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 기울이고 영혼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얼마 전에 힐링 캠프에 김영하 작가가 나와 강연한 것이 한참 화제가 됐었다. 거침없이, 정곡을 찌르는, 그리고 너무 솔직한 그의 입담에 당황하면서도 홀린 듯이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군부대에 강연을 갔을 때 제대를 앞둔 병장이 자기는 집안 형편도 어렵고, 스펙도, 학벌도 시원찮은데, 어떻게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김영하 작가의 대답은 ", 잘 안 될 거예요."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고 없는 희망을 억지로 주지 않고, 나는 작가라 여러분에게 성공하는 법 같은 것은 가르쳐줄 수 없다고 말하는 명쾌함. 작가는 실패 전문가이고, 소설이라는 게 원래 실패에 대한 것이라고. 하하. 이 한 대목만으로 김영하 작가를 몰랐던 많은 이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탓에, 두고두고 그 강연을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김영하 작가는 소위 '말 잘하는 작가'중에서도 선두주자라서 그가 했던 숱한 강연 들을 이렇게 책으로 만나게 되어 매우 기대가 많았다. <보다> <말하다> <읽다> 삼부작으로 예정된 김영하 산문 집 중 두 번째인 <말하다>는 등단 이후부터 지금까지 해온 인터뷰와 대담,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 일반적인 대담 집 형식에서 벗어나 작가가 직접 인터뷰와 강연을 해체하고 주제별로 갈무리하여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로 탈바꿈시킨 것이 이 책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기분을 기억하십니까? 저에게 그것은 어떤 금지된 세계에 들어갔을 때와 비슷했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동안에 우리는 일상적인 시공간, 익숙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해주고 아버지가 날마다 출퇴근을 하는 세계.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유용한 것을 배우는 세계. 그런데 집 책꽂이에는 어른들이 읽는 소설이라는 것들이 무심하게 꽂혀 있습니다. 이걸 뽑아 읽기 시작한 어린이는 즉각적으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기분에 대해 말하는 작가의 의견에 백 프로 동의한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모험의 세계, 하늘을 날거나 고아가 되거나 마법을 사용하거나 무인도에 상륙하거나. 그렇게 놀라운 세계에 머물다가 아버지가 퇴근해 집에 들어오거나, 어머니가 숙제 다 했느냐고 물으면 시침을 뚝 뗀 채, 다시 현실로 돌아오곤 했던 그 기억. 나는 딸 부잣집에서 태어나 네 자매 중에 셋째로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북적북적 시끄러운 집안이었다. 덕분에 책을 은신처 삼아 도피하는 법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고 할까. 가끔 부모님이 다투시거나, 언니들이 잔소리를 하거나, 동생이 말썽을 부릴 때, 나는 책을 방패 삼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잘 골라 펼쳐 든 책 한 권은 방패이자 방화벽이며, 투명인간의 망토'라고 했던 에리카 종의 표현처럼 나는 그렇게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보호받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소설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던 것 같다. 물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김영하 작가는 이 산문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는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것. 실패가 때로는 존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니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으라고 말한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다들 앞날이 불안하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니, 더더욱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지를 말이다. 자기계발서니, 인문서는 읽으면서 소설은 '소설 나부랭이'라 치부하고 읽지 않는 이들에게 나는 김영하 작가의 강연을 들어보게 하고 싶었다. '소설'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너무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소설 나부랭이'로 치부하던 이들도 아무 말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이렇게나 장황하고, 합리적이고, 감동적으로 이야기하는 작가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저는 언제나 책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제 소설들은 이미 쓰인 다른 작품들에 대한 제 나름의 답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책만이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든다고 말하는 그의 말이 어쩐지 가슴 뭉클하게 오래 남는다. 경험도 아니고, 주변 사람도 아니고, 온전하게 책만이 작가를 만든다고. 당연한 하게도 모든 작가는 독자에서 시작하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자 아무 책이라도 더, , 계속 읽고 싶어졌다. 한 권의 책이 다른 한 권의 책을 부른다. 어떤 책들은 질문을 던지고, 또 어떤 책들은 수많은 다른 책들을 끌어 당긴다. 그렇게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연결되고, 그렇게 쌓인 책들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누군가를 작가로 만들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그게 나의 모습일 수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일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던-중력의 낙원/히라노 게이치로 저/이영미 역/문학동네

 

히라노 게이치로의 SF라니! 너무 궁금하다.

 

이 년 반의 화성탐사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한 우주비행사가 겪는 혼란과 그 배경에 얽힌 가상의 사건들을 다룬다고 하는데, 전작인 <결괴>에서 뭔가 하나의 전환점을 돌고 그 다음 작품이라 그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오다 마사쿠니 저/권영주 역/은행나무

 

<일본의 한 애서가 집안에는 책장에 꽂힌 책의 순서를 함부로 바꾸지 말라는 철칙이 있다고. 책에도 암수가 있어서 아무렇게나 붙여 놓으면 새로운 내용을 가진 책을 잉태해버린다는 것> 이라는 설정이 너무도 기발하고, 깜찍하고, 사랑스럽다.

 

 

 

 

 

 

 

 

윌리엄 트레버-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윌리엄 트레버 저/이선혜 역/현대문학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은 새로 출간될 때마다 거의 무조건 관심이 가는 시리즈이다.

 

줌파 라히리가 "트레버의 작품에 견줄 만한 이야기를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면 행복하게 죽겠노라고 생각했다"라고 존경을 표했던 작가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구병모 (지은이)/문학과지성사 

 

청소년문학, 순수문학, 장르문학을 자유롭게 유영해 온 구병모의 두번째 소설집이다.

구병모의 작품도 어쩐지 덮어놓고 궁금해지곤 한다. 읽어보고 싶다.

 

 

 

 

 

 

 

 

 

 

익사/오에 겐자부로 (지은이)/박유하 (옮긴이) /문학동네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인 소설 또는 고백, 그가 아버지에 대해 처음으로 말하는 작품!

 

그의 작품 중에 아버지에 대해 다루는 작품이 드물고, 자신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말한적이 있으므로, 궁금한 작품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거핀 2015-04-0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히라노 게이치로 책 추천할까 말까 생각했었어요. 결국 안하기는 했지만..600쪽짜리 책인데 아무래도 만만치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번에 <익사> 추천이 많군요. 적어도 현재까지는요.

피오나 2015-04-03 12:04   좋아요 0 | URL
히라노 게이치로 책은 아직까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추천이 적어서..그냥 제가 사서 봐야할까봐요.. 하핫^^;;;
 
홀드타이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녀는 아트머스에서 이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 이 사람과 침대를 함께 쓰고, 아이를 낳고, 평생의 동반자로 선택을 했다. 환상 속에 그리던 백마 탄 왕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멋진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실제로 누군가를 인생의 동반자로 선택한다는 건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둘 사이가 조금이라도 벌어지지 않도록 애를 써야만 한다. 두 사람의 사이를 일분일초마다 더 좋아지고 더 열정적으로 만드는 모든 일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내가 조금 어렸을 때, 그러니까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을 때는 막연히 가족이라는 개념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주어진 것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그런데 수십 년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타인과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매 순간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가끔은 무조건 희생해야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공유해야 하는, 사실은 엄청난 노력이 바탕이 되어 유지되는 공동체가 바로 가족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결혼은 사랑의 문제가 아닌 책임의 영역이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 또한 절대적인 포기와 희생을 통해서만 견고한 믿음으로 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점점 깨닫게 되었다. 부모와 닮은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낯선 타인처럼 이질적이고 불가해한 존재로 변해가고, 어느 순간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진짜일까? 싶을 만큼 낯설게도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지만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는 기이한 존재라는 말이다.

할런 코벤의 작품 속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한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비밀과 배신, 반전과 폭로라는 코벤 작품의 특징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에게 각자 일정한 몫의 비극을 만들어준다. 모든 집과 가정은 그들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걸로 인해 꽤나 큰 댓가를 치루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미우나 고우나 그들은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이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논리적으로 인과관계를 따지기 전에 무조건 신뢰해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믿음에 관한 무시무시한 진실은 바로 '무조건'이다. 설사 그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감추고 있더라도 말이다.

남이 들으면 그건 '중년의 위기'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말은 너무나 편리하게, 너무나 손쉽게 대는 핑계에 불과할 뿐이었다. 사실, 론은 이런 생활을 증오했다. 자신의 직업을 증오했다. 일이 끝나고 이런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과, 말도 듣지 않는 애들과,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과, 전구를 사러 헐레벌떡 철물점으로 달려가는 것과, 자식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난방비 줄일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을 증오했다. 정말 이런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함정에 빠져들었던 걸까? 수많은 남자들은 이런 생활을 어떻게 버텨가는 것일까?

열여섯 아들 애덤이 사람들을 기피하고 홀로 방안에 틀어박히자, 걱정이 된 부모 마이크와 티아는 아들의 컴퓨터에 그를 감시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게 된다. 친한 친구 스펜서가 자살한 뒤 침울해지고 말수가 적어진 애덤이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말도 잘 하지않고 눈에 띄게 변한 탓이다. 아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것이냐, 아들을 보호할 것이냐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그들은 결국 아들을 몰래 살펴보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다 휴대전화 GPS를 추적하기에 이르고, 그것은 이들 모두를 위험으로 내몰게 된다. 과연 아들의 반항은 사춘기 소년의 일탈에 불과했던 것일까. 왜 애덤은 친구의 죽음 이후로 변하게 된 것일까. 혹시 그 죽음과 무슨 관련이 있었던 걸까. 아들인 스펜서가 자살한 뒤 벳시 힐와 론은 스스로를 자책한다. 왜 엄마라는 사람이 아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그저 십대들이 흔히 보이는 기분 변화라고 무시해버렸을까. 왜 미리 심리치료사에게 꾸준하게 데려가지 않았을까. 왜 아빠라는 사람이 자식의 고민을 전혀 눈치재지 못했을까. 아들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데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아들의 손이 쉽게 미칠 수 있는 곳에 처방약과 보드카를 놔둔 자신을 책망하고 만다. 그러다 벳시는 우연히 스펜서가 죽던 날 밤에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들의 절친이었던 애덤을 찾아 그날 밤의 일에 대해 묻는다.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전과 단테 부부의 아들 루커스는 현재 장기 기증이 필요하다. 의사는 그들의 적합성검사를 했고, 생각지도 못한 당황스런 결과에 직면한다. 단테가 루커스의 친아버지가 아닌 걸로 밝혀진 것이다. 루커스에게 딱 맞는 기증자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마도 가장 유력한 후보자는 그 애의 생물학적 아버지일 것이다. 환자를 위해서는 친아버지를 찾아 적합성 검사를 해야 하지만, 이 사실을 알려주면 단테와 수전 부부는 파국을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이는 여러 해 전에 이혼을 하고 홀로 열한 살 된 딸 야스민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선생님이 수업내용을 빗대어 야스민을 모함하는 말을 했고, 그 이후로 모든 학생들이 야스민을 놀리기 시작한다. 엄마도 없는 데다 아빠라는 사람이 세심하게 관심을 쏟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주의한 루이스턴 선생님에 대한 분노에 빠져 있다. 선생이라는 작자가 단 10초 동안 이성을 잃었을 뿐인데 그 사건으로 한 소녀의 인생이 몽땅 변해버린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말이다.

이들 네 가족은 모두 전혀 다른 크기의 고민과 불행을 끌어안고 있다. 방황하는 아들을 감시하는 부모, 아들의 자살 원인에 대해 자책하는 부모, 장기 기증이 필요한 아들을 위해 부부 사이의 신뢰를 깨버려야 하는 아내, 그리고 부주의한 선생님 때문에 상처받은 딸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아빠. 그들 나름대로의 문제는 바깥에서 보면 절대 알 수 없다. 그들 각자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오로지 가족만이 그 슬픔과 고통을 겪어야 한다. 내 손을 잡아. 널 놓지 않을께.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당신은 그 어떤 것을 마주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만큼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신뢰라는 건 그런 것이다. 좋은 의도라 해도, 한번 깨지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그럼 어머니인 티아는 이 모든 일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다였다.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그들이 사랑 받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면 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너무나 무작위적이어서 그보다 더한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인생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다. 마이크에게는 유대인의 표현을 즐겨 인용하는 전직 농구스타 친구가 있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인간은 열심히 계획하지만, 신은 비웃는다'였다.

할런 코벤의 작품은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다. 수많은 등장 인물은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있고, 결국에는 퍼즐처럼 연결이 된다. 복잡하고 다채로운 플롯은 막판에 가서야 단순하게 정리가 되며, 끝을 향해 달릴 때까지 지루할 틈이란 단 한 순간도 없다. 그러니까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탄 것처럼. 서서히 상승하는 이야기가 클라이막스에 치달을 때까지 계속 더 높이, 더 높이 가다가 어느 순간 일시에 해소가 되는 스토리이다.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모든 캐릭터와 사건이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페이지가 아무리 두꺼워도 멈추고 쉴만한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의 작품들은 대개 독자들과의 암묵적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한 판 게임이다.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약속된 장르의 법칙 아래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것이니 복잡하다고 토 달지 말고, 어디서 본듯한 설정이라고 비웃지도 말라는 선언에 동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코벤 표 롤러코스터의 레일을 성실하게 따라가면서 즐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니까. 코벤의 작품에서는 평범한 설정과 익숙한 스토리마저 결국 우리네 삶을 비추는 예리한 거울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그저 공감하고, 감탄하고, 뜨끔하다가, 서글펐다가, 당황하고, 마지막으로 안도하면 된다. 사실 그게 우리네 삶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 아닌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5-04-0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피오나님이 쓰신 이 리뷰의 첫단락(인용문 말고요)이 참 좋으네요. 저도 이 책을 읽어봐야 겠어요.

피오나 2015-04-01 12:44   좋아요 0 | URL
어떤지 다락방님도 이 책 재미있게 읽으실 것 같아요. 가족에 대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해주더라고요. 평소 다락방님의 페이퍼를 즐겨읽었는데, 글 속에 가족들이 자주 등장하셨잖아요. ^^;;

맥거핀 2015-04-0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만들면 꽤 재밌을 것 같아요(이미 영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어쩔 때는 이 세상에 가족 없이 홀로 지내는 사람이 제일 마음 편하겠다 싶다가도, 막상 일 생기면 곁에 남아있는 것은 가족 밖에 없으니..누구 말마따나 갖다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가 없는 게 가족인가 봅니다. (같은 평가단으로서 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피오나 2015-04-01 18:25   좋아요 0 | URL
정말 가끔은 갖다 버리고 싶지만, 그러나 버릴 수 없는 존재..ㅎㅎ 저는 평가단 이전에도 맥거핀 님 글 읽고 있었어요. 특히 영화 리뷰는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답니다. 하핫..
 
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 - 천부적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영어의 역사
필립 구든 지음, 서정아 옮김 / 허니와이즈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메뉴 판의 코스와 음식들이 모두 영어로 표기된 걸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큰 활자로 영어가 있고, 그 아래 작은 활자로 한글로 인쇄되어 있는 메뉴 판을 보면서, 이렇게 해야 세련되어 보이는 걸까. 아니면 외국인 손님들을 생각하며 배려해놓은 걸까 의문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비단 레스토랑뿐만 아니다. 거리 곳곳의 간판들은 대부분 영어 혹은 영어화된 한국어로 지어진 이름들이 수놓고 있다. 바야흐로 영어가 곧 세계화의 첫 걸음으로 인식되는 시대인 셈이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언어는 영어이다.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를 제외하더라도, 영어를 제2언어로 배우고 말하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역시 초,,고등학교 기본 과정에 영어가 필수인데다, 입시는 물론 취직 때도 영어를 잘해야 유리하기 때문에 영어를 입시처럼 배우고 익힌다. 하지만 정작 사회에 나와보면,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게 아닌 이상 딱히 영어를 자주 쓸 일이 없다. 그래서인지 십여 년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몇년 만에 영어 단어들은 우리의 머릿 속에서 하나 둘씩 사라져버리고 만다. 아마도 주입식 교육의 병폐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과거의 언어로 묻어두기엔 영어가 눈에 너무 자주 보이는 요즘이다.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해봐야 하나 싶을 만큼 말이다.

이 책은 영어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영어라는 언어 속에 어떠한 역사적 배경이 숨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인 필립 구든은 오래 전부터 한편의 소설처럼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진진한 영어 이야기를 많은 이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하는데, 영어에 관한 다양한 사례들로 쉽게 풀어나가는 이 책을 읽게 되면 잠시 잊고 있었던 영어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to 부정사 사이에 부사를 넣어 쓰는 분리 부정사의 유명한 사례는 TV시리즈 <스타트렉>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내레이션 "To boldly go where no man has gone before (그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과감하게 나아가는 것)" 에서 찾을 수 있다. 조지 버나드 쇼는 분리 부정사를 트집 잡는 사람들을 싫어해서 <타임스>지에 일부러 분리 부정사를 잔뜩 넣은 항의 편지를 보냈다. "당신네 편집자 중에 오지랖이 넘쳐 분리 부정사를 찾아 다니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그 깐깐한 인간을 당장 해고하시길 요구합니다. 그 사람 스스로가 빨리 나가려 하든 말든 (to go quickly or to quickly go or quickly to go)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점은 지금 당장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셰익스피어가 사는 동안 영국은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밑에서 강국으로 떠올랐고, 그 시대에 가장 큰 덕을 본 것은 바로 영어였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영어는 힘을 키우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실험과 말장난 재료가 되기도 한다. 영국의 국민 작가 셰익스피어는 영어에 영원한 발자취를 남겼는데, 그가 만든 단어 가운데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실린 것만 해도 3,000개에 이른다고 하니 시대를 타고난 천재의 멋진 발자취가 아닐 수 없다.

학창시절 단순히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기계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외우느라 고생했던, 그래서 영어라는 언어의 재미에 대해서 느낄 겨를도 없이 어른이 된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너무도 놀라운 사실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기원전 750년의 초기영어부터 중세 영어, 근대 영어를 거쳐 현대의 영어, 그리고 21세기 이후 미래의 영어에 이르기까지 영어가 어떻게 발전되고, 전파되고, 달라졌는지에 대한 스토리는 너무도 다채롭고 풍부하다.

페이스북에는 회원들에게 '문법 파괴자들을 색출하고 그들의 테러 행위를 기록'할 것을 권장하는 그룹이 있다. 수천 명을 회원으로 거느린 이 그룹의 이름은 'I Judge You When You Use Poor Grammar(당신이 잘못된 문법을 쓰는지 판단해 줄게요)'. 반면에 올바른 영어라는 개념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반발심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지만, 어쨌든 영어를 둘러싼 논쟁은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처방주의자(prescriptivists)와 언어란 아무리 통제하려 해도 알아서 제 갈 길을 간다고 생각하는 서술주의자(descriptivists)의 한판 대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맞춤법, 문장부호, 발음 등 영어에 관한 격렬한 논쟁과 역사적 사건에 따라 영어 단어와 문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재미있다. 계층 문제와 편견을 잔뜩 숨기고 있는 h발음, 그리고 언어가 무기가 되는 순간 정치에 어떻게 이용이 되고 있는지도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완곡어법과 PC를 무더기로 사용하는 일이 많은 정치 연설에 관한 사례는 특히나 영어를 현재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어느 역사서에서도 언어인 '영어'의 역사에 대해 다루지는 않았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곳곳의 역사를 통해 읽어본 히스토리는 수천 개의 언어들 중에서도 '왜 영어인가'에 대한 해답을 들려준다. 이 책은 영어 공부와는 너무 멀어진 어른들이 읽기에도 괜찮고, 현재 영어를 공부 중인 학생들이 읽는다면 더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을 정복한 언어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이비 위스퍼 패밀리편 - 행복한 가정을 완성하는 베이비 위스퍼 4
트레이시 호그, 멜린다 블로우 지음, 노혜숙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베이비위스퍼는 초보 맘들에게 거의 바이블과도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배맘들에게 육아에 관련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많은 이들이 한 입으로 베이비위스퍼 시리즈를 추천하길래 무심코 샀었는데, 읽어보니 왜 다들 추천하는지 알만했다. 베이비 위스퍼는 말을 잘 다룬다는 호스 위스퍼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말을 향해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듯이 초보 부모에게도 항상 평온하게 아기에게 다가가는 태도를 가지라는 뜻이다. 태어나서 첫돌까지, 첫돌에서 만4세까지, 그리고 총정리 실전 편. 이렇게 세 권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특히나 초반에 아기가 먹고, 잠자는 부분에 대해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책이었다. 그런 베이비 위스퍼 시리즈의 새로운 버전은 바로 '패밀리'편이다. 그 동안의 시리즈가 아기의 성장발달에 따른 팁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아기를 키우느라 잃어버린 '가족'에 관해서 조명한다.

부모들은 종종 가족이 아닌, 아이 자체에 초점을 맞추거나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는 자신의 역할에 지나치게 집중한다.

부모의 육아는 물론 중요하지만,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에게만 모든 것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로 초점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베이비 위스퍼링은 '아이의 입장에서 조율하고 관찰하며 귀 기울이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 책에서 패밀리 위스퍼링은 '가족 전체의 입장에서 조율하고 관찰하며 귀 기울이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결국 같은 원리이다. 아이가 아닌 가족에게 주파수를 맞추고, 아이 중심에서 가족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중요하니까.

얼마 전에 5개월된 아이가 예방접종을 맞고 와서 새벽에 고열로 시달린 적이 있었다. 아직도 어리버리한 초보맘인 나는 별 생각 없이 해열제 처방을 받아놓고도 약을 챙겨오지 않았던 탓에, 남편이 여기저기 약국을 알아보느라 한밤중에 동분서주하게 만들었다. 5개월만에 처음으로 아이가 아팠던 상황이라 너무도 당황하고, 걱정스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 와중에 남편이 '왜 처방전 받고 해열제를 챙겨오지 않았느냐'는 눈빛을 보내는 것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매일매 순간이 처음인 초보 맘이라 나도 서툰 것 투성이고, 종일 아이보고 시달리느라 정신 없이 바빠서 미처 생각지 못하고 놓친 것인데, 그런 실수를 그저 지나가도 될 것을 굳이 타박하나 싶어 화가 났던 것이다. 물론 그런 마음은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밤새 뜬 눈으로 지새우며 걱정하다, 체온이 정상이 되고 나서 눈녹듯 다 사라져버렸지만 말이다. 이건 아주 사소한 예이고, 아마도 앞으로 아이를 키워나가면서 더 많은 상황들에서 '무조건 아이가 중심'이다 보니 남편과 사소하게 언쟁을 하거나 서로 배려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로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이런 책이 필요했다. 나와 남편처럼, 서툰 초보 부모에겐 말이다.

관계를 잘하는 가족은 화목하다. 그리고 관계를 우선하면서 노력하고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질수록 더욱 행복해진다.

예전에 연애를 할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서로 다툴 일이 생길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을 바꾸겠다는 마음만 먹지 않는다면, 남편과도, 아이와도 문제가 생길 일이 그다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을 조종하거나 관리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각자가 행동하고 말하는 방식은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춤을 변화시킬 수 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멋지지 않은가. 상대방과 나누는 모든 상호작용이 때로는 그 관계를 풍성하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아예 망가뜨리기도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족 관계에 있어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상대방이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기 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해보는 것이다.

사실 부부만 있던 가정에 아기가 태어나게 되면, 온 생활의 중심이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부부 관계는 소홀해지고, 사소한 걸로 자주 다투게 되거나, 혹은 반대로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것이 다반사이다. 새로운 가족의 구성원이 생긴 거니 그 결속력이 더 탄탄해지면 좋으련만, 인원은 늘었는데 가족 관계는 더 느슨해진다고 할까. 물론 모든 가정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보아온 대부분의 집들이 예외 없이 다 비슷했다. 그러니 '아이 중심에서 가족 중심으로' 초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이 책은 육아서의 시리즈 완성 편으로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선택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