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의 독서법 - 분열과 고립의 시대의 책읽기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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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책은 도피이자 안식이었다. 나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는 데 익숙한 외동아이였다. 아버지가 옆면에 문과 창을 내 장난감 집으로 변신시킨, 판지로 된 냉장고 상자 안에서 책을 읽었다. 밤에 담요 밑에서 손전등을 켜고 책을 읽었다. 운동장에서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쉬는 시간 동안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차멀미를 하면서도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책을 읽었다. 게다가 식탁에서도 읽었다. 어머니가 식사를 하는 동안 책읽기를 금지했기 때문에, 식탁에 앉아 가까이에 있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곤 했다... 나는 늘 읽을거리가 고팠다.         p.17~18

 

어린 시절 나는 책으로 집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놀곤 했었다. 글자들이 울타리가 되고, 그림들이 지붕이 되어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만들어 지면 그 속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곤 했다. 이야기로 만든 집은 나만의 놀이터였고, 나의 친구이자 스승이자, 안식처였다. 조금 더 자라서는 주말마다 집에서 꽤 먼 거리에 있는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미로처럼 빼곡한 서가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기억이 난다. 책은 나를 과거로 데려가고, 가본 적 없는 도시를 여행하게 해주며, 경험해 본 적 없는 미래를 보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정말 순수하게 책읽기의 기쁨을 만끽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라고 불리는 미치코 가쿠타니의 본격 서평집이다. 고전부터 동시대 작가가 쓴 소설, 회고록, 기술, 정치, 문화 분야 논픽션을 아우르는 99개의 서평이 수록되어 있다. 일본계 미국인 문학비평가이자 서평가인 가쿠타니는 <워싱턴포스트>와 <타임>을 거쳐 <뉴욕타임스>에서 무려 35년 가까이 서평을 담당했으며, 1998년에 비평 분야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유명 작가들을 향해 독설과 혹평도 서슴지 않는 냉정하고 무자비한 서평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과 여러 드라마에서 언급이 될 정도로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된 존재이기도 해, 그의 예리하고 신랄한 서평들이 궁금했다.

 

 

 

서사의 독창성, 음악적인 언어의 구사, 나보코프가 좋아하는 두 가지 취미인 나비 연구와 체스 게임으로 날카롭게 벼려진 세부와 정확성에 대한 애정, 회화와 같은 직접성과 대가다운 솜씨로 장면, 기억, 감각, 또는 분위기를 그려내는 능력 등 나보코프가 작가로서 가진 수많은 재능이 이 눈부신 단편집 전반에서 드러난다. 이런 재능이 나보코프가 존 업다이크, 토머스 핀천, 마틴 에이미스, 존 드릴로, 제이디 스미스처럼 다양한 작가들에게 지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p.259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를 시작으로,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알베르 카뮈 <페스트>, 엘레나 페란테 나폴리 4부작, 리처드 플래너건 <굴드의 물고기 책>, 호프 자런 <랩 걸>,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이언 매큐언 <속죄>, J.K. 롤링 해리 포터 시리즈, 모리스 샌닥 <괴물들이 사는 나라>,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도나 타트 <황금방울새>,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등 이 책에 수록된 아흔아홉 편의 글들은 길지 않지만,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서평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고전, 문학, 동화 등 국내에도 이미 출간되어 있는 작품들이 많아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각각의 서평은 한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하나의 테마로 여러 권을 묶어서 소개하는 글도 있다. 한 작가의 시리즈를 소개하기도 하고,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글로 풀어내기도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책을 사랑하는 걸까. 이 서평집을 읽다 보면 아주 오랫동안 책을 사랑해온 저자의 애정이 글 곳곳에 묻어나서 내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자연스레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저자는 책에 대해 '종이, 잉크, 접착제, 실, 판지, 천, 또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벽돌 크기의 이 마술 같은 물건은 실로 작은 타임머신'이라고 말한다. 책은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 역사 속의 한 순간을 경험하게 해주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순간을 체험하게 해주니 그야말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책은 시간과 장소를 넘어, 국경과 역사를 가로지르고, 문화와 종교, 정치와 인종을 초월하게 해주는 장치이니 독서야 말로 '분열과 고립의 시대'를 무사히 살아내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미치코 가쿠타니의 글은 우리가 처음 읽은 책의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어 주는, 읽는 법을 가르쳐주고, 페이지의 단어들을 사랑하게 만들어 주었던 바로 그 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을 선사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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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3-3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읽어야할 책 리스트가 엄청 길어지네요 ^^;;

피오나 2023-03-30 12:32   좋아요 1 | URL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많다는 것이, 읽고 싶은 책이 많다는 사실이 행복해지는 순간이죠. ㅋㅋㅋ
 
도미노 도미노
온다 리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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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한 순간 마음속에서 뭔가가 걸렸다.
잠깐만, 가바야가 정말 그렇게 말했나? 잘 생각해보자. 정말 그가 범인을 종이에 스라고 했나? 하루나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 진상을.
맞아, 진상을 종이에 서서 넘길 것.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퍼진다.             p.41

 

간토생명 야에스 지사의 직원들은 오늘 초긴장 상태이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겨우 목표 금액을 채웠기 때문에, 마감 전까지 1억 엔짜리 계약서를 본사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계약 건을 기다리느라 직원들 모두 지쳐 있는데다, 도착하면 도착하는 대로 마감 시간과 경쟁해야 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한편, 간토생명에서 자금을 지원해 매년 대극장에서 상연되는 아동 뮤지컬 <에미>의 오디션 현장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인 마리카가 엄마와 함께 대기 중이다. 그 바닥에선 상당히 유명한 레이나가 뒤늦게 오디션장에 도착해 대기실이 술렁거린다. 친구이자 라이벌로 레이나를 마주한 마리카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 배역을 따낼 수 있을까.

 

젊은 관객층에게 인기가 많은 B급 할리우드 영화 <나이트메어>의 상영관에서는 다다시와 하루나가 범인을 추리하는 대결을 펼치는 중이다. 두 사람은 미스터리 동호회의 회장 자리를 두고 서로 겨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트메어>의 감독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미스터리 마니아라는데, 역시나 범인의 정체는 모두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는 것이었다. 한편 하이쿠 동호회 모임을 위해 도쿄에 처음 상경한 할아버지 슌사쿠는 미로처럼 복잡한 도쿄역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슌사쿠를 기다리던 동호회 회원들은 겉모습부터 어딘가 심상치않은 매서운 눈매를 가진 이들이었는데, 네 노인 모두 경시청을 은퇴한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슌사쿠를 기다리다 각자 흩어져서 그를 찾아 보기로 한다. 그 외에도 배신한 연인에게 복수를 계획 중인 여자와 신작 홍보차 일본에 방문한 미국인 호러 영화 감독과 그의 반려동물, 그리고 도쿄역에 폭탄을 설치하려는 테러 조직 '얼룩끈' 등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이 하나둘씩 도쿄역에 모여든다.

 

 

 

'아저씨, 라이터 떨어뜨렸어요."
마리카가 가와조에 겐타로의 뒤통수를 향해 그렇게 말한 순간, 눈부신 섬광이 하늘을 갈랐다.
그때, 세계가 색을 잃고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변했다. 그 흑백의 순간에 그때까지 의미 없이 제각기 흩어져 있던 뭔가가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하나로 이어진 것 같았다.
그 순간, 흑백 화면으로 변한 역의 중앙광장에서 동시에 사람들이 갑자기 여러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이 순간, 그들을 강하게 연결시켰다.          p.227

 

이번에 온다 리쿠표 패닉 코미디 '도미노' 시리즈 신작이 나오면서 2001년에 발표되었던 <도미노>도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출간되었다. 온다 리쿠의 작품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놓쳤던 작품이라, 시리즈로 표지 디자인을 통일해 나온 이번 버전으로 드디어 만나보게 되었다. 복잡하고 사람들로 붐비는 도쿄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에는 우선 등장 인물이 28명이나 된다. 정확히는 27명의 사람과 1마리의 동물이다. 이렇게 캐릭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펼치자 마자 도쿄역 지도와 등장 인물들의 한마디가 정리되어 있어 인물들의 미로 속에서 헤매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될 테니 말이다.

 

전혀 상관없는 인물들 각각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 제각각의 사건들이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면서 아슬아슬한 도미노가 만들어 진다. 일단 하나의 조각이 쓰러지면 절대 멈출 수 없는, 연쇄적으로 하나씩 쓰러지는 도미노 게임처럼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들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얽히고설킨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퍼즐 속에서 테러 조직이 도쿄를 날려버릴 계획을 세우면서 긴장감 넘치는 좌충우돌 스토리는 정점에 가까워진다. 100개의 장마다 화자를 바꾸면서 진행되는 구성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정신 없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는 작품이었다.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개성이 뚜렷한 자신만의 서사를 가지고 있고,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 있는 전개와 빈틈 없는 구성까지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가 이리도 깔끔하게 연결이 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기존 온다 리쿠의 작품들에 비해 아주 경쾌하고, 색다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온다 리쿠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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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사도들 - 최재천이 만난 다윈주의자들 드디어 다윈 6
최재천 지음, 다윈 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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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축구 경기에서 승리하겠다는, 책을 한 권 쓰겠다는, 현악 사중주를 하나 작곡하겠다는, 또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겠다는 자기만의 삶의 목표를 세웁니다. 모두 다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치 있는 목표들입니다. 우주의 의미에 대한 당신의 근심이 이들을 방해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나는 여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어쩌면 우주에는 아무 목적도 없을지 모른다. 내 삶도 어쩌면 궁극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운 정원, 멋진 서재, 훌륭한 아내 또는 남편 그리고 아이들이 있어서 내 삶은 무의미하지 않다."           p.174

 

인류를 뒤흔든 과학적 발견이야 많지만 다윈의 진화론만큼 심하게 세상을 흔든 것은 없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발견 정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게다가 다윈의 이론은 인간 자신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시각에 혁명을 일으켰다. 다윈은 두 가지의 유사한 종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하나가 멸종됐고, 오늘날 살아 있는 동물들은 과거에 살았던 모든 종에서 이런저런 식으로 선택된 종의 후예라고 말했다. 신이 자연과 모든 생물을 설계했다고 주장하는 자연신학이 주류이던 19세기 초반, 인간이라는 존재가 신이 만들어 낸 존재가 아니라 진화의 산물인 수많은 종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을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종의 기원>이 나온지 164년이 지난 지금, 왜 여전히 다윈이 중요한 것일까.

 

이 책은 이화 여자 대학교 에코 과학부의 최재천 석좌 교수가 우리 시대의 대표 다윈주의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인터뷰집이다. 비전문가가 묻고 전문가가 답하는 형식의 일방적 인터뷰를 묶은 책이 아니라, 사도들 간의 진솔한 담론집이라는 데 그 가치가 있다. 최재천 교수는 BTS의 팬덤인 ‘아미’가 다윈에게도 있다고 말한다. BTS의 아미는 단순히 그들의 음악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BTS가 음악에 부여한 메시지를 체화한 다음 콘텐츠를 재생산해 적극적으로 전파해 BTS를 비틀스에 비견되는 세계적인 그룹으로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재야의 생물학자였던 다윈이 과학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게 된 배후에도 그를 둘러싼 팬덤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그의 제자와 사도를 자처하며 과학 분야 곳곳에서 활약하는 팬덤이 없다면 다윈과 그의 진화론은 확산되지도, 발전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이 바로 다윈의 아미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종의 기원> 출간 100주년이었던 1959년으로 돌아가 보면, 그때까지도 그 누구도 암컷이 자신의 짝짓기 상대를 선택한다는 성 선택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런 가설이 나오기도 했죠. 포식자가 수컷을 잘 잡도록 눈에 띄게 만듦으로써 나쁜 유전자를 제거하도록 한다는, 즉 종을 이롭게 한다는 가설이었죠. 그러나 이것은 몇 가지 계산만 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잘못된 가설이었습니다. 토머스 헌트 모건이 그 가설을 지지했던 걸로 알고 있고, 아마 헉슬리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p.325

 

다윈의 삶과 업적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원전을 직접 읽는 것이겠지만, 사실 <종의 기원>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읽기 어렵다는 악명이 높은 책이기도 하다. 다윈 시대의 생명과학 지식과 용어에 대한 이해 부족, 엄청나게 다양하고 또 매우 생소한 생물들에 대한 관찰 결과와 수많은 인물들의 조사 결과가 인용되어 있으나 이들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본문에 소제목이 없어 읽어 내려가기가 매우 힘들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 등이 그 요인이다. 나 역시 몇 년 전에 <종의 기원> 초판을 주석과 함께 완역해 굉장히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하는 버전을 읽어 보았지만, 주석이 무려 2,200여 개에 달하는 그 책도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가 소화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서 만난 평생 다윈을 붙잡고 생물학부터 철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하게 연구해 온 이들의 경험과 통찰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이야기들이 다윈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50년 가까이 다윈 핀치(되새류)를 연구한 피터 그랜트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헬레나 크로닌, 진화 심리학의 최전선에서 인간의 인지와 언어를 연구하는 스티븐 핑커, 유전학의 관점에서 다윈주의 통찰을 재해석하고 발전시킨 리처드 도킨스, 생물 철학자 대니얼 데닛, 식물학자 피터 크레인 등등 최채천 교수와 이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진화론에 대해서, 그리고 도대체 왜 다윈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최재천 교수는 인터뷰를 위해 만난 모든 이들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왜 다윈이 중요한가?"에 대해 묻는다. 그에 대한 학자들의 답변들은 모두 제각각 흥미로웠지만, 열한째 사도 제임스 왓슨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누구보다 간단하게 세상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다윈 없이는 생명을 이해할 수 없죠. 그리고 생명은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라는 말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게, 다윈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이 궁금하다면, 찰스 다윈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드디어 다윈' 시리즈는 <종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다윈 지능>, 그리고 <다윈의 사도들>에 이어 앞으로도 계속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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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마스터 1 - 드래곤 스톤의 선택 드래곤 마스터 1
트레이시 웨스트 지음, 그래엄 하웰스 그림, 윤영 옮김 / 다산어린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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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첫 출간을 시작으로 9년 동안 시리즈를 이어 오며 전 세계 어린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드래곤 마스터> 시리즈가 드디어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었다. 현재 23권까지 나왔고, 계속 이어질 예정이라 원서랑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원서 자체도 분량이 작고, 어렵지 않은 편이라 원서 읽기로도 많이 활용되는 시리즈이니 말이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드래곤 마스터>1권과 함께 드래곤 마스터 공식 가이드북이 함께 출간되었다. 공식 가이드북은 독자들을 <드래곤 마스터> 세계로 완전히 빠져들 수 있게 도와주며, 본 이야기를 훨씬 더 흥미롭게 즐 길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하니 가이드북도 읽어 보려고 한다.

 

 

자, 이 세계의 드래곤들은 고유의 속성에 따라 나뉘며, 제각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드래곤 마스터는 여덟 살 정도의 어린이들이며, 이들은 드래곤과 함께 훈련하며 드래곤의 능력이 잘 발휘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주인공 드레이크는 농부의 아들로 그들 가족은 평생 양파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그 날도 드레이크는 양파 밭을 일구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왕이 보낸 병사들이 집으로 들이닥친다. 그렇게 병사들과 함께 성으로 간 드레이크는 왕의 마법사 그리피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드래곤 문양이 새겨진 나무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초록빛 드래곤 스톤을 보여주며, 드레이크가 드래곤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 준다. 그렇게 드레이크는 진짜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대한 드래곤을 마주하게 된다.

 

 

로리와 반짝이는 빨간 비늘로 뒤덮인 드래곤 벌컨, 보와 파란 비늘의 드래곤 슈, 애나와 읜색과 노란색이 섞인 드래곤 케프리를 만난 드레이크는 마침내 자신의 드래곤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드레이크의 드래곤은 다리가 없어 마치 큰 뱀처럼 보이는 기운 없고 보잘 것 없는 모습이었다. 드레이크는 지렁이를 닮은 자신의 드래곤에게 '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웜과 함께 드래곤 마스터 훈련을 시작한다.

 

다른 드래곤들에 비해서 무기력해 보이고,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웜'은 아이들과 드래곤이 몰래 밖으로 나간 모험에서 멋진 능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드레이크는 차츰 웜과 마음을 나누면서 조금씩 더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이 시리즈는 미국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독서 습관을 길러 주기 위해 강력 추천하는 책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짧은 문장과 빠른 전개가 책 읽기가 익숙하지 않는 저학년 아이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독서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푹 빠져서 읽게 만드는 이야기라고 하니, 판타지 동화를 좋아하지만 아직 긴 글은 읽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도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드레이크와 드래곤 '웜'이 주인공이지만, 매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각각의 에피소드에서는 주요 인물과 드래곤이 바뀐다고 한다. 드래곤 마스터인 아이들의 성격도, 배경도 모두 다르고, 각각의 드래곤들도 능력과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2권이 나오기 전까지 '공식 가이드북을 통해 드래곤 마스터와의 성향과 각 드래곤의 속성 등을 마스터하면 좋을 것 같다. 특히나 가이드북은 스페셜 에디션으로 풀컬러의 다채로운 드래곤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니 더 근사하다. 평범한 소년이 드래곤 마스터가 되어 펼치게 될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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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이는 물결 - 작가, 독자, 상상력에 대하여
어슐러 K. 르 귄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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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픽션, 즉 18세기 이후의 장편과 단편 소설은 다양한 사람들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를 제공한다. 픽션이 실제로 겪은 경험보다 훨씬 더 유용할 때가 많다. 시간이 훨씬 적게 걸리고, 비용이 전혀 들지 않으며(도서관을 이용하면 된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돈된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픽션을 이해할 수 있다. 경험은 증기 롤러처럼 우리를 휙 깔고 지나간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그것이 어찌 된 일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p.79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의 마법사>는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지 문학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장르의 경계를 넘어 높은 문학성을 인정받는 작가이기도 한 르 귄은 소설만큼이나 훌륭한 산문집을 쓰는 걸로도 유명하다. 글 속에 세상을 살아온 그 시간만큼의 사유와 고뇌와 혜안이 모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88년부터 2003년까지 15년간 문예지 등에 발표해온 에세이, 문학 작품집의 해설과 서문 및 글쓰기 워크숍 강연 원고 등을 새롭게 손보아 내놓은 것으로, 2005년 베스트 논픽션 부문 로커스상을 수상했다. 특히나 어슐러 K. 르 귄이 이 선집을 위해 새롭게 집필한 글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30편의 에세이는 각각의 성격에 따라 ‘개인적인 문제들, 독서, 토론과 의견, 글쓰기에 대하여’의 네 개 범주로 나누어 묶었다. 제목인 '마음에 이는 물결'은 의식의 흐름과 글쓰기에 대한 버지니아 울프의 은유에서 가져왔으며, 다양한 주제에 대한 논평, 글쓰기와 읽기라는 예술에 관한 르귄의 성찰이 매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책을 읽는 독자는 그 책을 만들어간다. 임의적인 상징과 인쇄된 글자를 자기만의 내적인 현실로 번역해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독서는 창조적인 행동이다.... 독서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적극적인 거래다. 텍스트는 독자의 통제하에 있다. 독자는 텍스트를 건너띌 수도 있고, 한 곳에서 머뭇거릴 수도 있고, 텍스트를 해석할 수도 있고, 오독할 수도 있고, 앞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에 잠길 수도 있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고, 판단을 내릴 수도 있고, 그 판단을 수정할 수도 있다... 소설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협업이다.         p.442~443

 

어슐러 르 귄을 작가로 만들어 준 데는 도서관이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장을 보러 간 동안 오빠와 함께 단어를 찾아 다니는 미사일처럼 도서관의 어린이 방을 돌아다녔던 기억부터 아이들을 위한 책을 모두 섭렵하고 나서 어른 방으로 몰래 들어갔지만 사서들이 모른 척해주었던 추억, 고등학교 시절 학교를 싫어했던 것만큼 좋아했던 도서관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던 외서 구역에서 사랑이 크면 알지 못하는 언어도 읽을 수 있게 된다는 걸 깨달았던 나날까지. 굶주린 것처럼 책을 읽던, 읽고 또 읽어서 줄줄 외울 정도로 책을 사랑했던 어린이가 자라서 위대한 작가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이렇게 개인적인 회상부터 다양한 주제에 대한 논평, 글쓰기와 읽기라는 예술에 관한 성찰 등 다양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톨스토이의 위대한 문장 '모든 행복한 가정은 똑같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불행하다'에 이의를 제기한 부분이었다. 르 귄은 톨스토이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그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나이가 60대에 접어든 뒤에는 남을 존경하는 능력이 많이 줄었다는 문장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톨스토이를 위대한 작가로서 존경하지만, 그럼에도 톨스토이의 이런 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사정없이 지적을 하며, 그에 대한 무례한 질문들을 조용히 던져댄다. 그 동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의문들과 소리 없는 이의들이 마치 포도주가 숙성되는 것처럼 성숙해지고, 강해져서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톨스토이의 유명한 문장이 거짓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톨스토이의 소설'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르 귄의 이 글을 읽다 보면 오히려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다시 읽고 싶어지는데, 어쩌면 그것도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반지의 제왕>의 리듬 패턴, 각종 산문의 운율 분석과 강세 패턴 실험 등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상상력이 어떻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독서가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 장르 문학과 판타지가 어떤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지 궁금하다면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산문집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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