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태도 - 꾸준히 잘 쓰기 위해 다져야 할 몸과 마음의 기본기
에릭 메이젤 지음, 노지양 옮김 / 심플라이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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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에 적합한 사람으로 존재하려면 가장 먼저 일상적 자아를 벗어버려야 한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날씨와 사과 가격을 걱정하는 사람,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에게 창피를 당했던 사람, 지난 20년 동안 흡족할 만큼 충분히 글을 쓰지 못한 사람, 손님이 온다며 미친 듯이 집 안을 청소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한다.   p.20

글쓰기에 관련된 책은 이미 너무도 많다. 문장, 캐릭터, 플롯..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구체적으로 작가가 되기 위한 절차 등을 다루고 있는 책들을 나도 꽤 많이 읽어본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독특하게도 글을 쓰기 위한 '태도'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가로막는 무수한 이유로부터 당신의 글을 지킬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바쁜 일상에서 쓰는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또한 어떻게 하면 상상했던 글쓰기 공간을 창조하고 그 안에서 마법이 일어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 에릭 메이젤은 여러 권의 책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명한 창의력 컨설턴트로 20년 넘게 작가, 미술가, 음악가 등 예술가들을 상담하고 코치해왔다. 그렇게 글쓰기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깊이 있는 경험을 토대로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다. 총 여덟 챕터에 걸쳐 직접 글을 쓸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는 최적의 글쓰기 공간 만들기, 불필요한 감정을 다스리고 잡념에서 벗어나는 방법, 상상력을 회복하는 방법 등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각각의 챕터 속에 담긴 글마다 마지막에 'LESSON'이라고 키 포인트를 정리해서 요약해주고, 'TO DO'라고 해서 그에 맞는 실제 독자들이 해볼 수 있는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 동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단지 동기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온 분야에 관해 훌륭한 논픽션 책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단순한 동기에 불과하다. 동기는 작은 장애물만 만나면 바로 약해진다. 글의 첫 번째 페이지 어딘가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불타오르지 않는다면 실제로 무언가를 창조해낼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작품을 위해 뜨거워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흥분하라! 약간 미쳐도 좋다.    p.144~145

왜 마음먹은 만큼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일까, 왜 글쓰기에 몰입하기가 이렇게나 어려울까. 아마도 '글이 쓰고 싶다'는 막연한 욕망을 현실적으로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법한 문제들이다. 저자는 말한다. 당신의 글쓰기의 문제는 작법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고. 우리는 글쓰기를 회피하기 위해 동원했던 모든 핑계와 변명을 포기해야 한다. 너무 바쁘다, 너무 피곤하다,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심각하다, 너무 많은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책상에 앉으면 불편하다 등등... 사소하지만 글쓰기를 가로막는 데는 치명적인 수만 가지 이유들을 넘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꾸준히 쓰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실제로 글을 쓰는 물리적 공간에 대한 챕터 부분이었다. 사실 글쓰기 공간은 의자와 테이블, 고요한 그리고 약간의 경외심이면 충분하다. 물론 필요하다면 원하는 다른 어떤 것을 추가해도 좋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단순해지는 것'이다. 글을 쓰는 이의 목표는 오로지 집중하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저자는 이 책에서정말 글을 쓰고 싶은가?’ ‘, 무엇 때문에 쓰는가?’ ‘지금은 왜 글쓰기를 멈췄는가?무엇이 글쓰기를 방해하는가’ ‘못 쓰는가, 안 쓰는가’ ‘진짜 쓰고 싶은 글은 무엇인가?’ 등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를 생각하고, 말하고, 써보며 연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그러니 이 지침들을 따라가며 하나씩 실천하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든 꾸준히 자신의 글을 써나갈 수 있는 단단한글쓰기 근육이 길러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과 쓰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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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1cm - 너를 안으며 나를 안는 방법에 관하여
김은주 지음, 양현정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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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이 지루함과 동의어는 아니다. 대사를 외울 정도로 여러 번 본 영화라면 분명 당신의 인생영화일 것이다. 그 영화는 다음 장면을 예상할 수 있어도, 결말을 이미 알고 있어도, 언제 보아도 새로운 감동을 전해준다. 마찬가지로, 겨울이 지나고 매번 찾아오는 봄이 지루하지 않고 설레듯, 여행지에서 돌아와 집같이 익숙해진 사람과의 사랑은 언제나 찾아오는 봄같이 따뜻한 설렘을 준다.   p.83

7개국 80만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1cm' 시리즈의 김은주 작가가 4년 만에 출간하는 에세이이다. 어쩌다 보니 '1cm' 시리즈를 처음부터 다 읽었는데, 카피라이터 출신의 작가답게 감각적이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문구들이 마음을 건드리는 시리즈라서 가볍게 읽기에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면 처음 《1cm》 라는 책을 만났던 것이 2008년이니 벌써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이후로 일센티 플러스, 일센티 아트, 일센티 미니북까지 시리즈들을 만났었고, 작년에는 세계적 포토그래퍼 에밀리 블링코와의 콜라보로 완성한 <기분을 만지다>도 읽었다.

사실 '1cm'라는 수치는 실제 측정되는 크기로 눈금 열 개짜리, 손톱보다도 더 작은 분량이다. 그런데 그 작고도 하찮은 그것만큼의 마음으로 우리는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 아무 것도 아닌 말로 상처 받고, 사소한 행동 하나로 위로 받고,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행복해지고, 맛없는 점심 한끼로 기분 나빠지고.. 지나고 나면 별 것 도 아닌데 그 당시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게 절대 아닌 그런 일들 말이다. 그래서  '1cm' 시리즈'는 너무 바빠 죽을 것 같을 때 딱 '1cm 만큼의 여유', 도저히 풀리지 않는 난관에 봉착해 있을 때 '1cm 만큼만 생각을 바꿔보는 발상의 전환', 반복되는 일상에 의욕이 사라져 갈 때 잊고 있던 내 어린 시절의 꿈, '1cm 만큼의 설레임'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기존 시리즈에 비해서 이번 책에서는 좀 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로 인해 성장하게 되는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1cm 더 사랑하는 만큼 1cm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그려내고 있다.

 

낭만적 믿음에, 자주 가는 레스토랑, 자주 가는 옷 가게, 자주 가는 병원에서 얻을 수 있었던 이성적 믿음이 더해진다면, 수많은 경우의 수를 통해 이 사람이 건네는 위로는 따뜻한 수프 같고, 이 사람의 포옹은 바람 부는 날의 스카프같이 포근하며, 힘들거나 아픈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진짜 확신이 든다면, 그 사람과의 사랑은 아름다움에 견고함까지 갖춘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p.142

저자는 말한다. 행복이 가장 싫어하는 세 가지 단어가  지금 말고 그때. 이곳 말고 거기. 당신 말고 그 사람.”이라고. 내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현재,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소중하다는 말이다. 앞만 보고 달려 가느라 너무 가까운 곳에 있는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어두운 날도, 사실 어느 정도는 밝은 날이었고, 정말 어두운 날도 그만의 괜찮은 부분이 있는 날이라는 것을, 그렇게 긍정 마인드라는 힐링이 페이지 곳곳에 묻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유치하거나 평범하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따뜻해서 참 좋았다. 사랑은, 평범해도 괜찮다는 위로와 누군가에겐 특별하다는 위안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 늘 이기라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지는 게 억울하지 않다는 기분 또한 사랑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평온이다.

내가 일센티 시리즈를 좋아했던 이유는 너무 사랑스러운 그림들도 그렇고, 실려있는 글들이 모두 긍정적이라 책을 다 읽고 나면 어쩐지 내일은 나에게 조금 더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고, 이상하게 걱정 거리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부정적인 내가 사라지고 마냥 긍정적인 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책 역시 짧지만 다양한, 깊이 있지만 무겁지 않은 이야기들은 지치고 외로울 때, 언제든 펼쳐서 읽으면 나를 위로해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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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보이
데이비드 셰프 지음, 황소연 옮김 / 시공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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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닉을 기다려왔다. 닉의 귀가 시간이 지나면 녀석의 차 엔진 소리를 기다렸다. 차가 진입로에 들어와 멈추고 엔진이 웅웅거리다 멈추기를... 어느 때는 전화벨 소리를 기다리기도 했다. “안녕, 아빠. 뭐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닉일 수도 있었고, “셰프 씨, 우리가 댁의 아드님을 데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찰일 수도 있었다. 닉이 늦도록 귀가하지 않거나 전화를 하지 않을 때마다 나는 재앙을 떠올렸다. 닉이 죽었다고. 늘 닉이 죽는 생각을 했다.    p.20~21

닉은 야무지고 똑똑하고, 타인에게 싹싹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렇게 대단히 영특하고 활달한, 평범한 아이였던 닉은 대체 어떻게 메스에 중독된 것일까. 닉은 10년 이상 간헐적으로 약물을 복용해왔다. 메스는 가장 많이 남용되고 중독성이 강한 마약으로, 그 위력은 헤로인과 코카인을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하다고 한다. 닉의 아버지는 아들이 망가지는 걸 막으려고, 아들을 구하기 위해, 돕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아들의 메스 중독을 막으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아버지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약물 중독을 통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티브 카렐,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영화 [뷰티풀 보이] 원작 에세이가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마약 중독으로 평범했던 가정이, 부모가, 형제자매가 얼마나 쉽고 빠르게 붕괴되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셰프는 부모가 해결해줄 수 없는 절망의 세계로 가버린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진솔하게 풀어낸다. 약물중독 문제를 중독자와 그에게 중독되어가는 또 다른 중독자, 가족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특별하기도 하지만 매우 보편적이기도 하다. 모든 중독자의 이야기에는 누구나 공감할 면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나? 알아넌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책임을 통감했다. 그 길고 장황한 가정법을 반복했다. 만약에 내가 한계를 더 엄히 설정했더라면. 만약에 내가 더 일관성이 있었더라면. 만약에 내가 닉을 더 잘 보호했더라면. 만약에 내가 마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닉의 엄마와 내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이혼 후 우리가 같은 도시에 살았더라면.  p.267

자식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대부분의 부모는 죄책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이 내 잘못은 아니었는지, 혹시 내가 내 자식을 완전히 망쳐버린 것은 아닌지, 만약에 내가 좀더 잘했더라면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건 아닌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끔찍한 폭력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들려오면 사람들은 생각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어떻게 했길래 저런 사람으로 자라났을까, 부모가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고, 어쩌면 학대를 한 것은 아닐까. 따뜻한 환경에서 사랑으로 키운 아이는 절대 저런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 라고. 자식이 약물 중독이 되었다고 하면 아마도 누구나 이와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가정 환경이 대체 어떠했길래, 부모는 대체 아이가 저 지경이 되도록 뭘 한 거냐고 말이다. 하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 받고 화목하게 지냈다고 하더라도 이런 비극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누구의 자식도 예외일 수 없다. 누구나 이 작품 속 닉 처럼 될 수 있다.

어떤 부모든 자식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랄 것이다. 내 아이들이 항상 행복하게, 안전하게 지내기만을 꿈꾸며, 자신의 모든 사랑과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방식 중에 최선의 방법으로 아이를 기른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아이는 부모가 알 수 없는 존재로 성장해버릴 수밖에 없다. 

 

나는 닉의 의기소침함, 분노, 공허함, 닉의 후퇴, 닉의 혼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너는 누구니?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굴레와도 같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수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이를 망친 걸까? 내가 너무 오냐오냐했을까? 내 관심이 부족했을까? 관심이 너무 지나쳤을까? 만약에 우리가 시골로 이사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후회는 계속된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다른 가족들의 삶이 비극으로 치닫는 동안에도 아들의 추락을 방관하지 않는다. 아이는 수없이 거짓말을 하고 재발을 반복하지만 그때마다 저자는 쓰러진 자식을 일으켜 세우고 오직 믿음으로 기다려준다. 그리하여 '아들의 마약 중독을 함께한 아버지가 들려주는 구원의 여정'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뭉클하고, 가슴 아프게 펼쳐진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다음 페이지에서 갑작스럽게 닉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건 아닐까 하는 최악의 비극을 떠올렸다. 아마 저자의 삶도 매 순간 그러했을 것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될 까봐 불안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현재 닉은 팔 년째 약을 끊고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간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가족들은 그 시간과, 닉이 서른여섯 살이란 나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아직 이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부모이자, 누군가의 자식이다. 그러므로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있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지만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될 수도,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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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키크니의 주문제작 만화
키크니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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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초의 '댓글 주문형' 개그 만화다. 별칭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키크니가 네티즌들의 요청 댓글을 받아 한 컷의 만화로 답한 것이다. 처음에는 주문제작 만화라니.. 그게 뭐지 싶었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 수록 정말 빵빵 터지고, 허를 찌르는 위트와 반전 개그가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는 책이었다.

큰 덩치에 후드 차림의 왠지 뻔뻔한 듯 친근한 키크니, 그는 9년 동안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하루 평균 10시간씩 일했더니 어느 순간 번아웃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뭐라고 해보려고 시작한 SNS가 반년 만에 20만 명이 넘는 팔로워가 생겼고, 10만 건 이상의 댓글을 받는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독자와 작가가 함께 만든 소통형 콘텐츠의 탄생라는 것도 의미가 있고, 황당한 질문도 진지하게, 가슴 짠한 질문에는 따뜻하게, 유머로 공감을 만들어 내고, 유쾌한 위로를 안겨주는 한 컷의 만화가 주는 힘이란 대단했다.

극한 일상, 격한 소망, 찐한 사랑, 쿨한 농담, 묘한 상상 모두 다 가능하다. 무엇이든 그려드린다는 키크니는 그야말로 어이없는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만화를 그려 낸다. 질문은 이런 식이다. '비 내리는 제 시험지가 무슨 생각하는지 그려주세요.' 라든지 '카페 알바생인데요. 진상 손님들은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그려주세요.', '카드갑 갚아내고 또 카드 쓰는 저를 혼내주는 그림 좀 그려주세요', '미친듯이 에너지 솓으며 놀다 지쳐 잠든 우리 아기는 무슨 꿈을 꾸는지 그려주세요' 등등.. 누구나 무심코 일상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이라서 내 얘기 같고, 당신 얘기 같은 그런 사연들이다.

특히 페이지 구성 덕분에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페이지를 펼치면 오른쪽엔 그림, 왼쪽엔 질문이 있다. 그런데 이 그림과 질문이 한 쌍이 아니다. 오른쪽 페이지의 질문 글을 읽고 페이지를 넘겨야 만날 수 있는 만화가 바로 그에 대한 답이다. 그 덕에 댓글로 올라온 질문을 읽고 페이지를 넘기는 잠깐 동안 궁금해할 여지가 생기니 허를 찌르는 개그의 묘미가 더 해지는 느낌이다.

'많이 먹어도 살 안 찌는 제 모습 그려주세요' 라는 질문에 대한 키크니의 답변은 '그릴 수가 없어 주영아' 이다. 이렇게 배꼽 잡고 웃게 만드는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이 밤에 혼자 막 깔깔대며 웃는 중이다. 소소한 일상 속의 바람과 고민, 사연들을 담고 있어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했다.

이 책은 SNS에서 7개월간 연재한 작품 중 베스트와 미공개 작품을 모은 것이다. ‘일상, 소망, 사랑, 가족, 농담, 상상이라는 여섯 개의 키워드로 나누어 소개한다. 챕터별 4컷 만화, 펼쳐 보는 특별 일러스트훈남 키크니 브로마이드도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이미 SNS에서 키크니의 만화들을 보아 왔던 독자들이라도 책을 구입해서 봐야 할 이유가 있다. 난 반대로 이 책을 읽고 나서 키크니의 SNS를 찾아서 보게 되었다.

출근하는데 퇴근하고 싶은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 시험공부 잘 안 되는 학생들, 종일 육아에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낸 엄마들, 데이트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는 솔로들, 함께 사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속마음이 궁금한 반려인들... 그 외에도 피곤한 날, 지친 날, 우울한 날 이 책을 만나 보자. 누구라도 오 분도 안 되어 큭큭 대며 웃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책이니 말이다. '한 컷의 만화가 줄 수 있는 가장 유쾌한 위로'라는 문구처럼, 웃고, 울고, 통쾌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이 책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잊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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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배심원 스토리콜렉터 72
스티브 캐버나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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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사람들이 범죄로 기소되는 것은 슬픈 사실이다. 우리의 사법 시스템은 그것에 기초하고 있다. 빌어먹게도 그런 일은 매일 일어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한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에 사람들이 진실을 말할 때와 거짓을 말할 때를 알아볼 수 있었다. 거짓말쟁이들은 갖지 못하는 표정이 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상실과 고통이 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극도로 부당하다는 느낌. 나는 이런 사건들을 아주 많이 겪어왔기에 그것이 눈 한구석에 드러난 불꽃처럼 춤추는 것을 거의 알아볼 수 있었다.    p.63

할리우드의 막 떠오르는 스타, 최고의 영향력 있는 젊은 커플 로버트 솔로몬과 아리엘라 블룸은 막 결혼한 참이었다. 두 사람은 장편 공상과학영화에 주인공으로 낙찰되었고 리얼리티 시리즈 계약에 서명했다. 그들은 너무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리엘라와 경호실장이 나체 상태로 침실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그 현장을 목격한 것은 바로 남편인 로버트였고, 경찰 당국은 곧바로 사건 용의자로 로버트 솔로몬을 지목한다. 범인이 남긴 흉기와 표식에서도 로버트의 지문과 DNA가 발견되면서 그가 유죄 판결을 받으리라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제 바로 그 세기의 재판이 다음 주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스타들의 공식 소송자로 유명한 루디가 LA 뒷골목을 떠돌던 사기꾼 출신 변호사 에디의 뛰어난 능력을 눈여겨보고 그를 스카웃하기 위해 제안을 한다. 이 도시 역사상 가장 큰 형사재판에서 차석변호인을 맡을 생각이 있냐고. 하지만 방송에서 본 내용으로 미루어 에디는 로버트가 그들을 죽였다고 생각했고, 자신은 죄인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거절한다. 루디는 뉴욕 경찰이 그에게 살인범의 누명을 씌운 거라고 자신하고, 실제 의뢰인인 로버트를 만나고 나서 에디도 그가 결백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재능의 배우였다. 과연 로버트는 자신의 아내와 경호실장을 충동적으로 살해한 범인일까.

 

"나에 대해 좋은 말을 들었다면 아마 전부 사실이 아닐 겁니다. 나쁜 말을 들었다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거고요." 내가 말했다.

그는 코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대기에서 적대감을 빨아 들이듯.

"당신들이 '최고'의 게임을 준비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신사분들. 그게 필요할 거요." 프라이어가 말했다. 그는 바비를 계속 지켜보면서 검사석으로 다시 걸어갔다.   p.238

이야기는 변호사 에디와 천재 연쇄살인마 케인의 시점에서 각각 교차 진행된다. 에디가 재판에 참여하게 되기까지, 그리고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한 축이고, 케인이 배심원석에 앉게 되기까지의 치밀하고 계획적인 단계와 실제 재판이 벌어지면서 그가 벌이는 갖은 술수가 나머지 한 축이다. 법정 안팎에서 펼쳐지는 살인범과 변호사의 불꽃 튀는 진검승부를 다루는 작품이야 기존에 많았겠지만, 살인범이 자신이 저지른 사건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한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참신하다 못해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다. 지금도 인권변호사로 활동 중인 작가 스티브 캐버나의 탄탄한 법적 지식을 배경으로 놀라운 상상력과 독창적인 플롯이 만들어진 것이다. 스티브 캐버나가 존 그리샴, 마이클 코넬리의 뒤를 잇는 법정 스릴러계의 다크호스로 주목받고 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이 장르의 차세대 대표주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케인은 과연 어떻게 철저한 검증을 통해 선정되는 배심원단에 들어갈 수 있엇을까. 왜 그는 로버트에게 누명을 씌우고 법의 심판으로 유죄를 선고받게 하려는 걸까. 에디는 배심원석에 있는 그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을 까. 너무도 명백하게 유죄로 몰린 로버트는 누명을 벗을 수 잇을까. 페이지를 넘길 수록 궁금증은 늘어만 가고,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 멈출 수 없는 속도를 자랑하는 작품이었다. 마이클 코넬리, 리 차일드, 이언 랜킨 등 전 세계 거장들이 극찬했다는데, 다들 이 작품의 기발함과 독창적인 구성, 영리한 함정과 플롯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의 독창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법정 스릴러물은 웬만큼 읽어 봤다 싶은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으며 감탄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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