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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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만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판단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며 터무니없이 성급하게 내린 결정에 괜히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윈 씨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고 친구가 속는 모습에 진심으로 유감스러워할 사람이긴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짜로 올리버 트위스트가 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p.168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는 사람들, 즉 빈민이나 노약자에게 거처와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곳인 구빈원을 어느 마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17~19세기 영국에 있었던 이 기관은 신체장애자를 비롯해서 노인, 부랑아와 실업자,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 미혼모, 고아 등을 모두 수용했던 데다 의료 활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위생 및 안전수준도 매우 낮았으며, 그곳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속출할 정도로 열악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어느 날 한 아이가 태어난다. 젊은 여인은 아이를 낳자 마자 죽어 버렸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구빈원의 고아로 늘 배를 곯아 하릴없이 세파에 이리저리 시달리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 아이가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이다.

 

구빈원, 혹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지부인 고아 농장 모두 아이들에게 아주 부실하고 매우 적은 양의 음식만 제공했고, 대부분은 굶주림과 추위에 병들거나 방임으로 인해 사고를 당하곤 했다. 아홉 살이 된 올리버는 그곳에서 지내며 허기에 시달려 어느 날 죽 한 그릇을 먹고 조금만 더 달라고 말했다는 죄로 그곳에서 쫓겨나다시피 장의사의 가게에 도제로 가게 된다. 한 달 간의 시험 기간이 끝나고 정식으로 도제가 되었지만, 고참인 노아의 유세와 학대를 참다 못해 주먹을 날리게 되고 도망치다 런던으로 향하게 된다. 런던에서는 자기 또래 소년을 따라갔다가 소매치기 범죄단에 끌려가게 되고, 어떤 신사가 올리버를 도와주지만 결국 다시 범죄단에 납치되고 만다. 그야말로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올리버의 삶은 이 두툼한 페이지가 끝날 때까지 계속 된다. 도둑으로 오해 받고, 납치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평판이 만들어지고, 아파서 죽을 뻔하는 등 불운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코니 부인, 구빈원 밖 구제라는 게요, 잘만 관리하면 교구의 안전 장치가 되지요. 가장 큰 원칙은 극빈자들에게 정확히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만 주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지쳐서 구걸하러 오지 않거든요.” 교구관이 우월한 지식을 뽐내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세상에! 참으로 영리한 대처네요, 정말!" 코니 부인이 감탄했다.     p.262

 

현대지성 클래식 스물 아홉 번째 작품은 ‘고아원 소년의 여정’이라는 부제가 달린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이다.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고아 소년의 인생 역정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1834년 시행된 신 구빈법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비판하고 있다. 당시 어린 소년이 주인공인 최초의 작품이자, 빈민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예리한 묘사로 화제였다고 한다. 게다가 19세기 최고의 삽화가였던 조지 크룩생크의 삽화가 24장 수록되어 당시의 배경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구빈법은 가난을 무능력하고, 게으른 개인의 죄악쯤으로 취급해 의식주를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라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실질적 혜택은 형편없었고, 시설 또한 매우 열악했지만 말이다.

 

찰스 디킨스는 '모든 역경에서 살아남아 결국 승리하는 선의 원리를 소년 올리버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의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벤틀리 미셀러니』라는 잡지에 2년 간 연재되었었는데, 신 구빈법 문제를 과감히 붙들고 그 비인간성과 통제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넘치는 유머 감각으로 대중의 심리를 꿰뚫어 ‘경악할 만한 신파극’을 잘 쓰는 작가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여러 번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 각색되고, 공연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성장 소설이자 모험 소설이기도 하고, 다양한 등장인물이 엮이고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온갖 사건 사고들이 신파조 풍속소설로서의 매력도 가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걸 알고 읽더라도,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비극과 희극이 번갈아 등장하며, 우리의 가슴을 졸이게 하고, 웃겨주고, 마음 아프게 하고, 감정 이입하게 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가장 ‘디킨스다운’ 소설이자 19세기 최고의 영국문학이라는 평가처럼, 15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동시대적으로 읽히는, 그리고 매번 읽을 때마다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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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웨이 다운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황석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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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있어, 그 사람에게 속삭였다.
약해지면 안 돼, 나에게 속삭였다.
왜냐면
우는 건
룰에 어긋나니까.     p.30

 

그저께, 형이 총에 맞았고 죽어 버렸다. 숀이 죽었다. 이 말이 너무 이상하고 너무 슬프다. 이야기의 화자는 열다섯 윌이다. 윌은 형인 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 지진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지만, 그래서 이게 지진과 얼마나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땅이 완전히 갈라져서 입을 벌리고 자신을 집어삼킨 기분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금방 꺼질 듯한 가로등처럼 숀의 시신에 매달려 있었고, 목격한 정보에 대해 묻는 경관의 질문에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총성은 모든 사람의 귀와 눈을 멀게 했고, 누군가가 죽었을 때는 투명인간이 되는 게 최선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윌은 형의 망가진 서랍에서 총을 찾아낸다. 그리고 울다 잠든 엄마 몰래, 현관문을 빠져 나와 엘리베이터에 탄다. 8층에서 1층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60초. 소년은 지금 살인자가 되려는 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당했으니까. 그를 죽인 사람을 찾아내어 죽이고, 복수해야 하는 것이 룰이니까.

 

 

그런데 총을 쏴보긴 했어?
그 애가 물었다.
상관없어.
내가 말했다.
상관없다.       p.143

 

대단히 이상한 작품이고, 또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소년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서사는 운문 형식으로 쓰여 있어 일반적인 소설과는 완전히 다르다. 사실상 소년이 형의 복수를 결심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전부이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엘리베이터는 매 층마다 멈춰 서고,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벌어지는 소년의 심리 묘사가 긴장감 넘치게 이어져서 지루할 틈 없이 페이지가 넘어 간다.

 

이 작품은 뉴베리 아너 상과 에드거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저자인 제이슨 레이놀즈는 책을 읽지 않는 10대들을 위해, 지루하지 않은 작품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영화의 씬처럼 그려져 있어 잘 읽히고, 단어와 문장의 배치, 폰트 기울기, 심지어 굵기까지 연출되어 있어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너무도 영화 같은 이 소설의 번역 또한 영화 번역가가 작업을 했다. 영화 번역과 출판 번역은 번역 문법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짧고 기발한 단편 영화 같아서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그 동안 만나왔던 소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앉은 자리에서 전부 읽을 수 밖에 없는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곧 영화화 될 예정이라고 하니, 스크린에서 펼쳐질 이야기는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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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영어회화 이디엄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영어회화 이디엄 1
김아영.Jennifer Grill 지음 / 사람in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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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엄은 개별 단어의 뜻으로는 유추하기 힘든, 고유의 관용어를 말한다. 둘 이상의 단어들이 연결되어 그 단어들이 가지는 제 뜻 이외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거라, 영어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는 무조건 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순히 단어들의 이디엄만 외우는 것보다, 해당 언어의 문화와 배경에 대해서 앍고 외우는 것이 더 쉽고,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암기한 이디엄들을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문화들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클 테고 말이다. 

 

기존에 나와 있는 이디엄 책들이 대부분 이디엄-예문의 1대1 구조로 되어 있는 반면에, 이번에 만난 책은 구어체 영어에서 자주 쓰이는 이디엄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구어체 회화를 수록하고 있는 것이 차별화된 부분이다. 하나의 회화에 이디엄 5~6개가 모두 들어가 있고, 하나의 레슨 당 이런 대화들이 세 개씩 수록되어 있다. 최소 세 번씩 반복하면서 듣게 되니, 자연스레 암기는 따라올 수밖에 없을 테고 말이다.

 

 

이 책은 <미국 영어 회화 문법> 시리즈로 대한민국 영문법 학습에 새 바람을 일으켰던 저자의 신작이다. 미국 구어체 영어에서 자주 쓰이는 이디엄 130여개를 25개의 레슨으로 구성해 들려준다.

 

페이지를 펼치면 왼쪽이 한글 예문 오른쪽이 영어 예문이다. 그리고 상단에 있는 QR를 찍어 음성 파일을 들을 수 있다. 한글 해석을 읽으면서 영어 음원을 같이 들어도 되고, 음성 파일만 먼저 듣고 내용을 1차 파악한 뒤 지문을 확인해도 된다. 특히나 좋은 것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봐야 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어 공부가 보통 그렇듯 처음에는 의욕 충만해서 시작하다가 중단해서, 중간부터 뒷 페이지는 새 책 그대로 덮여 있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기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 혹은 흥미로운 사진이 보이는 경우에 그 페이지부터 시작해도 좋다. 그리고 해당 레슨의 세 가지 유닛을 각기 다른 예문으로 반복하게 되면, 최소 이디엄을 여섯 번은 보는 셈이라 자동적으로 암기에도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새해가 시작되면 누구나 결심하는 것들 중에 다이어트 다음으로 외국어 공부가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작심삼일로 끝나게 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도 외국어 공부일 테고 말이다. 사실 학창 시절에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우리는 영어 공부를 해왔다. 그래서 아는 단어들은 꽤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전에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분명히 아는 단어의 조합인데도 말이다. 바로 그런 경우에 필요한 것이 영어회화 이디엄이다. 이디엄을 알게 되면, 원어민들의 대화에서 등장하는 속뜻과 뉘앙스를 이해하게 된다. 그냥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속말까지 말하고 알아듣게 되는 것이다.

 

미국인의 생생한 일상과 문화가 담긴 문맥 바탕의 실제 회화들이라 더욱 생생하고, 재미있게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현실 구어체 회화 공부를 해보고 싶다면, 억지로 외우는 방식 말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면, 미국인 특유의 감성과 그들의 문화까지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무슨 얘긴지 알아만 들어도 회화의 반은 끝난다고 하지 않는가. 영어회화 이디엄을 통해서 제대로 된 구어체 영어를 배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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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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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망상과 종교적 원리주의가 내 삶을 어떤 모습으로 규정해 가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 삶에서 앗아 가고 그 자리를 학위와 자격증 - 점잖은 외형을 갖추는 데 필요한 것 - 등으로만 채워 가도록 할지 외할머니라면 이해했을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예전에도 일어났던 일들이다. 이것은 엄마와 딸 사이에 일어난 두 번째 절교였다. 테이프는 무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p.61

 

인간이 다스리는 세상이 망한다 해도,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계속 살아갈 만한 가족이 여기 있다. 미국 아이다호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 가족의 7남매 중 네 명은 출생증명서 조차 없었다. 가정 분만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의사나 간호사에게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의료 기록도 없고, 교실이라는 곳에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학적부도 없었다.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모르몬교 광신도 아버지, 아버지의 폭력성을 방관하고 동종요법을 맹신하는 어머니, 여성에게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서슴없이 가하는 오빠.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가능한 거냐고 의심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수백 년 전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겨우 십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저자인 타라 웨스트오버가 일곱 살이던 해,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다른 가족들과 다르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녀를 비롯해 형제, 자매들은 기본 적인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고, 병원 진료조차 받지 못한 채 유년 시절을 보낸다.

 

이 책은 16년간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아버지가 구축한 세계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던 소녀가 교육의 기회를 스스로 쟁취하여 눈을 떠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열여섯 살까지 학교에 가본 적이 없었던 소녀가 케임브리지 박사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믿기 어려울 만큼 놀랍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경이로웠다. 공교육은 정부가 아이들을 세뇌하는 거라고 믿었던 아버지 밑에서 세상과 교류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생활하는 건 대체 어떤 걸까.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자신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그 사람의 내부에 있어요." 그가 말했다. "스타인버그 교수는 이 상황을 <피그말리온>에 비유하더군요. 타라, 그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케리 박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날카로운 눈과 꿰뚫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인공은 좋은 옷을 입은 하층 노동자였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일단 그 믿음이 생긴 후에는 그녀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됐지요."     p.381

 

타라 웨스트오버의 첫 저술이자, 회고록인 이 책은 2018년 2월 출간되자마자 미국 출판계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54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영미권에서만 3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 인사들의 찬사 속에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혔으니 말이다. 덕분에 타라 웨스트오버는 2019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타라는 산파이자 동종 요법 치유사인 어머니를 도와 약초를 끓이며 여름을 보냈고, 겨울에는 아버지의 폐철 처리장에서 폐철을 모으고 자르는 일을 했다. 책이라고는 성경과 모르몬 경정 이외에는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었고, 친구나 이성을 대하는 법 등 사회생활 경험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랬던 그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간 셋째 오빠가 집에 돌아와서 산 너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던 열여섯 살 때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대입자격시험(ACT)에 필요한 과목들을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기적처럼 대학에 합격했다.

 

물론 기초 교유 과정을 모두 건너뛴 채로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대학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기에, 그녀에게 세상은 지붕 아래 있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들었던 세상과 너무나도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세계가 뒤집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원하든 원치 않든 자연스레 교육 과정을 거치며 살아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배움'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순간순간 뭉클해졌다. 그저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 했던 한 여성의 삶은 마치 영화처럼 드라마틱했지만, 그것이 실제 지구상 어딘가에서 벌어졌던 일이라고 생각하면 먹먹한 기분 마저 들었다. '책에 쓰인 말들을 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읽는 것은 전율이 흐를 정도로 기뿐 일'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그녀가 쓴 에세이에 대해서 지난 30년 간 본 것들 중 가장 훌륭하다는 교수의 말에 목이 메이는 순간, 그리고 그녀가 케임브리지에 올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박사의 말을 듣고 생각하는 순간 등.. 이 책에는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뭉클해지는 장면들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움이라는 것이 단순히 좋은 대학에서 학위를 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고 더 넓게 보는 눈을 뜨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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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지 않는 웹소설 연재의 기술 - 유료 누적 조회수 5천만 산경 작가의
산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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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회장이 국밥집에 가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단돈 천 원 때문에 화를 내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회장이니까 값싼 국밥집엔 안 다닐 거라고, 천 원 정도는 돈으로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밋밋하게 나오는 겁니다. 인간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쓰기 전에 캐릭터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p.34~35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김비서가 왜 그럴까?> <저스티스> 등 인기 드라마의 원작들이 모두 웹소설이었다. 국내 웹소설 시장은 2013년 100억원에서 2018년 4000억원 규모로 5년 만에 40배 이상 커져 이른바 '대세'가 되었다. 웹소설은 2000년대 초반 등장한 ‘인터넷 소설’의 계보를 잇는데, 스마트폰을 이용해 짧은 시간 동안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라 그 파급효과가 더 큰 것 같다. 로맨스 소설뿐만 아니라 무협, 판타지, SF 등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읽히던 장르소설들이 인터넷 소설로 불렸을 때는 소수의 마니아들이 모이는 웹사이트에서만 읽히거나 값싸게 출간돼 ‘도서대여점’에 공급됐던 것과 달리,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을 통해 자유롭게 읽고 즐긴다는 점이 다르다.

 

 

웹소설은 스마트폰으로 짧은 시간 집중해 읽는 콘텐츠인 만큼 스토리 진행이 빠르고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독자는 조금만 흥미가 떨어져도 ‘뒤로 가기’를 눌러 읽기를 포기하니 말이다. 그래서 웹소설의 경쟁 상대는 “소설책이 아니라 웹툰이나 유튜브”라고 말할 정도이니, 일반 소설의 작법과 웹소설의 작법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에 만난 책은 <재벌집 막내아들>, <비따비 : Vis ta Vie> 등의 대표작을 통해 10만 명이 넘는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웹소설 작가 산경이 알려주는 '웹소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산경 작가는 월 매출 1억, 편당 유료 조회수 3만 돌파 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자신이 경험해온 성공의 비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웹소설 작가가 목표인 사람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도움이 되어줄 것 같다.

 

 

몇몇 작가들이나 지망생들은 필사를 하기도 합니다. 성공한 작품을 그대로 베껴 써보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다독도 아니고 다상량도 아니고 다작도 아닙니다. 그냥 베끼는 노동 행위일 뿐입니다. 필사를 해서 성공했다는 웹소설 작가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필사를 해서 뭔가를 얻었다면 여러분이 그 작품 하나만 아주 깊이 읽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웹소설은 깊이 읽는 소설이 아닙니다.     p.173~174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그야말로 '웹소설의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 웹소설의 소재 선정부터 캐릭터 설정, 자료조사, 작품 구성법, 연재 시 꼭 지켜야 할 규칙, 작가로서의 마음가짐까지… 웹소설을 집필하고, 연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우선 이야기의 소재를 정하고, 주인공 캐릭터를 고민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그려져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해 알려주고, 플롯을 만들고, 자료 조사를 통해 그것을 이야기에 적용시키는 방법,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쓰는 법과 가독성을 높이는 법 등등... 단계별로 실제 글을 쓰기 위한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웹소설 시장이 급성장하고, 대세가 되다보니, 웹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웹소설과 일반 소설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소설 작법서’가 아닌 ‘웹소설 작법서’가 필요하다. 시중에 작법과 글쓰기를 다루고 있는 책들은 넘쳐나지만, 이렇게 특화된 분야에 대한 글쓰기 책은 아직 많지 않으니 말이다. 나도 작법과 관련된 책은 종류 별로 꽤 많이 읽어본 편인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웹소설이라는 장르가 일반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통칭하는 웹소설, 이제 콘텐츠 산업에선 대세가 되었다. 그래서 인기 드라마, 웹툰, 영화가 ‘알고 보니’ 웹소설이었다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퇴근 후 웹소설 써서 10억 벌 수 있다면 작가 지망생 누구라도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자,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 여기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웹소설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또 연재를 시작한 뒤에는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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