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계절의 여행 - 인생의 여행길에서 만난 노시인과 청년화가의 하모니
나태주 지음, 유라 그림 / 북폴리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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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각만으로도/살아야겠다는/싱그런 결의가 생긴다
네 얼굴/네 목소리/ 네 이름만 떠올려도/세상은 반짝이는 세상이 되고/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 참 이건 아름다운 비밀이고/알 수 없는 요술/그러니 너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어/
- p.52~53, '너에게 감사' 중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라는 시, '풀꽃'을 쓴 시인 나태주. 이제는 거의 국민 시인이 된 풀꽃 시인 나태주와 걸스데이로 데뷔한 배우 유라가 만났다. 연예인들 중에 그림을 그려서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하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라의 그림 실력은 수준급이다. 유라를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 책을 보면서 감탄하는 이들이 꽤 많을 것 같다.

 

 

이 책은 사계절로 구성되어 있다. '봄'이 피고, '여름'이 흐르고, '가을'이 익고, '겨울'이 내리다, 라는 목차 아래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나태주 시인의 시들 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과 그 계절의 여행에 관한 시를 뽑아 엮었다. 그리고 그 시들에 어울리는 유라의 그림 작품들을 함께 수록해서 근사한 시화집이 되었다. 총 8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유라의 그림을 보고 나태주 시인이 새로 쓴 시도 포함되어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수록된 그림들은 유라가 최근 2년간 손수 캔버스에 작업해온 유화 작품 위주로 담았고, 펜 드로잉 작품과 아이패드 드로잉 작품도 있다.

 

 

너의 생각 가슴에 안으면겨울도 봄이다/웃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겨울도 꽃이 핀다
어쩌면 좋으냐/이러한 거짓말/이러한 거짓말이 아직도/나에게 유효하고/좋기만 한 것
-p.124, '겨울차창' 중에서

 

베테랑 노시인과 가수와 배우라는 화려한 직업을 거쳐 온 젊은 화가가 살아온 시간은 아마도 거의 교차되는 지점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완전히 다른 인생의 계절을 살고 있는 두 사람이 각각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는 '계절'과 '여행'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나태주 시인의 시들은 대부분 간결하고 단순한 언어와 짧은 분량으로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읽을 수 있는 편이다. 시를 잘 모르더라도, 책을 잘 읽지 않더라도 나태주 시인의 시들은 담백하고, 위로가 되고,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서 따뜻하고 사려 깊은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곤 했다. 유라의 그림들은 이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순수하고, 따뜻하고, 기분 좋은 설레임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나태주 시인의 시들과 너무 잘 어울렸고, 시를 읽는 분위기를 잘 조성해주었다.

 

 

나태주 시인은 시를 통해서 세상 곳곳에 높여있는 아름다운 것들과 애틋한 사랑에게 안녕을 전하고,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살포시 가져와 시로 써 내려가는 것이 시인이라고 했던 그의 말처럼 아름다운 시화집이다. 유라의 그림들이 시에 계절감을 더해주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사계절을 거쳐가며 여행하는 듯한 기분도 들 것이다.

 

빡빡한 일상에 잠시 쉼표를 만들어 주고 싶다면, 사려 깊은 위로와 휴식이 필요하다면, 이 특별한 시화집을 만나 보자. 그리고 도서 구매 시, 유라의 그림이 담긴 일러스트 계절 캘린더도 받을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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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씨의 달리기 도란도란 우리 그림책
일루몽 지음 / 어린이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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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씨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살아 남았지만, 갈매기 씨도 한쪽 날개를 다쳤고, 두 번 다시 날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새가 하늘을 날 수 없다니,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갈매기 씨는 절망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가족도 잃어 버렸고, 날개도 잃어 버렸으니, 뭘 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날 수 없는 새가 되어 버린 갈매기 씨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갈매기 씨는 멋진 곳을 여행하고, 맛집을 찾아가 봤지만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갈매기 씨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릴 때는 다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날마다, 밤낮없이 무작정 달리던 어느 날, 공원 벤치에서 조그마한 알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도 보살펴 주지 않는 알을 보며, 혼자 남겨진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생각했던 건지, 갈매기 씨는 알을 돌봐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한쪽뿐인 날개로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 버린 갈매기 씨를 찾아온 것은 새로운 가족이었다. 하지만 알을 깨고 나온 것은 기대했던 아기 새가 아니라 오리너구리였다. 갈매기가 오리너구리를 키운다는 발상부터 재미있는데, 사실 오리 너구리는 몸통은 너구리처럼 생겼지만, 부리가 오리처럼 납작해서 꽤 귀엽다. 포켓몬스터의 캐릭터, 고라파덕으로 알려져 있는 바로 그 동물이다.

 

갈매기와 비슷한 새였다면 자연스럽게 가족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완전히 다른 종류인 오리너구리라서 아마도 자라면서 그 다름으로 인해 많은 이야기들이 더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 복잡한 나날이 갈매기 씨를 더 이상 외롭게 할 틈을 주지 않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괜시리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책은 어린이작가정신의 우리 창작 그림책 시리즈인 '도란도란 우리 그림책'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이다. '도란도란'이라는 다정한 단어에서부터 나직한 목소리로 모여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귀담아 듣는 정경이 연상이 되는 그런 시리즈이다. 아이 덕분에 그림책, 동화들을 꽤 챙겨보는 편인데, 외국의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물론 좋지만, 요즘은 우리 작가들의 그림책이 수준도 높아졌고, 정서도 따뜻해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날개를 잃어 버린 외톨이 갈매기 씨가 버려진 알이었던 오리너구리를 만나 새로운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은 아이와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작품이다. 갈매기 씨가 이제 더 이상 혼자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함께 달릴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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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크리크
앤지 김 지음, 이동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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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쓸 때의 박 유는 한국어를 쓸 때의 그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그렇겠거니 생각했던 대로, 언어의 유창함이 한풀 꺾이면서 유능함이나 성숙함도 한 꺼풀 같이 벗겨지는 이민자들은 어쩔 수 없이 어린아이 버전의 그들이 되고 만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 그는 자신이 맞닥뜨리리라 예상한 어려움들에 대한 대비를 했다. 말하기 전에 생각을 번역해야 하는 논리적 어색함이나, 맥락에서 단어의 뜻을 유추해야 하는 지적 부담감, 한국어에는 없는 소리를 내기 위해 혀를 익숙하지 않은 위치에 두어야 하는 신체적 난관. 하지만 그가 알지 못했고 예상하지 못했던 건, 이런 언어적 불완전성이 바이러스처럼, 발화 능력을 넘어 다른 부분들까지 오염시킨다는 사실이었다.     p.235

 

버지니아 주의 작은 마을 미라클 크리크, 워싱턴 D.C.에서 겨우 한 시간 거리인 그곳은 문명에서 몇 시간은 떨어진 것 같은 외딴 촌락의 분위기를 풍겼다. 자동차 대신 소들이 다니고, 고층빌딩 대신 허름한 나무 헛간이 있는, 마치 흐릿한 흑백영화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그런 동네였다. '미라클'이라는 이름이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기적이 일어날 곳 같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운영하는 고압산소 치료 시설인 미라클 서브마린이 있었다. ‘기적의 잠수함’이란 뜻의 마치 잠수함처럼 생긴 체임버 형태의 의료기기를 갖춘 미라클 서브마린은 고압산소요법을 이용해 자폐, 뇌성마비, 불임 등을 치료하는 일종의 대체의학 치료 시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미라클 서브마린의 산소 탱크가 폭발했고, 그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다. 당시 서브마린 내부에는 자폐 등의 치료를 받는 아이 셋과 부모 둘, 그리고 불임치료를 받던 성인 남성 한 명이 있었다. 그리고 치료 시설의 주인인 박 유와 아내 영 유, 딸 메리가 인접 지역에 있었다. 사고로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네 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어 신체가 마비되거나 절단되어 몇 달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당시 치료 시설 주위에서 비과학적인 자폐 치료는 아동 학대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사건의 용의자는 사망한 자폐 아이의 엄마였다. 항상 치료 시에 아들과 함께 산소 탱크에 들어갔던 그녀가 몸이 좋지 않다며 들어가지 않았고, 하필 그녀가 피운 담배와 성냥이 화재를 일으킨 것과 동일한 브랜드였던 것이다. 그녀는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은 이후 하루에 두 번 왕복 몇 시간 거리를 오가며 고압산소 치료를 받게 하는 등 아이의 치료에만 매달린 열성적인 엄마였다. 정말 그녀가 방화를 저질러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 했던 것일까?

 

 

 

다른 '더 큰' 일이 많았기에 이 정도로 징징거려서는 안 되는 걸 알았다. 그러나 이런 일상적인 수치들, 뭉텅이로 허비되는 몇 분들이 그녀를 무너뜨렸고, '일반' 부모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를 거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물론 젖먹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그녀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겠지만 한시적일 때는 뭐든 참을 만하다. 하지만 이 짓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매일같이 해봐라. 팔순이 넘어서도 쉰 살 먹은 아픈 딸을 데리고 그때는 또 무슨 치료인지도 모를 치료실에 데려가는 길에... 내가 죽으면 누가 내 딸을 돌봐주나 걱정한다고 생각해보란 말이다.       p.400

 

이야기는 사건이 발생하고 일 년 후 벌어진 나흘간의 재판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다. 미라클 서브마린을 운영하는 박 유와 아내 영 유, 그들의 딸 메리, 그리고 화재 발생 당시 산소 탱크에 있었던 이들의 시점으로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2020년 에드거상을 비롯해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전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앤지 김은 열한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고, 하버르 로스쿨을 거쳐 법정 변호사로 일했다. 그녀의 데뷔작인 이 작품에는 변호사로 일했던 작가의 경험과 병치레가 잦았던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의 경험, 그리고 영어를 말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채로 이국땅에서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은 법정극으로서도 매혹적이지만, 무엇보다 각각의 인물들의 입장에서 섬세하고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는 심리 묘사가 압도적이다. 특히나 장애아동을 키운다는 것이 단순히 삶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가 바뀌고 중력의 축이 변경된 평행 우주로 이동하는 것이라는 것을 일상의 에피소드들로 차곡차곡 쌓아서 보여주고 있어 진짜 현실로 체감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민자의 가족이 타국에서 겪게 되는 그 모든 것들 또한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부분들이었다. '한국어를 쓰는 박이 배울 만큼 배운, 존경받아 마땅한 권위적인 남자였다면, 영어를 쓰는 그는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못하며, 매사에 자신 없고, 걱정하고, 서투른 머저리'였다는 문장처럼 예리하게 그려내는 묘사들이 심장을 툭툭 건드리는 순간들이 많았다. 덕분에 최근에 읽었던 그 어떤 소설보다 포스트잇 플래그를 많이 붙인 작품이 되었다. 문장도, 묘사도 뛰어 나고, 서사와 구성, 반전, 플롯과 묵직한 감동까지 뭐 하나 놓치지 않는 작품이었다. 그날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에 대한 미스터리가 만들어 내는 서스펜스와 저마다의 ‘진실’과 '비밀', 그리고 각자의 사정과 입장에서 오는 차이에서 오는 극적인 긴장감, 부모로서의 죄책감과 자괴감, 기적을 바라는 마음과 희망이 사라져버리는 순간의 안타까움이 어우러지면서 만들어 내는 드라마의 감동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한 동안 여운처럼 남는다. 그 어떤 찬사를 갖다 붙여도 부족할 만큼 근사한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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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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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퀸 앤 애비뉴에서 살해당한 노파 기억나? 미제로 남은 사건 말이야."
"노라 스티븐스?"
"범인이 누군지 몰라 찜찜하지 않아?"
"당연히 찜찜하지."
"20년 동안 그랬다면 얼마나 찜찜할지 상상해봐.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당했다면, 해답을 얻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겠어?"      p.208

 

트레이시와 세라는 각별히 사이가 좋은 자매였다. 그 날은 워싱턴 주 카우보이 액션 슈팅 챔피언을 가르는 결승전 날이었다. 스물두 살의 트레이시는 이미 세 차례 우승했지만, 작년에 네 살 어린 동생 세라에게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겼다. 올해 자매는 거의 동점으로 결승에 올랐고, 트레이시는 한 발, 세라는 두 발이 빗나가 트레이시가 우승을 한다. 하지만 트레이시는 세라가 일부러 실수해 자신이 우승하도록 했다는 것을 안다. 그날 저녁 남자친구인 벤에게 청혼을 받았고, 그 준비를 동생과 벤이 함께 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필 그날은 폭풍이 예고된 날이었고, 벤과의 저녁 약속 때문에 세라를 집까지 데려다 주지 않고 혼자 보낸 것이 트레이시는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후 20년 동안 트레이시는 세라를 다시 보지 못했다.

 

세라는 실종됐고, 성범죄 전과가 있는 에드먼드가 범인으로 체포되어 정황증거만으로 1급 살인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트레이시는 재판에서 의문이 들었던 부분이 있었고, 진실을 찾기 위해 형사가 된다. 사건 이후 20년, 고향의 숲에서 세라의 유해가 발견된다. 드디어, 동생이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트레이시의 가슴속에 차오르는 감정은 슬픔이나 회한, 자책감이 아니었다. 분노였다. 그녀는 동생의 실종이 사람들의 추측과는 다르다는 것을, 그 사건에 뭔가 더 있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그걸 입증할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사건 이후 무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기억도 바래지고, 증거도 대부분 사라진 지금, 트레이시는 그날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는 눈치로군."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져, 밴스. 이제 와서 마음을 바꾸는 건 아무 도움도 안 돼."
"한 번도 의심 안 해봤어?"
"우리가 옳은 일을 했는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캘러웨이는 술을 다 마시고 아내가 폭풍에 대해 경고했던 일을 떠올렸다. "자네도 더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 가서 아내한테 키스해줘.      p.366

 

이야기는 평범한 스릴러처럼 전개된다. 한 여성이 사라지고, 재판 과정에서 진실은 조작되고, 범인은 날조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다. 그렇게 사건은 그대로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갈 즈음, 수십 년 동안 진실을 밝히겠다는 신념으로 버텨온 가족이 형사가 되어 모든 걸 다시 파헤치기로 한다. 물론 그 과정이 쉬울 리 없다. 범인으로 지목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자가 무고한 시민이 아니라, 가석방으로 풀려난 강간범이었으니 말이다. 법의 수호자인 형사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살인범에게 새로운 재판 기회를 주려는 것이었으니 언론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500여 페이지 정도 되는 페이지의 반 정도가 바로 그 과정에 사용된다. 그리고 2부가 되면 본격적인 법정극이 펼쳐진다. 치밀하게 구성된 법정 장면은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드디어 20년 전 사건을 다시 수사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고 돌아서는 순간, 작가는 그 모든 것을 완전히, 뿌리부터 뒤집어 버린다. 반전이 단순한 깜짝쇼가 아니라, 겹겹으로 숨겨진 비밀에서 오는 먹먹함과 함께 오기 때문에 그 충격과 여운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후반부의 100여 페이지는 어떻게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휘몰아치는 광풍에 휩싸인 것처럼 지나간다.  책을 펼치면 그야말로 끝까지 멈출 수 없는, 제대로 된 페이지 터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로버트 두고니의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이 시리즈는 현재 8권까지 출간되었고, 전세계 25개국에 번역 출간되어 8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곧 영상화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변호사였던 작가 두고니는 법정 소설로 데뷔하며 '존 그리샴의 성취를 이을 후계자'로 불리기도 했다. 트레이시 시리즈 외에도 여러 시리즈를 출간한 작가이기에 국내에 왜 이렇게 늦게 소개되었나 싶을 정도로 궁금했던 작가였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자 마자, 로버트 두고니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부터 아직 소개되지 않은 다른 시리즈들도 모두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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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세이지 작품집 & 원근법 테크닉 - 일러스트를 위한 투시도법 그리다
요시다 세이지 지음, 고영자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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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요시다 세이지의 첫 화집이다. 그의 개성이 가득 담긴 작품이 53점이나 수록되어 있고, 퀄리티도 아주 훌륭하다. 게다가 그의 작화 노하우를 배워볼 수 있도록 작품과 투시도법, 풍경과 배경을 그리기 위한 테크닉을 소개하고 있어 일러스트와 배경 그림에 관심이 있다면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풍경과 배경을 그리기 위한 효과적인 테크닉을 설명해준다. 퍼스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법부터 제대로 배운 사람도 적용하기 쉬운 퍼스의 기술까지 다양한 테크닉을 소개하고 있으니, 자신의 그림에 활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일러스트의 제작 과정을 통해 그림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작가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어 요시다 세이지로부터 강의를 듣는 듯한 기분도 든다. 퍼스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지면으로부터의 높이를 맞추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것, 크기를 맞추어 그릴 때 평면적으로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 앙각과 부감으로 그리는 방법, 그럴듯한 자연 풍경을 그리는 팁 등 초보자가 읽기에도 어렵지 않고, 전공자라면 제대로 가이드가 되어줄 노하우들이 가득하다.

 

 

그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중에서도 배경을 메인으로 그리는 사람은 정말 적어서 만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게임 등의 업계에서 배경 쪽은 항상 일손이 부족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배경은 유행을 타지 않아 한 번 그릴 수 있게 되면 오래 일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 배경을 그리는 전문가가 되어 보는 것도 좋다고 요시다 세이지는 적극 추천하고 있다.

 

 

특히나 원근감이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이론인 퍼스에 대해서 기본 지식부터 1점 투시, 2점 투시, 3점 투시 등 종류와 그리는 법, 복수의 소실점이 있는 풍경을 그리는 방법 과 다양한 퍼스의 활용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어 원근법 테크닉이 필요하다면 배울 점이 많을 것 같다.

 

마지막에는 요시다 세이지의 긴 인터뷰가 세 페이지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그의 작화에 대한 신념과 미의식, 하루 스케줄과 일상 등 히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요시다 세이지는 '배경 작업에서는 단순히 풍경이나 건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감정에까지 작용하는 그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에서 배경에 따라 장면의 분위기가 크게 좌우되는 것을 보면 그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배경을 가능한 한 단순화하고 즐겁게 이해하고 싶다면, 유명한 배경 아티스트 요시다 세이지의 작품과 그의 작화 노하우를 함께 배워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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