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탐정 클럽 3 - 꿈꾸는 괴물들의 밤 흡혈귀 탐정 클럽 3
한주이 지음, 고형주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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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흡혈귀들과 진정한 친구는 될 수 없나 봐. 나만 평범한 인간이니까.' 갑자기 눈가가 시큰거렸다. 탐정 클럽 멤버들과 함께 지낸 요 몇 달은 정말 즐거웠다. 즐거웠는데..... 전부 한여름 밤의 꿈이었던 거야. 잠에서 깨어나면 흐릿한 기억만 남긴 채 증발하는 꿈. 우리의 여름은 오래전에 끝났다. 이제 10월도 마지막 날이었다.          p.15

 

정체불명의 짙은 안개가 만월시를 둘러싸고 있다. 연구진이 안개의 출처나 발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까진 아무것도 밝혀진 점이 없다. 만월시의 시민들은 깊은 잠에 빠져 버렸고, 안개 때문에 헬기를 띄울 수도 없었으며, 만월시 안으로 들어만 가면 연락이 끊기는 바람에 더는 지원팀을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이러한 현상을 '영원한 밤 증후군'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만월시를 임시 격리 구역으로 지정한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흡혈귀 탐정 클럽 뿐이었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었고, 만월시의 시민들은 완벽히 고립되어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탐정 클럽을 제외한 만월시의 모든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버린 데다, 구미호 교장 선생님마저 버티지 못하고 깨어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에서부터 흡혈귀 탐정 클럽을 위협해 온 '불행 포식자'가 본격적으로 정체를 드러낸다. 게다가 '괴물 사냥꾼'까지 나타나서 흡혈귀들을 위협한다. 영원한 밤 증후군을 저지른 것이 바로 흡혈귀들이 아니냐고 의심하면서 말이다. 과연 태협과 흡혈귀 친구들은 괴물 사냥꾼의 방해에서 벗어나 불행 포식자의 음모로부터 세상을 구해낼 수 있을까.

 

 

"물론, 현실과 한 겹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세계를 이루는 구조는 완전히 달라. 거울 세계가 오직 거짓으로만 이루어졌다면, 여긴 정반대인 '진리 세계'거든. 여기에선, 헉,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게 되지...... 진실로부터 눈을 가리던 것들은, 보이지 않게 되고 말이야......"              p.75~76

 

평범한 초등학생과 흡혈귀들의 탐정 활동을 그린 <흡혈귀 탐정 클럽> 그 세 번째 이야기이자, 시리즈 완결편이다. 정직하고 선하며 심지가 곧은 어린 흡혈귀 제이,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 최면을 걸 수 있는 리더, 청각이 뛰어나서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엔, 냄새로 상대방의 감정이나 인격을 파악할 수 있는 케이, 사람과 흡혈귀의 혼혈로 괴력을 소유한 미나,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마법 능력을 물려받은 마녀 은유, 그리고 평범하고 겁 많은 초등학생인 태현이까지.. 한밤중 달이 떠오르면 학교에서 비밀스럽게 열리는 흡혈귀 탐정 클럽의 멤버들은 많은 거짓 속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인간 세상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뭉쳐 왔다.

 

 

사실 흡혈귀들의 모임에서 '인간'으로 멤버가 된 태현은 사실 겁 많고 무서운 일이라면 피하고 싶은 소심한 초등학생이다. 하지만 친구를 돕기 위해서 낯선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모험을 하게 되면서,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야말로 평범한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초능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이야기에서 탐정 클럽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의 꿈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깊은 어둠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도 몰랐던 내면 깊은 곳의 슬픔과 공포, 불안, 두려움 같은 감정들을 잘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을까. 그리고 전작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제이의 비밀 사연도 드디어 밝혀진다.  

 

흡혈귀 탐정 클럽의 멤버들은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진 불행 포식자의 봉인을 다시 복구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매우 위험하고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는 여정이라, 인간인 태현이는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이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건을 해결할 시간이 다시 찾아 오기 전까지, 잠시만 쉬는 거라고 말이다. 이 세상에 수수께끼가 존재하는 한 흡혈귀 탐정 클럽의 모험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탐정과 흡혈귀가 함께 등장하는 이야기인데다, 어른이 같이 읽어도 재미있다. 무서운 이야기, 모험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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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닮았다 -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유전학 연대기 사이언스 클래식 39
칼 짐머 지음, 이민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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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린이에게는 자신의 존재가 그저 부모가 낳아 줘서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점이 찾아온다. 어린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너머의 유전적 계보를 거슬러 올라간다. 부모에게는 부모의 부모가 있었고, 그 부모도 그랬고, 그렇게 가족이라는 나무의 가지가 기억의 지평선 너머로 뻗어 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모든 조상이 자신이 오늘날 살아 있는 이유의 일부임을.         p.215

 

길을 걷다 어린 자녀와 함께 있는 부모를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닮은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아이가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한 거겠지만, 정말 유전자의 힘이란 대단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만큼 유사한 모습에서 오는 순수한 감탄이다. 그렇다면 부모마다 자녀에게 각기 다른 형질을 물려주는 이유는 뭘까, 왜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은 키가 작고, 어떤 사람은 피부색이 짙거나 옅은 것일까, 궁금해진다. 유전은 겉모습이나 성향뿐만 아니라 질병도 아이에게 물려 준다. 보통 임신 초기에 태아에게 이상이 있는지 기형아 선별 검사를 하게 된다. 염색체 이상이나 위험도를 미리 알아보고 유전질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별 이상이 없는 걸로 나오지만, 혹시나 선천적인 이상 징후를 발견하게 된다면 부모로서 얼마나 막막한 기분일지 짐작이 된다.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인 칼 짐머는 아내가 첫아이를 가졌을 때 산부인과 담당의를 통해 유전 상담사를 만나보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유전 상담사와 대화를 나누며 유전 질환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되어 노심초사한다. 가족 중에 암으로 사망한 사람이 있는지, 뇌졸중을 앓은 이가 있는지, 생물학적 과거도를 살펴보려 해봐도 자신의 조상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혹시 우리 아이에게 재앙이 될 다른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태어난 딸 아이 샬럿에게는 어떠한 유전 질환의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은 샬럿이 15세, 그리고 13세인 동생 베로니카가 있는데, 그는 두 딸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유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 아이의 다른 피부 색조, 다른 홍채 색조, 샬럿의 암흑 물질 강박과 베로니카의 노래 재능에 대해서. 이는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닌데, 나 역시 자매가 있지만 외모부터 성격,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같은 집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 자매가 이리도 다른 유전 형질을 물려받게 되는 것일까.

 

 

 

다윈이 이 앵무조개를 봤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다윈이 생각한 유전은, 생물의 온몸에 퍼져 있는 제뮬이라는 유전 입자가 생식 세포를 통해 결합해 몸의 특질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과정이었다. 그의 범생설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고, 생물학자들은 이 가설을 다윈이 범한 예외적 오류의 하나로 제쳐 두었다... 그런데 지금 과학자들이 해저에 서식하는 조개가 제뮬 같은 성격의 유전자를 이용해 부모의 형질을 미래 세대로 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p.546

 

칼 짐머가 쓴 <진화>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있다. 두툼한 페이지 두께가 무색하게 굉장히 술술 잘 읽히는 책이라 누구나 부담없이 '진화론'에 대해, 다윈과 '종의 기원'에 대해 읽을 수 있을 만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진화론은 교과 과정에서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전공자가 아닌 이상에야 접하기 어려운 데다가, 생물학 교과서나 <종의 기원> 같은 고전을 보더라도 높은 난이도에 좌절하기 십상인데 말이다. 하지만 칼 짐머는 구체적이고 엄밀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탄탄한 줄거리와 풍부한 스토리텔링으로 마치 서사 문학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게' 진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번 책도 그런 칼 짐머가 썼기에 880페이지라는 무시무시한 벽돌책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유전학의 탄생부터 우생학과 인종주의 같은 유사 과학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웃음이 닮았다(She has Her Mother’s Laugh)'는 제목부터 흥미로운데, 이는 저자의 딸과 아내가 웃는 모습이 닮았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무사히 태어난 아기 샬럿의 얼굴 사진과 아내의 아기 시절 사진을 나란히 두고 그 닮은 모습에 경탄한 저자는 딸의 웃음소리에 유전 형질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책은 '유전'이라는 말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던 1700년대 전부터 시작해, 1800년대에 이르러서 유전이라는 개념이 과학적으로 구체성을 띠기 시작하고, 1900년대 초에 이르러 마침내 유전학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2000년대 초에는 기이한 미생물 유전 유형 하나가 드러난 덕분에, 멘델의 유전 법칙 말고도 또 다른 유전 경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게 된다. 칼 짐머는 이 책에서 바인랜드 훈련 학교에 직접 찾아가 여러 세대에 걸친 유전 이론에 영향을 미친 사례들을 짚어보고, 과학의 최전선에서 활약해 온 수많은 전문가들을 직접 면담하는 등 자신의 경험과 과학적, 역사적 분석을 완벽하게 조합해 유전 과학이라는 복잡한 학문을 통찰력 있게 조망하고 있다. 유전자와 진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책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스펙타클한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과학에 대해서 칼 짐머보다 더 재미있게 잘 쓰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책이다. 최고의 과학 저널리스트가 쓴 압도적인 유전학 연대기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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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것의 주인이기를 원한다 - 인간만이 갖는 욕망의 기원
브루스 후드 지음, 최호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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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법적 소유권이 없으면서도 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생각해 보라. 자동차를 잠깐 빌릴 땐 아무 생각이 없지만, 자동차를 장기 임대할 때 생기는 애착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대출을 받아 구입한 부동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출금을 전부 상환하기 전까지는 법적으로 내 소유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렇게 구한 집을 '우리 집'으로 여긴다... 이러한 특징들을 이해하려면 소유의 심리적 차원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수그러들지 않는 소유 추구가 많은 사람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충동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p.67

 

인간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그러나 사는 동안 우리는 마치 소유가 삶의 전부인양 매달린다. 더 넓은 집, 더 비싼 차, 좋은 가구, 최신 가전 제품 등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해야 행복해진다고 흔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소유하려고 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사회에 증명하려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많이 가질수록 더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일까.

 

발달심리학 및 실험심리학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인 브루스 후드 교수는 이 책에서 '소유욕'이 어떻게 문명의 시작부터 현시대에 오기까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해왔는지를 밝혀낸다. 우리가 겪는 수많은 경제적·사회적 문제가 단 하나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이 욕망은 바로 정서 중추에서 발화되는 뇌과학적 현상이자, 진화학에서 동물과의 극명한 차이점으로 꼽는 특징이며, 법학과 법률 제도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 바로 '소유욕'이다. 대체로 우리는 소유물 또는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행복해질거라고 믿지만, 사실 그것을 손에 넣어도 행복해지지 않을 때가 매우 많다. 뭔가를 가질 수록 욕구가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더 좋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도 하며, 이는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경쟁을 촉진시키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대개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고 소비하게 되는데, 이 같은 욕망은 지구 온난화 등 장기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의 '자아'는 그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의 총합"이라는 윌리엄 제임스의 인용문을 비틀어 다음과 같이 썼다. "인간은 이미 가진 것의 합계라기보다 아직 갖지 않은 것, 가질 수도 있는 것의 합계다." 사르트르가 보기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것은 취득이라기보다 목표의 추구이다. 그리고 그의 통찰은 동기의 신경과학과 일치한다. 뇌에는 이미 소유하고 있는지 아니면 소유하길 원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있다.         p.272

 

이 책은 문명의 시작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소유욕이 어떻게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해왔는지 그 근원을 밝히고 있다. 지난 세기의 노예 매매, 불법 수익을 낳는 인신매매업, 19세기까지 결혼 제도 아래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소유권, 자녀를 재산처럼 독점적으로 통제하려하는 부모와 자식의 소유 관계, 그리고 법적으로 보호되어 왔지만 자주 분쟁의 대상이 되었던 지식 재산권 등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소유의 심리 메커니즘을 탐구한다. 수그러들지 않는 소유 추구가 이토록 많인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충동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브루스 후드 교수는 그에 대한 답을 인류학과 철학, 생물학과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고찰한다.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으면 자신감이 높아지는 듯하고, 명품 제품을 들고 있으면 어딘가 행동도 변한다. 값비싼 음식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면 똑같은 음식이라도 전에 마실 때보다 맛이 더 좋을 뿐만 아니라 뇌의 가치 평가 체계가 더 많이 활성화된다. 그러니 관건은 실제 사치 여부가 아니라 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인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 인생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물질적 소유와 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대신 우리가 이미 가진 것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반인 50명 중 약 1명은 삶에 지장이 될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쌓아둔다고 한다. 이렇게 과도한 수집은 아동기에 시작될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주 관찰되는데, 물건이 많이 쌓일수록 건강에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집장애로 발전하기도 한다. 우리는 현재의 소유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하고, 손에 쥔 것들을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물건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의 진가를 깨닫는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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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부사 소방단
이케이도 준 지음,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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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끈 뒤에 풍기는 자극적인 냄새가 다로의 코를 찔렀고, 다시 화재 현장을 돌아본 다로는 말없이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봄처럼 눈부시고 평온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따스함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 하야부사 지구는 아무래도 다로가 믿고 있던 것처럼 느긋하고 평화로운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평온한 경치 뒤에 숨어 있는 악의를 알게 된 다로는 그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p.66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작가인 미마 다로는 분리형 원룸 월세방에서 필사적으로 글을 쓰며, 먹고살아야 한다는 현실 속에서 악전고투를 거듭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쓰던 소설을 취재하기 위해 이웃 현을 방문했다가 수십 년 만에 아버지의 고향인 하야부사 지구를 찾게 된다. 도시 생활에 지쳐 있던 다로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초목과 맑은 하늘, 어딘가에 있는 축사 냄새 등 산촌의 매력에 빠져 결국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여섯 지구 중, 해발 500미터 고원에 있는 것이 하야부사 지구로, 다로는 아버지가 남겨 준 자그마한 목조 단층 건물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이사 온 지 2주 정도 지났을 무렵 마을 사람들로부터 소방단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게 된다. 마을에 인구도 적은 데다 이곳에 사는 젊은이들은 모두 들어왔다는 말에 안 하겠다고 빠질 수도 없어 다로는 하야부사 소방단에 들어가게 된다.

 

하야부사 소방단은 화재가 발생하면 멀리서 와야 하는 소방차 대신에 초기 진압에 나서고, 행사에서 안전 관리 등의 일을 하는 마을의 자경단과도 같은 조직이었다. 그런데 소방단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화재가 발생해 현장에 출동할 일이 생기고, 최근에 연쇄적으로 방화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화재 원인이나 범인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을 사람 하나가 강에 빠져 죽는 사건까지 발생하게 된다. 방화가 네 건, 시체가 한 구였지만, 방화범이 누구인지, 동일 인물인지도, 강에서 발견한 남자가 왜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는데, 기어코 수상쩍은 사람이 등장한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다로는 의문의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이 되어 마을의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과연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일어나는 연속 방화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혼자서 일어서려 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그 노력은 헛수고로 끝났고, 다로는 제자리에 엉덩방아를 찧고는 하늘을 보며 쓰러졌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땅바닥에 못박혀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맹렬하게 치솟는 오한 때문에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인생 최악의 순간이다. 그런 다로를 섬세하고 투명한 남색 밤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유리처럼 아름다운 밤하늘이. 그것은 분명히 다로가 지키려 했던 하야부사의 밤하늘이었다.            p.657

 

어디든 그렇겠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 가지고는 속 사정을 파악할 수 없는 법이다. 느긋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던 산촌도 들춰보니 도시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정이 존재했다. 복잡한 인간관계나 사정이 있는 것은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다양한 알력이 생기고 거기에 휘둘리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 것도 도시든 시골이든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자연이 풍요롭고, 느긋하고, 살기 편할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사를 온 다로는 도시에서 있을 때보다 더 바쁘게 시골 생활에 적응해나간다. 연쇄 방화사건으로 시작된 마을의 소동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아름다운 땅을 팔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는 사람들과의 갈등, 인구가 줄어들어 점점 어려워지는 마을을 살리려는 노력과 그러한 마을을 지키려는 소방단 활동, 거기다 사이비 종교 집단까지 연계되어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다로는 외부인이라는 입장과 사람을 관찰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작가라는 위치에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다. 과연 다로와 마을 사람들은 이곳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까.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가장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작가답게 그 동안 만나온 이케이도 준의 작품들은 탄탄한 구성과 생생한 캐릭터를 통해 완벽한 재미를 선사했었다. 매번 아주 두툼한 페이지에 등장인물도 많지만, 군더더기가 없고 구성이 짜임새가 있어 가독성이 좋다.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비롯해서, <변두리 로켓> 시리즈와 <일곱 개의 회의>, <루스벨트 게임>, <하늘을 나는 타이어> 등 대부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직장인들의 통쾌한 반란과 도전을 그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심이 아니라 시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작품이라 흥미로웠다. '전원 추리소설'이라 이름 붙은 이 작품은 올해 7월에 일본에서 TV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기도 하다. 풍요로운 자연과 함께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간관계를 짜임새 있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라, 영상화된 버전도 기대가 된다. 언제나 믿고 보는 작가 이케이도 준이 도시가 아니라 시골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써낸 미스터리라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케이도 준의 색다른 매력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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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는 사람들 스토리콜렉터 107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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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명백히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건 사이비 종교였다. 꼭 하나의 종교를 따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모두가 불법적인 것도 아니었다. 사이비 종교의 성립 조건은 그저 어떤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무척 신실한 추종이었다. 그 대상은 때로는 종교적 믿음일 수도, 때로는 어떤 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물론, 때로는 식단일 수도 있었다. 어떤 사이비 종교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종종 파괴적일 때도 있다.          p.33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이든은 어린 아들 네이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나인 개브리엘은 자신의 방에 있었지만, 동생을 보지 못했다고 하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네이선은 어디에도 없었다.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두문불출하는 이든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 온다. 네이선을 데리고 있다고, 500만 달러를 요구하는 범인은 돈을 구하지 못하면 아들이 죽게 될 거라고 그녀를 협박한다. 대체 누가 네이선을 납치한 것일까. 이든은 경찰에 신고할 수도, 누군가한테 전화할 수도 없었다. 이런 때 도와줄 만한 사람이 인생에 아무도 없었던 데다, 500만 달러를 구할 수도 없었다.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어린 시절 지옥을 함께 견뎌냈던 딱 한 사람 애비 멀린뿐이었다.

 

남편과 이혼 후 두 아이를 키우며 뉴욕 경찰청에서 인질 협상가로 일하는 애비 멀린은 도움을 청하는 한 여자의 전화를 받고 그녀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가 바로 자신이 어린 시절 빠져나왔던 사이비 종교 집단의 또 다른 생존자 이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과거의 끔찍한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두 사람은 함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그 과정에서 범인이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인 네이선의 누나 개브리엘에게 집착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지역 사이비 종교 단체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사이비 집단의 일원들은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믿기 때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거짓말쟁이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믿음 때문에 거짓말이 어떻게 보면 진실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와 그들이 믿는 모든 것은 그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의 명령으로 결정된다. 과연 이든과 애비는 어린 시절 겪었던 사이비 종교 집단 대학살의 비극에서 벗어나, 네이선을 그들로부터 구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알게 된 것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이 뇌를 완전히 재배치한다는 거였다. 포스트에 달린 '좋아요'와 댓글들은 계정주의 도파민을 폭발시키고 계정주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건 이해할만했다. 페이스북 포스트에 '좋아요'가 눌리는 건 누구나 좋아했다.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휴대전화를 개인적 도파민 시뮬레이터로 바꿔놓았다. 뇌 스캔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에 중독된 사람들의 뇌는 자신을 재배치해, '좋아요'나 리트윗이나 웃는 이모티콘을 갈수록 더 욕망하게 만들었다.         p.402

 

<살인자의 사랑법>, <살인자의 동영상>이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마이크 오머의 신작이다. 기존 두 작품이 FBI 요원 테이텀 그레이와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가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는 '조이 벤틀리' 시리즈였다면, 이번 신작은 '조이 벤틀리' 시리즈에 등장했던 인질 협상가 애비 멀린을 주인공으로 했다. '애비 멀린' 시리즈는 <따르는 사람들>에 이어 <손상된 의도>, <불타는 망상>으로 이어진다. 마이크 오머는 조이 벤틀리 시리즈를 세 권 출간한 뒤, 바로 애비 멀린 시리즈 세 권을 썼다. 애비 멀린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가 작년에 출간되었으니, 그의 가장 최신작이기도 하다.

 

마이크 오머는 조이 벤틀리라는 캐릭터에게 스릴러와 미스터리를 즐겨 읽었던 10대 소녀가 이웃에 살던 연쇄살인마에 의해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고, 어른이 된 뒤 FBI의 수사를 돕는 범죄심리학자가 되었다는 과거 배경을 설정했었다. 게다가 당시의 연쇄 살인범은 성인이 된 그녀를 잊지 않고 여전히 연락을 해오는 것으로 만들어 그녀가 쉽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뉴욕 경찰청 최고의 인질 협상가인 애비 멀린에게 30여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이비 종교 집단 대학살에서 생존한 아이라는 과거를 부여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벗어났지만, 미래에 어디선가 반복될지 모를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각종 사이비 종교 집단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에서 이어진 그것은 현실의 사건과 연결되며 거의 600페이지에 가까운 두툼한 분량을 꽉 채우며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마이크 오머는 기자와 게임 개발자였던 이력 덕분인지 매우 현실적인 소재를 가져와 지루할 틈없이 탄탄한 서사로 군더더기없이 그려내고 있다. 'SNS 인플루언서와 팔로어', '사이비 교주와 추종자들'이라는 현대에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존재로 부상한 두 부류의 추종(following)에 대해서 파헤치고 있으니 말이다. '애비 멀린'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도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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