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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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네를 타는 그 사람의 표정이 말이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거예요. 환한, 세상을 손에 넣은 것 같은 얼굴. 그런 표정은 다른 때의 히사코 아가씨한테서도, 다른 사람한테서도 본 적이 없어요. 그 얼굴을 봤을 때, 전 죄의식 같은 걸 느꼈어요. 어쩐지 인간이 보면 안 되는 걸 본 것 같았어요. 문득 발밑이 푹 꺼지는 것 같았어요. 한순간, 그 사람이 그네를 타면서 느끼는 세계를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거든요.     p.134

 

이 책을 처음 만났던 것이 벌써 14년 전이지만, 나는 여름이 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이 작품을 떠올렸었다. 계절과 함께 기억되는 이유는 내가 무더운 여름에 이 책을 읽었던 것도 있지만, 극중 이야기의 배경이 도시 전체가 찜통에 들어 있는 것 같은 한여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진 옷으로 갈아입고 만나게 된 개정판은 한겨울이라 색다른 느낌으로 읽었다. 이 작품은 한 저택의 잔칫날 벌어진 독살 사건을 배경으로, 무려 열일곱 명의 희생자를 낸 끔찍한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눈먼 소녀와 현장에 남겨진 편지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이야기이다. 기존에 출간되었던 버전의 표지에서는 소녀와 하얀색 백일홍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다면, 전면 개정판에서는 붉은 빛 백일홍과 하얀 손의 이미지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한 사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당시의 모습에 대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스토리는 온다리쿠 특유의 이미지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와 미스터리로서의 독특한 긴장감이 더해져 굉장히 매혹적이다. 사람들의 기억은 각기 조금씩 달랐고, 증언들 또한 같은 상황에 대해 묘하게 엇갈리면서 진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실은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 가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이야기라 한 동안 이 작품의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오랜 만에 읽으면서 과연 그때의 그 임팩트가 여전할까 기대도 되었는데, 다시 읽어도 이렇게 재미있다니 감탄하면서 읽었다. 아직도 포스트잇 플래그를 가득 붙여 놓고 싶을 만큼 좋은 문장들이 가득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의 여운도 여전했다. 온다 리쿠는 <유지니아> 이후에도 최근작까지 수많은 작품을 써왔지만, 이 작품은 정말 독보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새하얀 꽃이 잔뜩 피어 있었어요. 백일홍 꽃. 압도당할 것처럼 하얗더군요. 이렇게 꽃을 많이 피우는구나 싶을 정도로, 나무가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탐스럽게 피어 있었죠. 어쩐지 오싹했어요. 온몸에서 핏기가 가시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등골이 오싹했어요. 실제로 체온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때 느낀 그 한기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군요.       p.267

 

한 가지 사건에 대한 다각적인 시점을 볼 수 있는 인터뷰 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작품이라 재미있는 것은 피해자와 목격자 모두 ‘자신이 본 것’을 증언하지만, 같은 시간, 공간에 있었던 그들은 저마다 다른 것을 보고, 느끼고 그렇게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 '실제 벌어진 사실' 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인터뷰는 조각조각 모아져서 하나의 퍼즐로 완성이 되지만, 완성된 퍼즐의 그림은 모호하기만 하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과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 없는 미스터리는 온다 리쿠만의 독특한 색깔이자 작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한 여름을 배경으로 기억을 더듬어보는 여러 명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여름에 대한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이 작품의 특별한 점이다. '도시 전체가 찜통에 들어 있는 것 같은, 후끈한 열기를 동반한 더위'라던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 같은 하얀 여름', 그리고 '사우나에 들어앉은 것 같은 피부의 감촉'과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하늘' 등등.. 마치 글을 눈으로만 읽는 게 아니라 오감으로 체험하게 만들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에, 이렇게 춥고 건조한 겨울에 읽으면 이야기 속으로 더 빠져 들게 될 것이다. 온다 리쿠의 반전 매력은 섬뜩하게 느껴지는 공포도 아무렇지 않게 그려내고, 너무도 적나라한 표현으로 당황스럽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분명 미스터리 추리물 같은데 완벽하게 열린 결말 때문에 어딘가 모호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이중성'에 있기도 하다. 거기서 오는 막연함과 불안감의 끝판왕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온다 리쿠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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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산타 웅진 세계그림책 218
나가오 레이코 지음, 강방화 옮김 / 웅진주니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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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어른도 모두 손꼽아 기다리는 날 중에 가장 설레이는 것은 아마도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어린 시절 잠들기 전 머리맡에 양말 주머니를 걸어 두고,, 올해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무슨 선물을 줄까 기대해 본 적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정말 산타가 있다고 믿다가, 어느 순간 우리의 산타가 엄마와 아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믿고 싶어 진다. 세상 어딘가에서 나를 위해 선물을 줄 산타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어느 봄날, 산타 할아버지가 양털로 목도리를 만들어 하나에게 선물해야겠다고 생각 한다. 양털을 빨고, 말리고, 풀고, 실을 뽑아서 긴 털실을 만들고, 그것을 예쁘게 물들이고 말린 다음 동그랗게 감아서 목도리를 짜기 시작하는 거다.

 

그렇게 여름이 찾아 오고, 가을이 지나고.. 어느새 겨울이 온다. 과연 산타 할아버지는 목도리를 완성해서 하나에게 제 시간에 갖다 줄 수 있을까?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일 년 내내 선물을 준비하고, 정성껏 만들어 전해주는 '나만의 산타'가 있다면 어떨까.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만큼, 선물을 만드는 시간 또한 너무도 사랑스럽다.

 

이 책은 이렇게 사랑스러운 설정을 자수로 수놓은 귀여운 그림으로 표현해낸다. 자수 그림책이라니 다소 낯선 방식이지만, 아기자기한 자수 그림들이 너무도 귀엽고 재미있었다. 자수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서 페이지를 뜯어서 액자에 넣어두면 그대로 작품이 될 것만 같은 예쁜 그림책이다.

 

 

선물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험난한 여정을 거쳐 선물을 배달하는 산타의 모습도 정성스럽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러운 자수로 표현해낸 숲과 나무, 다리, 산, 바다와 도심의 자동차와 건물들까지.. 아기자기하고 따뜻하다. 우리가 산타클로스를 떠올리는 것은 보통 12월이지만, 사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내내 산타가 선물을 준비해주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뭉클한 기분이 들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는 12월에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그림책이다. 아직 산타의 존재를 믿는 아이들에게도, 이제는 진실을 알지만 아직은 믿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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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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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동생은 내가 코트를 벗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해결책을 생각해내려고 애쓰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활동으로 저녁을 보낸다. 가끔은 그 애의 해결책이 정말로 효과가 있을까 봐 두렵다. 내가 동생에게서 무언가를 가져와버릴까 봐. 왜냐하면 우리에게 아직 욕망이 있는 한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다. 밭에 두엄을 뿌린 날 풍기는 숨 막히는 냄새처럼 우리는 목장의 어깨에 늘어뜨려져 있는 것이다. 내 붉은 코트의 빛이 바래는 것과 동시에 기억 속 맛히스 오빠의 모습도 흐려져간다.       p.97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겨울날, 네덜란드의 작은 농장에 사는 열 살 야스는 오빠와 동생, 가족들과 함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식사를 한다. 그날 아침 큰오빠인 맛히스는 친구 두어 명과 함께 동네 스케이트 대회에 나가기로 되어 있어서 먼저 호수에 갈 예정이었다. 20마일짜리 경주였는데, 우승자에게는 겨자를 넣은 소 젖통 스튜 한 그릇과 2000년이라는 올해 연도가 박힌 금메달이 수여되는 대회였다. 야스는 오빠를 따라 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빠는 야스가 더 크면 데려가 주겠다며, 털모자를 쓰고 미소 지었다. 오빠는 어두워지기 전에 오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호수 반대쪽 얼음이 너무 약했고, 사람들이 호수에 빠진 오빠를 꺼냈을 때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그 소식을 듣는 엄마, 아빠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고, 야스는 그 모든 일이 착오였다고 누군가 말해주었으면 했다. 집에 있던 크리스마스트리가 치워졌고, 가족들의 삶은 칠흑 같은 암흑이 되어 간다. 죽음을 이해하기에 야스를 비롯한 아이들은 너무 어렸다. 그저 죽음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파도처럼 덮쳐 온다는 것, 그리고 다시 돌이킬 수가 없는 거라는 걸 막연하게 느꼈을 뿐이다. 어른들이라고 어린 아들의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의 식사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함께 미소 지을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실감을 감당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남겨진 아이들을 보살필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야스는 오빠가 죽던 그날 입고 있던 빨간 코트를 한여름이 되어도 벗지 못한다. 마치 입고 있는 코트가 세상의 모든 상실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내 안의 폭력만이 소음을 일으킨다. 소음은 점점 커져간다. 마치 슬픔처럼. 벨러의 말마따나 오로지 슬픔만이 공간을 필요로 한다. 반면 폭력은 공간을 그냥 차지한다. 나는 죽은 나방을 손에서 떼어내 눈밭에 떨어트린다. 그리고 장화 신은 발로 그 위에 눈을 밀어 덮는다. 싸늘한 무덤이다. 화가 난 나는 축사 벽에 주먹을 휘둘러 손마디가 까지도록 후려친다. 이를 악물고서 축사 칸막이들을 바라본다.         p.326

 

이 작품은 네덜란드의 작가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가 스물일곱 살에 발표한 첫 소설이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연소 수상작가가 되었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중 야스의 가족처럼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의 가족도 농사를 짓고 목축을 했으며 네덜란드 개혁교회 신자인 부모님 아래 성경 말씀을 철저히 지키며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작가 역시 세 살 때 오빠를 잃었고, 그 상실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려 6년에 걸쳐 집필한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다. '글을 쓴다고 치유되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쓸 때만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는 작가의 말이 너무도 공감되는 그런 작품이기도 했다.

 

열살 소녀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라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죽음을 이해하고 싶은 어린 소녀가 경험하는 폭력성과 성적 욕구, 그리고 결국 자신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게 되는 과정은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 야스는 엄마의 등이 점점 더 굽어가는 모습을 보며 슬픔은 사람의 척추에까지 올라오는 거라고 이해하고, 아빠에게서 흘러나오는 슬픔이 죽은 소들에게서 나오는 묽은 똥과 피와 닮았다고 느낀다. 구제역으로 인해 애지중지 키운 소들이 죄다 살처분되는 현장에서도 아이들의 눈을 가려주지 않는 부모의 모습과 어른들의 보살핌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무심코 벌이는 행동들이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졌지만, 어쩐지 그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시종일관 고통과 상처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 직접 경험하게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죽음과 맞닥뜨릴 만큼 강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죽음을 상대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죽음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그 잔상과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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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컵하우스 : 쫑긋 가족을 소개합니다 웅진 꼬마책마을 5
헤일리 스콧 지음, 피파 커닉 그림, 홍연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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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는 심호흡을 하고 상자에서 찻잔을 꺼내 보았어요. 와! 그건 바로 찻잔 모양 인형의 집이었어요! 창문 여덟 개와 정문, 뒷문이 있고 나뭇잎과 꽃무늬로 화사하게 장식된 멋진 집이었죠. 세세한 부분까지 진짜 집과 똑같았어요. 파이프, 홈통, 문손잡이, 조그만 우체통까지도요! 찻잔 집 밑에는 찻잔 받침도 있었어요. 찻잔 받침은 멋진 돌길이 나 있는 예쁜 정원 모양이었죠.       p.15~16

 

도시 한복판에 있는 아주 높고 길쭉한 아파트의 꼭대기 층에 살았던 스티비와 엄마는 꽤 멀리 떨어진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스티비는 지금 집과 학교, 친구들이 정말 좋았기에, 조금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시무룩해 있는 스티비에게 외할머니가 찾아와 새로운 집에 어울리는 '새로운 집' 선물을 건네 준다. 커다란 상자 안에는 차를 마시기에는 찻잔 모양을 하고 있는 인형의 집이 들어 있었다.

 

 

 

세세한 부분까지 진짜 집과 똑같고, 파란색 문 위의 조그만 문패에는 '쫑긋 가족'이라고 쓰여 있었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찻잔 반쪽을 옆으로 젖히면,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거실과 방들이 있었다. 토끼 인형도 있었는데, 쫑긋 가족은 모두 네 명이었다. 아빠 토끼, 엄마 토끼와 누나 토리, 남동생 토미였다. 스티비는 쫑긋 가족을 작은 주머니에 넣은 채 티컵하우스를 들고 새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토리는 도저히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으니까요. 토리 앞에는 웅장한 하늘과 엄청나게 커다란 정원이 펼쳐져 있었어요. 꽃들은 탑만큼이나 키가 컸고, 민들레와 데이지가 점점이 피어 있는 풀밭에 풀이 무성했어요. 무척이나 아름답고, 무척이나 무시무시하고, 무척이나 새로웠어요. 아빠는 저기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도대체 어떻게 아빠를 찾아야 할까요?         p.86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토끼 인형 가족에게는 사실 비밀이 하나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면 진짜처럼 살아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스티비와 가족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장난감을 한번쯤 상상해본 아이들이 너무도 좋아할 만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쫑긋 가족은 스티비와 함께 차로 이동하던 도중에 아빠 토끼가 차에서 떨어지고 만다. 거대한 풀숲에 혼자 떨어진 아빠 토끼 곁으로 아주 크고 단단해 보이는 독버섯이 있었는데, 집으로 가기 위해 점프를 하다 그만 거미줄에 얽혀서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과연 아빠는 무사히 가족들을 찾아갈 수 있을까?

 

 

'티컵하우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이 책에서는 본격적인 스티비와 쫑긋 가족의 모험에 앞서 이들이 만나게 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스티비네 가족이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고, 할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티컵 하우스와 함께 새집으로 향하고, 그러다 아빠 토끼를 잃어 버리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 시리즈는 쫑긋 가족을 소개합니다,에 이어 쫑긋 가족의 케이크 만들기, 쫑긋 가족의 강아지 대소동으로 이어진다.

 

스티비는 앞으로 쫑긋 가족 넷과 무슨 모험을 벌일지, 내일은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다재다능 요리사 토미, 든든하고 용감한 조수 토리가 쫑긋 가족만의 특별한 케이크를 만드는 이야기도, 스티비네 집에 놀러 온 강아지 리오 덕분에 쫑긋 가족의 집이 아수라장이 되는 한바탕 소동도 기대가 된다. 화사한 색상과 아기자기한 그림들과 귀여운 상상력이 만들어 낸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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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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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의 그때를 그냥 내버려 두고 싶었다. 왜냐하면 1939년의 일을 쓸 때면 나의 모든 증오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증오는 사랑이 작동시키는 분비샘과 동일한 분비샘을 작동시키는 것 같다. 심지어 사랑이 초래하는 행동과 동일한 행동을 초래한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배우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한 사람이 질투 많은 유다였는지 아니면 비겁한 베드로였는지 그들의 행동만으로 알 수 있겠는가?       p.47~48

 

소설가인 밴드릭스는 유부녀인 세라와 불꽃같은 사랑에 빠졌다 헤어진 이후 1년하고도 6개월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다. 그러더 어느 비오던 밤 세라의 남편인 헨리와 우연히 마주친다. 오랜만에 만난 밴드릭스에게 헨리는 아내의 일로 걱정이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집으로 그를 초대한다. 헨리는 세라가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는 것 같다며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고, 이에 호기심과 질투에 사로잡힌 밴드릭스는 사설탐정을 고용해 그녀의 뒷조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오래 전 그녀의 갑작스러웠던 이별 통보 뒤에 숙며져 있던 뜻밖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밴드릭스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1939년의 첫 만남부터 1944년 런던이 공습받은 날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기까지의 이야기와 1946년 현재가 교차 진행된다. 사랑이 시작되고, 타오르다 사그라들고, 끝을 향해 가는 과정과 그 이후의 시간까지 모두 다루고 있는 셈이다. 그는 서두에 '이것은 사랑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증오의 기록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미워할 수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증오하기도 한다. 사랑과 질투로 시작되었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슬픔과 분노로 버무려지기도 하고, 아름답고 행복해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옹졸하고 변덕스러운 민낯을 보여주기도 하니 말이다.

 

 

 

수염과 부릅뜬 눈, 눈으로 쌓은 조그만 무덤, 영국 국기, 유행에 뒤처진 여자의 머리 같은 긴 갈기를 가진 조랑말들이 줄무늬 진 바위 사이를 나아가는 모습...... 그 죽음도 '마침표'였고, 여러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느낌표를 붙이고 스콧이 집으로 보낸 마지막 편지의 여백에 단정한 글씨로 짧은 글을 써넣은 여학생 세라도 '마침표'였다... 신은 한때의 일시적인 기분을 이용하는 연인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일과 자신의 전설로 우리를 유혹하는 영웅처럼 음흉한 존재였다.        p.316~317

 

이 작품은 인간 실존과 신의 관계를 깊이 고찰한 가톨릭 소설가이자, 격변과 혼란의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중요하고 복합적인 인물로 여겨지는 작가인 그레이엄 그린의 장편소설이다. 그레이엄 그린의 작품은 단편소설집으로 처음 만났었다. 53편의 단편을 한 권으로 엮은, 무려 964페이지의 압도적인 분량을 자랑하는 그 책은 두툼한 페이지만큼이나 이야기꾼으로서의 매력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작품은 <브라이턴 록>, <권력과 영광>, <사건의 핵심>에 이은 네 번째이자 마지막 가톨릭 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특히나 기존의 작품들이 모두 3인칭 시점으로 쓰였던 것에 비해, 이 작품은 처음으로 1인칭 시점으로 쓰였고, 그린의 실제 연애 경험이 반영된 자전적인 작품이기도 해 더욱 의미가 있다.

 

폐허가 된 전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결국 끝나버린 사랑과 잃어버린 연인을 기리는 애도의 기록이면서, 사랑과 증오의 이야기를 넘어서 신앙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로 도덕과 신앙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브라이턴 록>에 이어 종교적 고뇌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사랑의 종말> 역시 그레이엄 그린의 문학 세계를 제대로 경험하게 해주었다. 그레이엄 그린의 아름다운 걸작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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