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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
하라다 히카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우 씨가 쟁반을 건네자, 사야카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냉장 케이스로 가서 병맥주와 뽀얀 김이 서린 잔을 가져왔다. 치킨난반을 한 개 먹었다. 여전히 달고, 그리고 시다. 맥주 뚜껑을 따서 잔에 따라 단숨에 꿀꺽꿀꺽 비웠다.
"맛있네요. 밥과 술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조금 평온함조차 느꼈다.
"지금이라면 맛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난,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편도 알아주길 바랐을 뿐인데요. 강요만 했네요." p.63~64
사야카는 아침, 점심 도시락, 저녁까지 하루 세 번 요리를 했었다. 2인 가족이었지만 남편 겐타로는 키도 크고 근육질 체형이라 먹는 양이 상당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남편이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언젠가부터 회사 핑계로 집에서 저녁을 먹지 않는 일이 잦아지더니, 조금씩 살이 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 때문에 늦는다는 날의 대부분은 식당 '자츠'에서 술을 마시는 거였다. 사야카는 동네의 허름한 식당에서 가끔 술 한잔 하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혹시 여자가 생긴 건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다 남편은 이혼하자는 말을 꺼내며 집을 나가버렸고, 도저히 납득이 안 갔던 사야카는 그가 다닌다는 가게에 직접 가보기로 한다. '자츠'는 역에서 곧장 이어지는 상점가 한복판에 자리한 낡은 식당이었다. 다가 그 집 음식은 맛도 진하고 달기만 해서 자신의 요리보다 나을 것도 없어 보였다. 사야카는 수입이 줄기도 했고, 남편이 이혼하고 싶어하는 이유를 알고자 '자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하는데, 그녀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이 작품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낡은 정식집 '자츠'를 운영하는 주인 조우와 남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이혼당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사야카,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호로요이의 시간>이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면 말이다. 일본 여성작가 5인이 담금주부터 사케, 칵테일, 위스키까지. 술을 소재로 여성들의 삶을 그려낸 단편집이었다. 하라다 히카는 <식당 ‘자츠’>라는 제목의 단편으로 참여했었는데, 그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이야기 <크로켓>이다. 짧은 단편으로 시작되었던 이야기가 이렇게 본격적인 작품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혼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야카와 남편은 별거 상태였었는데,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는지 가게의 전 주인과 특별한 인연이었던 것 같은 무뚝뚝한 가게 주인 조우의 과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했다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본인은 '그냥 평범한 요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안다. 아내가 만든 요리는 뭐든 맛있었다. 감자조림도 채소조림도. 감자조림은 니쿠자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도 물론 맛있지만, 그리고 '자츠'에서 먹는 니쿠자가도 정말 좋아하지만, 사토는 감자를 약간 달달한 육수에 조린 것 같다. 때로는 어묵을 넣기도 하고, 실곤약이나 오징어를 넣기도 했다. 대충 만든 것처럼 보여도 언제나 맛있었다. 아, 역시 그게 먹고 싶다. 그러나 이런 요리는 너무 평범해서, 어디에서도 팔지 않는다. 사토와 함께 사라진 요리다. p.160
<낮술>, <호로요이의 시간>, <우선 이것부터 먹고>, <할머니와 나의 3천 엔>, <도서관의 야식>, <헌책 식당>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하라다 히카의 신작이다. 전 3권으로 출간되었던 <낮술>이라는 작품을 특히나 좋아한다. 지킴이 일을 하는 삼십대 여성이 하루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길 수 있는 점심에 맛있는 음식과 거기에 어울리는 술 한 잔을 곁들이는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그렸던 작품인데, 음식에 대한 묘사가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만들었었다. 하라다 히카는 소설을 통해서 좋은 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이 줄 수 있는 온전한 행복을 만끽하게 해준다. <우선 이것부터 먹고>에서는 대학 동창들이 만든 스타트업 회사를 배경으로 사무실에 오게 된 중년의 가사 도우미가 음식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주는 이야기를 그렸고, <도서관의 야식>에서는 밤에만 문을 여는 도서관과 그곳에서 먹을 수 있는 야식이라는 설정으로 책 속에 등장하는 요리를 실제로 만들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먹는다는 판타지를 구현시켜주었다. <헌책 식당>에서는 세계 최대의 헌책방 거리로 알려진 도쿄 진보초에 자리한 작은 서점 ‘다카시마 헌책방’을 배경으로 다양한 손님들의 이야기를 잘 차려진 한상 차림의 음식처럼 맛깔스럽게 그렸었다.
이번 작품 <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의 메인 요리들은 크로켓, 돈카츠, 가라아게, 햄카츠, 카레, 그리고 주먹밥이다. 각각의 음식들이 각 장의 제목이 되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소소하고,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자라온 환경도, 나이도, 성격도 다른 조우와 사야카, 그리고 자츠에 방문하는 손님의 시점으로 번갈아 가며 이야기가 진행되어,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하라다 히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들 때문이기도 하다. 하라다 히카가 페이지 위에 재현해내는 음식들은 그 맛과 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처럼 생생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보여주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묘사만으로 당장이라도 먹고 마시고 싶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하라다 히카만의 특별한 점이다. 지친 하루를 위로해주는 소박하지만 맛있는 한 끼 식사와 어떤 스트레스도 다 날려 줄 것처럼 시원한 한 잔이 있다면 오늘을 버텨내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줄 것이다. 자, 이 책과 함께 사라진 삶의 온기를 천천히 데우는 시간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