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노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굳이 나에 대한 책을 쓰고 싶은 이유가 뭡니까?"

당혹스러웠지만 나는 진심을 얘기했다. 당신이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고 있기, 또는 살았기 때문이라고. 어떤 시제를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설 같은, 아슬아슬한 인생, 역사 속으로 몸을 던지는 위험을 택한 인생.

그러자 그의 입에서 나를 경악케 만든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그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피식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개떡 같은 인생이지, 한마디로."

<한때 알고 지냈던 삐딱한 깡패 작가, 쫓기는 게릴라 전사, 책임감 있는 정치인, 잡지의 <연예란>에 애정 생활 관련 기사가 실리는 유명인>, 도무지 일관성 있게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이 상반된 이미지들은 하나의 인물이다. 바로 우크라이나 출신의 깡패로 출발해 소비에트 언더그라운드의 아이돌, 맨해튼의 거지, 억만장자의 집사를 거쳐 파리의 인기 작가로, 발칸 반도를 헤매던 사병으로, 그리고 이제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혼란기에 청년 무법자들의 당을 이끄는 카리스마 넘치는 늙은 보스로 변신해있는 러시아의 작가이자 정치인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이다. 저자는 실존 인물인 리모노프의 삶을 추적해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 스토리를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문학적 다큐멘터리>, <기록 문학> 등으로 일컬어지는 카레르 특유의 서술 방식으로 쓰여져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작가 자신의 인생과 리모노프의 삶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까 작가인 카레르가 리모노프의 삶을 글로 쓰려고 하는 과정과 이유, 그리고 실제 그의 삶이 같이 보여지는 소설인 셈이다. 워낙 실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탓에 러시아 현대사에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라면 여러 번 길을 잃고 갈팡질팡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읽는 다른 책들에 비해 그렇게 많이 두껍다고 볼 수 없는 분량이었는데도, 읽는데 한참 걸렸으니 말이다. 1989년 이후 소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점에서는 아주 큰 도움이 될만한 소설이긴 하지만, 이렇게 드라마틱한 인물의 삶을 끝까지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의 인내 또한 필요하다.

오만함도 잠시, 방 한가운데서, 관심의 한가운데서, 모든 것의 한가운데서, 이놈은 어딜 가나 한가운데지, 바로 루돌프 누레예프를 발견하자 에두아르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참 운도 없지. 무표정하고 거무스름하고 잔인한, <>라는 존재만으로도 곧 이 고상하게 문명화된 인간들의 무미건조함이 까발려지겠구나, 하며 몽골의 정복자를 자처하는 순간, 살토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궁벽한 두메산골 바시키르, 그 질척질척한 오지에서 태어나 이토록 높이까지 올라온 상태, 사람의 탈을 쓴 야만의 유혹으로 광채를 발하는 악마 같은 누레예프와 맞닥뜨리고 만 것이다.

정치 관련 뉴스에서 아직도 심심치 않게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 작가이자 정치인의 삶이란, 굳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너무도 많은 일들이 파도처럼 벌어지는 인생이었다. 인생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할 때 천천히 낮은 곳을 달리다 점차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클라이막스에 정점을 찍는 것이 보통 일 텐데, 어쩐지 리모노프에겐 계속 극과 극을 달리는, 그러니까 시동을 걸 필요도 없이 높은 곳을 내리 달리는 롤러코스터 같다고나 할까.

줄리언 반스는 프랑스 작가의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리모노프의 행동과 신념은 1898년 이후 소련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 혼란, 분노, 절망, ‘거친 서구식 자본주의, 올리가르히들의 경제 침탈, 보통 사람의 바닥난 저축, 매일매일 이어오던 일상의 상실 같은 것들….” 누군가의 인생이 한 시대를 보여준다면, 그렇다면 그의 삶은 충분히 소설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카레르가 리모노프의 삶을 소설로 쓴 이유가 "그의 파란만장하고 위험천만한 인생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소련 해체 후 혼란에 휩싸인 러시아를 통과해가는 영웅의 목소리를 읽어야 할 것이다. 역사 속으로 온 몸을 던져, 자신의 전 생애를 거는 인물은 좀처럼 보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거기다 읽는 이들을 분노에 휩싸이게 만드는 행동을 천연덕스럽게 하다가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안쓰럽게 보이기도 하고, 이처럼 극과 극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인물은 단연코 리모노프 외에는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그 실수 때문에, 혹은 과거의 어느 순간이 발목을 잡아, 스스로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그런 비밀을 남보다 잘 감추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고 싶은 진실이 과연 사실인가.에 있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게 마련이니까. 이 작품은 모르고 살았다면 좋았을,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면서 일어나는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렇지만 당사자가 나는 아니었으면 싶은 그런 일들 말이다.

세 명의 딸을 둔 세실리아는 오늘도 정신 없는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친구와 함께 주웠던 베를린 장벽 조각을 찾으러 다락방에 올라가고, 그곳에서 우연히 낡은 편지 봉투를 발견한다. 편지 봉투에는 남편 존 폴의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의 아내 세실리아 피츠패트릭에게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

그녀는 생각도 하기 전에 그 자리에서 편지를 뜯어보려고 하지만, 마침 전화벨이 울렸고, 그렇게 다락방에서 내려오자마자 정신 없이 흘러가는 일상생활에 뛰어들게 되어 남편의 이상한 편지는 냉장고 위에 올려놓고 우선 일들을 처리한다. 중요한 주문을 처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고, 저녁에 먹을 생선을 사오고... 가정 주부들의 일상이란 뻔하지만, 그렇게 뻔해서 오히려 빈틈없이 꽉 찬 일상에 틈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나서야 그녀는 그 이상한 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남편은 그렇게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편지는 아주 오래전에 쓴 게 분명했는데, 왜 그는 죽음을 생각했던 걸까? 그러다 그녀는 그저 웃음을 터뜨린다. 그저 몇 년 전에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감상적이 된 존 폴이 이런 편지를 썼던 거라고. 그러니까 신경 쓸 일은 절대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남편과의 전화 통화에서 그녀는 발견한 편지에 대해 이야길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던 남편은 예정보다 3일이나 먼저 집에 도착한다. 거기다 폐소 공포증 때문에 다락방에 올라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그가 자신이 잠든 사이에 편지를 찾으러 다락방에 올라갔던 걸 알게 되자 그녀는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었던 그 편지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고 결국 뜯어서 읽어보고 만다.

이런 세상에, 존 폴. 대체 이 편지가 뭐기에 그런 거야?

, 이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말았다. 때론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게 더 나은 일도 세상엔 많다. 편지에는 남편이 저질렀던 끔찍한 일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다. 그것이 만약 세상에 알려진다면 그녀의 가정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일 앞에서 그녀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옳은 일을 하고 싶지만, 밝히자니 가족들이 다칠 것이고, 그저 침묵하기엔 진실의 무게가 너무 크기만 하고 말이다. 이럴 때는 독자인 나도 세실리아가 되어 함께 고민에 빠져들고 만다. 정의를 위할 것인지, 내 가족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그 어떤 것을 선택해도 행복할 수만은 없으니 말이다. 예전에 티비에서 인생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두 가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진 주인공이 '그래, 결심했어'라며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그에 따라 그 후 벌어질 인생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아마도 그 프로그램이 당시에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재미로 웃음을 주기 위해 만드는 상황이 우리네 인생과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내가 결코 알지 못하고 지나가버리는 수많은 사실과 그날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달라졌을 꽤 많은 일들을 영원히 알지 못하는 채로 살아간다. 어쩌면 사소한 나의 선택 하나로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지금 나의 모습이 현재의 모습과 아주 많이 달라졌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한 번에 단 한가지의 선택 밖에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세실리아, 테스, 레이첼 모두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고민하고 분노하고 고통 받으며 살아가지만, 이들이 어느 순간 마치 퍼즐처럼 연결되는 것처럼 실제 우리네 인생도 사실 우리가 모드는 큰 그림 속에는 하나의 퍼즐 조각에 불과한 건지도 모르니 말이다. 일주일 동안 벌어지는 엄청난 충격과 파국의 스토리가 마무리되고 나서, 덧붙여진 에필로그는 이 긴 이야기보다 더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아주 많다는 걸 이제 나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수의 나라
김나영 지음 / 네오픽션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박의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 있어서 이 작품은 소재 뿐 아니라 캐릭터에 있어서도 여러모로 영화 <타짜>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속 주인공 고니는 이 작품에선 천재 도박사 재휘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도박판에 뛰어든 선영으로, 고니의 스승 평경장은 이들의 아버지 같은 존재인 용팔, 정사정 없는 전설의 고수 아귀는 잔인 무도한 강사장, 그리고 영화 속 화투 판의 설계자인 정마담은 극중 추마담 정도로 대입하면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스승인 평경장에서 사사 받은 기술을 통해 도박판에서 홀라당 까먹은 누나의 이혼 위자료를 되찾고, 자신의 삶을 어그러뜨린 박무석 일당에게 복수하는 데도 성공한 고니가 더 이상 노름에 손대지 말라는 스승의 경고를 뒤로 하고 정마담과 목숨까지 내걸고 화투를 하는 것처럼, 극중 선영도 재휘에게 배운 기술을 연마해 아버지를 죽게 만든 강사장에게 복수하기 위해 목숨 걸고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엄청난 판에 뛰어든다.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복수와 욕망, 그리고 분노라는 점에서 이 두 작품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파국을 향해 달리는 이 스토리들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 우리는 다른 사람의 비극에 관심이 많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평범한 샐러리맨, 조신한 현모양처가 가벼운오락을 즐기다가 인생을 송두리째 차압 당하는 건 우리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한 끗 차이로 천국과 지옥을 맛볼 수 있는데, 왜 안 그러겠는가.

이 작품은 인터파크가 주최했던 K-오서어워즈 5차 최종후보작이라고 한다.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를 얻은 데다, 작가가 기존에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적도 있기 때문에 스토리를 어느 정도 맛깔나게 그려내는지는 검증된 바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지루할 틈 없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인물들의 복수극과 로맨스가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플롯이지만,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어 페이지가 쉽게 넘어갔다. 그리고 각각 인물들의 매력을 잘 그려내고 있고,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 전개로 흠잡을 데 없는 재미를 준다

-카드 게임에서 이기려면 도박의 신한테 잘 보여야 해.

-도박의 신요? 그런 신도 있어요?

...............

-도박의 신에게 미움받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돼. 더 많이 갖겠다는 것도, 잃은 것을 찾겠다는 것도 모두 욕심이야. 때때로 신은 우리 마음을 시험하기도 하지만 그걸 이겨낸 사람에게는 반드시 값진 선물을 주고 떠난단다.

걸어 다니는 컴퓨터라고 불리던 천재 도박사 정연과 용팔은 도박판에서 만나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으나, 정연은 부인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강 회장의 하우스에서 벌어지는 백억 대 포커 판에 참가했다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용팔은 간신히 수술비를 마련했으나 결국 부인까지 남편의 뒤를 따라가고 어린 재휘를 데리고 전재산인 천만 원으로 어떻게든 먹고 살길을 찾으려고 한다. 사람들과 도박을 하던 중 위기의 순간에 열살 짜리 재휘의 충고로 돈을 걸고는 게임에 승리하고, 그는 재휘가 아버지인 정연처럼 확률을 셈하는 게 아니라 카드 카운팅을 판만 보고도 알아차리는 천재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재휘는 양아버지인 용팔을 따라 도박판을 전전하면서 살게 된다. 하지만 재휘는 복수심에 눈 멀어 무모하게 달려들지도 않고, 지나친 승부욕으로 위기를 자처하지도 않는, 자기자신에 대한 통제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인공 정연, 그녀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게 된 엄마의 빈소에서 포커 판에서 전 재산을 말아먹고 이혼당한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난다. 막 수능이 끝나고 곧 명문대에 입학이 예정되어 있던 그녀는 지낼 곳이 없으면 같이 살자고 아버지를 용서하지만, 결국 보험금 1억이 든 통장을 들고 다시 도박 길에 나서고 만다. 강회장의 하우스에서 1억을 홀랑 탕진하고 강회장에게 애원하는 데, 아버지를 쫓아온 선영이 벌컥 하우스에 들어온다. 강회장은 10억을 걸고 단 한번의 승부를 제안하고, 어떻게든 다시 돈을 찾아오겠다는 집념이 그에게 딸을 걸고 도박을 하게 만든다. 결국 그 게임에서도 지고 나자 딸을 볼 면목이 없어진 그는 가지고 있던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고, 선영은 그렇게 강회장에게 넘어가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탈출을 감행하고, 그 과정에서 재휘와 용팔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베네치안 카지노는 마카오의 하늘 꼭대기에 날개를 펼친 것처럼 크고 화려했다. 선영은 카지노 건물을 노려보며 어금니를 물었다. 온통 황금색으로 칠한 홀은 진귀한 그림과 장식으로 꾸며져 마치 천상의 세계처럼 보였지만 그녀에게는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딜러가 카드를 돌리면 자기 패를 먼저 보지 말고, 상대의 얼굴을 봐야 한다. 카드를 확인하는 상대의 미묘한 표정을 보고, 그 찰나의 눈동자를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맹수가 먹잇 감을 사냥할 때 동공이 커지는 것처럼 사람도 목표를 발견하면 자신도 모르게 눈에 드러난다고 한다. 동공의 크기는 의지로 쉽게 조절되는 게 아니므로, 그때 눈을 보면 진카인지 뻥카인지 알 수 있다고 말이다. 이렇게 도박은 치밀한 확률 계산과 고도의 심리전이 필요한 게임이다. 속고 속이는 정신 없는 무대에서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바로 낙오되고 마는 것이다. 강원도 카지노의 절대 강자 강회장을 상대로 천재 도박꾼 재휘와 그저 복수심에 불타는 여고생 정연이 어떻게 접근하고 대결을 펼칠 지가 스토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천재적인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도박꾼인 재휘는 복수심 같은 감정을 초월할 만큼 자기 컨트롤이 뛰어난 인물이고, 무모하게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부모의 복수를 하려는 정연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 캐릭터라는 점이다. 기존 복수극의 캐릭터와 조금 차이가 있는 이런 부분은 극중 스토리 라인에 확실한 힘을 실어준다. 물론 이들의 로맨스는 심금을 울린다기 보다는 상투적으로 보여 다소 아쉽긴 했다.

도박판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도박을 하게 됐으며, 도박을 하다 누굴 만났으며, 누굴 만나서 어떻게 됐을까.에 이르는 이야기는 평범한 일반인들로는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세계이다. 사기나 도박 같은 종류는 일종의 반사회적인 인물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영화나 소설의 주요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걸테고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왜 자기 죽을 곳으로 스스로 기어 들어 가는 건지, 왜 욕심을 버리지 못해 미련하게 다 잃어버리는지 싶지만, 사실 그들 각각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이혼한 아내의 보험금으로 생애 마지막 판을 벌이려는 매정한 아버지에게도, 카지노 계의 거물이지만 자신은 직접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 강회장에게도, 다 제 각각의 사연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일수록 도박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결국 끝까지 가서 지옥을 맛보게 된다고 한다. 죽거나,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이유는, 도박이 바로 희망을 담보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한 판만 이기게 되면, 한 패만 나에게 들어오면, 그럼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고,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누구도 쉽게 그것을 그만두지 못한다. 희망이라는 이름이 숨기고 있는 가혹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셋 리미티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뉴욕 흑인 게토에 자리잡은 공동주택 건물의 방 안. 몸집이 커다란 흑인과, 조깅 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중년 백인 남자가 마주보고 앉아 있다. 흑인은 전과가 있는 목사이고, 백인은 대학 교수이다. 흑과 백이라는 선명한 차이처럼, 뼛속까지 완전히 다른 생각과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왜 함께 있는 걸까. 이들의 대화를 잠시 들어보면 그날 아침 지하철 역에서 자살을 하려고 하던 백을 구해준 이가 흑이다. 플랫폼에 서 있던 흑은 급행 열차 선셋 리미티드에 뛰어드는 걸 우연히 보게 되고 막았던 것이다. 예수의 말을 듣는다며 예수가 자신의 머릿속에 있다는 흑과 과거에 믿던 많은 것들을 지금은 믿지 않는다는 백의 대화만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그러니까 죽으려는 교수와 살리려는 목사의 사소해 보이는 논쟁이 이 소설의 전부라는 말이다.

: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아주 약했어요. 아주 부서지기 쉬웠지요. 나는 그걸 몰랐습니다. 절대 파괴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한데 그렇지가 않더군요.

일주일에 두 권쯤, 일 년에 백 권, 그렇게 한 사십 년 가까이 책을 읽어온 백인 교수는 무신론자이다. 그렇게나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가 믿었던 것들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존재한다고 믿는 척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며. 사실상 친구도 하나 없는 그는 그저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다. 가는 길에 자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집으로 보내준다고 할 정도로. 그러나 신을 믿는 흑인 목사는 그런 그에게 자꾸만 말을 건넨다. 그가 집을 나서려 하면 같이 가야겠다며 외투를 꺼내 들고, 그의 가족은 어떠했는지, 친구에게 오늘의 결심을 이야길 했는지 주절주절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그러니까, 목사는 다시 살아보고 싶게끔 삶에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정작 교수는 그걸 원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 혹시 선생이, 그러니까, 긴 가뭄 같은 기간을 보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러다 보니 결국 세상이 원래 그런 거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지...어쨌거나 내 말은 말이오. 설사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해도, 그래도 해가 매일 똑같은 개의 궁둥짝을 비추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요.

흑인 목사는 교도소에서 배식 담당에게 시비를 거는 이에게 한마디 하다 칼을 맞고, 그와 다투다 이백팔십 바늘을 꿰매야 하는 대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던 그 의무실 침대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날 이후 하느님의 은혜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백인 교수는 세상에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흑인 목사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하느님이 그냥 내버려두지 말라고 했다고 대답한다. 이렇듯 이들의 대화는 평행선이다. 절대로 좁혀질 수 없는 간극, 아무리 사이를 좁히려고 해도 도저히 이어질 수 없는 두 개의 선.

좀처럼 자신을 설득하려는 목사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자, 교수는 돈을 좀 드리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댁한테 큰 신세를 졌으니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거다. 목사는 댁이 청산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믿는 거하고 믿지 않는 건 완전히 다르다"며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 댁은 모든 걸 흑과 백으로 보는군요.

: 실제로 흑과 백이지.

재미있는 건 만신창이가 되어 병원 침대에 묶여 고통에 울고 있을 때 신이 자신을 구원해주었다는 흑의 주장보다, 세상에 희망은 없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거라는 백의 주장이 어쩐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는 것. 미래가 어떻게든 달라질 수 있다고 믿으며 성격을 내미는 흑은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데, 백은 그런 그에게 삶이 죽음보다 더한 악몽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해서 패배를 인정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의 구원을 희망으로 그리겠지만, 매카시가 보는 세상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세상에 희망 따위란 없으며, 당신이 믿고 있는 모든 것은 사실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이 치열한 공방전의 결말은 이제 '되돌아가는 것도, 바로잡는 것도 불가능'한 무의 희망밖에 없다는 걸로 끝난다.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절대 믿지 않는 흑이 아니라 꿈이나 환상 없이 가능한 빨리 죽고 싶다는 염세적 세계관을 가진 백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 작품은 출간 이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올랐고, 2011년에는 매카시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하는 토미 리 존스의 연출로 미국 HBO 채널에서 드라마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고 한다. 토미 리 존스가 백인 역을 겸했고 새뮤얼 잭슨이 흑인역을 맡았다고 하는데, 어쩐지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한 두 사람을 둘러싼 공기가 보이는 것 같다. 매카시는 이번 작품에서 <로드>의 형식과 주제를 보다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하는데, 최소한의 등장 인물과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 희망이 없는 세계에 묵묵히 맞서는 인물들은 과연 매카시답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가끔 너무도 끔찍한 일을 당한 이들을 볼 때, 신이란 존재가 정말 있기나 한 걸까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학대 당하는 어린이들, 누군가를 이유없이 살인하는 사람들, 자기 혼자 살겠다고 수백 명의 목숨을 내팽개치는 몰지각한 사람들.. 이런 사건 사고 속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런데 대체 왜 하느님은 이런 일들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는 거냐는 말이다. 신은 대체 왜 이런 인간들의 비극을 지켜보고만 있느냐. 신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이냐는 의문이 들 때면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세상에 희망이란 있는가. 글쎄 희망이 어떻게 생겨먹었더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 1위 실리콘밸리의 자유로운 업무 방식 - 구글 애플 페이스북 어떻게 자유로운 업무 스타일로 운영하는가
아마노 마사하루 지음, 홍성민 옮김 / 이지북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본 기사에서 실리콘 밸리의 평균 명목 임금은 2014 100,983달러(한화 약 1 1천만 원)이라는 걸 읽었다. 이는 미국 전역의 평균임금, 58,623달러(한화 약 63백만 원)보다 크게 웃도는 수치이고,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8,739달러(한화 약 31백만 원)에 비해서도 엄청난 수치이다. 그렇다면 평균연봉이 무려 1 1천만 원인 실리콘 밸리의 사람들은 어떻게 일을 할까 궁금해진다. 세계에서 가장 핫한 스타트업의 천국이라 불리는 실리콘 밸리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반도 초입에 위치하는 샌타클래라 일대의 첨단기술 연구단지이다. 첨단기술분야에서의 기술혁신, 벤처비즈니스, 벤처캐피털에 의해서 일대 산업복합체가 형성되어있는데,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이 있으며 국내기업으로는 삼성, 엘지 등의 회사들이 진출해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창출해내는 기업들이 모여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비즈니스 시스템은회사나 조직 중심과는 거리가 멀다. 조직보다 개인의 자질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 책은 19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저자가 일본과 미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느낀미래형 업무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애플, 구글, 어도비시스템즈, 인텔, 오라클, 휴렉팩커드, 야후, 페이스북 등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전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하고 있는 이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조직보다는 개인의 자질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차별이나 고정관념이 없고, 실수를 인정하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고 응원하며 개인의 재량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잇는 것이다.

                              '조직'이 아닌 '개인'

                                           '대규모'가 아닌 '벤처'

                                '상하 사회'가 아닌 '수평 사회'

                                                          '계속'이 아닌 '변화'

변함없는 매일이 가장 안심되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다. 뜻밖의 일로 갑자기 지붕 꼭대기에 올려진 상태다. '얼른 내려줘'하고 바로 지붕에서 내려와버리면 우발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지붕 위에서 경치를 즐기며 '세상은 이렇구나, 좀 더 멀리 가볼까' 하고 반응하는 것이 우발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그것은 '성장' 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인생이 바뀌는 순간을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우발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라고 말한다. 예상치 못한 일로 지금까지의 생활에서 균형이 깨져서 더 이상 안정된 매일을 기대할 수 없을 때가 바로,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도약의 시발점이라고 말이다. 일에서든 인생에서든 우발적인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차이에 따라 미래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우발적인 일에 반응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발적인 일이 일어난다. 그것에 반응한다. 극복한다. 이렇게 3단계를 여러 번 경험해 커리어를 쌓은 사람이 비즈니스 전문가가 된다고 한다. 고생하고 싶지 않고, 실패하고 싶지 않고, 안정된 상황에서 지내고 싶어하면서 돈도 벌고 출세도 하고 싶어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꿈의 기업으로 불리는 구글의 업무 환경과 복지는 전세계 젊은이들의 로망이다. 미국 내 30만개 기업을 대상으로 연봉과 복지가 가장 좋은 직장의 순위를 매겼는데, 단연코 1위는 구글이었다. 평균 연봉도 높지만 직원들에 대한 스톡옵션과 자녀 장학금 등의 혜택 덕분이다. 구글은 사망한 직원의 배우자에게 사망 직원이 받던 월급의 50% 10년간 지급하며, 사망 직원의 자녀들은 19살이 될 때까지 매월 1000달러씩 장학금을 받는다고 한다. 이와 함께 사내 병원, 물리치료, 금연 프로그램, 요리 강좌 등 다른 복지 혜택도 빼놓을 수 없을 테고 말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꿈꾸는 꿈의 기업은 구글 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업무방식을 통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야근, 접대, 조직의 벽, 대인관계의 스트레스 없는 그런 세계 말이다. 이 책에서는 정답을 찾아 커리어를 쌓는 방식이 아니라과정우발성을 중시한 새로운 업무 방식을 시작으로 새로운 업무 방식을 실천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모습, 그리고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때 필요한 지식실리콘밸리 취직 계획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4장에 소개되어 있는 '실리콘밸리 취업 활동 작전' '2년에 달성하는 실리콘밸리 취직 계획'은 매우 실용적이고 흥미로웠다. 취업 준비 생들이 주목해서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