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박의 오이스터 영어교육법
조이스 박 지음 / 스마트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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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먼저 귀로 듣고 그다음에 글로 온다. 즉, 아이들은 먼저 소리를 알고, 그다음에 의미를 알고, 그런 후에 글로 들어온다(읽기를 시작해 어휘가 확장되는 소리 - 문자 - 의미의 단계와 다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배울 때에는 소리를 모르는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아이들은 '책상'이라는 우리말 소리와 뜻을 알지만 'table'이라는 영어의 소릿값이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영어 원어민이 아닌 우리 아이들한테 파닉스를 가르칠 때 힘든 점은 소리와 문자를 다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p.90

 

보통 공교육에서 영어를 배우는 시점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이 시기 '이전'부터 집에서 오디오 자료와 원서를 활용해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을 소위 '엄마표 영어'라고 한다. 수학과 마찬가지로 영어도 초등학생 때부터 속칭 '영포자(영어 포기자)'가 속출하고 있어, 자연스레 '엄마표 영어'에 부모들의 관심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엄마 아빠는 파닉스로 영어를 배우지 않은 세대일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과 많다고 하더라도, 막막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시중에 출간되어 있는 엄마표 영어나 영어 교육법에 관한 책들은 개인의 경험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 만난 책은 이러한 엄마표 영어의 과도한 일반화 오류를 바로잡고, 과학적인 영어교육의 여러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영어 문해력 학습의 제대로 된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어 굉장히 흥미로웠다. 2022년 68월 서초구립반포도서관에서 했던 6회의 강의 내용을 토대로 쓰였는데, 당시 수강 신청 오픈 2시간 만에 정원 100명이 마감되어 부랴부랴 정원을 200명으로 늘리고 마감했던 화제의 강좌였다. 30년간 영어교육에 몸담고 있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영어 선생님들의 선생님인 저자가 어린이들의 인지발달에 맞춰, 뇌과학, 심리학, 교육학을 바탕으로 썼기에 굉장히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엄마표 영어를 하면서 궁금했던 부분들, 잘 되지 않았던 부분들과 모호했던 부분들을 깨끗하게 싹 정리해주고 있어, 여타의 엄마표 영어를 다루고 있는 책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영어 읽기의 유창성을 키워주는 청크의 크기를 키우고, 청킹 능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에게 '끊어읽기'를 계속 연습시키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소리내어 읽을 때 끊어읽기를 가르치면, 머릿속에 의미덩어리를 찍는 단위들이 생긴다. 이 찍는 단위가 생겨야 뇌가 척척 (자동적으로) 끊어읽기를 할 수 있다. 영어책을 소리내어 읽을 때 끊어읽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머릿속에 찍는 판들이 계속 커지고 영어 읽기가 자동화된다.        p.214

 

알파벳 습득에서 시작해 파닉스, 어휘, 리딩, 스피킹, 라이팅까지 시간과 돈의 투여에 비해 결과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저자는 학국의 부모들이 파닉스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과 잘못된 영어 교육법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해주고, 아이의 발달에 맞는 영어 교육법에 대해 가이드해준다. 게다가 뇌과학이 밝혀준 읽기 발달의 3단계, 단어 인식 능력을 높이는 법, 유창한 읽기를 위한 6가지 청킹 연습과 7가지 기술, 영어 글쓰기가 쉬워지는 7가지 독후활동, 나선형 어휘학습법 등 제대로 된 영어 교육법을 로드맵으로 제시해주고 있어 이 책 한 권이면 누구라도 엄마표 영어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영어 읽기 발달단계에 따른 <워크시트 41가지>, <워드 패밀리 연습 66>을 PDF 파일로 제공하며, <부모님들이 자주 하는 질문과 답변>, 조이스쌤 엄선 <영어 읽기 도움 사이트>, <영어 동영상 목록>도 수록되어 있어 집에서 당장 활용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이에게 영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은 아마도 모든 부모들이 절감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시작할지, 중간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제대로 로드맵을 그려 보아야 한다. 엄마표 영어는 사실 초등학교까지가 최적기이기 때문에 초등 부모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엄마표 영어는 100% 틀리거나 100% 맞다. 내 아이에게 안 맞는 학습법은 100% 틀리기 때문이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막연히 아이에게 공부를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내 아이의 학습 유형에 대한 부모의 공부가 먼저라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도 이 책은 엄마표 영어 교육의 바이블이 되어줄 것 같다. 파닉스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파닉스를 얼추 뗀 다음에는 어떤 단계로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이 스스로 유창하게 영어 읽기를 하기 위한 방법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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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설계자 - 자동 수익을 실현하는 28가지 마케팅 과학 스타트업의 과학 1
러셀 브런슨 지음, 이경식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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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혼란스러운 고객은 어김없이 구매를 거절한다.’ 이것은 마케팅의 기본 규칙이다. 대부분의 웹사이트는 버튼이 너무 많고, 요구하는 행동도 너무 많으며, 수백 개의 다른 페이지로 이어지는 메뉴도 너무 많다. 이런 웹사이트가 잘하는 딱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퍼널은 단순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겉보기에는 웹사이트처럼 보일 수 있어도 각 웹페이지와 단계마다 단 하나의 실행만 선택할수 있다.          p.38~39

 

1000억 원 규모의 마케팅 기업을 단숨에 일궈내며 마케팅의 새로운 신화로 떠오른 러셀 브런슨의 ‘스타트업의 과학’ 시리즈 첫 책이다. 이 시리즈는 <브랜드 설계자>, <트래픽 설계자>, <스토리 설계자>로 이어질 예정이다. 러셀 브런슨은 열두 살부터 정크메일 중독자였다고 한다. 정크메일과 직접 반응 마케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대학교 2학년 때 첫 번째 온라인 마케팅 사업을 설계하게 된다. 이후 수천 번의 실험 끝에 자신만의 '마케팅 퍼널' 기법으로 미국 마케팅 업계의 구루가 되어 100만 명이 넘는 기업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 책은 '퍼널' 기반 다이렉트 마케팅의 기본 개념을 저자의 성공 경험담을 통해 쉽게 설명하고, 실제 쓸 수 있는 카피 하나, 스크립트 하나까지 깨알같이 듬뿍 담아낸 마케팅 실무 비법서라고 할 수 있다. 러셀 브런슨은 단 90분의 스피치로 9000명의 청중으로부터 4억 5000만 원의 현장 판매를 해낸 세일즈의 왕답게 특유의 자신감과 명쾌함으로 이 책을 이끌어 나간다. 특히나 직관적인 개념 이해와 기억을 돕는 손글씨 그림과 메모를 곁들여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관련 도표나 이미지를 보고 곧바로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면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실무에 적용하기도 더 쉬워질 테니 말이다.

 

 

 

진짜 중요한 사실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당신이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이 1000달러이고 제품 하나를 팔 때마다 900달러를 광고비로 지출한다고 치자. 그러면 제품 하나를 팔 때마다 수익은 100달러씩 발생한다. 그런데 광고를 클릭하는 사람의 수를 두 배로 늘린다면 수익은 두 배로 늘지만 광고비 지출은 늘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수익은 100달러가 아니라 1100달러가 된다.(매출 2000달러-광고 900달러=수익 1100달러) 그러니까 광고 클릭 수가 두 배로 늘어날 때 수익은 두 배가 아니라 열 배 넘게 늘어나는 셈이다!          p.329

 

지금은 기획, 제조방식, 상품의 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마케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시대이다. 당연히 기업은 마케팅에 사활을 걸고 막대한 광고비를 쏟아붓곤 한다. 하지만 영혼 없는, 뻔한 마케팅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바로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은 첫 광고 카피를 쓰는 순간부터 고객이 구매 버튼을 누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판매 과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마케팅 시스템의 설계법을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어 시작부터 끝까지 완성된 마케팅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온라인 마케팅의 승패가 '설계'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누구라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2000명의 사람들 앞에서 펼쳐진 직접 마케팅의 현장이었다. 무대에 올라 강연을 시작하면서 그는 600달러에 산 아이폰을 10분 안에,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에게 10만 달러에 팔겠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불과 몇 분 만에 600달러짜리 휴대폰의 가치는 75만 달러가 된다. 실제로 75만 달러를 내고 휴대폰을 사겠다고 의사 표현을 한 사람이 세 사람이나 되었으니 말이다. 그가 어떻게 그런 '마법'을 부렸는지는 직접 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이 에피소드처럼 어떤 제품을 제안으로 바꾸고, 또 스토리와 후크로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아서 그 제품의 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자사 채널, 스마트 스토어, 모바일 플랫폼 등을 활용해 구매를 촉진시키고자 하는 사업가 혹은 창업 준비생 등 모두를 위한 마케팅 퍼널 100퍼센트 활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판매 제품과 상관없이 상황에 따라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스크립트와 단계별 구체적 지침과 정책에 따라 변하는 광고 방법이 아니라 기본 원리를 통한 근본적인 마케팅 개념, 카피의 원칙 등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이 마케팅 실무자들에게는 교과서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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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소싱으로 초보 셀러 탈출하기 - 리스크를 줄이고 마진을 높이는 알리바바 해외 소싱의 비밀
정지나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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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아침에 주문해서 당일 오후에,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바로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야말로 물류의 혁신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렇게 빨리 물건이 배송되는 곳은 없을 테니 말이다.

다양한 쇼핑 플랫폼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온라인 판매 사이트가 활성화되어 누구라도 상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싸게 사고 비싸게 팔아 수익을 남길 수 있을까.

 

 

이 책은 해외 소싱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 셀러를 위해, 해외 소싱과 관련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해외에서 저렴하게 물건을 사와서 한국에서 판매할 수 있는지' 고민이라면, 이 책이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다.

 

해외 소싱의 프로세스를 기획, 샘플링, 물류, 통관, 판매 등 총 9단계로 나눠 꼭 알아야 하는 실전 지식만을 상세히 알려 주고 있어 대단히 실용적이다.

 

 

해외 소싱을 해보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막막하다면, 이 책 한 권으로 비용과 리스크를 줄여 마진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품 기획서 양식, 해외 소싱 용어 모음집, 제조사 소통 영어 템플릿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어 실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상품을 소싱할 수 있는 많은 플랫폼 중 세계 최대 B2B 플랫폼인 알리바바를 이용한 소싱 방법이다. 해외 소싱은 독점성 있는 상품을 해외 제조사로부터 저렴하게 구매해 와서 국내 유통 시장에서 구매하는 가격보다 높은 이윤을 남기면서 판매하는 방법이다. 해외 제조사와 소통하며 원하는 상품을 기획 및 제작함으로써 상품의 독점성을 확보할 수 있고, 내 상품을 브랜딩함으로써 상품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알리바바를 통한 상품 소싱 과정은 상품 기획 및 시장조사 → 견적 문의 → 샘플링 → 상품 개발 → 발주/결제 → 해외 물류 → 통관/인증 → 입고/판매 준비 → 상품 판매 총 9단계로 나뉘어 진다. 각 단계마다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실무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알리바바를 잘만 활용하면, 해외에 있는 제조사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좋은 제조사와 함께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니 해외 소싱을 준비 중이라면 이 책을 통해 제대로 배워두면 좋을 것 같다. 해외 소싱을 현업으로 하고 있는 저자의 노하우도 가득하니, 돈을 남기는 쇼핑몰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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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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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도 아닌데 살금살금 걸을 필요는 없지만 천정 부근에 시어머니 혼령이 떠다니고 있는 듯한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었다.
부재일 때 내가 사는 곳을 남들이 보는 건 누구라도 싫기 마련이다. 차를 같이 마시는 친한 친구가 와도 기껏해야 방안을 대충 둘러보는 정도일 테다. 그런데 원래는 남이던 며느리인 내가 서랍 속과 옷장과 벽장 안까지 전부 보려 한다. 하물며 멋대로 필요 불필요의 판단을 내리고, 쓸 만한 물건은 가져가고 필요 없이 여기는 물건은 가차없이 버리려 한다.          p.9~10

 

<70세 사망법안, 가결>, <후회병동>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가키야 미우의 신작이다. 두 작품 모두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실재하는 현실을 보여주며 노후에 대해,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이야기였다. 이번 작품은 홀로 살던 시어머니가 돌연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찾아온 며느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도와줄 사람은 없고, 업체를 부르자니 비용이 만만치가 않고, 하루라도 빨리 정리해서 방을 빼지 않으면 비싼 월세를 계속 내야 했다. 하지만 집안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방대한 양의 물건에 아연실색하고, 그 와중에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서 이상한 일들이 이어진다. 전원을 켜지 않은 코다츠가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고, 열어 두고 간 문이 꽉 닫혀 있고, 시든 야채와 물건들이 사라진 것이다.

 

마치 어딘가 수상한 사람이라도 숨어 있는 듯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 며느리 모토코는 홀로 유품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다. 누군가 만능키를 가지고 있는 건지, 전문털이범이라도 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기묘한 일이 계속 생겼지만 어차피 훔쳐가도 곤란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고, 기분이 꺼림칙하고 혼란스러운 그대로 모토코는 물건들과 가구들을 정리해나간다. 시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은 점점 커졌고, 왜 쓰지도 않은 물건을 계속 사들이고, 쌓아 두었던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일이 의외로 많아."
후유미가 돼지고기와 베이컨을 넣자 치직하는 소리가 났다.
"부모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죄 많은 존재이기도 해"라고 모토코가 말했다.
"맞아. 내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어. 정말로 성가신 존재야."
후유미는 그렇게 말하지만 어머니를 용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상반된 마음을 청산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괴로워할지 모른다.              p.171

 

시어머니 집에는 남편의 초등학교 교과서, 시아버지의 40년 치 월급명세서 다발, 50권이 넘는 앨범과 유통기한 6년이 넘은 샐러드유, 잔뜩 쌓여 있는 신문과 잡지와 골판지 등, 뜯지도 않은 통신판매로 구매한 물건들, 식기장에 빼곡히 들어 있는 그릇들... 어디서부터 손대면 좋을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물건들로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접이식 밥상, 석유난로, 에어컨, 청소기, 장식장 세탁기 텔레비전, 냉장고 등등 부피가 큰 전자제품 집기들도 집안을 점령하고 있다. 스무 평 남짓한 공간에 시어머니 혼자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집을 정리하는 내내 모토코는 화가 나서 있지도 않은 시어머니에게 원망을 해대고, 반지 하나만 남긴 채 유품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세상을 떠난 친어머니와 비교를 하게 된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친어머니가 남긴 두 개의 일기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두 어머니'의 삶과 마주한다.

 

인간이 평범한 일상 속에 얼마나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 작품이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고, 물건들은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짐이 될 수밖 없을 것이다. 극중 며느리는 유품을 정리하며 생전에는 알지 못했던 시어머니의 모습들을 알아 가며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긍정적인 결말로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가급적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우리의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지,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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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 먹는 기분 - 정은 산문집
정은 지음 / 사계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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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던 것의 가치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좋은 하루를 쌓아나가는 게 삶이라는 것, 거창한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를 갈아 넣고 희생하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만족스럽게 완성하는 것, 나를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주변을 잘 가꾸는 것, 그리고 운 좋게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산책할 기회가 생긴다면 최선을 다해서 그 순간을 즐기고 고맙게 여기는 것. 그 하루하루에 진짜 삶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p.39~40

 

'기내식 먹는 기분'이라니, 제목부터 설레이는 책이다. 물론 땅 위의 어느 음식과 비교해도 결코 기내식을 맛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매번 기내식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것은 여행이 주는 특유의 비현실적이고도, 감상적인 분위기 때문이었을 거다. 2019년 가을 이후로 3년 째 해외 여행을 가지 못하고 있어, 기내식을 먹어 본지도 벌써 까마득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이제 해외 여행을 가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는 선뜻 비행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이 책을 통해 여행하는 기분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을 때마다 비행기 티켓을 샀다'고 말하는 정은 작가의 글은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여행에 대한 그리움으로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한 동안 잊어 버리고 살았던 감각이 되살아 나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삶에 필요한 활력소를 얻고, 일상에서 얻지 못하는 지혜를 얻고,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이라는 선물까지 받는다. 거기에 하나 더,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 먹는 것이야말로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현지의 생활을 느끼고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일 것이다. 기내식을 먹으면서 시작되는 여행의 설레임은 현지에 도착해서 즐기는 그곳의 이국적인 음식들로 차곡차곡 기억을 쌓는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그 나라, 그 지방, 그 민족의 맛있는 음식들 속에는 기후가, 지형이, 역사가, 그리고 문화가 오롯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현지의 음식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던 것 같다. 나에게 여행의 추억은 보통 현지에서 인상적이었던 음식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태어나던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만, 타국에 첫 발을 내딛던 순간은 대체로 기억할 수 있다. 두 번째 태어난 것처럼 기억할 수 있다. 온몸으로 들이닥쳤던 낯선 냄새들, 소리들. 익숙한 문화적 코드가 작동하지 않는 낯선 얼굴들. 그토록 낯선 감각 속으로 던져지는 경험은 태어난 이래로 처음이었기에, 나는 그 순간을 고향처럼 그리워하고 그때의 나를 부러워한다. 내가 언제나 부러워하는 사람이 둘 있는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과 아직 해외여행을 안 간 사람이다.           p.106

 

작가는 십 년 동안 매년 한 달 이상을 세계 여러 도시에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이어 왔다. 아르바이트로 돈이 적당히 모이면 한국을 떠났고, 생활비가 싼 외국의 도시에서 최소한의 소비를 하며 머무르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최저 시급 생활자가 되어 돈을 모으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 절박함과 치열함이 페이지 마다 묻어 있어, 여타의 가벼운 여행 에세이들과는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 없는 책이다. 작가의 여정은 산티아고의 순례길에서 시작된다. '순례자의 길'을 걷고 나면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지인의 말에 혹해서 떠난 여정은 15킬로그램의 배낭을 메고 800킬로미터를 걷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프랑스의 생 장 피에 드 포르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피레나산맥 중간에 있는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넘어가 최종 목적지인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으로 향한다.

 

생존을 위해 가방의 무게를 줄이느라 가지고 있는 짐들을 하나씩 버리는 과정,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한 입 먹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영혼의 스프, 개와 함께 순례길에 나선 선한 눈빛의 에리히라는 남자와의 특별한 추억 등 살아생전에 다시 볼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과 음식과 장소에 얽힌 이야기는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이어지는 인도와 미국 여행기도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중간 중간 작가가 직접 찍은 감각적인 현지의 사진들이 여행의 맛을 더해주었다. 시간 위로 쌓이는 소리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기억되는 인도, 갈 곳이 마트밖에 없어 너무 심심했던 도시 피츠버그에서 발견한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여행기가 여행에 대한 본질을 사유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행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정확한 내가 되도록 한다는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여행에 목마른 당신에게, 긴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이 아름다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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