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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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인공은 이 동물 왕국에서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날개 달린 녀석들이 날아가서 톱 하나 훔쳐 오는 게 문제가 될 것 같나?"

"그럴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당신 이야기는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나는 대답했다.

"그렇게 따지면 이곳에 우리가 함께 있는 것도 개연성이 떨어지긴 마찬가지야." 마크 트웨인이 말했다.   p.94

우리의 주인공 조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다른 가족이라곤 없었으므로, 할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조니의 인생에서 가장 난관적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가난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조니의 할아버지는 둘만 있을 때도 줄창 욕을 했던 성격이 나쁜 사람이었다. 조니의 유일한 친구는  전염병과 기근이라는 이름의 닭 한 마리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시장에 가서 닭을 팔아 먹을 것을 좀 사오라고 시킨다. 조니는 그 닭을 사랑했고 녀석의 처지를 가엽게 여겼지만, 어쩔 수 없이 '전염병과 기근'을 데리고 시장으로 향한다. 평생 집 밖에 나와 본 적이 없었던 조니에게는 거리에서 보이는 광경들은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조니는 구걸하는 노파에게 자신은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지만, 만약 이 닭을 데려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게 해 줄 수 있다면 데려가도 좋다고, 닭을 건네준다. 노파는 조니에게 보답으로 담청색 씨앗을 한 움큼 꺼내어 주고, 씨앗을 심어 꽃이 피고 그것을 먹으면 두 번 다시 허기를 느끼지 않게 될 거라고 말한다. 조니는 그 말대로 씨앗을 심고 정성스레 돌보아 핀 꽃을 먹고, 동물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리하여 외롭던 조니에게 수많은 동물 친구들이 생기게 되고, 그들과 함께 숲 속에 있던 어느 날 조니는 올레오마가린 왕자가 납치됐으며 그를 구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전단을 보게 된다.

"내 잘못이 아니야. 네가 결말로 건너뛰자고 했고, 그 바람에 이 특별한 닭의 인생에 일어난 놀랍고도 행복한 사건들이 생략된 거야."

"누구 잘못인데?" 족제비가 물었다.

"물론, 조니가 이 닭과 다시 만나야 할 논리적인 이유는 없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논리와 사실은 별개야. 그리고 이 문제에서 사실은 이거야. 이제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고 닭은 돌아왔다는 것."     p.144

1879, 마크 트웨인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두 딸의 청으로 잡지에 나온 그림을 골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가난한 소년 조니가 마법의 씨앗을 얻고, 납치된 왕자를 구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 이야기이다. 후에 마크 트웨인은 대략적인 스토리를 16쪽에 걸쳐 정리했다. 이 문서는 사후 약 100년 후인 2011년에야 캘리포니아 대학의 마크 트웨인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되었고,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상을 수상한 부부, 작가 필립 스테드와 삽화가 에린 스테드가 작품을 완성한다.

마크 트웨인이 딸에게 남긴 단 한 편의 동화는 필립이 트웨인과 대화를 나눈다고 상상하면서 쓴 이야기와 에린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우아한 삽화를 통해 100년 만에 세상에 보여지게 된 것이다. 이야기는 마크 트웨인이 해준 이야기를 필립 스테드가 들려주는 방식으로, 일종의 액자 구성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중간 중간 마크 트웨인과 필립 트웨인이 이야기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말하며 그래서 닭은 어떻게 되었냐며, 노파는 죽었냐고, 혹은 개연성이 없다는 식의 대화를 나눈다. 동화 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그들의 만담이 너무도 재미있었다.

가난한 소년 조니가 마법의 씨앗을 얻고, 납치된 왕자를 구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 이야기 자체도 아름답지만, 유머러스하면서도 우아한 삽화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고전적 재료와 최첨단 기법, 예를 들면 목판, 잉크, 연필, 레이저 커팅 등을 조화롭게 사용해서 전반적으로 톤 다운된 색채감이 이야기와 너무도 잘 어우러져 너무 예쁜 그림책으로 완성되었다. 시간을 거슬로 우리 앞에 찾아온, 선량한 이들의 명예와 용기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마크 트웨인 특유의 독창성과 유머 감각이 반짝이는 아름답고, 따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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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살인사건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3
에드거 월리스 지음, 허선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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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튼은 곧 어느 비열하고 배은망덕한 여자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굶어 죽을 위기에 놓인 여자를 구해 주고 도움까지 줬는데 여자가 매번 자신을 배신했노라고 말이다. 손튼은 시인이었다. 게다가 거짓말을 생생하게 지어내는 재주도 있었다. 그 여자에게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조롱하는 불쾌하고 노골적인 비난을 들은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그 모욕감에 힘입어 거짓말이 진실처럼 술술 나왔다.    p.33

주옥 같은 시를 쓴 시인이자 저명한 백화점 사장이며 자선 활동으로도 유명한 백만장자 손튼 라인이 하이드파크 공원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사인은 심장을 관통한 총상이었으며, 가슴에 난 상처는 피 묻은 여자 실크 잠옷으로 묶여 있었다. 가슴 위에는 두 손이 가지런히 모인 채 올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수선화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이상한 건 옷은 제대로 갖춰 입었으나 신발은 두꺼운 펠트 천으로 된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구두와 자동차는 그 장소로부터 백 미터쯤 떨어진 길가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동차 안에서 피로 얼룩진 코트와 조끼가 발견되었는데, 조끼 주머니에서 폭 5센티미터 가량의 빨간색 정사각형 종이가 있었는데, 종이에는 검은 잉크로 굵게 한자 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 '자화번뇌'. 스스로 일을 자초했다는 뜻의 사자성어였다.

사실 젊은 사장인 손튼 라인은 자아도취에 빠져 상대를 배려하지 못했고, 품격 높지 않은 얇은 시집을 낸 허세 가득한 인물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가 백화점 경리과 직원인 오데트 라이더에게 구애를 했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회사 공금에 손을 대고 있는 백화점 매니저 밀버그를 조사하기 위해 탐정 잭 탈링과 약속을 잡은 참이었는데, 상처 받은 자존심에 생각을 바꿔 오데트 라이더에게 횡령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한다. 하지만 상하이에 경찰로 재직 당시 중국 공안 당국이 인정하는 유명한 형사였던 탈링은 그의 계략을 눈치채고 제안을 거절한다. 어쩔 수 없이 손튼은 절도의 달인인 샘 스테이가 출소하는 날 찾아가 오데트 라이더에게 복수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다음 날 갑작스럽게 손튼이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용의자는 그의 구애를 거절했던 오데트 라이더, 공금을 횡령해온 매니저 밀버그, 그리고 손튼을 흠모한 전과자 샘 스테이이다. 과연 손튼을 죽인 자는 누구일까?

상상력이 장난을 친 것일까, 아니면 모퉁이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는 흰 얼굴을 정말로 힐긋 본 것일까? 탈링이 다시 손전등을 비추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형체가 사라진 곳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다시 손전등을 비추어 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 쪽에서 나무가 우거진 수풀 쪽으로 검은 형체가 움직였던 게 분명했다. 다시 손전등을 비추어 보았지만 성능이 좋지 않아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다. 탈링은 형체가 사라진 방향으로 다시 터벅터벅 걸었다.    p.239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그 세 번째 작품이다. <트위스티드 캔들>, <네 명의 의인>에 이어 <수선화 살인사건>을 만나 보았다. 갑자기 판형이 바뀌어 시리즈 느낌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지만, 기존 두 권이 좀 올드한 느낌이었던 터라, 오히려 지금의 판형과 디자인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에드거 월리스는 영화킹콩의 원작자이자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와 동시대에 사랑받은 작가였다. 생전 17편의 희곡과 957편의 단편, 그리고 170여 편의 소설을 남겼을 뿐 아니라, 160여 편은 영화로 제작되었고, TV시리즈로도 방영된 유명 작가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의 세련된 추리, 스릴러 소설 작법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추리의 빈도가 그렇게 높지 않고, 20세기 초반의 대중작가들이 만든 작품 특유의 맛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그런 부분 때문에 더 흥미롭게 읽히기도 한다.

고전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앞서 만난 두 작품 보다 이번 작품이 더 술술 잘 읽혔으니 말이다. 투박하지만 정직한, 촌스럽지만 당시의 시대상이 느껴지는, 그런 고전 추리소설이 궁금하다면 에드거 월리스의 작품을 만나보면 어떨까 싶다. 엄청난 다작을 했던 작가답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테니 말이다. 세련된 요즘 스타일의 심리 스릴러나 복잡한 플롯의 미스터리만 읽어 왔던 독자들이라면, 에드거 월리스의 작품들을 굉장히 색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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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 애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조용한 천재
린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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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을 CEO로 밀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2008년 실리콘 밸리의 한 투자자가 <포천> 기자 애덤 라신스키에게 한 말이다. "웃기는 일이 되기 때문이지요. 애플에는 단지 사업이 잘되도록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품에 빠삭한 '천재'가 필요하잖아요. 팀 쿡은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이지 조직을 이끄는 인물이 아니에요. 게다가 애플은 사업 운영을 아웃소싱해도 되는 기업이라고요." 가혹하지만 일리가 있는 분석이었다.    p.25

2011 10 5,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는 1년 생존율 20퍼센트에 5년 생존율 7퍼센트에 불과한 질병을 안고 모든 확률에 저항하며 거의 10년을 살았지만, 56세라는 젊은 나이에 맞이하기에는 너무도 때이른 죽음이었다. 사람들은 잡스와 애플을 거의 불멸의 존재처럼 여겨왔는데,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위대한 혁신가의 죽음은 실로 전례 없는 반향을 일으켰다. , 그렇다면 과연 예지력 있는 리더를 잃은 애플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스티브 잡스의 죽음 이후, 모두가 "애플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애플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승리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애플의 조용한 천재팀 쿡이 있었다.

사실 모두가 예상한 애플의 차기 CEO는 팀 쿡이 아니었다. 그는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제품발표회에 올라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팀 쿡은 대체 어떻게 애플을 1200조 기업으로 만들었는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당시 잡스는 췌장암 치료와 간이식 수술을 받고 자택에서 요양을 하며 회복하는 중이었다. 그는 팀 툭에게 연락해 자신의 집으로 올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팀 쿡은 50세의 나이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어려운 자리에 오르게 된다. 혁신의 아이콘이자 세기의 천재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앞두고 왜 자신과는 정반대인 팀 쿡을 차기 CEO로 지목했을까? 팀 쿡이 그 자리에 오른 지 6주 만에 잡스는 세상을 떠났고, 사람들은 잡스가 없는 애플은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거리낌 없이 지적했다.

반면 쿡의 전술은 현저하게 달랐다. 그는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문제를 지적할 때는 가차 없었으며, 끝없는 질문 공세로 상대를 녹초가 되게 만들었다. "그는 아주 조용한 리더입니다." 조스위악의 말이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고함을 치는 사람도 아니지요... 그렇게 차분하고 침착하지만 질문 공세로 상대방을 조각 낼 수는 있습니다. 그의 부하직원이라면 자기 일을 잘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여지없이 당하거든요."   p.146~147

스티브 잡스의 입김 없이 완성된 애플 워치, 아이폰 X의 인기, 그리고 에어팟 이어폰과 하이엔드 시장을 완전히 평정한 컴퓨터까지, 애플의 성공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세계 1위 기업의 CEO임에도 지금껏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애플의 조용한 천재팀 쿡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애플에 관한 책은 시중에 넘쳐나지만, 가장 최신의 애플을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팀 쿡과 애플의 임원들이 직접 참여한 가장 솔직한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이 시대 최고의 경영자 팀 쿡, 그가 보여주는 놀라운 혜안과 빛나는 명언, 인간적인 통찰력을 통해, 무엇이 현재의 애플을 있게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오래 전 아이팟부터 사용해 온 소위 애플 마니아이다.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로 스마트폰은 항상 아이폰으로만 교체하며 사용했고, 아이맥, 맥북, 아이패드 등등.. 애플이 만드는 모든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당연히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잡스가 없는 애플이 곧 추락의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래서 지난 8년간 팀 쿡이 이끌어 온 애플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항상 관심있게 지켜봐왔고, 그가 한 시기의 혁명가였던 스티브 잡스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겨냥하고, 새로운 성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보아 왔다. 물론혁신에 목숨을 걸던 천재 잡스와안정실리에 탁월한 모범생 팀 쿡은 다르다. 너무도 당연하게 팀 쿡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었고, 누구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었다. 팀 쿡은 자신은 결코 잡스와 같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겠다고 말했고, 그저 자신이 될 수 있는 최상의 팀 쿡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한 마음과 책임감이 지금의 애플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애플을 더 나은 회사로 만들었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애플이 꿈꾸는 10년 후 미래가 여전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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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행복한 수채화 캘리그라피
박나미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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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SNS를 보다 보면 책 속 문구나 좋은 글귀들을 멋스러운 캘리그라피를 통해서 표현해놓은 것들이 시선을 사로잡곤 했다. 그런 캘리그라피가 수채화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수채화의 물맛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투명함, 자연스러운 번짐이 주는 매력이 더욱 돋보일 것 같다. 수채화 캘리그라피는 예쁜 글씨에 수채화 그림이 만나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은 수채화와 캘리그라피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워 보고, 쉽게 생활 속에 접목하는 방법까지를 담고 있다. 간단한 준비물을 가지고 시작해 볼 수 있어 바쁜 생활 속 작은 여유를 누리고 싶다면, 이번 기회에 수채화 캘리그라피를 취미로 배워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간단하고 쉬운 수채화와 캘리그라피 기법을 동시에 배울 수 있고, 일상 생활에서 수채화 캘리그라피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까지 담겨 있어 누군가에게 선물용으로 소품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수채화 캘리그라피에 필요한 종이, 물감, 팔레트, 붓 등 재료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시작해, 수채화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단계별 방법과 다양한 기법을 익힐 수 있도록 수채화 입문 과정이 먼저 진행된다. 그리고 캘리그라피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연습 방법들과 구성 방법들을 알려주는 캘리그라피 입문 과정이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포토샵을 활용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포토샵을 이용해 캘리그라피나 그림을 좋아하는 사진과 합성하거나, 출력해 다양한 소품을 꾸미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포토샵 전체를 자세히 배우려면 두꺼운 책 한 권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것은 수채화와 캘리그라피의 배경을 없애고 색감을 수정하는 과정 등을 크게 어렵지 않게 알려 주고 있어 누구라도 따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마지막 활용 방법 부분이었다. 수채화 캘리그라피를 통해서 생활 속에서 책갈피, 폴라로이드 프레임, 가렌다, 엽서, 이름표, 드라이플라워 액자, 텀블러, 연필꽂이, 청첩장 등등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물건을 만들 수 있는 팁들이라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 있다면 아주 특별한 소품이 될 것 같다.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드라이플라워 액자 만들기였다. 요즘은 드라이플라워가 참 예쁘고 다양한데다,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인데 수채화 캘리그라피를 통해서 만든 액자에 드라이플라워 장식을 이용해 만드니 너무 예뻤다.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좋을 것 같고, 집들이 선물로도 너무 특별할 것 같았다.

수채화나 캘리그라피에 관심이 있지만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이 책을 통해서 한번 시작해 보면 어떨까. 무엇보다 실생활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팁들이 가득해 배우기만 하고 쓸모 없는 취미가 아니라, 시간을 들이는 만큼 고스란히 보여지는 실용적인 취미라서 더 좋을 것 같다.

저자 역시 전공을 한 게 아니라 성인이 되어 수채화와 캘리그라피를 취미로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재피공방을 운영하며 자신이 느낀 즐거움과 노하우를 수강생들에게 알려줄 정도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 책을 통해 그 동안의 학습과 공방 수업을 통해 쌓은 저자만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하니 거창한 재료나 도구 없이도 생활 속에서 간단하고 재미있게 수채화 캘리그라피를 시작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수채화와 캘리를 함께 하면서 글과 그림이 서로 도와가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빛내 준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소소한 행복과 감성을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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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은네디 오코라포르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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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나를 본 순간부터 알았던 거야. 나만 빼고 다들 알았어.

"에우." 나는 천천히 말했다. "그게 이런 뜻이에요?"

여태껏 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고통에서 태어났다는 뜻이지. 사람들은 에우로 태어난 아이들은 결국 폭력적으로 된다고 믿어. 폭력이 더 많은 폭력을 잉태할 뿐이라고 생각하지.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건 알아, 너도 명심하렴."    p.55

종말 후 먼 미래의 아프리카, 밤처럼 피부가 새카만 오케케족은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피부가 태양의 색을 띠는 누루족이 등장했다. 오랜 세월 동안, 무력을 추구하던 누루족은 오케케족을 약탈하여 노예로 삼으며 영역을 확장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폭력을 통해 잉태된 혼혈아인 '에우'라는 존재가 있다. 에우 아이들은 누루족과도, 오케케족과도 다른 외모로 태어나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데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수치로 여겨지기에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천대받는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온예손우 역시 '에우'였다. 그녀의 어머니인 나지바는 누루족 무장단체에 의해 오케케족 마을 사람들이 집단 학살되고, 여자들은 모두 강간당하던 그 날, 피해를 당하고 사막에서 홀로 딸을 낳는다. 그리고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라는 뜻의 온예손우란 이름을 지어 준다.

그 최악의 날, 누루족이 오케케 여성들을 단순히 고문하고 수치를 주려고 그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니라, 에우 아이들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끔찍했다. 저자인 오코라포르는 2004년 내전 중이던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서 여성을 타깃으로 자행되는 강간이 일종의 전쟁 무기처럼 인종 청소를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되는 참상을 취재한 기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러한 전시 성폭력의 처참하고 끔찍한 양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어 더욱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온예손우에게 잠재되어 있던 마법적 재능이 발현되기 시작하면서, 소녀 마법사가 차별과 폭력으로 점철된 세계와 맞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마법이 등장하는 판타지물을 좋아한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일어섰다. 내 위로 보이는 건 전부 색깔뿐이었다. 수백 수천만의 색깔, 하지만 대부분 녹색이었다. 그 색들이 고이고, 쌓이고, 늘어나고, 수축되고, 무리짓고, 굽이쳤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아는 세계와 공존하고 있었다. 이게 이계였다. 염소들을 보니 기뻐 깡충거리며 메에메에 울고 있었다. 그 행복의 동작이 진한 푸른색을 피워 올렸고 그게 내 쪽으로 흘러왔다. 그걸 들이 마셨더니 냄새가...... 근사했다.    p.277

이 작품은 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하고 네뷸러 상과 로커스 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HBO에서 드라마로 만든다는 소식과 함께 「얼음과 불의 노래」의 저자 조지 R. R. 마틴이 제작에 참여하기로 하여 더욱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작가인 은네디 오코라포르는 마블의 「블랙팬서」의 스핀오프 코믹스 스토리 작가로서 활동할 뿐 아니라 SF 거장 옥타비아 버틀러의 [야생종] 드라마의 각본을 맡는 등 현재 할리우드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마법 판타지물에서 자주 사용되는 서사가 바로 십대 소년, 소녀인 주인공이 마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 소설일 것이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조금 무게감이 다른 것이 종말 후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성별과 인종 불평등, 할례 의식과 제노사이드란 묵직한 주제를 녹여 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판타지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극중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그런데 이 작품은 분명 판타지 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고 서 있다. 실제로 지금도 전세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폭력과 악, 그리고 국내에도 만연한 차별과 혐오의 문제는 더 이상 허구의 그것이라고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한 번 펼치면 내려놓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져들게 만드는 재미와 끔찍할 정도의 현실적인 모습에서 오는 강렬한 아픔이 함께하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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