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벚꽃
왕딩궈 지음, 허유영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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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일생에 몇 번의 연애가 허락된다 해도 나는 단 한 번으로 끝날 수 있기를 바란다. 방금 전 그 길이 첫 번째 길이었다고 해도 그 다음은 영영 오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런 확고한 생각이 조금 황당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라는 길 위에서 어떤 구간이 가장 옳은지 누가 알 수 있을까? 사랑도 원래 영감처럼 아슴아슴 떠다녀 붙잡기 힘든 것이다. 영감이 찾아오지 않으면 머릿속은 죽은 바다나 다름없다. 그 바다에 거센 파도가 몰아쳐야만 외로운 세상도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p.99

 

남자가 혼자 운영하는 카페에 첫 손님으로 뤄이밍이 온다. 어떤 응대도 주문의 절차도 생략된 작은 카페의 침묵 속에서 뤄이밍은 커피를 마시고, 30분도 안 되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뤄이밍은 그 길로 집에 돌아가 앓아 누웠고, 곧 옥상으로 올라가 자살을 시도한다. 경찰과 구급대원이 등장했고 그 상황은 조용히 마무리되지만, 이후 동네 전체가 남자에게 한 목소리로 조용한 분노를 게워 낸다. 평소 살갑게 맞이했던 가게 주인의 태도가 냉랭해지고, 노점상들은 지나가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그가 지나가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남자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현장을 빠져 나와야 했다. 뤄이밍은 대형 은행의 고위 임원으로 남몰래 선행을 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다. 남자와 그의 아내 추쯔는 5년 전 뤄이밍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뤄이밍이 취미로 사진을 가르쳤는데, 추쯔가 그에게 사진을 배웠던 것이다.

남자의 아내 추쯔는 그의 곁을 떠났고, 남자는 바닷가 마을의 황량한 변두리에 와서 홀로 카페를 열었다. 뤄이밍의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경찰이 남자를 찾아와 묻는다. 뤄 선생에게 무슨 원한이 있느냐, 복수를 하러 온 거냐, 뤄 선생은 털끝 하나 건들지 마라 등등... 이 장면으로 미루어 추쯔가 사라진 것이 뤄이밍과 무슨 연관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남자의 태도는 어딘지 석연치가 않았다. 떠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그녀를 원망하는 것 같지는 않고, 뤄이밍을 찾아가 따지고 분노를 퍼부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오히려 찾아온 그에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의 카페에 낯선 여자가 찾아온다. 아버지의 병세가 걱정스러워 직장에 휴가를 내고 고향에 내려온 뤄바이슈, 그녀는 뤄이밍의 딸이었다.

 

매일 벚나무에 소금물을 부을 때 뤄이밍의 머릿속은 또렷했을 것이다. 벚꽃이 그를 병들게 한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시드는 벚꽃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뤄이밍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욕망의 부추김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신을 심연 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을.   p.291

 

아내를 잃은 한 남자, 남편을 떠난 뒤 실종된 여자, 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 남자, 그리고 그의 딸, 이들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매우 독특하게 전개된다. 뤄이밍의 딸은 자신의 아버지가 남자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등장한다. 아빠가 왜 자학증에 걸려 자신을 못살게 구는 것인지, 아빠가 무슨 죄라도 지었다면 속 시원히 말해달라고, 침묵은 아빠에 대한 복수처럼 보이니 침묵하지 말라고. 정말 이상한 것은 남자의 태도이다. 다니던 건축 회사를 그만두고 인적도 드문 해변에 작은 카페를 열고 아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지만, 그 이상의 적극적인 행동은 없다. 아내를 빼앗아간 이에 대한 복수의 마음이나 자신을 버린 아내에 대한 분노의 마음도 없어 보인다. 그렇게 이야기는 남자와 뤄바이슈의 대화를 통해 전개되고, 아내인 추쯔와 뤄이밍은 그들의 대화 속에서만 등장한다.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인물의 주변을 묘사해 그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왕딩궈의 방식은 매우 낯설지만 이상하게 슬프다. 게다가 나는 이토록 지독한 사랑의 방식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렇게 치열하지 않은 형태로, 담백하게 쓰여진 사랑 이야기로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가 바로 왕딩궈'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추천 때문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판밍이라는 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에 대해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아마도 서정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처연한 슬픔과 행간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특별한 생의 의미들 때문일 것이다. 왕딩궈는 이 작품의 프롤로그에서 '내가 쓰려고 한 것은 슬픔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극중 아내를 잃은 남자는 '비극이 희열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뤄바이슈에게 말한다. 추쯔와 뤄이밍에 대한 이야기가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일 하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한 남자의 모든 걸 바꿔놓은 엄청난 변화가 시작된 사건의 발단이 그렇게나 작은 일이었다는 것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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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왔구나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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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니 이 순간 남편은 엔도다. 한 시간 후에도 그가 엔도일지는 친정엄마밖에 모른다. 마도카는 엄마를 방으로 데리고 갔다.

"이제 안심하고 자도 돼. 내일은 센터에 가는 날이잖아."

", 그러네. 잘 자."

이제껏 거쳐온 다양한 나이의 엄마가 마치 다중인격처럼 몸 속에 함께 살고 있다. 그것들이 돌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p. 95

아빠가 돌아가시고, 간단히 유산 분배를 마친 후 엄마가 느닷없이 사라져 버렸다. 며칠 뒤 연락 온 엄마는 다섯 살 연하인 남자와 살기로 했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당시 스물여덟인 사치와 열여덟의 동생 루리는 당황스러웠지만, 사실 엄마도 쉰다섯의 어엿한 어른인데다 자식이라고 해서 엄마의 행동을 제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루리는 스물 여섯에 결혼해 쌍둥이 남매를 낳았고, 사치는 독신으로, 각자 십수 년간의 생활을 영위했다. 이제 마흔 다섯이 된 사치에게 갑작스럽게 엄마가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일흔 살이 된 엄마는 치매에 걸린 상태였고, 아마도 함께 살던 남자는 그녀의 상태가 이리 되니 귀찮아져서 내쫓은 것처럼 보였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치매 진단을 받은 늙은 엄마 앞에서 독신여성 사치와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 루리는 고민에 빠진다. 누가 모시고 살아야 하는지부터, 그런 엄마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시아버지와 남편, 아들 뒷바라지를 하며 살고 있는 전업주부 마리는 오랜 만에 참석한 동창생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줄곧 남의 뒤치다꺼리만 하다 일생이 끝날 수도 있다는 말에 평소 생활을 돌아본다. 하지만 현실은 외출했다 돌아와도 아무도 저녁식사 준비를 도우려 하지 않으니 혼자 부엌에 틀어박혀 식사를 만드는 신세다. 주부에게 요리란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거의 의지로 하는 것이니 말이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패턴의 일상, 그런데 다음날 시아버지가 조금 이상하다. 뭔가를 찾는 듯 집안을 어지르기 시작하더니, 끼니를 먹어놓고도 기억하지 못하고 밥은 언제 먹냐고 물으시는 거다. 마리는 분명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상의하지만, 현실을 회피하려는 남편의 반응은 무심하기만 하다. 마리는 개호 인정 접수를 하고 도움을 받고 싶지만, 남편은 줄곧 교직에 있었던 아버지가 치매라는 소리를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매일 그런 시아버지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마리였으니, 그녀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

 

 

뒤죽박죽 불가사의하게 이어지는 이모들의 대화. 서로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대화가 이뤄진다는 사실이 어떤 기적처럼, 누구도 맞설 수 없는 선문답처럼 느껴졌다. 이모들의 발상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듣다 보면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진지하게 두 사람의 앞날을 생각하면 불안은 점점 커져간다.

", 어떻게 하라는 거야!"

마쓰미는 큰 소리로 외치며 전속력을 다해 긴 언덕길을 내려갔다.  p.198

무레 요코는 이 책에서 노인성 치매에 걸리거나 신체적, 정서적으로 쇠약해진 부모를 받아들이게 되는 자식들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여덟 편의 이야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젊은 남자와 다시 시작하겠다며 집을 나간 엄마가 치매에 걸린 상태로 돌아오고, 남편은 모른 척하는 시아버지의 치매 증상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며느리가 등장하고, 혼자 사는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아 함께 살기로 하지만 남편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증상은 점점 심해가고, 34년간 어머니를 모셔온 큰형 부부가 이제 더 이상 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하고, 남편도 자녀도 없는 이모들이 치매에 걸려 간병을 하는 조카의 고민도 있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어 가지만, 치매란 것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는 것은 아니기에, 어느 날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자식들은 당혹스럽기 마련이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에게는 부모님이 아닌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책임져야 할 자식과 내가 챙겨야 할 아내 혹은 남편이 있고, 회사 업무도 있을 테고 그 밖에 각자의 사정에 따라 책임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노년의 부모를 보살펴야 한다는 것은 사실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자식 다 키워서 이제 한숨 돌리나 했더니, 앞으론 부모를 돌봐야 해.'라는 극중 대사처럼, 나름대로 사회에서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가정에서 내 자식의 부모 역할을 매일같이 충실하게 하며 살아온 우리이다. 그래서 치매를 피하지 못한 노년의 부모들에 대한 문제는 누구에게나 참 어렵다.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혹은 이제 나도 늙었구나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란 살면서 여럿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와닿는 건 늙어버린 부모님을 마주하게 될 때가 아닐까 싶다. 우리 아빠 등이 생각보다 넓지 않았구나, 우리 엄마 음식 맛도 이제 예전 같지 않구나.. 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란 생각보다 서글프다. 이제는 아빠, 엄마의 어린 딸이 아니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낯설고, 뭘 해도 전과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부모의 모습에 슬프기도 하고 말이다. 이 책에 실린 여덟 가지 이야기들 속에서 세월의 흐름과 함께 노쇠해지고, 이상행동을 보이는 부모들 앞에서 대처하는 방식은 각자 다르다. 부모를 집으로 모셔와 보살피거나, 간병 계획을 세우려는 자식도 있고, 자식들 각자 눈치만 보다 결국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으며, 갑작스러운 부모의 이상행동이라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병원 진단을 미루는 자식도 있다. 어떤 상황이든 충분히 있을 법한, 나라도 그럴 수 있을 법한 에피소드들이라 제각각의 모습들 속에서 작은 공감과 위안을 얻어도 좋을 것 같다. 이러한 문제는 당신에게 지금 찾아온 현재일 수도, 아니면 곧 닥쳐올 미래일 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치매와 간병이라는 주제를 생각하자면 너무 답답하고, 슬플 것만 같지만, 무레 요코는 무겁지 않게, 유쾌하게 웃음 지을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 나가고 있다. 분명 현실이 그렇게 담백하고, 명쾌하게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따뜻함과 온기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이제는 나와 내 부모가 함께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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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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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는 돈을 넣어두는 금고 외에 별도로 대여금고라는 게 있다. 사람들이 가장 귀중한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다.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물건일 수도 있고 말이다. 실제로 시중은행에서는 현금, 유가증권 등 귀중품을 맡길 수 있는 대여금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1억원 이상의 거래가 있어야 한다거나, 3억원 이상의 금액을 예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어 평범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경우는 없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대여금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그리고 있다. 20년 전 겨울, 파산 이후 무덤처럼 잠들어버린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 그리고 그 곳에서 수십 년 간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547번 대여금고. 과연 대여금고와 데드키를 둘러싸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는 1978년에 문을 닫았어. 믿기 힘들겠지만,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한밤중에 모든 문에 쇠사슬을 채웠대. 가구, 머그잔, 그림, 서류들을 몽땅 남겨두고. 그것들은 다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20년 동안 아무도 그것들을 몽땅 털어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야. 누군가가 이곳에 정말 신경을 쓰고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으면, 누가 텅 빈 건물에 무장경비원을 두겠어? 누군가가 그것들을 훔쳐 갈까 봐 걱정하는 것이 분명해. 이런 것들을 누가 훔쳐가고 싶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p.172~173

 

건축공학기술자 아이리스는 대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했고, 입사 당시 최첨단 구조 디자인 프로젝트에 투입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3개월 동안 서류에 표식이나 끄적거리는 단순한 일만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 주초에 부서의 장이자 회사의 공동경영자인 휠러 씨가 그녀를 불러 이번에 특이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는데, 그녀가 현장조사를 포함해서 이 일에 적합할 거라는 동료들의 추천을 받았다고 말한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칸막이 사무실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에 아이리스는 기뻤지만, 사실 그 일은 업무 시간 외에 초과 근무를 하며 현장 임무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장소는 20년 전에 문을 닫은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였다. 당시 시 정부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했을 때, 수많은 사업장이 문을 닫고,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이 은행은 거의 20년 동안이나 건물을 폐쇄한 채로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20년 전인 1978년 겨울, 십대 소녀 베아트리스는 나이를 속이고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에 면접을 보러 간다. 그녀는 그곳에 비서로 취직해 일을 시작하게 되고, 영화배우처럼 굉장한 미인인 맥스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이모와 단둘이 살고 있는 베아트리스는 어느 날 이모에게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화려한 옷이 가득한 옷장과 편지들이 들어 있는 서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비밀에 대해 제대로 알아내기도 전에 이모가 병원으로 실려 간다. 도리스 이모는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였고, 그 뒤로 베아트리스의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누군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아서 거주할 곳이 없어지고, 도리스 이모가 가지고 있었던 대여금고의 열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맥스는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도리스 이모는 무슨 이유로 대여금고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리고 맥스는 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사라져 버린 것일까.

 

“왜 데드키라고 부르는 거죠?” 아이리스가 끝까지 물었다.

“대여금고가 여러 해 동안 열리지 않고 잠겨 있으면, 우린죽었다고 말해요. 대여금고가 죽으면, 그걸 비우고 다른 대여자를 받아야 하죠. 우린 데드키로 죽어버린 대여금고를 열고 자물쇠를 바꾸곤 했어요 지금은 드릴로 틀에 구멍을 뚫고, 틀 전체를 몽땅 갈아치우지만. 짐작하겠지만, 금전적으로는 엄청난 낭비죠."

“대여금고가 자주 죽나요?”

“깜짝 놀랄 정도로 자주요.”   p.457~458

 

이야기는 1978년 베아트리스가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에 근무하던 시절과, 1998년 아이리스가 폐쇄된 건물인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의 설계도 작성을 하는 20년 뒤의 현재가 교차로 진행된다. 은행 비서 베아트리스와 건축기술공학자 아이리스는 서로 같은 공간에서, 1978년과 1998년이라는 완전히 다른 시간을 통과하며 데드키를 손에 쥔 채 대여금고에 숨겨진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은행은 시가 파산하고 딱 2주 뒤에 문을 닫았고, 당시 직원들은 자신의 책상을 비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열쇠들은 분실되었고, 대여금고는 버려졌으며, 건물에는 20년 동안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아이리스는 군청이 건물의 매수를 고민 중이라 해당 건물의 개보수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검사를 하고, 측정을 하고, 도면을 그려야 했다. 건물 경비원인 레이먼을 제외하고 15층짜리 고층건물에는 아이리스 혼자, 종일 일을 해야 했다. 그곳에서 아이리스가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의 공포와 숨겨진 비밀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면서 생기는 긴장감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있다.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페이지 내내 아이리스와 베아트리스라는 두 인물을 주축으로 심리전이 펼쳐지는데,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다는 착각이 들만큼 빠져 들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2014년 아마존 브레이크스루 미스터리·스릴러 소설 부문 1, 2017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리더의 선택 소설 부문 1위로 채택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은 D. M. 풀리의 데뷔작이다. 저자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구조공학자로 일하면서 버려진 건물을 조사하는 동안 (소유자가 분명하지 않은 대여금고들로 꽉 찬) 지하의 금고실을 발견했고, 그 중 특별해 보이는 한 금고에 얽힌 미스터리를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는 지금도 건물의 구조 문제를 조사하고 리모델링을 진행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하는데, 바로 그러한 독특한 이력 때문에 이렇게나 방대하고 묵직한 두께의 놀라운 데뷔작이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금기를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이 수십 년의 시간을 넘나 들며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비리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특별한 울림을 안겨 준다. 한 편의 매끈한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매력 만점의 데뷔작이었다. D.M.풀리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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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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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비현실, 합리와 불합리는 아주 잘 어우러진 형태로 공존한다.

영원히 교차할 일이 없는 철길과도 같다. 우리는 그 양족에 바퀴를 얹고 달리고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현실적이어야 할 정치가가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현실을 초월해야 할 종교가가 세금을 안 내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인텔리전트 빌딩을 지으면서도 진지한 얼굴로 고사를 지낸다. 합리의 레일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냉혈한이 되고, 불합리의 레일로 기울어지면 광신도가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어느 지점에선가 탈선하게 되어 있다.   p..88~89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적인 초기작인 <용은 잠들다>가 새로운 옷을 입고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일본에서 1992년 초판이 출간된 작품으로, 그녀가 1987 '우리 이웃의 범죄'로 데뷔했으니 초기작인 셈이다. 국내에는 2006년에 출간되었는데, 당시 국내에 그녀의 작품이 서너 편 정도만 소개되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무라카미 하루키를 다 읽었다면 이제 미야베 미유키다!'라는 당시 초판의 띠지에 실린 문구가 지금 보니 재미있다. 그때로부터 십여 년이 넘은 지금은 그녀의 거의 모든 작품이 출간되어 있고, 확실하게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이있는 작가로 완벽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니 말이다. 초판에 비해 판형이 약간 작아지면서 페이지 수는 오히려 더 두툼해졌다. 하지만 글자 크기라던가 배열 등은 초판보다 가독성이 훨씬 더 좋아졌다. 심플해진 표지 이미지가 독특한 제목의 느낌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남다른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초자연 미스터리이지만, 생각보다 드라마틱한 전개가 있다거나 화려한 스케일의 사건이 등장하는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에 가깝게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그러면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고 계시는 건가요?"

이나무라 노리오는 조용히 대답했다.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와 제 아내에게는. 그냥 그것이 거기 있는 겁니다."

무심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이나무라 노리오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p.235

 

30년 만의 대형 태풍으로 인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쏟아 붓듯이 내리던 날 밤이었다. 잡지사 기자인 고사카는 고향집에 왔다가 가족들과 사소한 말다툼으로 화가 나서 도쿄로 돌아가겠다고 나온 참이었다. 이런 골치 아픈 날씨에 서둘러 돌아가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며 후회하던 차에 길 한복판에서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자동차도 제대로 다닐 수 없는 태풍 한복판에서 자전거를 몰고 비에 흠뻑 젖은 신지라는 고등학생을 만나게 된다. 그를 집에 데려다 주려고 가던 중 도로 한 복판에 맨홀 뚜껑이 열려 있고, 활짝 펼쳐진 우산은 도로 옆으로 흔들리며 굴러가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를 찾는 어른을 만나게 되는데, 정황상 어린 아이가 누군가 열어놓은 맨홀 뚜껑 때문에 실족사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고사카는 기자로서 초등학생의 실종사건을 취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신지가 맨홀 뚜껑을 열어둔 두 명의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은 자신은 물건이나 사람에게 남겨진 어떤 기억을 읽어낼 수 있는 초능력자, 사이킥이라고 고백하면서. 접촉하는 것만으로 마치 플로피디스크에서 정보를 읽어 내듯이 기억을 스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타인의 생각을 읽어 내고, 물건에 담겨 있는 주인의 감정이나 기억들을 장면들로 읽어내는 능력자가 등장한다고 하면, 사실 더 화려한 플롯과 스케일 큰 액션이 등장해야 할 것 같지만, 이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 가진 고뇌와 그들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태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년인 신지가 아니라 초능력을 가진 이들을 지켜보고 판단하는 어른인 잡지사 기자 고사카이다. 이야기는 고사카의 시선으로 진행되며, 그가 신지의 능력에 대해 믿을 지 말지 고민하고, 신지와 같은 능력을 지닌 나오야라는 스무살 청년에 의해 혼란스러워하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백지 협박 편지에 대한 미스터리가 주요 플롯이다. 아마도 신지와 나오야가 주인공으로 진행되었다면, 이 작품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가 선택한 것은 고사카였고, 그래서 초능력자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출판 편집자 스기무라 사부로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행복한 탐정' 시리즈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잡지사 기자로 일하고 있는 고사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동료간의 연애감정과 직장 상하 관계, 그리고 등장인물의 과거사까지 소소하게 드라마가 펼쳐지지만, 그 와중에 일곱 통의 협박 편지가 미스터리로 극에 긴장감을 부여 한다. 그리고 이러한 중심 플롯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완전히 다른 성향의 두 초능력 소년이 후반부로 가면서 특별한 연결 고리가 되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현실과 비현실, 합리와 불합리가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서 꽤나 많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를 믿는 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 믿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 미스터리의 진수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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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오나 2019-01-03 12:0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아무래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직업적 특성들로 캐릭터를 만드는 거겠죠?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빠가 돌아가시고 이제 한 해가 지났다. 겨우 그 만큼의 시간이 지났는데, 벌써 까마득하게 오래 전의 일인 것만 같다. 처음 겪는 가족의 죽음 앞에서, 나를 가장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아빠가 돌아가셨는데도 일상은 변함없이 계속되었다는 점이었다. 네 살짜리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해야 하는 시간 속에서 엄마가 감정이란 사치를 누릴 수는 없었으니까. 나에게 애도의 시간을 가질 여유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빵집에 들렀는데 이제 막 구운 소보로를 진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다지 좋아하는 종류가 아니었음에도 별 생각 없이 집어 들어 고른 빵들과 함께 계산을 했다. 아이의 유모차를 밀면서 집으로 향하는데, 들고 있는 봉투 속 빵의 온기가 느껴졌다. 갑자기 가슴이 꽉 메어져 왔다. 아빠는 이제 좋아하는 소보로 빵을 드시지 못하는 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거리를 걸어가는 중이었으므로, 눈물을 참고 꾹꾹 삼켜야 했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하루의 대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순간에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지만, 시간은 여전히 째깍째깍 흘러가고 우리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살아 남은 이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게 바로 인생에서 유일한 진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우리는 살아 가야 한다.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노인들을 생각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노인이 된 부모가 보인다. 당신들은....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바쳐 노인으로 다시 태어났을까. 그리고 지금 나와 더불어 노인이 될 게 분명한 아내와 노인이 된 우리를 기억해줄 딸아이를 본다. 혈통처럼 세월이 흐르고 꽃잎이 분분히 떨어져 사연처럼 쌓이고 해가 저문다. 삶이 이슥해지는 시간들. 사소하고 비범한 우리의 노년이 자박자박 발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p.62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올 해의 마지막 날 손홍규의 산문집을 읽었다.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이라니 제목부터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가로등 아래 놓은 골목을 딸아이와 함께 걸으며 나눈 대화를 들려준다. 딸은 묻고 아빠는 답하고, 아빠의 대답에 담긴 질문을 아이는 새로운 질문으로 바꾸어 대답한다. 나도 부모의 입장이라서 '아이가 앞으로 새롭게 발견하게 될 언어들이 벌써부터 그리워'라든가, '아직 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는 말에 뭉클해졌다. 매 순간 부모는 그렇게 아이를 통해서 새로운 걸 깨닫고, 몰랐던 걸 배우고, 사소한 일상의 순간들에 감사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한 마리 소를 사랑했던 소년이, 성년이 될 무렵 그 소를 떠나 보내기까지의 시간 동안 있었던 에피소드를 비롯해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저자의 어린 시절 풍경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소를 팔아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주며 그래, 소설이라는 걸 쓸 테냐.라고 물었던 아버지의 심정을 어쩐지 이해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건 내가 부모가 되어 버렸기 때문일까. 아마 몇 해전의 나였다면 이 장면에서 이해하고 싶었던 인물은 아버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위암으로 투병하던 고모의 부음을 들었을 무렵의 대학 새내기 시절, 애도와 잔치의 분위기가 뒤섞인 장례 풍습이 서먹했던 그는 '백 년 동안의 고독'속 마르케스 대령의 장례식을 떠올린다. 그렇게 저자의 삶 구석구석 문학이 함께 하고 있었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던 할머니의 죽음은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게 무엇인지를 천천히 깨달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했다고 한다. 지난해 나란히 칠순을 맞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글들은 더 애틋하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속속들이 잘 알지 못해서, 알고 싶어서 소설을 쓴다는 저자의 고백은, 세상 모든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평생을 함께 해온,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온 우리의 부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항상 어른의 모습이었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처음부터 나이든 모습이었을 것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한때 반짝반짝 빛나는 시절이 있었을 거라고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도 한때 우리처럼 사랑에 설레고, 실패에 좌절하고, 상실의 아픔을 겪기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온 걸음마다 이야기를 남겨둔' 우리의 부모들에게 더 말을 건네고, 더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이야기를 줍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게 자식이 부모를 기억하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방은 감옥의 혼거방만한 크기여서 원하든 원치 않든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다. 그러나 이따금 사람은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면서 동시에 세계와 대면하기도 한다. 글쓰기처럼 독서 역시 그런 행위다. 나는 아직 행복한 책 읽기가 무언지 잘 모른다. 내게 독서는 고달픈 행위였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건 마치 평소에는 존재를 감지할 수 없었던 평행우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일과 비슷하다. 낯설고 기이하지만 분명 내가 머문 시공간에 겹쳐진 또 다른 세계.    p.139

이 산문집의 많은 부분을 저자의 유년 시절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지만, 그 모든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칠레의 밤'을 읽으며,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아니 우리가, 시궁창에 처박히기 싫어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들 한다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페이지 바깥으로 흘러 넘치고 있다. '한국의 작가들은 살롱에서 먹고 마시고 춤춘다. 그 아래 지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다' 라는 문장에서 읽히는 그 깊은 분노와 고통과 슬픔이 책을 덮고도 아릿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현실에 발 딛고 서 있는 이들이 문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 보면 '누구에게나 유독 마음이 기우는 문장'들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문장들은 대부분 할머니에 대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그러한 문장들은 대부분 가족과 관련된 글들이었다. 그래서 이 산문집을 읽는 동안 문득문득 밑줄을 긋게 되고, 페이지를 멈추고 돌아보게 되고, 시간을 들여 행간에 숨어 있는 추억을 찾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가족과 관련되어서는 항상 상실과 결핍의 순간보다, 나는 그 이후의 시간들이 더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던 것 같다. 남아 있는 이들은 부재의 무게를 이겨내고 살아가야만 하니까. 아침은 매일 같이 우리를 찾아오지만 어제와 같은 아침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잃어버린 것은 영원히 되돌릴 수가 없으니 말이다. 누가 세상에서 사라졌든 말든, 계절은 바뀌고 시간은 흘러갔지만, 누군가에겐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그대로 일 테니까. 가끔은 나만 빼고 지구가 자전하기라도 하는 듯, 혼자 그렇게 제자리에 멈춰 선 듯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괜찮아. 괜찮아.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또 듣기 위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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