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중고상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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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는 것은 분명 잊고 싶지 않다는 뜻이리라. 소중히 하겠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언젠가 추억에서 꺼내서 자신의 힘으로 삼기 위해, 마음속 어딘가에 간직해 두겠다는 뜻이리라. 나는 사치코도 이 순간을 아쉬워하기를 딱히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이 공방에서 보낸 2년을 아쉬워했으면 좋겠다. 지금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언젠가, 어디선가, 아쉬워했으면 좋겠다. 추억에서 끄집어내 자신의 힘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나는 사치코라면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 믿었다.         p.145

 

사이타마시의 변두리에 있는 가사사기 중고상점, 개업한 지 2년, 가게의 매출 상태도 2년째 적자를 기록 중이다. 히구라시와 가사사기는 상점의 2층 사무실 위에 있는 다락방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다. 미대 출신에 낡은 물건도 금세 수리하고 새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동업 제안을 받아 부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히구라시는 장사 수완이 없어 매번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쓰곤 한다. 점장인 가사사기는 사실 가게 운영에는 별 관심이 없고, 스스로 천재라고 믿으며 벼락치기 탐정 노릇을 하는데 푹 빠져 있다. 뭔가 미심쩍은 사건만 일어나면, 엉뚱한 추리를 늘어 놓으며 사건의 진상을 알아냈다고 나선다.

 

어쩌다보니 중고상점을 드나들며 가사사기와 히구라시와 함께 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 중학생 미나미는 자신을 구해준 것이 가사사기라고 믿고 있다. 사실 그 사건 또한 히구라시가 뒤에서 손을 쓰지 않았다면 전혀 수습되지 않았을 거였지만, 미나미는 알지 못한다. 미나미의 복잡한 가정사를 알기에 히구라시는 나미가 가사사기를 천재라고 믿고 따르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본다. 그 덕에 나미가 괴로운 하루하루를 밝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미를 낙담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히구라시는 가사사기의 엉터리 추리를 뒤에서 '진상'으로 꾸며내고 연출하느라 바쁘다. 이렇게 어설프고 어딘가 어수룩한 이들이 경영하는 중고상점에 각자의 사정으로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온다.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낯선 손님들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오지랖을 부리는데 더 관심이 많은 점장과 부점장 덕분에 중고상점에는 바랄 잘 날이 없다.

 

 

 

"그런.......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확실히 이번 사건은 어처구니없어. 하지만 말이야, 히구라시. 생각해봐, 이 세상은 어처구니없는 착각으로 가득하다고. 다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고 있을 뿐이지."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호 씨. 이 반지는 돌려드리겠습니다. 보아하니 상당히 비싼 물건인 것 같으니 앞으로는 엄중히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p.227


미치오 슈스케의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이 11년만에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고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달과 게> 등의 어두운 미스터리 작품으로 만나 온 미치오 슈스케와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다. 그가 2011년 나오키상 수상 직후에 출간되었던 작품으로, 가볍지만 따뜻하고, 유쾌한 에너지가 가득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안겨주었던 힐링되는 작품이기도 한데, 사실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보다 1년 먼저 출간되었었다. 이후에 출간된 나미야 잡화점이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것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해 아쉬웠던 작품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만나게 되면 좋을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사랑받았던 소설들을 보자면 <달러구트 꿈 백화점>, <불편한 편의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등 소소하지만 위로가 되는 이야기,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양한 이들의 삶을 어루만져 주는 스토리가 많았다. 이번에 나온 <수상한 중고상점> 역시 이런 소설들의 감동을 잇는 작품이고 말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힘겨운 일상을 보내면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어 버릴 수 있는 위로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만큼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기적의 순간이 우리에게 절실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이 각박한 세상에서 누군가는 내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줄 거라는, 보잘 것 없는 나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이 든다면 그 다정한 낙관과 따뜻한 위로가 현실에서도 빛을 발하게 될 테니 말이다. 힐링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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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마법 열차 웅진 세계그림책 221
미첼 토이 지음,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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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늦게 자는 날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 주로 휴일을 앞둔 날이나, 주말, 방학 등이 그런데 밤 늦게까지 안 자고 깨어 있으면 뭘 해도 즐거운 것 같다. 어떤 날은 너무 졸려서 하품을 하면서도 늦게 자겠다고 우기더니, 결국은 다음 날 굉장히 늦게 일어나기도 했다. 왜 아이들은 이렇게 밤을 좋아하는 걸까.

 

어두운 밤이라는 시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기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낮과는 또 다른 뭔가 비밀스러운 일이 생겨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깊고 캄캄한 밤이 줄 수 있는 마법 말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어린 소년도 일찍 잠들고 싶지 않다. 오늘은 안 자고 늦게까지 놀아도 되냐고 할아버지에게 묻지만, 어린이는 밤에 잠을 자야 한다며 어서 자라는 대답만 들려 온다.

 

방으로 돌아온 소년은 오늘은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든 늦게까지 안 잘 거라고 다짐하고는, 침대에 엎드려 뱀을 무찌르는 게임을 하며 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자정이 되었고, 무심코 눈을 비비다가 창문 너머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하늘에서 열차가 날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창문을 넘어 지붕으로 기어 올라가 하늘을 나는 마법 열차에 올라탄다. 열차 안에는 깊은 밤에도 깨어 있는 승객들로 가득했다.

 

"깊은 밤 마법 열차에 탑승한 걸 환영합니다. 이 열차는 달나라행입니다."

 

그렇게 소년은 열차를 타고 깊은 밤 도시의 거리를 날아 다닌다. 아이들이 잘 때 세는 양 떼와 양치기도 만나고, 여우와 부엉이들이 잔치를 벌이는 것을 구경하고, 커다란 파도 아래 수중 동굴에도 가본다. 소년은 우주 비행사, 개코원숭이, 요정들과 실컷 놀고는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에게 마법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꿈을 꾸었나 보다 생각하며 믿지 않는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꿈, 동화 속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꿈, 짜릿한 모험을 즐기다 안전한 집으로 되돌아오는 꿈 등등 말이다.

 

늦게 자는 걸 좋아하는, 잘 시간이 지나서도 깨어 있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마법 같은 모험의 경험을 하게 해줄 만한 책이다. 작가가 나고 자란 호주 멜버른의 실제 명소들이 책 속 배경으로 등장하여 보는 재미를 더해주고, '깊은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주는 신비스러움이 더해져 설레이는 모험을 떠날 수 있게 해준다. 아이가 늦게 자려고 칭얼대는 순간, 이 책과 함께 깊은 밤에만 펼쳐지는 환상적인 모험을 떠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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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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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충분해. 이건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일이야. 나쁜 소설들에 나오는 보잘것없고 헤픈 여자를 향한 터무니없는 열정 말이야! 게다가 그 여자는 보잘것없고 헤픈 여자도 아니야. 그리고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그저 질투할 뿐이지. 그나마 이 마음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거야. 이건 너무 과도한 일이야. 그게 아니라면 지나치게 하찮은 일이거나.'
그는 잠시 이곳을 떠나 있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조롱하는 심정으로 생각했다.           p.57

 

출판사에 다니는 오십대의 알랭과 파니 부부는 매주 월요일마다 월요 살롱이라는 모임을 연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홉 남녀는 모두 이 모임을 중심으로 친분을 쌓게 된 이들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이십대 여성 조제는 소설가 지망생인 베르나르와 한때 연인 관계였다. 지금은 연하의 의대생 자크와 사귀는 중이지만, 베르나르는 아직도 조제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금발의 착한 아내 니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내에게 애정이 없는 베르나르는 모임에 올 때도 항상 아내 없이 혼자 오곤 한다.

 

알랭 역시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아내 파니에게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젊고 아름다운 무명의 배우 베아트리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베아트리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않으며, 오로지 성공을 위해서만 남자들을 만날 뿐이다. 한편, 알랭의 친척인 젊은 청년 에두아르가 파리에 오게 되고, 베아트리스에게 한 눈에 반한다. 순수한 그의 마음은 즉각적인 열정을 불러일으켰지만, 그의 사랑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다. 힘 있는 연극 연출가 앙드레 졸리오가 베아트리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복잡한 애정선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나도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p.186

 

이 작품은 사강의 세 번째 소설로 스물 두 살의 나이로 발표한 작품이다. 데뷔작과 두 번째 작품에 비해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여주인공이 이 작품을 좋아해 주인공 이름인 '조제'로 불리고 싶어 하는 걸로 나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었다. '조제'는 사강이 사 년 뒤에 발표한 희곡 <신기한 구름>에도 다시 등장한다. 설렘과 절망, 희망과 슬픔, 행복과 고뇌가 함께 공존하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강 특유의 자유로운 감성이 페이지 곳곳에 묻어 있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연령대도, 성격도, 상황도 모두 다른 아홉 남녀가 보여주는 각자의 감정들은 사랑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랑이라는 너무도 포괄적이고 주관적인 단어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설레임과 애틋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통과 눈물일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연민일 수도 있고, 동경일 수도, 그저 욕망의 발현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등장했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에 대한 대답이 되어주기도 한다. 사랑은 변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지금 이 순간은 상대가 없으면 못 견딜 것 같더라도, 언젠가는 그 지독한 사랑의 감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지금은 불타오르지만, 한 달 후에 혹은 일 년 후에 그 감정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사강이 들려주는 사랑에의 열정과 덧없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유한함에 대한 매혹적인 이야기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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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이 - 취향의 테두리를 넓히는 둘만의 독서 모임
구달.이지수 지음 / 제철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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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구달과 번역가 이지수의 독서 교환 에세이이다. 너무 다른 독서 취향을 지닌 두 사람이 지난 1년 동안 상대가 추천한 책을 읽으며 둘만의 독서 모임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도 부러웠다. 내가 꿈꾸던 독서 모임의 현실판같았다고나 할까. 나도 당장 시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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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을 건너온 너에게 - 여백을 담는 일상의 빛깔
방수진 지음 / 이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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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얽힌 사건을 그림에 담는다. 처음에는 뒤엉킨 마음처럼 연필 선도 뒤죽박죽이다. 그려진 그림을 좀더 단순한 선으로 정리한다. 단순해진 밑그림에 내 마음이 담긴 사물을 넣는다. 마음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색과 기법을 찾고,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그림의 명암으로 표현한다. 그린 후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글로 다시 담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내가 보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과 만난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p.77

 

수채화는 물감을 물에 풀어 종이에 그린 그림을 말한다. 수채화는 특유의 물맛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투명함과 자연스러운 번짐이 주는 매력 때문에 기름에 개어 그리는 유화와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을 준다.

 

그리고 투명하게 번지는 기법과 극사실적인 표현, 재질감에 따라 재질미를 회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의 표지 역시 금방이라도 만지면 푸른 빛이 손에 물들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림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입시 준비는 연필과 아크릴 물감으로 했고, 수채화는 중학교 때까지 그린 것이 다였다고 한다. 유화, 아크릴, 과슈, 색연필, 오일파스텔 등 여러 재료를 거쳐 오면서 맑고 투명한 수채화가 자신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에게 수채화의 묘사와 여백이 생각을 쌓고 비우는 과정과도 같았던 것이다. 수채화에서는 무엇보다 원하는 농도를 찾기까지 상당한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책은 그 농도를 사계절로 나누어서 이야기한다. 특히나 계절에 예민한 사람이 수채화를 그리면서 느끼는 삶의 농도는 어떤 걸까.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내가 우아한 작업실에 앉아 매일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릴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적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밤늦게 일어나 작업하고 영감이 떠오르면 붓을 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아니다. 아이 셋의 엄마이기에 시간을 쪼개 사용하지 않으면 그릴 수 없다. 그리고 싶을 때 붓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성실하게 작업하고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빠가 내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삶의 태도, '성실함' 때문이다.        p.184

 

방수진 작가의 그림은 SNS를 통해서 종종 만나왔기에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사실 완성된 수채화의 그림 풍경들 뒤의 모습은 알지 못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시간을 쪼개어 겨우 그림을 그렸고, 그렇게 15년 경력 단절 아줌마에서 지금은 외주 작업으로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하고, 강의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쫓기듯 바쁜 생활 속에 만들어낸 작품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그림들이었는데, 그 속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었구나 싶었다. 보여지는 것 이면의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근사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림과 인생 모두 명도가 중요하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명도는 색의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로, 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를 뜻한다. 명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그림의 대비가 강해지고, 이미지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불운과 행운의 격차가 클수록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그림 안의 다양한 명도처럼, 인생 안에도 희로애락이라는 명암이 존재하게 마련이고, 그 좋은 날들과 힘든 날들이 모두 나라는 한 존재를 만들어 간다.

 

이 책에는 수채화를 그리는 과정과 그림에 대한 여러 이야기부터,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삶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름다운 수채화 그림들만 보아도 눈이 호강할 수 있는 책이지만, 그 그림들 뒤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매일 주어진 것에 집중하는 성실함과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한결같음이 빚어내는 일상의 빛깔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작가의 말대로 삶은 수채화와 닮은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어디에 집중하고 여백을 두느냐에 따라 내 삶의 농도도 달라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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