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 오직 ‘나’다운 답들이 쌓여 있는 곳, 그 유일한 공간을 찾아서
앤디 퍼디컴 지음, 안진환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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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그 무엇에도 방해받거나 정신이 팔리지 않은 채 아무런 움직임 없이 앉아 있어 보았는가? TV,음악, 책, 잡지, 음식, 술, 전화, 컴퓨터, 친구, 가족이 옆에 없는 상태에서 머릿속으로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고민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명상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을 해봤을 가능성이 없다. 왜냐하면 대개는, 하다 못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을 때조차 우리는 여전히 사고의 흐름에 빠져 들기 때문이다.    p.42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하느라 너무 바빠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다는 것, 그저 마음을 쉬게 한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느껴본 적이 없다. 버스에 앉아 창 밖을 보면서도 눈으로는 무언가를 응시해도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어떤 일이나 상상, 몇 분 혹은 몇 시간 후에 필요한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삶에 익숙한 내게 이 책은 굉장히 낯설게 다가왔다.

 

영미권 명상분야 최고권위자로 인정받는 파란 눈의 스님 앤디 퍼디컴은 인생의 모든 해답이 나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걸 아는 이들, 즉 명상법을 배우려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그는 마음 수행 3단계(명상에 접근하기, 명상 연습, 명상과 삶과 통합)를 제시하면서 하루 10분, 나를 “알아차리는 명상 기법”을 활용해 어떻게 마음을 고요하게 잠재우는지에 대한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명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히말라야의 어느 산꼭대기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요가 수행자부터 떠올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주 쉽고 간단하게 현대적인 방법으로 명상을 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명상은 하나의 과정이다. 매일 잠깐씩 앉아 명상을 한다고 해서 즉시 마음을 자유자재로 통제하고 오래된 악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때로 '번뜩이는' 자각의 순간, 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순간 같은 것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과정은 통상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자신이 빠지던 구덩이가 하루하루 조금씩 더 일찍, 조금씩 더 명료하게 보인다. 그런 과정을 밟는 가운데 스트레스를 유발하던 수많은 습관적인 반응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p.146~147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챙김'이라는 단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마음챙김'이란 주의를 집중해 오직 현재에,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챙김은 끝없이 생각하고, 감정에 사로잡히고, 뭔가를 비판하고 판단하며 살고 있는 우리 대부분이 살아가는 방식과는 완전히 대치선 상에 놓여있는 단어인 셈이다. 이러한 마음챙김이 거의 모든 명상 기법의 핵심 요소라는 점이 나로 하여금 '명상'이라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특히나 이 책에는 실제로 명상 연습을 해볼 수 있도록 열 가지 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신체 감각 중 하나에 부드럽게 집중하기, 유쾌한 감정이나 불쾌한 감정에 집중하기, 몸에 대한 의식적 관찰 등등 가볍게 단 몇 분만 시간을 들여도 해볼 수 있는 명상 연습이라 흥미로웠다.

 

명상에 도전하고 싶다면, 이보다 더 쉽게 시작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빌 게이츠와 정말 천재적인 책이라고 말한 엠마 왓슨의 추천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마지막으로 1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때를 기억할 수 없다면, 스트레스로 인해 질식할 것 같다면, 너무 바쁘게 사느라 내 주변에서 펼쳐지는 진짜 삶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이 자신을 찾게 해주는 열쇠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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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의 일을 냅니다 - 사장이 열 명인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일'의 유쾌한 업무 일지
이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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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은 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문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속 좁고 이기적이고 지갑에서 만원도 꺼내기 싫어하는 좀팽이인데 그릇이 큰 사람들을 좇아가며 좋은 사람 흉내를 내려니 숨이 가빴다. 그래도 함께 가고 싶어 열심히 좋은 사람을 연기했다.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모였는데 피곤하게 규칙이 무슨 필요람. 채찍은 악당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p.72

 

을지로의 으슥한 인쇄소 골목이 힙스터들의 성지로 변했다. 무너질 듯 위태로운 빛바랜 건물. 인쇄용지를 한가득 싣고 아슬아슬 질주하는 삼륜차.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거리. 낙후된 인쇄골목에서 '힙플레이스'로 완벽히 변신한 그곳엔 점심, 저녁 시간이면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로 득실거리는 장소가 되었다. 을지로 골목에 자리 잡은 가게들을 보면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인테리어 혹은 빈티지한 느낌을 그대로 살리거나, 복고 감성으로 충만한 곳들이 많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간판 없이 가게를 차리는 경우도 많아서, 지도 앱을 이용하더라도 가게를 눈앞에 두고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을지로 인쇄 골목에 위치한 와인 바, 십분의일도 역시 그렇다.

 

독특한 컨셉으로 무장한 가게가 넘쳐나는 을지로에서도 와인 바 십분의 일은 조금 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사장이 열 명이라는 것. 10명이 모여 월급의 10%씩 내서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와인 바의 업무 일지이자, 평범했던 회사원이 퇴사 후에 가게를 준비하고, 오픈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드라마 같은 에세이이다. 저자는 드라마 제작사에서 피디로 일하며 살인 적인 스케줄에 시달려 남몰래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현장에서 일을 하다 벌에 쏘이는 바람에 밤 9시에 조기(?) 퇴근을 하며 이렇게 일하느니 차라리 병원에 드러눕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교통사고가 나고 만다. 그리고 그걸 계기로 결국 사표를 내게 되는데, 퇴사 후에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들과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들과 함께 와인 바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십분의일이라는 공간도 공동 작업으로 탄생했다. 의견이 안 맞아 다툴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같이 웃고 떠들고, 참 재밌었다. 그런데... 막상 가게를 오픈하고 보니 이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건 나 혼자였다. 가상의 공간이라고도 볼 수 있는 카톡방 안에서는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떠들고 있었지만, 진짜 십분의일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나 한사람뿐이었다. 혼자 불을 켜고 오픈 준비를 하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음식을 만들고 혼자 밥을 먹고... 어느새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됐다.     p.248

 

십분의일은 '청년아로파'라는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남태평양의 아누타 섬에 살고 있는 한 부족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그걸 감명 깊게 보고 만들었던 모임이었다. 부족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사랑, 협동, 공생 등을 모두 아우른 단어가 바로 '아로파'였던 것이다. "우리 아누타 섬처럼 다 같이 버는데 수익은 똑같이 나누는 마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마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돈에 구 결국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농담처럼 시작한 일이 가게 창업이라는 매우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형태로 구현되고 말았다. 이 책은 술자리에 시작되었지만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공동체를 만들자는 거창한 비전이 있었던 작은 모임이 어쩌다 보니 을지로에서 핫한 와인 바를 만들게 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임대 계약도 순조롭지 않았고, 돈이 없어 인테리어도 반셀프로 하고, 무작정 덤빈 탓에 고생도 숱하게 했지만, 결국 근사한 와인 바가 탄생했다. 무슨 일이든 '혼자' 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함께'여서 가능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에 더욱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다르게 내고, 다 함께 벌어, 똑같이 나눈다'는 참신한 방법으로 먹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흥미롭고, '월급 받는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풀어낸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부분들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마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가지고 있는 로망일 것이다. 난 회사원 체질이 아니라며 회사를 때려 치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고 싶다는 것 말이다. 오늘도 퇴사를 고민하는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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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또 차이고 말았어
존 그린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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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은 그래프로 표현할 수 있다고!" 콜린이 방어적으로 말했다.
..."일반적으로? 이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거야?"
"맞아. 왜냐하면 남녀관계는 너무 뻔하니까. 안 그래? 난 그걸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 아무나 두 사람을 고르는 거야.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상관없어. 이 공식은 만약 그들이 사귀었을 때 누가 누구를 차게 될지, 그리고 그들의 연애 기간은 대충 얼마나 지속될지, 그런 것들을 알려 줄 거야."     p.65

 

신동으로 유명한 콜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또 차이고 말았다. 콜린은 상대의 육체적인 부분이 아닌, 언어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는데 '캐서린'이라는 이름을 유독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껏 사귀었던 열아홉 명의 소녀들 이름이 모두 캐서린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콜린을 차 버렸다. 콜린은 생후 25개월일 때 신문을 읽고, 네 살 때 그리스 철학자 아르키메데스에 대한 책을 읽고, 영재들만 다니는 특수 유치원을 다니기도 했지만 친구 만드는 데는 영 소질이 없었던 것이다. 열한 개 언어를 말하고, 애너그램에 뛰어나고, 잡다한 상식도 풍부했음에도, 그와 별개로 그의 사회학적인 부분은 애초부터 문제가 많았다. 또다시 혼자가 되어 버린 상황에 완전히 절망한 콜린에게, 그의 유일한 친구인 하산이 놀라울 만큼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자동차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들은 ‘사탄의 영구차’라는 별명이 붙은 차에 몸을 싣고 목적지도 없는 여행을 떠난다. 아무 계획 없이 떠난 자동차 여행에서 그들은 수많은 길과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더 이상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랑을 수학 공식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결심한 콜린, 과연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래프와 공식으로 완성해낼 수 있을까. 삶이란 도처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견되기 마련이고, 연애란 모두에게 상대적이라 대부분의 통념을 벗어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하지만, 백과사전을 암기할 정도로 똑똑한 이 천재 소년에게는 이 모든 것이 어렵기만 하다.

 

 

"기억되기 위해서 사람들이 뭔가를 한다는 거, 참 재밌지?"
"어쩌면 빨리 잊히기 위해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잖아. 언젠가는 거기 누가 묻혀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될 날이 올 테니까. 학교 애들은 정말로 대공이 거기 묻혀 있는 줄 알고 있어. 재밌지 않니? 내가 아는 진실과 모두가 믿고 있는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테이프들이 나중에 꽤 높은 가치를 누릴 거야. 왜냐하면 시간이 삼켰거나 왜곡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으니까."    p.281

 

2014년에 <이름을 말해줘>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던 작품으로, 이번에 새로운 번역화 화사한 표지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출간되었다. 'An Abundance of Katherines'이라는 원제의 의미를 더욱 살려 제목도 통통 튀는 어감으로 바뀌었다.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으로 유명한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와 함께 존 그린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연애의 과정에서 차이는 사람을 예측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들겠다는 콜린의 엉뚱함이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 사랑스럽게 그려지고 있다. 애초에 사랑을 수학 공식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설정부터 기발한데, 실제로 중간중간 수학 공식과 그래프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수학 공식들을 검수해준 진짜 수학자인 친구에게, 콜린의 정리를 설명하는 부록을 써 달라고 해서 작품의 말미에 수록해 놓아 특별한 재미를 안겨 준다.

 

수학적 정보가 난무하는 소설이지만, 가볍고, 귀엽게 읽을 수 있는 청춘 소설이라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나 수학자 친구가 써준 마지막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이 매우 재미있었다. 극중 콜린의 '유레카의 순간'을 구성하고 있는 세 가지 요소를 설명하고, X축과 Y축이 등장하는 그래프와 도표, 함수를 통해서 대화를 분석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실제로, 어떤 심리학자와 수학자가 수학을 통해 결혼 생활의 운명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책을 발표한 적이 있다고 하지만, 그 책은 매우 전문적이고 불가해한 책이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쉽고, 사랑스럽고, 유쾌하다. 기발하고 색다른 청춘 소설을 만나 보고 싶다면, 엉뚱하고 유쾌한 러브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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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의 법칙 인간 법칙 3부작
로버트 그린 지음, 강미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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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할 일이 생긴다. 다시 말해 유혹할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은근한 유혹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많지만,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전혀 꼼짝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과 부딪치면 우리는 지레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라고 판단하고 물러서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정치적인 유혹자든 성적인 유혹자든, 진정한 유혹자는 오히려 성공할 확률이 낮은 어려운 일을 즐긴다.    p.136

 

<전쟁의 기술>, <권력의 법칙>, <유혹의 기술> 등 로버트 그린의 책은 '벽돌책'으로 유명하다. 이들 책 모두 600페이지가 넘고, 가장 최근에 출간된 <인간 본성의 법칙>은 무려 9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이었으니 말이다. 로버트 그린이 궁금했는데, 압도적인 분량 때문에 부담스러웠던 이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로버트 그린을 대표하는 3부작 중의 하나인 <유혹의 기술>이 ‘인간 관계를 주도하는 유형과 전략’이라는 핵심 주제를 위주로 재편집되어 <인간 관계의 법칙>이라는 에션셜 버전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300여 페이지의 분량으로 가뿐하게 로버트 그린의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으니, 궁금했던 독자들은 이번 기회에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다.

 

<유혹의 기술>이 622페이지였고, 이번 신간 <인간 관계의 법칙>이 320페이지이니 분량이 반 정도로 줄어든 셈이다. 사실 로버트 그린의 책들은 그 무시무시한 분량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뛰어나고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아서 상당히 잘 읽히는 편이다. 물론 페이지의 압박 때문에 읽는 데 시간은 다소 걸리지만 말이다. 그러니 분량이 줄어들고, 특정 주제로 재편집된 이 책은 누구라도 부담없이 읽기에 수월해졌다. 그렇다고 단순히 맛보기 식이냐, 하면 또 그렇지 않은 것이 중요한 키워드와 핵심 내용은 놓치지 않으면서도,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어 원래 이렇게 쓰여진 한 권의 책인것처럼 완성도가 있다.

 

 

모든 사람은 살아가면서 가면을 쓴다. 남들 앞에서 우리는 실제보다 훨씬 더 자신만만한 척한다. 우리는 속으로 끊임없는 회의에 시달리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자아와 성격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나약하다. 즉,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그 이면에는 혼란스러운 감정과 공허감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유혹자는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 100퍼센트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은 항상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p.167

 

누구나 매력 있고 설득력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사회관계나 직장에서도, 교우관계에서도, 연인사이에서도 유혹은 곧 권력이다. 유혹이 현실적인 권력의 일종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바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혹의 기술들로 무장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우선 1부에서는 유혹자의 아홉 가지 유형을 정리해두었다. 원초적인 욕망의 지배자 세이렌, 억눌린 욕구를 해방시키는 정열가 레이크, 마음속 이상을 실현시켜주는 구원자 아이디얼 러버, 추종자를 불러 모으는 중성의 마력 댄디, 향수를 자극하는 천진한 어린아이 내추럴, 무심함이라는 차가운 무기를 가진 코케트, 기쁨과 편안함을 주는 무한한 긍정성의 차머, 본능적으로 타고난 강렬한 호소력의 카리스마, 그리고 대중의 동경을 읽는 눈을 가진 스타로 관계를 주도하는 9가지 유형을 나누고 있다. 읽다 보면 누구나 이 아홉 가지 유형 가운데 하나에 해당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자신의 유형을 파악해, 이 내용들을 지침으로 자신의 매력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게 있을 것이다.

 

2부에서는 관심의 초점을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 돌리는 유혹의 전략과 전술 24가지를 담고 있다. 인간의 근본적인 심리에 기초해서 상대의 마음을 악기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어떤 상대라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심리 전술의 결정판이 궁금하다면, 로버트 그린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람을 이끄는 9가지 유형과 24가지 전략'을 만나 보자. 인간 관계에서 쉽게 주도권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을 이미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관계를 이끄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편에는 관계에 이끌려 다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에 속할 테고 말이다. 하지만 당신도 이러한 심리전에서 관계의 주도자가 될 수 있다. 로버트 그린의 더 가볍고 작아진 인간 관계 전략서가 당신을 도와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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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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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단한 승리(아니면 보는 관점에 따라 끔찍한 비극)는, 우리 뇌가 수백 수천 년간 진화하여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이다. 인간은 슬프게도 자의식이 있는 생물이다. 비록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창의적인 방법들을 찾으려고 하루 종일 움직인다 해도, 자신이 아무리 힘 세고 사랑받고 특별하다 느낀다 해도, 언젠가는 죽어서 썩을 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는 이 지상에서 우리 종의 귀중한 일부만이 공유하는 마음의 짐이다.    p.99~100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죽음을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혹은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죽음을 똑바로 응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 책의 저자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이해할수록, 우리는 자신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죽음과 시신들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 가득 찬 이 도발적인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했고, 20대에 여성 장의사로 일하며, 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장의사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처음 화장장에 취업하는 것을 시작으로 장례업계에서 일한 6년간의 경험들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죽음을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유쾌한 태도를 잃지 않으며, 거침없이 신랄하다가도 세심하고 따뜻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있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삶과 죽음의 가치에 대해서 돌아보게 만들고, 죽음을 대면하고,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특별한 책이었다.

 

 

피가 내 혈관 속을 돌아 그 밑에 깔린 부패한 시체들 위로 흐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살아 있다, 있을 수도 있는 많은 내일을 품은 채로. 그렇다, 지금 세운 여러 계획들은 내가 죽고 나면 산산조각 나버리거나 미완성으로 남을 수도 있다. 나는 육체적으로 어떻게 죽을지를 선택할 수 없고, 오로지 정신적으로 어떻게 죽을지만 선택할 수 있다. 죽음이 28세에 찾아오든 93세에 찾아오든, 나는 만족한 채 무(無)로 돌아가 스르르 미끄러져 죽기로 선택했다... 죽음과 묘지의 정적은 형벌이 아니라 잘 살아낸 삶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p.336~337

 

차갑게 식어 뻣뻣해진 턱에 면도기를 대고, 죽기 직전 며칠간 자란 까칠한 수염 위로 면도 크림을 바르고 플라스틱 면도기를 갖다 대는 느낌은 어떨까. 죽은 지 일주일이 넘어 심하게 부패된 시체의 냄새를 참아 내야 하고, 시체를 재로 만들 때마다 내려앉는 인간 먼지를 뒤집어쓰고, 녹아 내리는 시체의 지방인 인간 기름에 흠뻑 젖는 기분이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신을 직접 보거나, 죽어가는 사람의 곁을 지켜보는 것 또한 경험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을 지도 모른다. 덕분에 우리는 그만큼 무방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이의 죽음이든, 나 자신의 그것이든 말이다. 실제로 내가 경험해 본 죽음은, 생각보다 가족들이 처리해야 하는 장례 절차 관련 수많은 프로세스들과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고, 조문을 받고, 비용을 처리하고 등등의 일들이 너무 많아서 충분히 죽음을 추모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저 상황을 따라가기에도 벅차서, 슬픔에 사로잡혀 감정을 추스르고 어쩌고 할 여유 조차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죽음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도, 그리고 죽음과 정면으로 대면하는 방법도 제대로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었을 때 충격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그건 “왜 사람들은 죽는가?”, “이런 일이 어째서 나한테 일어나는가?” 같은 더 큰 실존적 물음의 짐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슬픔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거라는 뜻이다. 죽음이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고, 그러니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는 잘 죽는 데 장애물이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연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사유를 끊임없이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멀리서 보면 비극인 죽음을 가까이에서 희극으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너무도 생소한 ‘웨스트윈드’ 화장터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즈음엔 죽음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며, 삶의 연장선상에서 널리 함께 의논해야 할 공동의 화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죽음의 세계를 탐험하는 특별한 경험을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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