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조스 레터 -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 주주 서한에서 밝힌 일과 성공의 14가지 원칙
스티브 앤더슨 지음, 한정훈 옮김 / 리더스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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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회사들이 모든 일이 잘 풀릴 때에만 살아남는다. 뭔가가 잘못되면 금세 현금흐름이 느려지고 자금이 빠듯해지고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다른 회사들이감기쯤으로 받아들일 일에 그들은 거의 퇴출 위기로 내몰린다.

반면에 아마존은 예산에실패항목을 배정함으로써 실패가 예견되는 많은 일에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유연성을 발휘한다. 몇 번의 성공으로 여러 번의 실패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실패에서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시도를 한다. 그리고 결국 성공으로 이끈다.      p.63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을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빠르게 매출 1,000억 달러를 달성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아마존이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작은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닷컴을 창업할 당시 제프 베조스는 서른 살이었다. 아마존닷컴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는 거창한 홍보 문구를 내세웠고,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아마존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시가총액 기준) 중 하나로 빠르게 성장했다. 아마존의 직원 수는 룩셈부르크, 아이슬란드, 바하마 등 여러 나라의 인구보다도 많은 64 7,000명에 달하며, 2018년 아마존의 기업 가치는 무려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평가 받았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브 앤더슨은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가 22년간 주주들에게 보낸 21통의 연례 주주 서한을 분석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그 속에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성장 사이클' '14가지 성장원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멀찍이 따돌리고 압도적인 세계 1등 부자가 된 베조스는 1년에 한 번 아마존 주주들에게 주주 서한을 보냈다. 일명 '베조스 레터'라 불리는 편지에는 1년간 아마존이 일군 실패와 성공에 대한 분석을 비롯해 앞으로의 비전 등이 담겨 있다. 저자는 1997년과 2018년 사이에 작성된 21통의 베조스 레터를 분석했고, 그 기간 동안 아마존의 운영 방식과 경이적인 성장을 이끈 요인과 그 비결을 파악했다. 일과 성장의 14가지 원칙은 개인뿐 아니라 스타트업과 거대 IT 비즈니스에까지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 매우 흥미로웠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위험과 성장,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그 요소는 바로 사람이다. 헨리 포드, 토머스 에디슨, 스티브 잡스, J.K.롤링 등 우리에게 친숙한 여러 인물들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핵심은 베조스와 여러 사람들이 품었던 것과 같은 위험과 성장의 마인드를 갖게 되면 우리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중요한 것은 '위험과 성장의 마인드'.   p.269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프 베조스를 당신의 비즈니스 코치로 초빙했다고 상상해보자. 누구나 그의 통찰력과 경험을 배워서 자신의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확장하는 계기로 삼고 싶을 것이다. 이 책이 바로 그 제프 베조스의 경영 철학에 대한 가이드라고 보면 될 것이다. 마치 아마존 밀림 깊은 곳을 탐험하는 고고학자처럼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비밀을 발견하게 될테니 말이다.

아마존의 성장 원칙은 크게 테스트, 구축, 성장 가속화, 확장이라는 카테고리로 정리해볼 수 있다. 전략적 테스트를 통해 아마존이 성장하는 데 기여한 세 가지 원칙은 성공적인 실패를 장려하고, 큰 아이디어에 배팅하고, 역동적인 발명과 혁신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미래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 세 가지 원칙은 고객에 집착하고, 장기적 사고를 적용하고, 플라이훨을 이해하는 것이다.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기여한 네 가지 원칙은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고, 기술로 시간을 단축하며, 주인의식을 고취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마존의 확장에 기여한 네 가지 원칙은 기업문화를 유지하고, 높인 기준에 집중하며, 중요한 것을 측정하고, 그것을 의심하고, 직감을 신뢰하고, 항상 '데이원'이라고 믿으라는 것이다. , '테스트하라-구축하라-가속화하라-확장하라, 그리고 이를 반복하라'로 이어지는 성장을 위한 4단계와 14가지 원칙이 실제 제프 베조스가 직접 쓴 베조스 레터들을 소개하면서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멀찍이 따돌리고 압도적인 세계 1등 부자 자리를 꿰차고 있는 제프 베조스의 머릿속엔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하다면, 성장을 위한 최고의 코칭이자 지침서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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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해 기억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8
섀넌 커크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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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 생활을 하면서 나는 한 가지 재능을 갈고 닦았다. 그 재능이 신의 섭리로 주어진 것인지, 엄마의 강철 같은 세계 안에서 살면서 체득한 것인지, 아빠의 호신술 교육으로 얻은 것인지, 아니면 내 신체 조건에서 비롯된 자연적 본능인지는 몰라도, 그건 전쟁터에서 위용을 떨치는 장군들의 자질과 유사했다. 쉽게 흔들리지 않고, 만족하지 않고, 계산에 능하고, 복수심을 품고, 차분하게 행동할 줄 아는 재능.    p.19

열여섯 소녀 리사는 어느 날 학교에 가던 길에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감금된다. 그녀는 현재 임신 7개월에 접어든 상태로, 부모님은 그 동안 까맣게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변호사인 엄마는 지난 몇 달간 재판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뉴욕 남부지법에서 보냈고, 해군 특수부대 출신의 물리학자인 아빠는 유방암 치료에 관한 책을 의뢰 받아 한창 집필에 열을 올리던 중이었다. 하지만 리사는 부모의 무관심을 탓할 생각도, 남자친구와 있었던 일에 대해 실수로 치부할 마음도 없었고, 임신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 당당한 소녀였다. 하지만 산부인과 진료 예약을 하루 앞둔 월요일, 갑작스럽게 납치를 당했고, 그들은 돈이나 리사가 아니라, 아기를 원했다. 몸값을 요구하는 흔한 유괴범으로 보이던 일당은 사실 임신한 소녀들을 납치해 출산 후 아기를 팔아넘기고 산모는 죽이는 인신매매범이자 살인범이었던 것이다.

리사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공포에 빠지는 대신 분노한다. 그리고 철저한 계산과 준비 하에 과학적으로 탈출 작전을 세우고, 그들에 대한 복수 계획을 치밀하게 짜기 시작한다. 보통 밀실에 혼자 갇혀 지내다 보면 무서워하고, 공황상태에 빠져 자포자기하거나, 두려움에 넋을 잃는 게 정상일 것 같은데 말이다. 그것도 성인이 아니라 열여섯 소녀라는 점 때문에 리사라는 캐릭터는 더욱 놀랍다. 사실 리사는 평범한 십대 소녀는 아니었다. 소시오 패스로 불릴 정도의 감정 절제력과 한번 본 것은 모두 기억하는 고도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감금되어 있는 시간 동안의 여정을 머릿속에서 한 편의 영화처럼 세밀히 거익에 저장해두고, 감금 생활 내내 빠짐없이 돌려보면서 매분, 매초, 매 장면을 분석하고, 그 안에 어떤 실마리나 도구가 있는지 찾는다. 이 작품의 원제인 ‘Method 15/33’은 리사가 연필깎이에 붙여준 번호 ‘15’와 납치 33일째를 조합한, 리사만의 작전명이기도 하다.

십칠 년이 지난 지금, 내겐 좌우명이 생겼다. "무언가를 기다릴 땐 만반의 준비를 하라." 무언가 기다릴 때는 정말로 넋 놓고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벽돌 한 장, 모르타르 한 겹, 또 벽돌 한 장, 이렇게 차근차근 피라미드를 쌓아가면서 목표물이 내게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요즘 나는 그 좌우명을 되새기면서, 내가 기다리는 목표는 반드시 실현된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그 어떤 의심이나 물리학 법칙, 심지어는 시간이 나를 가로막는다 하더라도.   p.124

현직 변호사인 섀넌 커크는 자신의 법적 지식을 활용, 합법적이면서도 잔인한 피해자의 복수 방식을 서술하며 위협적인 남성 가해자와 연약한 여성 피해자라는 범죄 소설의 틀을 과감하게 비틀었다. 덕분에 그녀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범죄 소설의 신기원을 마련했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무엇보다 스릴러 장르에서 전무후무한, 아주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탄생시켰다는 점에 있어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리사는 초등학교 1학년때 반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울지도, 펄쩍 뛰지도, 비명이나 고함을 지르지도 않고 침입자가 총을 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 패닉에 빠진 선생님 대신 침착하게 경보를 울렸다. 그녀는 기쁨이나 무서움이나 사랑 같은 감정이 닥쳐오면 마음속에 있는 스위치로 그것을 끄거나 켤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납치당한 순간에도 이동시간을 계산하고, 지극히 한정된 풍경과 냄새, 소리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며, 감금된 곳에 있는 몇 안 되는 도구들로 탈출 작전을 짜는 소녀 캐릭터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연필깎이, 뜨개바늘, 담요 등등의 평범한 도구들이 어떻게 무기가 될 지를 지켜보는 과정도 매우 흥미진진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뒤바뀌고,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여타의 납치 스릴러의 공식을 깨버리는 작품이라 인상적이었다. 열여섯 살 소녀의 완벽한 복수극이 궁금하다면, 납치 스릴러의 온갖 클리셰를 부수고 전복하는 새로운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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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다른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9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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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진짜 나라는 걸 당신이 어떻게 알 수 있지?”

“당연히 알 수 있지.”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나를 닮은 누군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욕실에 들어가고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기도 하고 거실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그게 나라는 걸 미양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다시 물었다.    p.58

아내는 처음에 남편에게 단순한 건망증이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잊어 버리거나, 약속을 잊고 다른 약속을 잡는다거나 하는 등 자주 무언가를 잊어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외출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뭔가 아무리 찾아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데리고 산책을 나가려고 했는데 '우리 개'가 보이지 않는다며 혹시 당신이 데리고 나간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개라니, 어떻게 그걸 잃어버렸다는 걸까. 애당초 키운 적도 없는 그것을 남편은 대체 어디서 찾겠다는 걸까. 게다가 아내는 종종 자신의 남편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얼마 전 시내에서 그를 마주친 날 아내는 집에서 남편에게 종일 연구실에만 있었냐고 묻지만, 그는 당연한 듯이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한다. 누구보다 남편을 믿고 있다고 자신했던 아내는 점점 불안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홀수 장이 아내의 시선으로 남편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짝수 장은 남편의 시선으로 아내의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물론 교차 진행되는 이 이야기 속 부부는 서로 완전히 다른 커플이다. 소설가인 나는 아내와 취향도 성격도 달라 자주 다투곤 한다. 별 것 아닌 작은 다툼이 큰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금세 미안해하고 화해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휴대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다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며 나에게 보여준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실린 남편을 찾는다는 게시글이었는데, 그곳에 올려져 있는 사진 속 남자의 모습이 자신과 너무도 닮아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도 사람들이 자신과 닮은 사람을 여기저기에서 목격했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던 터라 이번에도 비슷한 경우려니 생각한다. 하지만 종종 내가 있지도 않은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면, 어딘가에 정말 나를 닮은, 혹은 나와 똑같이 생긴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소설을 쓰는 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쓰는 나와 어딘가 닮은 데가 많았다. 그럼에도 결국 나와는 다른 타인이었다. 나는 내가 가보지 못한 어떤 곳으로 그들을 보내기도 하고, 위험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다음에는 무슨 행동을 할지, 무엇을 바라는지 등을 오래 추론하고 고민해보았다. 그들을 이해해보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그럼에도 그것도 다 소설이지 않나. 픽션, 허구, 거짓말이라고, 그거 어차피 다 지어낸 거라고.    p.111~112

아내는 개를 잃어 버렸다고 믿고 있는 남편을 위해 강아지를 새로 구해 집으로 데려오지만, 남편은 이건 우리 개가 아니라며, 대체 우리 개는 어디 있냐고,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그들은 개를 키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내는 낮에 연구실로 전화를 했는데, 왜 거기 사람들이 아무도 당신을 모르냐고, 대체 나한테 뭘 숨기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에게 왜 약을 먹지 않느냐고, 당신은 아픈 사람이라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당신이 기억하는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모두 다 소설 속 이야기일 뿐, 그냥 당신이 그렇다고 믿는 이야기들일 뿐이라고 말이다. 대체 어느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어느 쪽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한편 소설가인 나는 게시판에 올려진 글의 내용이 자신이 쓴 소설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라, 그 여자에게 연락해 만나기로 한다. 하지만 정작 찾아간 여자의 집에서 나를 남편처럼 대하는 여자를 마주하고 충격에 빠지고 만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점점 무너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증명해내야 하는 것일까.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가 벌써 열아홉 번째 작품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2019년 『현대문학』 1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것으로, 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 이후 임현이 두 번째로 발표하는 책이다.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부터 무너져가는 결혼생활과 마침내 내가 아닌 나의 삶과 만나는 순간 겪게 되는 정체성의 붕괴를 촘촘히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짧은 분량이지만 여러 번 다시 되돌아가 읽게 만든다. 삶과 허구, 둘 가운데 어느 쪽도 신빙성의 우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서로 경계를 모르고 뒤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작품은 매우 흥미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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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이 설계한 사소하고 위대한 과학 - 슈퍼 히어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세바스찬 알바라도 지음, 박지웅 옮김 / 하이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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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등장하는 개미는 크기가 작다는 이점을 이용해 감시 카메라를 무력화하는 잠입 요원으로 활동하거나, 비밀 서류를 숨기거나, 함정에 빠진 앤트맨을 구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행크 핌은 이러한 장점을 이용하는 대신 일부 개미를 선별하여 거대화 한 다음 개미 보병으로 활용했다. <앤트맨> 그리고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파란색 핌 입자를 이용하여 크기가 커진 개미를 볼 수 있다.    p.54~55

수많은 마블 영화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과학적 기술이 주요한 소재로 사용되는 대부분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언젠가는 저런 기술들이 실제로 가능해질까?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호기심을 해소해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스파이더맨은 어떻게 정제 단백질을 이용한 웹 슈터로 거미줄을 쏠 수 있는 걸까? 묠니르를 휘둘러 번개를 불러낼 때 토르의 머리 주변에 작용하는 힘은 무엇일까? 아마도 현실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영화 속 과학 기술들이 진짜라면 어떨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말한다. 놀랍게도 영화에 등장한 거의 모든 기술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고.

 

이 책은 마블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들을 43개의 주제로 나누어 살펴보고, 마블의 과학 설정과 이에 대응하는 현실의 기술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절대 목표를 놓치지 않는 호크아이의 놀라운 궁술, 더듬이를 통해 다른 생명체의 감정 상태를 보고 제어할 수 있는 맨티스, 히드라 소속 과학자에게 세뇌 당해 기억이 말소된 버키, 병약한 스티브 로저스가 단 몇 분만에 완벽한 신체를 가진 강력한 캡틴 아메리카로 변하게 되는 원리 등 마블 영화에 숨어 있는 과학 상식을 파헤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브루스 배너는 감마선을 조사하는 실험에 실패하면서 헐크가 된다. 무기나 슈퍼 솔저를 만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 단지 방사선에 대한 세포의 회복력을 높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장비의 오작동으로 감마선이 배너의 체세포에 영구적인 변형을 일으켰다.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사무엘 스턴스 박사는 헐크 변신이 배너의 편도선에서 나오는 감마선 펄스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여기까지 보면 감마선은 마치 일반인을 화가 잔뜩 난 괴물로 바꾸는 촉매 역할을 하는 듯하다.    p.254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서 스티브와 버키는 오랜 기간 냉동 상태로 있었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늙지 않은 채 소생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사람이 캡틴 아메리카나 윈터 솔저처럼 단 하루도 늙지 않고 수십 년을 살 수 있을까? 슈퍼 히어로인 이들과는 다르게 사람은 당장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주변의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고 만다. 장기가 기능을 멈추고 호흡 부전과 심부전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추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영화 속에서 이들에게 적용되었던 상상의 냉동 기술은 많은 사람들이 현실로 구현하고 싶어 하는 오랜 소망이다. 실제로 의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못 고치는 병이 없는 시대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냉동 인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몇 군데 있다. 현재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동면 시작 체계를 이해하기 위한 전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현존하는 과학과 영화 속 상상력의 유사도를 비교해보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 어느 정도 그려지기도 한다. 저자는 과학자의 눈으로 마블의 각종 설정을 바라보며 리얼한 현실 과학을 풀어놓는다. 히어로가 된 블랙 팬서와 빌런이 된 킬몽거에게서 유전학을,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져에게서 냉동 인간 기술을, 타노스의 리얼리티 스톤에서 광학을 찾아 낸다. 저자는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엑스맨의 초능력을 형성하는 유전 원리를 이해하고 싶다는 거였다고 말한다. 초능력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는 과학자가 되자는 마음을 먹었다고 하니,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명확히 보인다. 과학은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그 상상력 속에 미래가 담겨 있다. 마블의 매력적인 영화들을 보면서 한 번쯤 슈퍼 히어로들의 능력과 탄생 배경에 호기심을 품었던 적이 있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영화적 상상력에서 출발해 현실의 과학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이 마블의 영화들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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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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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은 '유레카'의 순간처럼 갑자기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훑어 보고, 샅샅이 살펴보고, 골똘히 바라보아야 이해된다. 하지만 몇 단계를 거쳐 이해하고 나면 그 작품의 의미나 다른 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눈앞의 수수께끼를 풀었고, 몇 분 동안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마 그림 속 이야기나 인물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을 수도 있다. 어려운 그림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누구, 무엇, 어디를 그렸는지 어느 정도 파악했을 수도 있다.    p.31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고, 집에 좋아하는 그림을 걸어두고 보기도 화며, 가끔은 미술과 그림 읽기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미술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명작'들이야 그다지 어렵지 않겠지만, 난해하고, 추상적인 그림들도 많으니, 사실 그런 작품들을 해석하는 것은 감상하는 사람의 자의적인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림을 본다. 왜냐하면 그림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위로와 감동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주 사적이고도 특별한 그림 감상법을 제시하는 '고전 미술 가이드'이다. 저자가 큐레이터로 일하며 미술 평론가로 활동 중이라 매우 전문적이지만, 그만큼 신선하고 색다른 그림 읽기를 보여 준다. 저자는 인식론에서백지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인타불라 라사TABULA RASA’ 10가지 키워드로 풀어내 우리에게 하나의 감상법으로 제안한다. T 'Time(시간)', A 'Association(관계)', B 'Background(배경)', U 'Understand(이해하기)', L 'Look again(다시 보기)', A 'Assess(평가하기)이다. 그리고 나머지 'Rhythm(리듬)', 'Allegory(비유)', 'Structure(구도)', 'Atmosphere(분위기)'라는 뜻이다. 마주하는 시간Time, 작품과 나와의 관계Association, 작품을 이루는 배경Background, 이를 통해 이뤄지는 이해Understand까지 되고 나면 다시 보는 과정Look Again이 이어지고, 마침내 평가Assessment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다는 식이다.

아름다움은 너무 케케묵은 개념 같아서 우리는 요즘 거의 입 밖에 내려고 하지 않는다. 현대 미술에서는 거의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조건이 되었지만, 고전 미술은 아름다움만으로 평가될 때가 너무 많다. 세밀하게 관찰하고 능수능란하게 묘사한 고전 미술 작품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고전 미술 전시에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전원 풍경이나 멋있고 정교한 그림들이 넘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시다. 이런 그림을 보면서 사람들은 보통 평범하고 진부한 감상평밖에 말하지 못한다.    p.145

그렇게타불라 TABULA'에 해당하는 키워드까지 잘 따라가면, 이제 틀을 깨고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어지는 키워드는 '라사 RASA'에 해당되는 단계들이다. 그림의 역동성을 만드는 리듬Rhythm과 작가가 몰래 건네는 메시지를 담은 비유Allegory, 보이지 않는 액자인 구도Structure까지 살펴보고 나면 우리 앞에는 명작만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Atmosphere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20세기 이전의 위대한 작가들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이러한 고전 미술 작품 앞에서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다른 시대와 장소로 건너가지 못한 채, 역사와 수수께끼, 이야기와 신앙과 우상으로 가득한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작품은 그저 알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니 말이다. 이 책은 적어도 그러한 작가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싶다는 의도에서 쓰여졌다.

우리는 보통 미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말이나 글을 통해 정보를 어느 정도 얻고 나서 감상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정보를 얻기 전에 먼저 자신의 눈으로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예술작품을 읽으려고 노력하기 전에 보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타불라 라사TABULA RASA’라는 낯선 단어를 10가지 키워드로 풀어내어 설명하는 방식이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 각각의 키워드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추상적이지도 않고, 어려운 용어들을 남발하지도 않으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쉽게 쓰여 있다. 그러니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당장 미술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보가 없어서 그림에 대해 모를수록 더 잘 보이고, 낯설수록 더 재미있다면.. 누구라도 정보나 선입견 없이 오롯하게 그림 그 자체를 스스로의 눈으로 보면서 감상하고 싶어질 테니 말이다. 한 번쯤은 나도 미술을 '읽지 않고도 제대로 보는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이 놀라운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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