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메타인지 공부력 - 하브루타로 쌓아가는 상위 1%의 힘
김금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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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 습관과 메타인지력이 저절로 키워지거나 얻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그 같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 생각이나 단편적 지식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균형적인지 상대방과 함께 토론하면서 다양한 관점에 대해 고민하고 수정, 보완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p.47

 

질문과 토론을 통해 생각하는 힘과 창의력을 키우는 하브루타 교육과 소위 ‘상위 1%의 공부법’ ‘공부 잘하는 법’으로 알려진 메타인지, 이 두 키워드를 직접적으로 연관지어 제대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인 하브루타부모교육연구소 김금선 소장은 10여년간 하브루타 독서토론을 진행해오면서 메타인지를 발달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러한 연구에 대한 결실로 하브루타와 메타인지가 어떤 관계이며, 하브루타를 통해 메타인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모두 담겨 있다.

 

 

아이의 메타인지를 활성화하는 방법, 하브루타 방식으로 학습하는 방법, 메타코칭의 5단계, 좋은 질문 만드는 방법, 그리고 하브루타 메타코칭의 실제 사례들까지 효과적인 교육법들을 알려 준다. 자녀교육에 성공하는 부모를 위한 60개의 질문과 각 주제에 맞는 일화와 '탈무드' 이야기도 현실적인 도움을 준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질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대한 부분이었다. 메타인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질문이 가장 중요하고, 하브루타의 핵심도 질문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 들려주고, 그에 대한 다섯가지 유형에 맞춰 질문들을 만들어 보는 과정이 있었다. 간단한 이야기인데도 이렇게나 다양한 질문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책을 읽고 나서 그 내용에 관해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부모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기다려주는 것이다. 아이마다 이해하는 속도가 제각기 다르고, 받아들이는 강도도 모두 다르다. 부모와 아이의 이해력이 다른데도 부모는 재촉하기 일쑤다.... 아이의 메타인지를 높이는 방법은 속도와는 무관하고, 오히려 속도가 방해 요소라고 보면 된다. 모든 문제를 쉽고 빠르게 학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어려운 문제를 만나거나 그 문제를 틀렸을 때 받아들이기 힘들어질 수 있다.          p.264~264

 

아이의 생각 근육을 키우고, 토론의 달인으로 키우는 법도 메모해두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사실 나를 비롯해 지금의 부모 세대들은 주입식 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시대는 완전히 달라졌다. 인공지능이 등장해서 많은 분야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그러한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부모들에게 아이의 메타인지를 높이기 위해서 어떤 것들 알아야 하고,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일상에서 매일같이 하는 말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질문의 방향을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유년기에 정서적 안정감을 형성해줘야 한다는 것, 부정적 감정도 잘 표현하도록 감정 코칭을 하는 방법, 그리고 아이의 학습 능력뿐만 아니라 숨겨진 기질과 장단점을 발견할 수 있는 메타인지를 높여주는 과정이 모두 겉핥기식이 아니라 본질과 핵심을 파악해 제대로 알려주고 있어 좋았다.

 

마지막으로 ‘하브루타 메타코칭을 위한 감성 터치 카드’ 100장이 수록되어 있는데, 아이의 메타인지를 높여주는 100개의 하브루타 질문을 통해 직접 아이와 생각을 주고받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절취선을 따라 잘라서 카드로 이용할 수 있도록 별책으로 되어 있고, 책의 후반부에는 해당 카드의 질문들을 어떤 상황에 사용하면 되는지, 해당 질문을 아이와 함께 주고 받는 대화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가 되어 있다. 자기주도학습과 메타인지, 두 가지를 한꺼번에 키울 수 있는 일거양득 학습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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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걸 배드 걸 스토리콜렉터 106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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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풀로 덮인 둔덕에 저격수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니고, 피자 가게가 아동 성착취 조직의 아지트도 아니며, 세상을 통제하는 비밀 결사 따위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마크 트웨인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를 난처하게 만드는 건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아니라 그렇지 않다고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것들이다.          p.153

 

진실 마법사, 일명 인간 거짓말 탐지기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500명 중에 한 명꼴로 수가 굉장히 적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피험자와 친밀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적중률이 80퍼센트 이상 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대개 중년 이상으로, 형사, 판사, 변호사, 심리학자나 첩보 요원 같은 특정 직종 출신들이다. 그런데, 진실 마법사가 되기에는 너무 어린 십대 소녀가 바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소녀는 참혹한 범죄 현장에서 발견되었는데, 과거도, 신원도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법원이 피보호자가 되어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살았고, 현재는 가중 폭행이라는 죄목으로 소년원에서 보호되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요청으로 한 심리학자가 그 소녀, 이비 코맥을 보기 위해 그곳을 방문한다.

 

사이러스 헤이븐은 이비만큼이나 참혹한 범죄 속에서 홀로 살아 남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심리학자이다. 자신의 형이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 수감되어 있는 상태이고, 그는 근친살인이라는 비극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여전히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이비가 자신과 유사한 경험을 했기에 더욱 그녀를 도와주고자 하고, 그녀의 보증인이자 보호자가 되기를 자처해 함께 지내게 된다. 한번 그들이 사는 저택 근처에서 한 유명한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소녀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사이러스 헤이븐은 범죄심리학자로 경찰의 수사를 도왔고, 살해된 소녀를 둘러싼 밝혀지지 않은 진상에 접근해 나간다. 이비는 자신의 능력으로 수사를 도우려 하는데, 과연 이들은 온통 추악하고 의심스러운 의혹으로 가득한 이 사건의 진상에 다가갈 수 있을까.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니까."
나는 입 모양으로만 소리 없이 '집'이라고 말해본다. 단순한 개념이지만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집은 장소인가? 언어인가? 문화나 기후나 지형인가? 사람들은 집을 떠나 향수병을 앓고 노숙자가 된다. '집'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른가? 그 의미는 각자가 만들어가야 하는 건가? 그게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어주나?         p.508

 

마이클 로보텀의 작품들은 국내에 꽤 많이 출간되어 있는 편이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6권, 스탠드 얼론으로 2권이 나와 있다. 이번에 나온 신작은 새로운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사이러스 헤이븐이라는 심리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로 현재까지 총 3권이 나와 있다.  마이클 로보텀은 시리즈의 첫 작품인 <굿 걸 베드 걸>로 골드 대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품의 후반부에 잠깐 언급이 되는데, 조 올로클린이 사이러스 헤이븐의 대학교 스승이라고 하니, 이어지는 시리즈에서는 함께 등장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그 재미와는 별개로 두툼한 두께만큼이나 느린 이야기 진행으로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다면, 사이러스 헤이븐 시리즈는 앉은 자리에서 백여페이지를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진 ‘진짜 페이지 터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구성, 문장, 복선 등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데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독보적인 아우라가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상대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진 십대 소녀 이비 코맥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의 히로인 리스베트만큼이나 강렬한 마력을 발산한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특별한 능력,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비밀까지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 올로클린이 파킨슨병을 앓는 심리학자로 육체와 정신 모두 서서히 병들어가고 있는 캐릭터였다면, 사이러스 헤이븐은 어린 시절 근친살인이 일어난 집에서 홀로 살아남아 엄청난 지옥을 경험했던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리하여 시리즈를 지속시키는 캐릭터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2018년 <The Other Wife>이후 조 올로클린 시리즈의 신작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이후로 로보텀은 사이러스 헤이븐 시리즈 세 편을 매년 출간하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어지는 작품인 <그녀가 착했을 때 When She Was Good>, <당신 옆에 누워 Lying Beside You>는 원서로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내가 원서를 천천히 읽어 내는 동안, 번역본이 국내에 빨리 나와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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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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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밤나무에는 밤이 잔뜩 열렸다. 아버지가 나뭇가지로, 혹은 나무에 올라가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탐스런 밤을 땄다. 그걸 엄마가 신발 신은 발로 밟아 솜씨 좋게 껍질을 벗겼다. 오사카의 아파트 단지에서 보던 부모님과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때 '과거'가 있다는 것이 감각적으로 부러웠다. 어린이인 내게는 추억의 양이 너무 적었다.         p.13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별로 필요하지 않고, 지극히 사소한 일이지만 어쩐지 신경이 쓰이는 것들이 있다. 감자 샐러드에 어떤 식재료를 넣는지, 나의 궁극의 몽블랑은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백화점 지하에 있는 식품매장, 이웃집의 화분 상태, 슈퍼나 편의점의 아이스크림 코너, 은행에 비치된 잡지의 종류 등등.. 이 책은 마스다 미리의 소소한 일상 풍경들을 그리고 있다. 인생에 별 필요 없는 확인을 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일상은 소박하지만 귀엽고, 진지하지만 코믹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꼭 필요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사거리 신호등이 전부 '빨강'이 되는 순간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 다양한 사람의 작은 아름다움이 거리에 흩어져 있을지도 몰라 자신도 모르게 매번 확인하게 된다고. 누군가는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슈퍼에서 장을 보다가 남의 바구니 안을 슬쩍 보면서 식구는 몇 명일까, 어떤 가족 구성일까, 상상하는 시간, 남의 집 창문을 들여다보는 듯한 조금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 소소한 관심의 순간이다. 거리에서 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는 잠깐 동안의 행복, 회식하고 돌아가는 길에 부동산 가게의 배치도를 보는 여유, 이따금 보게 되는 나비를 만나며 잠시나마 나비의 기분이 되어보는 즐거움... 매 페이지마다 맞아. 맞아.를 연발할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날마다 나는 나일 수밖에 없다. 내가 한 일은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고, 다른 누구와도 교대할 수 없다. 잠시 그 짐을 내려놓고 정리정돈 책 속의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아~무것도 없네." 하고 개운해하고 싶은 밤도 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을 많이 만난 날일수록 헤어진 뒤 혼자 영화를 보고 돌아갈 때가 많다. 일단 다른 세계에서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p.138

 

별 볼 일 없는 일상의 수많은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세계를 이토록 다정하고, 담백하고, 따뜻하게 그려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 마스다 미리의 작품 속에는 그냥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기분 좋은 일, 의미가 없더라도, 뭔가 이득이 생기지 않더라도 그냥 그 순간으로 충분한 행복들이 가득하다. 작은 행복이 여러 개 모여서, 그 소소함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 어른의 행복이라는 걸 아는 나이라면 더 공감하며 읽게 될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다 보면, 보통의 매일이 지금처럼 계속 이어지는 것이 진짜 행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보니, 이제는 안다. 아주 오래 마음에 남아있게 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아주 보통의 어떤 날이라는 것을. 그저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수많은 날들 중에 어느 한 순간이 오래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나의 오늘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의 긍정 마인드가 내게도 전염되는 기분도 들어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기분도 들고 말이다.

 

별 생각 없이 지나치면 중요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싶을 만큼 작은 일상 속 순간들, 우리에게도 매일 같이 벌어지는 평범한 나날들. 그런데 마스다 미리는 그 속에서 기어코 반짝거림을 발견해낸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마스다 미리의 소소한 글과 그림을 통해서 일상 속 작은 여유를 느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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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시즌2 : 15 미생 (리커버 에디션) 15
윤태호 지음 / 더오리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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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있는 돌이 움직인다. 키워 죽이려는 의도다.
이 경우엔 키워 죽이는 게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이득이기 때문이다.
고수들의 바둑에서 바둑돌 하나 하나는 이처럼 죽어 가는 순간에도 최후의 1g까지 기름을 짜내듯 몸을 바친다.
비정하다는 점에서 바둑과 전쟁은 닮았다.            p.131

 

<미생>은 2012년 첫 연재 후 수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자아내며 가히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2014년에는 tvN 드라마로도 방영이 되어 최고의 드라마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미생>은 2012년 1월 처음 연재를 시작해, 2016년 1월 시즌 2의 이야기로 이어졌고, 시즌 2의 13권까지 출간이 된 다음 출판사가 바뀌고 14권이 나왔다. 그리고 시즌 1, 시즌 2 모두 기존의 표지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새롭게 리커버 에디션으로 출간되었다.

 

 

이번에 무려 4년의 기다림 끝에 신간 15권이 나왔다. 리커버 에디션부터는 표지가 실재의 공간에 가상의 인물을 그려 넣는 식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번 작품 역시 생생한 오피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등장 인물들이 실제 극 중에서 매일같이 드나들어야 하는 곳을 실사로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어 더욱 생생하게 현실처럼 다가오는 표지이다. 윤태호 작가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읽다 보면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만화인지, 실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서 실재의 공간에 그려 넣은 가상의 인물들이 어찌나 찰떡인지, 새삼스레 장그래와 오상식, 안영이, 김동식이 우리 중 누군가라는 생각이 든다.

 

 

기품, 습관을 변화시키는 건 수많은 시도를 거쳐야 가능하다. 기품, 습관이 바뀌지 않는 건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중요하여 익숙하고 안전한 태도를 다시 꺼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손실을 각오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매 순간이 '지금 이 순간'이고 그토록 중요했다면 지금 당신의 모습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p.181

 

시즌 1의 이야기가 대기업의 이야기였다면, 시즌 2는 위태로운 중소기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대기업 계약직 사원인 장그래는 중소 기업의 사원이 되었고, 오상식 과장은 오상식 부장으로, 김동식 대리는 과장이 되었다. 14권에서 전체의 프리퀄 스토리인 오상식의 과거 젊은 시절을 담으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눈’ 사연을 들려 주었다면, 이번 15권에서는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으로 ‘영업 3팀’으로 발령받은 장백기, 온길과 갈등을 빚는 김동수, CIC를 고민하는 천 과장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나 엘리트 코스를 착실하게 밟아온 장백기의 사연이 흥미롭게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은 세상의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여전히 '미생'인 당신이 '완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가 완전히 살아 있는 자가 되기를 응원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회사의 당연하지 않은 요구를 당연한 듯 해내는 자신을 보면서, 먼지 같은 일을 하다 먼지가 되어 버렸다는 기분이 든 적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앞을 살필 기력도 없이 주어진 일을 허덕거리며 하다가 멈춰서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든 적도 있을 것이다. <미생>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너무 유명한 작품이지만 아직 원작을 만나보지 못했다면, 혹은 이 작품이 궁금했는데 분량이 많아서 선뜻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시즌 2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시즌 2는 아직 몇 권 안되고, 시즌 1의 이야기를 읽지 않았더라도 상관없이 읽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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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작가
알렉산드라 앤드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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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플로렌스 대로가 천재라는 사실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작가가 되려 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보낸 그 몇 년 동안, 플로렌스 대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그 황홀감을 사랑하게 되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그 짧은 시간만큼은 자신을 잊고, 원하는 누구든 될 수 있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 이 일을 잘만 하면 그녀 자신의 인생도 드디어 가치 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니.           p.73

 

작가 지망생인 플로렌스는 뉴욕의 유명 출판사에 입사했지만 다른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늘 자신이 사는 세계 너머의 세상을 꿈꿨지만 출신도, 외모도, 능력도 평범했던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될 기회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유부남 편집자와의 하룻밤을 계기로 그의 가족에게 접근해보려다 오히려 직장에서 쫓겨 나게 되고 열여섯 이후 처음으로 무직자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런 그녀에게 한 편의 베스트셀러 작품으로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소설가의 조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그렇게 플로렌스는 비밀에 싸여 있는 작가, 헬렌의 보조가 되어 함께 지내며 일을 도와주게 된다.

 

그들은 자료 조사를 위해 모로코로 취재 여행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헬렌이 죽게 된다. 사고 현장에서는 플로렌스 혼자 발견되었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헬렌이라고 알고 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어젯밤 플로렌스와 헬렌은 식당에서 낙타 고기와 위스키를 마셨다. 그런데 그 이후로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경찰의 설명에 차가 바다에 빠졌고, 운 좋게도 늦게까지 바다에 나가 있던 한 어부가 목격해 플로렌스를 차에서 끌어내 구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무런 기억이 없다니, 그녀는 황당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놓치고 만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함께 발견된 소지품은 전부 헬렌의 것뿐이었다. 경찰과 사람들이 플로렌스를 헬렌으로 착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헬렌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경찰은 차 안에 한 명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헬렌은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게다가 헬렌의 즉음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그녀밖에 없었다. 익명의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해 아는 것도 자신과 에이전시, 단 두 명뿐이었다. 세상이 궁금해하는 천재 작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플로렌스는 헬렌이 될 작정이다.

 

 

 

플로렌스는 자신이 입고 있는 원피스를 내려다보다가 소리 질렀다. "그래서 뭐? 난 내 인생이 싫었어! 더 나은 인생을 원했다고.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더 나은 인생, 스스로 만들어야지. 훔칠 게 아니라."
플로렌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헛소리. 모두가 도둘질을 한다, 헬렌도 마찬가지. 그녀는 제니에게서, 그리고 그녀에게 베르디와 샤토네프 뒤 파프를 소개해준 사람에게서 더 나은 인생을 훔쳤다.             p.362

 

출판사와 에이전시, 익명의 베스트셀러 작가와 작가 지망생을 등장시켜 문학계의 디테일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20개국에 판권이 계약되고, 유니버설 픽쳐스에서 곧 영화로 만들 예정인 작품인 만큼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고 흥미진진하다. 더 나은 인생을 꿈꾸는 것, 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크게 변화 없이 비슷비슷한 경로를 따라 진행된다. 원하는 누구든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은 어른이 되어 사회로 나가면서 점차 사라지고,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서 희미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꿈꿔왔던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떨까. 누구든 그 삶을 훔치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리게 되지 않을까.

 

플로렌스라는 주인공이 도덕적이고, 성실한 호감형의 인물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녀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 독자들에게 더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보다 잘 나가는 사람을 질투하고, 닮고자 하는 욕망은 그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일 테니 말이다. 변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 왔지만 변하는 것은 없고, 삶의 행로를 바꿔보겠다는 일념으로 나아가지만 헛수고일 뿐이었던 자신의 인생이 완벽하게 달라질 수 있는데, 그저 거짓말 몇 개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 기회를 정직하게 외면하고, 다시 평범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헬렌 행세를 시작한 플로렌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상상도 못할 반전이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자신이 던져버린 양심과 도덕심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그렇게 이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매혹적인 상상을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를 통해 구체화시켜 보여준다.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구성, 반전과 캐릭터 모두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새로운 누군가가 되고픈 욕망을 가져본 적이 있는 당신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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