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형추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11
듀나 지음 / 알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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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얼리 제도 끝에 솟아 있는 십자가 모양의 작은 섬나라. 그럭저럭 빽빽하지만, 생물학적 다양성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열대림, 섬 중심에 있는 쓸데없이 높은 사화산, 아까운 줄 모르고 지하수를 뽑아 쓰다 지반이 무너져 진흙탕 속에 잠겨버린 마을과 도시들. 그리고 아름다운, 정말로 아름다운 나비들. LK가 정복하기 전, 파투산은 그런 곳이었다. 15년 전 LK가 파투산에 궤도 엘리베이터를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거대하고 둔하고 느린 궤도 엘리베이터는 비행선 같은 과거의 몽상처럼 보였다. 아름답고 장엄하지만 굳이 만들 필요는 없는.      p.24~25

 

브라이얼리 제도 끝에 솟아 있는 빽빽한 열대림의 섬 파투산. 인구의 3분의 2가 인근 두 섬나라로 흩어져 거의 폐허가 된 왕년의 휴양지에 LK라는 기업이 궤도 엘리베이터를 세웠고, 섬은 지구의 관문이 된다. 궤도를 도는 스카이후크로 매일 서너 대씩 우주선이 궤도 바깥으로 나가곤 했던 우주 시대였다. LK는 정지위성에서 위아래로 늘어뜨린 거미줄이 한쪽으로 파투산에 닿고, 다른 한쪽은 평형추로 향하는 가늘고 긴 궤도 엘리베이터를 건설했고, 그로 인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섬은 국제도시로 다시 태어난다.

 

해변에 새 항구와 공항이 생겼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주로 가는 길을 닦고 있었다. 하지만 섬은 이제 일개 다국적 기업의 소유물이 되었고, 정부는 껍데기만 남았으니, 그에 불만을 가진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파투산 해방전선이 만들어진다. 그러한 해방전선과 그들을 지원해 한몫 챙기려는 무리들을 추적하고 다루는 일을 하는 LK 대외업무부의 수장 맥이 이야기의 화자이다. 맥은 암살사건 용의자의 체포 작전을 수행하던 중 수상한 한국인 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바로 LK의 신입사원 최강우로, 나비와 궤도 엘리베이터를 좋아하는 이십 대 후반의 남자였다. 이상한 것은 나비 이야기를 할 때는 몽상적이고 멍한 느낌이던 남자가 궤도 엘리베이터에 이야기할 때는 치밀하고 조직적이고 독단적인 모습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거였다. 게다가 맥은 그의 말투와 태도가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 익숙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에 대한 그 사람의 기억은 절반, 아니 그 이상이 허구예요. 실제 나와의 관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픽션이 동원되어야 했지요. 그 안엔 수많은 내가 있었어요.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버전, 더 냉정하고 잔인한 버전, 더 섹시하고 유혹적인 버전, 심지어 나보다도 더 나 같은 버전도 있었지요.  이 자체는 이상하지 않아요. 다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망상을 품고 살잖아요. 요즘 같은 시대엔 그런 망상을 그럴싸하게 현실화시킬 수도 있고...."     p.212

 

거대 다국적 기업 LK와 궤도 엘리베이터, 그리고 하늘 위 평형추를 둘러싼 비밀들을 파헤치는 모험이 펼쳐진다. 하지만 LK 직원을 포섭하려는 해방전선과 파투산을 주시하는 세력들 속에서 최강우와 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맥과 최강우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강우는 어떻게 맥과 회장만이 알고 있던 비밀에 접근했으며, 죽은 한정혁 회장은 이들에게 무엇을 남긴 것일까. 광대한 네트워크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 같은 한 회장의 유령은 거대 AI의 성장에 신처럼 개입하려고 하고, 현재의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막을 수 없는 미래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증강현실과 AI가 일상이 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우주로 이동할 수 있는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복잡한 세계관과 알 수 없는 용어들로 난무한 여타의 SF 작품들에 비해 굉장히 술술 잘 읽히는 작품이다.

 

듀나는 낯선 미래에서의 놀라운 사고 실험과 치밀한 전개로 ‘듀나 월드’라는 독창적 스타일을 탄생시켰다고 평가 받는 작가이다. 책 속에, 게임 속에, 혹은 시뮬레이션 속에만 존재할 듯한 캐릭터들이 ‘듀나 월드’의 견고한 논리 속에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등장해 낯선 부분과 익숙함이 매력을 발하는 작품들을 그려 왔다. 이번 신작은 2010년 처음 출간된 동명의 단편소설을 장편화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뼈대만 유지할 뿐, 화자부터 다른 인물로 바뀌며 추리의 설계는 더욱 정교해졌고 인도차이나, 수마트라 문화권의 등장인물들도 더욱 다채로워졌다. 독특한 책의 표지도 작품과 너무 잘 어울리는데,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를 기리는 모뉴먼트에서 영감 받은 장종완 작가의 <Goddess>라는 작품이다. 미지의 우주로 향하는 인간이 열망이 표현된 작품이라 작품과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불가능하고도 가능한 세계'를 지향하는 알마의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를 즐겨 읽고 있다. 듀나의 작품들과 머더봇 시리즈, 빈티 시리즈 등에 이어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이 출간될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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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AI 수학 with Python - 한 권으로 배우는 인공지능 수학 첫걸음
아즈마 유키나가 지음, 유세라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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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주식거래, 영양제, 인터넷 검색, 영화 등등 사용자의 정보를 분석해 'AI 추천'이라는 문구로 정보를 주는 방식이 당연해진 만큼 인공지능(AI)이란 단어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카메라 영상과 인간의 프로그래밍에 의해 사물을 판독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던 시절에서 지금은 카메라 영상을 학습시켜 컴퓨터 스스로 사물을 판독하게 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한 인공 지능의 내부를 살펴보고 싶다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수학 개념이다. 이 책은 인공지능을 공부하는데 필요한 기초 수학개념을 한 권에 담고 있다.

 

 

이 책은 AI의 기본이 되는 선형대수, 미분, 확률과 통계 등 고등학교 수학과 대학 수학의 기초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중학교 수준의 지식만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복잡한 계산 과정 없이 수학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설명과 간단한 파이썬 코딩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이썬을 이용해 수식을 프로그램으로 나타내고, 그래프로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선형대수, 미분, 확률, 통계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AI가 사람들에게 친숙해진 요즘이지만, 사실 AI 알고리즘은 문턱이 높은 편이다. AI 알고리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을 기반으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서 소스코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AI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과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서 알고리즘을 기초부터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AI 수학을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썬과 함께 기초부터 설명해준다.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이 많아 처음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파이썬은 다루기 쉽고, 인공지능, 수학과의 궁합이 좋은 프로그래밍 언어이다. 오픈 소스로 누구나 무료로 다운로드 할 수 있어 널리 사용되는데, 전문 프로그래머가 아니더라도 손쉽게 코드를 작성할 수 있어 현재 인공지능의 개발에서 표준이 되고 있다. 이 책의 2장에서 파이썬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미 파이썬이 익숙하다면 해당 장은 건너뛰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인공지능을 처음 공부하려는 청소년,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싶지만 수학에 자신이 없어 포기했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수학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 책에서는 학문으로서의 수학이 아닌 AI 알고리즘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수학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 초보자도 접근하기 쉬울 것 같다. 기초적인 파이썬 프로그래밍 경험이 있거나 컴퓨터 조작에 능숙하다면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책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을 공부하는데 필요한 기초 수학개념을 공부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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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허밍버드 클래식 M 3
가스통 르루 지음, 신소영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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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체 없는 소리가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라울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나긋나긋하면서 의기양양했으며 굳건함 속에는 섬세함이, 섬세함 속에는 역동하는 힘이 깃들어, 마침내 저항할 수 없는 마력으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대가의 노래였다. 음악을 느끼고 사랑하며 만드는 사람이라면 단 한번만 들어도 수준 높은 소리를 낼 수 있게 발전시키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 독실한 사람은 완전한 믿음 속에서 음악을 빨아들이고 싶어질 만큼 경건하게 갈증을 달랠 수 있는 고요하고 순수한 샘의 근원이었다.      p.187

 

주요 뮤지컬과 오페라에 바탕이 된 서양 고전 문학들을 엄선한 시리즈인 <허밍버드 클래식 M>, 그 중에서도 이번에 만난 <오페라의 유령>은 원작보다 공연 작품이 더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자신의 아내가 될 사라 브라이트만에게 바쳐 무명의 그녀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세계 4대 뮤지컬 작품으로 꼽히며 전 세계 누적 관객 1억 4천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제라드 버틀러, 에미 로섬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이 된 작품이다.

 

나 역시 아주 오래 전에 뮤지컬로 먼저 접했던 작품이다. <오페라의 유령>의 뮤지컬 넘버들은 공연을 직접 보지 않은 이들도 멜로디만 들으면 알 정도로 유명한 곡들이 많다. 크리스틴 다에가 부르는 <Think Of Me>나 유령의 솔로곡인 <The Music Of The Night>, 크리스틴과 라울의 듀엣 <All I Ask Of You> 등등 주옥 같은 뮤지컬 넘버들은 그 자체로 서사를 완성시켜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 원작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뮤지컬 넘버의 멜로디들이 자동 재생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원작 소설도 국내에 아주 오래 전에 출간된 버전으로 읽었었는데, 이번에 아주 오랜 만에 다시 읽어보니 뮤지컬과 다른 분위기라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가장 훌륭한 검객과의 결투도 가장 탁월한 마법사와의 결투와는 비교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할 때만 모습을 드러내고 반면에 다른 사람이 어둠에 둘러싸여 있을 때에도 주변의 모든 것을 보는 사람과의 결투는 나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이한 과학 지식, 영리함, 상상력, 기술까지 두루 섭렵한 이 남자는 당신 눈앞에 무엇이 보이게 만들거나 당신 귀에 소리를 전해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등, 자연과 인공의 모든 힘을 쥐락펴락했다! 게다가 오페라극장의 지하, 달리 말하면 몽환적이기까지 한 이 세계에서 말이다!       p.400

 

원작을 바탕으로 2차 창작을 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하겠지만, 소설 원작의 모든 부분을 담을 수가 없기에 생략되거나 축약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이 작품 역시 공연 버전에서는 원작의 장황한 묘사 부분들이 없었기에 소설을 읽으면서 대단히 재미있었다. 무대 버전의 서사에서는 사건 전개도 빠르고, 긴장감 넘치게 흘러갔던 부분들 대신 인물의 배경이나 심리 묘사 등으로 인해 더 풍부해진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장점이 원작 소설에는 있으니 말이다. 소설은 '라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에 비해, 뮤지컬에서는 크리스틴이라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로 진행된다는 점도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흉측한 외모 덕분에 가면을 쓰고 오페라극장 지하에 살 수 밖에 없었던 에릭, 그는 자신이 가진 천상의 목소리를 통해 마음을 빼앗긴 크리스틴에게 접근한다. 그 동안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오페라가수 크리스틴은 '유령'의 수업 덕분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오페라극장의 새로운 히로인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녀에게는 친구이자 사랑하는 남자 라울이 있었고, 그는 에릭의 광기로부터 크리스틴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화려하고 웅장한 파리의 오페라극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오싹하면서도 로맨틱한 이야기는 작품이 쓰인지 1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감동을 안겨 준다. 가스통 르루는 당대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였다고 한다. 기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많이 써냈다고 하는데, <오페라의 유령> 역시 애절한 사랑이야기인 동시에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미스터리하고, 긴장감 넘치는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좋아한다면, 가스통 르루의 원작 소설도 꼭 만나 보기를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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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허밍버드 클래식 M 2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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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우리는 만들어지다 만 불완전한 존재요. 우리보다 더 현명한, 더 나은, 더 소중한 존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우리가 날 때부터 가진 나약함과 결점을 없애 주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완전해질 수 없겠지.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가 모름지기 벗 아니겠소. 내게도 한때는 벗이 있었소. 그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이었소. 그 덕에 내가 이렇게 우정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거요. 당신에겐 희망이 있고, 나아갈 세상이 눈앞에 있소. 당신에겐 절망할 이유가 없소. 하지만 나는, 나는 모든 것을 잃었고, 삶을 새로이 시작할 수가 없소."      p.48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에게 세상은 어떻게든 밝혀내고 싶은 비밀과도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숨겨진 자연법칙에 대한 호기심과 현상의 원인에 대한 탐구에 관심이 많았다.  유복한 환경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가 가끔 성질을 부리거나 떼쓰는 경우는 바로 배움을 향한 열망 때문이었다. 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하늘과 땅의 섭리였고, 인간에게 정말 영혼이 깃들어 있는지도 궁금했다. 대학에 가서 과학에 전념하게 되면서 화학과 생리학 연구에 몰두한 그는 결국 생명과 그 탄생의 원리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무생물에 생명을 줄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신경섬유, 근육, 혈관 등 복잡한 인체 구조를 연결하고 조립해야 하는, 상상도 하기 힘든 어려운 작업을 거쳐 탄생하게 된 것은 바로 괴기스러운 형상의 피조물이었다. 사람의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실험을 시작해, 결국 완전히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조립된 인체에 생명을 불어넣겠단 일념으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연구에 매진한 프랑켄슈타인이 마주한 것은 두려움과 역겨움을 안겨주는 끔찍한 존재였다. 자신이 만들어 낸 피조물의 모습을 도저히 참고 바라볼 수 없었던 그는 연구실을 박차고 나오게 되고, 버려진 괴물은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흉물스러운 모습 때문에 인간들의 혐오와 분노, 폭력에 맞닥뜨리며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던 괴물은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게 된다.

 

 

 

"절 이런 식으로 맞이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보기 흉한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끔찍한 몰골의 저는 지탄의 대상일 수밖에 없을 테죠. 당신도 저를 역겨워하며 말을 섞으려 하지 않잖습니까. 하지만 당신은, 저의 창조주이신 당신은, 피조물인 저와 단단히 엮여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당신이나 저,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 끊기지 않습니다. 당신은 제 숨통을 끊고자 하죠. 어떻게 당신은 한 생명을 그리고 가벼이 여긴단 말입니까? 당신이 창조주의 의무를 다해준다면, 저 역시 당신과 인류에게 제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p.177

 

이 작품은 영화로 여러 번 각색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에 등장한 여러 과학소설과 공포영화에 큰 영향을 끼친, 최초의 과학소설이다. 극중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해냈고,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한 메리 셸리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이후에 등장한 거의 모든 미치거나 사악한 과학자 캐릭터의 전형이 되었으니 말이다. 1818년 메리 셸리가 맨 처음 이 작품을 익명으로 발표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스물한 살이었다. 그녀는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묘한 두려움을 건드려 오싹한 공포를 일깨우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무서워서 주위를 둘러볼 수도 없게 만드는, 읽으면서 피가 얼어붙고 가슴이 두근대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그녀의 의도대로 놀라운 작품이 탄생했고, <프랑켄슈타인>은 1931년에 영화로 제작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처음부터 악한 존재였던 것은 아니다. 보기 흉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인간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핍박 받으며 고립되어 살게 만든 사회가 그를 진짜 괴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괴물이 저지른 행동들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분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을 만하니 말이다. 비록 고통만 더해 가는 삶이라도, 산다는 것이 괴물에게도 소중한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애초에 선하고 따뜻한 존재였으나, 절망으로 인해 악마가 되고 만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생명 과학과 생명 복제 기술이 발달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히 공포를 불러오는 괴물로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 말이다. <허밍버드 클래식 M>시리즈는 주요 뮤지컬과 오페라에 바탕이 된 서양 고전 문학들을 엄선한 시리즈이다. 뮤지컬로 만들어진 다른 작품들은 모두 봤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아직 뮤지컬로 만나 보지 못했는데 원작을 읽고 나니 무대에 올려진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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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간 세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부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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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정년퇴직이 인생의 정년퇴직이란 건 너무 슬프지 않나요? 분명히 제게서 일을 빼면 아무런 장점도 없습니다. 이렇다 할만한 취미도 없고, 당장 하고 싶은 일도 없지요. 그런 인간은 이미 존재 가치가 없는 걸까요? 그렇다면 적당히 일하면서 노후를 위해 취미나 꿈을 남겨 둘 걸 그랬군요. 하지만 제게는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한탄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고 냉정하게 말했다. 운명에 거역해 봤자 어쩔 수 없지만 내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p.93

 

예순다섯이 된 다케와키는 이번에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서 회사에서 준비해 준 송별회가 끝나 후배들의 배웅을 받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쓰러진다. 현재는 뇌출혈이 심하고 혈압도 높아서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집중치료실에 있는 상태이다. 그는 모범생인 초등학교 반장이 그대로 어른이 된 것처럼 결벽적인 성격으로 고지식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회사 동기가 본사 사장이 되어도 질투심은커녕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그러면서도 뭔가 도움이 받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의 바로 그런 성격, 중요한 순간에 고집스러울 만큼 양보하지 않는 결벽함을 사랑했다. 평소와 다름 없었던 남편과의 아침을 떠올리며, 퇴직 후 부부가 함께할 시간은 앞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남편은 정말로 죽는 게 아닐까, 아내는 생각한다.

 

병실에 누워 있는 다케와키에게 입사동기인 사장, 아들 같았던 사위, 오랜 죽마고우 친구가 찾아 온다. 방문객들이 저마다 다케와키를 추억하며 다녀간 뒤, 늦은 밤 의식이 돌아온 그는 자신이 어떻게 병원에 실려 왔는지를 떠올린다. 침대 옆 간이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어 아내일까 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이 많은 할머니였다. 자신을 '마담 네즈'라고 소개한 할머니는 아내가 오늘은 댁에 가서 자고 있다며, 다케와키가 꼬박 사흘간 잠들어 있었다고 말해준다. 창 밖으로는 눈이 내리고 있는 밤, 마담 네즈는 맛있는 걸 먹으러 밖으로 나가자고 말한다. 그들은 병실을 빠져나가 도쿄의 밤 풍경을 바라보며 고급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이후 그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한여름의 바닷가를 거닐기도 하고, 옆 침대 환자와 같이 목욕탕에 가고, 포장마차에서 따뜻한 정종도 마신다. 다케와키가 겪는 이 모든 것들은 환상이나 환각인 걸까? 아니면 그의 영혼이 육체를 빠져 나와 어딘가로 가기 위한 과정인 걸까?

 

 

내 꿈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소원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평범한 사람 쪽에서 보면 그런 꿈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콤플렉스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할까 봐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평범한 사람이 되도록,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제 꿈을 들어 보시겠어요?"
지하철이 다시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을 때, 나는 독이라도 토해 내듯 말했다.   p.353

 

이 작품은 아사다 지로가 2016년에서 2017년까지 1년간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서 연재한 이야기로 '아사다 지로 감동 문학의 결정판'이라는 평을 받았다. 나오키 상을 받았던 <철도원>에 수록된 단편이 국내에는 '파이란'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도쿄에서 고도 경제 성장기를 통과하며 자라 대기업에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맞이한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아사다 지로 본인의 삶과도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다. 주인공 다케와키처럼 고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며 자랐고, 이른 나이에 부모를 잃은 뒤 남의집살이를 하며 성장했으니 말이다. 작가는 주인공을 '같은 교실에, 같은 직장에, 같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 중에 있었던 인물'로 그리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다케와키의 삶은 주위를 둘러 보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밤늦게 퇴근해 녹초가 될 만큼 지쳐서 기절한 것처럼 잠들고, 아침에는 귀찮아하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 직장으로 향했던', '매일 아침 똑같은 지하철의 똑같은 칸을 20년간 탄' 그런 삶을 살아 가고 있는 것은 수많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니 말이다.

 

소소한 취미 하나 가질 생각도 못한 채 회사와 집만 오가며 살아온 다케와키는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에 평온한 안식 같은 시간은 없었다는 것을, 그렇게 계속 전쟁터에 있어 왔기에 정년퇴직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다시 살아나 병원에서 나갈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이후에 어떻게 하면 새로운 인생을 얻을 수 있을까? 이제는 결승점에 도착해 그 자리에 멈춰 섰는데,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다 할 취미도,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도 없는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신은 참 열심히 살았어요."

 

극 중 마담 네즈의 한마디에 다케와키는 마음이 흔들린다. 이는 어쩌면 작가가 자신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다. 다케와키가 경험하는 이차원의 세계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잇달아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과거와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유해주는 특별한 시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꿈도, 망상도 아닌, 현실처럼 느껴지는 그 모든 과정이 그리고 있는 이야기는 쓸쓸하면서도 뭉클했다. 아사다 지로의 30년 문학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인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과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메시지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었다.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겨울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만한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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