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EQ 육아를 부탁해 - 최고의 아이로 키우는 월령별 두뇌발달 지침서, 임신부터 36개월
정윤경 지음 / 코코넛(coconut)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아이가 태어나서 생후 3년까지의 경험이, 그 아이의 인성, 성격, 행동 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 한동안 화제였다. 특히 전문가들은 아이가 태어나 생후 36개월까지가 두뇌발달의 결정적 시기라고 말한다. 누구나 태어날 때 고유한 두뇌를 만드는 데 충분한 뇌세포를 공평하게 부여 받고, 효과적으로 자극을 주면 얼마든지 발달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뇌는 그렇게 생후 3년간 집중적으로 형성, 발달이 되고, 거기다 정신건강의 3대 기둥인 평온한 성품, 낙천주의, 사교성이 특정한 이 시기에만 발달이 된다고 하니 정말 특별하고도 중요한 시간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니 3살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꼭 키워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출산 후 3년까지 엄마 냄새를 맡게 해주는 것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도 말한다. 3년 동안 경험한 엄마 냄새와 체온이 바로 애착의 종자돈이 되어 정서 발달과 인성, 사고 발달의 틀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익숙하고 편안한 냄새를 맡으면 뇌에서 호르몬이 분비되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되고, 이런 행복 호르몬이 아이의 정서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가장 중요한 시기인 임신부터 36개월까지의 시간을 총 9 챕터로 분류. 그 시기 아이의 두뇌를 자극하며 지능과 정서를 발달시키기 위해 부모가 해주어야 할 행동, 놀이, 말 등의 알짜배기 육아법을 담았다. 발달심리 전문가를 통해 들려주는 아이의 심리와 발달과정, 그리고 리얼 맘의 육아 프로젝트가 사진으로 함께 전개되어 더욱 실감나는 육아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가 울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자"

 

월령 별 두뇌 발달 지침서가 필요한 이유는, 아직은 뭘 해도 서툰 초보 맘이나 예비 맘들에게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되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들이 흔히들 하시는 말씀으로 아기가 울 때마다 달래주면 손탄다 라고 들 하지만, 저자는 우는 버릇을 고치겠다며 방치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갓난아기 입장에서는 배가 고프든, 불편하든 보낼 수 있는 신호라고는 울음 밖에 없는데, 그 울음이 자꾸 무시당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울음이 사라지겠지만, 아기가 외부에 보내는 신호, 표정도 함께 사라지며 아기에게는 좌절감만 남게 된 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기의 울음이 대화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울음에 재빠르게 반응하는 부모의 아기들일 수록 옹알이나 몸짓, 표정 등 다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빠르게 발달한다고 한다. , 이제 아이가 운다면 열 일 제쳐두고 달려가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외출할 때는 아기에게 꼭 행선지를 이야기해주세요"

 

이번에 둘째를 임신한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분은 미국에서 나고 자라서, 한국의 육아법보다는 미국식 육아법에 익숙했는데, 신생아 때부터 아기에게 말을 하는 습관이 참 좋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소아과에 가서 예방접종을 하는 날이라고 하자. 그럴 때 다짜고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주사를 맞히면 아프기도 하겠지만, 놀라서 더 울게 된다고 한다. 그날 아침에 집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아이에게 설명을 미리 해주라는 거다. 오늘 병원에 갈 거고, 예방접종 주사를 맞을 거라 조금 따끔할 거라고. 그러면서 주사가 왜 필요한 거고, 외출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 미리 아이에게 말을 해주면, 신기하게도 병원에서 울 때 조금 덜 울거나 잘 울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직 아이가 말도 못 알아듣는데 무슨 소용일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은 모를지라도, 아이들의 기억력은 많이 자란 상태이므로 엄마, 아빠가 자기한테 무언가 말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행동이 반복이 되면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두고 잠깐 외출을 하거나, 병원에 함께 다녀오거나 할 때도 어떤 일이 생길 지 예측할 수 있고, 엄마를 믿을 수 있어 조금 더 안심할 수 있다고 한다. 아기에게 가장 불안한 것은 바로 불확실성이니 말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없어지고,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보니 엄마가 사라지는 상황이 반복되면, 아기는 언제 엄마가 떠날지 모르니 촉각을 곤두세우고 엄마에게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밝고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엄마로서 가장 큰 행복이겠지만, 그것에 더해 똑똑하게도 자랐으면 하는 바램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생후 3년의 시간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똑똑한 두뇌와 건강한 정서를 가진 아이로 어떻게 키우면 될지, 부모가 직접 따라 해보고 실천할 수 있는 쉬운 책이라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 인 것 같다.  그래서 육아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초보 맘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아이의 학습이나 교육을 위한 가르침 보다 올바른 돌봄과 관찰, 따뜻한 위로가 아기의 뇌 발달에 정말 필요한 자극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조금 더 즐겁고 쉽게 육아의 길을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리얼 맘의 좌충우돌 스토리에는 날마다 커가는 아이의 사진과 함께 실제 스토리가 담겨 있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 실려 있는기자엄마가 고른 내 아이를 위한 물건과 장소는 육아용품은 너무 종류도 많고 브랜드도 많아 뭘 사야 할지 혼란스럽기 마련인데, 초보 맘들의 합리적인 쇼핑 가이드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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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만 낳으면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 아이와 함께 커가는 엄마들의 성장 육아 에세이
파워 오브 맘스 지음, 구세희 옮김 / 북라이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는 걸까.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가 아닐까. 라고. 왜냐하면 그 누구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자식을 통해서 나는 이 맘 때 목을 가눴고, 내가 이렇게 옹알이를 하고, 걸어 다니기 시작했고, 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보았겠구나. 하며 자신이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되면서 다시 한번 더 자식이 되어, 내 부모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부모들이 내가 속을 썩일 때마다 한숨처럼 내뱉던 그 말, "너도 너랑 똑같이 닮은 자식 새끼 낳아봐라. 그때는 내 마음 알 거다."라는 대사가 비로소 체감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당연하게'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주기만 하는 존재가 엄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엄마의 입장을 알게 된 이후로는, 가족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어찌 보면 부당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는 그냥 처음부터 엄마인 줄 알았는데, 엄마도 이렇게 힘들게 나 키웠어?

 

 

 

아직은 엄마의 입장에 서보지 못했지만, 주변 친구들이 모두 한참 육아에 빠져 있는 터라 보고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많다. 아이를 낳으면서 출산의 고통 때문에 지옥과 천국을 맛보게 된다는 이야기부터, 모유수유 전쟁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어 다크 서클이 어디까지 내려와있다는 사연,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보채는 아기 때문에 정말 어떤 날은 아기를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눌러야 한다는 엄청난 고백까지.. 물론 엄마가 된다는 건 행복한 일이자 하나의특권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난 이후 현재의 삶이 각자 꿈꿔온 것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 어떤 초보 엄마도 그런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걸. 왜냐하면 미쳐버릴 것처럼 힘들다가도 아기의 방긋 웃는 미소 한 방이면 그 모든 것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매번 하소연을 할 때마다 공감하고, 토닥여 주면서도 그들의 천사 같은 아기들을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도 함께 보여 마냥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하루아침에 살림과 육아에 능수능란해지는 슈퍼우먼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차차 익숙해지고 좋아질 거라고 응원해주기만 했다.

 

언젠가 엄마들에게 각자의 삶에서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죄책감, 남들과의 비교, 육체적 정신적 질병, 외로움, 누적된 피로 같은 것들이었다. 그밖에 "아이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자신의 심적 고통을 참아야 하는 것.". "가족을 위해 끝없이 헌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극심한 두려움을 느낀 것." 같은 대답도 있었다. 어려운 점에는 가족들이 요구하는 엄마의 희생, 자살 충동,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 끊임없이 느껴지는 무거운 책임감, 타인의 따가운 시선, 힘든 결혼 생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무 생각이 없는데도 남들은 내가 당연히 할 줄 알리라 생각하는 것." 같은 것들이 있었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내가 뱃속에 있을 때의 태동이 어땠는지를 기억하신다. 하도 요란하게 엄마 배를 발로 뻥뻥 차서 길을 걸어가다 깜짝 깜짝 놀라서 멈춰야 했다면서 말이다. 처음으로 젖을 떼려고 할 때 어떤 방법을 썼고, 그게 싫어서 아기였던 내가 어떤 얌체 같은 행동을 했었는지, 등에 엎고 시장에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북적대는 틈이 싫어서 사람들을 하도 꼬집어대서 미안해했다는 사연까지.. 엄마는 그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아직 생생하게 내가 아기였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계셨다. 매우 유순한 편이었던 동생과 달리, 나는 어딜 가도 맘에 드는 걸 사달라고 떼쓰며 보채는 고집쟁이였던 터라 엄마를 매우 힘들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엄마의 얼굴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번져있다. 이런 게 바로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인 것이다.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았지만, 절대 억울하지도 그 시절이 불행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것 말이다.

 

 

엄마라면 한 손으로 분유를 타고 한 손으로 요리를 하고

한쪽 발가락으로 장난감을 치우는 정도는 다 하잖아?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 청소해놓아도 바로 난장판이 되어 버리는 집,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한 꺼 번에 감당해야 하는 우리의 엄마들. 하지만 자식들, 남편을 포함해서 가족들은 엄마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의 엄마들도 평생 나를 그렇게 키워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뭐든 그저 '당연한' 일이란 없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족들이 매번 따뜻한 밥에, 깨끗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곧 누군가의 엄마가 될 이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잊지 말아야 하고, 육아를 하는 전쟁 같은 이 상황 또한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엄마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일인지 충분히 느끼고, 그 상황을 즐기며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파워 오브 맘스에 올라온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파워 오브 맘스는 2007년에 생긴 미국 엄마들의 온라인 커뮤니티(www.powerofmoms.com)로 현재 200만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엄마들의핫 플레이스.  육아에 관련한 다양한 노하우 및 아이를 키우며 생긴 여러 가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는데, 육아 전쟁과 사회 활동 그리고 가사 생활에 시달리는 엄마들의 진솔한 글들은 미국 뿐만 아니라 국내의 상황과도 그다지 다르지 않기에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이제 막 아기를 만나, 육아전쟁에 돌입한 아무 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라면 너무도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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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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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자들은 목소리가 크다.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다. 술집을 가든 당구장을 가든 제일 큰 소리로 떠드는 이들은 노가다 들이다. 그것은 그들이 늘 시끄러운 공사판에서 일하느라 소리를 지르는 게 습관이 되어서이다. 또한 아무도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천명관 작가가 7년 만에 출간하는 두 번째 소설집이다. 이야기꾼으로 탁월한 입담을 자랑하는 작가라 장편의 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단편도 그에 못지 않은 이야기의 맛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작가 자신 또한 어떤 이야기가 떠오를 때 시간도 길고 사이즈가 큰 편이라 단편으로 쓰기에 좀 아까운 것들이 많다며 장편을 주로 쓰는 이유를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전작인 <나의 삼촌 브루스 리> <고령화 가족>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무언가에 실패한 사람들, 밑바닥 인생 속에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동백꽃'에서 섬에 사는 유자는 도시로 나가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버스차장을 하거나, 하다못해 호스티스라도 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생각이 애초에 없다. 섬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인 구 회장네 아들인 동엽에게 잘 보여 그의 아이를 배서 선주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사는 것이 소원이다. 그녀의 엄마인 점순 또한 딸이 그 집 며느리로 들어가 딸 덕에 편히 노후를 보내는 것을 꿈꾼다. '왕들의 무덤'에서 나름 자리잡은 작가아인 정희는 겉으로는 그럴 듯한 주류의 삶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며 내적으로 방황한다. 어릴 때 캐디 일을 하며 아버지 뻘인 손님이 자신을 희롱하던 기억도, 밤마다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았던 엄마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도 그녀는 글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기억을 차마 지워버릴 수도 없다. '파충류의 밤'에서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십 년 가까이 편집장으로 일했던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로 긴 여행을 다녀왔지만, 언제부턴가 그녀에게 남은 건 지독한 불면뿐이었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에서 주인공은 한때 잘나가던 트럭운전사였지만 아내와 이혼 후 칠 년, 현재는 쉰일곱의 막 노동꾼으로 겨우 살아내고 있다. 딸과 아들과는 거의 대화도 없고, 함께 밥을 먹는 일도 없다. 그저 소주병을 친구 삼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다. '전원교향곡'에는 젊은 귀농 부부가 시골에서의 삶이 그들이 꿈꾸던 것처럼 되지 않아 결국 가족이 파탄 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얘야, 잊지 마라. 사는 건 누구나 다 매한가지란다. 그러니 딱히 억울해할 일도 없고 유난 떨 일도 없단다.

 

'우이동의 봄'에서 나는 언젠가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그의 할아버지에 관한 일로 파산한 가족이 할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기에 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그렇게 자신만 알고 있는 평생의 비밀이 될 수도 있었으나, 결국 극의 마지막 즈음에 할아버지에게 진실을 털어 놓게 되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는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떠올리며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 결국 우리가 도착할 곳이 어디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인생의 준엄한 전언처럼 할아버지가 해줬던 말을 기억한다. 살면서 누구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으나, 어디로든 가야만 하는 그런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삶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그저 흘러가서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막막함, 답답함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인물들의 꼬이고 꼬인 인생들에게 천명관 작가는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그저 무심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말을 건넨다.

 

특히 재미있었던 작품은 천명관 작가가 자신이 쓴 유일한 장르 소설이라고 밝혔던 '핑크'이다. 대리운전기사인 남자와 그의 손님인 뚱뚱한 여자. 한국에선 분명 흔치 않는 몸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목도리와 패딩 점퍼 모두 핑크색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핑크 덩어리가 뒷좌석을 꽉 채운 느낌이 드는 손님이었다. 도로엔 점점 더 눈이 쌓여가고 있었고, 겨우 삼 만원 벌자고 무리를 했다가 차가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봐 바싹 긴장해야 했지만 남자는 신경안정제에 의지해 다소 몽롱한 상태로 운전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도 그렇고, 제한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도 그렇고 약간 미스터리 한 색채도 띠는 것이 기존 천명관 작가의 작품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도 자아낸다. 다음 번에는 천명관 작가가 맘 먹고 장편으로 장르 소설을 한 번 써보셔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마 기존의 장르 소설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천명관 표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

 

그래, 까짓것. 인생 뭐 있나? 이리 살아도, 저리 살아도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이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흘려 보내도 시간은 가고, 매 순간을 치열하게 겪어내도 시간은 마찬가지로 지나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돌이킬 수 없다면, 어차피 부딪쳐야 한다면 즐겨보자. 나의 하나뿐인 생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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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와우북 페스티벌!!

오늘부터 3일간 홍대 주차장거리에서 거리도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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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4-10-0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딱 가고 싶어할만한 곳들 골라 주셨네요. 진짜 딱 저 두 군데일 것 같은데. ㅎ
잭 리처 다시 시리즈로 싹 구비하고 싶고, 북스피어 에스프레소 노벨라 빠진 것 몇 권 있거든요.
내일은 나가봐야겠어요.

피오나 2014-10-03 17:45   좋아요 0 | URL
오..잘됐네요..저는 에스프레소 노벨라시리즈도,잭 리처 시리즈도 이미 다 가지고 있어서 너무 아쉬웠어요ㅋㅋ
 

알라딘 책베개 도착!!!

쿠션감도 장난아니고 완전 맘에듬!!!

덕분에 또 책사느라 칠만원이나 써버렸지만.. ㅋㅋ

알라딘 책배개 너무 좋다!!! 최고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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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4-09-30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생각보다 크네요. 정말 베개!

피오나 2014-09-30 19:00   좋아요 0 | URL
넹.진짜책으로된베개ㅋㅋㅋㅋㅋ

ICE-9 2014-09-30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큰데다 쿠션감까지 좋다니 엄청 유혹적인데요😀 이거 또 통장 잔고 줄어드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피오나 2014-09-30 19:01   좋아요 0 | URL
하핫..그러니까요..저도다른디자인책베개를조만간구엡할꺼같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