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가 되기
존 가드너 지음, 임선근 옮김, 레이먼드 카버 서문 / 걷는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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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잘 쓴 소설을 손에 쥐었을 때 우리는 첫 페이지 다섯 단어만 읽고도 이미 자신이 지면에 인쇄된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시작한다. 장면을 떠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쓰레기통들을 뒤지고 다니는 개들, 알래스카 산악 지대 위를 선회하는 비행기를, 파티에서 슬그머니 자기 냅킨을 핥는 노파를. 내가 지금 어디에 앉아 있는지, 점심때가 되었는지 일할 시간이 되었는지 따위는 잊고 몽상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p.42

레이먼드 카버는 아내와 두 어린아이를 데리고 월세 25달러짜리 낡은 집을 얻는다. 이사 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해서 배달원으로 일했던 약국의 약사에게 돈을 빌려서 겨우 댔을 정도로 빈털터리였다. 당장 먹고 살 길이 암담했는데, 그러면서도 그의 계획은 치코 주립 단과대학에서 강의를 듣겠다는 거였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작가의 꿈을 키워왔던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그만 때려치우라고, 꿈 깨라고, 조용히 마음 바꿔 먹고 다른 일을 하라고 시시때때로 속삭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 강의에 수강 신청을 한다. 그리고 바로 그 강의를 통해서 그를 가르쳤던 교수가 이 책의 저자인 존 가드너였다. 레이먼드 카버가 비좁은 집에서 애들과 함께 지내느라 글 쓸 공간이 없어 애를 먹고 있을 때, 자신의 사무실 열쇠를 주었던 이도 바로 존 가드너였다. 레이먼드 카버는 이 책에서 자신의 멘토를 추억하는 가슴 저릿한 서문을 썼는데, 그의 꾸지람과 너그러운 추임새를 받았으니 나는 최고로 운 좋은 사람이라고 그를 추억하고 있다.

이 책은 뛰어난 미국 현대 소설가로 손꼽히는 존 가드너가 20여 년 동안 대학 안팎에서 창작 교사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소설 창작 입문서이다. 장편소설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진지한 새내기 작가들을 위해 쓰인 이 책은 1983년 가드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주 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소설가의 삶이 어떠한지, 소설가가 안팎으로 경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대체로 기대치를 어느 수준에 두는 게 적정한지, 대략 어떤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밝혀줌으로써 그들에게 합당한 안도감을 안겨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창작 입문서가 아니라 저자가 작자로서 또 창작 교사로서 겪은 지난한 과정과 그가 지켜온 단호한 도덕성을 보여주는 진솔한 고백이기도 하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적확한 몸짓, 숨 막히도록 적합한 비유, 벽지 또는 고양이의 움직임에 대한 간결한 묘사, 문장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빛나거나 감동적인 문장, 허구지만 '생생하게 다가오는' 순간 등 진짜배기 대목들이 나와야 한다. 인물이나 장면이 그것들 자체의 기이한 힘으로 현실로 쳐들어와서, 자기가 쓴 글이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는 경험, 그리하여 작가가 자신이 창작자가 아니라 한갓 도구적 존재, 마법사나 주술에 걸린 사제라고 여기게 되는 경험-마법을 구동해보는 이런 경험이야말로 작가를 창작을 위해 거의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중독자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p.227

글쓰기, 창작, 작법에 관한 책은 꽤 많이 읽었던 편인데, 여타의 책들에 비해 이 책은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사실 좀 의아했다. 어떻게 소설가가 되어야 하는지, 글쓰기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면 결코 이 정도 분량일 수가 없을 텐데 싶었던 거다. 게다가 '장편소설' 이라 하면 그 과정이란 더욱 복잡하고, 지난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드너는 이 책에서 작가가 되고 작가다움을 유지한다는 게 어떤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돌아보게 하는 지혜롭고 정직한 잣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장편소설 쓰기에 관심이 있고, 진지하게 소설가가 될 마음을 먹은 이들이 아니더라도, 소설과 작가에 대해 관심이 많은 독자들을 위해서도 매우 훌륭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그렇다고 작법과 관련된 이론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가드너는 자신의 작품과 경험담, 혹은 다른 작가의 작품이나 가상의 작품 등을 사례로 들어가면서철두철미하고 유용한이론과 실제를 들려 준다. 뿐만 아니라 작가 워크숍이나 창작 프로그램, 대학의 문학 혹은 비문학 교육, 책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알아야 할 점, 편집자와 에이전시의 역할, 작가로 살면서 생계를 꾸리는 방법 등에 대한 조언도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이 쓰인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왜 이 책을 '불후의 고전'이라고 하는 지 알 것도 같다. 작가들이 왜 이 책에 밑줄을 긋고 주석을 달면서 거의 외울 만큼 읽었다고 하는지 이해가 될 만큼, 작가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만 임팩트있게 담고 있는 책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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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 몸의 감각을 되찾고 천천히 움직이고 필요 없는 것은 내려놓고
히로세 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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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매일 먹는 음식과 사용하는 근육으로 만들어져 갑니다. 무엇을 먹는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에 따라 몸은 변합니다. 몸을 보면 그 사람의 생활이 들여다보이는 것이지요.

그 사람을 감싸고 있는 공기는 그 사람 자신으로부터 발산되는 것입니다. 정갈한 공기를 가진 사람도 있고, 따뜻한 공기나 물처럼 투명한 공기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p.15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겪는 크고 작은 경험들이 고스란히 얼굴에 그 흔적을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성격과 행동 또한 모두 차곡차곡 쌓여 노년의 얼굴을 만들어 간다. 저자인 히로세 유코 역시 하루하루의 생활이 쌓여서 그 사람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매일 먹는 음식과 움직이는 방법, 표정과 무언가를 대하는 태도 등에 따라 내면 뿐만 아니라 외면도 조금씩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갈한 공기를 가진 사람도 있고, 따뜻한 공기나 물처럼 투명한 공기를 가진 사람도 있다. 나이가 어릴 때는 젊음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싱그럽고, 때묻지 않은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발산하지만, 진짜 본 모습은 나이가 들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니 말이다.

몸과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매일매일 어떤 시간이 쌓이는 지에 따라 사람도 모습을 바꾸어가는 것이라면, 자신만의 아름다움은 스스로의 모습과 행동, 의식의 변화만으로도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히로세 유코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중심에 두고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맞는 좋은 시간을 보내면 좋은 인생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그녀가 택한 삶의 속도는느긋하게이다. 나도 그녀처럼 '이제 좀 느긋하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차 한 잔을 천천히 내려 마시며 좋은 기운을 불어넣고, 마음이 심란해지면 의식적으로 천천히 움직이며 마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보고 말이다. 그렇게 일상 속 작은 행복들이 하나씩 모이면 자연스레 삶에도 빛이 날지도 모르겠다.

 

우리 삶에는 없으면 안 되는 것과 없어도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일상을 되돌아봅니다. 이것과 저것은 꼭 있어야 합니다. 정말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되는 것도 몇 가지 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단지 그렇게 생각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처분해보면 삶과 기분이 산뜻해집니다. 집뿐만이 아니라 삶까지도 통풍이 잘 되는 느낌이 듭니다.  p.177

이 책에서 말하는 '느긋하게' 살기 위한 세 가지는 바로 이것이다. '세심하게' '천천히' '심플하게'. 세심하게 나만의 생활 리듬을 되찾고, 천천히 생각하며 움직이고, 심플하게 필요 없는 것은 내려놓으면 우리의 삶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마음의 심란함이 조금씩 사라진다고 하는데, 사실 그 말이 맞든 아니든 간에 직접 실천해보기에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니니 속는 셈 치고 한번씩 해보면 어떨까. 누구에게나 이유 없이 마음이 심란할 때가 있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든 것들이 신경에 거슬리고, 사소한 한마디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하고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마음과 몸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마음이 어수선할 때 몸의 움직임을 천천히 하면 그 리듬에 이끌려 마음도 느긋해진다고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젊을 때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던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을 돌보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엄마라면 남편과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다 쏟아 붓느라 자신의 몸은 아픈지도 모를 것이고, 아빠라면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온갖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 참고 발산할 데를 찾지 못해 속 병이 드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고, 내가 희생해서 가족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다 제대로 굴러 가려면 나 자신부터 중심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생활을 정성껏 돌보아야만 주변의 누구에게도 든든한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히로세 유코 특유의 차분하고 따뜻한 문장들이, 일상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책을 읽는 시간이 휴식처럼 느껴졌고, ‘자기다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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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 24시 - 상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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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세상의 통로를 걷다 보니 마치 동굴 미로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간간히 어디서인가 흐느낌과 비명이 들려와 흡사 지하 감옥 같기도 했다. 요여능은 장안성의 암흑 세상에 발을 디뎠다는 생각에 극도로 긴장했다. 장안성의 암흑 세상은 피비린내와 탐욕이 가득했다. 이곳은 법도, 도덕과 정의도 통하지 않는, 아수라도처럼 잔혹한 세상이다. 여기에서 살아남은 자는 가장 간악한 인간이리라. 이때문에 관부에서도 이곳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p.142~143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였던 당나라의 서울이 바로 '장안'이다. 장안은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도시였다. 작가인 마보융은 장안을 가리켜 '시공의 한계를 뛰어넘는 매력적인 도시, 고전과 현대적 요소를 두루 갖춘 곳'이라고 말한다. 그는 양한 가능성을 품은 이 도시는 창작자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매우 이상적인 무대라고 생각했고, ‘천보 3재 원소절, 장안에 큰불이 있었다는 역사서 속 짧은 기록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고대 국제도시를 배경으로 한 대테러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 작품은서양에 로마가 있다면 동양에는 장안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찬란했던 대도시 장안에서 일어난 하루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분량이 만만치 않다. 상권이 600페이지가 넘고, 하권도 500페이지가 넘으니 말이다.

마보융은 역사서에서 기록된 사건을 입체적으로 재현하고, 허구의 인물과 실재했던 역사 속 인물들을 함께 등장시켜 개연성 뛰어난 팩션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인종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그곳에 있었던 다채로운 문화와 여러 모습의 가지각색 인생들을 그려내고 있어서인지, 이렇게나 두툼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단 한 페이지도 지루할 틈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 불린다고 하던데,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훌륭한 작품이다. 화제의 드라마 <장안십이시진>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는데, 책을 읽는 내내 바로 눈 앞에서 장면들이 보여지는 것처럼 생생한 작품이라 영상화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은 요여능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갈등했다.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질문이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당연히 도리에 어긋난 일이지만 가만히 있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프고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 명을 죽이면 백 명을 살릴 수 있어. 한 명을 죽이겠는가, 백 명을 죽게 내버려둘 텐가?  p.202~203

서역의 위협에 대비해 조직된 특수기관 정안사는 장안을 불바다로 만들려는 돌궐의 테러 계획 정보를 입수한다. 하지만 작은 실수로 늑대 전사들의 적장인 조파연을 놓치게 되고, 정안사의 젊은 수장 이필에게 문서관리를 맡고 있는 서빈이 적임자를 추천한다. 만년현 불량수로 9, 무소불위의 전직 수사관이자 현재는 상관을 살해해 사형수 신세인 장소경이었다. 그가 수색과 체포에 관한 한 장안 최고라는 말에 이필은 장소경을 석방해 파격적으로 그를 기용한다. 천재 관료 이필의 지략과 장안 108방을 훤히 꿰뚫고 있는 장소경의 활약으로 돌궐의 테러를 막고 그 배후 세력을 파헤치는 스토리는 대체 어느 부분이 클라이막스인지 모를 정도로 끊임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모종의 암살 집단, 장안사 내부의 첩자, 조정의 반대파와 장안 뒷골목의 세력까지 더해지면서 곧 장안성에 닥칠 재앙에 대한 무시무시한 폭풍이 시작된다. 특히나 대화재를 막을 시간이 앞으로 몇 시간 남지 않았다는 제한 조건이 주는 압박감이 매 페이지마다 더욱 긴박감 넘치는 스릴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있는데, 목적을 위해서라면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나 의무도 필요 없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장소경과 곁에서 그를 감시하면서 점차 그에게 설득되어 가는 요여능, 그리고 당 조정 최고의 인재인 이필 등 저마다의 대의와 신념, 야망이 혼란의 도시 장안에서 한데 뒤섞이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호색한, 사형수, 오존염라, 여자를 사지에 몰아넣지 않는 군자, 혹독하고 무자비한 관리, 능력자, 정의로운 협객.. 이 모두가 겨우 몇 시간 동안 장소경이 보여준 모습들이다. 그와 함께 행동하는 이들은 여전히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나 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던 캐릭터가 있었나 싶게 장소경은 독특한 인물이다. 과연 이들은 24시간 내에 위기의 장안성을 구할 수 있을 것인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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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만드는 영국 과자
야스다 마리코 지음, 김수정 옮김 / 윌스타일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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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느긋한 공기를 이곳으로 옮겨다 줄 것 같은 과자를 만들고 싶습니다. 평소 마시는 차에 수제 비스킷을 곁들이고, 친한 친구가 놀러 오는 오후에는 15분이면 오븐에 넣을 수 있는 레몬 드리즐 케이크를 굽습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주말에는 커다란 빅토리아 샌드위치를 구워볼까요?    p.2

이 책은 티타임의 나라 영국, 그 본고장의 레시피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달콤한 케이크, 소박한 스콘, 건강에 좋은 오트밀 쿠키 등 영국인들에게 사랑받는 다양한 레시피들과 각각의 레시피의 유래와 그에 얽힌 사연도 함께 소개되어 있어 더욱 흥미진진하다.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가 사랑했던 쇼트브레드는 지금이야 일상 속에서 차와 함께 먹는 디저트이지만, 당시에는 아주 비쌌기 때문에 결혼식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남편 알버트공을 잃고 실의에 빠진 빅토리아 여왕을 위로해준 빅토리아 샌드위치는 영국 스펀지케이크의 기본이다. 평소 차와 함께 곁들이는 건 물론 생일케이크로도 자주 사용되는, 영국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하고 또 중요한 케이크라고 한다.

단순하고 꾸밈없는 담백한 맛의 대명사 스콘! 스콘을 잘 만드는 요령은 바로 '마치 영국 할머니가 된 것처럼 다정한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워낙 레시피가 심플하기 때문에 그날의 날씨나 기분에도 구워진 상태가 달라진다는 마법의 디저트가 아닐 수 없다. 플레인 스콘, 프루트 스콘, 체리 스콘, 애플 라운드 스콘, 치즈 스콘, 마마이트 스콘, 크레송 앤 치즈 스콘, 로즈마리 앤 감자 스콘 등... 아마도 역대 가장 다양한 스콘 레시피가 실려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워낙 스콘을 좋아하는 편이라, 다양한 스콘 레시피들을 보고 있자니, 당장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샘솟는다.

제과점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균일화된 빵과 과자가 아닌, 영국의 소박한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전해주는 진짜 영국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레시피들이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레시피들이 복잡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단순하지만 손 맛이 필요한, 같은 레시피라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맛이 달라질 수 있는 그런 레시피야말로 빵과 과자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너무도 도전하고 싶은 레시피가 아닐까 싶다.

 

뱀의 꼬임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먹어버린 이브. 가을이면 가지가 휘도록 매달려 있는 새빨간 사과는 이브가 아니어도, 뱀의 유혹이 없어도 먹고 싶어집니다. 살살 녹는 새콤달콤한 사과를 스펀지케이크 밑에 살짝 숨긴, 그야말로 이브의 금단의 푸딩. 한 번 먹으면 계속 손이 가는 멈출 수 없는 맛입니다.   p.107

영국에는 각 가정마다 비스킷 통이 하나씩은 있다고 한다. 가정의 티타임에는 물론, 학교나 직장에서도 머그컵 옆에는 언제나 비스킷이 있을 정도로 영국인들의 비스킷 사랑은 유명하다. 특히나 영국인들은 적셔 먹기 전문가들로, 홍차에 적셔 먹기는 그들만의 독특한 먹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레시피 중에 '초콜릿 기네스 케이크'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름에서 보이듯이 아릴랜드의 흑맥주 기네스가 레시피에 들어가는 케이크이다. 흑맥주와 코코아의 씁쓸한 맛이 기분 좋게 섞여 맛에 깊이를 더하고, 마치 기네스 거품 같은 크림치즈 프로스팅도 정말 잘 어울리는 케이크라고 한다. '맥주 케이크'라니.. 단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한번 궁금해서 먹어보고 싶어질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이 '친절하고 자상한 레시피북'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쪼록 할머니의 레시피 수첩을 떠올려 달라고. 만드는 과정 사진 같은 건 없지만, 오랜 경험으로 익힌 소중한 요령과 가족들에게 사랑받아온 레시피로 채워진 할머니의 요리수첩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이다. 단순한 재료로 간단한 레시피를 통해 만드는 베이킹은 따라 하기도 좋고, 읽기에도 수월했다. 대부분 영국에서 일반적으로 만들고 있는 기본 배합 그대로이라고 하니, 영국의 티타임과 디저트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분들에게 너무도 훌륭한 책이 될 것 같다.

영국의 과자와 빵은 이웃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소박하고 투박한 경우가 많은데, 그 담백한 맛에 담겨 있는 그것을 참 좋아한다. 영국 과자 전문가인 저자 야스다 마리코는 영국에서 과자 교실을 운영하며 주변의 친구, 단골 레스토랑, 소박한 시골 가정집 등에서 영국 본고장의 레시피를 익혔다고 한다. 진짜 영국의 홈메이드 과자를 맛보고 싶다면, 이 책과 함께 베이킹에 도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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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과 결과의 경제학 - 넘치는 데이터 속에서 진짜 의미를 찾아내는 법
나카무로 마키코.쓰가와 유스케 지음, 윤지나 옮김 / 리더스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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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대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것보다 받는 것이 낫고, 오랜 시간 텔레비전을 보는 것보다 적당히 보는 것이 나으며, 입학 점수가 낮은 대학보다는 높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상당한 돈과 시간이 든다. 그런데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통설을 믿고 행동했다가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돈과 시간까지 버리게 된다면?    p.19

 

건강검진을 받으면 장수할 수 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많이 보면 성적은 떨어진다? 명문 대학을 졸업하면 연봉이 높다? 대부분 그렇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과관계' '상관관계'를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들은 모두 틀린 이야기일 수 있다고 한다. '두 개의 사실 중 한쪽이 원인이고 다른 한쪽이 결과'인 상태를 '인과관계가 있다'라고 한다. 한편 '두 사실이 서로 관계는 있지만,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지 않은 것'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인과 추론의 근본 개념을 철저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완전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이기 때문에 경제학에 대한 배경 지식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어려운 수식 등도 전혀 사용하지 않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초콜릿 섭취와 노벨상, 건강검진과 장수, 지구온난화와 해적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사실' 인지, '진실'인지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실전에서 써먹으면 한층 똑똑해 보이는수 읽는 센스를 알려주고 있다. 꽤 많은 도표들과 경제학적 통계와 여러 데이터의 수치들이 등장하지만, 이상하게 어렵지 않다.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에서 우리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고 반사실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사실만 보고 마치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착각해 무조건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하거나 무턱대고 건강검진을 받는다면 기대했던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당신의 소중한 돈과 시간만 낭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p.47

 

우리는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의 규모가 점점 더 방대해지고 생성 주기도 짧아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 즉 빅데이터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그렇게 데이터는 어디에나 있지만, 그것이 가치 있는 데이터가 되려면 그 정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통계학자 발터 크래머는많은 사람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으로 통계를 들먹인다고 말했다. 엄청난 속도로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더라도, 진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 진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남성 의사가 여성 의사보다 뛰어나다? 공부 잘하는 친구와 사귀면 성적이 오를까? 어린이집을 늘리면 여성 취업률이 올라갈까? 명문대를 졸업하면 연봉이 높을까? 저자는 말한다. 보이는 숫자에 속지 마라. 겉으로 드러난 정보에 속지 마라.

 

 

세계은행 출신의 교육경제학자가 알려주는 숫자만으론 읽을 수 없는 경제학의 진실은 빅테이더 시대 최소한의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이 빅데이터로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바꾸었고 이제 데이터 분석의 다양한 기법은 비즈니스와 정책 모델에 적극 활용되며 그 중요성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 당시 빅데이터가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해내며 판도를 뒤집는 전략으로서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빅데이터라는 용어가 등장한 지 수년이 흘렀어도, 일반인에게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인데, 이 책을 통해서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일본 출간 당시 2017 베스트 경제서 1위 및 아마존 재팬 경제경영 1위를 차지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 만큼 대중적인 책이기도 해서 빅데이터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은 이번 기회에 제대로 파악해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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