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강아지 봉봉 3 - 거리의 비밀 요원 낭만 강아지 봉봉 3
홍민정 지음, 김무연 그림 / 다산어린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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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강아지 봉봉> 시리즈 그 세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근사한 번개 무늬를 타고난 엉뚱 발랄 사랑스러운 마당 개 봉봉과 고양이 친구 너트와 볼트의 모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시리즈는 아이가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중의 하나이다. 매번 다음 책에 대한 예고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늘 조바심 내며 기다리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1권에서는 고물상 마당에 살고 있는 강아지 봉봉을 잡아 가려는 수상한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게 되는 이야기를 보여줬었다. 봉봉의 밥을 매번 뺏어 먹고 도망가던 고양이 볼트와 너트가 목줄에 묶인 채로 밖에 나가본 적 없는 어린 강아지 봉봉을 우연히 도와주게 되면서 무사히 탈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렇게 봉봉과 볼트, 너트는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떼게 되었다.

 

 

2권에서는 고물상을 탈출해 세상 밖으로 나온 봉봉과 친구들의 모험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봉봉과 똑같이 생긴 강아지를 찾는다는 포스터를 발견한 볼트와 너트 덕분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봉봉은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어쩌다 고물상에 가게 되었는지 늘 궁금했던 터라, 혹시 잊고 있었던 자신의 주인이 나타난건 아닌지 기대한다. 볼트의 장난 덕분에 미용실 열처리 기구가 기억을 찾아준다고 믿고 봉봉이 의자 위로 폴짝 올라 갔던 장면은 귀엽기도 했지만,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정말 봉봉의 진짜 주인이 나타나진 않을까 함께 기대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물론 결말은 예상 밖의 상황으로 펼쳐지지만, 내가 내 주인이라고 말하는 삼총사의 뒷모습은 뭉클하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자, 이번에 만난 3권에서는 마치 007처럼 선글라스와 무전기에 양복 차림을 한 봉봉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어 더욱 기대가 되었다. 시작부터 봉봉은 자신이 싸움을 싫어하는 '평화주의 개'라고 선언한다. 길고양이 볼트와 너트, 시궁쥐 톱니, 수다쟁이 비둘기 먹구까지.. 모두와 함께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말이다. 그말은 즉, 그들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가 나타난다는 암시이기도 할 것이다. 과연 봉봉과 삼총사를 위협하는 존재는 누구일까.

 

어떤 못된 고양이가 비둘기 한 마리를 공격했다는 으스스한 소문이 무성하고, 그 존재는 바로 너트의 한쪽 눈을 다치게 만들었던 고양이 덩치였다. 볼트와 너트가 절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던 덩치가 나타날까봐 걱정하는 사이, 봉봉은 산책로를 벗어나 걷다가 길을 잃어 버린다. 그리고 눈이 부실 만큼 하얀 털을 가진 고양이를 만나게 되는데, 방랑 고양이 랑랑이었다.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랑랑의 말에 봉봉은 호기심을 느끼게 되는데, 결국 비밀 요원 테스트를 받게 되면서 새로운 모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 시리즈를 통해 홍민정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더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낭만 강아지 봉봉>의 봉봉이다.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깜냥은 거침없는 능력자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에 비해 봉봉은 어딘가 어리숙하고, 순진하면서도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귀여운 면모가 더 돋보이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허무맹랑한 꿈을 꾸기도 하지만, 호기심 넘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봉봉을 더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개와 고양이는 사이가 나쁘다고 누가 그랬던가. <낭만 강아지 봉봉> 시리즈를 통해 만나는 개와 고양이는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고,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아끼고 챙겨준다. 봉봉과 친구들의 우정을 통해서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예고편을 보니 다음 이야기에서는 1권에서 봉봉의 탈출을 도왔던 시궁쥐 톱니가 다시 등장하는 것 같다. 4권에서는 봉봉과 친구들이 또 어떤 모험을 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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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뇌 - 인간이 음악과 함께 진화해온 방식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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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의 방법론이 인지와 음악적 경험에도 적용되면서 지난 20년간 인간의 행동에 관한 연구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우리는 작동 중인 뇌를 실제로 볼 수도 있고, 특정 활동을 하는 동안에 활성화되는 뇌 영역을 지도로 작성할 수도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의 연구와 더불어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어떻게 생각을 할 수 있게 적응했는지 밝히고, 뇌가 지금처럼 진화한 이유에 관한 이론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나는 이런 관점을 음악, 뇌, 문화, 생각에 관한 의문에 적용해보고자 한다.         p.24

 

어느 문화권이든 엄마들은 아기를 재울 때 자장가를 불러준다. 세상이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십대들은 힙합과 랩 음악을 듣고, 사랑에 빠져 있거나 이별의 슬픔에 괴로워하는 이들 곁에도 항상 음악이 함께 한다. 카페나 마트에서도 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이동하는 시간 동안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음악은 이렇듯 우리의 삶 어디에나 있고, 또 아주 머나먼 과거부터 존재해왔다. 인지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대니얼 레비틴은 인간 진화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이 ‘음악’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지구상의 다른 종과 구분해주고, 인간이 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음악적 뇌’, 즉 ‘음악본능’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수만 년간 인류가 거주하는 대륙 곳곳에서 일어났던 음악과 뇌의 진화에 대해 설명하며, 우정, 기쁨, 위로, 지식, 종교, 사랑의 여섯 가지 노래가 인간의 문명을 만들어온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가 음악 프로듀서 출신 뇌과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경험과 연구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인류학자, 고고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 모두 인간의 기원을 연구하지만 그 요소 중 음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음악이 인간의 기분과 뇌의 화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명백히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수만 년에 걸쳐 인류가 거주하는 여섯 개 대륙 곳곳에서 일어났던 음악과 뇌의 진화에 대해 짚어 본다. 음악이 어떻게 인간 본성의 발달을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간의 음악은 위계 구조와 복잡한 구문을 갖고 있고 우리는 이런 제약 안에서 작곡한다. 음악은 언어나 종교와 마찬가지로 다른 종과 공유하는 요소와 인간만의 요소를 두루 갖고 있다. 인간만이 특정 목적을 가진 노래, 다른 노래에 들어 있는 요소로 이루어진 노래를 작곡할 수 있다. 인간만이 거대한 레퍼토리의 노래가 있다(일반적인 미국인은 천 개가 넘는 곡을 손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인간만이 여섯 가지 형태에 해당하는 노래들의 문화적 역사가 있다.        p.330

 

우울할 때는 왜 슬픈 노래를 듣게 될까? 언뜻 생각하면 슬픈 감정은 행복한 음악을 들어야 좋아질 것 같은데 말이다. 사람들이 구구단이나 알파벳을 외울 때 리듬을 붙여서 노래하는 이유는 뭘까. 보통 엄청난 길이의 글을 정확하게 기억할 때를 보면 음악을 입힌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다 같이 응원가를 부르면 왜 하나 된 기분이 들까? 전쟁터에 멜로디가 울려 퍼지는 이유는 뭘까? 기억을 잃은 노인이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에는 반응하는 까닭은 뭘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음악적 뇌'에서 비롯된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음악은 언어, 대규모 협동 작업,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중요한 정보의 전달 등 복잡한 행동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닦아 주었다.

 

멜로디가 있든 없든, 가사가 있든 없든 세상의 모든 음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고, 서로 가까워지게 해준다. 우리는 글자나 셈을 배울 때 노래를 통해 배우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구애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동요든, 민속 음악이든 간에 음악은 다양한 형태로 매일 새롭게 발명되고, 진화해오고 있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유대감을 형성하며,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어 준다. 그러한 음악이 인류 문명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음악이 어떻게 사회와 문명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는지 이 책을 통해 만나 보자. '음악이 없다면, 인간은 동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추천평처럼 음악의 가치에 대해서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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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 진화생물학 권위자 장이권의 20가지 동물의 리더십 이야기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1
장이권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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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왜 리더가 필요한가? 동물 사회에서 리더가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를 비교해보면 거의 에외 없이 리더가 있는 사회가 없는 사회보다 더 성공적이다. 경험이 풍부하고 지혜 많은 리더가 있는 코끼리 무리나 동맹관계를 잘 유지하는 리더가 있는 침팬지 무리처럼 훌륭한 리더가 이끄는 사회는 번성한다. 그리고 능력이 좀 부족한 리더가 이끄는 사회라도 리더 없이 무정부적인 군중의 집단에 속해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p.59

 

대한민국 대표 교수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명강’ 시리즈의 열한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전국 대학 각 분야 최고 교수진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겼다.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을 비롯한 범죄자 1천여 명을 프로파일링한 국내 1세대 프로파일러 권일용의 범죄심리 수업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EBS부모 상담코칭전문가로 아이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솔루션을 제시해온 권수영 교수의 마음 거리두기 수업 <관계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를 읽었었다. 이번에 만난 것은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가이자 진화생물학 권위자 장이권 교수의 20가지 동물의 리더십 이야기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이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한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리더십을 생명체의 한 형질로 다루고,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조명한다는 점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기존에는 리더십을 주로 사회과학의 영역으로 여겨왔고, 리더십을 다루는 대부분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코끼리 사회의 가모장, 사냥할 때 잘 드러나는 알파 늑대의 존재감, 수만에 달하는 구성원을 이끄는 절대적인 리더 여왕벌과 여왕개미, 인간 사회와 유사한 비혈연 집단을 이끄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침팬지 사회 등 다양한 동물 사회의 독특한 리더십 스타일들이 매우 흥미로웠다.

 

 

 

사회가 불평등한 근본적인 이유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혈연으로 엮인 사회는 이타성이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타성도 절박한 현실 앞에 놓인 개인 앞에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어느 사회라도 개인들이 모든 집단이기 때문에 이기성으로 사회를 조명해야 사회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제대로 예측할 수 있다.           p.126

 

이 책은 리더와 팔로워 모두 궁극적인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인 상호작용, 불공평한 사회에서 필요한 리더십, 불확실한 상황에서 필요한 의사결정 방식과 과정, 그리고 사회생활의 기본 원리인 협력을 보여주며 리더십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해결책을 조명해본다. 특히나 1부에 수록된 '공감의 리더십'을 재미있게 읽었다. 동물이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부터 시작해, 집단 생활의 장점과 단점, 무리가 가지는 '공통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도록 사회적 조정을 하는 리더의 역할이 인간 사회의 그것과 굉장히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암컷 중심 사회인 코끼리 집단은 혈연으로 맺어진 하나의 커다란 일가인데, 자연스럽게 암컷들이 공동육아를 하거나 먹이를 나누고, 같이 포식자를 방어하는 이타성의 진화가 흥미로웠다.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커다란 화두 중 하나인 불공정과 불평등이 동물의 세계에서도 아주 중요한 이슈라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집단생활에서 구성원들의 욕구는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집단 구성원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그 한정된 자원에 대한 배분의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니 말이다. 동물 사회에서는 평등한 사회보다 불평등한 사회가 훨씬 더 흔하다고 한다. 저자는 남극에서 가장 널리 분포하고 있는 아델리펭귄의 사례를 통해 사회가 불평등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짚어 본다. 흰동가리, 미어캣, 줄무늬몽구스의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살펴보고,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책은 이러한 동물 사회의 리더십을 하나의 일관된 관점으로 이해하고, 리더십의 본질을 꿰뚫어보며 우리가 왜 동물의 리더십에 주목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진화생물학적 테마로 읽어내는 리더십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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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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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때 시청하는 교육 자료 가운데 자동 주행 소형 로봇청소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의 영상이 있다. 딱 원반처럼 생긴, 말이 자동 주행이지 일일이 리모컨으로 조작해야 하고, 기능이라고는 가동 상태를 나타내는 삐 소리를 몇 종류 낼 뿐인 제품인데도 이름을 지어주는 이용자가 있나 하면, 그것이 내장 브러시를 샥샥 움직이면서 먼지를 모으며 나아갈 때 졸졸 따라 다니는 이용자도 있었다. 로봇청소기의 반려동물화다. 애정과 공감, 이건 인류의 고질병이다.            -'안녕의 의식' 중에서, p.183

 

팔순이 넘은 노인 다쓰조의 하루 일과는 매일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두고, 동네를 한 시간 동안 산택하는 것이 거의 전부다. 그런데 어느 날 산책 중에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어린아이가 잔뜩 굳은 얼굴로 눈을 번들거리면서 방범 카메라를 마구 두들겨대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더욱 수상했던 것은 아이의 얼굴이 장난을 치거나 재미있어하는 표정이 아니라, 오히려 뭔가 무서운 상대와 대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는 거다. 그리고 얼마 뒤 동네에 있는 방범 카메라 위치가 자꾸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근처 쇼핑몰 주차장에서 일어난 승용차 추락 사고를 비롯해서 뭔가 미심쩍은 사고가 일어난 장소에 모두 방범 카메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과연 방범 카메라가 사람들에게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이 작품은 <전투원>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이야기이다.

 

<나와 나>라는 작품에서는 문구 회사에 다니는 미혼인 40대의 '나'가 등장한다. 스물셋일 때 만났던 남자와 결혼까지 생각했었지만, 막상 동거해보니 가치관 차로 인해 일 년도 못 가서 헤어지고 지금은 아예 결혼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어느 날, 엄마의 1주기가 지나고, 엄마와 함께 살던 오빠 가족도 떠나 이제 빈집이 된 본가에 가보기로 하는데, 그곳에서 '나'는 뭔가 익숙한 모습의 여고생과 마주한다. 그 여고생은 삼십 년 전의 나, 열다섯 살의 나였다. 자동판매기에서 음료를 뽑았을 뿐인데 타임슬립을 해서 그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열다섯의 '나'는 "마흔다섯 살에, 나 아줌마처럼 된다고?"라며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다. 결혼도 하지 않은 독신에 평범한 문구 회사에 다니며, 연봉은 그럭저럭, 아파트에 살지만 자가는 아닌 현재의 모습을 설명해주니 자신의 미래에 대해 실망한 것이다. 어린 '나'도 하루하루의 시간을 쌓아 마흔다섯 살이 될 무렵에는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겠지만 말이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회귀자'는 되살아난 사자다. 사망한 특정 개인을 꼭 닮은 의체에 고인의 인격 모듈을 이식한 인공지능을 탑재해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죽었던 인간이 되살아나 세상에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말이야, 우선 인격 모듈이란 것이 간단치가 않아서, 살아있는 인간의 성격, 개성, 행동 특성을 백 퍼센트 재구성할 수는 없거든. 적어도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해... 인공지능 자체의 능력도 인간의 뇌의 움짐임에는 한참 못 미치고."          -'보안관의 내일' 중에서, p.430~431

 

미야베 미유키가 작가 생활 30여 년 만에 처음 선보이는 SF 소설집이다. 미스터리소설과 괴담, 판타지, 시대소설을 주로 써왔기에,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써온 SF 소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이 소설집에는 대안가족, 아동학대, 무차별 살상사건, 노인문제, 감시사회 등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를 소재로 한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학대 받은 아이와 그 부모를 구제하는 ‘마더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기억에 없는 친부모를 만나게 된 열여섯 소녀, 스스로 사라졌다 움직이는 방범 카메라가 인간의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노인, 타임슬립을 해서 지금 시대로 온 10대의 나와 마주하게 된 40대의 나, 로봇 폐기 수속 창고에서 일하며 로봇에게 가족 혹은 친구와 같은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는 인물의 이야기 등등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현실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근미래의 풍경이 펼쳐진다.

 

미야베 미유키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로봇청소기에게 다정하게 격려를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표제작인 <안녕의 의식>이라는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SF적인 상상력이 일상 속 표면에서부터 비롯되었기에 더욱 섬세하고, 다층적인 작품들이 그려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인간 본질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미야베 미유키가 그려 내는 상상력의 세계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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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러시 설산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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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토는 옆에서 "굉장해!"라며 조그맣게 환성을 질렀다. 구리바야시도 고개를 들었다. 바로 눈앞에 광대한 스키장이 펼쳐져 있었다. 산은 높고 곤돌라가 아주 먼 곳까지 이어져 있다.
"오호, 엄청나네......" 구리바야시도 절로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시야가 미치는 한 온통 눈밭, 은백색의 세계였다. 20여 년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 스키장은 이런 곳이었지. 일상과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p.88

 

다이호대학 의과학연구소에 협박장이 도착한다. 그들이 비밀리에 배양하고 있던 탄저균, 통칭 ‘K-55’를 자신이 훔쳤으며, 특정 장소에 보관했으니 3억 엔을 준비하라는 요구였다. 첨부된 두 장의 사진에는 눈 밑에 케이스를 묻으려고 하는 순간과 나무에 테디베어가 매달린 모습이 담겨 있었다. 범인은 최근에 연구소에서 해고된 구즈하라가 분명했고, 그가 요구한 기한은 이틀, 그 안에 사진의 장소가 어디인지, 방향 탐지 수신기인 테디베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내야 했다. K-55의 존재 자체가 극비였기 때문에 경찰에 알릴 수는 없었기에, 장소를 찾든 3억 엔이라는 거금을 준비하든 해야 했다. 그런데 더 고민하기도 전에 경찰로부터 연락이 온다. 구즈하라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자, 이제 범인이 죽어 버린 상황에서 한정된 단서만으로 K-55를 찾아서 회수해야만 했다. 눈이 녹아 버린다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살상 무기가 되어 버릴 테니 말이다. 연구원 구리바야시는 스노보드를 즐겨 타는 아들의 도움으로 사진에 찍힌 장소가 사토자와온천 스키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구리바야시 말고도 K-55의 존재를 알고 그의 뒤를 쫓아 스키장으로 향하는 이가 있었다. 과연 구리바야시는 주변이 온통 은빛 세상인 엄청난 규모의 스키장에서 무사히 K-55를 찾아낼 수 있을까. 시작부터 범인이 사고로 죽어버린다는 허를 찌르는 전개로 시작된 이 작품은 가볍고 경쾌하게, 긴장감 넘치고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며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해준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반전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말도 안 돼. 거짓말 같아." 치아키가 툭 내뱉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구리바야시는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런 한심한 일이 있을까? 엄청난 협박 사건을 일으켜놓고 중간에 트럭에 치이다니."
"나도 같은 생각이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없죠. 거짓말 같으면 인터넷으로 찾아봐요. 간에쓰 혼조고다마IC 부근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사망 사건. 죽은 사람은 구즈하라라는 남자고."           p.159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국내에는 <질풍론도>라는 제목으로 오래 전에 출간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새로운 번역과 표지로 출간되면서 제목도 변경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스노보드와 컬링 등 동계 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내 온 작가이다.  그러니 순백색의 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인 '설산 시리즈'를 쓴 것도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백은의 잭>으로 스키장에 설치된 폭발물을 소재로 영화 같은 이야기를 보여주었고, <화이트 러시>에 이은 세 번째 작품 <눈보라 체이스>에선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쓴 주인공과 형사들의 숨막히는 추격전을 그렸고, 네 번째 작품 <연애의 행방>에서는 스키장을 배경으로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를 보여준다.

 

겨울에 읽기에 딱 좋은 시리즈 네 작품 모두 출간되어 있으니, 하나씩 골라서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설산 시리즈'는 스키장의 광대한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로 시리즈로 내용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서 각각 따로 읽어도 괜찮다. 패트롤 대원인 네즈를 비롯해서 공통적으로 만날 수 있는 캐릭터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읽는 내내 스키장을 간접 체험하면서 눈부신 설원을 종횡무진 활주하는 스키어와 스노보더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책을 다 읽는 뒤에는 자연스럽게 스키장에 가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말이다. 겨울이라는 계절감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미스터리를 찾고 있다면, 이 시리즈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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