져가 줄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 앞에서 웅진 당신의 그림책 1
안경미 지음 / 웅진주니어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 자매가 문 앞에 섰다. 문을 열자, 신기하게도 또 다른 문이 나왔다. 여러 번 문을 열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문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고, 열어도 열어도 계속 문이 나올 뿐이었다. 입구만 있을 뿐 출구가 없다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세 자매는 두려워진다. 같은 상황에서도 세 자매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셋은 성격도, 사고방식도 전혀 달랐던 것이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보고 느끼는 것도 각각 다르고, 주어진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 또한 모두 다르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도 역시나 마찬가지이다. 하루 스물 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이용하는 지에 따라 각자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은 '당신을 위한 그림책'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작가의 개성이 돋보이는 스토리텔링과 그림을 바탕으로 하는 작가주의가 돋보이는 작품을 출간하는 시리즈라서 어른들이 읽기에 더 좋은 그림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연필과 콩테만을 사용해 그려낸 작품이라 흑백의 독특한 질감이 돋보이는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지만, 우리 인생의 많은 것들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어 우화로서도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내 앞에 존재하는 문을 없애거나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는 망부석처럼 지켜보기만 할 테고, 누군가는 해결책을 찾아 떠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문제에 맞설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하루하루의 문을 열고 있을까. 이 작품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책 속의 문을 열고 닫으며, 한번쯤 생각해 보자. 우리는 각자의 앞에 주어진 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