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파올로 코녜티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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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거품 덩어리가 그녀의 몸을 덮는 것처럼, 어느덧 잠이 쏟아졌다. 소녀는 무척 강력하고 균형 잡힌 팀과 무척 약하지만 뛰어난 챔피언이 속해 있는 팀과의 대결을 관전했다. 아이는 강력한 팀의 선수 역할을 했고 동시에 다른 팀의 챔피언이자 흥분한 해설자, 심지어 골에 열광하는 관중이 되기도 했다. 그 순간 소녀는 달콤하면서도 우울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녀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자신으로 살지 않는 매혹적인 삶의 방식이었을 텐데. 하지만 이제 그러기엔 늦었다. 그건 영원히 가지 않은 길이 되고 그녀는 재능을 썩히고 말 것이다.       p.60

 

임신 7개월인 스물두 살의 산모가 상당한 출혈을 하며 청색증의 자그마한 아기를 출산한다. 산모는 임신 중에 먹지 말아야 할 궤양 약을 몰래 먹었고, 아기는 숨을 쉬지도 울지도 않는 상태였다. 아기의 아버지는 지치고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를 보러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을 오갔다. 응급 출산을 도왔던 간호사는 인큐베이터 옆에 앉아서 밤마다 아기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피아. 태어나는 게 뭔지 아니? 전쟁터로 떠나는 배와 같은 거야." 그날 아기는 위기를 넘겼고, 마침내 엄마 곁으로 돌아간다.

 

자동차 엔제니어인 아빠와 미술학도 엄마는 성향이 너무도 달랐다. 하지만 그들은 이혼이 아니라 이사를 선택한다. 밀라노를 떠나서 먼 도시 외곽으로 떠나 새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덟 살의 소피아는 벌써 여러 차례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봤고, 두 분이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며 기도한다. 열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소피아의 탄생부터 어린 시절을 거쳐가며 성장해나가는 서사를 큰 줄기로 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소피아의 주변 사람들 시선으로 전개된다. 소피아가 계속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인공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그녀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다. 소피아는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주변인으로 스쳐 지나가기도 하며 이야기를 완성시켜 나간다.

 

 

“내 생각에.” 아빠가 말한다. “네가 관계에서 지나치게 많은 기대를 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
“뭐가 지나치다는 거예요? 약간의 사랑이 아빠 눈에는 지나쳐 보여요?”
“사랑이 지나치다는 게 아니라 네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지나쳐 보인다는 거야.”
“제가 뭘 어떻게 표현한다는 말씀이세요?”
아빠는 한숨을 쉰다. “누군가에게 함께 있는 것을 요구할 수는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과 네 인생을 하나로 합치지 않고 말이야. 사랑한다고 그런 것을 요구한다면 모두가 너를 실망시킬 거야.”      p.184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가족들과 친구들, 직장동료, 첫사랑, 힘들 때 도움을 주었던 이들도 있을 테고, 내가 빛나던 순간에 함께 해준 이들도 있었고, 배신과 상처를 주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만나온 많은 사람들은 모두 크든, 작든 내 삶에 흔적을 남긴다. 그들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행복하고, 도움을 받고, 위로를 받으며 우리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소피아는 어린 시절 끝을 생각하는 놀이를 자주 하곤 했었다. 모든 관계를 시작할 때 애써 이런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다. 어떤 남자가 키스를 하는 동안 그것이 사과하는 것인지, 그럼 잘 가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걷어 차 버리는 것인지, 친구로 지내자는 것인지 말이다. 읽지도 않은 책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서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피아는 온몸에 피어싱을 하기도 했고 머리를 알록달록 물들이고 장례식장에나 갈 법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결국 그 모든 과정을 거쳐서 배우가 되는데, 이유는 배우라는 직업이 꼭 자기 자신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시작되었던 소피아의 삶은 로마의 영화학교로, 미국의 뉴욕으로 이어진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로 구성된 보통의 가족이 가질 수 있는 평범한 불행들이 꼭 불행한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각자 자신만의 고통과 우울과 불안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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쓱 하고 싹 배우는 유튜브 & 영상 편집 - 큰 그림과 큰 글씨로 눈이 편하게! 쓱싹 시리즈 8
김혜진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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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료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를 사용해 다양한 영상을 감상하는 방법과 나만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직접 만든 영상을 게시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섬네일, 브이로그, 언박싱, 하울, 커버 영상 등 각종 유튜브 용어부터 구글 계정을 만들어 유뷰브에 로그인하고 동영상을 시청하는 방법 등에 이르기까지 초보자들도 쉽게 따라서 해볼 수 있는 기초적인 내용들이 쉽고,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무엇보다 큰 그림과 큰 글씨로 전 연령대의 독자들이 누구나 접근하기 쉽도록 만들어져 있어 활용도가 높을 것 같다.

 

 

채널을 구독하고, 알림을 설정하고, 유튜브 영상을 검색하는 것들은 대부분 웹서핑만 할 줄 알아도 아는 것들이지만, 연령대가 낮거나 많이 높은 경우에는 이런 방법들도 낯설고 서툴 수 있을 텐데 이 책이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것 같다.

 

본격적으로 나만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영상을 게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와 있다. 무료 이미지 및 음원, 음악 다운받는 방법부터,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을 컴퓨터로 옮기는 방법까지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채널 아트 이미지를 제작하고,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과 재미있는 효과, 자막을 넣어 직접 영상을 제작하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을 영상 전환 효과 및 자막 삽입 등으로 꾸며 본다.

 

 

유튜브 영상 중 중요한 내용의 영상을 컴퓨터에 저장해 두고 계속 시청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 사용 방법도 유익했다. 그 외에도 유튜브에 올린 영상 및 댓글 관리, 시청 중인 영상을 네이버 블로그나 다른 SNS에 공유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있다. 친절하게 설명이 되어 있는데다, 각 챕터 별로 실습 예제가 있어 누구나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쓱 하고 싹 배우는' 시리즈는 스마트폰, 엑셀, 파워포인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해 출간이 되어 왔다. 이 시리즈는 큰 그림과 큰 글씨로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되어 있어, 기초를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책에 담긴 예제를 따라 해보기만 해도 프로그램의 기본 기능을 손쉽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최대 무료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는 그야말로 현대인들의 삶에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일일 시청 시간이 10억 시간으로, 전 세계 91개 국가의 10억 명이 넘는 사용자가 시청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구글 계정만 있으면 누구나 업로드 할 수 있으며, 영상을 시청하는 것은 로그인을 하지 않더라도 가능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요즘 학생들의 꿈이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는 거라고 하고, 따로 1인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한 교육을 하는 곳들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인기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해서, 누구나 유튜브를 통해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꾼다면, 혹은 유튜브를 제대로 이용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걸로 시작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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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티의 플랜B -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의 비밀
나희선(도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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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친구들이 부럽다는 단순한 감정은 아니었다. 돈이 없어서 창피하다는 감정도 아니고 내 처지를 비관한 것도 아니었다. 돈보다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자투리 시간에 쇼핑을 하는 친구들의 시간은 아주 알차 보인 반면, 마냥 기다리는 있는 내 시간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돈이 있음으로써 어떤 이의 시간은 가치 있어지는구나.’ 그 장면에서 나는 천천히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 돈으로 인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p.15

 

최초, 최고,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1세대 크리에이터 도티, 이 책은 구독자 250만 명의 크리에이터가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다. 8년 전 취업준비생이던 당시 700점도 넘지 못한 토익 점수에 스펙이라고는 전혀 없었기에 자기소개서에 한 줄을 써넣기 위해 시작한 것이 유튜브였다. 구독자를 1,000명만 모아서 쓰면 모자란 스펙이 조금은 채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한 1인 미디어는 국내 최고 MCN 기업 샌드박스네트워크의 공동 창업자로 성장한다. 도티는 이른바 1세대 크리에이터라 그가 유튜브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해도 참고할 만한 롤모델이나 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바닥부터 직접 겪으며 수업이 고민하고 좌절하는 모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 순위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유튜브 크리에이터라고 한다. 그만큼 유튜브가 우리에게 일상이 되었고, 유튜브를 통해 스타가 되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연예인들조차 방송만큼의 비중으로 유튜브를 통해 개인 채널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유튜브라는 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노는 것처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같이 느껴지더라도, 실상을 보면 그게 전부는 아니다. 모든 연령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를 꿈군다. 그렇다면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책은 1인 미디어 시작을 위한 모든 노하우를 담고 있다.

 

 

크리에이터에게는 꾸준함과 성실함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중요한 차원을 넘어 채널을 존재하게 하는 원료와 같다. 크리에이터의 역량에 맞게 편성하더라도 꾸준히 해야 채널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월, 수, 금요일에만 업로드 하더라도 1년이고 2년이고 지속적으로 하려면 웬만한 성실함이 아니고서는 힘들다. 꼬박꼬박 일기 쓰는 것도 힘든데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올리는 일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래서 재능보다는 성실함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무조건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은 게 주효했다.     p.144~145

 

도티는 스스로를 방송에 썩 재능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연예인 지망생도 아니었고, 정말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초반기 영상은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엉망이라고. 그러니 도티 TV가 처음부터 특별한 재능과 사람들을 끄는 힘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의 성공이 '왕도 없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계발된 재능이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덕분이 아니었다는 점은 보통의 일반인들에게 용기를 줄 것 같다. 무엇보다 '재능보다는 성실함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의 마인드가 참 좋았다. 1인 미디어에서는 크리에이터가 정체성이고 브랜드인데, 크리에이터의 성실함은 엄청난 재능을 뛰어넘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도티의 플랜A는 메이저 언론사에 취업해 방속국 PD가 되는 거였다. 하지만 언론고시를 볼 자신도 없었고, 좋은 기업에 입사한다는 계획은 순탄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플랜B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자신도 미처 몰랐던 재능과 꿈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몇 년을 쉼 없이 매일 컨텐츠를 만들어냈던 도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번아웃과 공황장애를 겪게 된다. 도티와 인간 나희선 사이에서 불안과 좌절감에 빠졌을 때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플랜B였다. 플랜B는 플랜A가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차선책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자 또 다른 희망이었던 것이다. 구독자 250만 명의 크리에이터는 무엇이 다른지 그 비밀이 궁금하다면,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꾸고 있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만의 플랜B를 발견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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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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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기계와 결합한 존재란 아이언 맨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거나 온갖 화려한 차종으로 변신하는 모빌리티를 타는 존재가 아니라, 낡은 철제 수동 휠체어를 탄 이들, 오래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배터리가 방전될까 걱정하는 이들, 3일에 한 번씩 신장 투석기에 접속하고 4시간씩 혈액의 노폐물을 걸러주느라 스케줄 조정에 곤란을 겪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사이보그가 되어서' 스스로를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언젠가 도래할 첨단의 기계와 결합하거나 기계 없이도 '정상적인 몸'이 될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계들과 더 안전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p.63

 

김초엽 작가에게 후천적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독자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청력 손상을 가지고 있다고 굳이 말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장애를 잘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청각장애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당사자가 알리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장애'이니 말이다. 그 외에도 심리적인 문제, 내부장애, 만성 통증 등의 보이지 않는 장애는 지속적으로 '의심'을 받는다. 주변인들이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고, 혹은 장애 상태를 잊어 버리거나, 당사자가 경험하는 고통에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애가 드러나지 않는 것과 장애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편한 것일까.

 

한국의 등록된 장애인 인구는 작년 봄 기준으로 261만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5퍼센트가 살짝 넘는다.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장애인을 마주치는 일은 흔치 않다. 왜냐하면 장애인들이 오랫동안 집과 시설에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보려고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을 전공한 소설가 김초엽과 사회학,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 김원영이 각기 보청기, 휠체어라는 테크놀로지와 밀접하게 결합하여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과학기술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초엽 작가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김원영 변호사는 휠체어를 타며 생활하고 있으므로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라는 점에서 '사이보그적인' 존재일 것이다. 이들은 사이보그라는 상징을 통해 자신들의 경험과 자기 정체성을 반추해본다.

 

 

우리는 타인의 삶이 각자 너무나 고유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잊는다. 어떤 주관적 세계는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전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 보편의 삶에 대한 해석이 수도 없이 주어져 있지만 결국은 모든 사람이 각자 고유한 삶의 문제로 고민하는 것처럼, 그 보편의 해석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세계를 설명하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 여기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생겨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p.260

 

나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장애를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실제 삶에서 기계와 연결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보청기와 휠체어라는 보조기기가 생각보다 값이 비싸고, 불완전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실의 기계는 피부를 짓무르게 하고, 온갖 염증을 일으키고, 끊임없이 잔고장이 나며, 지속적인 관리와 전문가의 점검을 필요'로 하지만, 이는 장애인들의 삶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사이보그의 매력적인 이미지는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하게 소비되지만, 실제로 기술과 결합해 살아가는 장애인 사이보그의 삶은 미래 담론의 중심에 놓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기술은 해방일까, 혹은 억압일까, 사이보그는 현실일가, 아니면 비유일까'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나에게 이 책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할 만큼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책은 김초엽 작가와 김원영 변호사가 각자 따로 5챕터의 글을 써 전체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지막에 두 사람이 만나 함께한 대담의 페이지로 마무리가 된다. 두 사람은 성별도, 전공도, 나이도, 장애 유형도 확연히 다르다.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여성과 걸을 수 없는 몸을 가져 어린 시절부터 휠체어와 함께 했던 남성의 경험 또한 완전히 다르다. 평소에는 보청기를 잘 착용하지 않는 김초엽은 휠체어를 신체의 일부로 느끼며 그 미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김원영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김원영은 장애 권리 운동의 자장 안에서 활동하느냐 아니냐와 관계없이 그런 경험 없이도 장애학의 관점을 체화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김초엽의 시각을 놀라워한다. 이들의 경험과 시각이 교차하는 지점도 흥미로웠고, 장애와 과학기술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통찰도 인상적이었다. 장애가 손상된 몸을 가진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장애가 단지 결핍으로만 규정되지 않는 세상을 바래본다. '우리의 불완전함은 때로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는 김초엽 작가의 말이 여운처럼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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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절대 바닥에 두지 않는다 - ‘하기’보다 ‘하지 않는’ 심플한 정리 규칙 46 스타일리시 리빙 Stylish Living 22
스도 마사코 지음, 백운숙 옮김 / 싸이프레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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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절대 바닥에 두지 않는다.' 소문난 정리의 달인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실천하고 있는 규칙 중 하나다. 방금 막 사 온 물건, 외출할 때 들고 나갔던 가방, 인터넷 쇼핑몰 택배 상자, 갈아입은 옷, 빈 페트병 등 모든 물건을 '바닥에 두지 않는다/' 이 규칙만 잘 지켜도 집이 한결 깔끔해진다. 물론 처음에는 마땅히 둘 곳이 없어 난처하고, 임시방편으로 바닥 대신 책상이나 선반에 물건을 올려두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바닥에 물건을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데에 의미가 있다.     p.37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물건은 계속 늘어나고, 치우고 버려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언제나 제자리 걸음이다. 그러다 한번 마음먹고 시간을 내어서 정리를 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상태로 되돌아가는 덕분에 정리된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도 드물다. 그렇다면 대체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무슨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정리수납 컨선턴트 스도 마사코는 미니멀리스트가 될 필요도, 꼼꼼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이것만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하는 게 전부라는 것이다. '하기' 규칙이 아니라 '하지 않기'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은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데 비해 뭔가를 '하지 않는 정리'라니 신선하기도 했다. 이 책은 46가지의 ‘하지 않기 규칙’을 정리•청소•수납 별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거주 환경, 생활습관, 가족 구성에 따라 각자의 상황에 맞게 얼마든지 적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팁들이라 정리와 청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매우 도움이 될 것 같다.

 

 

집이 말끔히 정돈되어 있다면 책장에 무슨 책을 얼마나 꽂을 지도 정해져 있을 확률이 높다. 책은 책장에 들어가는 만큼만 집에 들이고, 책이 늘어나면 읽지 않는 책과 오래된 책을 처분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또한 보관할 책에 관한 기준이 또렷하고, 책은 크기와 분야별로 정돈되어 있다. 즉 책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지, 어떤 책을 보관할지 명쾌한 규칙이 있다. 조그만 책장 하나에도 확고한 규칙이 있다면 당연히 생활 전반에 쾌적한 생활을 위한 규칙이 있을 것이다. 책장이 말끔하면 집 안이 말끔한 이유다.     p.74~75

 

한때 미니멀리스트스 혹은 심플하기 살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물건만으로 살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공간 크리에이터'라는 전문가가 등장해 출연자들의 집을 비우고, 정리해 주는 티비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정말 넓은 평수에 사는 사람들도 집안 곳곳마다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는 도저히 물건을 버리지 못 하겠다는 습관적인 부분도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 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집과 수납공간의 크기는 정해져 있기 마련이고, 가지고 있는 물건이 수납공간에 들어갈 양보다 많으면 당연히 물건에 파묻혀 지내게 된다. 저자의 말 중에 물건에는 식품처럼 유통기한이 있다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제때를 넘긴 물건을 꺼내 쓸 일은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리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는 것'이고 바로 그렇게 눈앞의 물건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에서 시작하면 된다.

 

이 책은 물건을 절대 바닥에 두지 않는다, 충동적으로 청소를 벌이지 않는다, 대량구매는 하지 않는다, 집안일은 생각하면서 하지 않는다, 24시간 이상 물건을 방치하지 않는다, '언젠간 입겠지'는 입지 않는다, 싸다는 이유로 옷을 사지 않는다, '정리를 위한 수납용품'은 사지 않는다, 종이류는 마냥 쟁여두지 않는다, 거실에 물건을 방치하지 않는다, 마음이 편한 집은 색이 과하지 않다, 온 가족이 쓰기 편한 참여형 수납을 만든다... 등등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규칙들과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규칙들을 보여주고 있다. ‘하는 정리’에서 ‘하지 않는 정리’로 생각을 전환하기만 한다면, 정리와 청소가 결코 어렵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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