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시민 불복종 (합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종인 옮김, 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 / 현대지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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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으므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를 살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불가피하지 않는 한, 이런 목표를 단념하고 싶지 않았다... 삶을 넓게 바싹 베어내면서 구석으로 몰아붙여 삶의 가장 밑바닥 조건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p.121

 

내가 <월든>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에이모 토울스의 눈부신 데뷔작 <우아한 연인>이라는 작품을 읽고 나서였다. 극 중 남자 주인공 팅커가 오래 전 여자 주인공 케이트가 무인도에 난파할 때 소로의 월든을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 책을 읽기 시작하는 걸로 나왔었다. 케이트는 엄청난 책벌레였고, 작품 곳곳에서 고전 문학들이 배경으로 보여지고,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나는 8년 전 이 작품과 사랑에 빠져서 <월든>을 읽어 보려고 책을 주문했는데, 받아 보고 나니 이미 내 서재에 있었던 책이었다. 덕분에 지금 나에게는 <월든>이 각기 다른 버전으로 세 권이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출간된 현대 지성 클래식의 <월든>이 궁금했던 이유는, 전문 사진작가 허버트 웬델 글리슨이 소로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찍은 66장의 사진을 본문 순서에 맞게 재배치해 수록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월든>을 읽으면서 누구나 눈 앞에 월든 호수와 숲속 풍경들이 그려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이 책을 다시 읽는 다면 얼마나 근사한 경험이 될까 기대가 되었다. <월든>은 국내에 꽤 많이 출간되어 있지만, 이렇게나 많은 풍경 사진이 함께 수록된 버전은 유일하다. 그러니 나처럼 이미 <월든>을 가지고 있거나 읽었더라도, 이번에 출간된 현대지성 클래식 버전으로 꼭 다시 만나보길 권하고 싶다. 근사한 사진들 덕분에 <월든>의 감동이 두 배가 되니 말이다.

 

 

 

단 한 차례 내린 부드러운 비가 풀을 훨씬 더 푸르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더 좋은 생각이 우리 머릿속에 들어오면 전망은 그만큼 밝아진다. 우리가 항상 현재에 살면서, 풀이 자기에게 내린 약간의 이슬방울로 인한 영향도 인정하듯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축복받은 존재가 될 것이다... 계절은 이미 봄인데 우리는 겨울 속을 배회하고 있다. 상쾌한 봄날 아침에 모든 사람의 죄악은 용서된다. 이런 날은 악덕과 휴전하는 날이다.       p.415

 

소로는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수의 가장자리에 손수 집을 지었고, 직접 노동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생활을 2년 2개월이나 했다. 이웃으로부터 1마일 떨어진 숲속에 혼자 사는 기분이란 어떨까. 외롭거나 무섭지는 않았을까. 도시의 문명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사는 게 불편하고, 어렵지는 않았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벌어 옷을 사고, 물건을 구입하고, 집을 마련하는 등 언제나 뭔가를 더 많이 얻으려고 한다. 그에 비해 소로는 훨씬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려 한 것이다.

 

그는 도끼를 한 자루 빌려 윌든 호수가 있는 숲속으로 들어갔고, 집을 지으려고 하는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 목재로 쓰기 위한 소나무를 벌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을 짓고, 농사를 지었고, 자신이 직접 키운 곡식만 먹으며, 그 양도 딱 먹을 만큼으로 한정했다. 그리고 마을에서 측량 일, 목수 일, 다양한 일용 노동을 해서 돈을 벌었고, 그 외에 세탁과 옷 수선 등 금전적 지출을 위해 농산물을 수확해 팔기도 했다. 온갖 불필요한 물건들에 잔뜩 둘러 쌓인 채 살고 있으면서도, 늘 더 많은 것이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소로의 삶은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책에는 소로가 같은 시기에 쓴 <시민 불복종>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월든>과 <시민 불복종>은 하나로 읽으면 더 좋다. 특히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말은 정부나 점령국의 요구, 명령에 대하여 폭력 등을 취하지 않고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소극적인 저항의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을 정도로 하나의 개념어가 되었다고 하니, <월든>만큼이나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오래 전 <월든>을 처음 읽었을 때는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었고, 어렵게 느껴졌던 부분도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다시 만난 <월든>은 굉장히 술술 잘 읽혔다. 가독성이 뛰어난 번역 덕분인 것 같기도 하고, 함께 수록된 근사한 사진들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역자의 풍성한 해제가 말미에 수록되어 있으니 작품의 이해를 도와줄 것 같다.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는 요즘같은 시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미덕을 배우고 내 삶을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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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법칙 - 권력, 유혹, 마스터리, 전쟁, 인간 본성에 대한 366가지 기술
로버트 그린 지음, 노승영 옮김 / 까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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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고 싶으면 책을 쓰고, 음악가가 되고 싶으면 음악을 하라. 사업을 벌이고 싶으면 창업하라.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음악이나 사업의 대가를 찾아 졸졸 따라다녀라. 그들의 발치에서 배우고 그들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라. 당신이 숙달하고자 하는 세계나 업계에 푹 빠져들어라. 당신이 세상에서 읽을 수 있는 어떤 책보다, 들을 수 있는 어떤 강좌보다 실천을 통한 배움이 더 낫다.       p.57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하루가 하나의 꼭지로 구성되어 하루에 한 페이지씩, 365일 1년 동안 할 수 있는 책들이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출판사에서 여러 장르의 책들이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로버트 그린이다. 이 책은 특히나 로버트 그린이 자신의 저작과 미공개 원고에서 직접 핵심을 추출해내고 하루하루 써내려갔기에 더윽 의미가 있다. 그의 전작들을 흥미롭게 읽어 왔다면 이번 책도 꼭 만나봐야 할 것이다.

 

이 책에는 그 동안 로버트 그린이 쓴 5권의 책과 현재 집필 중인 <숭고함의 법칙>, 그리고 지난 몇 년간의 인터뷰와 강연, 그동안 쓴 블로그와 온라인 에세이에서 추려낸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로버트 그린은 인간 관계, 심리에 관한 책으로 유명한데, 독특하게도 전공이 심리학이 아니라 고전학이다. 그래서인지 여타의 심리서와는 뚜렷하게 차별화된 스타일로 글을 써왔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권력의 법칙>은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현대판이라 불릴 정도였고, 고전과 역사 속 인물과 사건에서 다양한 상황을 끄집어내어 현대사회에 맞는 치밀한 전략으로 재구성한 <전쟁의 기술>은 ‘21세기 판 손자병법’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유혹의 기술>은 파리스와 헬레네가 등장하는 그리스로마 신화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유혹이라는 게임의 공격과 방어의 모든 기술을 담았으니 말이다.

 

그 모든 글들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매일 만날 수 있도록 구성해 1일 1법칙, 즉 하루에 하나, 오늘의 법칙을 만날 수 있어 가독성도 매우 뛰어난 책이다.

 

 

우리 인간은 순간을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우리 본성의 동물적인 부분이다. 우리는 보고 듣는 것에, 사건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에 무엇보다 먼저 반응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현재에만 매여 있는 동물은 아니다. 인간의 현실은 과거를 포괄한다. 모든 사건은 역사적 인과의 끝없는 연쇄 속에서 이전에 일어난 무엇인가와 연결되어 있다. 현재의 문제는 과거에 깊은 뿌리를 둔다. 인간의 현실은 미래도 아우른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은 먼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p.404

 

새해의 시작인 1월 1일에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성취하도록 운명지어진 일, 소명을 발견하고, 2월 8일에는 완벽한 멘토를 찾아 보고, 3월 11일에는 집중력을 발휘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 보자. 4월 12일에는 적과 화해하고, 그를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보고, 6월 20일에는 자신의 취약점을 권력으로 탈바꿈시키는 법을 배워 보자. 각각의 날짜에 해당되는 내용 아래에는 출처가 된 책의 제목과 장이 표시되어 있으니,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싶다면 해당 책을 찾아서 더 읽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때그때의 관심사에 따라서 원하는 부분을 골라 읽어도 무방하지만, 로버트 그린이 추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책을 집어든 첫날부터 하루에 한 꼭지씩 읽는 것이다. 새해가 이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새해의 첫 날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전쟁의 기술>, <권력의 법칙>, <유혹의 기술> 등 로버트 그린의 책은 '벽돌책'으로 유명하다. 이들 책 모두 600페이지를 가뿐히 넘으며 700페이지 가까이 되고, <인간 본성의 법칙>은 무려 9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다. 무시무시한 분량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뛰어나고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아서 상당히 잘 읽히는 편이지만, 압도적인 분량 때문에 선뜻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인간 심리의 대가, 로버트 그린의 핵심을 담고 있는 이 책으로 직접 만나보면 어떨까.

 

권력과 유혹, 전쟁, 전략, 정치, 심리, 생산성 등을 아우르는 인간 삶의 모든 측면에 대해 조언해주는 매일의 법칙들도 흥미롭지만, 새로운 매달이 시작하기 전에 로버트 그린이 들려주는 개인적인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인 경험과 책을 쓰는 과정, 책을 출간하고 나서의 변화 등 그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생생한 인생 지침을 배우게 해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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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구하라! 괴짜 박사 프록토르 5
요 네스뵈 지음, 페르 뒤브비그 그림, 장미란 옮김 / 사계절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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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장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아이들은 소곤소곤 이야기하거나 고개를 떨군 채 혼자 서 있었다. 체육관으로 가는 계단 위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르테였다. 비르테는 소심하고도 눈물 어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이건 불공평해. 크리스마스는 누구나 축하할 수 있어야 해. 불공평해. 진짜 불공평하다고!"         p.51

 

악당 트라네는 노르웨이 국왕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소유권을 사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조건에 대해 발표한다. 바로 트라네 백화점에서 1만 크로네어치의 물건을 구매해야만 크리스마스 등록 회원이 될 수 있었다. 뉴스가 나가는 그 시점부터 트라네의 허가 없이는 아무도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수 없었다. 캐럴을 듣거나, 트리를 꾸미거나, 크리스마스 예배, 심지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것도 말이다. 이러한 규정들을 어길 경우 크리스마스 경찰이 나타나 규정대로 집행할 거라고, 경찰들은 지금부터 순찰을 개시할 거라고 공표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트라네는 시리즈가 진행되는 내내 리세와 불레를 비롯해서 친구들을 괴롭히고 못된 짓만 골라 하던 쌍둥이 형제들의 아빠다. 국왕은 지하실에 곰팡이가 생겼는데, 그걸 해결할 비용이 부족해서 크리스마스를 팔게 되었다. 이것도 모두 트라네가 꾸민 일이었지만, 국왕은 어차피 크리스마스가 자신의 것인 줄도 몰랐다고 신경 쓰지 않는다. 리세와 불레는 이러한 일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크리스마스를 구하기 위해 프록토르 박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프록토르 박사는 20여 년 전에 산타클로스 일을 그만둔 스타니슬로프를 만나러 아이들을 데리고 외로운 묘비 술집으로 향한다.

 

 

"이상하지 않아요? 해마다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새로운 선물을 받을 생각만 해요. 하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멋진 것들을 지킬 수 있는 게 행운이고 훨씬 더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트라네 회사는 정작 크리스마스 선물이 필요한 사람들을 속이고 선물을 받을 기회조차 빼앗다니, 너무 속상해요."
리세, 넌 정말 똑똑한 아이구나." 프록토르 박사가 미소 지었다.     p.244

 

요 네스뵈의 '괴짜 박사 프록토르' 시리즈가 전체 5권으로 완간이 되었다. <신기한 방귀 가루>, <신기한 비누 거품>, <달 카멜레온을 찾아라!>에 이어 이번에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금괴 도둑과 비밀 정원>, 그리고 다섯 번째 작품인 <크리스마스를 구하라>가 함께 출간되었다. 아동 판타지 동화라고 해서 절대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 분량이 제일 많았던 세 번째 작품은 사백 페이지에 가까웠고, 이번에 나온 버전도 삼백 페이지에 가까운 두께이다. 게다가 시리즈가 5권이나 되니 어린이 도서로는 꽤 벽돌책에 가까운 작품인 셈이다. 그리고 그 분량만큼 아주 독특하고, 개성있는 재미를 선사한다. 게다가 작가가 요 네스뵈 아닌가. 절대 유치하고, 가볍게만 끝나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요 네스뵈의 스릴러 작품들을 좋아하는 어른 독자들이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잇는 요소들이 꽤 많다는 얘기다.

 

 

그 동안 이 시리즈를 읽어 오면서 페르 뒤브비그가 삽화가 자아내는 간결하지만, 어딘가 과장되어 있는 표현들이 어린이 들이 재미있어 하는 코드가 많다고 생각했었다. 이번 시리즈 마지막 작품에서는 오슬로의 겨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크리스마스 트리와 벽난로, 산타클로스와 눈사람 등이 등장해 근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개인적으로는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을 떠올리게 만드는 눈사람 삽화가 인상적이었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요 네스뵈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도 후반부에 수록되어 있다. 어떻게 이 시리즈를 구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과 이번 작품에 대한 설명, 그리고 책이 나온 뒤 딸과의 에피소드, 이 시리즈에서 요 네스뵈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와 주인공들에 대한 작가의 설명도 들어볼 수 있으니 놓치지 말아야겠다. 이 시리즈는 1권, 2권이 모두 영화로 제작되어 노르웨이와 독일, 영국 등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데, 영상화된 버전도 궁금해진다. 책이 워낙 재미있어서 영화로도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 것 같다. 자, 그렇다면 이번 크리스마스는 괴짜 박사 프록토르 시리즈와 함께 해보는 것이 어떨까. 불레와 리세, 프록토르 박사는 산타클로스와 함께 악당으로부터 크리스마스를 구할 수 있을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서둘러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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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진실 - 진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이다의 이유 2
에밀 졸라 지음, 이진희 옮김 / 이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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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실이 온전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밝혀지지 않을까 두렵다. 이것이 내 유일한 근심이다. 비밀리에 치러진 예심에 이어 비공개 재판이 진행되어도 종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그러면 비로소 사건이 시작될 것이다. 침묵은 곧 공범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기록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자가 있을까! 역사는, 이 사건의 역사는 제대로 기록될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 책임이란 없다.       p.107

 

우리 시대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명저를 선정해 출간되는 '이다의 이유'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에 이어 <에밀 졸라의 진실>을 만나 보았다. 이 책은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쓴 글들을 묶은 <멈추지 않은 진실>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국내에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작년에 최초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젊은 유대인 장교가 군사기밀을 적국에 넘겼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프랑스령 악마의 섬에 유배되었다. 드레퓌스는 자신의 무죄를 외쳤지만, 사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과는 이미 정해진 거였다. 그가 정말 적국에 기밀문서를 보냈느냐 보다 그가 유대인이며 독일계였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2년 뒤 진범이 밝혀 졌지만, 새로운 증거는 모두 묵살된 채 오히려 혐의자가 석방되었고, 프랑스 군 당국은 사실이 알려졌을 때의 파문이 두려워 오히려 입을 막고 진상을 덮기에 바빴다. 이 사건을 지켜 본 에밀 졸라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며 펜을 들었다.

 

 

 

무엇보다 최악은, 어쩌면 여러분이 이렇게 정의를 질식시킴으로써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으리라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조국의 제단 위에 정직한 입법자로서의 양심을 바친 것은 그토록 나라의 안정을 바랐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은 가엾을 만큼 순진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미숙한 이기주의자겠지요. 여러분은 또다시 완벽하게 패배하며 자신들의 명예를 더럽힐 것입니다. 우리의 적들에게 침묵을 사는 대가로 공화국을 한 조각씩 떼어 팔아넘기며 정국을 안정시키려 하다니,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p.253

 

사실 드레퓌스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에밀 졸라는 굳이 세상에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언젠가 진실을 말할 사람이 있을 테고, 나서서 자기 이름에 흠을 낼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당시 에밀 졸라는 <목로주점>, <나나>, <제르미날>을 비롯한 작품으로 작가로서 거의 모든 것을 이룬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에밀 졸라는 자신의 명성을 내려놓고, 멈추지 않는 진실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그는 '행동하는 지성'이 세상에 설 때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으며 정의 역시 자리매김한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신념을 행동으로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에밀 졸라를 비롯해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선 이들의 노력으로 결국 드레퓌스는 12년 만에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프랑스 최고재판소가 '드레퓌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오류였다'는 판결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러한 모든 과정이 이 책 속에 수록되어 있다. 기존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을 때 수록된 글이 11편이었는데, 이 책에는 거기서 제외되었던 두 편의 글들을 포함해 13편이 수록되어 있다. 드레퓌스 사건의 진상과 에밀 졸라의 주장,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의 모든 진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에밀 졸라는 이 사건에 대한 첫 번째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 얼마나 비통한 드라마이며, 이 얼마나 기막힌 등장인물들이 아닌가! 우리 앞에 펼쳐진 이토록 비극적인 이야기 앞에서 한 사람의 소설가로서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감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이보다 더한 심리적인 사건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말이다. 드레퓌스 사건 행동하는 지성으로서뿐만 아니라 전업 소설가로서도 흥분하고 끌릴만한 극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를 행동하게 했던 결정적인 것은 연민과 신념, 진실과 정의를 향한 열정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지만 말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지나간 일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실과 정의의 발걸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에밀 졸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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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방 - 성을 넘어 자기가 되는 삶 이다의 이유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지소강 옮김 / 이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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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약할지라도 소설은 삶의 네 모서리를 붙인 거미줄과 같습니다. 소설이 삶에 붙어 있다는 사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온전히 자기 힘으로 그곳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거미줄이 모서리에 걸려 비스듬히 당겨지고 가운데가 찢어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 거미줄이 실체가 없는 존재의 힘으로 허공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생스러운 노동과 건강과 돈과 우리가 사는 집과 같은 지극히 물질적인 것에 붙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p.90

 

우리 시대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명저를 선정해 출간되는 '이다의 이유'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과 <에밀 졸라의 진실>이 출간되었고, <나혜석의 고백>과 <정조의 공부>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자기만의 방>이 출간된 것은 1929년이다. 그로부터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성들의 삶은 과연 자유로워졌을까. 여성들의 위상이야 확실히 당시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여전히 가부장제와 불평등, 억압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나 기혼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이 있는 경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며, 매년 500파운드에 해당되는 금전적인 지원 역시 전무할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버지니아 울프의 목소리는 당대의 현실을 통과해서 빛을 발한다. 

 

 

 

우리 각자가 1년에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을 소유한다면, 우리가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글로 옮길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습득한다면, 우리가 가족 공용 거실을 조금 벗어나 사람 사이의 관계로만 인간을 바라보지 않고, 실재와의 관계 안에서 인간을 바라볼 수 있다면, 하늘과 나무와 그 무엇이라도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사람의 시야를 가로막는 일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기에 밀턴의 겁박을 가볍게 무시한다면,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팔은 없고 우리는 홀로 가야만 하며 우리의 관계는 남자와 여자의 세계일 뿐 아니라 실재 세계와의 관계라는 사실을(그것이 사실이므로) 직시한다면 기회는 올 것이고 셰익스피어의 누이이자 죽은 시인은 줄곧 내려놓았던 육신을 입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p.222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가 1928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기초로 쓴 에세이집이다. 그리고 <3기니>는 그 후속편으로 구상된 작품으로, 보통 두 작품을 함께 묶어서 출간되곤 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은 <자기만의 방>만 수록하고 있어 분량 면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관련 주제에 대해 더 관심이 생긴다면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도 찾아서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가 글을 쓸 당시나 이전까지, 여성은 돈을 벌 기회가 적었고 그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여성의 자유를 남성에게 종속시켰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펼칠 공간도 당연히 없었다.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는 이처럼 자유가 억압당한 공간과 현실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역사상 성 논쟁이 가장 치열했던 때에 여성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끌어올렸다. 강연 내용을 그대로 정리해 그 형식 그대로 흘러가는 이야기라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구어체 형식으로 진행되어 기존의 권위적인 글쓰기 방식에서 벗어나 독자가 스스로 사유하게 만들어 준다는 장점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책에서 실존하지 않는 누군가를 지칭해 '나'라는 화자를 만들고, 자신이 말하는 것 중에는 거짓말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속에 진실이 섞여 있다고 단언한다. 그 진실을 찾아내고 그중 어떤 부분이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것은 이야기를 듣고 (읽는) 우리의 몫이라고 말이다. 이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여전한 지금, 우리가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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